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휠체어를 밀어주면서 한 바퀴 즐거운 나의 집, 두 바퀴 세 바퀴 현(絃)을 타 봅니다 눈감고 오물오물 따라하는 어르신 핑 돌아 떨어지는 눈물 한낮의 요양원 창밖으로 찔끔 찍어 냅니다 사람들은 먼 나무위에 앉아 졸고 가을 강은 나를 자꾸 떠밀고 갑니다 알 없는 안경너머로 두 다리 유니폼의 건장한 날이 있습니다 서슬 퍼런 기백이 있습니다 백지로 두고 떠나자고 말한 적 있답니다 구절초 강아지풀 억새 어우러진 둔덕 제 모습에 반해 석양을 품은
비록 비위관(脾胃管)에 연명하지만 포르르 동박새 동백나무에 오르고 옛 기억 하나둘 돌아옵니다 참 맑은 하늘이 도리질 치다가 풀썩 잠이 들라 합니다 퐁당 물구나무를 서거나 물비늘을 따라 멀리멀리 헤엄쳐가기도 하는
가을 강은 심하게 몸살을 앓는 중입니다
소실점 잘방잘방 아스라이 붉은
[당선소감] "그늘진 곳 들여다보며 따뜻한 시 쓰겠다"
멀리서 오신 이름, 보름달보다 크고 둥근 뽀얀 박으로 덩그렇게 오신, 아무리 많은 보석이 쏟아진대도 저는 슬근슬근 톱질을 아낄 거예요.
아버지가 말씀하셨죠, 초록초록 옛날 옛날에 말들이 뛰놀던 곳이라서 마리뜰이라고,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떠나 살고 마리뜰을 그리워합니다.
까만 말고 하얀 나비고무신을 조르던 여름. 아버지 지게 위에 다소곳 따라오던 까만 머루와 어머니의 정갈하게 널린 하얀 빨랫줄, 오동나무에 걸린 하얀 눈 냄새, 참새 떼 날아오르던 닭장… 아버지는 눈 가래로 나는 싸리비로 눈을 치웠죠, 쓸다보면 어느새 다시 와서 살포시 앉던 녀석들 늦깎이 공부를 합니다. 한 번도 펴보지 못한 교과서의 잉크냄새가 미안해 휴학을 결심한 적 있지요. 감히 말하라면 저의 시는 오롯이 고향으로부터 옵니다.
홍유릉 둘레 길을 걷다가 당선 소식을 받았습니다. 방방 뛰다가, 뛰다가 날다가, 이렇게 덜컥, 오시다니요. 조용히 설레다가 처절하게 허기지다가 그러기를 10여 년, 많이 기쁩니다. 내일이 동지입니다. 일부러 느긋하게 하얀 밤을 샙니다. 동글동글 새알심을 만들며 빕니다. 제 곁에 있는 모든 이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버팀목 경진 현진 성후 고맙고 사랑해, 동생들아, 조카들아, 이제라도 고봉밥을 차려보자. 도향스님! 존경합니다. 불 켜놓고 자면 해롭다고 새벽마다 불꺼주고 가는 그 정성, 알지요.
사유의 힘, 치열하게 들여다보라, 운율 속으로 우렁우렁 명 강의 이지엽 교수님 고맙습니다. 김동찬 교수님, 시와 길 선생님들, 회장님 덕분입니다. 인사를 빠뜨려서 늘 죄송한 분이 계십니다. 꼭 뵈러 갈게요. 이런 큰 기쁨의 자리 마련해주신 광남일보와 관계되시는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부족한 제 시(詩)를 선해주신 심사위원님께 큰절 올립니다.
이 순간도 양로원에서, 요양원에서 고독으로 뒤척이고 계실 어르신들의 안녕을 빌어봅니다. 얼굴도 모르는 시아버님, 늘 다독여주시던 시어머님, 그리고 저희 7남매 곁을 일찍 떠나가신 친정 부모님께 이 영광된 상(賞)을 바칩니다. 춥고 어둡고 그늘진 곳을 들여다보며 따뜻한 시를 오래도록 열심히 쓰겠습니다.
차곡차곡, 다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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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균일한 울림…따스하고 섬세한 서정 기대"
밤을 새워 영혼의 즙을 짠 문청들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시를 쓰면 굶어 죽는다’는 말을 듣지 않고 시를 쓴 이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엔 끊임없이 시를 쓰는 이들이 태어나고 그들의 시에서 영혼의 위로를 받는 이들도 있습니다. 삶과 시. 지극히 이질적인 두 존재의 병치야말로 현생 인류를 설명하는 가장 따스하고 지적인 방식 아닐런지요.
‘점자책’ 외 4편, ‘트라이앵글’ 외 4편, ‘내 안의 붙박이장’ 외 4편, ‘귓바퀴 꽃 하얀 가을 강’ 외 4편의 작품을 읽는 동안 마음 안이 따뜻해졌습니다. 현실과 유리되지 않았고 난해시의 범람에서도 거리를 두고 있었지요. ‘시가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해야하지?’하는 의문에 대한 답이라도 하듯 삶을 붙들고 있는 섬세한 현의 긴장이 느껴졌지요.
‘점자책’의 주인은 ‘손으로 세상을 읽을 수 있는 이들의 꿈을 새들이 부리 끝으로 톡톡톡 문 열어 달라’ ‘혹등고래가 허공을 유영하듯 지느러미를 펄럭인다’고 묘사했습니다. 세계를 인식하는 차이를 결핍감이 아닌 자신만의 이해로 받아들였지요. ‘트라이앵글’은 작은 타악기를 통해 인간의 의미에 다가가는 인식의 바다가 있었지요 ‘인간은 사랑을 이해하는 데 일생을 바친다’와 같은 범상한 인식이 트라이앵글의 진동을 통해 다가오는 순간 시의 본질이 은유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내 안의 붙박이장’은 함께 응모한 ‘별주부전이 생각날 때 쯤’과 함께 우리 시의 고질적인 난해성을 극복한 좋은 예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낡은 가구와 고전을 통해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같은 인간의 본성을 쉬운 언어로 표현한 미덕이 있었습니다. ‘귓바퀴 꽃 하얀 가을 강’을 읽어가는 동안 제목이 주는 일시적인 번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심성이 맑고 착한 시였지요. 휠체어를 밀며 휠체어 안의 어르신에게 조용조용 가을 강을 얘기해 주는 모습이 따스했습니다. 쉬운 언어가 갖는 촉촉한 질감이 강 건너 무지개처럼 펼쳐지는 신비한 느낌이 있었지요, ‘내 안의 붙박이장’과 ‘귓바퀴 꽃 하얀 가을 강’ 모두 당선작이 될 시의 품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귓바퀴 꽃 하얀 가을 강’을 당선작으로 정한 이유는 함께 응모한 ‘숙부’, ‘내가 꽃을 들여다보는 동안’, ‘그 봄 언저리 호박벌이 맨땅에서 구를 때’와 같은 시편들이 지닌 균일한 울림 때문이었습니다.
따스하고 섬세한 서정의 물결이 세계를 향한 큰 울림이 될 수 있음을 당당히 보여주는, 멋진 시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새가 새를 잡아먹는 건 이상하다. 완벽한 새장을 만들기 위하여 가시밭에 두 손을 넣어두고 돌아왔다. 그 두 손은 그림자놀이를 통해 새를 밖으로 내보냈다. 그럼에도 기린이 새를 입에 물고 불타는 머리를 흔드는 걸 보면 이상하다. 나무에 열리는 아가미는 싫어하면서 하루에 새 하나씩 꼬박꼬박 먹는 건 이상하다.
몸을 벗고 남겨진 자신을 봐.
복도 같이 긴 목에서 빠져 나온
새
새를 먹는 게 아니었구나. 기린은, 몸집에서 그냥 목이 길뿐이었다. 그래도 입에 새를 넣고 빼는 것은 이상하다. 새가 거기에 거주하는 것도 이상하다. 기린들은 둥글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뭉쳐 있구나. 자기들끼리 새들을 주고받으면서…. 기린은 왜 목이 길지. 새들은 기린을 빠져나가면서 어떤 그림자를 버리고 가지. 기린은 소리 내지 않고 새를 보여준다. 새가 물고 온 아가미는 받아준다. 기린 속의 웅덩이가 너무 깊어서 목이 긴 걸까. 있지.
나, 사실 네가 쟤를 잡아먹는 걸 봤어.
유독 목이 긴 새였잖아. 걔는 한 번도 나온 적 없었어. 거기서 죽으면 누가 묻어줘? 가끔 새가 새를 물고 기린 밖으로 나가는 걸 보았어. 어쨌든 걔는 고독사는 아니길 바라지만. 기린 속의 새들은 둥지를 뒤집어 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린다는데, 속이 뒤집어 지는 느낌은 어떤건지. 나는 몰라. 나는 목이 짧고 기린은 아닌데,
가끔,
가끔 말이야.
씹어 먹고 싶지 않니, 새들 말이야. 입가에 머무르면 달콤한 금속성의 눈 맛이 나잖아. 입안 한가득 새들을 내보내지 않고 와득 씹고 싶을 때. 있지 않니. 웅덩이가 말라가도 아가미들은 나무에서 계속 열릴 거고. 묶인 핏줄을 하나 하나 풀다보면, 새들의 둥지는 뭐로 만들까.
문 열어.
금속성의 눈이 내리잖아.
세상은 자꾸 굳은 물감 같잖아.
새알이 든 둥지를
머리 위에 올리면
액체의 금속이 흘러
자,
이제 기린이라 불러라.
[당선소감]
언젠가, 내 이름을 아무리 발음해도 시인 이름 같지 않았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지금
다시 내 이름을 발음했지만, 여전히 시인 같은 이름은 아닌 것 같다.
이름을 완성시킨다는 것은 세상에 없겠지만 아직도, 시인 같지는 않고, 여전히, 앞으로도 시인 같지 않을 것이다. 호명되었지만, 어색하기 그지없다. 불완전한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서, 무엇으로 완성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늘 속죄하며 살 것이다. 내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늘 속죄하며 살아갈 것이다. 살다보니 나는 많은 이들을 괴롭혔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다 생각한다.
감사한 성함을 감히 올린다.
나의 첫 시, 그리고 나의 모든 시를 함께, 사는 것을 알려주신 조하연 선생님. 늘 잘못만 저지르는 저를, 괜찮다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산 선생님. 제 세계를 확장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언 선생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시의 정교함을 알려주신 이영주 선생님. 감사합니다. 절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김근 선생님, 6년 동안 수업 들으면서,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함께 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여기에 제 이름은 없을 겁니다. 같이 했던 한겨레교육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동인 쓸림 분들, 한 분 한 분, 이름을 부르지 않겠습니다. 다 자신의 이름을 단 시를 쓰는 분들이니까요. 5년 동안 저의 원장 노릇을 견뎌주어 감사합니다. 나의 울음을 함께 해주어 고맙습니다.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신, 홍재범 선생님, 김석 선생님, 용석원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김진기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늘 저의 시를 지지해주시고 봐주신 임지연 선생님과 제 시를 늘 응원해주신 신동흔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봉형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 나의 아픔을 함께 해주어 감사합니다. 상처만 줘서 미안합니다. 이제 다 갚으며 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드릴 분들이 더 많지만, 부득이하게 적지 못한 분들은 개인적으로 소감을 올리려 합니다. 서운해 하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러진 라디오 안테나도 안녕. 48병동도 안녕, 귓속의 앵무새도 안녕입니다. 더 이상 안녕하지 않던 날들도 안녕입니다. 다 안녕하면 좋겠고 그래서 안녕이라 내가 먼저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 이름과도 안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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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영양교환 / 추일범
죽은 고양이를 세 번 봤다
로드킬은 빼고
골목에 밥그릇이 엎어져 있다
토한 우유처럼 고양이가 누워있다
빈 그릇에 사료를 붓는다
이런 것도 밥이라고
먹을 것 주변엔 개미가 꼬인다
개미를 죽이는 방법은 많다
한 마리씩 손가락으로 눌러 죽일 수도 있고
침을 뱉어 죽일 수도 있다
굴을 찾아 따뜻한 물을 부으면 더 많이 죽일 수 있다
잼이나 설탕으로 반죽한 붕산을 놓는 방법도 좋다
집으로 돌아간 개미들은 빵을 나누어 먹고
배가 부풀어 함께 죽는다고 한다
태우는 데 두 시간쯤 걸립니다
고양이는 죽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것도 몸이라고
가는 길이 멀면 내장을 제거하는 편이 좋다고 했다
상자에 넣고 리본을 묶었다
고양이를 안고 온 사람이 눈물이 안 난다고 했다
자기도 울 줄 아는데 가끔 이러는 거라고
아무 것도 바르지 않은 스콘 하나를 나눠 먹으며 기다렸다
저도 정말 슬프고 싶어요
빈 그릇에 사료를 붓는다
이런 것도 일이라고
고양이 세 마리가 죽는 것으론
끝나지 않는다
오래 일거리를 구하지 못한 겨울이었다
[당선소감]
메밀은 사고로 앞발 하나를 잃은 어린 고양이였습니다. 한여름 수유동의 4.19 민주묘지 광장 근처에서 구조됐습니다. 발견 당시 앞발은 뭉개져 있고 위생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런 메밀을 식구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보살폈습니다. ‘메밀’은 그 아이가 어느 정도 회복이 된 후 투표로 정한 이름입니다. 메밀은 같이 사는 여러 고양이 중 가장 많이 먹고 가장 열심히 뛰며 누구보다 건강하게 지냈습니다.
두 달 뒤, 메밀이 죽었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추석 연휴였습니다. 아주 잠깐 눈을 뗀 사이 사료 포대를 뜯고 놀다가 올 한 가닥이 풀려나왔고 그게 점점 길어져 메밀의 배에 감겼다고 합니다. 처음으로 죽은 고양이를 맨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
저는 메밀이 가장 건강했을 때와 죽었을 때만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화장하러 다녀온 날만을 썼습니다.
메밀을 떠올리면 미안한 일들을 꼭 먼저 말하고 싶어집니다.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신 분에게 죄송합니다. 좀 더 다정하고 기쁘게 받을 걸,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지금 함께 사는 고양이에게 미안합니다. 제가 좀 더 성실하고 부자였다면 보다 맛있고 건강한 걸 사주고 지치도록 놀아주고 좋은 병원에도 데려갈 수 있었을 텐데, 어제도 집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내뱉었던 험한 말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잊지 않고 매일 생각합니다. 모두 정말 미안했습니다.
나랑 지내는 게 늘 불안했던 숑. 당신이 화를 낼 때만 나는 겨우 자랐습니다. 오래 괴롭혀서 미안합니다. 아침 일찍 대문 앞을 청소하는 풍경을 남겨주어서 고맙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만 전화하는 저를 매번 받아주시는 혜원 선생님, 영광 선생님, 목형에게도 감사합니다. 배운 건 다 잊었고 어느 한구석을 닮는 것도 실패했지만, 표정이나 목소리를 떠올리기만 해도 하루가 더 살아집니다.
그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집과 밥을 고를 수 있는 생활은 대부분 고개엔마을과 성북 친구들 덕에 얻은 것입니다. 특히 시늉만 하는 제 시를 진짜라고 계속 믿어준 미냉. 사실 저는 이걸 핑계로 자주 놀거나 잠을 잤습니다. 좀 더 집중하겠습니다.
그리고 아파도 무너지지 않는 이랑과 아플 줄 모르는 상만, 경청가 잉지, 반짝이는 상언니. <못배운것들>, 고주망태 소영. 당신들이 모두 나의 안전망입니다.
부모님에겐 아직 전하지 못했습니다.
잘못은 꼭 먼지 같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자꾸 쌓이니까,
21년 12월 24일 추일범 씁니다.
[심사평] '시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의응답 사이에서…
세계사의 아슬한 난간을 모든 인류가 함께 붙잡고 있는 상황이 과연 당대의 문학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상상보다 더 끔찍해진 현실이 섬세하고 정치한 질문을 던지는 중이다. 이제까지 그 질문들을 예민한 일부의 사람들만 수용했다면 이번에는 모든 인류가 그 질문을 이해하고 답변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투고작들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변 때문에 시의 행간은 길어지고 시적 경향은 어둡고 다양해졌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주목한 분은 유휘량의 「스케치 -기린의 생태계」와 추일범의 「영양교환」, 이선락의 「염색공장 아줌마 보세요」 등이다.
유휘량의 ‘기린’을 발견한 것은 좋은 일이다. 환상과 서정의 플랫폼에서 울림을 구축한 유휘량의 「스케치 ? 기린의 생태계」의 ‘기린’은 시적 화자의 그림자 놀이에서 탄생된 발명이다. 불빛에 제 몸을 맡기면 목이 길어지는 그림자/기린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목이 길어진다는 것은 불빛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간절하다는 갈망의 의태이기도 하다. 기린의 파트너로서 ‘새’라는 키워드 역시 그림자 놀이에서 추출된 두 손의 변주이다. 그 새는 그림자/기린의 돌기이면서 또한 외부로 향하는 메신저이기도 하면서 누군가 그림자에게 보낸 메신저이기도 하다. 내부에서 고독사로 향하는 새, 외부로 나가지 않으려는 새를 씹어먹으면서 기린/그림자의 외부는 딱딱한 눈이 내리거나 자꾸 굳은 물감의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 새알의 둥지에서는 액체의 금속이 흘러내리는 종말의 세계가 시작된다. 그러니 이제 나를 자아와 겨우 연결된 기린이라 부르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삶이 기린을 믿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까.
“죽은 고양이를 세 번 봤다 / 로드킬은 빼고”라는 맹렬한 도입부는 추일범의 「영양교환」이다. ‘이런 것도 밥’, ‘이런 것도 몸’, ‘이런 것도 일’을 행사하던 죽은 고양이 세 마리는 우리 생활의 공감각 부분이다. 어쩌면 과거, 현재, 미래를 실천하는 중이기도 할 터이다. 누군가 우리를 사육하고 있고, 더 끔찍한 것은 누군가 우리를 고양이처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고양이의 주검에 휘발성 냉소가 건너가는데, 다시 끔찍한 것은 그게 차라리 비애이기 때문이다. 고양이와 사람의 의무가 있다는, 단호하고 간결한 추일범의 고유성이 눈을 사로잡는 이유이다.
이선락의 「염색공장 아줌마 보세요」은 관찰의 측면에서 시의 전범을 드러낸 가편이다. 사물과 사람이 가진 밝음과 어둠, 슬픔과 기쁨이라는 ‘안팎’과 ‘좌우’를 어김없이 추스리면서 다시 사물과 사람에 대해 되돌아오게끔 한다. 게다가 리듬이 시를 잘 부추기고 있다. 시의 이야기라는 측면에 눈을 뜨게 된다면 이선락의 시적 영토가 어디까지 벋어나가게 될지 짐작할 수도 없다.
이은경의 「창, 세기」는 사물이 가지는 매혹에 헌신한다. 세계와 나를 연결하는 물질과 영혼으로서의 ‘창(窓)’을 넘나드는 충분한 존재들이 여기 있다. 때로 눈부시고 때로 끔찍한 것들, 그게 같은 인과율인 것을 소스라치게 깨닫는 지점이 돋보인다.
최정민의 「껍질에 베인 손」, 김희숙의 「털실로 얼음 들기」에도 우리가 서성거리고 편애했다는 것을 덧붙인다.
시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의 응답 사이에서 우리는 유휘량의 「스케치 ? 기린의 생태계」를 당선작으로, 추일범의 「영양교환」을 가작으로 선택했다. 당선된 두 분에게 축하를, 여기까지 힘겹게 도착한 분들의 여정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물거품이 이는 곳에 가면 은빛 곡선을 가진 오빠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아기가 발을 핥고 있어서 젖 물릴 때가 됐다고 한다
물고기의 얼굴은 내 얼굴
우리는 형제다
물속에 잠긴 달이 운구릉을 헤적거리다 곱은다리에서 암흑 속으로 내려간다
이번에는 검은 그림자에 싸여 비틀거리는 아빠도 함께다
그러나 엄마는 달이다
힘이 세다.
[당선소감] 버티다 보면 다른 것들이 훨씬 더 견딜 만해질지 모른다
녀석은 주로 빛이 어스름할 때 또는 밤중에 그리고 가끔은 흐린 날에 물었다.
나는 가슴 위에 놓인 녀석의 무게를 견뎌내야 했다. 녀석을 위해 책상에 먹이를 놓아두었다. 녀석이 뭘 먹고 사는지, 뭘 좋아하는지를 알아내야 했으니까.
식성은 의외로 까다로웠다. 살아있는 내 피 외엔 건드리지 않았다. 배 밑에서 올라오는 묵직한 나의 공포감을 눈치 채고 그것이 녀석을 신나게 한 게 분명했다. 붕 뜬 채 내가 나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녀석은 인류 친척들과 오래 살아 그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배가 불러 만족하면 손가락에 침을 묻히더니 불멸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스스로를 가둔다며 책더미 속으로 기어들었다. 녀석은 음지에 숨어 지내야 했다. 가끔 마주치는 것조차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으니까.
아니 녀석에게 자극받으면 늘 반응하는 우리랑 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끈적이는 몸을 비벼대며 혼자 있는 것을 필사적으로 반겼다. 아무런 저항 없이 부드럽게 우리를 뚫어 내부를 천천히 비워내는 것이 녀석의 목표일지 모른다. 마지막까지 녀석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아두고 먹어두고 그래야 녀석에게 영원히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나도 녀석처럼 꼼짝 않고 책장 이음새에 기대서 잠을 자 두는 게 좋겠다. 끈질기게 버티다 보면 다른 것들이 훨씬 더 견딜 만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잠깐 내린 눈송이가 아이들처럼 골목길을 뛰어다닌다.
33년째 묵묵히 신춘문예를 운영하고 있는 한라일보사에 감사드린다. 내 시가 부족한 만큼 심사위원들에 대한 고마움이 크다. 음악적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진용진 선생님과 시의 집을 짓는 김기호 대목 그리고 '시와몽상' 시우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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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활달한 시적 상상력과 사물을 꿰뚫어 보는 개성적 시선 돋보여
2022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는 전국 각지에서 199명이 총 1142편의 작품을 응모하여 성황리에 마감되었다. 코로나로 힘든 시국 속에서도 문청들의 시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부문 199명의 응모자의 작품 중 예심을 거쳐, 본심에서는 최종 10편의 작품이 거론되었다.
올해 신춘문예 응모작들의 특징은 시의 길이가 길어지고 산문시 형태가 많았다는 점이다. 내용면에서도 현대인들의 소외와 불안, 서정성이 짙은 작품 등 다양하고 참신한 시적 경향을 선보였다.
본심에 오른 응모작 중에서 눈길을 끈 작품은 '엄마 달과 물고기', '거품공장 공장장 탁씨', '뜨겁고 흰 유언' 등 3편이었다. '거품공장 공장장 탁씨'의 경우, 아웃사이더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으며, '구름(담배 연기)'과 '죽음'이라는 이질적인 결합이 시의 비극성을 환기하는 미덕을 보이고 있다. 다만 시 세계가 확장되지 못한 채 관습적으로 마감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뜨겁고 흰 유언'은 '어미 개'의 죽음을 통해 어미 개가 지닌 모성의 세계와 인간 혹은 공권력이 지닌 폭력성을 포착한 작품이다. 안정적인 시적 구조와 상징을 통해 시의 진정성을 잘 보여주는 반면 상상력의 변용과 확장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논의 끝에 '엄마 달과 물고기'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엄마 달과 물고기' 외에 '눈, 어슴푸레한', '오래된 서랍' 등 응모작들도 편차 없이 고른 수준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활달한 시적 상상력과 사물을 꿰뚫어 보는 시각이 개성적이며, 시 창작에 몰입한 고투의 시간이 육화되어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탁월하다는 점이 돋보였다.
당선작인 '엄마 달과 물고기'는 모성의 부재로 인한 비극미와 더불어 '달'이라는 매개를 통해 역사인식은 물론 은유와 상징성까지 획득하고 있다. 이때의 '달'은 타자와의 조화로운 삶을 염원하고, 공동체의 의지를 추동하는 매개로 작동하고 있어 '엄마 달과 물고기'를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점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수상자에게는 거듭 축하를, 응모자분들께는 깊은 감사와 응원을 전한다.
눈을 감았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국가를 떠올리면서 습한 냄새를 맡으면서 안개 속으로 뛰어들면서 길거리의 새를 하나둘 세면서 걸어
눈이 마주쳐도 날아가지 않는 새 발로 바닥을 밟아도 도망가지 않는 새 까만 눈동자를 쳐다보다가 넘어졌어 까맣게 피멍이 들었다
하루가 지나서 생일 축하해 문자를 받고 시차가 생겼어 하루 늦게 생일을 맞이하면서 종말을 말하는 사람들과 선물 받은 오르골을 돌리면 모르는 노래가 나온다 노래는 언젠가 끝나겠지
전쟁과 전쟁이 끝나고 난 후 언제가 가장 끔찍할 거 같아
라는 노르웨이에 가고 싶대 거기에 자신을 묻을 거라고 했어 나는 Green Day의 Holiday를 들으면서 반역자! 반역자! 죽어버린 사람들의 피가 흘렀어 아 곧 종말이구나 그래서 라는 노르웨이에 가고 싶구나
두 개의 음 두 개의 박자 머리 위로 떨어지는 15층의 사람과 다리 밑으로 떨어지는 차 사람의 바싹 마른 피부와 솟구칠 힘도 없는 피 물 물 물 전쟁이 끝나지 않은 곳에 다 녹아버린 얼음의 흔적과 끈적한 더위가 있어
라는 붙잡아도 부서진다 길을 걷다가 쪼그려 앉아서 새를 가만히 쳐다봤어 새가 내 눈알을 파먹으려고 해도 가만히 있었어 계속 굴러가다가 영원히 남도록 그곳은 마치 도서관 같다
추워 라는 시드볼트로 들어가 문을 닫았어 이건 한 세기 전 살아있던 사람의 눈알이구나
계속 걸었어 뚝 뚝 흘리면서 걸었어 끊어진 다리 뒤집어진 배 치지 않는 파도 하늘에서 떨어진 새 검은 새 검은 눈동자 뽑힌 눈알 굴러가는 심장 굴러 떨어지는 법을 배운 나 깔깔 웃는다
[당선소감] "잠겨 있다고 믿었던 문을 어떻게든 열어보는 일"
어떻게 시작하고 끝맺어야 할지 모르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이렇게 써도 되는 거야? 스스로를 끝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곳에서 작은 틈새를 찾아내는 일. 그 사이를 기어코 비집고 들어가려고 애써보는 일. 잠겨 있다고 믿었던 문을 어떻게든 열어보는 일. 작은 시작이 모이고 모여 큰 우리가 된다고 믿습니다.
저의 시를 읽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언제나 언어 하나를 던져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모두들 제가 건네는 처음을 꼭꼭 씹어 주기를, 출렁이고 경계를 지우고 명명하고 다시 경계를 지우며 건넨 이야기의 다음과 그 다음을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
계속 시를 쓸 수 있게 지탱해준 모든 분들에게 고맙습니다. 모두의 이름을 말해야하나 고민했습니다만 이름 부르기에서 오는 감사함이 전해지기를 소망해봅니다. 언제나 함께 해준 희빈, 서정, 은비에게 함께 시를 써준 태의, 예진에게 함께 웃어주는 정음, 지현, 선영에게 여성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오랜 기간 전시를 준비한 여:2단 친구들에게 주말을 함께한 세원에게 기쁨을 함께 나누는 현지와 나의 가장 오랜 친구 희연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 모든 ‘함께’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김은희, 오인호에게 가장 큰 기쁨을 나눕니다. 저를 가르쳐주신 모든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쓸 수 있었습니다. 이 수상소감을 전할 수 있게 해주신 송재학 선생님, 김소연 선생님, 김상혁 선생님 감사합니다.
오래도록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와 당신과 우리의 이야기를. 문장 하나하나를 새기며. 내달리는 멋진 호랑을, 존재하는 여성인 라의 이야기를 들어 봐주세요. 계속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쓰겠습니다.
[심사평] "시류에 민감하면서도 그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개성을 보여주는 시"
본 심사평은 시의 어디어디가 부족하다는 식의 충고를 담고 있지 않다. 자기 작품에 관한 엄혹한 평가를 원하는 분도 있겠고, 적절한 지적은 실제로 창작과 퇴고에 도움이 된다. 다만 투고자에게 필요한 건 비판보다 응원이라고 믿는다. 계속 시를 써도 좋다, 이런 말을 누가 해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날이 내게도 있었다. 시가 나를 부른 적도 없고, 그래서 나 없이도 시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아 싫고 무서웠다. 이번 심사평을 통해 당신들 없이는 우리 시가 별로 안녕하지 못하리라는 예견과 확신을 전하고 싶다.
'랠리'의 건조한 문체는 대상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한때 마음을 쏟았던 대상이 ‘나’로부터 문득 동떨어져 존재하게 되었기에, 그렇게 어쩔 수 없거나 어쩌지 못하는 거리감이 건조한 문장 사이사이로 유출된다. '날개 뒤에는 근육이 있습니다' 외 4편은 한마디로 거침없다. 하지만 거침없는 중에도 시의 언어는 산만하지 않다. 넘칠 듯 넘치지 않게 제어되는 정념이 놀라웠다. '베네수엘라'는 강렬한 도입부와 여운 깊은 결구로 독자를 매혹한다. 이 작가는 자기 세계를 어느 정도 구축한 듯하다. 작품이 조금만 더 쌓이면 그가 좋은 시를 쓴다는 사실에 누가 토를 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치카의 숲'은 앞으로도 손해를 볼지 모른다. 신인상 심사는 단정한 정념보다는 떠들썩한 감수성에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등단이라는 문턱을 넘고 나면 이처럼 넉넉한 분량에 담긴 유려한 문장이 외면당하는 일은 없다. 지치지 않았으면 한다. '스로디카즈' 외 4편은 수많은 소년소녀가 등장하고, 위악적인 정황과 대화가 난무하며, 엄청나게 수다스럽다. 당연하게도 몇몇 기성 시인이 떠올랐으나 그럼에도 투고자의 연작은 여전히 새로웠다. 이 새롭고 좋은 작품을 다른 지면에서 곧 만나리라 본다.
'시드볼트' 외 4편은 비참한 죽음과 살아남음에 관한 이야기를 일관되게 풀어낸다. 아포칼립스를 예감하고 노르웨이 ‘시드볼트’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린 ‘라’와 종말에 남겨진(혹은 종말을 목도 중인) ‘나’는, 어느 쪽이 살아남았는지와 상관없이 비슷하게 비참할 뿐이다. 삶과 죽음을 공평하게 끔찍한 것으로 만드는 저 압도적 절망감은 때로 ‘산불’로, 때로는 ‘깨진 도자기’나 ‘폭풍우’로 형상화된다. 시인은 “간신히 우연으로 살아가는 사람들”('폭풍우')로서 분명히 어떤 현실의 환유일 비극적 사태를 생생히 기록한다. 비슷비슷한 분위기를 지닌 투고작이 많았음에도 오산하 씨의 활달한 리듬은 단연 돋보였다. 시류에 민감하면서도 그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개성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음을 알기에 더 믿음이 갔다. 심사위원단을 대신해 진심으로 축하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