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제23회 수주문학상 심사는 2회에 걸쳐 이루어졌다. 1차심사에서는 허연(시 인), 김소연(시인), 안현미(시인), 김언(시인), 이명원(문학평론가) 등 5명의 심사위원들이 응모된 모든 작품을 읽고 각각 우수작 후보 2~3인씩을 선정했다. 그렇게 해서 선정된 후보 작품들을 2차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 전원이 활발한 논의를 통해 검토하고 최종 수상작을 선정했다.
심사과정을 통해서 논의된 사항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 응모작 가운데 산문시적 경향의 작품이 상당수 있었는데, 산문적 형식의 활용에 따르는 내적 필연성을 설득할 수 있는 작품의 성취가 필요해 보였다. 둘째, 응모 편수가 많다 보니, 연작시적 경향의 시도 제법 있었는데 모티프의 반복 등을 피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개별 시편들의 시적 성취에 편차가 있거나 기계적 반복에 머무르는 것은 아쉽게 느껴졌다. 셋째, 시적 자아가 1인칭의 진술을 동반하는 일이 자연스럽다고 하더라도, ‘타자’와 단절된 고립무원의 심경을 표현하는 데만 머문다면, 문학의 ‘대화적’ 성격의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나와 타자의 접촉면을 고뇌하고 성찰하는 시적 태도는 여전히 필요해 보였다.
이런 단점들을 잘 극복하고, 나와 타자 사이에 연루된 ‘관계성’을 시적으로 아름답게 천착한 「남 생각을 했다」외 9편을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 시는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 안에서의 기대와 좌절, 인식과 오인, 희열과 절망과 같은 모순감정을 서늘한 ‘미적 거리’를 통해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수상작과 함께 응모된 9편의 작품들 역시 정제된 시적 형식과 대상에 대한 시적 자아의 섬세하고도 차분한 응시를 통해, 관성화된 일상을 뚫고 솟아오르는 인식론 적· 감각적 ‘낯설게 하기’의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일상성의 생기(生氣)와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삶의 통찰적 의미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심사위원 일동은 만장일치로 「남 생각을 했다」외 9편을 2021년 제23회 수주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수상자에게는 진심 어린 축하를, 다른 응모자들에게는 위로의 인사를 올린다.
지하철 한구석에서 고흐가 말했다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듯이, 밤하늘의 저 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고 늙어서 죽는다는 것은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안내방송이 들리고 열차 안의 불이 꺼졌다 승객들은 그림자처럼 밖으로 뛰어내렸다 다시 불이 켜졌다 나는 피터팬처럼 그림자가 없었다
3.
피터팬의 발에 그림자를 꿰매어 주던
웬디는 그가 한 권의 책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이 바다 저편에는 우리들의 나라가 있어서
거기로 간 사람들은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때로 활자가 되고 싶은 몸은 그 대신에
여러 개의 그림자를 만든다
문득 웅덩이에 내 얼굴이 비치는 것을
한 겹씩 바람은 자꾸 들추어내고
고양이가 눈을 한 번 깜박였을까,
펼쳐진 풍경이 잠시
정지한다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물이 가다
생선을 몇 번 찔러보곤
물이 갔다고 하시며
걸음을 옮기는 우리 엄마
그 뒤로 세상의 물들이
천천히 흘러가네
빛을 잃어가는 생선의 눈알과 색 바랜 티셔츠
공중에 날리는 모래 먼지들
어릴 적 나를 한 번 지나간 구름이
지금 되돌아오네
어린 내가 업혀 있던
엄마의 등 뒤로 물비린내가 물씬
풍겨오네, 잡으려 해도
한 번도 잡을 수 없었던
꽃잎 같은 저 참새들 후두둑,
땅으로 하늘로 오르내리는 저녁
내 안에서도 소용돌이치는 물빛을 느끼며
온갖 풍경들과 흐름들 터벅터벅
발소리,
그렇게 물이 되어 천천히 흘러가네
우리는 다만 물 위로 걷듯이
금방 사라질 흔적만 남기고,
메아리 같은 울음을 하나씩
던지고 가듯
풍경을 녹음하는 여자
언제부턴가 집 앞 공원에 나와
늘 같은 벤치에 앉아 있는 여자
앞을 못 본다는 그 여자,
뒤에서 사람들이 장님이라고 수군거려도
미소 띤 얼굴이 물소리 같은 여자
그 여자의 몸은 축음기처럼
자기 안에 소리들을 담아두고 있다
손등 위로 지나는 햇빛의 소리
꽃잎을 흔드는 아지랑이 소리
가끔씩 피가 흐르는 소리, 머리카락이 자라는 소리에
어깨를 떨며 반응하기도 한다
어느 날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
잠깐 멈추어 선 풍경들과
나뭇잎 위에 남아 있는 반짝이는 빗소리,
눈부신 소리들이 여자의 안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높낮이 없는 음들이 모여 이루는
하나의 거대한 화음이 여자의 안에서
유리조각처럼 조심스럽게 반짝인다
공원에 올 수 없는 날이면
방 안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는 여자
가끔씩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좋아하는 과거를 혼자 듣는 여자
공원에 밤이 오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는 소리를
긴 음계처럼 오래오래 듣고 있는
그 여자
그의 유리공장
유리병을 만드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을려 검어진 피부가 유리보다도 반들거리는 남자 긴 쇠파이프로 숨을 불어넣을 때마다 부풀어 오르는 허공과 같이 목울대가 팽팽해지는 남자, 그의 작업장에서 바람은 처음으로 형태를 갖는다
태아처럼 팔다리가 생겨난 바람들은 이따금 기지개를 켜듯 유리병 안에서 온몸을 진동시키며 울었다 그가 숨을 내쉴 때 풍경들도 몸을 떨며 저마다 다른 울음을 그의 날숨처럼 일정하고 길게 토해냈다 병 안에서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릴 때, 근육이 불뚝 솟은 그의 몸에서도 어떤 공기주머니 같은 울음이 부풀어오르다 천천히 가라앉곤 했다
유리가 하나씩 부풀어 오를 때마다 점점 작아지는 남자 유리병 안에 들어 있는 목이 긴 소리들을 날마다 몸속에 진열하는 남자, 밤이 되자 손가락 끝에서부터 천천히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수많은 태아들을 품고 바람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의 목울대만이 아직 뜨겁고 환하다 환하게 속을 비워내고 형태만 남은, 남자
유리병을 나란히 세워놓은 그가 아직 식지 못한 채 마지막으로 공장 한구석에 진열된다 퍼즐처럼 붙어선 채 풍경을 이어가던 유리병들이 불에 덴 듯 바람에 잠깐 일그러진다
달리는 숲
불현듯 시장기를 느꼈다
태풍을 빨아들이며 숲은 순식간에 쑥쑥 자라고
나는 멀뚱히 서서 배를 만진다
오래전에 무엇이 달려가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물소 떼처럼 우글우글하고
엉킨 바람처럼 방향이 제멋대로인
그때도 지금처럼 배가 고파졌고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욕망을
잊자, 잊자고 나도 모르게 되뇌었다
나무들 속
갈라진 껍질의 틈으로
풀꽃 잎사귀와 무수한 빗방울들,
민들레 홀씨와 도둑고양이 같은 것들이
탯줄로 연결된 채 한데 숨 쉬고 있었다
그들이 숨을 내쉴 때마다
뱃속으로 끓는 듯한 바람이 스며들었다
나는 문득 내가 민들레 홀씨만 했을 적을 떠올린다
태풍의 눈처럼 조용한 나무 속
숨 쉬는 소리가 그렇게
공기를 진동시키며 울었고
숲이 성큼성큼 전진을 시작했다
잊자, 잊자, 하여도 생생하게 등을 훑고 지나가는
내 안의 채워지지 못한 허기
살아 있음, 그 살아 있음이
수상 소감
물 위로 걷듯이 금방 사라질 흔적만 남기며 글쓰기를 했습니다. 완성한 시가 수십 편이라면, 쓰다 지워버린 시는 아마 천 편이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파도가 수만 번 밀려와야 겨우 하나의 지층이 생기듯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다만 바다와 달리 사람에게는 하고 싶은 말들이 넘치고 용기는 부족하기 때문에, 시를 진심으로 대하며 자유롭게 글쓰는 일이 늘 어렵고 숙제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말에는 책임이 따르고, 마음에 맴도는 말이란 하지 않는 편이 나을 때가 많으니까요.
이렇듯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부끄럽지만, 남기기 어려운 말보다는 침묵을 택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신인상에 처음 응모하면서도 당선되리라곤 감히 생각지 못했습니다만, 귀한 상과 소중한 기회를 주셔서 송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어렵더라도 앞으로는 침묵하기보다 더 배우고 노력하라는 의미로 받아, 좋은 시를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치원 문학상 심사평
어떻게 이런 일이
얼마 전에 두 분 선생님들과 한 자리에 모여 논의를 했던 투고작들에게, 간략하나마 심사평을 붙이기 위하여 필자는 다시 한 차례 모든 원고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자리는 그들 시에 관한한의 후일담인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많지.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를 쓰고 싶어 했던 자의
실패작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졸시 「어떻게 이런 일이」 전문
시들을 살피는 와중에 지독한 뇨의 마냥 밀려오던 시작(詩作)에 대한 욕구로 인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한 편의 시를 적어 보기에 이르고 말았다. 그렇게 짤막한 시 한 편을 얻게 되었다. 일견 생뚱맞아 보이기도 하는 인용 식(式)일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모든 시들의 일정 부분의 풍습은 “어떻게 이런 일이”의 등속을 헤아려 보거나 천착하는 데에 이르거나 바쳐져야 한다는 이유에서, 이들의 시 속에도 저류하고 있을지 모를 “어떻게 이런 일이”의 기척을 찾아 눈길을 주어 보았음을 밝히기로 한다.
여섯 사람의 시를 나누어 읽었던 시간은 어느 사이 두 사람의 세계로 압축되었다. 시를 나누어서 고른다거나 차등을 메기는 일은 어쩔 수없이 유효한 측면도 있었으나 한 편으론 따분하거나 무효한 일에 다름 아닐 수 있었다. 결국 현재의 모든 시들은 진화의 꿈을 간직해야 한다는 뜻에서 해보는 말이다.
“커다란 환풍기가 고래 울음을 내는 터널 안/ 갑자기 서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앞을 내다보거나 라디오를 틀어 봐도/ 한순간 찾아온 암전에 대한 정보는 없다// 터널 입구를 들어서며 동공을 움츠리고/ 마주친 어둠에 대해 준비했었지만/ 앞선 차들의 급격한 멈춤에 가슴이 팔딱인다// 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자리/ 어둠이 사방으로 짙어갈수록 문득 행복하다 말했던 거짓말이 후회된다/ 후회는 거짓말처럼 더욱 커진다// 구급차가 다가와 사고 차량 앞에 멈추고는/ 수습해야 할 슬픔의 일정을 알려준다// 삼켜진 것들은 불행이 자신을 피해 갔음에 안도한다(중략) 불안한 어둠 속에서 품었던 거짓말에 대한 의심조차 거짓말처럼 까무룩 잊어버린 채“ 이장호의 「피노키오는 다행이었어요」 일부
터널 안에서 만난 교통사고에서 발화된 이 시는 “거짓말”과 “피노키오”를 차용한 자아의 각성을 술회하는 방식을 갖추며 있다. 이장호의 다른 시편들 역시 이처럼 무난한 평균률의 진술들을 내포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의 시의 안광이 “어떻게 이런 일이”의 돌연함이라거나 퀭한 우수의 높이라거나 너비를 좆아 갈 때. 언젠가는 그의 시가 자신의 이름으로 건설된 마을을 한 채 건사할 수도 있을 거라는 짐작을 비치며 지나갔다. 아쉽게 거기에서 멈춘 셈이다.
“생선을 몇 번 찔러보곤
물이 갔다고 하시며
걸음을 옮기는 우리 엄마
그 뒤로 세상의 물들이
천천히 흘러가네
빛을 잃어가는 생선의 눈알과 색 바랜 티셔츠
공중에 날리는 모래 먼지들
어릴 적 나를 한 번 지나간 구름이
지금 되돌아오네
어린 내가 업혀 있던
엄마의 등 뒤로 물비린내가 물씬
풍겨오네, 잡으려 해도
한 번도 잡을 수 없었던
꽃잎 같은 저 참새들 후두둑,
땅으로 하늘로 오르내리는 저녁
내 안에서도 소용돌이치는 물빛을 느끼며
온갖 풍경들과 흐름들 터벅터벅
발소리,
그렇게 물이 되어 천천히 흘러가네
우리는 다만 물 위로 걷듯이
금방 사라질 흔적만 남기고,
메아리 같은 울음을 하나씩
던지고 가듯”
강다솜의 「물이 가다」
머리 시로 놓인 “우리들의 독서”에서부터 강다솜의 시편들은 다른 이들의 작품에 비해 더 가파른 시의 그림자들을 거느리며 있어 보였다. 여기 인용된 “물이 가다”의 혼용 서술 기법 역시 눈여겨 볼만한 개미를 주고 있었다. 물(수분)이었다가 행색(물색)이었다가 물빛으로 드러나는 “물”의 이러저러한 면목들이 마침내 흔적만 남은 “발소리”로 화하는 지점에서, 이 시의 제목인 “물이 가다”라는 지시의 방향이 완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에게 자신의 시를 더하여 귀감의 세계들을 기대해 보는 마음으로, 강다솜의 시편들에게 올해의 “최치원 문학상”의 무거운 짐을 떠안기기로 정하였다. 축하를 드리는 마음과 함께 호된 정진의 날들을 빌기로 한다.
이번 제16회 최치원신인문학상은 총 203명이 응모하여 예심위원이 선정한 6명의 작품을 본심에 올렸다. 그중 본심에서 마지막까지 거론된 신인은 이장호, 강다솜의 작품이었다.
감천문화마을로 헤엄쳐 가는 물고기 떼를 따라 반야바라밀 달빛을 따라 문화마을을 산책한다 할아버지 이마처럼 주름진 골목길 따라 걸어가는 발자국을 담벼락에 기대어 선 울긋불긋 화분들이 자꾸 붙잡는다 앞집 지붕이 뒷집 마당이 되고 또 그 집의 지붕이 뒷집 마당이 되는, 오두막들 사이로 미로미로의 꿈들이 별처럼 빛난다 숯검댕이처럼 검게 내려앉은 어둠이 지붕위에서 노닐다가 담쟁이 넝쿨처럼 휘적휘적 담벼락에 내려앉는다 초승달과 함께 맴 돌다가 감천 앞바다에 철썩이는 파도처럼, 큰 고니가 좋아하는 을숙도 세모자기처럼 땅바닥에 늘어붙는다 밤이슬 촉촉이 문화마을에 젖어들면 6.25 피난길 난리통 밥풀 같은 허기들이 별들마저 구름에 가려져 칠흑 같은 감천문화마을 골목길 국화꽃 속에서 춤을 춘다 평생 공동어시장에서 고등어와 갈치의 비늘에 찌들어, 비린내 나는 삶을 살아온 날들이 얼마나 지치고 버거웠을까? 울컥울컥 가슴에 응어리진 상처들과 얽히고설킨 슬픈 낱말들을 삼키고 있는 항운노조원들의 눈동자를 별빛도 사라진 새벽, 그믐달이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고 충혈된 두 눈을 때 묻지 않은 이슬로 문질러 준다 침묵과 정적만이 지붕위로 걸어 다니고 있는, 모두가 잠든 새벽! 온갖 상념들이 새벽바람에 낙엽처럼 굴러 간다 삶의 쓰디 쓴 알맹이와 상처 난 낱말들이 다 빠져 나가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가로수의 가랑잎을 흔드는 바람소리만 휑하니 날아간다 마을에 동이 터도 애기 울음 한 번 들리지 않고 아침 답에 등교하는 초등학생 한 명 보이지 않는 마을 손주 손녀들의 재롱이 그리웠을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웃음소리조차 미로미로 골목길에서 길을 잃어버렸는지 흔적도 없이 바람에 날려간다.
[가작] 다대포의 시간 / 김나비
다대포에 가면 재첩국처럼 뽀얀 기억이
모래톱 위에 반짝이지
싱싱한 재첩을 솥에 넣고
보글보글 새벽을 끓이던 어머니
그 진한 국물 한 사발에 취한 밤이 벌떡 일어날 때
세상모르고 자던 어린 나는
어머니 빈 자리를 더듬으며 꿈속을 파고들곤 했는데
새벽 별을 머리에 이고 국 팔러 나간 어머니
버스에 덜컹덜컹 두려운 가슴을 실었다지
목 안에 자꾸만 감기는 소리를 풀며
남몰래 사이소 사이소 연습을 했다는데
부끄러워 올라오지 않는 말을 끌어당겨
허공에 널곤 했다는데
골목에 들어서면 목소리가 숨어서
얼굴만 빨개지다가도
집에 두고 온 자식들 곤한 숨소리가
모래알처럼 머릿속에 펼쳐지면 떨리는 손을 불끈 쥐고
화끈거리는 얼굴로 재첩국 사이소를 외쳤다지
재첩국 사이소, 노래가 골목에 허밍처럼 돌아다니고
양푼을 들고나온 아낙들에게
부추를 가득 얹은 시원한 시간을 건네주었다지
그렇게 한나절 외치고 나면
손에 쥐어지는 건 겨우 몇 끼의 쌀
옹기종기 기다리는 아이들, 먹일 생각에 힘든 것도 잊었다는데
다대포에 가면
새벽을 깨우던 어머니, 그 뽀얀 목소리가
모래톱 위에 반짝이며 떠다니지
[심사평]
제 7회 사하모래톱 문학상 공모전은 사하구의 을숙도, 다대포 등을 소재로 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소재로 한 작품과 사하구의 역사, 문화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을 응모대상으로 했다. 응모분야는 시, 시조, 동시를 아우르는 운문분야와 단편소설, 수필, 동화를 포함하는 산문분야였다. 접수된 작품은 산문 86편(53명)과 운문 574편(118명)으로 예년에 비해 산문의 응모 편수가 줄었고, 운문의 응모 편수는 늘어났다.
운문분야의 작품들은 예년에 비해 수준이 높은 편이었다. 특히 대다수의 작품이 사하구의 지역성을 잘 드러내는 편이었는데 이는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선에 들지는 못했지만 동시와 시조 중에서도 눈여겨 볼만한 좋은 작품이 적지 않았는데, 이는 예년과는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1차 심사를 통과한 20 명의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들이 논의 끝에 다시 10편으로 압축하였고 이 가운데서도 다시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주는 작품을 찾았다.
대상작으로 뽑힌 분이 응모한 다섯 편의 작품은 모두 뚜렷한 시적 성취를 보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 「 모래톱 탁본」을 대상작품으로 골랐다. 이 작품은 사하에서의 유년체험을 형상화한 것으로 시적 화자가 들려주는 가족사가 완성도 높은 비유에 의해 전달되는 수작이었다.
최우수작 「을숙도 해풍국수」역시 뛰어난 작품이었다. 이 작품 역시 대상작과 마찬가지로 사하에서의 유년체험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다양한 심상들과 밀도 높은 표현들 특히 돋보였다. 같이 응모한 「감천 마을에서」도 눈여겨 볼만한 작품이었다.
산문 분야에서는 자신의 체험을 지역성과 문학적 성취로 잘 녹여낸 수작을 찾기 위해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모았다. 선에 든 작품 중에서 「큰 고니의 귀환」을 대상 작품으로 정했다. 충실한 현장감과 작품 구성력이 완성도를 높이는 수작이었다. 최우수상을 받은 「배 타러 가요 」도 지역에 대한 애정이 잘 스며들어 있으면서도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동화로 수상작에 오른 「승학산에 뜬 할머니의 달 」, 수필「모래톱 때문에」도 지역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진정성이 문학적 성취를 이룬 수작들이다.
사하모래톱 문학상 공모전은 사하구의 지역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할 것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데, 심사위원들이 검토한 상당수의 응모작은 사하구의 지역성을 잘 살리고 있어 반가웠다. 뿐만 아니라 예년에 비해 독창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작품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어서 뜻 깊었다. 여느 해 못지않은 수상작을 내보일 수 있어서 마음이 흐뭇하다. 다음해에도 사하구의 지역성을 들어내는 좋은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케시마(竹島)라 하지 마라 우(于)를 천(千)으로 혼동했을 뿐, 당빌은 그 섬을 우산도로 적었나니
조선왕국전도 섬, 독도가 아니라 한다 서양이 본 조선을 왜곡하려 하나 서양이 안 세상을 부정하려 하나
고지도 발견에 안도가 밀려온다 네 것은 내 것이라 외치는 짖음에도 내 것은 내 것으로 증명 되었으므로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전혀 다른 것' 이라 하였느냐 넓고 넓은 동해에는 섬이 두 개 뿐
독도를 울릉도로 오명(誤)하였느냐 독도는 우산도로, 울릉도는 무릉도로 세종대왕님 때부터 그리 불러왔나니
독도가 독도인 이유를 아는가 외딴 곳에 떨어져 있어서 독도가 아니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너른 바다 기운이 실려와 독도가 유(柔)해졌고
북아메리카로 이어진 수평선이 무한대의 가능성을 품게 해 독도는 강(强)해졌다
외유내강으로 제 있는 자리 지키는 섬, 혼자서도 동해를 호령할 자격이 있어 독도(獨島)라 부르나니
견물생심을 멈추어라 대나무섬은 이곳에 없다 다케시마를 모르니 알려줄 길도 없다
수심 깊은 동해에는 바위섬이 있을 뿐 풍랑 이는 동해에는 바위섬이 어울릴 뿐 수면 위에 얼굴만 내민 그 섬, 독도가 있을 뿐
그 섬은 강인함과 인자함을 가졌다 가진 힘을 휘두르지 않고 바다 속 生에게 힘이 되어주며 살아왔다
물속에 숨긴 몸집까지 자그마치 2천68m 우편번호는 40240 한반도 최동단에 자리한 섬의 품격이다
우리는 이 바위섬을 다케시마(竹島)가 아닌 독도(獨島)라 부른다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당선소감] "日 망언에 화나 일본어 배우기도…진실 밝혀지는 날 고대"
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했습니다. 당시 일본이 독도를 두고 자꾸 자기네 땅이라고 해서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배워서 어디에 쓸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일본어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10년은 더 흘렀습니다. 아직도 일본은 독도를 두고 자기네 땅이라고 했습니다. 큰일이라고 생각한 순간 반가운 기사를 접했습니다. 18세기 서양인이 그린 고지도 발견 소식이었습니다.
독도는 무정물이지만, 생명이 있다면 분명히 답답하다고 말할 것 같았습니다. 하여 우리 것인 그 섬을 생각하며 응원하는 마음으로 시를 썼습니다. 대한민국에 독립이 왔던 날처럼,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진실이 명백해지는 날도 어서 오길 바라며 썼습니다. 독도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갖는 게 저와 같은 소시민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임을 압니다. 시를 읽는 분 중에 한 분이라도 독도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큰 기쁨일 겁니다.
귀한 곳에서 상을 받게 되어서 무척 기쁩니다. 좋은 취지의 공모전에 참가한 데 의의를 뒀었는데, 선택까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택받은 건 작품이란 걸 잘 알지만, 제가 선택받은 기분이기도 해서 힘이 납니다.
[심사평] "올바른 역사인식 알리기위한 국민적 관심 고조…출품작 3669편 선의의 경쟁"
올해 열한 번째를 맞은 대한민국 독도문예대전은 독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사랑이 뜨거워진 때라서 어느 해보다도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문학, 미술, 서예, 사진, 동영상 부문에서 총 3천669편이 접수되어 지난해보다 470점이 늘었으며 양뿐만 아니라 질적 수준도 크게 향상되었다. 그리고 전 국민의 열망을 반영이라도 하듯 전국에 걸쳐 응모된 것이 무척 고무적이었습니다.
독도와 울릉도, 동해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문화적 가치와 올바른 역사 인식을 국민과 청소년들에게 널리 알리고 독도문예대전을 통해 영토적 주권을 강화하며 교육과 예술, 꿈과 미래의 장을 마련하고자 시행해 온 전국공모전은 회를 거듭할수록 기대 이상의 발전적인 양상을 보였습니다. 심사과정으로 분량이 많은 문학과 미술, 사진 작품은 별도로 예심을 거쳐 본심으로 들어갔으며, 1차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은 모두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고 본 심사를 통해 더욱 밀도 있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창의성과 목적에 합당한 상징성, 충실한 표현력 등 다각적으로 관찰하여 수상작들을 선정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문학, 미술, 서예, 사진, 동영상 부문 등이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향상되었다는 총평과 함께 입상하신 분들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애석하게도 낙선하신 분들에게는 더욱 정진하여 내년의 기회를 기대하는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대한민국 독도문예대전의 큰 성과와 함께 운영위원과 심사위원 그리고 참여하신 모든 출품자에게 건승을 기대합니다.
30대 초반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낀 적이 있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하여 인생계획표를 작성하고, 즐거운 목표를 세웠다. 정년까지는 열심히 일하고, 정년 이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내가 계획했던 일은 세계를 여행하며 여러 풍광을 사진기에 담는 일 이었다.
종부(宗婦)로서 고생한 아내를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숨어 있었다. 그러나 아내의 건강은 해외여행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같이 있고 싶어 하는 아내의 권유와 틈틈이 시를 읽고 위로를 받으며, 자연스레 시창작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글쓰기 소질은 없지만 노력하다 보면 잘 쓰게 되지 않을까? “끝이 무디다 보니 구멍 뚫기가 어려울 뿐, 한번 뚫리게 되면 그 구멍은 크게 뻥 뚫린다.”는 옛말에 조그만 희망을 걸었었다.
오늘 당선소식은 이런 나의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게 아닐까! 열심히 쓰다보다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격려가 아닐까! 제2의 인생은 시창작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잘 익어 향기가 오래 남는 시작품을 쓰고 싶다. 좋은 글을 위해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미흡한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한국문학방송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심사경위]
올해로 열 번째가 되는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다. 이번에도 과거(1회~8회)의 경우와는 달리 응모자격 제한(공모 요강)에 따른 순수 미등단자(문예지나 전국·지역 일간신문 등의 신춘문예, 현상공모전 등에서 당선 또는 수상한 사실 없는)로서, 170여 명이 응모했다.
1차 예심에서 23명이 선발되어 본심으로 상정됐고, 본심 1차에서 5명(작품수로는 25편. 1인 5편 응모)이 선정됐다. 본심 2차에서는 각 작품별로 채점(점수)제 방식을 통해 최종적으로 1명이 당선자로 결정됐다.
본심은 채점과 집계가 완전히 종결될 때까지 심사위원끼리도 누구인지 그리고 몇 명인지 알 수가 없도록 철저히 미공개 및 보안을 유지했다(심사위원의 소신과 자율성, 공정성 등 보장). 채점 착안 사항은 문법·어법·표현의 적절성, 주제와 내용의 부합·일관성, 감동·느낌, 시적구조와 메타포의 깊이, 작품의 신선감·독창성, 작가적 역량·성장가능성 등이었다.
심사위원은 해마다 전원 교체 위촉함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번 예심은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이, 본심은 조영민 시인, 권오성(필명 권이화) 시인, 이경숙 시인(아래 사진, 무순)이 각각 맡았다.
- 심사위원 조영민, 권오성, 이경숙 시인
한국문학방송에서 시행한 2019년도(제10회) 신춘문예 현상공모에 이경호(67) 씨가 당선됐다.
당선작은 <청어의 방>, <환절기 관절염>, <귀신 고래의 혈통>, <새를 기다리는 밤>, <그렇지> 등 5편으로, 채점(점수)제 방식인 본선에서 다른 응모자들보다 상대적으로 고르게 높은 점수를 획득함으로써 당선의 영광을 차지했다.
음지에선 꽃이 자라지 못해요 나의 손끝은 언제나 그림자 뒤에 있고 내 손에선 꽃이 피어날 수 없어요 음푹 파인 손마디에선 눅눅한 잡초만 기어 올라오는데 쉿, 아무도 그림자는 자르지 않기로 해요
내일 아침엔 오동나무로 커다란 지게를 만들 거예요 할머니가 선물한 빨간 망토를 입고 할머니를 산산조각내기 위해 모두들 슬픔의 눈물을 흘리겠지만-사실은악어의눈물이라도- 나는 한쪽 입술을 한껏 끌어올려 웃어 주겠어요-가장진실된웃음과울음은반비례하다는걸모르는사람들그들에게주어지건할머니의조금여린몫시지만
그건배부를수없고사람들은벌써다음제물을탐색하고있어요이빨이나가거나주름이깊게패인낡은빛들-
겨울은 꽤나 오래 쌓이는 법 악어는 숨을 쉬려 고개를 삐죽 내밀다가 그대로 얼어붙어요 앞으로 나흘, 그의 가족은 입에 대해 웃다가 나흘이 지나면 울면서 그를 삼킬 거예요-이런것이바로악어의눈물과같은법칙이되는것입니다-
아버지는 몇 달 째 빈손으로 들이치고 어깨에 짊어진 노을은 자꾸만 무거워지는 중이예요
세 조각으로 나눈 버터 향 쿠키는 이틀을 먹을 양식 한 조각은 잘게 부수어 할머니의 등 뒤에 숨겨 놓아야 해요 줄어든 양식과 늘어나는 입 이건 언제나 물음표의 법칙 언젠가 버터 쿠키의 향을 들이쉰 곰과 같은 것이 할머니를 잘게 찢어낼 준비를 하고
사실 할머니가 준 건 하얀 망토지만 빨갛게 물들 거예요 곧
노을이 우리의 그림자를 덮을 예정이므로
등 뒤로 해가 저물어가네요 안녕, 나의 초대형 입, 그랜드-
마마?
흐린 청춘 사용법
열아홉 종이 한 장에 떠밀려 나는 서린 날 위로 발을 뻗었지
한순간에 떨어진 바닥을 맨발로 짚은 나에게
달은 자신의 허물을 벗어주었다
그날부터 반푼이가 된 나는 한 평
백오십센치 침대 위에 몸을 뉘였다
다행인건 키가 백사십을 웃돈다는 것
청춘들은 누구보다 값싸게 살아야 한다던
어느 부자의 말을 반찬삼아
얼어버린 밥덩이를 씹었지 십킬로
한 푸대로 한 해를 버티던 나에게
천장에 매달아놓을 조기는 사치였다
닳은 지문과 입구만 최신식이던 고싯방
읽히지 않는 지문 덕분에 난
선물 받은 휴대폰도 잊고 다시
지문을 지우러 나갔지
그래도 오늘은 천오백원 인생
어제의 딱 두 배의 값으로 살았다는 것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흐린 하늘과 옹골진 식당에서
삼백여 입들과 먹던
이천육백몇십원의 점심식사에 대해
밤은 잊힌 나에게 비웃음만 옅게 남기고 떠났다
잔뜩 비가 올 것만 같은 날
청춘은 천원으로 하루를 버티는 것이다
[당선소감]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지만은 않습니다.
시인은 가장 낮은 곳을 맴도는 모든 것들을 끌어안고, 그들과 ‘함께’ 감정을 터뜨리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바로 그것이 시가 저에게 준 삶이자, 제가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시의 단면을 본 이상 이제는 더욱 시를 향해 걸어 나가야겠지요.
이런 기회를 열어주신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담당자분들과 심사위원분들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아파하고, 더 많이 울며 성장하겠습니다
[심사경위]
올해로 아홉 번째가 되는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다. 이번에는 과거(1회~8회)의 경우와는 달리 응모자격 제한(공모 요강)에 따른 순수 미등단자(문예지나 전국·지역 일간신문 등의 신춘문예, 현상공모전 등에서 당선 또는 수상한 사실 없는)로서, 210여 명이 응모했다.
1차 예심에서 50명이 선발되어 본심으로 상정됐고, 본심 1차에서 7명(작품수로는 35편. 1인 5편 응모)을 선정했다. 본심 2차에서는 각 작품별로 채점(점수)제 방식을 통해 최종적으로 1명이 당선자로 결정됐다.
본심은 채점과 집계가 완전히 종결될 때까지 심사위원끼리도 누구인지 그리고 몇 명인지 알 수가 없도록 철저히 미공개 및 보안을 유지했다(심사위원의 소신과 자율성, 공정성 등 보장). 채점 착안 사항은 문법·어법·표현의 적절성, 주제와 내용의 부합·일관성, 감동·느낌, 시적구조와 메타포의 깊이, 작품의 신선감·독창성, 작가적 역량·성장가능성 등이었다.
심사위원은 해마다 전원 교체 위촉함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번 예심은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이, 본심은 하상만 시인, 서상규 시인, 우경주 시인, 김은자 시인(아래 사진, 무순)이 각각 맡았다.
- 심사위원 하상만, 서상규, 우경주, 김은자 시인
한국문학방송에서 시행한 2018년도(제9회) 신춘문예 현상공모에 이경숙(37) 씨가 당선됐다.
당선작은 <공해>, <유목의 흔적>, <꿈으로 달리는 선박>, <빨간 망토 소녀의 우화>, <흐린 청춘 사용법> 등 5편으로, 채점(점수)제 방식인 본선에서 다른 응모자들보다 상대적으로 고르게 높은 점수를 획득함으로써 당선의 영광을 차지했다.
‘맴맴’ 매미들이 합창하는 이맘때면, 우리지역 시인들에게 초유의 관심사가 되는 상이 있다. 올해로 17회를 맞는 김달진창원문학상이다. 경남 출신 또는 거주 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상은 구체적 지역가치의 실천과 전망을 제시해 주는 문학에 대한 격려와 선양을 취지로 기성·신인 제한 없이 매년 개최되고 있다. 상금이 1000만원으로 큰 데다 역대 수상자들이 걸출해 여러 문인들이 탐내는 상으로 평가받는다.
2021년 제17회 김달진창원문학상의 영예는 창원에서 활동하는 박은형(사진) 시인에게 돌아갔다. 수상 시집은 ‘흑백 한 문장’(파란.·2020년)이다. 박은형 시인은 2000년 ‘경남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고등학교에서 황선하 시인의 가르침을 받은 박 시인은 경남여류문학 회원으로 활동하며 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2013년 문예지 ‘애지’ 신인상으로 재등단한 시인은 식물의 생명력을 지닌 시를 짓고 있다. 특히 이번 수상이 눈에 띄는 점은 첫 시집으로 수상했다는 점이다.
심사를 맡은 이숭원 문학평론가와 배한봉 시인, 장만호 시인은 심사평에서 “수상작은 섬세한 감각과 시선의 참신함이 돋보였다. 또 시에 대한 깊은 고민과 경험을 오래 삭혀 성실하게 자기만의 언어로 만들어내는 역량을 높게 평가했다. 시적 지평의 확대를 위해 긴 시간 고투해온 점도 높이 평가했다”고 평했다.
동이 트지 않은 강가에서 여자가 디아를 내민다// 속눈썹이 가장 깨끗할 때의 갓 난 잠을 껴안고/터지지 않는 천둥 장전한 눈매를 건넨다// 나는 이 어린것에게 무엇을 해도 될까요?// 젖은 캥거루같이 강가를 헤매는 몸피에/모성과 가난의 중력을 압정처럼 박은 여자는// 꽃불을 들고 세상의 가파른 기도를 대변한다 -(‘디아’ 일부)
박은형 시인은 “크고 너른 손바닥으로 내 시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려주는 것 같아 무한 기쁘면서도 한편 더 나은 시를 써야 한다는 책임감에 무거운 마음도 든다. 내 시들은 여타 주변의 식물들에게 빚졌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나무와 풀과 꽃들의 사계를 어정거리다 마주친 푸른 저녁들. 죽음과, 시간과, 고독과, 사랑과, 사람과 슬픔 그리고 존재에 대한 질문들이 식물의 생멸을 좇으며 감각되다가 시가 되곤 했다. 은사이신 고 황선하 선생님과 심사위원, 새로 태어난 삼십삼 년 인연의 이수문학회, 문우들,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