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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생각을 했다 / 박은숙

 

 

오늘은 두어 명의 남 생각과

또 두어 명의 나를 생각했다

 

거울이 늘어나면 결국,

반사되는 얼굴들은 조각이 되겠지

생각과 오래 대화하는 일이

조각난 거울 속을 한데 모아

와장창 깨지는 일과 닮았을까

문득, 또는 불현듯 같은 순간들이

깨진 사금파리같이 눈을 찌를 때

두어 명의 남 생각과

내 생각에 찡그린 정각이 찾아온다.

때로는 늦은 일이 빠르기도 하고

더딘 것이 오히려 나을 때도 있지만

정각이 울렸다는 것은 이미

늦었거나 지나쳤다는 것이다.

그런 일은 두어 명의 남이거나

두어 명의 나의 일에 불꽃이 튀었다는 것이다

 

남의 일이 곧 나의 일

남처럼 두근거리는 일도 없다

내가 오늘 기쁘다면

그건 두어 명의 남이 해결된 일이다

 

남은 언제나 나보다 크고 넓다

그들이 나보다, 가 아닌

내가 그들을 더 미워한 일이 많다

어쩌면 남 생각에 너무 불려 다녔는지

오늘은 유독 피곤하다

 

 

 

 

[심사평]

 

2021년 제23회 수주문학상 심사는 2회에 걸쳐 이루어졌다. 1차심사에서는 허연(시 인), 김소연(시인), 안현미(시인), 김언(시인), 이명원(문학평론가) 5명의 심사위원들이 응모된 모든 작품을 읽고 각각 우수작 후보 2~3인씩을 선정했다. 그렇게 해서 선정된 후보 작품들을 2차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 전원이 활발한 논의를 통해 검토하고 최종 수상작을 선정했다.

 

심사과정을 통해서 논의된 사항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 응모작 가운데 산문시적 경향의 작품이 상당수 있었는데, 산문적 형식의 활용에 따르는 내적 필연성을 설득할 수 있는 작품의 성취가 필요해 보였다. 둘째, 응모 편수가 많다 보니, 연작시적 경향의 시도 제법 있었는데 모티프의 반복 등을 피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개별 시편들의 시적 성취에 편차가 있거나 기계적 반복에 머무르는 것은 아쉽게 느껴졌다. 셋째, 시적 자아가 1인칭의 진술을 동반하는 일이 자연스럽다고 하더라도, ‘타자와 단절된 고립무원의 심경을 표현하는 데만 머문다면, 문학의 대화적성격의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나와 타자의 접촉면을 고뇌하고 성찰하는 시적 태도는 여전히 필요해 보였다.

 

이런 단점들을 잘 극복하고, 나와 타자 사이에 연루된 관계성을 시적으로 아름답게 천착한 남 생각을 했다9편을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시는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안에서의 기대와 좌절, 인식과 오인, 희열과 절망과 같은 모순감정을 서늘한 미적 거리를 통해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수상작과 함께 응모된 9편의 작품들 역시 정제된 시적 형식과 대상에 대한 시적 자아의 섬세하고도 차분한 응시를 통해, 관성화된 일상을 뚫고 솟아오르는 인식론 적· 감각적 낯설게 하기의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성의 생기(生氣)와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삶의 통찰적 의미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심사위원 일동은 만장일치로 남 생각을 했다9편을 2021년 제23회 수주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수상자에게는 진심 어린 축하를, 다른 응모자들에게는 위로의 인사를 올린다.

 

심사위원: 허연(시인), 김소연(시인), 김언(시인), 안현미(시인), 이명원(문학평론가,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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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 관한 독서 외 4편 / 강다솜

 

 

1.

노포동역에 내리자 갑자기 짠내가 밀려와

숨을 몰아쉰다,

누군가 또 한 페이지를 넘긴다

고양이가 자동차 아래 눈을 뜬 채 웅크리고

웅덩이에 고인 가로등 불빛이

바람에 한 겹씩 흘러내린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아,

자꾸 불어나며 뒤를 따르던 그림자가 소근거린다

내가 태어나 처음 한 일은 달그림자를 끌어다

바다를 한 겹 한 겹 꿰매는 일이었어

사람들은 누구나 그 책의 활자이기 때문에

이따금 늦은 시각에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지

 

2.

  지하철 한구석에서 고흐가 말했다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듯이, 밤하늘의 저 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고 늙어서 죽는다는 것은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안내방송이 들리고 열차 안의 불이 꺼졌다 승객들은 그림자처럼 밖으로 뛰어내렸다 다시 불이 켜졌다 나는 피터팬처럼 그림자가 없었다

 

3.

피터팬의 발에 그림자를 꿰매어 주던

웬디는 그가 한 권의 책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이 바다 저편에는 우리들의 나라가 있어서

거기로 간 사람들은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때로 활자가 되고 싶은 몸은 그 대신에

여러 개의 그림자를 만든다

문득 웅덩이에 내 얼굴이 비치는 것을

한 겹씩 바람은 자꾸 들추어내고

고양이가 눈을 한 번 깜박였을까,

펼쳐진 풍경이 잠시

정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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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가다

 

 

 

생선을 몇 번 찔러보곤

물이 갔다고 하시며

걸음을 옮기는 우리 엄마

 

그 뒤로 세상의 물들이

천천히 흘러가네

빛을 잃어가는 생선의 눈알과 색 바랜 티셔츠

공중에 날리는 모래 먼지들

어릴 적 나를 한 번 지나간 구름이

지금 되돌아오네

 

어린 내가 업혀 있던

엄마의 등 뒤로 물비린내가 물씬

풍겨오네, 잡으려 해도

한 번도 잡을 수 없었던

꽃잎 같은 저 참새들 후두둑,

땅으로 하늘로 오르내리는 저녁

 

내 안에서도 소용돌이치는 물빛을 느끼며

온갖 풍경들과 흐름들 터벅터벅

발소리,

그렇게 물이 되어 천천히 흘러가네

우리는 다만 물 위로 걷듯이

금방 사라질 흔적만 남기고,

메아리 같은 울음을 하나씩

던지고 가듯

 

 

 

 

 

풍경을 녹음하는 여자

 

 

 

언제부턴가 집 앞 공원에 나와

늘 같은 벤치에 앉아 있는 여자

앞을 못 본다는 그 여자,

뒤에서 사람들이 장님이라고 수군거려도

미소 띤 얼굴이 물소리 같은 여자

 

그 여자의 몸은 축음기처럼

자기 안에 소리들을 담아두고 있다

손등 위로 지나는 햇빛의 소리

꽃잎을 흔드는 아지랑이 소리

가끔씩 피가 흐르는 소리, 머리카락이 자라는 소리에

어깨를 떨며 반응하기도 한다

어느 날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

잠깐 멈추어 선 풍경들과

나뭇잎 위에 남아 있는 반짝이는 빗소리,

눈부신 소리들이 여자의 안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높낮이 없는 음들이 모여 이루는

하나의 거대한 화음이 여자의 안에서

유리조각처럼 조심스럽게 반짝인다

 

공원에 올 수 없는 날이면

방 안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는 여자

가끔씩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좋아하는 과거를 혼자 듣는 여자

공원에 밤이 오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는 소리를

긴 음계처럼 오래오래 듣고 있는

그 여자

 

 

 

 

 

그의 유리공장

 

 

 

  유리병을 만드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을려 검어진 피부가 유리보다도 반들거리는 남자 긴 쇠파이프로 숨을 불어넣을 때마다 부풀어 오르는 허공과 같이 목울대가 팽팽해지는 남자, 그의 작업장에서 바람은 처음으로 형태를 갖는다

 

  태아처럼 팔다리가 생겨난 바람들은 이따금 기지개를 켜듯 유리병 안에서 온몸을 진동시키며 울었다 그가 숨을 내쉴 때 풍경들도 몸을 떨며 저마다 다른 울음을 그의 날숨처럼 일정하고 길게 토해냈다 병 안에서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릴 때, 근육이 불뚝 솟은 그의 몸에서도 어떤 공기주머니 같은 울음이 부풀어오르다 천천히 가라앉곤 했다

 

  유리가 하나씩 부풀어 오를 때마다 점점 작아지는 남자 유리병 안에 들어 있는 목이 긴 소리들을 날마다 몸속에 진열하는 남자, 밤이 되자 손가락 끝에서부터 천천히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수많은 태아들을 품고 바람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의 목울대만이 아직 뜨겁고 환하다 환하게 속을 비워내고 형태만 남은, 남자

 

  유리병을 나란히 세워놓은 그가 아직 식지 못한 채 마지막으로 공장 한구석에 진열된다 퍼즐처럼 붙어선 채 풍경을 이어가던 유리병들이 불에 덴 듯 바람에 잠깐 일그러진다

 

 

 

 

 

달리는 숲

 

 

 

불현듯 시장기를 느꼈다

태풍을 빨아들이며 숲은 순식간에 쑥쑥 자라고

나는 멀뚱히 서서 배를 만진다

 

오래전에 무엇이 달려가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물소 떼처럼 우글우글하고

엉킨 바람처럼 방향이 제멋대로인

그때도 지금처럼 배가 고파졌고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욕망을

잊자, 잊자고 나도 모르게 되뇌었다

 

나무들 속

갈라진 껍질의 틈으로

풀꽃 잎사귀와 무수한 빗방울들,

민들레 홀씨와 도둑고양이 같은 것들이

탯줄로 연결된 채 한데 숨 쉬고 있었다

그들이 숨을 내쉴 때마다

뱃속으로 끓는 듯한 바람이 스며들었다

나는 문득 내가 민들레 홀씨만 했을 적을 떠올린다

 

태풍의 눈처럼 조용한 나무 속

숨 쉬는 소리가 그렇게

공기를 진동시키며 울었고

숲이 성큼성큼 전진을 시작했다

잊자, 잊자, 하여도 생생하게 등을 훑고 지나가는

내 안의 채워지지 못한 허기

살아 있음, 그 살아 있음이

 

 

 

 

수상 소감

 

  물 위로 걷듯이 금방 사라질 흔적만 남기며 글쓰기를 했습니다. 완성한 시가 수십 편이라면, 쓰다 지워버린 시는 아마 천 편이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파도가 수만 번 밀려와야 겨우 하나의 지층이 생기듯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다만 바다와 달리 사람에게는 하고 싶은 말들이 넘치고 용기는 부족하기 때문에, 시를 진심으로 대하며 자유롭게 글쓰는 일이 늘 어렵고 숙제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말에는 책임이 따르고, 마음에 맴도는 말이란 하지 않는 편이 나을 때가 많으니까요.

  이렇듯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부끄럽지만, 남기기 어려운 말보다는 침묵을 택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신인상에 처음 응모하면서도 당선되리라곤 감히 생각지 못했습니다만, 귀한 상과 소중한 기회를 주셔서 송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어렵더라도 앞으로는 침묵하기보다 더 배우고 노력하라는 의미로 받아, 좋은 시를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치원 문학상 심사평

 

어떻게 이런 일이

 

얼마 전에 두 분 선생님들과 한 자리에 모여 논의를 했던 투고작들에게, 간략하나마 심사평을 붙이기 위하여 필자는 다시 한 차례 모든 원고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자리는 그들 시에 관한한의 후일담인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많지.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를 쓰고 싶어 했던 자의

실패작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졸시 「어떻게 이런 일이」 전문

 

시들을 살피는 와중에 지독한 뇨의 마냥 밀려오던 시작(詩作)에 대한 욕구로 인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한 편의 시를 적어 보기에 이르고 말았다. 그렇게 짤막한 시 한 편을 얻게 되었다. 일견 생뚱맞아 보이기도 하는 인용 식(式)일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모든 시들의 일정 부분의 풍습은 “어떻게 이런 일이”의 등속을 헤아려 보거나 천착하는 데에 이르거나 바쳐져야 한다는 이유에서, 이들의 시 속에도 저류하고 있을지 모를 “어떻게 이런 일이”의 기척을 찾아 눈길을 주어 보았음을 밝히기로 한다.

 

여섯 사람의 시를 나누어 읽었던 시간은 어느 사이 두 사람의 세계로 압축되었다. 시를 나누어서 고른다거나 차등을 메기는 일은 어쩔 수없이 유효한 측면도 있었으나 한 편으론 따분하거나 무효한 일에 다름 아닐 수 있었다. 결국 현재의 모든 시들은 진화의 꿈을 간직해야 한다는 뜻에서 해보는 말이다.

“커다란 환풍기가 고래 울음을 내는 터널 안/ 갑자기 서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앞을 내다보거나 라디오를 틀어 봐도/ 한순간 찾아온 암전에 대한 정보는 없다// 터널 입구를 들어서며 동공을 움츠리고/ 마주친 어둠에 대해 준비했었지만/ 앞선 차들의 급격한 멈춤에 가슴이 팔딱인다// 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자리/ 어둠이 사방으로 짙어갈수록 문득 행복하다 말했던 거짓말이 후회된다/ 후회는 거짓말처럼 더욱 커진다// 구급차가 다가와 사고 차량 앞에 멈추고는/ 수습해야 할 슬픔의 일정을 알려준다// 삼켜진 것들은 불행이 자신을 피해 갔음에 안도한다(중략) 불안한 어둠 속에서 품었던 거짓말에 대한 의심조차 거짓말처럼 까무룩 잊어버린 채“ 이장호의 「피노키오는 다행이었어요」 일부

터널 안에서 만난 교통사고에서 발화된 이 시는 “거짓말”과 “피노키오”를 차용한 자아의 각성을 술회하는 방식을 갖추며 있다. 이장호의 다른 시편들 역시 이처럼 무난한 평균률의 진술들을 내포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의 시의 안광이 “어떻게 이런 일이”의 돌연함이라거나 퀭한 우수의 높이라거나 너비를 좆아 갈 때. 언젠가는 그의 시가 자신의 이름으로 건설된 마을을 한 채 건사할 수도 있을 거라는 짐작을 비치며 지나갔다. 아쉽게 거기에서 멈춘 셈이다.

 

“생선을 몇 번 찔러보곤

물이 갔다고 하시며

걸음을 옮기는 우리 엄마

 

그 뒤로 세상의 물들이

천천히 흘러가네

빛을 잃어가는 생선의 눈알과 색 바랜 티셔츠

공중에 날리는 모래 먼지들

어릴 적 나를 한 번 지나간 구름이

지금 되돌아오네

 

어린 내가 업혀 있던

엄마의 등 뒤로 물비린내가 물씬

풍겨오네, 잡으려 해도

한 번도 잡을 수 없었던

꽃잎 같은 저 참새들 후두둑,

땅으로 하늘로 오르내리는 저녁

 

내 안에서도 소용돌이치는 물빛을 느끼며

온갖 풍경들과 흐름들 터벅터벅

발소리,

그렇게 물이 되어 천천히 흘러가네

우리는 다만 물 위로 걷듯이

금방 사라질 흔적만 남기고,

메아리 같은 울음을 하나씩

던지고 가듯”

 

강다솜의 「물이 가다」

 

머리 시로 놓인 “우리들의 독서”에서부터 강다솜의 시편들은 다른 이들의 작품에 비해 더 가파른 시의 그림자들을 거느리며 있어 보였다. 여기 인용된 “물이 가다”의 혼용 서술 기법 역시 눈여겨 볼만한 개미를 주고 있었다. 물(수분)이었다가 행색(물색)이었다가 물빛으로 드러나는 “물”의 이러저러한 면목들이 마침내 흔적만 남은 “발소리”로 화하는 지점에서, 이 시의 제목인 “물이 가다”라는 지시의 방향이 완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에게 자신의 시를 더하여 귀감의 세계들을 기대해 보는 마음으로, 강다솜의 시편들에게 올해의 “최치원 문학상”의 무거운 짐을 떠안기기로 정하였다. 축하를 드리는 마음과 함께 호된 정진의 날들을 빌기로 한다.

 

이번 제16회 최치원신인문학상은 총 203명이 응모하여 예심위원이 선정한 6명의 작품을 본심에 올렸다. 그중 본심에서 마지막까지 거론된 신인은 이장호, 강다솜의 작품이었다.

 

 

본심 : 곽재구(시인) 정윤천(시인. 글) 김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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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모래톱 탁본 / 김겨리

 

 

명사십리에 새발자국 수두룩하다

썰물에 쓰고 밀물에 퇴고하는 바다의 서사,

밀물이 화선지처럼 모래사장의 요와 철에 골고루 펼쳐지면

먹방망이에 해풍을 듬뿍 묻혀 바다를 본 뜨는 어머니,

씨감자 캐듯 아버지 배를 부리고 먼바다로 떠나시면

언젠가부터 어머니의 종교는 바다,

사하의 바다는 탁본체로 편찬된 어머니의 서재였다

해풍에 깎여 심하게 문드러진 아버지의 지문은

먼바다 일렁이는 격랑을 닮았다고

횟배 앓는 내 배를 쓸어내리며 혼잣말처럼 들려 주시던 얘기로

파도를 볼 때마다 아버지의 지문이 저랬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내 지문을 바라보면 물결체의 행간들이 출렁이곤 했다

바다를 수소문해 아버지의 기별을 듣는 밤이면

창가 정화수에 푹 잠긴 보름달을 보고 손이 닳도록

어머니가 밤새 빌고 빌었던 치성은 무엇이었을까

물새들 자정 녘까지 모랫벌에 모여

도래지로 돌아갈 탁상공론할 때

어창이 묵직해진 아버지가 귀항을 서두르고 계시다는 걸

어머니는 짐짓 어떻게 아셨을까

아버지가 물길을 차곡차곡 개키며 뱃머리를 뭍으로 향할 때

어머니는 치부책처럼 가슴에 탁본된 사하의 밤바다를

달달 외우고 계셨던 거였다

갑골문자로 새겨진 문장들

의태어로 필사한 바다의 서사가 한 장 한 장

어머니의 가슴속에서 집대성될 때

모래톱은 어느새 아버지의 궤적으로 편찬된

어머니의 서재가 되어 있었다

 

 

 

 

 

[최우수상] 을숙도 해풍국수 / 구봄의

 

 

바닷가 귀서리 바지랑대가 횡렬로 비스듬하다

여러 폭 국수 가락들 간간한 바람에 흔들리며

수 천 갈래 은파금파로 길게 술렁인다

 

국수가 마르는 동안 여섯 살 나는

해변 뙤약볕에서 무럭무럭 까매진다

조가비는 캐스터네츠, 조막손으로 달가당 쳐본다

금모래에 파묻힌 신발 외짝을 파내어

작은 발을 가만히 집어넣을 때

고등게들이 발가락에 음표처럼 달라붙는다

은빛 굽이치는 수평선을 다섯 번 그어보면

저녁 해도 오선지에 내려앉을 거라고

오래도록 들여다봤던가

 

엄마는 음보 그리듯 국수가닥을 쓰다듬는다

손가락 새로 환하게 날아오르는 갈매기들,

기우는 햇살 뒤집어 쓴 채

그 여운이 멀찌감치 있는 내게 엉겨 붙는다

힘센 말미잘처럼 내게 착 달라붙는 엄마의 촉감

 

덜 자란 생각이 꾸둑꾸둑 마를 때까지 해풍 속을 지나

게딱지같이 나지막한 집으로 간다

발개진 종아리가 마중나온 저녁

그제야 허리를 펴는 당신의 눈빛에도

애잔한 물결이 인다 그 찰진 가락을,

나는 유년에 또박또박 베낀다

 

 

 

 

 

[우수상] 물고기 벽화에서 푸른 세상을 만나다 / 강달수

-감천 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로 헤엄쳐 가는 물고기 떼를 따라 반야바라밀 달빛을 따라 문화마을을 산책한다 할아버지 이마처럼 주름진 골목길 따라 걸어가는 발자국을 담벼락에 기대어 선 울긋불긋 화분들이 자꾸 붙잡는다 앞집 지붕이 뒷집 마당이 되고 또 그 집의 지붕이 뒷집 마당이 되는, 오두막들 사이로 미로미로의 꿈들이 별처럼 빛난다 숯검댕이처럼 검게 내려앉은 어둠이 지붕위에서 노닐다가 담쟁이 넝쿨처럼 휘적휘적 담벼락에 내려앉는다 초승달과 함께 맴 돌다가 감천 앞바다에 철썩이는 파도처럼, 큰 고니가 좋아하는 을숙도 세모자기처럼 땅바닥에 늘어붙는다 밤이슬 촉촉이 문화마을에 젖어들면 6.25 피난길 난리통 밥풀 같은 허기들이 별들마저 구름에 가려져 칠흑 같은 감천문화마을 골목길 국화꽃 속에서 춤을 춘다 평생 공동어시장에서 고등어와 갈치의 비늘에 찌들어, 비린내 나는 삶을 살아온 날들이 얼마나 지치고 버거웠을까? 울컥울컥 가슴에 응어리진 상처들과 얽히고설킨 슬픈 낱말들을 삼키고 있는 항운노조원들의 눈동자를 별빛도 사라진 새벽, 그믐달이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고 충혈된 두 눈을 때 묻지 않은 이슬로 문질러 준다 침묵과 정적만이 지붕위로 걸어 다니고 있는, 모두가 잠든 새벽! 온갖 상념들이 새벽바람에 낙엽처럼 굴러 간다 삶의 쓰디 쓴 알맹이와 상처 난 낱말들이 다 빠져 나가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가로수의 가랑잎을 흔드는 바람소리만 휑하니 날아간다 마을에 동이 터도 애기 울음 한 번 들리지 않고 아침 답에 등교하는 초등학생 한 명 보이지 않는 마을 손주 손녀들의 재롱이 그리웠을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웃음소리조차 미로미로 골목길에서 길을 잃어버렸는지 흔적도 없이 바람에 날려간다.

 

 

 

 

 

[가작] 다대포의 시간 / 김나비

 

 

다대포에 가면 재첩국처럼 뽀얀 기억이

모래톱 위에 반짝이지

 

싱싱한 재첩을 솥에 넣고

보글보글 새벽을 끓이던 어머니

그 진한 국물 한 사발에 취한 밤이 벌떡 일어날 때

세상모르고 자던 어린 나는

어머니 빈 자리를 더듬으며 꿈속을 파고들곤 했는데

 

새벽 별을 머리에 이고 국 팔러 나간 어머니

버스에 덜컹덜컹 두려운 가슴을 실었다지

목 안에 자꾸만 감기는 소리를 풀며

남몰래 사이소 사이소 연습을 했다는데

부끄러워 올라오지 않는 말을 끌어당겨

허공에 널곤 했다는데

 

골목에 들어서면 목소리가 숨어서

얼굴만 빨개지다가도

집에 두고 온 자식들 곤한 숨소리가

모래알처럼 머릿속에 펼쳐지면 떨리는 손을 불끈 쥐고

화끈거리는 얼굴로 재첩국 사이소를 외쳤다지

 

재첩국 사이소, 노래가 골목에 허밍처럼 돌아다니고

양푼을 들고나온 아낙들에게

부추를 가득 얹은 시원한 시간을 건네주었다지

 

그렇게 한나절 외치고 나면

손에 쥐어지는 건 겨우 몇 끼의 쌀

옹기종기 기다리는 아이들, 먹일 생각에 힘든 것도 잊었다는데

 

다대포에 가면

새벽을 깨우던 어머니, 그 뽀얀 목소리가

모래톱 위에 반짝이며 떠다니지

 

 

 

[심사평]

 

7회 사하모래톱 문학상 공모전은 사하구의 을숙도, 다대포 등을 소재로 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소재로 한 작품과 사하구의 역사, 문화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을 응모대상으로 했다. 응모분야는 시, 시조, 동시를 아우르는 운문분야와 단편소설, 수필, 동화를 포함하는 산문분야였다. 접수된 작품은 산문 86(53)과 운문 574(118)으로 예년에 비해 산문의 응모 편수가 줄었고, 운문의 응모 편수는 늘어났다.

 

운문분야의 작품들은 예년에 비해 수준이 높은 편이었다. 특히 대다수의 작품이 사하구의 지역성을 잘 드러내는 편이었는데 이는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선에 들지는 못했지만 동시와 시조 중에서도 눈여겨 볼만한 좋은 작품이 적지 않았는데, 이는 예년과는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1차 심사를 통과한 20 명의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들이 논의 끝에 다시 10편으로 압축하였고 이 가운데서도 다시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주는 작품을 찾았다.

 

대상작으로 뽑힌 분이 응모한 다섯 편의 작품은 모두 뚜렷한 시적 성취를 보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 모래톱 탁본을 대상작품으로 골랐다. 이 작품은 사하에서의 유년체험을 형상화한 것으로 시적 화자가 들려주는 가족사가 완성도 높은 비유에 의해 전달되는 수작이었다.

 

최우수작 을숙도 해풍국수역시 뛰어난 작품이었다. 이 작품 역시 대상작과 마찬가지로 사하에서의 유년체험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다양한 심상들과 밀도 높은 표현들 특히 돋보였다. 같이 응모한 감천 마을에서도 눈여겨 볼만한 작품이었다.

 

산문 분야에서는 자신의 체험을 지역성과 문학적 성취로 잘 녹여낸 수작을 찾기 위해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모았다. 선에 든 작품 중에서 큰 고니의 귀환을 대상 작품으로 정했다. 충실한 현장감과 작품 구성력이 완성도를 높이는 수작이었다. 최우수상을 받은 배 타러 가요 도 지역에 대한 애정이 잘 스며들어 있으면서도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동화로 수상작에 오른 승학산에 뜬 할머니의 달 , 수필모래톱 때문에도 지역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진정성이 문학적 성취를 이룬 수작들이다.

 

사하모래톱 문학상 공모전은 사하구의 지역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할 것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데, 심사위원들이 검토한 상당수의 응모작은 사하구의 지역성을 잘 살리고 있어 반가웠다. 뿐만 아니라 예년에 비해 독창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작품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어서 뜻 깊었다. 여느 해 못지않은 수상작을 내보일 수 있어서 마음이 흐뭇하다. 다음해에도 사하구의 지역성을 들어내는 좋은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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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40240 / 서예원

 


장 밥티스트 부르기뇽 당빌이 그린
신중국지도첩 속 조선왕국전도,
그 지도에 조선이 있다

우(于)를 천(千)으로 보아
우산도가 아닌 천산도로 이름 붙은 섬,
그 섬이 지도에 있다

위조냐고 묻지 마라.
18세기 서양인이 그린 지도이다
프랑스인 지리학자의 작품이다

다케시마(竹島)라 하지 마라
우(于)를 천(千)으로 혼동했을 뿐,
당빌은 그 섬을 우산도로 적었나니

조선왕국전도 섬, 독도가 아니라 한다
서양이 본 조선을 왜곡하려 하나
서양이 안 세상을 부정하려 하나

고지도 발견에 안도가 밀려온다
네 것은 내 것이라 외치는 짖음에도
내 것은 내 것으로 증명 되었으므로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전혀 다른 것'
이라 하였느냐
넓고 넓은 동해에는 섬이 두 개 뿐

독도를 울릉도로 오명(誤)하였느냐
독도는 우산도로, 울릉도는 무릉도로
세종대왕님 때부터 그리 불러왔나니

독도가
독도인 이유를 아는가
외딴 곳에 떨어져 있어서 독도가 아니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너른 바다 기운이 실려와
독도가 유(柔)해졌고

북아메리카로 이어진 수평선이
무한대의 가능성을 품게 해
독도는 강(强)해졌다

외유내강으로 제 있는 자리 지키는 섬,
혼자서도 동해를 호령할 자격이 있어
독도(獨島)라 부르나니

견물생심을 멈추어라
대나무섬은 이곳에 없다
다케시마를 모르니 알려줄 길도 없다

수심 깊은 동해에는 바위섬이 있을 뿐
풍랑 이는 동해에는 바위섬이 어울릴 뿐
수면 위에 얼굴만 내민 그 섬, 독도가 있을 뿐

그 섬은 강인함과 인자함을 가졌다
가진 힘을 휘두르지 않고
바다 속 生에게 힘이 되어주며 살아왔다

물속에 숨긴 몸집까지 자그마치 2천68m
우편번호는 40240
한반도 최동단에 자리한 섬의 품격이다

우리는 이 바위섬을
다케시마(竹島)가 아닌
독도(獨島)라 부른다

 

 

 

 

맛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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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日 망언에 화나 일본어 배우기도…진실 밝혀지는 날 고대"

 

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했습니다. 당시 일본이 독도를 두고 자꾸 자기네 땅이라고 해서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배워서 어디에 쓸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일본어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10년은 더 흘렀습니다. 아직도 일본은 독도를 두고 자기네 땅이라고 했습니다. 큰일이라고 생각한 순간 반가운 기사를 접했습니다. 18세기 서양인이 그린 고지도 발견 소식이었습니다.

독도는 무정물이지만, 생명이 있다면 분명히 답답하다고 말할 것 같았습니다. 하여 우리 것인 그 섬을 생각하며 응원하는 마음으로 시를 썼습니다. 대한민국에 독립이 왔던 날처럼,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진실이 명백해지는 날도 어서 오길 바라며 썼습니다. 독도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갖는 게 저와 같은 소시민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임을 압니다. 시를 읽는 분 중에 한 분이라도 독도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큰 기쁨일 겁니다.

귀한 곳에서 상을 받게 되어서 무척 기쁩니다. 좋은 취지의 공모전에 참가한 데 의의를 뒀었는데, 선택까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택받은 건 작품이란 걸 잘 알지만, 제가 선택받은 기분이기도 해서 힘이 납니다.

 

 

 

[심사평] "올바른 역사인식 알리기위한 국민적 관심 고조…출품작 3669편 선의의 경쟁"

올해 열한 번째를 맞은 대한민국 독도문예대전은 독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사랑이 뜨거워진 때라서 어느 해보다도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문학, 미술, 서예, 사진, 동영상 부문에서 총 3천669편이 접수되어 지난해보다 470점이 늘었으며 양뿐만 아니라 질적 수준도 크게 향상되었다. 그리고 전 국민의 열망을 반영이라도 하듯 전국에 걸쳐 응모된 것이 무척 고무적이었습니다.

독도와 울릉도, 동해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문화적 가치와 올바른 역사 인식을 국민과 청소년들에게 널리 알리고 독도문예대전을 통해 영토적 주권을 강화하며 교육과 예술, 꿈과 미래의 장을 마련하고자 시행해 온 전국공모전은 회를 거듭할수록 기대 이상의 발전적인 양상을 보였습니다. 심사과정으로 분량이 많은 문학과 미술, 사진 작품은 별도로 예심을 거쳐 본심으로 들어갔으며, 1차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은 모두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고 본 심사를 통해 더욱 밀도 있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창의성과 목적에 합당한 상징성, 충실한 표현력 등 다각적으로 관찰하여 수상작들을 선정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문학, 미술, 서예, 사진, 동영상 부문 등이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향상되었다는 총평과 함께 입상하신 분들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애석하게도 낙선하신 분들에게는 더욱 정진하여 내년의 기회를 기대하는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대한민국 독도문예대전의 큰 성과와 함께 운영위원과 심사위원 그리고 참여하신 모든 출품자에게 건승을 기대합니다.

- 심사위원장 조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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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그리고 나 / 남택규

 

 

숭고함은 어디서 올까

누군가 나로 하여금 닭을 잡게 한 한다 난생처음 배를 가르게 한다

 

오밀조밀 장기들을 맨손으로 매만진다 미끌미끌 따뜻하다 의사가 나의 심장을 만져도 이럴까

 

그만 나는 막막해져 얼른 배를 닫는다 속울음을 들었다 그것은 비릿함 가까운 데다

 

아무렇게나 내장을 꺼내는 손으로 인삼 대추 쌀을 차곡차곡 채우는 칼날 위 아슬아슬한 식() 풍경, 순간 뇌우가 들이친다 식탁에 칼이 꽂혀 부르르 떨고 맨발로 황급히 빗물이 차오르는 거리로 뛰어드는 이도 있겠지, 그래 삶은 누군가의 온기를 끊임없이 배반한다

 

현실에서 가능한 답을 찾아가는 나에게도 한 가지 궁금한 건 혹 내가 개복한 상태에서 의료진도 없이 나 홀로 남겨질 때 과연 웃을 수 있을까, 수술대에도 기대지 않고

 

나는 천천히 둥글게 몸을 만다 얼굴이 배에 닿지 않는다 잠깐의 열패감, 이런 기분일까 다시 추스르며 손가락으로 위 창자가 있을 배 이곳저곳을 꾹꾹 눌러간다 센서등은 복도에만 있는 게 아니다

 

기도는 사절, 다만 낮아서 아름다웠으면,

 

 

 

[가작] 울음의 질량 / 이정미(이마리)

 

비가 허공을 딛고 안전하게 내려와요

머리맡으로 옮겨온 하룻밤의 오아시스도 담겨있어요

고무장갑 손끝으로 물방울이 속눈썹처럼 떨어져요

예전의 것은 아니에요

여전히 지금도 외줄을 타고 내려와요

창밖 난간에 유리알들이 매달려있어요

떨어지면 산산조각 날 쏭알쏭알 벌레알들,

저것들은 누가 분실한 노래일까요

사내가 추락하면서 남겨진 코팅장갑 한쪽이 보여요

몸보다 먼저 떨어진 비명도 그를 지켜주진 못했나 봐요

사내의 아내는 박보살이에요

알아요, 자신의 운명까지 점칠 순 없었다는 것

그런 것쯤 이 골목에선 이미 단물 빠진 소문

낮달이 아라비안나이트의 단검처럼 우윳빛 조등을 걸었네요

주방 한 켠에 방치된 나는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싱거운 침묵이라도 조리할까요? 당신의 입맛에도 단물이 빠진 것을 알아요

다시 비가 와요

비는 질기게 시간을 밀봉하고

오후는 하얗게 질식된 사체에요

움직이던 모든 순간들이 창백하게 지워져요

당신은 어느 별에서 지워졌나요?

고무나무 숲에서 맨발로 나를 받아내던 거친 손등

그녀도 무중력 속으로 풍선이 되어 떠올라요

슬픔에도 세금이 붙는 세상을 아세요?

카드 한 장으로 울음의 질량이 입력되는 그 마을은 여기서 멀죠

죽은 코팅장갑 속으로 걸어 들어간 고무나무 숲이

지하 울음들을 모조리 삼킨다고 중얼대는 흰 소리가 들려와요

나는 이제 습기 찬 소리들을 받아낼 수 있지만

내 몸으로 흡수 시킬 수는 없어요

어둠이 코팅 된 시간을 낮이라고 부르자

태양이 나를 녹이네요 나의 붉은 계절은 모두 밖에 있어요

내 심장은 곧 낡을 거예요

발뒤꿈치까지 끌려오듯 그림자를 키우는 여자를 알아요

인대가 늘어진 여자, 누군가 뱉은 껌처럼 던져졌어요

수술방 차가운 침대에

수술 장갑을 온몸에 껴입은 누군가 들어와요

소독약 냄새가 구겨진 나를 뒤덮어요

고무나무 숲으로 빗소리가 천천히 걸어와요

나는 오래도록 썩지 않는 나무의 혈흔이에요, 붉고 질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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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의 방 외 4편 / 이경호

 

 

꽃핀 꽂은 별들이 첨벙첨벙

청어의 입으로 들어가는 날

 

삶을 꾸덕꾸덕 말리는 죽도시장 좌판

잔가시를 뱉는 짧은 겨울햇살

노파는 수심을 알 수 없는

주름 바다를 키운다

 

사주단지 앞세워 시집오던 첫날밤부터

비린내로 쩐 소매

노파의 주름이랑은 청어 떼가 헤엄치는 길

 

청어는 노파의 살과 뼈를 다 갉아먹고

고단한 물빛 지느러미를 흔들며

고향 심해바다로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봄꿈을 꾼다

 

청어뱃속에 바람소리 여물어 갈 때

파랑노래가 된다

노파는 작고 푸른 부레를 베고 눕는다

 

첫 별이 뜨면 수평선 너머로

청어의 방 하나 생기고

그때부터 하현달은 자라기 시작한다

노파는 어디로 갔나

낮하늘에 낙관 하나 희미하게 찍어두고

 

 

 

 

이유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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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관절염

 

 

무릎이 멍든 밤이면, 멍을 뚫고 굴참나무가 자란다

 

굴참나무엔 도토리거위벌레가 기생하고

개똥지빠귀 철새가 몰고 온 창백한 구름,

구름을 접는 달빛 계단에

어린 개암나무 그늘이 주저앉아 운다

 

땅 밑을 굴러간 도토리들이 나무뿌리를 더듬다가

햇빛을 외면한 어둠에서 만난

휘파람소리

 

늙은 뿌리 혈관은 내일을 예감하고

꽃과 잎은 대궁에 도착하기도 전에 관절염을 앓는다

물관과 체관을 흔들어대는 푸른계절

나뭇잎은 더운 숨으로 허공을 나부끼게 한다

 

굴참나무 옹이에 들어앉은 상처

환절기에 파르르 떨며 살아남은 잎맥들의 시간

 

건조한 발목에 장수풍뎅이가 터를 잡고

숲은 바람의 숨결을 쌓아 올린다

어제를 쌓고 오늘을 여며, 내일을 만들고 있다

 

 

 

 

 

귀신 고래의 혈통

 

 

나는 사월에 죽은 귀신고래의 혈통

나의 내부는 함부로 어두워지지 않는다

봄빛 떠도는 적막에서 태어나

수평선 넘나드는 비명소리를 가졌다

 

눈물 젖은 눈으로 울다가 귀신을 만나면

죽은 고래의 영혼이 옮겨온다는데

등줄기에 업보를 짊어지고

물빛 다리를 파도더미에 놓는다는데

 

나의 전생은 잔별로 풀어헤친 윤슬

내 가문의 뿌리를 찾아 헤매는

파도더미는 흰 핏줄을 다발로 허공에 터트린다

최초의 피가 뿌리를 내릴 뭍이 없다

 

헛것을 보는 눈이 침침하다

 

구천을 떠돌던 공기방울들이

노을과 피를 나눠가질 때

따개비로 주저앉는 저녁이 돈다

습습한 플랑크톤 잔뼈를 뱉는 정어리 떼가 밀려온다

 

누가 귀신고래의 혈통을 찾아 헤매는가

나는 귀신고래가 숨어서 키운 상처다

 

 

 

 

 

새를 기다리는 밤

 

 

빛바랜 이파리 사이로

새가 숨소리를 묻고 그림자로 흔들리고 있다

 

구름이 머물다 떠난 자리

벌거벗은 바람이 날선 하루를 벗겨낸다

 

발가락에 피를 말리며 떠다니는 무수한 새들의 수다

푸른 한나절 바람을 품었다 날리는 중이다

 

애기무덤가 칡꽃 술에

뜨거운 입맞춤 하는 부리들

 

칡꽃에 찍힌 입술자국은

계절을 잃어버렸다

 

환한 향기로 발아하는 그믐밤

붉은 꽃물 떨구며 새를 기다리는 밤이 야위어가고 있다

 

 

 

 

 

그렇지

 

 

바다는 수심으로 파도를 키운다

 

가시를 발라먹은 손가락

받아들일 수 없는 어둠

이러지도 저러지도 꼼짝할 수 없는 궁지

파도가 온몸에 푸른 흠집을 내도

밥에 섞인 모래 씹는 기분으로

바람을 걸러내는 모래

 

깊고 캄캄한 바다 푸른 밑에는

긴 창과 단단한 칼로 무장한

사람 사람들

성난 짐승으로 사납게 무리 져 오는 비린내

 

낚싯배는 미끼속에 바늘을 내리고

해초 사이를 비집고 다닌다

귀속을 간질이는 물결

눈동자를 파고드는 날개짓

부서지는 바람소리

끌어안고 뛰어내리는 절벽

깨지면서 길을 연다

 

어둠을 찌르고

부서지는 방향으로

넓고 하얀 바다가 고요의 심지를 세운다

 

 

 

[당선소감] 시창작에 도전하다

 

30대 초반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낀 적이 있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하여 인생계획표를 작성하고, 즐거운 목표를 세웠다. 정년까지는 열심히 일하고, 정년 이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내가 계획했던 일은 세계를 여행하며 여러 풍광을 사진기에 담는 일 이었다.

종부(宗婦)로서 고생한 아내를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숨어 있었다. 그러나 아내의 건강은 해외여행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같이 있고 싶어 하는 아내의 권유와 틈틈이 시를 읽고 위로를 받으며, 자연스레 시창작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글쓰기 소질은 없지만 노력하다 보면 잘 쓰게 되지 않을까? “끝이 무디다 보니 구멍 뚫기가 어려울 뿐, 한번 뚫리게 되면 그 구멍은 크게 뻥 뚫린다.”는 옛말에 조그만 희망을 걸었었다.

오늘 당선소식은 이런 나의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게 아닐까! 열심히 쓰다보다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격려가 아닐까! 제2의 인생은 시창작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잘 익어 향기가 오래 남는 시작품을 쓰고 싶다. 좋은 글을 위해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미흡한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한국문학방송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심사경위]

 

올해로 열 번째가 되는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다. 이번에도 과거(1회~8회)의 경우와는 달리 응모자격 제한(공모 요강)에 따른 순수 미등단자(문예지나 전국·지역 일간신문 등의 신춘문예, 현상공모전 등에서 당선 또는 수상한 사실 없는)로서, 170여 명이 응모했다.

 

1차 예심에서 23명이 선발되어 본심으로 상정됐고, 본심 1차에서 5명(작품수로는 25편. 1인 5편 응모)이 선정됐다. 본심 2차에서는 각 작품별로 채점(점수)제 방식을 통해 최종적으로 1명이 당선자로 결정됐다.

본심은 채점과 집계가 완전히 종결될 때까지 심사위원끼리도 누구인지 그리고 몇 명인지 알 수가 없도록 철저히 미공개 및 보안을 유지했다(심사위원의 소신과 자율성, 공정성 등 보장). 채점 착안 사항은 문법·어법·표현의 적절성, 주제와 내용의 부합·일관성, 감동·느낌, 시적구조와 메타포의 깊이, 작품의 신선감·독창성, 작가적 역량·성장가능성 등이었다.

 

심사위원은 해마다 전원 교체 위촉함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번 예심은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이, 본심은 조영민 시인, 권오성(필명 권이화) 시인, 이경숙 시인(아래 사진, 무순)이 각각 맡았다.

 

- 심사위원 조영민, 권오성, 이경숙 시인

 

 

한국문학방송에서 시행한 2019년도(10) 신춘문예 현상공모에 이경호(67) 씨가 당선됐다.

당선작은 <청어의 방>, <환절기 관절염>, <귀신 고래의 혈통>, <새를 기다리는 밤>, <그렇지> 5편으로, 채점(점수)제 방식인 본선에서 다른 응모자들보다 상대적으로 고르게 높은 점수를 획득함으로써 당선의 영광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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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 외 4편 / 이경숙

 

그 해부터 마을에선 해 기르기가 유행하였다

해가 잔뜩 달리면

투명한 유리 글라스에 진득한 주스를 가득 뽑아 마실 거예요,

둥글게 생긴 소녀는 바짝 마른 혓바닥으로 해를 굴렸다

겨울이면 해는 물을 뒤집어썼다

녹는점에서 어는점으로

얼음은 속으로 열기를 가두는 법을 알았다

 

해에선 조금 쓴 맛이 났다

하얀 종이에 해를 곱게 싸 내어놓는다면

저녁엔 마른 생선 한 조각을 간사한

혀 밑으로 숨길 수 있다

 

말라가던 주홍빛 껍질과 다르게

뒷집의 해는 꽤 무럭 자랐다

숨구멍으로 단맛이 베어나는 것도 같아

그는 어느 선데이 비료를 뿌리의 똥구멍으로

찔러 넣어주었다

해가 잔뜩 웅크린 날

 

해의 부스러기를 핥을 때면 새하얀

눈물이 떨어졌다

노모는 차광막 붉은 모자를 눌러쓰곤

지문이 지워진 손가락으로 검을 땅을 파내고

그녀가 흘린 땀방울은 쉽게 부유했다

가난 대신 쏟아지던 땀에는 소금 한 줌이 자란다

 

해는 촘촘히 태어나는데 빛은

쉽게 태어나는 법이 없다

해 기르기가 유행하는 날이면

나는 쓴맛이 나는 해를 꿈처럼 와그작,

베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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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의 흔적

 

 

초록의 잎사귀로 잠 못 이룬 별빛이 내려앉았다

소리 없는 말발굽

달리던 날들이 늘어날 때마다

푸르게 새겨지던 유목의 흔적

탯줄이 잘린 후 남은 조직처럼

유목의 흔적은 몸 어디를 떠돌았다

탄생의 의미에 대해 말해주듯

늘어지던 어머니의 탯줄

탯줄로 이어지던 흔적들

아이는 모체의 흔적을 마시고 자란다

해가 지날수록 크게 번지던 흔적은 붉다가

파랬다 초록으로 변하곤 했다

어느 초원을 맨발로 달리고 싶은 날이면

빨간 보자기를 둘러매고 날아오른 어린 날

어쩌면 나는 별이 되고 싶었던 건지도 몰라

세상과 입맞춤한 자리에는 엉덩이 어느 부근을 맴돌던 푸른

유목의 흔적이 떠돈다

낡아버린 흔적은 검은 꽃으로 피어나는 거란다,

할머니의 주름진 세월 사이엔

지난날 숨겨졌던 흔적들이 피어나는데

오랫동안 제자리에 머물던 나의

발끝은 아직 깨끗했다

발굽이 되지 못한 발끝

잘린 갈기를 기르면 움직일 거라던 시계바늘엔

아직 뿌연 먼지가 쌓여있다

자박, 제멋대로 자란 풀잎을 밟으며 달리고 싶어

나는 고삐를 풀고 단단한

땅을 발끝으로 밀어낸다

45억년 동안 새겨진 지구의 흔적들

자유를 찾아 헤매는 것들의 몸엔 유목의 흔적이 있고

이제야 발굽을 갈아 끼운 몸에선

유목의 흔적이 자란다

 

 

 

 

 

꿈으로 달리는 선박

 

 

나는 매일 잠을 엉성하게 베어 물었다

구름을 닮은 잠

잠은 폭신했고, 부드러웠고 아무런 맛도 없었다

 

꿈으로 항해하는 선박에서

매일 저녁을 표류했다

꿈은 언제나 신중해야 해,

결국 지키지 못한 약속은 하나씩 늘었다

 

의미 없는 기념일들과 시끄러운 정적

왁자하게 떠들던 영화

추억을 필름으로 정의한다면

열아홉 번째 필름은 돌려보지 말도록 해야 한다

꿈이 가장 많이 피어나던 날들 그러나,

아홉수 질긴 생이었으므로

 

꿈은 매일 타올랐다

어쩌면 타 버리는 걸지도 몰라

 

버려진 꿈은 저의 원동력이 되었어요,

 

유명한 100억불부자의 이야기

그는 그 꿈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만 숨겼다

 

선박은 꿈이 없어지면

천천히 추락하는 법

무너지던 이야기들과 어린 문장들

배가 낡아가는 동안에 나는

새로운 잠을 베어 물었다

구름을 닮은 잠에 대하여

 

밤은 길고 잠은 언제나 짧은 것이다

 

 

 

 

 

빨간 망토 소녀의 우화

 

 

음지에선 꽃이 자라지 못해요 나의 손끝은 언제나 그림자 뒤에 있고 내 손에선 꽃이 피어날 수 없어요 음푹 파인 손마디에선 눅눅한 잡초만 기어 올라오는데 쉿, 아무도 그림자는 자르지 않기로 해요

내일 아침엔 오동나무로 커다란 지게를 만들 거예요 할머니가 선물한 빨간 망토를 입고 할머니를 산산조각내기 위해 모두들 슬픔의 눈물을 흘리겠지만-사실은악어의눈물이라도- 나는 한쪽 입술을 한껏 끌어올려 웃어 주겠어요-가장진실된웃음과울음은반비례하다는걸모르는사람들그들에게주어지건할머니의조금여린몫시지만

그건배부를수없고사람들은벌써다음제물을탐색하고있어요이빨이나가거나주름이깊게패인낡은빛들-

 

겨울은 꽤나 오래 쌓이는 법 악어는 숨을 쉬려 고개를 삐죽 내밀다가 그대로 얼어붙어요 앞으로 나흘, 그의 가족은 입에 대해 웃다가 나흘이 지나면 울면서 그를 삼킬 거예요-이런것이바로악어의눈물과같은법칙이되는것입니다-

 

아버지는 몇 달 째 빈손으로 들이치고 어깨에 짊어진 노을은 자꾸만 무거워지는 중이예요

 

세 조각으로 나눈 버터 향 쿠키는 이틀을 먹을 양식 한 조각은 잘게 부수어 할머니의 등 뒤에 숨겨 놓아야 해요 줄어든 양식과 늘어나는 입 이건 언제나 물음표의 법칙 언젠가 버터 쿠키의 향을 들이쉰 곰과 같은 것이 할머니를 잘게 찢어낼 준비를 하고

 

사실 할머니가 준 건 하얀 망토지만 빨갛게 물들 거예요 곧

노을이 우리의 그림자를 덮을 예정이므로

 

등 뒤로 해가 저물어가네요 안녕, 나의 초대형 입, 그랜드-

마마?

 

 

 

 

 

흐린 청춘 사용법

 

 

열아홉 종이 한 장에 떠밀려 나는 서린 날 위로 발을 뻗었지

한순간에 떨어진 바닥을 맨발로 짚은 나에게

달은 자신의 허물을 벗어주었다

그날부터 반푼이가 된 나는 한 평

백오십센치 침대 위에 몸을 뉘였다

다행인건 키가 백사십을 웃돈다는 것

 

청춘들은 누구보다 값싸게 살아야 한다던

어느 부자의 말을 반찬삼아

얼어버린 밥덩이를 씹었지 십킬로

한 푸대로 한 해를 버티던 나에게

천장에 매달아놓을 조기는 사치였다

 

닳은 지문과 입구만 최신식이던 고싯방

읽히지 않는 지문 덕분에 난

선물 받은 휴대폰도 잊고 다시

지문을 지우러 나갔지

그래도 오늘은 천오백원 인생

어제의 딱 두 배의 값으로 살았다는 것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흐린 하늘과 옹골진 식당에서

삼백여 입들과 먹던

이천육백몇십원의 점심식사에 대해

 

밤은 잊힌 나에게 비웃음만 옅게 남기고 떠났다

잔뜩 비가 올 것만 같은 날

청춘은 천원으로 하루를 버티는 것이다

 

 

 

 

[당선소감]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지만은 않습니다.

 

시인은 가장 낮은 곳을 맴도는 모든 것들을 끌어안고, 그들과 ‘함께’ 감정을 터뜨리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바로 그것이 시가 저에게 준 삶이자, 제가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시의 단면을 본 이상 이제는 더욱 시를 향해 걸어 나가야겠지요.

 

이런 기회를 열어주신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담당자분들과 심사위원분들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아파하고, 더 많이 울며 성장하겠습니다

 

 

[심사경위]

 

올해로 아홉 번째가 되는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다. 이번에는 과거(1회~8회)의 경우와는 달리 응모자격 제한(공모 요강)에 따른 순수 미등단자(문예지나 전국·지역 일간신문 등의 신춘문예, 현상공모전 등에서 당선 또는 수상한 사실 없는)로서, 210여 명이 응모했다.

 

1차 예심에서 50명이 선발되어 본심으로 상정됐고, 본심 1차에서 7명(작품수로는 35편. 1인 5편 응모)을 선정했다. 본심 2차에서는 각 작품별로 채점(점수)제 방식을 통해 최종적으로 1명이 당선자로 결정됐다.

본심은 채점과 집계가 완전히 종결될 때까지 심사위원끼리도 누구인지 그리고 몇 명인지 알 수가 없도록 철저히 미공개 및 보안을 유지했다(심사위원의 소신과 자율성, 공정성 등 보장). 채점 착안 사항은 문법·어법·표현의 적절성, 주제와 내용의 부합·일관성, 감동·느낌, 시적구조와 메타포의 깊이, 작품의 신선감·독창성, 작가적 역량·성장가능성 등이었다.

 

심사위원은 해마다 전원 교체 위촉함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번 예심은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이, 본심은 하상만 시인, 서상규 시인, 우경주 시인, 김은자 시인(아래 사진, 무순)이 각각 맡았다.

 

- 심사위원 하상만, 서상규, 우경주, 김은자 시인

 

 

한국문학방송에서 시행한 2018년도(9) 신춘문예 현상공모에 이경숙(37) 씨가 당선됐다.

당선작은 <공해>, <유목의 흔적>, <꿈으로 달리는 선박>, <빨간 망토 소녀의 우화>, <흐린 청춘 사용법> 5편으로, 채점(점수)제 방식인 본선에서 다른 응모자들보다 상대적으로 고르게 높은 점수를 획득함으로써 당선의 영광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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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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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어부바 / 유종인

 

 

바닷가 소나무숲에 들어갔다

수평선은

가늘게 눈을 뜨고 날 바라봤다

혹여 당신이 가 계신 곳 아느냐 물으면

어부바, 어부바

발끝에 닿는 파도소리에 업혀온 말

당신이 날 업으려 온몸으로 건넸던 말들

솔숲에 파도소리로 부려놓았다

 

세월은 당신인데 가벼워진 몸,

더 깊어진 속종을 미소로 갈무리한 채

당신은 여전히 내게

늡늡한 영혼의 등을 내보이며 어부바,

실패와 좌절조차 꽃처럼 받아 안듯이

넉넉히 등을 내미는 말, 어부바는

수평선이 영원의 선반처럼 해와 달을 업어주는 말

 

바닷가 소나무숲에 서 있었다

소나무는 하나같이 허리가 굽었다

당신이 그러하였다

굽은 소나무 허리를 쓰다듬을 때

어부바 어부바 당신 목소리가 나무에서 흘러나왔다

이젠 내 차례에요 해와 달이 모셔간 어머니

나는 눈부신 수평선처럼 등을 내밀어

당신 이제 파도처럼 철썩 제게 업히세요

어부바

 

 

 

 

교우록

 

nefing.com

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백교효문화선양회는 11일 강릉문화재단이 공동 주관하는 제12회 백교문학상 대상에 유종인 시인의 시 '어부바'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우수상에는 전순선씨의 시 '하늘 높이 날고 싶은 오월', 최남미씨의 수필 '아버지의 그림', 이임진씨의 수필 '신사임당과 이율곡의 효사상 계승'이 뽑혔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후인 시인은 대상작에 대해 "어머니와의 사랑을 노래한 감동적인 시”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백교문학상은 해마다 효친 사상과 문화를 주제로 한 시와 수필 작품을 공모, 시상하고 있다. 수상작은 '사친문학지'에 실리며 시상식은 10월에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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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 / 박은형

주남지 왕버들이 연두를 시동 겁니다

넌짓한 마음을 단숨에 뜯어내는 승냥이 떼 같습니다

늦으면 늦은 대로 연두를 따라붙으려

두툼하게 녹이 난 슬픔이나

생애 첫 연서의 무용한 형식에 대해 고심합니다

일몰의 긴 회랑이라면 눈부신 졸음

폐역의 늦은 당신이라면 단팥죽 한 그릇

빈 식탁이라면 먼지를 보여 주는 흑백 한 문장

다발로 묶어 연두를 실어 갈 당나귀 어디 없을까요

당신과 나의 담장에도 뭉개질 만큼만 놓아기르기로 해요

연두가 그저 몇 걸음의 눈 배웅에 관여하는 거라면

나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해서 꼭 살겠습니다

전승된다면 사랑

죽음이라면 끄덕끄덕 자장가까지

저수지 너른 고독에 찔려 신접의 병상처럼 에는 것

내 마음을 따라잡는 연두였다고 중얼거립니다

 

 

 

 

흑백 한 문장

 

nefing.com

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맴맴’ 매미들이 합창하는 이맘때면, 우리지역 시인들에게 초유의 관심사가 되는 상이 있다. 올해로 17회를 맞는 김달진창원문학상이다. 경남 출신 또는 거주 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상은 구체적 지역가치의 실천과 전망을 제시해 주는 문학에 대한 격려와 선양을 취지로 기성·신인 제한 없이 매년 개최되고 있다. 상금이 1000만원으로 큰 데다 역대 수상자들이 걸출해 여러 문인들이 탐내는 상으로 평가받는다.

 

2021년 제17회 김달진창원문학상의 영예는 창원에서 활동하는 박은형(사진) 시인에게 돌아갔다. 수상 시집은 ‘흑백 한 문장’(파란.·2020년)이다. 박은형 시인은 2000년 ‘경남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고등학교에서 황선하 시인의 가르침을 받은 박 시인은 경남여류문학 회원으로 활동하며 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2013년 문예지 ‘애지’ 신인상으로 재등단한 시인은 식물의 생명력을 지닌 시를 짓고 있다. 특히 이번 수상이 눈에 띄는 점은 첫 시집으로 수상했다는 점이다.

 

심사를 맡은 이숭원 문학평론가와 배한봉 시인, 장만호 시인은 심사평에서 “수상작은 섬세한 감각과 시선의 참신함이 돋보였다. 또 시에 대한 깊은 고민과 경험을 오래 삭혀 성실하게 자기만의 언어로 만들어내는 역량을 높게 평가했다. 시적 지평의 확대를 위해 긴 시간 고투해온 점도 높이 평가했다”고 평했다.

 

동이 트지 않은 강가에서 여자가 디아를 내민다// 속눈썹이 가장 깨끗할 때의 갓 난 잠을 껴안고/터지지 않는 천둥 장전한 눈매를 건넨다// 나는 이 어린것에게 무엇을 해도 될까요?// 젖은 캥거루같이 강가를 헤매는 몸피에/모성과 가난의 중력을 압정처럼 박은 여자는// 꽃불을 들고 세상의 가파른 기도를 대변한다 -(‘디아’ 일부)

 

박은형 시인은 “크고 너른 손바닥으로 내 시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려주는 것 같아 무한 기쁘면서도 한편 더 나은 시를 써야 한다는 책임감에 무거운 마음도 든다. 내 시들은 여타 주변의 식물들에게 빚졌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나무와 풀과 꽃들의 사계를 어정거리다 마주친 푸른 저녁들. 죽음과, 시간과, 고독과, 사랑과, 사람과 슬픔 그리고 존재에 대한 질문들이 식물의 생멸을 좇으며 감각되다가 시가 되곤 했다. 은사이신 고 황선하 선생님과 심사위원, 새로 태어난 삼십삼 년 인연의 이수문학회, 문우들,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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