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병동 / 이명
벽에 못을 박고 바다를 걸었다
바다는 벽이 되었다
벽에 걸린 바지가 방금 걷어 올린 미역 한 줄기처럼 후줄근하다
나는 전마선처럼 벽과 벽 사이에 떠 있다
한 줌의 바다가 벽을 허물고 나를 끌고 간다
천정으로 펼쳐지는 파도는 한 폭의 두루마리다
만조 시간에 두루마리는 가장 둥글게 펴진다
두루마리 위에 수없이 뜨고 지고를 반복하는 별을 나는 읽고 있다
시작도 끝도 없는 혼돈,
크면 멀리 가고 멀리 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되돌아오는
지금은 당신을 읽는 시간, 자정의 기차는 출발하고 있다
기사문을 아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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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평]
‘목포문학상’의 연륜이 더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듯, 응모작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고 골라서, 선고가 만만치 않습니다. 기성과 신인을 아우를 만큼 시의 기본 골격을 갖추었느냐의 여부와 함께, 새로움을 얼마나 보여주고 있으며, 한국시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가의 여부에 심사의 초점을 모았습니다.
먼저 신인들의 작품에서는 기성에 물들지 않고 패기와 함께, 시의 그릇에 얼마나 잘 어울리게 담았나를 선고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에 따라 풍성한 이미지를 담고 있으며, 또한 삶과 유리되지 않은 단단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골랐습니다.
삶의 잔잔한 애환을 제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성급하게 주제 의식을 내보이지 않는 「김밥」, 새로운 소재를 과감하게 채용하면서도 풍성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 「F1」등의 시를 골랐습니다. 삶과 시적 기교가 잘 합치되고 있고 「일당의 꿈」, 「어머니」, 「앵무새의 독백」, 「소주, 병」, 「우화를 꿈꾸는 숭어 떼」 등의 응모자들도 좋은 역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성 시인들의 응모작들을 보면서는 신인을 넘어서는 시적 역량과 함께, 기존 시단을 새롭게 할 신선도를 보여주는지 여부를 우선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에 따라 기계적 도구를 깎고 작업을 환유로 하여 오늘의 한국 사회의 모습을 잘 들여다보게 해준 「밀링작업」, 전통적인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 낡은 서정에서 벗어나 인간사의 철리를 잘 드러낸 「무화과」, 「꽃의 고도」 등의 시들을 골랐습니다.
또한 인간의 혈거 지역 등을 제재로 삼고 있으면서 그 가운데 숨은 삶의 의미를 풍부한 이미저리로 일궈낸 「동삼동패총」, 단단한 이미저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면서, 문화 변동기에 처한 우리사회의 모습을 잘 투시한 「단단한 그늘」, 「카오스 병동」, 「비밀」, 등의 시인 응모작들을 선고하였습니다.
예심위원 박몽구
텃골에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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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심평]
문학상의 심사는 언제나 지난한 일이다. 본심을 거쳐 온 작품들이라 하나같이 개성이 반짝이고 이미지와 상상력, 관조적인 시선들이 남달랐다.
그런데 한 분, 한 분, 응모작들을 읽다본즉 제출된 작품들의 편차가 심한 분들이 많았다. 도입부는 성공적이었지만 끝까지 밀어치는 뒷심이 부족한 경우도 많았다. 좋은 표현과 무잡함이 뒤섞였다. 발상만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자는 의욕이 과했기 때문에 성취도가 떨어진 것이다.
그중 접수번호 76의 응모작들이 안정된 구도 하에 독자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상상세계를 구축하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카오스 병동]과 [루치아 할머니의 무위농원] [허공 노마드]의 3편 모두 신선한 발상과 능숙한 마무리가 인상적이었다. 선자로서는 마무리의 울림이 보다 더 강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 부분은 당선자가 추후의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중 짧으면서도 이미지를 동력화시켜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추진력이 일품인 [카오스 병동]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보다 의욕적인 활동으로 문학사를 빛내주길 바란다.
본심위원 박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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