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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목포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전윤지 엄정숙

 

본상
유령들 / 전윤지

 


멀리서 눈 밟는 소리
네 가지런한 이빨들이 좋아
아래와 위가 부딪히면 누군가 먼 곳에서 땅을 밟는 소리가
혀로 천장을 긁으며 망설이는 소리가
이빨들 기지개를 켜는 소리가
눈을 뭉치고 또 뭉치는 소리가
밥풀이 눌어붙은 식탁 모서리 도드라진다.

 

또 한 발자국
넌 낭떠러지처럼 아득한 식탁 위를 잰걸음으로 건넌다
팔꿈치를 살짝 벌리고 외줄 타는 소녀처럼
뼈가 없는 것들은 부서지질 않아
곤약도 떡도 겨울도 어쩌면
그랬다 걷거나 씹겠지만 아무것도
삼키지는 못할 것이다
겨울은 길겠고
식사는 짧고 이빨만 남겠지
모쪼록 요란한 식탁은 우릴 고요하게 하지
가지런한 세계 네 조용한 식사
우리는 계속 입을 움직였다.

 

 

 

 

남도작가상

개미에 관한 보고서 / 엄정숙

 

 

임대아파트 반지하에 사는 개미들이
죽은 사마귀를 끌고 간다
트랙을 관통하는 하이웨이 속도를 감추고
발과 발의 연결로 치밀하게 계산된
일사불란한, 한결 같은 보폭이다
가본 길과 가보지 않은 길 사이에서
머뭇거리다 자주 되돌아 온 길
반복의 길을 군침을 흘리며 간다
암기하는 길마다 좌표를 만들고
땅굴과 터널로 영토를 확장하는
풍화되지 않은 문명
필시 빙하기를 기억하는 종족이다
주술도 없고 종교도 없어
불러들일 것은 동족의 허기뿐
하루의 중심이 지하로 쓸려 내려가고
지상의 대척점 어디쯤에서
방문 여닫는 소리가 층간을 기어오른다
땅거미가 져야만 어둠을 알아채는
아파트 주민들이 개미집 퇴치를 위해
다급하게 반상회를 여는 저녁
동네 별들은 동분서주,
개미의 연대기를 다시 쓴다

 

 

 

 

갈매기 학습법

 

nefing.com

 

 

 

 

 

 

 

제7회 목포문학상 시부문 예심평

                               
문학의 위기가 운위되고 있음에도 모두 200여명에 이르는 시부문 공모자들의 작품 약 1,000여 편을 읽는 기쁨이 매우 컸다. 하지만 동시에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난 몇몇 작품을 빼고는 대다수가 평이한 문학청년이나 애호가 수준의 작품을 벗어나지 못한 점은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엑스트라」,「뿔」,「저예산 영화」등의 작품은 현실을 바라보는 직선적인 시각이 듬직했다. 또한 이와 함께「유수풀의 세계」,「나무가 큰 귀를 키우는 시간」,「당산나무 연대기」 등은 시어를 끌고 가는 유려함으로 삶의 현장에서 끌어올리는 문예미의 맛이 듬뿍했다.


이에 비해「유령들」,「우리는 구겨지네」,「이름 무덤」등은 톡, 톡 끊어지고 틱, 틱 불화하는 현세대의 비극을 자신만의 언어로 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처럼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성한다는 미덕에 비하여 지식인의 사변적인 문학취로 기울일 우려가 들기도 했다. 넘쳐서도 안 되고 마냥 비어서도 안 되는 문학이란 참 아득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물 현상과 삶에 스며있는 비극성을 끌어내어 슬픔의 힘으로 씻어낸 수작들인「졸음 쉼터」,「퍼즐 이론」,「난시」등의 작품이 돋보였다. 또한「오후 두 시의 파밭」,「산양의 유산」,「무지개 현기증」등은 확고하게 구축된 것으로 보이는 자기의 문학세계가 이채로웠다. 하지만 이 역시 북방을 노래한 선배시인의 유행어린 포즈와 구별할 자기만의 성격을 잘 구현할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상의 작품들에서는 너무 멀고 희미한 현실이 보였음을 토로한다. 당대를 살아가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고 뜨거운 참여와 성찰 없이 이뤄지는 문학은 없다. 특히 시언어의 구체적인 생동감은 현실과의 조밀한 접응과정 없이 탄생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구분을 두어 공모한 남도작가들의 작품이 상대적으로 돋보였다. 「1만원」,「숲 돋보기」,「슈퍼 메뚜기」등의 작품은 현실을 보는 낙관적인 힘과 더불어 시적인 예기마저 갖춘 점이 돋보였다. 또한,「민무늬의 시간」,「구멍에 목이 걸린 낙타 한 마리」,「반추」등의 작품 역시 문학의 얼굴로 밝혀낼 수 있는 존재의 의미와 희망을 건져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햇볕 공화국」,「빈집의 습관」,「소리를 전시하다」등의 작품은 엇갈린 세계의 틈을 찾아 메우는 동화적 시각이 듬듬했으며, 「노량진」,「원앙의 필력」,「홍어사냥」등은 문학이 세계와 만나 스쳐가는 순간에 슬쩍 보이기 마련인 미적 감성을 낚아채는 솜씨가 보기에 좋았다. 또한「거울」,「도배」,「태양아파트 1303」등은 현실을 바라보는 질긴 시선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함몰되지 않는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상의 선자들에게 축하를 드리며 동시에「조율」,「위장의 법칙」,「스탕달 신드롬」등의 작품들은 문학과 현학이 구분되는 지점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고, 「노랗고 빨간 찌가 살고 있다」,「2월이었다」,「뭐」등의 작품은 비교적 수작으로 눈에 띄었으나 군살을 빼는 법에 유의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에서 다음을 기약했다. 문학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뿐이지, 결코 경쟁이나 승패의 속성을 지닌 것이 아님을 일깨우는 것으로 탈락하신 분들에게 새로운 분발의 기회가 되기를 당부한다.


예심위원 : 김경윤(시인) 박관서(시인)

 

 

 

 

 

 


제7회 목포문학상부문 본심평


  예심을 거쳐 넘어온 작품들 중 심사자의 눈길을 맨 먼저 사로잡은 작품은 「유령들」이었다. 이미 도래한 시대를 익숙하게 노래한 시편들이 있는가 하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대를 낯선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이 있다. 카프카도 피카소의 그림 앞에서 야누흐(『카프카와의 대화』 저자)에게 얘기한 바처럼 새로운 예술은 때로 “아직 우리의 의식 속에 들어오지 않은 기형들을 기록”한 것이다. 즉 이미 도래한 시대를 상투적으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시계처럼 가끔 앞서가는 거울”같이 “아직 지배적 흐름으로 가시화되지 않은 것들”을 노래함으로써 도래할 시대에 대한 앞선 “기록이며 증언”이 된다.
 
  「유령들」은 그가 의식했든 아니든 우리 시단에 ‘아직은’ 지배적 흐름으로 자리잡지 않은 ‘비가시화된’ 것들을 가시화하여 “멀리서 눈 밟는 소리”로 다가와 산 자들의 “가지런한 이빨들”의 “요란한 식탁”을 교란하며, 거기에 사라진 한 영혼의 “조용한 식사”를 초대한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것을 이처럼 섬세하고 날렵한 솜씨로 기술할 줄 아는 그의 언어 표현 능력을 높이 사 이 작품을 본상 당선작으로 민다. 좋은 시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낭떠러지처럼 아득한 식탁 위를 잰걸음으로 건”너는 ‘유령’을 아슬아슬하게 포착해내려는 고투 속에서 탄생한다. 우리는 식사 중에 “계속 입을 움직”이지만 지상에 거처 없는 한 외로운 영혼은 “팔꿈치를 살짝 벌리고 외줄 타는 소녀처럼” 지금 여기 우리 곁에 바짝 와 있기도 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 시는 이 세속도시의 안온하고 질서 잡힌 세계에 균열을 가함으로써 지금 우리 삶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자기 성찰의 시이자, 이른바 그 표현에서 미적 아방가르드를 전취함으로써 모더니티를 창출한다. 「엑스트라」도 당선권에 육박한 작품이었지만 ‘서술의 과잉’이 단점이었다. 시란 지극히 절제된 예술 행위이다.

 

  남도작가상 후보작 중 심사자의 손에 끝까지 남은 작품은 「개미에 관한 보고서」였다. 같은 작가의 「햇볕공화국」도 활달한 상상력이 빛나는 작품이었지만 비약이 심하고 의욕에 넘친 나머지 이 역시 감정 조절에 실패한, ‘시적 과잉’의 소산이라면 「개미에 관한 보고서」는 언어의 넘쳐남과 억지스런 조작을 벗어나 비교적 순연하게 “죽은 사마귀를 끌고” 가는 개미들의 생태를 묘사함으로써 어느 정도 ‘표현’에 성공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예의 익숙한 세계를 너무나도 익숙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원한 시적 성취에는 미달한다.

 

  시란 우선 절제된 언어로 극히 짧은 시간에 영감을 극대화하여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간에 셔터를 누르듯 우리 삶의 세목을 찰나처럼 포착하는 언어예술이다. 이번에 본심에 넘어온 작품들 모두 일정한 수준에 올랐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새로운 언어 기법으로 잡아챈 작품들은 의외로 드물었다. 편안하고 안일한 표현이야말로 너무나 쉬운 일이다. 예술이란 남이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을 스스로 내면서 가야 하는 고독한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프랑스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시인들이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거기에 있었고 또 그 순간에 삶이 나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어떤 방법이 있었다. 움직이는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는 한 순간이 있다.” 한 예지적 비평가의 말처럼 좋은 시는 “느낌의 현재에서 문득 시작한다.“ 그 느낌의 현재를 문득 발견하고 표현하는 것 역시 시인의 몫이고 의무이다. 진정으로 좋은 작품은 ”그것 스스로“ 살아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작자는 D.H.로런스의 충고처럼 무려 아홉 개나 되는 머리를 가진 그리스 신화 속의 히드라라는 괴물 같은 온갖 ‘상투형’들과 온몸을 다해 싸워야 한다.

 
본심위원 : 이시영 (시인)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copyzig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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