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뭐라도 될 줄 알았다 / 지이산

 

석 달 열흘쯤 차만 우리면 뭐라도 될 줄 알았다

꽃 소식 지나가고 눈 덮인 산 바라볼 때까지

차만 우렸다 넉 달쯤 차만 우리면 뭐라도 될 줄 알았다

엽저가 폭설보다 높게 쌓이도록 차만 우렸다

1년이 지나갔다 누구는 미쳤다고 하고, 누구는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누구는 같이 하자고 하고, 누구는

모른 척 했다 그래도 차만 우렸다

 

차를 우려 마시면 찻물이 씻어줄 거라 믿었다

몸 안에 가득 찬 울음이 어디로든 빠져나올 거라 믿었다

꽃도 못 본채 1년하고도 석 달이 지나갔다 감자 꽃 하얗게

피었다는 소식에 다시 찻물 올려놓았다 찻물 끓는 동안

다구를 닦았다 돌돌 말린 찻잎 넣고 물을 부었다

대나무 향이 올라왔다 적벽대전 하루 전 날처럼

차는 마시지 않고 있다 바람만 바라보았다

 

차는

마시는 일이 아니라 적셔내는 일

차는

마시는 일이 아니라 품는 일

차는

마시는 일이 아니라 바라보는 일

차는

마시는 일이 아니라 노는 일

입으로 마시는 일은

가장 나중에 하는 일이라는 것을

하늘에서 뭐라도 뿌리는 날

 

 

 

[당선소감] 

 

"늘 차와 함께 시처럼 살겠다"  지이산

 

 

찻물부터 끓입니다.지독한 폭염 안에서도 차를 우렸으니,당선 소식 받고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차를 우립니다.못 된 슬픔과 맞서려고,한 사람 마음 안에 들어가고 싶어 위리안치 스스로 유배시켜 놓고 유배일기 쓴지 5년.1300편 넘는 유배일기는 늘 차와 함께한 시간이었습니다.그러고 보니 1001번 째 쓴 당선작 ‘뭐라도 될 줄 알았다’도 차 우리는 이야기입니다. 

시에서도 드러나듯 차 우리는 시간은 참 좋은 친구입니다.17년 전 어머니 수의 안에 꼬깃 넣어드린 원고지 생각이 납니다.지금은 다 지워졌을 테니 이제 큰 소리로 읽어드려야겠습니다.심사해주신 분이 정현종·이상국 시인이라는 말에 더없이 기뻤습니다.고맙습니다.늘 되뇌었던 다짐으로 시처럼 사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떠리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문인으로서의 첫 발걸음을 뗐으니 앞으로 열성적인 작품활동에 나서겠습니다.”

2018 김유정신인문학상 수상자들이 문학의 계절 가을에 선배 작가 김유정의 혼이 깃든 춘천 실레 마을에서 등단의 기쁨과 다짐을 밝혔다.수상자들은 19일 열린 김유정신인문학상 시상식에서 ‘작가’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었다.올해 김유정신인문학상에 응모된 작품은 단편소설,시,동화 등 3개부문에서 총 1261점이 접수돼 전국 신인문학상 중 최고수준을 기록했다.부문별로는 소설 293편,시 852편,동화 116편이 등단의 꿈을 품고 접수를 마쳤으나 이 중 단 3편만이 심사위원의 손을 통과해 독자를 만났다.수상자들은 이날 수상소감을 통해 작가라는 무게감을 짊어지고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단편소설 부문에 ‘판타스틱 엘라’로 상금 1000만원을 받은 정지윤 씨는 “글을 읽어주시고 뽑아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앞으로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정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뭐라도 될 줄 알았다’로 시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지이산(본명 지용식)씨는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시인에게도 통하는 것 같다.좋은 심사평을 남겨주신 만큼 큰 그림을 그리는 시를 써나가겠다”고 말했다.

‘딱풀마녀’로 동화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신전향씨는 “새로운 시작의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리며 아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호석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