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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 관한 독서 외 4편 / 강다솜

 

 

1.

노포동역에 내리자 갑자기 짠내가 밀려와

숨을 몰아쉰다,

누군가 또 한 페이지를 넘긴다

고양이가 자동차 아래 눈을 뜬 채 웅크리고

웅덩이에 고인 가로등 불빛이

바람에 한 겹씩 흘러내린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아,

자꾸 불어나며 뒤를 따르던 그림자가 소근거린다

내가 태어나 처음 한 일은 달그림자를 끌어다

바다를 한 겹 한 겹 꿰매는 일이었어

사람들은 누구나 그 책의 활자이기 때문에

이따금 늦은 시각에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지

 

2.

  지하철 한구석에서 고흐가 말했다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듯이, 밤하늘의 저 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고 늙어서 죽는다는 것은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안내방송이 들리고 열차 안의 불이 꺼졌다 승객들은 그림자처럼 밖으로 뛰어내렸다 다시 불이 켜졌다 나는 피터팬처럼 그림자가 없었다

 

3.

피터팬의 발에 그림자를 꿰매어 주던

웬디는 그가 한 권의 책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이 바다 저편에는 우리들의 나라가 있어서

거기로 간 사람들은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때로 활자가 되고 싶은 몸은 그 대신에

여러 개의 그림자를 만든다

문득 웅덩이에 내 얼굴이 비치는 것을

한 겹씩 바람은 자꾸 들추어내고

고양이가 눈을 한 번 깜박였을까,

펼쳐진 풍경이 잠시

정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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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가다

 

 

 

생선을 몇 번 찔러보곤

물이 갔다고 하시며

걸음을 옮기는 우리 엄마

 

그 뒤로 세상의 물들이

천천히 흘러가네

빛을 잃어가는 생선의 눈알과 색 바랜 티셔츠

공중에 날리는 모래 먼지들

어릴 적 나를 한 번 지나간 구름이

지금 되돌아오네

 

어린 내가 업혀 있던

엄마의 등 뒤로 물비린내가 물씬

풍겨오네, 잡으려 해도

한 번도 잡을 수 없었던

꽃잎 같은 저 참새들 후두둑,

땅으로 하늘로 오르내리는 저녁

 

내 안에서도 소용돌이치는 물빛을 느끼며

온갖 풍경들과 흐름들 터벅터벅

발소리,

그렇게 물이 되어 천천히 흘러가네

우리는 다만 물 위로 걷듯이

금방 사라질 흔적만 남기고,

메아리 같은 울음을 하나씩

던지고 가듯

 

 

 

 

 

풍경을 녹음하는 여자

 

 

 

언제부턴가 집 앞 공원에 나와

늘 같은 벤치에 앉아 있는 여자

앞을 못 본다는 그 여자,

뒤에서 사람들이 장님이라고 수군거려도

미소 띤 얼굴이 물소리 같은 여자

 

그 여자의 몸은 축음기처럼

자기 안에 소리들을 담아두고 있다

손등 위로 지나는 햇빛의 소리

꽃잎을 흔드는 아지랑이 소리

가끔씩 피가 흐르는 소리, 머리카락이 자라는 소리에

어깨를 떨며 반응하기도 한다

어느 날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

잠깐 멈추어 선 풍경들과

나뭇잎 위에 남아 있는 반짝이는 빗소리,

눈부신 소리들이 여자의 안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높낮이 없는 음들이 모여 이루는

하나의 거대한 화음이 여자의 안에서

유리조각처럼 조심스럽게 반짝인다

 

공원에 올 수 없는 날이면

방 안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는 여자

가끔씩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좋아하는 과거를 혼자 듣는 여자

공원에 밤이 오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는 소리를

긴 음계처럼 오래오래 듣고 있는

그 여자

 

 

 

 

 

그의 유리공장

 

 

 

  유리병을 만드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을려 검어진 피부가 유리보다도 반들거리는 남자 긴 쇠파이프로 숨을 불어넣을 때마다 부풀어 오르는 허공과 같이 목울대가 팽팽해지는 남자, 그의 작업장에서 바람은 처음으로 형태를 갖는다

 

  태아처럼 팔다리가 생겨난 바람들은 이따금 기지개를 켜듯 유리병 안에서 온몸을 진동시키며 울었다 그가 숨을 내쉴 때 풍경들도 몸을 떨며 저마다 다른 울음을 그의 날숨처럼 일정하고 길게 토해냈다 병 안에서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릴 때, 근육이 불뚝 솟은 그의 몸에서도 어떤 공기주머니 같은 울음이 부풀어오르다 천천히 가라앉곤 했다

 

  유리가 하나씩 부풀어 오를 때마다 점점 작아지는 남자 유리병 안에 들어 있는 목이 긴 소리들을 날마다 몸속에 진열하는 남자, 밤이 되자 손가락 끝에서부터 천천히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수많은 태아들을 품고 바람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의 목울대만이 아직 뜨겁고 환하다 환하게 속을 비워내고 형태만 남은, 남자

 

  유리병을 나란히 세워놓은 그가 아직 식지 못한 채 마지막으로 공장 한구석에 진열된다 퍼즐처럼 붙어선 채 풍경을 이어가던 유리병들이 불에 덴 듯 바람에 잠깐 일그러진다

 

 

 

 

 

달리는 숲

 

 

 

불현듯 시장기를 느꼈다

태풍을 빨아들이며 숲은 순식간에 쑥쑥 자라고

나는 멀뚱히 서서 배를 만진다

 

오래전에 무엇이 달려가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물소 떼처럼 우글우글하고

엉킨 바람처럼 방향이 제멋대로인

그때도 지금처럼 배가 고파졌고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욕망을

잊자, 잊자고 나도 모르게 되뇌었다

 

나무들 속

갈라진 껍질의 틈으로

풀꽃 잎사귀와 무수한 빗방울들,

민들레 홀씨와 도둑고양이 같은 것들이

탯줄로 연결된 채 한데 숨 쉬고 있었다

그들이 숨을 내쉴 때마다

뱃속으로 끓는 듯한 바람이 스며들었다

나는 문득 내가 민들레 홀씨만 했을 적을 떠올린다

 

태풍의 눈처럼 조용한 나무 속

숨 쉬는 소리가 그렇게

공기를 진동시키며 울었고

숲이 성큼성큼 전진을 시작했다

잊자, 잊자, 하여도 생생하게 등을 훑고 지나가는

내 안의 채워지지 못한 허기

살아 있음, 그 살아 있음이

 

 

 

 

수상 소감

 

  물 위로 걷듯이 금방 사라질 흔적만 남기며 글쓰기를 했습니다. 완성한 시가 수십 편이라면, 쓰다 지워버린 시는 아마 천 편이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파도가 수만 번 밀려와야 겨우 하나의 지층이 생기듯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다만 바다와 달리 사람에게는 하고 싶은 말들이 넘치고 용기는 부족하기 때문에, 시를 진심으로 대하며 자유롭게 글쓰는 일이 늘 어렵고 숙제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말에는 책임이 따르고, 마음에 맴도는 말이란 하지 않는 편이 나을 때가 많으니까요.

  이렇듯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부끄럽지만, 남기기 어려운 말보다는 침묵을 택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신인상에 처음 응모하면서도 당선되리라곤 감히 생각지 못했습니다만, 귀한 상과 소중한 기회를 주셔서 송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어렵더라도 앞으로는 침묵하기보다 더 배우고 노력하라는 의미로 받아, 좋은 시를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치원 문학상 심사평

 

어떻게 이런 일이

 

얼마 전에 두 분 선생님들과 한 자리에 모여 논의를 했던 투고작들에게, 간략하나마 심사평을 붙이기 위하여 필자는 다시 한 차례 모든 원고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자리는 그들 시에 관한한의 후일담인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많지.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를 쓰고 싶어 했던 자의

실패작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졸시 「어떻게 이런 일이」 전문

 

시들을 살피는 와중에 지독한 뇨의 마냥 밀려오던 시작(詩作)에 대한 욕구로 인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한 편의 시를 적어 보기에 이르고 말았다. 그렇게 짤막한 시 한 편을 얻게 되었다. 일견 생뚱맞아 보이기도 하는 인용 식(式)일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모든 시들의 일정 부분의 풍습은 “어떻게 이런 일이”의 등속을 헤아려 보거나 천착하는 데에 이르거나 바쳐져야 한다는 이유에서, 이들의 시 속에도 저류하고 있을지 모를 “어떻게 이런 일이”의 기척을 찾아 눈길을 주어 보았음을 밝히기로 한다.

 

여섯 사람의 시를 나누어 읽었던 시간은 어느 사이 두 사람의 세계로 압축되었다. 시를 나누어서 고른다거나 차등을 메기는 일은 어쩔 수없이 유효한 측면도 있었으나 한 편으론 따분하거나 무효한 일에 다름 아닐 수 있었다. 결국 현재의 모든 시들은 진화의 꿈을 간직해야 한다는 뜻에서 해보는 말이다.

“커다란 환풍기가 고래 울음을 내는 터널 안/ 갑자기 서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앞을 내다보거나 라디오를 틀어 봐도/ 한순간 찾아온 암전에 대한 정보는 없다// 터널 입구를 들어서며 동공을 움츠리고/ 마주친 어둠에 대해 준비했었지만/ 앞선 차들의 급격한 멈춤에 가슴이 팔딱인다// 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자리/ 어둠이 사방으로 짙어갈수록 문득 행복하다 말했던 거짓말이 후회된다/ 후회는 거짓말처럼 더욱 커진다// 구급차가 다가와 사고 차량 앞에 멈추고는/ 수습해야 할 슬픔의 일정을 알려준다// 삼켜진 것들은 불행이 자신을 피해 갔음에 안도한다(중략) 불안한 어둠 속에서 품었던 거짓말에 대한 의심조차 거짓말처럼 까무룩 잊어버린 채“ 이장호의 「피노키오는 다행이었어요」 일부

터널 안에서 만난 교통사고에서 발화된 이 시는 “거짓말”과 “피노키오”를 차용한 자아의 각성을 술회하는 방식을 갖추며 있다. 이장호의 다른 시편들 역시 이처럼 무난한 평균률의 진술들을 내포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의 시의 안광이 “어떻게 이런 일이”의 돌연함이라거나 퀭한 우수의 높이라거나 너비를 좆아 갈 때. 언젠가는 그의 시가 자신의 이름으로 건설된 마을을 한 채 건사할 수도 있을 거라는 짐작을 비치며 지나갔다. 아쉽게 거기에서 멈춘 셈이다.

 

“생선을 몇 번 찔러보곤

물이 갔다고 하시며

걸음을 옮기는 우리 엄마

 

그 뒤로 세상의 물들이

천천히 흘러가네

빛을 잃어가는 생선의 눈알과 색 바랜 티셔츠

공중에 날리는 모래 먼지들

어릴 적 나를 한 번 지나간 구름이

지금 되돌아오네

 

어린 내가 업혀 있던

엄마의 등 뒤로 물비린내가 물씬

풍겨오네, 잡으려 해도

한 번도 잡을 수 없었던

꽃잎 같은 저 참새들 후두둑,

땅으로 하늘로 오르내리는 저녁

 

내 안에서도 소용돌이치는 물빛을 느끼며

온갖 풍경들과 흐름들 터벅터벅

발소리,

그렇게 물이 되어 천천히 흘러가네

우리는 다만 물 위로 걷듯이

금방 사라질 흔적만 남기고,

메아리 같은 울음을 하나씩

던지고 가듯”

 

강다솜의 「물이 가다」

 

머리 시로 놓인 “우리들의 독서”에서부터 강다솜의 시편들은 다른 이들의 작품에 비해 더 가파른 시의 그림자들을 거느리며 있어 보였다. 여기 인용된 “물이 가다”의 혼용 서술 기법 역시 눈여겨 볼만한 개미를 주고 있었다. 물(수분)이었다가 행색(물색)이었다가 물빛으로 드러나는 “물”의 이러저러한 면목들이 마침내 흔적만 남은 “발소리”로 화하는 지점에서, 이 시의 제목인 “물이 가다”라는 지시의 방향이 완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에게 자신의 시를 더하여 귀감의 세계들을 기대해 보는 마음으로, 강다솜의 시편들에게 올해의 “최치원 문학상”의 무거운 짐을 떠안기기로 정하였다. 축하를 드리는 마음과 함께 호된 정진의 날들을 빌기로 한다.

 

이번 제16회 최치원신인문학상은 총 203명이 응모하여 예심위원이 선정한 6명의 작품을 본심에 올렸다. 그중 본심에서 마지막까지 거론된 신인은 이장호, 강다솜의 작품이었다.

 

 

본심 : 곽재구(시인) 정윤천(시인. 글) 김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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