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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문 / 권영유

 

 

개기월식이라는 뉴스에 옥상으로 가본다

붉은 달이 초콜릿 듬뿍 묻힌 초코파이 같다

한 입 베어 문 그때

 

평화동에 산 적 있다 절취선 같은 골목 따라가면 노인이 돋보기안경으로 거스름돈 꺼내주던 구멍가게가 나왔다 초코파이 한 상자 어김없이 한 봉지씩 우물거리는 밤 별들도 그 부스러기였다 네가 갈래? 내가 갈까? 자매끼리 서로 떠넘기다 마지못해 사러갔던 그 가게, 초코파이만큼은 늘 채워져 있었다 날마다 야금야금 갉아먹는 열다섯, 빈 봉지 털어보듯 용돈도 털려갔다 속을 채우고 담아도 늘 고팠던 그때의 정은 오직 초코파이

 

오리온자리를 찾아본다

그 자리 뜯어보면

열두 개의 촉촉한 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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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움튼 문학의 꿈, 더 크게 펼칠 것

 

어릴 적 노란 꽃만 보면 설렜던 적 있다. 그 느낌을 일기장에 적어가던 어느 날, 국어책에 나오는 시들을 필사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그때 나만의 시간 속에서 나름대로 끄적이며 막연한 문학의 꿈을 내 안에 심었다. 그러나 그 꿈은 심기만하고 잘 가꾸지를 못해서인지 아득한 세월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여름날, 김포의 아라뱃길을 걷다가 노란꽃들이 하나 둘 피어나더니 내 안으로 확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후로 내가 심었던 꿈을 다시 키우겠다고 김포문예대학을 덜컥 들어갔다. 처음은 뭔가가 될 것만 같아 신선했다. 그러나 배우면 배울수록 왜 이리 잡초 같은 생각이 엉키는지, 포기하려다가도 겨우내 꽁꽁 언 땅에 움트는 싹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되살아나곤 했다. 가끔 이것도 시냐고 핀잔을 주는 남편도 사실은 꿈이 시인이었다며 힘이 돼주었다. 우리 엄마는 언제쯤 등단할까 농담하듯 약 올리던 아들 딸도 그 누구보다 든든하고 다정한 후원자였다. 많은 추억을 공유한 영선 언니와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시꽃 향기로 다가온 문예대학 강사 시인들과, 세세하고 섬세하게 지도해주신 윤성택 시인께 감사드린다. 더 큰 꿈 틔워보라고 원대한 꿈을 달아준 심사위원님, 경남신문사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 더 나은 희망의 꽃을 펼쳐야겠다.

 

 

 

 

[심사평] 참된 삶의 의미 발견해내는 성찰적 인식 돋보여

 

한국 문학의 샛별이 될 신진 시인의 산실인 2023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의 응모작품 편수가 지난해보다 늘었다. 시인 지망생이 늘었다는 것은 상상력과 언어미학이 지닌 성찰적 인식을 수용해 삶의 가치를 북돋우려는 의식을 지닌 사람이 우리 사회 저변에 많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학적 열정을 담은 많은 작품을 만나는 일은 고무적인 일임이 분명하다.

 

전체 응모작에서 여덟 편의 작품을 가려낸 후 논의를 거쳐 ‘막판의 자세’, ‘창문 외전’, ‘퍼즐’, ‘레드문’ 등 네 편의 작품으로 축약해 숙고했다. ‘막판의 자세’는 삶의 문제를 바라보는 발상과 서사의 진행이 진지하면서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표현이 평이했고, 의식 깊숙한 곳에 은폐된 문제를 사회성과 결부시켜 의미 있게 밀고 나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창문 외전’은 비유를 통한 언어의 직조가 신선했고 시적 전개가 흥미를 불러일으켰으나, 후반부에서 긴장감이 풀려 있었고 마무리가 미진했다. 좀 더 치밀하게 사유를 갈무리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퍼즐’은 사고의 전개가 자연스럽고 감정을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주제의식을 잘 살리고 있다는 점이 돋보였다. 그러나 일부 구절에서 드러나고 있는 진부한 표현들이 한계로 지적됐다.

 

‘레드문’은 일상적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있다. 대상에 대한 자연스러운 응시가 밀도를 더하면서 마침내 삶의 깊숙한 곳에 숨겨진 비의를 끄집어내는 상상력은 이 시를 견인하는 힘이다. 아쉬운 점은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다지 눈에 뜨이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다소 거칠더라도 당대의 밑바닥에서 건져 올린 첨예한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논의와 숙고 끝에 심사위원들은 ‘레드문’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했다. 개기월식을 보면서 이를 숙련된 솜씨로 형상화해내는 자연스러운 시적 시선, 그리고 참된 삶의 의미를 발견해내는 성찰적 인식을 보여준 응모자의 시적 잠재력에 신뢰를 걸어보기로 했다. 더욱 정진해서 한국 문단의 큰 별이 되기를 고대한다.

 

- 심사위원 성선경·배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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