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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정일근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흔들리는 파도 따라 함께 흔들리며

뜨거운 햇살 뜨거운 바다 위에서

떠나간 고래를 다시 기다리는 일은

그 긴 골목길 마지막 외등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너를 기다렸던 일

 

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

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

팽팽한 수평선을 걸어 내게로 돌아올

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고래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에서부터 푸른 어둠이 내리고

떠나온 점등인의 별로 돌아가며

이제 떠나간 것은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지금 고래가 배의 꼬리를 따라올지라도

네가 울며 내 이름을 부르며 따라올지라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사람의 서러운 사랑 바다로 가

한 마리 고래가 되었기에

고래는 기다리는 사람의 사랑이 아니라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기에

 

 

 

 

바다가 보이는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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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인연, 인드라망

 

일어섰다 눕다를 되풀이하는 두어 달 시름시름한 병중에서 지훈문학상 수상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 땅의 시인으로 존경하는 분의 이름으로 주는 문학상을 받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영광이었으나 그 영광이 저에게는 앞으로 지훈문학상의 이름값을 못하는 시인이 되면 어쩌나 싶은 정신적 부담이 컸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최근 쉽게 회복되지 않는 병 하나와 친구하며 지내며 저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지난해 여름을 세계 최빈국가의 하나인 동티모르공화국에서 보냈습니다. 해발 15백 미터가 넘는 동티모르 고산지대에서 커피농사를 짓는 그곳 사람들과 여름을 보내며 그들의 커피수확도 돕고 한 NGO의 공정무역(fair trade)을 취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히말라야를 비롯하여 세계의 오지를 많이 다녔지만 적도를 넘어가는 열대지역은 처음이었습니다. 동티모르를 떠나 귀국하기 전날 우리가 학질이라고 부르는 말라리아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38~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에 시달리며 인도네시아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오랜 비행시간 동안 저는 또 한 번의 죽음의 경계를 아주 가깝게 경험했습니다.

 

귀국하여 말라리아는 치료되었으나 그러나 고열이 남긴 길고 긴 후유증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 사이 응급실에 여러 번 실려 가기도 하고 몇 번의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했지만 한번 고갈된 물통의 물이 다시 채워지지는 않았습니다.

 

제 치료를 맡은 의사는 말라리아 후유증과 싸우는 데 3년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저는 전 세계적으로 1년에 2백만 명이 말라리아로 죽어 간다는 사실도 알았으며 말라리아가 우리나라에서도 발병하고 있으며, 불운했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위험한 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돌아보면 마흔 이후 저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2번의 뇌수술과 히말라야 고산등반으로 인한 고산병 등으로 쓰러질 때마다 시가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시가 있었기에 제 삶에서 가장 혹독한 시기로 기록될 불혹에서 지천명까지의 힘든 10년을 이를 악물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등단 25년을 맞이해 나름대로 뜻깊은 10번째의 시집을 펴내고도 출판사에서 보내온 새 시집들을 펼쳐 보지도 못한 채 육신의 고통 속에서 불완전한 미래에서 오는 공포와 싸워야 했습니다. 시를 쓸 수도 읽을 수도 없는 속수무책의 시간들 속에서 삶이 난파선 같았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수상통보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두려웠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시가 다시 저에게 내미는 운명의 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가 다시 한 번 저의 등짝을 짝소리 나게 치며 다시 일어서라는 뜨거운 경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지훈 선생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1968년 지훈 선생님이 이승을 떠나셨을 때 저는 장래 희망이 시인인 10살짜리 어린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중학교 국어시간에 청록파를 배우며 지훈 선생님의 시를 읽게 되었고 제가 중학교 국어교사였을 때 역시 중학생들에게 청록파를 가르치며 지훈 선생님의 시를 읽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지훈 선생님과의 인연이라면 인연의 전부인데 그 이슬방울보다 작은 인연의 힘이 저에게 다시 용기와 힘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불가에 연기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인드라망이란 말이 있습니다. ‘인드라’(Indra)는 인도의 수많은 신 가운데 하나로 제석천(帝釋天)이라고도 합니다. 제석천의 궁전에는 무수한 구슬로 만들어진 그물, 즉 인드라망이 있는데 그 그물은 한없이 넓고, 그물의 이음새마다 있는 구슬은 서로를 비추고 또 비추어 주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불가에서 그 구슬들은 서로를 비출 뿐만 아니라 그물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혼자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비추고 비치는 밀접한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이 인드라망입니다.

 

이 세상 모든 법이 하나하나 별개의 구슬같이 아름다운 소질을 갖고 있으면서 그 개체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결코 그 하나는 다른 것들과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오늘 저는 지훈 선생님의 맑고 향기로운 정신의 구슬에 제 얼굴을 비추며 지훈 선생님에서부터 저에게까지 이어지는 시의 인드라망에 한없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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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저는 1992년부터 울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푸른 동해를 가진 울산은 예로부터 고래바다’[鯨海]였습니다. 선사시대 바위그림인 국보 285호인 반구대 암각화58마리의 고래그림이 새겨져 있고, 고래가 회유하는 바다는 천연기념물 126호인 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고래와 저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습니다. 제가 울산의 시인으로 살면서부터 제 이름 뒤에는 고래보호운동가라는 이름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어느 시인은 저에게 고래 파수꾼이라고도 불러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생명운동가가 아니라 고래를 기다리는 시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고래를 사랑하였기에 자주 바다로 나가 고래를 관찰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망망대해 바다에서 고래를 만나기도 했고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10년이 넘게 고래를 관찰하면서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동안은 참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다리는 대상이 사랑하는 것일 때 더없이 행복하였습니다. 그것이 낡은 유행가 가사처럼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일지라도 기다리는 그 순간만은 꿈결처럼 감미로운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일이 기다리는 일의 연속일지 모릅니다. 어린 시절에는 설빔을 입는 설날을 기다렸고, 첫사랑을 하면서 그 사람만을 기다렸고, 군사독재시절 청춘의 어둠이 춥고 길수록 자유의 새벽을 기다렸습니다.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블라디미르에스트라공처럼 고도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에겐 약속만이 있을 뿐 기다리는 것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약속과 기다리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약속은 지켜야 하는 차가운 금속성이지만 기다린다는 것은 언제나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하는 뜨거운 동물성입니다.

 

소풍, 생일, 방학, 서울 가신 아버지, 친구의 답장, 첫사랑, 첫 키스, 등단, 첫 시집, 제가 온몸으로 기다렸던 그 많은 것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기다리는 것이 그리울 때 저는 울산바다로 고래를 만나러 갔습니다. 아닙니다. 고래는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기에 고래를 기다리기 위해 바다로 나갔습니다. 우리 모두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귀신고래는 돌아오지 않은 지 40년이 넘었지만 그래도 밍크고래와 돌고래 무리와 상괭이 같은 것은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면 고도처럼 불쑥, 불쑥불쑥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고래를 기다리는 일은 아프고 고된 기다림이었습니다. 고래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동물이지만 망망대해 위에서는 하나의 점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 점을 기다리는 일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수백 장의 종이 위에 연필로 선을 긋듯 바다 위를 오가며 고래를 기다리는 일, 그건 저를 떠나간 첫사랑의 여자를 기다리는 일과 같았습니다. 그 여자네 집으로 가는 막다른 골목길 외등 아래에 서서 혹시 저를 찾아오는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는 일과 같았습니다.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시는 기다리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고 다짐을 하지만 또 다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저를 보는 일이 고래를 기다리는 일이었습니다. 어느새 고래를 기다리는 일이 저의 시가 되었지만 그 기다림이 저는 푸른 바다 위로 부는 맑은 해풍처럼 좋았습니다.

 

저는 시를 쓰는 일도 기다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가 기다림이 아니라면 수많은 시인들이 어떻게 평생을 시를 쓰는 시인으로 살다갔겠습니까? 또한 그보다 더 많은 시인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21세기로부터 용도폐기 중인 시를 쓰며 살아가겠습니까?

 

저는 다시 기다릴 것입니다. 앞으로 10, 20, 기다리다 제 생이 모래 한 줌으로 사라진다 해도 기다리는 고통 속의 즐거움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감히 약속드립니다.

 

부족한 저를 수상자로 선정해 주신 존경하는 심사위원 분들과 지훈상 운영위원회, 나남출판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번 수상으로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지훈문학상을 받는 첫 시인인 된 것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언제나 시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소금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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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지훈문학상 심사보고

 

이번에 지훈문학상 수상 후보로 최종 거론된 시인들은 모두 20년 시력(詩歷)을 채운 우리 시단의 중견들이었고, 작품적 완결성과 미적 좌표의 품격으로 보아도 그 어느 해보다 미더운 성취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하고 깊이 있는 미적 성취와 가능성으로 이분들의 시집은 한결같이 지훈문학상의 제고된 위상을 보여 주기에 족한 것이었다. 후보들은 김경미의 고통을 달래는 순서, 이진명의 세워진 사람, 정끝별의 와락, 정일근의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였는데 이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정일근 시편의 문학성과 한결같은 지속성을 높이 평가하여 제9회 지훈문학상 수상작으로 그의 시집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를 선정하였다. 김경미 시편이 보여 주는 부재와 사랑의 견고한 결속, 이진명 시편의 투명하고도 아름다운 원음’(原音), 정끝별 시편의 자유롭고 탄력 있는 꿈과 사랑의 목소리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으나, 심사위원들은 오랜 토론 끝에 정일근 시편이 보여 주는 오랜 지속과 심화의 세계를 최종 선택하게 되었다. 더불어 심사위원들은 안도현 시인이 말한 죽음 직전의, 아픔의 우물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와서써낸 깊은 세계에 의미 있는 격려가 얹혀야 한다고 의견을 보탰다.

 

정일근 시인은 그의 열 번째 시집이 되는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까지 지속적이고 균질적인 시 창작을 해 왔다. 이는 등단 25년을 맞은 이 중견 시인의 지속적 심화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 주기에 족하다고 할 수 있다.

 

시편 가득 넘쳐나는 바다고래이미지를 통해, 시인은 자신이 가 닿고자 하는 상상의 세계, 곧 깊은 상처를 넘어서는 그리움사랑의 풍경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단시(短詩) 미학에도 남다른 공을 들였고, 삶의 여러 존재론에 대해서도 깊고 다양한 투시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너를 기다렸던 일/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팽팽한 수평선 걸어 내게로 돌아올/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면서, ‘열망기다림의 자세가 삶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 준 그의 시세계가, 아름다운 마을 은현리’(銀現里)에서 더욱 심원하게 완성되어 가길 기대해 본다.

 

이제 정일근 시편은 그동안 지훈문학상이 배출한 수상자들의 성취에 더해져, 이 상의 위상을 더욱 높여 줄 것이라 생각한다. 거듭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새삼 지훈 선생님의 높은 시세계와 정결하고도 오롯한 문학 정신을 되새기면서, 다시 한번 지훈문학상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해 마지않는다.

 

심사위원 유종호 유성호 최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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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키스1 / 신대철

 

 

물살 그림자

 

투명한 물살 밑에 일렁이는

희미한 문살무늬 그림자

 

창호에 무슨 소리 어리듯 나는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머리끝에 마른번개

스친 뒤 물은 금시 정강이까지 차올랐다. 콧수염 달린 사내가 달려와 소매를 잡아 당겼다. 맨발의 해맑은 얼굴, 나는 망설이다가 그가 미는 대로 밀려갔다. 모래밭이

끝나는 산비탈 중턱 자작나무 사이에 노란 텐트가 열려 있었다. 젊은 여자가 밖을 내다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물도 그림자도 깊어서? 나도 환하게 웃었다. 모두 바이칼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나도 두 사람 사이에서 막 태어났다고 하니 소리 내어 웃었다.

 

바이칼은 호수 이름이 아니라

피와 영혼의 이름이죠?

 

사내는 내말을 되받아 바이칼은 영혼의 눈빛이라고 신파조로 중얼거렸다. 우리 앉은 자리는 어느새 가설무대가 되었다. 근 내 코에 코 비비고 볼에 볼 비비고 느닷없이 온몸에 서릿발 첫 키스를 날렸다. 아무도 없었지만 물과 바람과 햇빛 속에서 비명소리가 울려왔다. 황폐한 내 몸속에 누가 또 있었던가? 바이칼 소년이? 온몸에 문살무늬 그림자 어른거리고 하늘엔 흰 구름 한 점 기웃거리다 흘러간다.

 

아이두세 요하르 아리두세 헤이부룰라

 

검붉은 노을이 꺼지는 저녁, 우리는 장작개비를 들고 구릉에 올랐다. 하늘을 향해 장작불을 피워 불길을 올렸다. 샤먼이 북을 치자 가슴에 묻힌 영혼들이 불려나온다. 빙 둘러서서 춤추며 노래한다. 아이두세 요하르 아이두세 헤이루불라, 맑혀진 영혼들 불길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몸 타고 태초의 어둠이 내려온다.

 

피부도 족속도 모르지만

우리의 푸른 불기운은

손에서 손으로 넘어간다.

빙글빙글 도는 춤 속에

바이칼 뜨거운 피가 흐른다.

 

 

 

 

바이칼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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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아버님과 스크랩북

 

엊그제도 읍내 장터에서 국밥을 드시고 다방에서 친구분들을 만나시던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 중에 수상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 시사에서 올곧은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추앙받는 조지훈 시인의 문학상을 받게 되어 기쁩니다. 그러나 제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머리를 들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제 창작이 지지부진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제 시는 아직도 서투르고 풋내가 납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아버님은 기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아버님이 원하시던 길로 접어들어 계속 시를 쓰고 있고 이렇게 격려도 받기 때문입니다. 문득 아버님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아버님은 유품으로 시 스크랩북 세 권과 산문 스크랩북 한 권을 남기셨는데, 그 유품을 보는 순간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아버님과의 갈등이 그 유품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님은 일정한 직업도 없이 동네 사랑방을 떠도시며 떠도는 소문과 함께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신문이나 잡지를 보따리에 넣고 오셔서 밤새 뭔가를 오리시고 풀로 정성스레 붙이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들여다보면 시, 시조, 수필, 평론 등 문예 작품들이었습니다. 가족들은 땔감을 준비해 놓고 양식을 기다리는데 아버님은 철 지난 소문과 문예물들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스크랩북을 열어 보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문학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감정에 매여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문학이 무슨 열병같이 느껴졌습니다. 문학이 먹고 사는 일보다 중요하다니! 저는 그런 아버님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몇 번 망설이다가 아버님이 나가신 틈을 타 마침내 그 스크랩북을 불쏘시개로 썼습니다. 며칠 만에 돌아오신 아버님은 습관처럼 구깃구깃한 신문 구석에 붙어 있는 일요시단과 오래된 잡지의 독자 투고시들을 오려 놓으시고 스크랩북을 찾으셨습니다. 그간 끼니 때문에 나무하러 가거나 팔러 가는 등 자주 집을 비운 일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님은 그 스크랩북을 도둑맞은 줄 아셨는지 뜻밖에도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그 사건 이후 아버님은 문학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꽃모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근처에서 얻어온 꽃들은 분꽃, 겹채송화, 장다리 등 낯익은 꽃들이었지만 타지에서 가져온 꽃들은 대부분 처음 보는 꽃들이었습니다. 아버님은 멀리서 가져온 작품들을 스크랩북에 반듯하게 붙이듯이 네모난 화단에 몽울진 꽃들을 붙이셨습니다. 비가 온 뒤에는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막 피어난 꽃들을 물러나서 보시기도 하고 바싹 다가서서, 혹은 쪼그리고 앉으셔서 보고 또 보셨습니다. 저는 생활과 취미를 구별하지 못하는 아버님을 가까이 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님이 관심을 가진 것들은 다 피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가족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집을 떠나 공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일반 사춘기 소년들처럼 꿈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숲 속이나 바다, 혹은 사막이나 평야,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 문학만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몇 달 지나자 다시 문학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문학하는 친구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나이에 비해 조숙하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었는데 염세적인 인생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씨트론이라는 이름을 주고 일방적으로 글(, 혹은 시적인 편지)을 보냈습니다. 때로는 연가풍의 시편과 철학적인 산문도 간간 섞여 있었습니다. 그의 염세주의는 미수에 그친 자살 충동과 전학으로 끝났지만, 그를 업고 병원으로 다니던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번 어느 글에서 친구 이름을 C라고 밝혔습니다만, 본인이 양해를 했으니 이젠 이름을 밝혀도 좋겠군요. 최운석이라는 친구였습니다. 지금 그는 미국에서 문학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문학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서울에서 내려온 육촌형 때문이었습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방황하던 중 우연히 읍내 장터 길목에서 친할머니께 인사하던 낯선 육촌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육촌형은 엉거주춤 서 있는 저에게 진학에 대해서 물었고 저는 가정 형편상 진학을 포기했다고 말했습니다. 한 달 뒤 저는 졸업하면 산속에 들어가겠다고 좀더 구체적인 계획을 적어 형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를 읽고 형은 글재주가 있으니 국문과에 들어가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합격이 되면 형 집에서 같이 지내자는 온정어린 말이 부기되어 있었습니다. 육촌형은 제 글을 처음 읽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준 첫 독자였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대학도 학과도 형이 선택한 대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가정 형편이 더 나빠진데다 형에게 신세지는 게 부담스러워 1학기를 마치고 휴학하게 되었습니다. 칠갑산에 혼자 들어가 화전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흩어진 가족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아버님도 돌아오셨습니다. 아버님은 다시 시 스크랩북을 만드셨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시들을 다 붙이신 다음 선반에 올리지 않고 잠든 제 머리맡에 가만히 놓아 두셨습니다. 저는 인기척을 느끼는 순간 잠결에 그러는 것처럼 스크랩북을 멀리 밀어 놓고 다시 잠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밖에 나오면 어둠 속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연기와 탄내가 훅 끼쳐 왔습니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활활 타오르는 화전 밭에서 가슴 설레며 본 불똥 같던 별들에서도 탄내가 났습니다.

 

불길 번지는 소리 같던 물소리들에서도 탄내가 났습니다. 당시 자연도, 스크랩북도 저에겐 너무 무겁고 가혹했습니다. 화전생활은 아주 고달팠습니다. 산속 좁은 산비탈에서 터전을 잡으려면 한동안 풀과 나무와 거기 깃든 생명붙이들과 땅을 빼앗고 빼앗기는 혈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돌과 바람과 나무와 생명붙이들이 친구처럼 이웃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면 화전시기는 끝납니다. 우리 가족은 칠갑산 합대나뭇골에서 10여 년을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겪은 화전생활은 고통만 남겨 줬지만 대학 1학년 때 제가 혼자 시작하여 10여 년을 지속한 화전생활은 인간 삶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체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깊은 말을 주고받은 적은 없었지만 아버님과 밭일을 같이 하며 조금씩 같은 하늘 밑에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잠시 아버님과 깊은 유대감을 느꼈습니다. 대학에 복학하면서 아버님과 스크랩북과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합대나뭇골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아버님은 다시 떠돌기 시작하여 행동반경을 점점 넓혀 가셨습니다. 그만큼 스크랩북의 시들도 다양해지고 많아졌습니다. 방학 때 집에 돌아오면 오리지 않은 신문들이 방구석에 차곡히 쌓여 있었습니다. 아버님이 시들을 읽고 선택하여 스크랩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불쏘시개로 사라진 첫 스크랩북보다는 낯익은 이름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디서 구하셨는지 각종 신인상 당선시들과 신춘문예시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아버님은 서울 가서 보라고 스크랩북을 짐 꾸러미 속에 챙겨 넣으셨지만 저는 언제나 짐이 너무 많다는 핑계를 대고 빼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에게 문학은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시인이나 작가를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공무원처럼 관문을 거쳐 문단에 등단한다는 일도 번거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인연을 맺는 사람은 모두 문학과 관련을 맺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름방학 때 시골집으로 내려가던 중 천안역에서 우연히 같은 과 여학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여학생도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써온 시인 지망생이었습니다. 지금은 제 아내가 되었지만 그 여학생과 자주 만나면서 문학과 친숙하게 되었고 아버님의 스크랩북을 자세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가 어렵기도 했지만 그땐 아버님의 한없는 사랑이 가슴 깊이 느껴져 시를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불쏘시개로 태워 버린 첫 스크랩북은 아버님의 삶과 관련된 것이었지만 그 이후의 스크랩북은 아버님이 온전히 저를 위해 준비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제게 일어났던 그 숱한 우연적인 일들은 능력이 부족한 저를 한 시인으로 만들기 위한 필연적인 일들이었을까요? 아버님에게나 저에게나 그때그때 삶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어떤 힘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제 삶의 무게를 시로 느끼기 시작한 지 40여 년이 흘렀습니다. 지난 일을 돌아보니 제 시의 원천은 아버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아버님이 남기신 스크랩북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아버님 말씀이 생생히 울려옵니다. ‘피와 눈물이 없는 시도 시냐?’ 하시던 말씀이 잊히지 않습니다. 세상이 달라져도 사람 사이의 일을 시로 쓰라는 말씀이었을까요? 아버님 영전에 졸시집 바이칼 키스<지훈상>을 바치고 싶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계속 시를 쓸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면서 평소 아버님이 스크랩북에서 즐겨 읽으시던 시 한 편을 소개하고 이 글을 그치겠습니다.

 

 

풀잎 단장(斷章) / 조지훈

 

무너진 성터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히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히 피어오르는 한 떨기 영혼이여.

 

- 시집 풀잎단장(창조사, 1952)

 

 

 

 

극지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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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지훈문학상 심사보고

 

지훈문학상의 심사 대상은 관례와 규정에 따라 지난 2년간 출간된 시집의 목록에서 후보작을 선정하였다. 세 명의 심사위원들이 각기 추천한 후보작은 중복되는 시집을 포함하여 신대철의 바이칼 키스, 장옥관의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전동균의 거룩한 허기, 이원의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였다. 각각의 시집들은 지훈상의 후보로 손색이 없는 시적 개성을 보여주었다.

 

장옥관의 시집은 전통적 서정시의 틀 안에서 사물의 본질적 측면을 간파하는 시적 인식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전동균의 시집은 삶과 타인에 대한 따뜻한 연민의 온도를 보여주는 소박하고 정갈한 서정성이 주목할 만하였다. 이원의 시집은 사물에 대한 특유의 상상력이 시의 내부에서 기계와 생에 대한 다른 상상적 차원에 이르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이들 시집이 훌륭한 미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신대철의 시집 바이칼 키스가 보여주는 새로운 서정성의 영토를 보다 의미 있는 것으로 주목했다.

 

이 시집은 신대철 시인이 사십여 년의 세월 동안 네 번째로 출간한 시집이다. 첫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1977년 출간한 뒤 23년 동안 절필했던 시인은 2000년 다시 활발한 창작 활동을 전개한다. 이번 시집에서 특히 바이칼, 알래스카, 시베리아, 몽골의 광활한 자연 속에서 자신의 서정성을 재정립한다. 그는 이전 시집에서 화전민 경험과 청년 시절 DMZ와 실미도 군대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시편들을 쓰기도 했으나, 이번에는 더 넓고 황량한 대자연 속에 삶에 대한 보다 심원한 시적 통찰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시인의 몽골과 알래스카에서의 체류경험을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바이칼호와 몽골 초원이라는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시인은 개인적 체험과 한반도의 현실이라는 문제의식을 넘어서, 생명과 인간 그리고 자연이라는 보편적 주제와 그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성을 담아낸다. 시인은 자연의 깊은 순결성으로부터 역사의 비극성을 껴안고 그것을 넘어서는 생의 숭고성을 자각한다. 이것은 신대철 시인의 시적 확장으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한국 서정시의 지평 확대라는 측면에서도 의의가 있다.

 

심사위원들은 지훈문학상이 시인 조지훈의 미학과 정신에 부합되는 작품을 반드시 뽑아야 한다는 전제를 갖지 않고 심사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최근의 한국 시단에 대한 상황을 참고하면서 신대철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조지훈의 미학에 가장 가까운 시인을 선택한 것이 되었다. 그것을 단지 우연으로 말할 수도 있지만, 조지훈의 문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

 

심사위원 홍신선 황동규 이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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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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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두어 달 嚴冬을 바닷가 시골집에서 야산의 고사목을 잘라 군불 지피며 갯바위에 올라 낚시나 하면서 살았다. 저녁 늦게까지 들리지 않던 파도 소리가 자정 넘겨 점차 스산해져가는 것을, 잠귀에 고여 오면 뒤척거려 쏟아버리곤 했다.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그 비몽사몽간에 내 자각을 세워두었던 것 같다. 애써 의식하지 않았으므로 이 적요 길게 이어질 듯하다.

 

 

저자 및 역자소개

 

시인 김명인은 1946년 경북 울진 후포에서 태어났고, 1969년에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이후 동두천에서의 교사 생활을 거쳐 월남전에 참전한 바 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단에 데뷔했고 이후 反詩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미국 유타 주 브리검 영 대학과 러시아 연해주 소재 극동국립종합대학의 교환 교수, 그리고 경기대 국문과 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집으로 東豆川(1979), 머나먼 곳 스와니(1988), 물 건너는 사람(1992), 푸른 강아지와 놀다(1994), 바닷가의 장례(1997), 길의 침묵(1999), 바다의 아코디언(2002) 등이 있다. 김달진문학상(3), 소월시문학상(7), 현대문학상(45), 동서문학상(8), 이산문학상(13) 등을 수상하였다.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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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숙명의 인연 : 지훈 선생님의 가르침과 나의 습작기

 

금년도 지훈 문학상의 수상자가 저로 결정했다는 통보를 받는 순간 아뜩한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한동안 정신이 멍했습니다. 이 상은 우리 현대시의 우뚝한 이정표이셨던 조지훈 시인의 업적을 기려 주변인들의 정성으로 발의되었고, 제정 이래 그 취지만큼이나 상의 순결을 지켜내려고 애써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동안의 수상자의 면면에 고려대학교 출신 시인들이 철저히 배제되어온 것도 이와 같은 사정이 반영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야말로 고려대학교 출신으로 선생님의 훈도를 받아 시인이 된 사람이니,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참으로 뜻밖의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저는 선생님과의 인연을 숙명처럼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상이야말로 지훈 선생님께서 그동안 네가 열심히 시를 쓰느라 고생했다하고 제게 내리시는 격려인 것만 같아서 감격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다시 고백하지만 저는 선생님을 뵙게 되면서 시를 써보려고 했었습니다. 제 시 인생의 단초(端初)를 선생님께서 잡고 계신 것입니다. 저는 사실 공부하고 싶었던 대학의 1차시험에 낙방하고서 우여곡절 끝에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저는 한 학년을 다 마치도록 전공에 대한 회의를 접지 못했습니다. 그 덕분에 1학년 때에는 낙제과목이 여럿일 정도로 학과공부에 소홀했었습니다. 심지어는 지훈 선생님께서 담당하셨던 국어작문조차도 낙제였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시인이나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포부 따위는 가져보지도 않았습니다.

 

대학 1학년을 마칠 무렵, 고학이 너무 힘에 겨워 마침내 건강까지 해치게 되자, 차라리 있는 현실을 그대로 수긍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그 겨울에는 그나마 가정교사 자리도 잃어버려서 학업의 지속이 참담한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서울 생활이 견디기 힘든 곤혹스러움으로 다가왔던 그때 저는 친구의 하숙방에서 며칠 기숙하면서 닥치는 대로 소설들을 읽었습니다. 그 무잡한 독서 끝에 제가 한 선택은 기왕에 펼쳐진 길이라면 그렇게 살아보리라는 결심이었습니다.

 

시를 습작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 2학년에 진급해서 지훈 선생님의 시론수업을 듣게 되면서였습니다. 저는 다급해진 학비나 해결하려고 장학금을 받을 요량을 혼자 속셈했었습니다. 그때 지훈 선생님의 시론과목이 설강되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오래 와병중이라서 한 학기에 한두 번 출강하시는 것이 고작이셨습니다. 따라서 선생님의 과목은 언제나 휴강이었습니다. 성적도 리포트로 대신했는데, 그 과제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고 요약하는 것, 자작시 다섯 편을 써서 제출하라는 것 등이었습니다. 저는 시론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시를 습작해보았습니다. 시에 관해 아는 바가 없었으므로, 되도록 많은 작품들을 읽으면서, 작시(作詩)를 소화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기성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괜찮다 싶은 시편을 만나면 노트에 수기(手記)했던 그때부터 저는 차츰차츰 시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듬해 신춘문예에 몇 편의 습작품들이 최종심에 오르는 바람에 시를 계속 써보려는 열정을 가졌으니, 시에 다가섰던 저의 업()은 그렇게 마련된 선생님과의 인연 탓이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의 그 과제가 아니었다면 제가 시를 써볼 엄두나 냈겠습니까. 그렇게 찾아든 시마(詩魔), 마침내 저는 지금까지 시를 앓아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의 시론을 수강했던 그 2학년 초가을부터 습작을 들고 선생님 댁을 혼자서 찾아다녔으니, 그건 또 어디서 솟아난 숫기였을까요. 선생님이야말로 시의 인생으로 저를 안내하신 분이십니다.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성북동 골짜기 선생님 댁을. 선생님이 칩거하고 계셨던 개울 건너 목욕탕, 골목 끝의 누옥(陋屋). 대문을 두드리면 선생님께서 직접 빗장을 따주시던 기역자로 꺾어진 기와집, 그 문간방 서재에, 오랜 병환으로 수척해지신 선생님이 누워 계셨습니다. 거의 두 주에 한 번 꼴로 조포(粗暴)하기 이를 데 없었던 습작품을 갖다 드리면, 선생님은 전에 두고 갔던 시편들을 제게 돌려주셨습니다. 저의 습작품들을 일일이 챙겨 읽으시고, 제목이며 구절들을 꼼꼼히 첨삭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누구도 받아보지 못한 선생님의 살뜰한 지도를 받았던 셈입니다. 오래 떠돌며 사느라고 그때의 그 원고들이 언제 어떻게 산실(散失)되었는지, 지금 제 수중에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너무 내성적이어서 부끄럼을 많이 탔던 저는 습작에 대한 스승의 평가를 제때 여쭤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첨삭원고를 돌려주시는 일 외에는 제 작품에 대해 가타부타 구체적인 말씀들을 아끼셨습니다.

 

기묘한 침묵의 첨삭지도는 거의 두 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저는 해마다 신춘문예 최종심에 들기는 했지만, 번번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대학 3학년 말의 겨울방학이었던가요. 선생님께서는 동아일보의 신춘문예를 심사하고 계셨습니다. 습작원고를 들고 찾아간 저를 곁에 앉혀놓고, 그해의 당선시를 읽어주셨습니다. 마종하 시인의 시였을까, 제가 몸 둘 바를 몰랐던 것은 저의 작품도 거기 투고되었던 까닭이었습니다. 당선작을 미리 귀띔해주신 것은 허망한 기대로 제가 마음 상할까 다독거려준 배려였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찾아뵈었던 것은 제가 대학 졸업반이 되던 해의 2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선배였던 오탁번 형과 동행이 된 자리였습니다. 오탁번 선배는 그때 이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었습니다. 그가 지훈 선생님 댁을 방문하면서 저를 앞장세웠던 것은 습작시편을 들고 선생님을 자주 찾아뵙는다는 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 빈손으로 선생님 댁을 방문할 수 없어 도라지 위스키한두 병을 마련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싸구려 위스키로 우리를 응대하시곤 술기운 탓이신지, 예의 굵은 바리톤으로 당신의 습작 시 월광곡을 낭송하셨습니다. 그해 늦봄에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으니, 아무리 철부지 적의 일이라 하지만 아직도 그때의 민망함을 씻어낼 길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간경화에다 동맥경화까지 오랜 지병을 겹쳐서 앓고 계셨으니, 술을 드시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급조된 계기들이 만들어준 성급한 우연으로 대학 2학년 말부터 신춘문예의 최종심에 들기는 했었지만, 저는 번번이 낙선의 좌절을 맛보아야만 했었습니다. 무딘 재주에다 생계조차 번거로웠으니 시의 깊이와 방법에는 제대로 눈뜨지 못한 채 몇 년을 허송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좌절들을 딛고 제가 다시 시를 쓰려고 했던 것은 1972년 늦가을, 3년을 꼬박 채운 사병생활을 마감하고 제대한 뒤였습니다. 가판대에 놓인 신문에 실린 신춘문예 모집광고를 보고 며칠간 급조해서 응모했던 작품으로 저는 운이 좋게도 마침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것입니다.

 

돌이켜 보니 저의 시 쓰기는 순전히 선생님으로부터 비롯된 사건입니다. 아니 시보다 앞서 저는 스승으로서 선생님을 상기할 때가 많았습니다. 어린 제가 뵙기에도 선생님은 대인의 풍모를 지니셨고, 누구라 할 것 없이 주변인들을 감동시키셨습니다. 선생님의 남다른 모습을 우리들 제자들은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쉰을 채 못 넘기신 아까운 연세로 선생님은 타계하셨습니다. 어느새 그 연치를 넘겨 살아가고 있지만, 저는 시인으로서 선생으로서 난처한 지경을 만날 적마다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처신하셨을까 하고 자문해볼 때가 잦습니다. 그러니 아직도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것은 시인된 입장보다도 그분의 제자로서의 사정이 더 큰 것입니다. 저는 정말로 이 상의 수상자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끝으로 저를 수상자의 반열에 넣어주신 심사위원께, 그리고 이 상을 운영하시는 나남문화재단 측에도 마음으로부터의 고마움을 전해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꽃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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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지훈문학상 심사보고

 

지훈문학상의 규정에 따라 지난 2년간(2005420073) 시집으로 간행된 성과들 중에서 3인의 심사위원이 추천한 바를 종합정리한 결과 다음의 다섯 시인이 최종심의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김명인, 파문(문학과지성사); 신현정, 자전거 도둑(애지); 장경린, 토종닭 연구소(문학과지성사); 최종천,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창비); 최하림,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랜덤하우스중앙).

 

10일의 검토 기간을 거친 뒤 이루어진 최종심 회합에서 심사위원들은 후보를 김명인, 최하림 두 시인으로 좁히고, 다각도로 의견을 교환한 끝에 김명인의 파문을 수상 시집으로 결정하였다. 나머지 세 권의 시집도 각기 뚜렷한 개성과 시정신의 밀도를 보여주는 성과로서 높이 평가되었으나, 심사대상 기간의 성과와 함께 그 이전의 시력(詩歷)이 보여주는 모색과 성취의 궤적 또한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에서 앞으로의 시적 진전을 더 기대하기로 했다.

 

최하림, 김명인 시인의 시집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삶의 남은 자락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느끼면서 이 세계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일 것이다. 이런 유형의 시편들이 흔히 빠져들기 쉬운 상투적 정신주의 내지 고답적(高踏的) 달관의 유혹을 거절하고 사물들과 상황을 바라보는 절제된 태도에 우리는 주목했다. 아울러, 그러한 시적 긴장이 두 시인의 오랜 시작생활을 통해 견지되어온 서정적 자기규율의 성실성에 기초해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의견을 같이했다.

 

그런 가운데서 김명인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하게 된 이유는 작품의 원숙함 속에 살아있는 주제와 언어의 치열성이었다. 1970년대 후반의 반시(反詩) 동인활동과 첫 시집 동두천(1979)으로부터 약 30년의 시적 여정(旅程) 동안 작품세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의 주제와 시적 상황에 대한 긴장된 관계를 견지해왔다. 근년의 작품들에 자주 등장하는 죽음 또는 허무의 문제들에 대한 시적 접근방식에서도 그의 시선은 보기 드물게 날카롭고, 그의 언어는 강선(鋼線)처럼 팽팽하다. 이러한 긴장과 치열함이 앞으로도 값진 성과를 산출하리라 기대하면서 우리는 그의 이름을 지훈문학상 수상자의 명단에 올리고자 한다

 

심사위원 김흥규 정희성 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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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웅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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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시쓰기는 제가 좋아서 스스로 선택한 일입니다. 몸이 배고파서 밥을 찾듯이, 목말라서 물을 찾듯이, 내 몸이 원해서 저 스스로 한 일입니다. 내 몸이 그것을 원한 것은 그 안에 오랫동안 갇혀 있는 어둡고 축축하고 냄새나는 무엇인가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것이 내 몸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고 뒤척이며 몸 밖으로 나오려고 용을 썼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 없고 형체 없는 생명체가 자신에게 맞는 언어의 형식을 발견하고 그것을 입는 순간, 몸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등단 전의 습작기간에, 몸 밖으로 나온 것은 괴물 같은 것이었습니다. 눈뜨고 보기 힘든 몰골이었습니다. 내 몸 속에서 충분히 숙성되고 발효되지 못한 것들이 직설적으로 배설하듯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제 습작과정은 그것에 이목구비를 붙이고 피부를 입히는 것이었고, 그래서 아주 흉하지 않게 되었을 때 겨우 시인으로 등단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 속에 든 것들에게 햇볕을 쪼이고 바람을 맞게 한 것이 지금까지의 제 시쓰기입니다.

 

내 몸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 시쓰기는 자족적인 일이지만, 그러나 자족적인 일이 되지 않을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처음 시를 쓸 때의 절박함이 어느 정도 충족되고 나니, 그 동안 써온 시들이 하나의 관습이 되어 지금까지 달려온 관성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 관성의 속도가 자기에게 편승해서 손바람을 날리며 쓰기를 유혹했기 때문입니다. 시가 안 써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간혹 받는 일이 있는데, 그때마다 저는 쓰지 않는다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내 박약한 의지와 우유부단과 그것을 합리화해 줄 여러 사정에 의해서 억지로 쓴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써지지도 않고 그래서 꽤 오랫동안 쓰지도 않아서 이러다 정말 시를 못 쓰는 게 아닌가 우려가 될 때도 있었습니다. 먹고사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아예 시가 계속 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삐딱한 생각을 하면 갑자기 시가 솟구쳐 나와서 아슬아슬하게 시인의 이름을 이어가곤 했습니다.

 

이번 상을 받게 된 시집인 시인의 말에서 저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너무 건조해서 불면 먼지가 날 것 같은 머리와 가슴. 도저히 시가 나올 것 같지 않은 그곳에서 그래도 시가 나오는 이유는 끊임없이 몸을 물고 늘어지며 뒤척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 지루하고 답답한 삶의 압력이 강제로 상상력을 분출시키기 때문.

 

이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미 제 몸은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는 물기가 다 말라버렸습니다. 도시와 아파트와 자동차와 온갖 편의시설이 없으면 하루라도 살 수 없을 만큼 몸은 도시문명에 오염되었고, 많은 본능적인 감각들이 퇴화되었고, 자연과의 친화력은 거의 상실되었습니다. 제 몸은 시를 쓰기에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치명적인 불구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시가 나오는 제 몸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시인으로서 시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제 몸 속에, 어두운 곳에서 나오고 싶어하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괴물이든 자신에게 맞는 형체와 이름과 언어를 부여받고 싶어하는, 갇혀 있는 생명체가 있어서 그것이 햇빛과 바람이 있는 곳으로 나오려고 하기 때문에 시가 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그것들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저희들의 필요에 의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내 상상력을 압박하여 몸 밖으로 강제로 밀고 나오는 것입니다.

 

시쓰기는 자족적인 일이니, 쓰는 행위 자체가 자신으로부터 상을 받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송구스럽게도 여기에 더하여 상을 하나 더 얹어 받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 보잘것없는 일에 지훈이라는 큰 이름으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상을 받게 되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제 시의 왜소함, 부족함, 시에 대한 저의 소극적인 자세가 갑자기 눈에 확 띄는 것 같습니다. 그것들이 지훈 선생님의 투명하고 엄격한 눈앞에서 다 들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제 시를 보는 눈과 태도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저에게 큰 격려이기도 합니다. 저는 지훈문학상이 저에게 주신 반성의 뜻과 격려를 다같이 기쁘게 받겠습니다. 그것들로 새로운 용기를 제 몸에 수혈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 격려해 주신 세 분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이 상을 제정하고 운영하시는 나남출판사와 지훈상 운영위원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갈라진다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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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지훈문학상 심사보고

 

심사위원들은, 지난 2년 동안에 출간된 모든 시집들을 심사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지훈문학상의 규정을 염두에 두면서 이 시기 안에 발간된 김기택의 와 박형준의 , 이정록의 의자를 중점적으로 논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김기택은 사물에 대한 독특한 관찰과 치열한 탐구정신을 지속적으로 보여준 점에서, 박형준은 경쾌한 상상력의 전개와 현대적 서정성을 조화롭게 연결시킨 점에서, 그리고 이정록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개성적인 표현방법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모두 수상자가 될 만한 시인들이라는 데 심사위원들은 의견을 같이하였다. 그러나 한 사람의 수상자를 정할 수밖에 없어서 결국 김기택의를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 작품이 시적 진실을 엄정히 추구했던 지훈 선생의 문학정신에 제일 가까운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김기택의 는 도시적 삶의 비인간화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비관하거나 절망하는 어조를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도시생활의 이모저모를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의지로 관찰하는 가운데, 일상인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새와 나무, 평범한 동물과 미세한 벌레의 움직임 혹은 생명력을 통해 우리의 삶과 현실을 냉정히 반성하고 희망을 찾으려 한다. 이러한 이성적 반성의 노력과 희망의 의지뿐 아니라 이 시집을 관류하고 있는 긴장된 시적 정신과 진실에의 강한 열정도 예사롭지 않은 시인의 미덕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발간된 지 1년이 지난 이제 뒤늦게나마 이 시집에 지훈상의 영예가 돌아가게 된 것을 기쁘고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시인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전하고자 한다.

 

심사위원 오생근 김주연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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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방울 / 이태수 

 

 

풀잎에 맺혀 글썽이는 이슬방울
위에 뛰어내리는 햇살
위에 포개어지는 새소리, 위에
아득한 허공.

그 아래 구겨지는 구름 몇 조각
아래 몸을 비트는 소나무들
아래 무덤덤 앚아 있는 바위, 아래
자꾸만 작아지는 나.

허공에 떠도는 구름과
소나무 가지에 매달리는 새소리,
햇살이 곤두박질하는 바위 위 풀잎에
내가 글썽이며 맺혀 있는 이슬방울.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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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문학상 심사위원회(위원장 강희근 경상대 교수)는 한국시사랑 문인협회(회장 김선옥)가 제정한 천상병 시문학상 제3회 수상자로 시집 '이슬방울 또는 얼음 꽃'(2004· 문학과 지성사)을 낸 이태수(58·매일신문 논설주간) 시인이 결정됐다고 14일 밝혔다.

심사위 측은 "한없는 낮추기와 작아지기를 통해 불순하고 뒤틀린 세계를 뛰어 넘으려는 초월에의 꿈을 보여줘 천상병 시인의 천진성과 맑은 서정에 일정 부분 연결되고 있음이 인정돼 수상자로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오는 5월 22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서 개최되는 제3회 천상병문학제에서 있을 예정이다.

 

제3회 천상병문학상 -이태수 시집

천상병 시문학상 심사위원회(위원장 강희근)는 한국 시사랑 문인협회(회장 김선옥)가 제정한 제3회 천상병 시문학상 받을이로 시집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2004, 문학과 지성사)을 낸 이태수씨를 뽑았다.


시상식은 오는 5월22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서 열릴 제3회 천상병 문학제 때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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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한 일들 / 김소연

 

 

비가 내려, 비가 내리면 장록 속에 카디건을 꺼내 입어, 카디건을 꺼내 입으면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조개껍데기가 만져져, 아침이야

 

비가 내려, 출처를 알 수 없는 조개껍데기 하나는 지난 계절의 모든 바다들을 불러들이고, 모두가 다른 파도, 모두가 다른 포말, 모두가 다른 햇살이 모두에게 똑같은 그림자를 선물해, 지난 계절의 기억나지 않는 바다야

 

지금은 조금 더 먼 곳을 생각하자

런던의 우산

퀘벡의 눈사람 아이슬란드의 털모자

너무 쓸쓸하다면,

 

봄베이의 담요

몬테비데오 어부의 가슴장화

 

비가 내려, 개구리들이 비가 되어 쏟아져 내려, 언젠가 진짜 비가 내리는 날은 진짜가 되는 날, 진짜 비와 진짜 우산이 만나는 날, 하늘의 위독함이 우리의 위독함으로 바통을 넘기는 날,

비가 내려,

 

비가 내리면 장롱 속 카디건 속 호주머니 속 조개껍데기 속의 바닷속 물고기들이 더 깊은 바닷속으로 헤엄쳐 들어가, 모두가 똑같은 부레를 지녔다면? 비가 내릴 일은 없었겠지,

비가 내려, 다행이야

 

 

 

수학자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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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작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제10회 노작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김소연씨(43)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다행한 일들4편이다.

 

김 시인은 노작문학상운영위원회(정진규 최정례 이문재 이덕규 유성호)로부터 신선한 시적 전개와 선명한 이미지로 새로운 시적 호흡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작문학상은 동인지 백조(白潮)’를 창간하며 낭만주의 시풍을 주도한 시인이자 극단 토월회를 이끈 노작(露雀) 홍사용(1900~1947)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1년 제정됐다.

 

상금은 1000만원이다. 시상식은 123일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 노작근린공원 노작문학관에서 열린다.

 

한편, 경북 경주 출신인 김씨는 1993현대시사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극에 달하다’(1996)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2006), 산문집 마음사전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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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해서 머나먼 / 최승자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먼 데 갔다 이리 오는 세계

짬이 나면 다시 가보는 세계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노자가 살았고

장자가 살았고 예수가 살았고

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고

먼 세계 이 세계

 

(저기 기독교가 지나가고

불교가 지나가고

도가(道家)가 지나간다

 

쓸쓸해서 머나먼 이야기올시다

 

 

 

쓸쓸해서 머나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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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문학회와 천년의시작이 공동 주관하는 제5회 지리산문학상 수상자로 최승자 시인(58)5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쓸쓸해서 머나먼이다.

 

심사위원회는 최승자 시인은 군사문화로 대변되는 가부장적 기존질서와 시류에 대한 페미니즘적인 성찰과 함께 자본주의적 허구에 대한 통렬한 글쓰기를 해왔다누층구조로 개진되는 시적 삶과 감각의 새로운 힘이야말로 누겹의 산자락으로 형성된 지리산의 아득한 존재성과 상응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함께 발표된 제5회 최치원신인문학상은 이혜리 시인(22)에게 돌아갔다.

 

수상자는 각각 500만원과 200만원의 상금을 받게되며 시상식은 28, 29일 경남 함양군 상림공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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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사서함 / 박라연

 

 

빛을 열어보려고

허공을 긁어대는 손톱들

저 무수한 손가락들을 모른 척

 

오늘만은

온 세상의 햇빛을 수련네로

몰아주려는 듯

휘청, 물 한 채가 흔들렸다

 

헛것을 본 것처럼 놀라

금방 핀 제 꽃송이를 툭 건드리는데

 

받은 정을 갚으려고 빛으로 붐비는

다이애나 와 오드리 햅번까지

 

활짝 눈을 떴다

팔뚝만 한 쇳덩이가 바늘이

될 때까지 불덩이에 얹혀살다가

 

불의 그림자로 바느질한 빛의 사서함

그녀들의 사서함이 끊긴 수련들을

붉고 노란 웃음소리로 불러냈을까

 

깊은 울음만이 진창으로 흘러들어가

붉고 노랗게 웃을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하는 사이에

 

수련이 또 수없이 피어났다

 

잘 익은 근심들을 붉고 노란 웃음소리로

뽑아내듯

 

 

 

 

빛의 사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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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와 계간 '서시',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이 공동 주최하고 대구 서구청이 주관하는 제3회 윤동주상 문학상 수상자로 박라연 시인이 16일 선정됐다.

 

평화상에는 오오무라 마스오 전 와세다대 교수, 민족상에 이종환 관정이종환장학재단 이사장, 예술상에는 서양화가 김종학 씨가 뽑혔다.

 

이와 함께 중국 옌볜대 교수 겸 수필가인 김관웅 씨와 문학평론가 김우종 씨에게는 각각 해외동포문학상과 특별문학상이 주어진다.

 

시상식은 내달 29일 오후 대구 서구문화원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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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 김경주

 

 

지도를 태운다

묻혀 있던 지진은

모두,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태어나고 나서야

다시 꾸게 되는 태몽이 있다

그 잠을 이식한 화술은

내 무덤이 될까?

 

방에 앉아 이상한 줄을 토하는 인형(人形)을 본다

 

지상으로 흘러와

자신의 태몽으로 천천히 떠가는

 

인간에겐 자신의 태내로 기어 들어가서야

다시 흘릴 수 있는 피가 있다

 

 

 

 

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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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시작과 계간 시작이 주관하는 제3회 시작문학상에 김경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기담이 선정되었다.

 

심사위원들은, 김경주 시인은 특유의 감각적 인식과 화술을 통해 우리 시단에 새로운 시적 생산의 장시적 감응의 장의 활로를 열어젖히고 있는 점을 주목했다. 아울러 그의 이러한 심미적 모험의 행로는 우리 시단의 중심음을 이동시키는 젊은 힘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그 미래지향적인 가능성과 가치가 <시작문학상>의 취지와 부합하기에 충분했다고 밝혔다.

 

상금은 일천만 원이며, 시상식은 200965일 금요일 오후 7시 종로구 사간동에 있는 출판문화회관 4층 강당에서 있을 예정이다.

 

한편 이날은 시작2009년 봄호로 등단한 김정웅, 기세은 시인에 대한 제7회 시작신인상 시상식도 함께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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