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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상자 : 고진하

 


2. 수상작품 : 「즈므 마을 1」외 5편

 


「즈므 마을1」

푸른 이정표 선명한
즈므 마을*, 그곳으로 가는 산자락은 가파르다
화전을 일궜을직한 산자락엔 하얀 찔레꽃 머위넝쿨 우거지고
저물녁이면, 어스름들이 모여들어
아늑한 풀섶둥지에 맨발의 새들을 불러모은다
즈므 마을, 이미 지상에서 사라진
성소(聖所)를 세우고 싶은 곳, 나는
마을 입구에 들어서며 발에서 신발을 벗는다
벌써 얄팍한 상혼(商魂)들이 스쳐간 팻말이
어딘 내 걸음을 가로막아도
울타리 없는 밤하늘에 뜬 별빛 몇 점
지팡이 삼아, 꼬불꼬불한 산모롱이를 돈다
지인이라곤 없는 마을, 송이버섯 같은
집들에서 새어나오는 가물거리는 불빛만이
날 반겨준다 저 사소한 반김에도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내 지나온
산모롱이 쪽에서 들려오는 부엉이 소리
저 나직한 소리의 중심에, 말뚝 몇 개
박아보자, 이 가출(家出)의 하룻밤!

 

*. 즈므 마을 : <저무는 마을>에서 유래된, 강릉에 있는 작은 산골마을.

 

 

야생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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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심사위원 : 유종호(문학평론가, 연세대 교수), 김윤식(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김주연(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김선학(동국대 교수), 김재홍(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4. 심사평

「성화(聖化)된 이미지와 생명의 시」

심사평은 작가들의 세계에 대한 가치 판단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혼동되는 일이 있다. 모든 작가들은 그들의 개별적인 세계를 갖고 있으며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개별적인 비평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심사는 언제나 이른바 상대평가로 연결되기 마련이며, 거기에는 작품 자체에 대한 것 이외의 요소가 이따금 개입하기도 한다. 예컨대 그 작가의 대상 작품 말고도 그 작가의 전체적 역량이 고려되는 일이 때로 불가피한 것이다.
심사대상이 된 다섯 명의 시인들, 고진하, 남진우, 장석남, 최승호, 함민복의 시들을 읽으면서도 이러한 요소가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었다. 가령 장석남과 최승호는 그 동안의 수상 경력을 이유로, 그리고 함민복은 적은 분량을 이유로(물론, 심사자들에 따라서 그 이유는 다소간 다르기는 했지만) 우선 양보되었다. 따라서 초점은 고진하와 남진우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으며, 고진하의 시가 상대적으로 설득력이 높다는 이유에 의해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수상작 「즈므 마을 1」은 이 시인의 다른 작품 「黙言의 날」과 함께 매우 아름다운 시다. 강릉 근처의 한 시골 마을의 풍경을 담담하게 적고 있는 「즈므 마을 1」은 시인 자신의 성화(聖化)된 심성과의 조용한 교환을 통한 성화된 이미지가 신뢰를 준다. 반면에 깊이에 있어서 다소간 평이하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남진우의 시들은 이와는 매우 상반된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고진하의 시가 생명의 시라면 남진우의 시들은 죽음에 대한 관심이나 매혹을 떨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양자를 이분법으로 가르는 것이 반드시 정당한 것은 아니지만, 그에 대한 관심과 대상이 확연히 다른 것은 사실이다. 남진우의 시는 이번에 새를 대상으로 한 것들이 많았는데, 난해성에 관해 심사자들의 논의가 있었다. 의식을 시의 대상으로 할수록 시적 애매모호성에 대한 배려와 그 성취는 부담스러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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