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환유 1 / 김승희
몇 마장인지 알지 못할
장마비가 연일연일 내리고 있다.
창이 좁아서인지
세상이 위태하리만치 어두워진다.
어둡고 긴, 무슨 포식의,
동물 창자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듯.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긴 너무 어두워요, 말 좀 해봐요,
---말하면 뭘하니? 넌 날 볼 수가 없잖아,
---그래도 괜찮아요, 말하면 밝아질 테니까요.
세상엔 벽이 되려는 창과 싸우는 사람과
창이 되려는 벽과 싸우는 사람,
그렇게 두 진영의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자택인 듯이
살고 있는 것 같다.
나, 나, 나라는 나가비는
영구 임대주택인 듯이, 아니, 아니,
임시 임대주택인 듯이 生을 대하며
조만간 흘러 가버리고 말 것 같다.
너무 쉽게 흘러가 주는 것은 아닐까?
가끔씩 조명이 너무 어둡다고
투덜대기나 하면서 ......
위조 여권 같은 말을 따라서
출렁출렁......글썽글썽.....
여류시인 김승희씨가 문학사상사가 제정한 제5회 소월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 『떠도는 환유』 외 10편이다.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그림 속의 물』이 당선돼 문단에 나온 김씨는 그동안 시집 『왼손을 위한 협주곡』 『태양미사』 『달걀 속의 생』 등을 펴냈다. 시상식은 12월 초순 열릴 예정이다.
일찍부터 시는 인류문화의 영화요, 인간 정신의 순도 높은 결정체로 일컬어져 왔다. 특히 좋은 시는 역사를 움직이는 대동맥이요 미래를 개척하는 용기와 슬기의 원천이다. 시인 김승희는 1973년 `그림 속의 물`로 등단한 이래 언어의 꾸준한 조탁과 작품세계의 끊임없는 확충을 통해 한국 시단의 한 별자리를 이루었다. 그 정성과 솜씨를 주목한다.
- 제5회 소월시문학상 선정 이유서 중에서
“첨단적 탐구의식으로 빛나는 에토스적 정채(精彩)” 김승희 시인의 근작들의 에토스적 정채(精彩)는 앞으로도 더욱 발해줄 것을 믿고 바라는 바이다 ─구상
김승희의 지성은 첨예 냉철하고 독특한 미학의 분말을 뿌린다. 건조하면서 뜨겁고 고뇌로운 그의 언어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껄끄럽고 괴로운 점성을 느끼게 한다 ─ 김남조
그의 시는 어떤 경우에나 아주 예각적인 손길, 또는 첨단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탐구의식을 바닥에 깔고 있다 ─ 김용직
불평을 하자면 그의 시는 수준은 괜찮지만, 한 발 덜 나간 듯한 뒷맛을 준다. 좋은 시를 만들려고 한 데서 나온 것으로 판단된다 ─ 황동규
김승희 씨의 작품들은 인식으로서의 언어의 가능성을 최대한 확대시켜 놓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적 정황의 이중적인 설정, 서정적 자아의 독특한 형상, 변화 있는 어조 등이 모두 개성적인 목소리로 뭉쳐 나온다 ─ 권영민
- 심사평 중에서
“인생의 불가사의한 신비를 열어줄 마법의 중심언어를 찾으며”출구 없는 미로 속에서 점점 더 희망이 고갈되어 가는 이 엔트로피 증가 시대의 어정쩡한 인간의 뿌리 뽑힌 모습이 `떠도는 환유의 이야기`이고 이 모든 떠돎의 환유 고리의 몽타주가 우리의 삶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열려라 참깨!”하고 말하면 비밀한 보물 궁전이 열렸던 것처럼 “열려라 참깨!” 같은 그런 열쇠 언어, 인생의 불가사의한 신비를 열어줄 마법의 중심언어를 아직 찾지 못했기에 저는 여전히 그것을 찾고 있는데 그 텅 빈 중심언어를 찾으며 빙글빙글 맴돌고 있는 이 방황의 흔적 자체가 바로 제 인생의 불가사의한 최고의 보물창고가 아닌가 하는 어쩔 수 없이 행복한 느낌도 있습니다.
- 수상소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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