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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목포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이용호 김율관
■본상
홍어 삼합 / 이용호
맨 처음부터 이렇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지요 오랜 시간 속에 울창한 미래가 숨어 있을 것이라곤, 썩어 빠진 육체에서 아름다운 겸손이 피어나요 깊은 바다 속에서 원시의 생명력을 갖고 태어날 때도 몰랐던 사실, 찬란한 것은 결국 내 안에 있음을, 육지와의 궁합이 이렇게 잘 맞을 줄 알기나 했을까요 사랑도 오래 가면 새롭게 발효될 것인데 톡톡 튀는 숨결의 울림이 온화하게 해져가는 흑산도 벼랑 그 파도에 부서져 가요.
백정의 칼을 온몸으로 받을 때였어요 아득하게 삶겨지고 토막 났을 때 이 상처는 누가 감싸줄 수 있을까 고민했지요 순간순간 패전을 향해 나아가는 장수의 칼끝은 어떤 모습일까 헤아리기도 전에 제 꿈은 솥단지에 걸렸어요 활 모양 휘어드는 시간의 결들이 서둘러 꿈을 꿀 때 절망은 그 어느 곳에서도 산화되지 않았어요 뜨거운 불길이 올라오는 그때마다 열기는 매번 사랑으로 변해가고, 혼자서는 꿈을 잉태할 수 없는 세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비릿한 미각도 어울릴 때 서로를 감싸 줄 수 있음을, 세상은 감싸야 살 수 있음을.
시장의 모퉁이에서 속절없이 시간이 둥글어질 때. 아직 실현되지 못한 꿈들이 항아리에 담겨 울고 있어요 공존할 수 없었던 바다와 땅의 장엄함이 서로에게 익숙해지려면, 입 안에 꿈이 들어오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망설임이 있었을지 생각해 봐요 하루하루 익숙함의 기운이 새벽마다 은빛 테를 두른 채 빛나고 있어요, 그런 계절이었어요.
우리는 깊은 사원처럼 익어가요. 북극칠성이 깜박이는 곳에 집어등으로 수놓은 아슬한 공존, 사람들은 그 경계에 와서야 옷깃을 여밉니다 바다와 땅과 짐승들을 순하게 만들어 한층 아름답게 배열한 접시 위. 그 위에서 누군가 우리들을 모을 때였어요 바다의 꿈이, 땅에서의 소망이 이곳에 와서 비로소 힘차게 용틀임하고 있었어요.
■남도작가상
징하네 / 김율관
살구나무 물오른 가지에 설렁
올 풀린 따사로움이 걸렸네
설중에도 매화라 입춘이 언제드라
노루귀 쫑긋한 청명에 춘풍화기 남실대는
남녘,
미황사쯤 달마산 자락이 꿈틀댄다
산집 홑집에사 돌담에 얹힌 볕이
병아리 발등 어르고
아장걸음 어리광이 흙마당 우물가에 자꾸
발자국 꾹꾹 심는다
애기 산버들 눈을 뜰 듯 말 듯
속눈 꿈틀꿈틀 설레보고
얇은 분홍이사 번져서
슬몃슬몃 산밑을 번져서
개울물 흐르며
민들레 들꽃과 질갱이 풀, 새와 구름
개구리 눈과 바람, 돌과 뱀과 산제비와
산 너머 바람
어디쯤을 댕기 댕기댕기
숨소리 뛰며 누이가 오것다
누이야, 누이야 봐 봐
두견새 목쉬도록
산이 산이
온 산이 봄흥으로 진달래 분홍으로
징하게 번진다야
『제8회 목포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시간과 장소는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다. 누군가 말했듯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간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장소(공간이 아니고)도 마찬가지다. 한꺼번에 여러 곳에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 장소에 한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삼차원 세계에 살고 있다. 내가 이해하는 삼차원은 지금, 여기 그리고 나-주체로 구성돼 있다. 특히 나-주체가 여기-장소를 인지하는 능력이 삼차원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도시인에게 장소성(placeness)은 일상적이면서 동시에 본질적이다. 그런데 의외로 장소에 대한 감수성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장소성이란 특정 장소에 담겨 있는 어떤 성격일 것이다. 공간은 인간의 이야기(문화)가 개입되지 않은 미답지이다. 사막, 산정, 바다, 우주 같은 곳 말이다. 반면, 장소는 인간의 이야기가 적극 개입되고 공유되고 전승되는 곳이다. 범위를 좁혀보자. 골목길은 장소이지만 고속도로는 장소가 아니다. 재래시장은 장소성이 풍부하지만 대형 마트에는 장소성이 희박하다. 마을과 도시의 차이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역(성)은 장소(성)가 확대된 차원으로 봐야 할 것이다.
시의 사회적 역할 중 하나가 인간으로 하여금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면, 장소와 지역은 시가 각별하게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삶은 좋은 장소, 종은 지역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건강한 공동체, 지속가능 문명은 지금과 같은 열악한 장소-지역에 뿌리내리기 어렵다. 나는 시가 더 나은 장소-지역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면서 우리 사회가 지금과 다른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선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본심작을 위와 같은 시각에서 접근하려고 했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일정한 수준을 넘어 선 수작들이었다. 문학상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해서 그런지 장소-지역성이 두드러졌다. 목포와 호남, 도서지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주류를 이뤘다. 목포가 목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은 목포 자신만을 위한 사업이 아니다. 목포가 목포다워질 때 광주, 부산, 서울은 물론 지구촌 곳곳이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가 자신의 장소-지역을 재발견할 때 미래로 나아가는 문이 열린다. 우리 안에 있는, 시가 내포하고 있는 미래의 씨앗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발아해야 한다.
220씨의 <홍어삼합>을 목포문학상 전국 부문 당선작으로 뽑았다.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시적 대상을 신선한 시각으로 포착해내는 능력이 돋보였다. 특히 겸손, 발효, 연대, 공존 등 더 나은 삶과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보편가치를 재해석하는 문제의식에 큰 박수를 보낸다. <우이도 돈목 해변>도 당선작 못지않은 완성도를 보여줘 미더웠다. 당선자의 장소-지역에 대한 감수성이 우리 시의 영토를 확장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목포문학상 전남 부문에서는 91씨의 <징허네>를 선정했다. 시어에 음악성을 가미할 때 장소-지역성이 보다 강조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뛰어넘어야 낙원이 도래한다는 ‘오래된 미래’가 남도 가락에 실려 있어 그 의미가 더욱 빛났다. 두 분의 당선을 축하드린다. 목포문학상이 시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새로운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본심위원 :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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