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서 텔레비전 보기 외 4편 / 문이례
우리(We)와 우리(Cage) 사이
밖은 우리의 함정이었다
울타리를 친다는 건 거부의 표시일까
아무도 침범하지 않고 경계를 무너뜨리지 않는 게 관계망이라면 문 안쪽은 안전하다는 거겠지, 포식자가 걸어온 길엔 왜 자꾸 문이 사라지는 거니! 서로를 겪는 방식이 달라 곳곳에 우리가 필요했지 우리는,
우리가 있어 슬프다가도 우리가 있어서 안전하다는 생각
아이들과 동물원에 온 인솔교사는 호랑이보고 ‘귀엽다’를 난발하고
발톱을 감춘 호랑이가 원하는 게 뭔지, 이들의 뇌 속 세계
아무것도 모르는 해는 척, 척, 척, 돌아가고
어제는 아버지랑 실랑이하다가 휴지통이 날아왔지
변화구를 던지듯 심각하게 노려보던 눈
누군가의 내일이 여기라면
사각이 좀 더 안전한 방법이길,
모서리는 깎이더라도 우리의 안전이 될 수 있다는 모순!
매일매일 갇힌 동물처럼
어느 것 하나 ‘함께’라 부를 수 없는 나의 우리를
동물원 가서 묻는다, 갇힌 슬픔이 튀어나와 나를 덮칠 것 같아도
벗어나지 못하는 건 나만이 아니라는 것
물려받은 유전자가 그렇다는 걸
동물은 왕국을 포기하고,
텔레비전을 보는 우리는 우리를 훌쩍 뛰어넘지 못하는데
밖은 여전히 우리를 뛰쳐나간 아이들의 뒤집기가 한창이다
우리가 모르는 우리가 가끔 내 눈에만 보이지만
선뜻 먹이를 주지도
손을 내밀지도 않는
목숨을 건
네모 속 갇힌 최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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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넛방, 그 숲
홀연 문을 밀면 나무의 말이 들릴까요
꽉 닫힌 그의 서랍을 열 때는 무엇을 먼저 꺼낼까
누구도 예측 못 한 새들의 변명은 겨울이명으로 남아
두 귀는 뾰두라지처럼 감정을 부풀리고 있어요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무너지고 마는 폭설의 위협
어디까지가 그 서랍의 내면인지
자물통을 채우지 않아도
종종 열리지 않던
서로의 걸음은 그렇게 갈무리되죠
말의 눈꺼풀을 들춰보면 바람의 문자들이 적혀 있을 거예요
입을 닫고 각자의 방으로 흘러간 물관처럼
누구라도 소리 지를 것 같은 계단의 침묵
새벽녘, 초인종이 울리면 두려워요
숲을 훔쳐 사라진 달이라도 품어야 할지
아무 뜻 없이 읊조리는 후렴을 읽을 수 없어
모래폭풍이 지나간 빈방만 쳐다보죠
나무의 냄새를 좇고 있는
서랍 속엔 꺼내지 못한 말이 웅크리고 있어요
그냥 문을 닫기 두려워
내 귀가 열릴 때까지
‘새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돌아서죠
청춘들
1교시
실제처럼, 어설픈 엉덩이라도 흔들면
가벼운 손뼉쯤을 받을 수 있을까 구령이 반복되면, 어쭙잖은 농담들은 계속해서 따라붙고,
애인은 묻지 않은 내 엉덩이만 놀리지
하나 하면 둘이 아닌, ‘땡’ 하고 걸어가는 발맞추기
-여긴 민방위 훈련장입니다!
아무도 뛰지 않는
저 밀림 속으로 맹렬하게 달려가는 공상으로
뒤뚱뒤뚱 엉덩이는 훈련 중,
술만 마시면 떠들던 옛 애인은
수영도 못하면서 해병대 나왔다 자랑질이고, 특수부대 나온 그 친구의 친구는 여자 뒤만 졸졸 따라다니다 돈만 털리고 차였다지
어정쩡한 하루
발이 묶인 우린 별수 없이 애인이랑 훈련 같지 않은 훈련으로 뒹굴고 나면, 온몸에선 땀이라도 나야지
하루는 어디서 보상받아야 할지, 서로의 총구 갖고 장난치듯
가슴 향해
빵야…… 빵야…… 하고 싶은
2교시
모든 지하는 구멍으로 통한다는 걸,
버스를 탈출해 지하로 흘러든 날
암흑 속에 갇힌 짐승도 웃음꽃이 피었지
지하를 지하고
올라오면
지켜야 하는 게 뭔지도 모를
주어 없이, 주인 없이
쏟아지는 햇살에 뿌루퉁해진 빨간 입술들
차라리 교복이라도 입고 뛸 걸 하는 생각
내가 똥개가 된 듯, 훈련 뒤의 어두운 그림자처럼
책상다리라도 있었으면
굴러가는 바퀴처럼, 치워진 책상다리 밑으로
이 도시의 착란을
민방위는 없고, 민간과 방위만 있는 21세기
교실로 들어서면 훈련보다 더 한 세상이 펼쳐지던 그때로 고! 고! 씽!
배가 고픈 아이처럼 매점으로 뛰어가던,
도로는 버스를 재촉하고
내 뱃속 훈련이라도 마치기 위해
이제 뛰어야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여전히 훈련 중인
어정쩡한 오후를 씹고 있는
청춘들
입양
250가지의 항목을 꼼꼼히 표시하고도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모른 채
거품은 제거해주시고
속은 냉정하고 겉은 부드럽게
뜨거운 심장도 추가해주세요
커피에 샷 추가를 외치듯, 그 느낌만 품고 가족을 원하던 그녀
유리잔처럼 투명한 낯빛에도 가끔 그늘이 지듯
받아 든 주문서에 걸크러쉬한 속내를 내비치더니, 인큐베이터 속 빛이 들어오면 모르는 세계가 쿵, 떨어질 것 같아 조바심을 쳤다
카페 안엔 정자를 구하는 많은 여자가 주문서 들고 줄을 서고
아이 1, 2, 3, 4는 빛을 보기 시작하였다
한 여자가 투덜거리며 카페를 나서도
서로의 감각은 아닌 척,
주문서를 뽑으면 다시 샷 추가할 수 없다는 경고문만 입구에 나풀거리는데
커피 그라인더에서 나온, 단맛과 신맛이 혀를 마비시킬 동안
씁쓰레한 세상은, 우리의 웃음과 눈물까지 걸러내는지
아빠가 없어도 찾지 않는다. 체크
혼자서도 척척 일을 잘한다. 체크
놀이동산에 가자고 떼쓰지 않는다. 등, 등에 체크를 하고 있는 이들
아이는 어떤가요? 라는 질문에는
아직 잘!
차차 입맛에 적응되겠죠!
부적처럼 달고 다니는
엄마가 내 첫인상을 견디는 것처럼
난 태어나 한 번도 울지 않는 나를 견디는
여전히 카페 안은 샷 추가로 붐비고
반사거울
걷는 것이 서툰 아이에겐
주춤거리는 억양은 집에 두고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숨겨진 얼굴이 불쑥 튀어나와, 아기일 때도 어른일 때도 항상 나는 없는, 난 나일 때가 제일 좋은
침대 밑에서 종일 입을 뾰족하게 만들지!
친척들을 만날 때는, 복사에 복사를 반복하는 입꼬리는 없어도, 거울만 툭, 툭 내밀면 난반사된 얼굴들 튕겨 나가는데 아니라고, 아니라고
어제의 대화는 어디에 박혀 있는지,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그들의 궁금증
자고 일어나면 어항 속에 갇힌 금붕어가 된 이야기, 입을 벌린 내게 쏟아지는 엄마의 알 수 없는 얼굴
부유물처럼 둥둥 떠다니는데,
나라는 아이는 하얗게 포장되어 침대 밑에 두고
사진 속 그는 책상에 앉아 고개만 끄떡이네,
울렁증을 앓듯 허파가 벌렁거려 쓸데없이 손톱만 뜯고 있는데
착한아이라서 그래,
그런 쪽팔리는 말 이제 사양할게
주머니 속 거울 꺼내 가십거리 얼굴 닦아내면
물방울처럼 사라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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