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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인생 / 김상현

 

내가 거품이 많다고?

맞아, 내 생각들은 피지(皮脂) 많은 지성이니까

 

그대들의 생각은 신선한가?

종이컵 가득 든 삼겹살 기름 같은 생각들

빨대로 불면 부글부글 거품이 일지

그대들의 거품, 그대들의 생각들

더 높이 더 많이,로 피지를 재배하는 그대들

수명이 연장되니

이제는 더 멀리,로 피지의 이모작을 하는 그대들

거칠고 윤기 없는 생각들, 검은 양복에 내린 하얀 재들

거품이 필요한 거지

 

즐거운 나의 샴푸는

내 머리 위에 수국(水菊) 송이를 피워 올리지

모발 틈틈이 하얗게 서리 맞은 생각들

손가락 쟁기로 갈아엎으면

뽀글뽀글 뽁. 뽁

옹알이 거품마냥 피어오르는 거지

이를테면 돈 냄새 나는 푸석한 생각들

동전크기만큼만 샴푸를 덜면

꽃망울 뽁. 뽁 터지며 피워 오른다는 거지

 

나는 거품의 인생

하루 두 번 생각을 감지

최적의 빛 반사율을 만들어주어

싱그러운 생각이 치렁치렁하지

 

나와 함께 샴푸하는 그대여

어때, 수국으로 피어오르는 느낌, 개운한가?

 

 

 

[당선소감]

 

어제 형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형 글이 될 듯 될 듯하다가도 끝내 무너지고 말아. 아무리 늦게 자도 빨리 눈을 뜨게 돼.

잠이 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나의 잠을

누가 대신 자는가.

어제 형과 문자를 주고받았다.

형 글이 될 듯 될 듯하다가도 끝내 무너지고 말아. 아무리 늦게 자도 빨리 눈을 뜨게 돼.

잠이 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나의 잠을

누가 대신 자는가.

남의 꿈은 잠의 평화이고

나의 잠은 잠의 죽음이라고

남의 잠은 잠의 꿈이고

나의 잠은 잠의 현실이라고

 

- 오규원< 남들이 시를 쓸 때> 중

 

시는 정말 어려워. 천재적 재능 따위는 세상에 없어. 다 노력이었다는 군. 그럼에도,그럼에도 이 시점에서는 큰 계기가 필요한데,당선 같은 선물 말이야. 하지만 실패가 이젠 밥과 같아. 아무튼 고마워. 형.

 

그리고 오늘. 두 손바닥에 듬뿍 밀크로션을 덜고는 뺨을 때릴 찰나,대중목욕탕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당선 소식이었다. 요강에 폐결핵의 피를 한 움큼씩 토하면서도 죽기 직전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29세의 김유정을 생각해본다. 닭 30마리와 살모사 구렁이 십여 마리를 달여 먹고라도 일어서려 하였던 그 창작열.

 

뜻 깊은 상을 받게 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참으로 간절하게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이 일을 계기로 더 우직하게 나아가겠습니다. 아울러 작가가 꿈인 제가 늦깎이로 이 세계에 뛰어들었을 때 아둔한 필력으로 끼친 폐가 많기에 우석대 문창과 교수님들께 엎드려 절 올립니다. 안도현 교수님,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문창과 문우들 그리고 <달려라 검정분필> 제자들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심사평] 과잉된 언어·복잡한 수사 아쉬워

 

본심에 올라 온 10명 50여 편의 작품 중 김상현씨의 ‘거품 인생’을 당선작으로 하는데 기꺼이 합의 했다. 우리는 동전만한 샴푸 한 방울로 머리를 수국처럼,생각을 구름처럼 일게 할 수도 있다. 인생은 거품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거품은 우리를 꿈꾸게 하고 마냥 부풀린다. 그런 상상의 연관성들이 거품처럼, 혹은 샴푸 후의 개운함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응모작들이 나름대로의 개성과 고심의 흔적을 가지고 있었으나 대부분 요즘 시의 유행적 폐단에서 멀리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언어의 과잉이나 수사의 미로를 힘들게 통과하고 나서도 그 뒤에 아무 것도 발견할 수없는,읽기에 머리 아픈 시들의 강한 전염성에서 김유정 신인문학상 공모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일언이 폐지하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물론 세계의 존재양태나 삶의 양식 또한 과거에 비해 복잡해졌으므로 이를 표현하고자 하는 언어와 표현양식도 달라져야 함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읽어서 즐겁고 읽어서 서러운 시의 본령은 변하는 게 아니다. 결국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게 시라면 그것은 대중으로부터 시를 빼앗는 일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머지 말은 고은 시인의 ‘한 충고’라는 시로 대신했으면 한다.

 

‘시들이/그 이상의 시들을 막는다/시들이/그 이후의 시들을 막는다//시야 시야 파랑시야//시의연혁/시의 패션/시의 권위 백년 가까스로 벗어나//그대의 시 벌벌 떨며 막 태어나 혼자이거라.’

 

- 심사위원 정현종·이상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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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민일보와 김유정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한 ‘2015 김유정 신인 문학상’소설 부문에 이루다(38·경기 남양주시)씨의 ‘미루나무 등대’ 작품이 당선됐다. 또 시 부문에 김상현(47·전북 익산시)씨의 ‘거품인생’이,동화 부문에는 김나은(35·경기 용인시·본명 김혜정)씨의 ‘나무피리’가 선정됐다.

 

단편소설 ‘미루나무 등대’는 원전마을을 둘러싼 주민들 간의 갈등에 다문화가정의 문제를 녹여낸 작품으로 초등학생 소녀를 내세워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눈높이를 낮게 설정해 오히려 어른들의 위악을 부각시킨 점이 높게 평가됐다.

 

시 ‘거품인생’은 “인생은 거품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거품은 우리를 꿈꾸게 하고 마냥 부풀린다. 그런 상상의 연관성들이 거품처럼, 샴푸 후의 개운함처럼 다가왔다”는 호평을 받았다.

 

동화 ‘나무피리’는 흔한 소재임에도 상호 배려를 통해 완벽한 소통의 의미를 감동적으로 풀어내 동화가 문학의 한 장르라는 것을 여지없이 증명하는 수작으로 평가됐다.

 

올해 신인 문학상에는 소설 193편,시 555편,동화 88편 등 총 836편의 작품이 응모됐다.

 

소설부문 수상자에게는 국내 단편소설 공모전 중 전국 최고 수준의 상금인 1000만원이 수여되며 시·동화 부문 수상자에게는 각각 300만원의 상금이 전달된다.

 

시상식은 내달 16일 오전 10시 30분 춘천 김유정문학촌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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