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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의 귀 / 장이소 

 

 

뜨거운 냄비의 귀를 잡다가 내 귀를 잡았다

 

순간이 순간에 닿는다

 

귀 하나 떨어진 양은냄비를 안고 골목을 지난다 삼삼오오, 얼룩이를 가리킨다 얼룩이는 번쩍번쩍 얼룩덜룩하다

 

고흐는 왼쪽 귀를 자르고 왼쪽으로 들었을까, 어떻게 오른쪽을 들었을까

 

당신은 떨어진 귀를 버리지 못한 사람 뚜껑을 마저 잃고 배가 된 사람

이마는 당신이 키우던 물고기 떨어진 귀는 물고기의 어디쯤일까

 

귀를 기울인다 귀는 기울기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자른다 어디나 그런 귀 하나쯤 있다 절반이 절반에 매달려 가운데를 안고 돌면 떨어진 한쪽을 위해 두 배속 태엽을 감는다 꼬리에 풀리는 물무늬 아가미로 쏟아지는 물살 삼킨 것들이 중심을 세운다

멱을 잡고 중심을 도는 것은 붙잡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것

 

밖이 안을 떠받는다

쓸모를 잡는 동안 바닥에는 차고 오르는 온도가 있었다

끓어 넘치던 냄비 뒤집어 보여주지 못한 뚜껑을

버리면 더 가까워서 가볍다

기억을 잃고 바닥을 태우던 사람이 있었다

 

붕대를 푼다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 은빛 물고기를 그린다

지느러미가 키를 잡는다

풍등이다

붙잡지 못한 것들이 손잡이를 흔든다 떨어진 귀가 어떻게 자신을 부르는지를

 

 

 

 

 

[당선소감] 참된 마음으로 오래 쓰겠다

 

그 냄비는 귀가 떨어지고도 오래도록 손잡이였다. 낡은 양은 냄비에 밥과 김치보시기를 담아 나르던 날들이 있었다. 돌아보니 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였는데, 내 발등을 다 가릴 정도로 크고 못생긴 냄비보다 더 버거웠던 건 골목을 지날 때마다 나를 원숭이처럼 구경하던 아이들이었다. 그게 너무 싫어서 하루 종일 엄마를 굶긴 적도 있었다. 사 먹는 밥은 늘 허기진다던 그런 엄마를 이해하기엔 그때 나는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이제 당신은 세상에 없고 그런 당신의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내게 남은 숙제 같았다. 세상의 모든 당신을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어린애처럼 살고 있다. 매일의 숙제를 챙기듯이….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행운이 내게도 왔다. 세상의 알곡 같은 시들과 시를 나누던 모든 분들을 떠올려 본다. 나를 둘러싼 매순간이 스승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시는 잘 모른다면서도 늘 이해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자신에게 덜 부끄럽도록 진정성을 가지고 오래 쓰는 시인이 되겠다. 온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우듯 감사한 분이 너무 많다.

 

단단한 첫걸음을 떼게 해주신 전다형 선생님, 길동무처럼 늘 응원해주시던 많은 분들, 문정완 선생님, 그리고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시고 마지막까지 용기를 북돋워 주신 신정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시를 선해주신 심사위원님과 지면을 허락해주신 경남신문사에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현대인의 소외와 고립감 잘 표현

 

올해 시 부문 투고된 1300여 편 중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임승환의 ‘계절이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김석범의 ‘허공의 크레바스’, 홍담휘의 ‘향기의 증거’, 김난의 ‘발화의 경계’, 장이소의 ‘냄비의 귀’ 등이다. 매우 작품성이 높고 사회의식도 있어 그 어느 것이라도 당선작이 될 만했다.

 

우선 ‘계절이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어요’는 삶의 무상함에 대해 매우 탐미적으로 잘 묘파해내고 있지만 그 삶의 무상함이 자칫 지나친 감상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허공의 크레바스’는 당대 사회현실의 문제의식을 매우 감각적 형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았으나 일부 구절들에서 너무 교훈적이고 관념적인 내용이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점이 한계로 언급되었다.

 

‘향기의 증거’는 ‘커피향’을 두고 매우 참신한 발상과 표현을 하고 있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으나 그 주제가 커피를 둘러싼 노동력 착취라는 경직된 내용으로 수렴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발화의 경계’는 일상 속의 자아가 갖는 허위의식에 대한 반성을 참신하게 잘 표현하고 있으나 너무 기교적이라는 점, 그리고 시제가 달라지는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냄비의 귀’는 현대인의 소외의식과 고립감을 ‘귀’라는 제재를 중심으로 심미적으로 잘 표현해내고 있고, 무엇보다 그것이 갖는 문제의식을 당대의 사회성과 결부지어 의미화하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았다. 이에 심사위원들은 장이소의 ‘냄비의 귀’를 당선작으로 뽑는 데 동의했다. 당선자는 더욱 정진해 한국 시단의 큰 별이 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성선경·김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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