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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 / 유정

 

 

잘 지내나요?

당신의 긴 속눈썹이 생각나요

속눈썹 너머에는 무엇이 있나요?

당신은 그리움이 생기면 발뒤꿈치를 들고

먼 곳의 바다를 바라보곤 했죠

아직도 발뒤꿈치를 들고 있나요?

툭 누군가 건들면 당신은 수평선 쪽으로 쓰러지고 일어나곤 했어요

듣고 있나요? 항상 나의 속삭임이 닿을까 궁금해요

나는 그저 당신이 입었던 옷을 버릇처럼 떠올릴 뿐이에요

그때 당신의 옷에 붙은 가격표를 찾고 있었지요

가격을 확인하면 당신의 눈동자가 흔들렸어요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표정 속에서

나는 높게 서 있는 유리창을 닦으며 지상으로 내려와요

당신은 자신의 알몸을 본 적 있나요?

나도 오늘 당신처럼 옷을 갈아입어야 했어요

건물 외벽에 튀어나온 못에 작업복이 찢겼거든요

이런 날, 집으로 돌아오면

오래된 인형처럼 누워

당신보다 먼 바다를 꿈꾸며 입술을 깨물곤 해요

당신도 뒤척이나요?

문득 당신의 눈가에 말라붙은 마스카라가 보이네요

불붙지 않는 목재처럼

처음부터 우리는 손을 잡아도 함께 바다로 갈 수 없었군요

아무렇지 않게

우리 사이에 나뭇잎 하나가 흔들리고

마지막 인사 대신

오늘도 허공에 떠서

몰래 유리창에 손자국을 남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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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창밖 거리를 향하는 마네킹은 우리의 자화상

 

신인은 매너리즘에 물드는 사회와 시단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움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새로움의 형상화와 작품 선정은 우리에게 삶을 투영하고 대입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적 선물이며 사회적 공식이다.

 

본심에서 경합한 반려의 문장눈잣나무는 안정된 시상의 호흡을 보였지만 처음부터 예기한 결과가 나타나면서 선자들의 마음에서 멀어졌다. 당선작은 적어도 한 편의 시 속에 입체적이면서 시공간적이고 사회적이면서도 심리적인 갈등을 융합하여 관통하는 미학의 구조를 보여야 한다.

 

이런 면에서 유정 씨의 마네킹은 현실적 슬픔과 포기할 수 없는 생의 그리움을 한계와 단절이라는 복선 위에 손자국의 흔적을 몰래남겼다. 그것이 설령 미결과 얼룩이라 할지라도 쉽게 해결되고 소통되지 않는 삶과 모순을 반영한 것 이상을 넘어 마음에 오래 남을 시적 이미지를 그리는 데 성공했다고 판단했다.

 

옷이 팔려나가면 새로운 옷을 걸치고 다른 가격표를 붙이는 마네킹그러한 상실과 희생을 넘어 다시 창밖의 거리를 향해야 하는 화자의 절실한 결의와 희망이 곧 우리 모두의 자화상의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수평선에서 먼 어느 시가지의 코너에 서 있는 이 마네킹의 꿈은 하나의 선물이자 시인이 내재화한 사회적 공감이다. 유정 시인은 인내하면서 시의 길을 잘 살펴 밟아가길 바란다.

 

심사위원 고형렬·이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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