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 변영현
파란 동그라미를 그려요
당신은 호수인 줄 알고 뛰어들어요
팔랑팔랑 헤엄쳐요
바다처럼 넓고 깊어요 파란 동그라미
속의 당신이 파랗게 물들고
나를 찾아봐, 하는 목소리에
물이 뚝뚝 떨어져요
안 보여요 안 보인다니까요
여기 있어, 하는 목소리에
숨이 헉헉 차오르네요
파란 동그라미 위에 파란색을 더해요
내게는 다른 색이 없거든요
조금 다른 파란색이면 당신을 찾을지도 몰라요
몰랐어요 더 깊어질 뿐이라는 걸
바닥을 찾지 못할 거예요
하늘을 찾지 못할 거예요
파란 지구별에서 나갈 수 없듯
당신은 거기서 허우적거리겠죠
파란 동그라미 파란 동그라미
블루칩 같기도 하고 버튼 같기도 해요
속는 셈 치고 한번 눌러 볼까요?
잭팟이 터질까요, 당신이 튀어 오를까요?
하나, 둘, 셋!
아, 물감이 덜 말랐네요
파랗게 질린 손바닥 좀 보세요
당신이 묻어 있는 건 아니겠지요
파란 동그라미를 그려요
파랑이 파르르 떨고 있어요
[당선소감] 나홀로 중얼거림이 시가 되다
‘중얼거리는 사람이다’ 라고 나를 불러본다. 어릴 때 간혹 아버지가 문을 벌컥 열고 “도대체 누구랑 얘기하는 거니?”라며 방을 둘러보셨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방에서도 길에서도 중얼거렸다. 그것이 이상하게 보인다는 걸 안 이후 소리 내지 않고 중얼거린다. 이상의 시 ‘꽃나무’에는 한 꽃나무를 위해 그러는 것처럼 달아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 사람처럼 길거리에서 싸우는 사람을 위해, 죽은 사람을 위해, 길고양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위해 중얼거린다. 아무 쓸모없는 것, 그것이 나를 숨 쉬게 한다. 그 중얼거림이 백지를 채우고, 채워진 백지가 시가 되기까지 몇 년이 지났다.
오늘 당선 전화가 왔다. 기분이 이상하다. 누군가 내 목소리를 똑똑히 들은 것이다. 혼자인 줄 알고 중얼거리던 그 방에 이제 누가 앉아 있다.
중얼거림이 시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장하빈 선생님, 변희수 선생님, 이솔희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친구 진희와 다락헌 시인학교, 낭구동인 문우들께도 고마운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내 목소리에 응답해 주신 심사위원께도 감사드린다. 내 마음의 시인, 이제는 여기 없는 작은언니에게 이 상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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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말놀이의 능수능란함 뚜렷해
신춘문예 작품들을 심사하면서, 응모작들이 대부분 심리적으로 너무 위축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 원인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가지는 비대면의 우울과 바이러스에 의한 공포의 고통스러운 그늘일지도 모른다. 또는 점점 더 팍팍하게 조여드는 삶과 환경의 압박감 때문일까? 심한 자기류의 언어 방기나 과도한 언어굴절이라는 한동안 유행해온 젊은 세대들의 언어 구사 특징이 많이 가신 가운데, 과거와는 다른 삶의 그늘들이 젊은 문학도들을 사로잡고 있는 게 너무 무거운 듯 여겨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20명의 100편 가량. 그 중 마지막까지 남아서 겨뤘던 작품들은 ‘손’ ‘본색’ ‘부초들의 잠’ ‘중심, 중심들’ ‘블루’ 다섯 편. 모두 나름의 독특한 빛깔들을 띠면서 개성적인 언어구사를 능숙한 솜씨로 보여, 그 중 한 편을 뽑는 게 무척 어려웠다. 그러나 어차피 한 사람 만의 손을 들어줘야 할 수 밖에 없는 것. 마지막으로 집어든 게 ‘블루’였다.
‘블루’는 푸른색의 인식을 통해 사랑을 확인한다. 언어의 반복과 리듬, 그리고 유머감각을 통해 사랑과 자기 인식의 우울과 명랑을 경쾌한 어조로 꿰어나가는 말놀이의 능수능란함이 돋보인다. 구성도 무난하고 주제를 끌고나가는 언어구사의 힘도 예사롭지 않다. 무거운 주제들이 많은 응모작들 가운데서 이 작품이 의외의 경쾌함으로 시선을 끌었다고 여겨진다.
새롭게 출발하는 수상자의 경쾌한 발걸음에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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