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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는 요즘 애들 / 전예지

 

 

프린터기가 또 말썽이다

 

이 애물단지를 버리든가 고치든가 이게 대기업의 수준인가요?

 

하루에 기본 다섯 번을 1층에서 2층으로

걸어야 하는 에스컬레이터 아니면 계단으로

왼쪽 끝 후문 쪽에서 오른쪽 끝 정문 쪽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프린터기를 하나 놔주면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될 텐데

겨우 몇 십 만원이 아까워서 사람을 갈아 버린다

두 여자는 욕이란 욕을 다 입에 담지만

차마 입을 벌리진 못한다 멋쩍게 서로 한숨만 쉴 뿐

 

낡고 늙은 마트에 새로 생긴 텅 빈 매장의 취급은 이 정도

 

[자리 비움]

 

자기는 왜 자꾸 마음대로 자리를 비워?

일하기 싫어?

 

하필 매니저가 없는 날

혼자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본부장이 찾아온다

억울한 아르바이트생은 그나마 매니저보다 깡다구가 있다

 

프린터기가 2층에 있어서 왔다 갔다 하려면 어쩔 수,

 

말대꾸도 하고 참 요즘 애들 무섭다

 

눈이 순간 흰자로 뒤덮여진 아르바이트생을 보고

 

머리 빠진 본부장은 혀를 찬다

 

죄송합니다

 

속으로 본부장이 매장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입으론 여전히

 

 

 

 

[당선소감]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창백한 하루를 밤새 쓴다"

 

저는 외출이 잦지 않습니다. 저만의 공간은 어둡고 좁습니다. 그 좁은 폐허 속에 저만의 규칙과 행복이 편안합니다. 고독은 바람으로 불어오고, 저는 점점 더 속으로 파고듭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간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저의 공간은 햇빛이 부족합니다. 햇빛이 싫어 숨은 대가는 사색(思索)과 현기(玄機)입니다. 겨울은 어느새 찾아오고, 저는 대신 비타민을 챙겨 먹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먹는 비타민은 가장 흡수율이 좋습니다. 그렇게 채운 시리고 창백한 하루를 밤새 쓰고 시를 적습니다.

 

이런 저의 시가 마음에 드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저에겐 빈 곳이 많고 그 부분들이 드러나는 게 부끄럽습니다. 저는 곧잘 틈을 흠으로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금방이라도 당선이 전부 꿈이라는 소식이 전해질까 봐 그 생각에만 사로잡혀 상처받지 않으려 상처받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불안은 헛된 꿈인 듯 하루하루가 선명하게 행복합니다. 이제 저는 부족함을 알고, 더 열심히 살며 나의 틈을 채우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틈이 존재해도 흠이 아니라고 깨닫게 해주신 경인일보와 심사위원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이번 겨울은 한동안 깨어나지 못할 것처럼 우울했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내 곁에 남아 있던 건 가족과 친구들이었습니다. 항상 곁에 있으면서도 가장 숨고 숨기는 딸을 믿고 응원해준 가족들 사랑합니다. 그리고 항상 자극제가 되는 글 잘 쓰는 나의 한신대 문창과 17학번 친구들. 글썽글썽 고마워! 마지막으로 2021년의 겨울에게. 나는 정말 노력하고 있어요. 믿어주세요. 사랑해요.

 

틈을 주고 채워지는 것에 불편해하지 않는

 

흠이 아닌 틈을 자랑하는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런 사랑을 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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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화려한 수사 없었지만일상의 소중함 일깨우는 어법"

 

2022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의 관심은 뜨거운 편이었다. 비록 응모편수는 지난해보다 약간 줄었지만 응모작품의 수준은 상당히 높았다는 게 중론이다.

 

우선 응모자들의 연령대가 2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고루 분포되었지만 50~60대의 응모자가 많았다는 것도 특기할 만한 현상일 수 있다. 그만큼 사물을 응시하는 시각이 깊고 인식의 수준이 높았다고 보여진다.

 

시가 죽었다고 말하는 시인들이 있기는 하지만 시는 여전히 살아 있는 문학의 영역인 것을 응모 편수를 통해 알 수 있다.

 

응모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경향으로는 거대담론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생명 문제라든가 환경 문제라든가 통일 문제라든가 코로나 팬데믹 문제라든가 하는 거대담론을 다룬 시편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반면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모티프를 얻거나 사소한 경험에서 소재를 찾는 경향이 도드라지고 있었다.

 

실험적인 응모작을 만날 수 없었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는 안정된 작품으로 위험부담 없이 순항하고 싶다는 의지의 발현일 것이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예시영의 '카이트 서퍼', 김현주의 '그림자를 수집하는 방법', 전예지의 '일 잘하는 요즘 애들'이었다. 심사위원 두 사람은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해 장시간 토론과 논의를 거쳤다.

 

'카이트 서퍼'는 활달한 상상력과 긴 호흡이 미덕이면서 '그리고 바람이 불면/이 연서(戀書)가 당신에게 도달할지 모른다'와 같은 당돌한 문장이 시선을 끌었지만 응모작 모두 숨 가쁘게 긴 호흡이 문제였다. 압축미를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김현주의 '그림자를 수집하는 방법'은 어법이 새롭지 않다는 데 심사위원의 의견이 일치했다. 산문시의 군데군데 상투성의 혐의가 보이는 것도 문제일 수 있었다. 그러나 '푸른 별빛이 숨죽인 그들의 입속에서 검게 변해 자라졌다'와 같은 문장은 돋보였다.

 

전예지의 '일 잘하는 요즘 애들'은 사무실의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다. 프린터기가 말썽이어서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내려야하는 고충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화려한 수사를 구사하지도 않았으며 다양한 은유를 보여주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역병의 시대에 이와 같은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하는 신선한 어법이 이 작품의 힘이다.

 

일상의 수없이 많은 흐름 속에서 한 장면을 포착해서 성화해낸 전예지의 시적 감각이 예사롭지 않다는 데 두 심사위원은 공감하고 당선작으로 합의했다.

 

당선을 축하하고 훌륭한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김윤배 시인·김명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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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록체에 대한 기억 / 이경주

 

 

숲을 떠난 푸른빛의 기억이 갇힌 방으로 들어간다

형광등 불에 달궈진 자갈과 모래알들이 바닥에 깔리어

전갈이 지나는 길을 만들고 있다

마른 바람이 눈에 익거나 때로는 낯선 발자국들을 지우는 한낮에는

미세한 먹이사슬들이 잠깐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하얗다

종일 내리쬐는 빛은 벽에 박힌 나무들의 뿌리와

그걸 바라보는 죽은 새들의 밥상과

좁은 틈새를 뚫고 머리를 든 작은 벌레들의

핏줄까지 하얗게 만든다

한번이라도 불빛에 닿은 것들은 제 본래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오후가 저물 때면 변색의 관성은 더욱 강해져

누구도 아침을 기억하지 못한다

방의 움직임이 멈출 때까지 나갈 수 없다

아무렇게 발을 들여 놓았다가

깊은 사막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폭풍에 갇히어 돌아설 수 없다

여전히 문은 굳게 닫혀 있고

표정이라고는 창백한 빛뿐인 고요한 방이

암흑 속을 빠르게 날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이상하다 분명 하루가 지난 거 같은데

눈을 뜨면 다시 그 자리에 와 있고

녹색이 사라진 방으로 계속 나비들이 날아 들어온다

 

 

 

 

[당선소감] 내 삶의 단 하나의 길, 시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겠다

 

로맹 가리의 단편소설들은 늘 긴 여운을 남깁니다. 그 여운을 감당할 힘이 없어 한동안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이 두려워질 때도 있었지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꺼냈습니다. 새들은 진짜 비상을 위해 머나 먼 바다의 섬을 떠나 조그만 해변으로 날아와서 자신들의 몸뚱이를 던져 버리는 것일까요. 나에게 떠나야 할 섬은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막 몸을 던져야 할 곳은 어디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언제부터인지 젊은 시절 굵은 노트에 적어 댔던 시들이 나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추억이 되어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먹고사는 일에 몰입해온 현실을 핑계로 시의 바깥에서 기웃거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갈 수 없는 사막에 갇혀 버렸다는 절망감도 컸습니다. 그러나 시를 쓰면서 운명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을 그 지독한 외로움, 고통, 무엇보다도 지켜내야 할 영혼의 투명함과 순수성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음이 솔직한 고백일 겁니다.

 

작년에는 참으로 많이 걸었습니다. 끝도 없는 길을 걸으면서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각했습니다. 결국 시를 쓴다는 것이 나에게는 세상을 사랑하는 강력하고 유일한 방식이자 수단이 되어야 함을 길이 끝날 어느 즈음에야 알게 되었지요. 시는 갈수록 희미해지는 내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되살리고, 내가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 멈추어 버렸던 시를 다시 끄집어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시의 바깥에서 기웃거리지 않고, 시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겠습니다. 고립된 섬을 벗어나 내 몸을 던질 마지막 해변을 향해 날아가겠습니다. 긴 망설임의 여정에서 내 안에 생겨 난 상처를 치유하고, 나의 치유로서 사막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기를 감히 꿈꾸겠습니다.

 

이제까지 혼자 써 왔던 시였기에 세상에 내놓기가 참 부끄러웠습니다. 채 다듬지 못한 나무처럼 거칠고 틀어진 저의 작품을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님과 귀한 지면을 허락해주신 경남신문사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저를 응원해 준 아내와 가족들, 그리고 제가 어디를 가든 늘 함께 해 준 친구들에게도 고마운 인사를 전합니다. 아름답고 따뜻한 언어로 부지런히 좋은 시를 씀으로써 저를 사랑해 준 숱한 인연들에 보답하겠습니다.

 

 

 

 

[심사평] 울림 큰 문장들시적 틀 만들어가는 상상력 돋보여

 

코로나19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접어들면서 코로나 19 종식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으나 다시 확진자가 급증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는 등 여러 어려움이 많은 때이다. 이런 시대적 상황 때문인지 예년보다 신춘문예 시부문 투고량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수백명의 시인 지망생이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응모해 와 뜨거운 문학적 열기를 느끼게 했다.

 

올해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작에는 신춘문예에 응모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시적 역량을 보여준다는 것이 오히려 과도한 수사에 매몰되어 시적인 깊이와 사유의 넓이를 놓치고 있는 작품들이 눈이 많이 띄었다. 한 사물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집중력이나 정서를 짜임새 있게 압축하여 끌고 가는 긴장감이 부족한 경우도 많았다.

 

숙고 끝에 심사위원들은 김난(김향숙), 김휼, 나영채, 노수옥, 이경주, 이동우, 임승환, 최수안 제씨의 작품들을 본심에 올려 논의하였다.

 

몇 분은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 등 사회에 대한 인식을 담아내어 보여주기도 했지만 시대 정신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깊은 정서적 울림을 주지 못했다. 또 몇 분은 토속적인 정서에 기대어 서정의 영역을 파고 든 경우도 있었지만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내지 못하고 익숙한 어법에 머물러 있었다. 또 시적 발화가 너무 무성하여 이미지를 응집시키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이것이다, 하고 단숨에 손꼽을 작품을 만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런 속에서 노수옥씨와 이경주씨의 작품을 만난 것은 기쁜 일이었다. 노수옥 씨의 응모작 가운데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끈 작품은 입관이다. 언어를 세공하는 솜씨가 우수했다. 주제에 대한 집중도가 높고 문장을 끌고 가는 힘도 좋았다.

 

이경주씨의 엽록체에 대한 기억은 현대인들의 고뇌를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시적인 틀을 만들어나가는 능력과 상상력이 돋보였다. 퇴색되고 변해가는 자아와 만나는 방의 풍경은 흡인력이 있다. “눈을 뜨면 다시 그 자리에 와 있고, 녹색이 사라진 방으로 계속 나비들이 날아 들어온다는 환상성을 보여주는 문장이기도 해서 울림이 크다.

 

심사위원 두 사람은 노수옥씨의 입관과 이경주씨의 엽록체에 대한 기억을 놓고 숙고하고 논의했다. 논의한 끝에 응모작 전편이 편차 없이 고르다고 판단된 이경주씨를 당선자로 합의했다.

 

축하하며, 한국시단을 이끄는 큰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안타깝게 당선을 놓친 노수옥씨에게 심심한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심사위원 이성모·배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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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다보 / 송하담

 

 

아버지는 목수였다

 

팔뚝의 물관이 부풀어 오를 때마다 나무는 해저를 걷던 뿌리를 생각했다. 말수 적은 아버지가 나무에 박히고 있었다.

 

나무와 나는

 

수많은 못질의 향방을 읽는다

 

콘크리트에 박히는 못의 환희를 떠올리면 불의 나라가 근처였다. 쇠못은 고달픈 공성의 날들. 당신의 여정을 기억한다. 아버지 못은 나무못. 나무의 빈 곳을 나무로 채우는 일은 어린 내게 시시해 보였다. 뭉툭한 모서리가 버려진 나무들을 데려와 숲이 되었다. 당신은 나무의 깊은 풍경으로 걸어갔다. 내 콧수염이 무성해질 때까지 숲도 그렇게 무성해졌다. 누군가의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는 건 박히는 게 아니라 채우는 것. 빈 곳은 신의 거처였고 나의 씨앗이었다.

 

그는 한 손만으로 신을 옮기는 사람

 

나무는 노동을 노동이라 부르지 않는다. 당신에겐 노동은 어려운 말. 그의 일은 산책처럼 낮은 곳의 이야기였다. 숲과 숲 사이 빈 곳을 채우기 위해 걷고 걸었다.

 

신은 죽어 나무에 깃들고

 

아버지는 죽어 신이 되었다

 

나무가 햇살을 키우고

 

나는 매일 신의 술어를 읽는다

 

목어처럼 해저를 걷는다

 

 

 

 

 

[당선소감] “보이지 않는 장벽에 '라는 못 박을 것

 

긴 채굴의 시간이었습니다. 탄차의 여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시 쓰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이 거리두기를 외칠 때 저는 무엇보다 나와의 거리두기가 중요했고 그 거리 언저리에 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출구가 저기 보이는 듯합니다. 이번에 강원일보에서 부족한 글꾼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고대하던 등단은 또 다른 나와의 거리두기가 될 것이고 힘든 싸움의 시작임을 알고 있기에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지치지 않고 한 걸음씩 걷겠습니다. 당선작의 첫 구절처럼 아버지는 목수이셨고 막노동의 현장 한가운데 서 계시던 분이었습니다. 쉼 없이 못과 망치를 쥐시던 거친 두 손처럼 저 역시 보이지 않는 벽에 시라는 못을 박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벽이 너무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 벽과 싸우는 많은 계층의 사람들을 대신해서 못을 박겠습니다. 조금 더 겸손하게 더 낮은 곳을 바라보며 나의 아픔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무거운 옷들을 걸 수 있도록 열심히 시라는 못을 박겠습니다. 쉬지 않는 목수가 되겠습니다. 힘든 시간 옆에서 응원해 주신 전다형 시인님, 황윤현 시인님, 김선미 시인님, 활연 시인님, 세상에 나갈 물꼬를 터주신 용인문학회에 감사 인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심사위원분들과 강원일보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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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상상의 폭 넓게 두고 적확한 시어 찾아내

 

예심을 거친 작품들은 대부분 오랜 습작의 내공들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왜 이 시를 쓰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흔쾌한 답을 주는 작품은 드물었다. 달아나기만 하는 언어를 붙잡아 내 존재의, 삶의 숨결을 불어넣으며 시 고유의 장르적 힘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선자들이 마지막까지 논의한 작품은 이용원의 무심하게 미시령' 4편과 송하담의 목다보' 4편이었다. 이용원의 시들은 마치 베틀로 피륙을 짜내려가는 듯한 직조의 맛이 돋보였으나, 이러한 정성이 오히려 시를 단조롭고 밋밋하게 만드는 아쉬움을 남겼다.

 

송하담의 시들은 이용원의 시들에 비해 좀 더 과감한 면이 있었다. 거친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다보'를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는 이 작품이 이러한 응모자의 특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상상의 폭을 넓게 두면서도 적확한 시어를 찾아내고자 하는 노력, 그리고 이 상상과 언어 속에 삶의 비의와 존재의 근거를 담아내고자 하는 치열함이 그를 좋은 시인으로 우뚝 서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이영춘·이홍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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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울음 / 이선락

 

 

슬픈 시를 쓰려고 배고프다, 썼는데 배곺으다라 써졌다

곺 뒤에 커서를 놓고 백스페이스키를 누르자 정말 배가 고팠다

 

뱃가죽이 등에 붙어버렸나? 배가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고프다, 쓰자 배가 없어졌다. 등이 구부러지는, 굴절된 뼈 같은 오후

 

그래, 슬픔은 늘 고프지

어딘가가 고파지면 소리 내어 울자, 종이 위에 옮겼다

 

*

 

세면대 위에 틀니를 내려놓듯 덜컥, 울음 한마디 내려놓고 왔습니다

그뿐인가 했더니

옆구리 어디쯤에 쭈그리고 있던 마음, 굴절되어 있네요

 

거품을 집어삼킵니다 씹어도 건더기라곤 없는 튀밥

혓바닥이 마르고, 버썩거립니다

 

그래요, 뭐든 버썩거릴 때가 있어요 잠깐 눈 돌리면

쏟아지기도 하고

 

난 수년 전 아이 몇몇 쏟아버린 적도 있어요

 

그땐 내 몸도 깡그리 쏟아졌던 것 같아요 마지막 손톱을 파낼 땐

눈에도 금이 가고 있었죠

 

얘야, 눈빛이 많이 말랐구나 눈을 새뜨고 있는 게 아니었어내가,

 

손가락을 흘리고 다니지 말랬잖아요 근데 왜 까마귀 목소리가 흘러나오는지보송보송 털이 난 꿈속에서

 

*

 

배가 고프단 얘긴 줄 알았는데, 그림자 얘기였어

 

부품해진 그림자론 날아오를 수 없다, 어떤 돌은 그림자도 생겨나지 않는다, 죽은 후론 배꼽도 떠오르지 않는다, 쏟아졌던 아이들이

 

처음으로 수면에 떠올라

배꼽은 어디 있을까?’ 찾고 있을지도 모르는

 

깨지지 않는 것도 깨진 것이 돼 버린 오후

이렇게 비좁고, 나는 깎아지른 맘뿐이었나

 

몇 줄 적지 못한 종이 한 장 찢어, 공중에 날리는

 

 

 

 

 

[당선소감] 나이는 숫자일 뿐더 많이 생각하고 노력해야죠

 

농막에서 돌아와 막 책상 앞에 앉았을 때 낯선 번호의 전화가 왔다. “서울신문 기자인데요.” 나는 금방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다. 내 속의 내가 한 길쯤 공중으로 솟아올랐던 걸까? 아내가 진정하라고 어깨를 내려주었을 때서야 참으로 많이 놀랐구나, 기뻤구나, 실감이 났다. 전화기 속으로 절이라도 겹쳐 넣고 싶었다.

 

수 해 전 아내는 농막 하나를 지어 내어주며 하고 싶은 것 많이 해보라고 권했다. 이튿날 바로 읽고 있던 시집 10여 권을 들고 가 종일토록 읽었다. 토요일 오후엔 동리목월문예창작대에서 수강했다. 구광렬 시인의 첫 수업 때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된 계기였다.

 

그 후에도 손진은 시인, 전동균 시인, 유종인 시인의 열강을 놓치지 않고 들었다.

 

제법 몇 해가 흘렀을 때에서야 약간씩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내 속의 내가 말을 걸기도 했고, 주위의 사물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써보라고 권하는 듯했다.

 

시가 되는지 뭐가 되는지도 모르고 즐겁게 썼다. 여러 시집을 읽었다. 수백여 권쯤 될까? 세 번, 네 번, 열 번, 스무 번쯤 좋아지는 시집을 더 많이 읽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좋아하게 됐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노력하겠다, 다짐해본다.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노심초사 나를 지켜봐 주신 여러 지인들께도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문우님들께도, 시목문학회 회원들께도 깊이 감사를 드린다. 아내를 다시 한번 껴안아 주고 싶다. 마스크를 벗고 사는 시간이 얼른 왔으면. 기다려진다.

 

 

 

 

[심사평] 고픔과 아픔 외면하지 않는 시, 질문을 그치지 않는 시

 

올해도 많은 분들이 새봄을 향해 시를 보내 주셨다. 오랜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읽었다. 예년보다 더 오래 숙고했는데, 손에서 쉽사리 내려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단단하게 짜인 세계를 횡단하며, 심사자들의 눈과 손이 시종 천천히 움직였다.

 

오픈이 보여 준 감춤과 들킴의 미덕, ‘물과 풀과 건축의 시에서 감지한 조용한 폭발, ‘비닐하우스가 만들어 낸 미묘한 긴장, ‘온몸 일으키기가 일으킨 위트와 블랙 유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같이 머리와 가슴을 두드리는 시편이었다.

 

당선작과 끝까지 경합한 저기 저 작은 나라외 네 편은 독특한 시적 세계관으로 심사자들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자기만의 세계가 이미 상당 부분 구축돼 있어 앞으로 그 세계가 어디로 어떻게 뻗어나갈지 궁금했다. 토씨 하나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 문장들은 묘한 리듬감을 자아내 읽을 때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띤 토론 끝에 반려울음외 두 편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젊음은 젊은 상태, 혹은 젊은 기력을 가리킨다. 젊은 시가 있다면 그 상태를 잊거나 잃지 않고자 기력을 쏟아붓는 시일 것이다. ‘고픔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시, 질문을 그치지 않는 시일 것이다. 일상의 한 장면에서 지나간 시간을 길어 올리고 작금의 감정을 그 위에 내려놓는 시일 것이다. ‘반려울음은 쓰면서 고파지는 시, 배가 뱃가죽과 배꼽을 소환하는 시, 마침내 쏟아버리면서 동시에 쏟아지는 시였다. “버썩거리는일상을 비집고 다른 존재를 향한 유일한 감정이 솟아오르며 빛나는 시였다. 울음을 껴안으면서 울음과 함께 살겠다고 다짐하는 시였다.

 

시 쓰는 데 있어 이른 시간과 늦은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를 쓰는 시간은 모두 제시간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응모자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심사위원 신해욱, 오은, 박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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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물의 장면 / 이정은

 

 

1

 

11, 시침은 어디로 가고 없을까

카라꽃 조화를 11년째 키우고 있어요

물 없는 화병에서 꽃대는 올라오고

하얀 꽃잎은 향기를 뿜은 듯 버성기네요

속아주어야겠어요, 꽃이고 싶어 하잖아요

빈 화병에 물을 줍니다

찰랑찰랑 아파트 지하 수면실로 타고 내려가요

보일러 아저씨 잠이 깨요

달력 한 장 젖어요

 

2

 

양수리 두물머리

검푸른 물의 흐름이 엉켜있어요

마른 장작 타는 체취, 당신을 불러들인 건 나의 실수였습니다

목으로 넘어가는 와인 한잔이 나의 독주이기를

같이 했던 시간들은 윤슬처럼 흩어집니다

물의 카페에서 멀어질 때까지

 

3

 

어쩌지, 양수가 흘러내려

생명 다한 꺼져가는 촛불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없어

녹아 굳어버린 촛농들을

무덤 삼아 수그러드는

작은 호흡

물의 끝은 여기까지

인큐베이터 안이 추워

 

4

 

어느 시인과 사랑을 했어요

더 이상 뭘 원하시는 거죠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몰라요*

 

5

 

구피의 유영이 당신의 눈동자를 흐리게 하지요

몰려다니다가도 삐진 양 꼬리치며 돌아서는

구피의 번식력이 안방을 휘젓고 있죠

앉아 있을 장소조차 없이 불어난 구피 종자들

쏟아진 물난리에 익사를 조심하세요

 

물의 장면, 되돌이표를 그려 넣을까요

 

 

* 김종삼의 시 <民間人>에서 가져왔으며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水深을 모른다

 

 

 

 

 

 

[당선소감]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다시 읽으며 새벽 문을 연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나요. 구두를 벗어요. 기다란 소파로 올라와요. 꼼지락거려도 되겠지요. 다리를 주욱 펴요. 소파는 크림색인데요. 발가락은 무슨 색일까요? 보이지 않는 색일지도 몰라요. 보이는 것이 실재하는 건 아닐 거예요. 슬픔이 무엇인지 모르거든요. 사람들은 내가 슬픔에서 나오길 바란다고 해요.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 입안에선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었어요. 머리카락은 슬픔 대신 Coffee Tea Drink Flower Gift Shop를 먹어요. 바구니에 담아요. 안에는 발가락들이 꼼지락거리고 있어요. 누가 넣었냐고요. 슬픔을 좋아하는 당신이잖아요. 잊었군요. 여기 동명리가 존재하는 이유예요. 망각하지 말라고요. 당신이 문을 열어 두신 것처럼요.

 

당선 소식을 전해주신 뉴스N제주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정진하겠습니다.

 

지도해주신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동행하는 문우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주는 동생,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한 어린이가 자라는 데 온 마을이 길러주셨습니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다시 읽으며 새벽 문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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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전인적 인식과 반응을 포괄한 창조적 작품

 

20년 전만 해도 신춘문예에 응모하는 분들은 대개 20대 안팎이었다. 그런데 상당수가 50대 이상인 것을 발견한 우리 심사위원 일동은 구시대의 가치관에 의한 작품들뿐이면 어찌하나 걱정했다.

 

그런데 예심을 거쳐 넘어온 작품들 대부분이 의외로 해체적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테마 면에서는 일원(一元)과 다원(多元)’, 구성면에서는 인과와 해체’, 표현 면에서는 전인적(全人的) 인식과 반응에 고루 초점을 맞추되 유기적(有機的)’인 작품을 뽑기로 합의했다.

 

어느 한쪽에만 맞춘 작품들은 잘 읽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제 이들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관과 시학을 마련할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기준으로 살펴본 결과 황현자씨의 <현관>이 눈에 들어왔다. 생선 장수인 엄마에 대한 추억을 제재로 삼은 작품으로, 이런 제재를 택할 경우 흔히 그리움이나 효를 내세우기 마련인데, 끊겼다 다시 이어지는 무의식의 흐름을 따라 상반된 욕망을 드러내 상당히 입체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주목을 끈 것은 김용천씨의 작품이다. <탁란 청춘>은 취업을 위해 여기 저기 자기 소개서를 써 내고 기다리다가 우리 사회가 뱁새 둥우리에 알을 낳아 대신 부화시키고, 둥지까지 뺏는다는 뻐꾸기 사회라는 걸 깨닫고 절망스러워 거리로 뛰쳐나가는 젊은이를 화자로 내세운 작품이고, <꿀벌 나라>는 어느 일벌이 꿀 따는 사람 하나가 등장했다며 다 뺏기기 전에 나눠 갖자고 제안 하자 계층 별로 분열을 일으켜 애벌레들이 다른 벌레들의 먹이 감이 되었는 데도 못 보는 모습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나정욱씨의 <다족류의 인간들에게><랭보의 행보>는 화자 자신도 해체적임을 고백하는 작품이다. 앞의 작품에서는 다리가 열한 개인 사람과 열두 개인 사람들이 싸우는 걸 못마땅해 하지만, 자신도 아침에는 열두 개였다가 저녁에는 열한 개라며 그 까닭을 알려 줄 사람이 없느냐고 절망한다. 그리고 뒤의 작품에서는 시는 인생을 닮았고’, 그래서 앞뒤가 없다면서 행보라는 단어를 읽다가 랭보가 생각났다는, 말장난(pun)으로 비판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정은씨의 <다섯 개의 물의 장면>을 당선작으로 뽑기로 했다. 결혼식 부케나 장례식 때 관을 장식하는 카라꽃 조화11년씩이나 기르면서 생화가 아니라 조화다 빈 화병에 물을 주고, 그 물이 흘러내려 지하 보일러실 아저씨의 잠을 깨우고, 자궁의 양수로 이어 가는 줄거리 역시 해체적이지만 새 생명의 탄생 쪽으로 지향하고, 상상과 환상과 무의식적 본능과 의지와 비판을 한 작품에 담기 위해 연작시 형식을 취하는 점은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여는데 기여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걸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부탁드린다. 현대 사회에서 일원은 낡은 느낌이 들고, ‘해체는 혼란스러워 절망을 가중시킬 뿐이다. 삶도 작품도 통합ㆍ조절쪽으로 지향하는 게 자기를 완성하는 길이니 참고하시기 빈다.

 

심사위원 본심 윤석산 시인 예심위원 홍창국 시인, 현달환 시인, 강정림 시인, 이은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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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과 돌멩이와 한낮 / 신춘희

 


눈사람 한쪽 눈이 삐뚤게 붙어 있다
돌멩이 하나 머금었다

지금 조금씩 녹고 있는데
눈두덩이가 시릴 만큼 너를 오래 붙잡고 싶어
미안하지만 나는 점점 온기를 갖고
안타깝지만 너는 점점 부피를 줄이고
한동안 우린 밀착된 결빙으로 중력을 버티지
눈송이들 모여 숨겨둔 방
이곳은 해의 꼬리가 닿지 않아 심장을 두기 좋지
두근대는 돌멩이가 감정이라면
겨울은 안전한 밀실이야
사람들은 그저 눈빛을 얹어주거나
손끝으로 훑어볼 뿐
녹아내려야 하는 운명엔 관심이 없지
내가 너를 지키는 방법은
구름을 불러 모으는 일
눈이 자꾸 짓물러지고 있어
눈 속에 갇힌 마음이 죄다 흘러내리고 있어
우리가 견뎌야 했던 것들을 생각해
처음 눈덩이 궁글렸을 때의 설렘 같은 거
아이들 모두 돌아간 뒤 입꼬리를 움직여본 거
별들이 싱싱해서 우리는 하나였던 거야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낮이야
돌멩이와 눈덩이가 분별되어야 하는 시간이야
마지막 냉기가 사라지면
너는 나를 놓아줄 테지
그때까지 나는 너의 공중이 될 거야
머리가 기울고 있어
몸에 금이 가고 있어
물의 장례가 시작되고 있어

툭, 돌멩이 하나 그렁그렁 쏟아져 내린다


 

 

 

[당선소감] 봄같은 소식…늦게 핀 꽃 늦게 질 것

뜻밖에 봄이 찾아왔다. 당선 소식을 듣고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겨울과 봄 사이, 차가운 얼음 속에 있던 노란 복수초가 내 가슴에서 활짝 꽃을 피웠다.

눈 녹은 물인지, 눈물인지 몸 밖으로 흘러내렸다.

시의 씨앗을 뿌려놓고 한참을 기다렸다. 얼마 전에 다녀온 설악산 공룡능선의 날카로운 봉우리들, 공룡의 등을 내려올 때도 시를 생각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기록할 힘을 길러준 열정이 내 안에도 있었다.

어느 날은 생의 에너지를 가득 채워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 시가 사라져 눈앞이 캄캄할 때도 있었다.

늘 허기가 졌다. 그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워준 마경덕 선생님, 윤성택 선생님, 하린 선생님, 박지웅 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시의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님과 경상일보 관계자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문우들과 친구들 나를 믿어준 가족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

늦게 핀 꽃은 늦게 질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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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술의 완성 향한 치열성 확인 반가워

위험하고 슬픈 시대, 고립과 폐쇄의 시간을 밀치고 희망처럼 피어날 새로운 언어를 기다리며 예심을 통과한 응모작들을 깊이 읽었다. 언어에 대한 탐색과 예술의 완성을 향한 치열성을 확인할 수 있어 매우 반가웠다.

행과 연을 무시한 산문성의 경향, 여백의 문제에 고민해 본적이 없는 소통 불가의 작품은 줄었지만 외래어에 대한 무자각과 상상력 보다는 사소한 현실과 현상에 대한 묘사에 치우친 경향은 여전했다.

오늘날 지구를 위협하는 생태 문제로서 썩지 않는 플라스틱의 현실을 주제로 한 ‘5초 5분 500년’, 오래된 소나무를 통하여 역사와 인간의 발자국을 읽는 ‘나무 실록’과 함께 응모한 ‘눈사람과 돌멩이와 한낮’, 혼자가 시대의 모습이 된 오늘날의 자화상 같은 ‘고독에 물리지 않는 방법을 따라함’과 감각적인 포착이 돋보이는 ‘가베라에 대한 경배’와 ‘천사를 만나는 날은 오늘’이 선자의 손에 오래 남았다. 숙고 끝에 ‘눈사람과 돌멩이와 한낮’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나무 실록’이 완성도는 높았지만 신인답지 않은 사유와 안정된 진술이 오히려 긴장을 줄이고 있었다.

신춘문예란 새해 아침 가장 신선하고 새로운 언어가 등 푸른 용처럼 뛰어 오르는 것이 아닐까. 등용문(登龍門)이라는 말도 다시 떠올려 보게 된다. 한국 시단의 강한 수압(水壓)을 잘 견디어 부디 좋은 시인이 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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