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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과 돌멩이와 한낮 / 신춘희

 


눈사람 한쪽 눈이 삐뚤게 붙어 있다
돌멩이 하나 머금었다

지금 조금씩 녹고 있는데
눈두덩이가 시릴 만큼 너를 오래 붙잡고 싶어
미안하지만 나는 점점 온기를 갖고
안타깝지만 너는 점점 부피를 줄이고
한동안 우린 밀착된 결빙으로 중력을 버티지
눈송이들 모여 숨겨둔 방
이곳은 해의 꼬리가 닿지 않아 심장을 두기 좋지
두근대는 돌멩이가 감정이라면
겨울은 안전한 밀실이야
사람들은 그저 눈빛을 얹어주거나
손끝으로 훑어볼 뿐
녹아내려야 하는 운명엔 관심이 없지
내가 너를 지키는 방법은
구름을 불러 모으는 일
눈이 자꾸 짓물러지고 있어
눈 속에 갇힌 마음이 죄다 흘러내리고 있어
우리가 견뎌야 했던 것들을 생각해
처음 눈덩이 궁글렸을 때의 설렘 같은 거
아이들 모두 돌아간 뒤 입꼬리를 움직여본 거
별들이 싱싱해서 우리는 하나였던 거야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낮이야
돌멩이와 눈덩이가 분별되어야 하는 시간이야
마지막 냉기가 사라지면
너는 나를 놓아줄 테지
그때까지 나는 너의 공중이 될 거야
머리가 기울고 있어
몸에 금이 가고 있어
물의 장례가 시작되고 있어

툭, 돌멩이 하나 그렁그렁 쏟아져 내린다


 

 

 

[당선소감] 봄같은 소식…늦게 핀 꽃 늦게 질 것

뜻밖에 봄이 찾아왔다. 당선 소식을 듣고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겨울과 봄 사이, 차가운 얼음 속에 있던 노란 복수초가 내 가슴에서 활짝 꽃을 피웠다.

눈 녹은 물인지, 눈물인지 몸 밖으로 흘러내렸다.

시의 씨앗을 뿌려놓고 한참을 기다렸다. 얼마 전에 다녀온 설악산 공룡능선의 날카로운 봉우리들, 공룡의 등을 내려올 때도 시를 생각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기록할 힘을 길러준 열정이 내 안에도 있었다.

어느 날은 생의 에너지를 가득 채워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 시가 사라져 눈앞이 캄캄할 때도 있었다.

늘 허기가 졌다. 그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워준 마경덕 선생님, 윤성택 선생님, 하린 선생님, 박지웅 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시의 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님과 경상일보 관계자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문우들과 친구들 나를 믿어준 가족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

늦게 핀 꽃은 늦게 질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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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술의 완성 향한 치열성 확인 반가워

위험하고 슬픈 시대, 고립과 폐쇄의 시간을 밀치고 희망처럼 피어날 새로운 언어를 기다리며 예심을 통과한 응모작들을 깊이 읽었다. 언어에 대한 탐색과 예술의 완성을 향한 치열성을 확인할 수 있어 매우 반가웠다.

행과 연을 무시한 산문성의 경향, 여백의 문제에 고민해 본적이 없는 소통 불가의 작품은 줄었지만 외래어에 대한 무자각과 상상력 보다는 사소한 현실과 현상에 대한 묘사에 치우친 경향은 여전했다.

오늘날 지구를 위협하는 생태 문제로서 썩지 않는 플라스틱의 현실을 주제로 한 ‘5초 5분 500년’, 오래된 소나무를 통하여 역사와 인간의 발자국을 읽는 ‘나무 실록’과 함께 응모한 ‘눈사람과 돌멩이와 한낮’, 혼자가 시대의 모습이 된 오늘날의 자화상 같은 ‘고독에 물리지 않는 방법을 따라함’과 감각적인 포착이 돋보이는 ‘가베라에 대한 경배’와 ‘천사를 만나는 날은 오늘’이 선자의 손에 오래 남았다. 숙고 끝에 ‘눈사람과 돌멩이와 한낮’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나무 실록’이 완성도는 높았지만 신인답지 않은 사유와 안정된 진술이 오히려 긴장을 줄이고 있었다.

신춘문예란 새해 아침 가장 신선하고 새로운 언어가 등 푸른 용처럼 뛰어 오르는 것이 아닐까. 등용문(登龍門)이라는 말도 다시 떠올려 보게 된다. 한국 시단의 강한 수압(水壓)을 잘 견디어 부디 좋은 시인이 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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