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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길 수 없는 노래 1 / 이성복

 

 

어두운 물속에서 밝은 불 속에서

서러움은 내 얼굴을 알아보았네

아무에게도 드릴 수 없는 꽃을 안고

그림자 밟히며 먼 길을 갈 때

어김없이 서러움은 알아보았네

감출 수 없는 얼굴 숨길 수 없는 비밀

서러움이 저를 알아보았을 때부터

나의 비밀은 빛이 되었네 빛나는 웃음이었네

하지만 나는 서러움의 얼굴을 알지 못하네

그것은 서러움의 비밀이기에

서러움은 제 얼굴을 지워버렸네

 

 

 

 

그 여름의 끝 - YES24

『그 여름의 끝』에서 저자는 연애시의 어법으로 세상에 대한 보다 깊고 근원적이며 보편적인 이해를, 뛰어난 서정을 통해 새롭게 펼쳐 보여준다. 저자 이성복의 시 세계는 깊이를 획득한 단순

www.yes24.com

 

 

숨길 수 없는 노래 2 / 이성복

 

아직 내가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 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봄하늘 아득히 황사가 내려 길도 마을도 어두워지면 먼지처럼 두터운 세월을 뚫고 나는 그대가 앉았던 자리로 간다 나의 사람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하면 서러움이 나의 사랑을 채우리라

서러움 아닌 사랑이 어디 있는가 너무 빠르거나 늦은 그대여,나보다 먼저 그대보다 먼저 우리 사랑은 서러움 이다



숨길 수 없는 노래 3

 

내 지금 그대를 떠남은 그대에게 가는 먼 길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길이 끝난 자리에 서 있는 두 개의 고인돌 같은 것을 그리고 그 사이엔 아무도 발디딜 수 없는 고요한 사막이 있습니다 나의 일생은 두개의 다른 죽음 사이에 말이음표처럼 놓여 있습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오랜 저녁빛에 눈먼 두개의 고인돌 같은 것을 내 지금 그대를 떠남은 내게로 오는 그대의 먼 길을 찾아서입니다.

 

 

 

숨길 수 없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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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사는 제4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이성복 시인을 선정 발표했다. 수상작은 연작시 <숨길 수 없는 노래>이다.

 

이 시인은 경북 상주 출생으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여 초등학교 시절부터 여러 백일장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경기고교에 입학하여 당시 국어 교사였던 시인 김원호를 통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때 창작과 비평에 실린 김수영의 시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1971년 서울대 불문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하여 황지우, 김석희, 정세용, 진형준 등과 친분을 쌓았고 1976년 복학하여 황지우 등과 교내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1977정든 유곽에서등을 문학과 지성에 발표, 등단했다. 대구 계명대학 강의 조교로 있으면서 무크지 우리 세대의 문학1에 동인으로 참가했다.

 

이번 수상작은 작품집으로 출간 예정이며 시상식은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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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 박형준

 

 

그 젊은이는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창문으로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였다

 

가을에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혔다

그 젊은이에게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 맨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

 

지하 방의 창문으로 때 이른 낙과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여자를 기다렸다

 

그녀의 옷에 묻은 찬 냄새를 기억하며

그 젊은이는 가을밤에 맨방바닥에서 잤다

 

서리가 입속에서 부서지는 날들이 지나갔다

창틀에 낙과가 쌓인 어느 날

 

물론 그 여자가 왔다 그 젊은이는 그때까지

사두고 한 번도 깔지 않은 요를 깔았다

 

지하 방을 가득 채우는 요의 끝을 만지며

그 젊은이는 천진하게 여자에게 웃었다

 

맨방바닥에 꽃무늬 요가 펴졌다 생생한 요의 그림자가

여자는 그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과나무의 꼭대기,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 문학과지성 시인선 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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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대구방송의 제9회 육사시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수상작은 박형준 시인의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가 차지했다.

 

육사시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수상 평으로 충만된 아름다움과 현대적 서정의 시집으로서 와해되어가는 농촌현실과 취락적 인간관계, 그것들에 반응하는 예리한 감정의 화문을 부드러운 물질로 정화시키는 매혹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시라고 밝혔다.

 

1966년 전북 출생인 박형준은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 이야기하련다’,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등의 시집을 출간했다. ‘1회 꿈과시문학상(1996)’, ‘15회 동서문학상(2002)’, ‘10회 현대시학작품상(2005)’, ‘24회 소월시문학상 대상(2009)’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상의 최종심사 황동규(서울대 명예교수), 김주연(숙명여대 석좌교수), 정희성(시인), 김재홍(경희대 석좌교수), 이태수(시인)씨가 맡았다. 시상식은 오는 28일 오후 4시 이육사문학관에서 열리는 이육사문학축전과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TBC의 육사시문학상은 민족시인 이육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숭고한 생애와 문학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 TBC2004년 제정한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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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을 점 찍다 / 홍신선 

 

 

 사창굴이 따로 있는가 아파트 단지 뒷길 화단에

 때 늦은 쪽방만 한 매화들 몸 활짝 열었다

 무슨 내통이라도 하는지 앵벌이 한 마리 절뚝절뚝 한쪽 발 끌며

 꽃에서 꽃으로 방에서 방으로 점, 점, 점 찍듯 들렀다 날아간다

 날아가다 또 들른다

 무저갱 같은 꽃들의 보지 속에서

 반출 금지된 자손이라도 비사입하는가

 눈먼 거북이가 바다에 떠도는 널빤지 구멍 속으로

 모가지 한 번 내미는 것이

 목숨 점지되는 인연이라는데*

 쪽방촌 성폭행범처럼 점점점 씨를 묻으며 드나드는 저 앵벌이 선택은

 인연인가 우연인가

 매화들 뭇 가지에서 가건물처럼 철거된 빈 꽃자리

 곧 거북이 모가지만 한 열매들 불쑥불쑥 내솟고

 그즈음 앵벌이는 또 사창굴 여느 꽃의 곪아 터진몸 찾아다니며

 가장자리 나달나달 핀 종이쪽지 구걸 사연이라도 돌리는가

 이 꽃의 음호(陰戶) 속에 저 꽃의 치골 위에

 점, 점, 점 우연을 점 찍는가

 

  * 『잡아함경』'맹구설화' 중에서

 

 

 

 

우연을 점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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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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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상자 : 이정록

 

 

2. 수상작품 : 「무덤에서 무를 꺼내다」 외 4편

 


「무덤에서 무를 꺼내다」

무덤에서 무를 꺼내다
무값이 똥값이라
밭 가운데에 무를 묻었다
겨울에만 생겼다 없어지는 무덤
봄이 될 때까지 수도 없이 도굴 당하는 무덤
절만 잘하면 무를 덤으로 조는 무덤 밭 한 가운데에
겨우내 절을 받는 헛묘 하나 눈맞고 있다 저 묘 속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얼마나 많이 머리를
들이미셨던가, 그 누가 시퍼렇게 살아 있기에
한 집안의 머리채를 모조리 다 잡아채는가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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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심사위원 : 황동규(시인, 서울대 교수), 정진규(시인), 오세영(시인, 서울대 교수), 조정권(시인), 최동호(시인, 고려대 교수)


4. 심사평

「이정록의 유머와 슬픔」

사는 일과 마찬가지로 글 쓰는 일에도 기복이 있기 마련이겠지만, 그 동안 아름다운 시를 써 온 장석남은 긴장을 풀고 있고, 송찬호는 아예 붓을 걸어 놓고 있다(그 나이에 일 년에 짤막한 시 세 편밖에 발표하지 않다니).예심을 거쳐 넘어온 그 밖의 다른 시인들도 자신들의 이름에 걸맞는 작품들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정록은 작년에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고, 또 이번에 예선을 거쳐 넘어온 몇 편의 시가 작년 수상작품과 겹친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나는 작년 심사에 참여한 심사위원의 하나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주저했다. 그러나 상은 심사한 작품 가운데 가장 나은 작품을 쓴 시인에게 주는 것이고, 이정록의 경우 겹치는 작품을 빼고도 자신이 개척하고 있는 세계를 보여주는 데 충분했다. 예를 들어 「무덤에서 무를 꺼내다」를 보면 채소값이 ‘똥값’이 되는 농촌의 고통스런 현실이 전제되어 있으면서도 ‘무 무덤’에 들어가려면 고개나 허리를 숙여야 하는 것을 ‘절만 잘하면 무들 덤으로 주는 무덤’ (‘무덤’과 ‘무의 덤’이 가지고 있는 발음의 유사성에도 눈을 줄 것) 같은 유머로 처리하는 시인의 여유가 보인다. 그 여유는 그러나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것이 ‘한 집안의 머리채를 모조리 다 잡아채는’ 슬픔으로 끝난다.
유머와 슬픔은 곧은 것보다도 구부러진 것이 더 간절함이 있다는 「구부러진다는 것」에도 나타나고, 죽을 때 촉수였던 눈을 공양하는 달팽이의 눈을 ‘씨눈’으로 보는 애절한 감각의 「씨눈」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번 표본으로 선정한 작품 속에 들어 있지 않지만 「주름살 사이의 젖은 그늘」, 그리고 마지막에 실린 「서부극장」을 물들이고 있는 것도 이 유머와 슬픔이고, 그것은 앞으로 한동안 그에게 가치 있는 광맥으로 남아 있게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정록이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면,

열매보다 꽃이 무거운 生이 있다
-「슬픔」전문

같은 어느 정도 성공한 아포리즘이다. 이것도 유머와 슬픔의 반경 안에 들어 있지만, 그러나 이런 ‘멋진’ 아포리즘은 시의 근원인 노래에서 멀어지기 쉽다.(황동규)

 

 

파란 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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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상자 : 나희덕

 


2. 수상작품 : 「엘리베이터」외 4편

 


「엘리베이터」

더 들어가요. 같이 좀 탑시다.
병원 엘리베이터 타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육중한 몸집을 들이밀며 한 아주머니가 타고 나자
엘리베이터 안은 빽빽한 모판이 되어버렸다
11층, 9층, 7층, 5층……문이 열릴 때마다 조금씩 헐거워지는 모판.
갑자기 짝수층 엘리베이터에서 울음소리 들려온다
어젯밤 중환자실 앞에서 울던 그 가족들일까.
모판 위의 삶을 실은 홀수층 엘리베이터와
칠성판 위의 죽음을 실은 짝수층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야 만난다. 울며 떨어지지 않으려는 가족들과
짝수층 엘리베이터에 실린 죽음을
홀수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흰 헝겊으로 들씌워진 한 사람만이
텅 빈 엘리베이터 안에 남고, 문이 닫히고,
잠시 후 B1에 불이 들어온다, 그 사이에
홀수층 엘리베이터 안에는 다시 사람들이 채워진다
더 들어가요, 같이 좀 탑시다……아우성이 채워지고, 문이 닫히고,
빽빽해진 모판은 비워지기 위해 올라가기 시작한다
1층, 3층, 5층, 7층, 9층, 11층……
삶과 죽음을 오르내리는 사다리는 잠시도 쉬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는 나른다, 병든 입으로 들어갈 밥과 국을
엘리베이터는 나른다, 더 이상 밥과 국을 삼키지 못할 육체를
엘리베이터는 나른다, 병든 손을 잡으려는 수많은 손들을
엘리베이터는 나른다, 더 이상 병든 손조차 잡을 수 없는 손들을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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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심사위원 : 정현종(시인, 연세대 교수), 김화영(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김선학(동국대 교수), 김명인(시인, 고려대 교수), 최동호(시인, 고려대 교수)

 


4. 심사평

「날아오르는 나비와 내려앉는 나비」

장석남, 나희덕 두 시인을 두고 어느 쪽을 수상자로 추천할까 망설였다.
장석남은 매력적인 시인이다. 어떤 분은 ‘타고난 시인’이라고도 말했다. 가령 <수묵 정원 9-번짐> 같은 시를 읽어 보면 그런 말이 수긍된다는 느낌이다. “번짐,/번져야 사랑이지//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오른다” 같은 곳을 읽고 있으면 그의 시적 역동성이 읽는 이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 번져드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덜어낸 무게 때문에 가뜬히 치켜 올라간 가지 사이의 시들한 이파리들의 팔랑임 사이에”(<살구를 따고>) 같은 치밀한 묘사 위에 덧없는 삶의 한 순간을 덜렁 올려 놓을 경우 또한 그렇다. 그러나 예심을 거쳐온 이 시인의 시편들이 이런 수준과 긴장을 항상 유지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좀 아쉬웠다.
반면에 나희덕 시인의 시편들은 언제나 일정한 구조적 긴장과 특유의 어법을 견고하게 지탱하고 있다는 점이 미덕이다. 엘리베이터, 밥상, 젓가락, 맨밥, 현관문, 신발, 호미 같은 사소한 일상의 소도구들이나 거미줄, 기러기 떼, 월식, 새, 나비, 나무, 구름, 비 같은 가시적 대상이나 현상들로부터 존재와 무, 죽음 같은 근원적 문제로 태연하게 건너뛰어 직행하는 그 속도와 고즈넉해서 더욱 섬뜩해지는 시선이 여운과 우울한 감동을 길게 남긴다. 대체로 그의 시는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그 슬픔 속에는 일정한 균형을 잡아 주는 무게 중심 같은 것이나 삶의 전모를 흐릿하게 비추는 거울 같은 것이 또한 내장되어 있어서 그 슬픔을 조용하게 견디며 통과하는 암시 구실을 한다. 가령 “한 발은 나비를 신고/한 발은 땅에 디딘 채/절뚝절뚝 봄길을 날아 걸어왔으니//나비야, 나비야,/이 검은 땅 위에 다시 내려와 앉아라/내가 너를 신겠다”의 어두운 초현실주의가 그렇다. 나는 결국 이 “내려앉는” 나비 쪽의 손을 들기로 한다. 나희덕 시인의 “캄캄한 씨방 속에 갇힌 꿈들”이 더욱 단단해지기를 바란다.(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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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상자 : 남진우

 


2. 수상작품 : 「타오르는 책」외 4편

 


「타오르는 책」

그 옛날 난 타오르는 책을 읽었네
펼치는 순간 불이 붙어 읽어나가는 동안
재가 되어버리는 책을

행간을 따라 번져가는 불이 먹어치우는 글자들
내 눈길이 닿을 때마다 말들은 불길 속에서 곤두서고
갈기를 휘날리며 사라지곤 했네 검게 그을려
지워지는 문장 뒤로 다시 문장이 이어지고
다 읽고 나면 두 손엔
한 웅큼의 재만 남을 뿐

놀라움으로 가득 찬 불놀이가 끝나고 나면
나는 물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곤 했네

그 옛날 내가 읽은 모든 것은 불이었고
그 불 속에서 난 꿈꾸었네 불과 함께 타오르다 불과 함께
몰락하는 장엄한 일생을

이제 그 불은 어디에도 없지
단단한 표정의 책들이 반질반질한 표지를 자랑하며
내게 차가운 말만 건넨다네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읽어도 내 곁엔
태울 수 없어 타오르지 않는 책만 차곡차곡 쌓여가네

식어버린 죽은 말들로 가득 찬 감옥에 갇혀
나 잃어버린 불을 꿈꾸네

 

 

타오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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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심사위원 : 정현종(시인, 연세대 교수), 오세영(시인, 서울대 교수), 최동호(시인, 고려대 교수)

 


4. 심사평

「문명사적 죽음의 탁월한 형상화」

예심에 올라온 다섯 분의 작품을 놓고 토론을 한 결과 남진우 씨의 「타오르는 책」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만장의 일치를 보았다. 후보자들 중 한 분은 심사하는 당일 다른 문학상을 수상한다는 사실이 공표되어 제외되었고 다른 분들은 혹은 작품의 수준이 고르지 않다든가 혹은 개성이 약하든가 혹은 좀더 지켜 보자든가 하는 이유로 밀리게 되었다.
남진우 씨는 우리 시단에서 독특한 개성을 드러낸 시인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그가 작년에 출간한 그의 시집에서 우리 시대의 황량한 삶을 죽음의 이미지로 잘 형상화시킨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번의 심사 대상에 오른 작품들 역시 그와 같은 개성이 드러나 보인다. 특히 수상작 「타오르는 책」은 진정한 삶에 도달할 수 없는 존재의 한계성을 불과 언어의 상상력을 통해 형상화해 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에 있어서 완전한 삶이란 완전한 언어를 소유하는 데서 가능하다. 언어는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고 나아가 자신과 세계를 연결시켜 주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일상적 인간의 불완전한 언어를 버리고 완전한 언어를 갖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이 신화시대에 경험한 이 언어, 즉 이 시에서 ‘불타는 책’으로 상징된 이 완전한 언어가 인간이 물질로 타락한 우리 시대에는 그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시인은 이와 같은 문명사적 죽음의 의미를 「타오르는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가지 지적할 것이 있다면 「타오르는 책」이 다소 관념적이라는 인상을 모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시 또한 예술의 하나인 까닭에 미학성 역시 중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고형렬 씨의 「성에꽃 눈부처」, 나희덕 씨의 「그 때 나는」, 장옥관 씨의 「살구꽃 필 때」등의 작품들도 좋았다.(오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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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상자 : 김명인 「가을에」 외 7편

 


2. 수상작품

「가을에」

모감주* 숲길로 올라가니
잎사귀들이여, 너덜너덜 낡아서 너희들이
염주소리를 내는구나, 나는 아직 애증의 빚 벗지 못해
무성한 초록 귀떼기마다 퍼어런
잎새들의 생생한 바람소리를 달고 있다
그러니, 이 빚 탕감받도록
아직은 저 채색의 시간 속에 나를 놓아다오
세월은 누가 만드는 돌무덤을 지나느냐, 흐벅지게
참꽃들이 기어오르던 능선 끝에는
벌써 잎지운 굴참 한 그루
늙은 길은 산맥으로 휘어지거나 들판으로 비워지거나
다만 억새 뜻 없는 바람무늬로 일렁이거나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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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심사위원 : 김종길(시인, 고려대 교수), 김윤식(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황동규(시인, 서울대 교수), 오세영(시인, 서울대 교수), 김재홍(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김선학(문학평론가, 동국대 교수)

 


4.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시인들은 이건청, 이하석, 김명인, 최승호, 송재학 등 5명이었다. 데뷔 10년을 전후로 한, 그리고 작품상의 성격을 띤 것이 월하문학상의 선정조건이라면 위의 5명의 시인들은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을 갖춘 셈이 아닐까. 김명인, 최승호 두 분을 먼저 골라 보았는데, 이는 심사에서 행하는 ‘먼저 두 사람 추천하기’라는 관례를 따른 것이자 그 이상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갖고 있는 편견이 이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인데, 곧 시란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 그것.

(A) 떠도는 길이 길로만 분주하듯/마음은 늘 솟구치는 바람에 스쳐 자즈라져/나는…(<물 속의 빈 집 Ⅰ>)
(B) 저문 강물 갇히면 어디에 묻어두려고/나는…(<물 속의 빈집 Ⅱ>)
(C) 잎사귀들이여, 너덜너덜 낡아서 너희들이/염주소리를 내는구나, 나는…(<가을에>)

이러한 시구의 매력이란 무엇일까. ‘나’와 ‘너’만으로 구성된 사유형식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나’만을 세계의 중심에다 두고 세계를 인식할 때 세계란 특이한 모습으로 아름다울 수도 있으리라. 거기에는 타자가 없는 만큼 자기 황홀증으로 치닫게 마련이 아닐까. 이 경우 언어는 자기 회전을 되풀이 할 것이며, 또 그것은 마침내 빈곤에로 향하지 않겠는가. 정신이라니, 당초 정신의 관여를 배제했던 것이 아닐까. 그 순간 비로소, ‘무성한 초록 귀떼기마다 퍼어런’ 미의 표정이 감지된다. 이 미의 표정이란 정신을 희생한 대가로 얻어진 열매가 아니었을까.
만일 이 열매를 정신의 운동, 헤겔투로 말해 부정의 운동 앞에 세우면 어떠할까.

(가) 그리마 한 마리가 수 많은 다리를 끌고/벽을 달린다/수많은 그림자 다리들이 벽을 달린다/벽을 타고 달리는 저 놈의/눈알이 누워 있는 나를…(<무일물의 밤 4>)
(나) 외할머니의 꿀을 지켜야 한다/핏줄은 끈적거리고/지긋지긋한 나라에서도 애국심은 발동하여/나는…(<벌통 옆에서>)
(다) 나는 날개 없는 사람/긴 터널을, 거리를, 회전문을/지나가지만…(<골리앗개구리>)

정신이 관여하는 세계란 그리마의 그 파충류 같은 눈알의 감시하에 놓이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부정의 정신이란 자기자신까지 그 해를 입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계란 타자인 까닭이다. 그 때 ‘나’는 자기방어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이 부조리한 세계의 적대관계에서 ‘나’의 생존방식을 위해 필요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전략개념의 도입이 그것. 환각(자기황홀증)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기가 그것. 그 전략은 그러니까 ‘나’에게 기운나게 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에서 비롯되는 것.

추억들이 쓸쓸하게 지나간다./붙잡아 두려하지 말아야 한다./망령들을 따라가 귀신굴에 살림을 차리지 말아야 한다./관능도 텅 빈 껍질이다.(<공터에 풀벌레 울 때>)

이는 일체를 부정하는 저 空의 세계의 흉내일까. 다시 말해, 정신이 부정의 운동을 본질로 한다면 그 한계란 무엇일까.
‘초록 귀떼기마다 퍼어런 잎새’쪽이냐, ‘망령들을 따라가 귀신굴에 살림을 차리지 말아야 한다’쪽이냐. 이런 물음은 또 감각쪽이냐 정신쪽이냐로 바꾸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겠는가. 또 이것은 인간의 유한성과 그것으로 말미암은 형언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환각(에로스)의 형태로 넘어서고자 하는 일과 이 환각조차 부정해 버리고자 하는 일 사이에 벌어지는 인간존재의 딜레머 자체가 아닐 것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당황하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두 개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지금 너는 무슨 철학을 하고 있느냐라는 목소리가 그 하나. 그러자 또 다른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겠는가. 철학에로 이끌고 간 것은 정작 김명인, 최승호 두 사람의 작품이 아니었던가라고, 이 목소리는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보니 사회를 맡은 김선학 씨가 한심하다는 듯 나를 보고 있지 않겠는가. 어두운 시절 우리의 어느 민족시인 모양 ‘표할 하늘도 없다’라는 시늉을 하지 말라는 눈초리로, 그 순간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좀더 공부를 한 뒤엔 철학쪽에 표를 하겠지만 지금은 시쪽에다 표하기가 그것.(김윤식)

 

 

 

파란 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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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상자 : 박태일, 「명지 물끝」 연작 외

 


2. 수상작품

「명지 물끝·5」

꼬리 문드러진 준치가 희게 솟다 가라앉았다 장어발이 통발 멀리 드문드문 갈잎이 되받아 주는 청둥오리 울음소리 마지막 찌 끝에 몸을 얹고 물가 곤한 물거품처럼 홀로 밀리면 겨울은 늘 낯선 마을 첫골목이었다.

 

 

명지 물끝.6

 

산 하나 산에 떠밀려 와 물밑으로 내려선다 쇠기러기 꾸룩 꾸룩 그새로 어깨 짚고 따음표처럼 돋았다 저녁 물마을 낮은 데 낮은 길은 멀리 빗발로 그치고 쥐불 식은 잿빛 두렁 태삼아 태삼아 하얀 당파 씹으시며 어머니 날 부르는.

 

 

 

명지 끝물.7

 

날개짓 푸른 하늘 꿈꾼다 건너 산자락 재실 낮은 골짝 다시 돌아보며 웃을 때 발 끝에 닿았다 달아나는 털게 달랑게 차운 손 호호 갈잎 젖히며 스며도 함께 쉴 곳 어디에도 없지 잊어버리자 가슴 가운데를 지르는 바람 한 끝 물오리 고개 묻은 모래등 멀리 따로 길을 닦고 터를 이루어 사람들 마을로 가는 모든 지름길을 지워버린다 잊지 말자.

 

 

 

명지 끝물.8

 

물 곳곳 마을 곳곳 눈 내린다 포실포실 보스랑 눈 아침에 앞서고 뒤서며 빈 터마다

 

가라앉는 모래무덤 하나 둘 어허 넘자 어허 넘어 들에서 물로 하늘 밖으로 내 목젖 마른자리 발톱을 세워 훌훌이 날아가는 붉은 물떼새.

 

 

 

 

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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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심사위원 : 정한모(시인), 구상(시인), 김종길(시인·고려대 교수)

 


4. 심사평

 

박태일의 「명지 물끝 5·6·7·8」을 읽고 오랜만에 詩다운 詩를 만난 기쁨을 맛보았다. 그것은 이를테면 양담배곽 속의 은박지에 부젓가락으로 지져서 그린 李仲燮의 小品을 만났을 때의 기쁨 같은 기쁨이다. 詩와 그림 사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비슷한 감동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것은 그것들이 다 같이 순수하고 치열한 예술정신의 結晶體들이기 때문이다.
「명지 물끝 5·6·7·8」은 連作으로 된 小品들로서 각각 두 개 내지 세 개의 문장들이 구두점 없이 연속되다가 끝에 가서 종결 구두점으로 끝난다. 그러나 형태상으로는 한 개의 문장이 내용상으로는 두 개, 세 개 또는 네 개의 문장들의 몽타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 連作 중의 「명지 물끝 5」를 예로 들어보자.

꼬리 문드러진 준치가 희게 솟다 가라앉았다 장어발이 통발 멀리 드문드문 갈잎이 되받아 주는 청둥오리 울음소리 마지막 찌 끝에 몸을 얹고 물가 곤한 물거품처럼 홀로 밀리면 겨울은 늘 낯선 마을 첫골목이었다.

이것은 형태상으로는 “꼬리……가라앉았다”가 한 개의 문장이요 나머지가 또 하나의 문장이니 도합 두 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두 번째 문장은 형태상으로만 한 개의 문장일 뿐 “장어발이…홀로 밀리면”이라는 그것의 從屬節은 적어도 세 개 정도의 문장으로 풀어써야만 그 내용이 분명해 질만큼 복잡하고 애매한 이미지들의 몽타주가 되어 있다. 이것을 애매하다고 하는 것은 특히 “몸을 얹고…홀로 밀리면”이라는 이 節의 끝 부분을 두고 하는 말로 이 경우의 “몸”이 무엇의 몸인지 분명치 않은 것이다. 그것이 “장어발”의 몸이라면 구문상으로는 말이 되지만 “장어발의 몸”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의미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몸은 “청둥오리”의 몸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환각상태의 作中話者의 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애매한 구문도 이 작품에서는 큰 흠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작품이(그리고 이 連作 전체가) 이른바 ‘意識의 흐름’이라는 방법의 주된 기교인 ‘內的 獨白’의 양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J·T·쉬플리의 ꡔ세계문학용어사전ꡕ에 의하면 ‘意識의 흐름’은 “(1)우리의 의식적 과정의 앞뒤가 맞지 않는 요소를 활용하며 (2)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무시하거나 우리의 일상의 깨어있는 상태의 움직임 대신 새로운 형식을 설정하며 (3)동기와 충동의 내면적 분석을 추구하며 (4)특히 감각적 인상을 강조한다.” 쉬플리의 이 설명은 박태일의 「명지 물끝」 連作의 방법적 특성을 더할 나위 없이 잘 말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連作과 같은 성질의 작품들에 있어서의 통사론적 내지 의미론적 혼란 내지 애매성은 오히려 당연한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意識의 흐름’의 방법을 채택하는 경우에도 그 성과에 차등이 생기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이 連作 중 9은 ‘고 김헌준’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詩人이 작고한 친구를 생각하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물 곳곳 마을 곳곳 눈 내린다 포실포실 보스랑눈 아침에 앞서고 뒤서며 빈터마다 가라앉는 모래무덤 하나 둘 어허 넘자 어허 넘어 뭍에서 물로 하늘 밖으로 내 목젖 마른 자리 발톱을 세워 훌훌이 날아가는 붉은 물떼새.

이 小品의 끝부분 “…내 목젖 마른 자리 발톱을 세워 훌훌이 날아가는 붉은 물떼새”의 섬세한 아픔은 또한 李仲燮이 닭이나 새를 그릴 때 붉은 물감으로 그은 그것들의 눈에서 느끼는 아픔과도 비슷하다. 사물의 겉모습만을 그리는 엉성한 詩가 범람하는 현재의 우리 詩壇에서 비록 小品들이지만 밀도 높은 시적 眞實을 건져낸 박태일의 「명지 물끝 5·6·7·8」은 유형이나 성과에 있어 현재의 괄목할만한 실험적 업적이라 할만하다.(金宗吉)

 

 

 

파란 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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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창고 / 송재학

 

 

들판의 창고는 대체로 회색이다 녹색 창고만 해도 들판과 어울리지 않는 색조 때문에 적재가 쉽지 않다 회색 창고라면 무엇이던 쌓아두기에 편하겠지만 내가 본 것은 검은 창고, 고산족의 다랑이논 옆에 있다 반추동물처럼 느리게 엎드렸는데 귀가 없다 먹거리만 쟁여놓은 창고가 아니다 높이와 깊이가 필요한 고산협곡에서 바람을 선택한 검은색이니까 바람은 쉬이 몸의 기별과 겹친다 내가 원했던 검은색이다 야크의 털이 검은 게 아니라 그 시선이 어둡다 이목구비가 없는 것들에게 검고 깜깜하거나 거무죽죽하며 거무스름하면서 꺼뭇꺼뭇한 얼룩은 때로 몸이고 생각이다 또한 검은색은 위로의 손바닥이 만지는 시간의 늙은 표면이다 산을 넘어야 하는 우편낭도 검은색이지만, 유서를 남기는 편지지의 감정마저 검은색이다 밤의 결혼식을 보았다면 산과 저녁의 어름에 검은색 청혼을 먼저 지나왔겠다 입을 한껏 벌린 검은 짐승의 하품까지 모두 검은 창고에 보관된 오래된 말이다

 

 

 

검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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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전봉건문학상 수상자로 송재학(61) 시인이 선정됐다고 상 운영위원회가 30일 밝혔다. 수상작은 시집 '검은색'이다.

 

심사위원단은 "어느 페이지로 들어서든 사물들이 시를 넘어서 나아가는 장려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때로 절벽 같은 위태로움으로, 평야와 같은 광대함으로 시를 열어 보인다"고 평했다.

 

수상작과 수상 소감, 심사평 등은 월간 시 전문지 '현대시학' 10월호에 실린다. 시상식은 오는 11월 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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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의 초상 / 김행숙

 


입술들의 물결, 어떤 입술은 높고 어떤 입술은 낮아서 안개 속의 도시 같고, 어떤 가슴은 크고 어떤 가슴은 작아서 멍하니 바라보는 창밖의 풍경 같고, 끝 모를 장례행렬, 어떤 눈동자는 진흙처럼 어둡고 어떤 눈동자는 촛불처럼 붉어서 노을에 젖은 회색 구름의 띠 같고, 어떤 손짓은 멀리 떠나보내느라 흔들리고 어떤 손짓은 어서 돌아오라고 흔들려서 검은 새떼들이 저물녘 허공에 펼치는 어지러운 군무 같고, 어떤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고 어떤 얼굴은 꿈에서 보는 것 같고 어떤 얼굴은 영원히 보게 될 것 같아서 너의 마지막 얼굴 같고, 아, 하고 입을 벌리면 아, 하고 입을 벌리는 것 같아서 살아 있는 얼굴 같고,

 

 

 

 

에코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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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현대시학사가 전후 신서정파의 기수로 알려진 전봉건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제1회 전봉건문학상 수상자로 김행숙 시인이 결정되었다. 수상 시집은 김행숙 시인의 에코의 초상이다. 전봉건문학상은 지난 한 해 발간한 중견 시인들의 시집을 대상으로 엄정한 심사 과정을 통해 상의 위상을 높이고, 우리 시단의 대표적인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심사위원(남진우, 홍일표, 권혁웅, 조재룡)들은 김행숙의 시집에코의 초상도처에 선언과 주장과 판결의 웅성거림만 가득한 세계에서 힘겹게 에코의 연약한 목소리를, 그 사라져가는 현존을 기억하고 이어가려고 하는 그녀의 노력은 이번 시집에서 아름다운 시적 메아리를 낳고 있다.”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한 삶에서 뿜어 나오는 미광 하나로 김행숙이 공동체 저 밑바닥의 무의식을 불러내 지금-여기의 절망을 차분히 기록해나갈 때, 그의 시는 벌써 조용한 절규이며, 이 비극적인 삶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는 조금만 울려도 좋다고 믿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단호하고도 아름다운 실천이다라고 평하였다.

 

수상 작품과 수상 소감, 심사평 등은 월간 현대시학10월호에 발표될 예정이다.

 

수상자인 김행숙 시인은 1970년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고려대 국어교육과 및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9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사춘기(문학과지성사, 2003)이별의 능력(문학과지성사, 2007), 타인의 의미(민음사, 2010),에코의 초상(문학과지성사, 2014) 이 있고, 현재 강남대학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9년 제9회 노작문학상과 2014년 제8회 웹진 시인광장올해의 좋은시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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