[본상] 홍어 먹는 날 / 박소미
혀를 홍어에 바친 하루다
볏단처럼 비가 깔리고 왕겨 빛 시집 펼치면
개펄보다 캄캄한 길을 지나는 타자의 발굽소리 다가온다
비릿한 바다 한 귀퉁이 썰어 혀에 얹는다
대책없이 엥기는 차진 문장, 등골이 서늘해지는 은유는 징하다
귓속 가득 진한 암모니아 향 천둥 친다울대에 걸린 기억도 시굼하다*
어둑한 파도를 끌고 서늘한 물살 견디며 축축한 골방으로 숨어드는 홍어
꼬리 흔들면 뿌옇게 일어나는 뻘 같은 입말 가라앉을 때 까지
마음 항아리에 지푸라기 반 모춤 얹고 삭힌 매옴한* 뒷맛
아직도 발효 중이다
적막도 질겅질겅 씹으면 얼쩍지근한* 맛이 난다
구뜰한* 자서는 애탕 한 그릇, 옛말의 풋내는 보리싹처럼 뜨겁고 개안하다
사발 앞에 놓고 듣는 비긋는 소리는 이 빠진 뚝배기를 물고 있다
배고픈 자식 고향 떠나는 새벽 밥 지으며 듣던 소리처럼
마음의 혀를 쏜다
새침해진 별도 달시큰한 밤
나는 개미진 맛에 그렁그렁 귀를 맑힌다
시인은 죽어서야 웃는 홍어다
시굼하다:깊은 맛이 잇게 조금 신 맛이 있다
매옴한:혀가 조금 알알할 정도로 맵다
얼쩍지근한:음식의 맛이 약간 달면서도 얼얼한 느낌이 있다
구뜰한 :변볂지 않은 음식의 맛이 제법 구수하여 먹을 만하다
[남도작가상] 킬러 / 박선우
조금이다
바다는 수척해지고
킬러는 휘휘 휘파람을 분다
똬리를 틀고 있던 고요가 스르륵 꼬리를 감춘다
킬러는 빠르게 목표물을 실사한다
경직된 구멍에선 예민한 숨소리 가파르다
타이밍을 조절한다
쫓기고 쫓는 숨 가쁜 액션은 10초면 끝이다
숨소리 다치지 않게
사뿐사뿐 깊숙이 부드럽게
흔적을 아는데 10년이 걸렸고
기척을 습득하는데 또 10년이 지났다
심장이 물때를 읽고 등허리는 태양의 기울기를 읽는다
나이는 얼굴과 함께 까맣게 그을렸고
손마디의 군살은 낙지를 잡을 때만 감각이 산다
눈을 감기 전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바다의 광맥을 유언처럼 가리켰다
낙지의 신이 된 킬러
말갈기를 휘날리며 휘파람을 부는 황야의 무법자가 되어
허리엔 고무다라이를
손에는 삽을 들고
바다를 사정권 밖까지 사수한다
탕. 탕. 탕
저격당한 노을이 피투성이다
섬의 오디세이
nefing.com
『제9회 목포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본심위원 : 고재종 (시인)
엘리어트가 말했던가. 시는 잘 빚은 항아리라고. 아무리 좋은 소재와 주제의식을 가졌다고 해도 그걸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면 시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을 자기 방식으로 잘 빚어서 내놓아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시의 고유한 특성은 리듬과 이미지다. 현대시가 복잡다단한 현실을 반영하느라 많은 젊은 시인들이 산문시 형태나 시행의 길이를 부단하게 늘이느라 여념이 없지만, 리듬이 없는 시는 참으로 ‘시맛’ 떨어지게 한다.
다음으로 평이한 설명 문장 같은 시 구절이나 각종 수사를 시행에 덕지덕지 발라 지분거리는 시 구절을 보면 이 시인이 도대체 심상에 맺히는 ‘언어로 된 그림’인 이미지를 기본이라도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시가 넋두리나 푸념이라도 되는 양 자기의 1회적 감정을 마구 토해내는 그 진술시들은 사실 시인들에겐 금물일 수밖에 없다. 그런 진부하고 상투적인 감정 가지고는 ‘객관적 상관물’로 제시되는 이미지 창조에 결코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참신한 이미지 구사를 통한 원관념의 의미 변환이 찬연하게 일어날 때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의 개안이 가져다주는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제9회 목포문학상 본심에 넘어온 작품은 전국 10명, 전남 9명이었다. 예심위원 이봉환, 조성국 시인이 심사 결과 가장 우수한 작품이라고 뽑은 응모작을 처음에 올려놓았는데, 모든 작품을 정독한 결과 나 역시 그들의 눈이 정확했다고 생각한다. 먼저 「홍어 먹는 날 - 시집」은 이미지 구사가 좋았다. 홍어 먹는 행위와 시집 읽는 행위를 매칭 시킨 이 ‘괴이하고도 기발한’ 시는 다시 봐도 괴이하고도 기발하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시인들 중에 홍어 먹는 것을 시집 읽는 것과 결부시킨 시인이 어디에 있는가. 그것도 “비릿한 바다 한 귀퉁이 썰어 혀에 얹”고, 그러니까 홍어 한 점 썰어 입에 넣고, “대책 없이 앵기는 차진 문장, 등골이 서늘해지는 은유는 징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인이 누구인가. 홍어의 차진 살, 코에서 등골까지 쏘는 징한 냄새를 시집의 차진 문장과 서늘한 은유로 표현해내는 이 시인의 독창성은 시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된다. 더구나 “뻘 같은 입말” 아니 “개미진 맛”을 풍기는 그의 구수한 방언사용은 시의 푹 삭은 풍미를 한결 더해 준다.
다음으로 「킬러」는 리듬 감각이 뛰어난 시이다. 낙지의 신, 아니 낙지잡이의 신이 된 아버지의 감각을 물려받아 낙지 “흔적을 아는 데 10년” 낙지 “기척을 습득하는 데 또 10년”을 바친 뒤 마침내 낙지 킬러가 된 사람의 용맹정진이 숨 가쁘게 전개된다. 하지만 시는 비유나 유추로 이루어진다. 이 시에선 비유를 찾기 힘들고, 또한 낙지 잡는 행위로 인간 삶의 전개를 유추하는 데 한계가 있다. 당연히 당선작은 전자로 하고 후자는 남도작가상으로 정리한다.
한 사람 아쉬운 분이 있는데 「몸이 울던 날」과 「이름이 죄」를 함께 응모한 시인이다. 이 분은 목포 근대의 풍물을 구성진 이야기 가락으로 풀어내는 데 장기를 보인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다음 기회로 밀어 놓은 이유는 긴 문장들이 너무 설명조라는 것이다. 시적 표현은 설명이 아니라 묘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통통거리는 리듬의 구사, 참신한 이미지들의 적절한 배분 등 시적운산을 잘해서 다시 응모한다면 다음번에는 좋은 결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당선자들께 축하를 드리며 모든 응모자들께 격려와 위로를 드린다.*
예심위원 : 조성국·이봉환 (시인)
176명이 3편씩 총 528편이 응모된 작품들이 예심위원에게 전달되었다. 우리는 각각 전국, 전남의 시편들을 나누어 읽고 먼저 40여 편을 고른 다음 다시 20여 편으로 압축하였다. 전체적인 작품의 수준은 들쭉날쭉하였다. 시를 읽으며 전국 부분에 응모한 작품의 수준이 아무래도 높지 않을까 생각을 하였으나 전남 부분에 응모한 작품들이 결코 뒤지지 않아 보였다. 아무래도 한정된 범위의 소재를 작품으로 표현하려면 그곳에서 오래 살아본 사람이 더 표현하기에 유리했으리라. 공모 소재가 남도의 문화, 민속, 문학, 인물이어서 고장을 자랑하기 수준의 작품도 상당하였으나, 고르고 골라 뽑아본 20여 편의 작품들(전국 ‘홍어 먹는 날’ 외 9분, 전남 ‘킬러’ 외8분)은 꽤 시를 다루어본 솜씨가 있는 분들이었다. 당선작을 뽑기 위해선 본심을 맡은 심사위원의 상당한 고민이 있으리라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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