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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키드의 사랑1 / 유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독한 마음의 열병,

나 그때 한여름날의 승냥이처럼 우우거렸네

욕정이 없었다면 생도 없었으리

수음 아니면 절망이겠지, 학교를 저주하며

모든 금지된 것들을 열망하며, 나 이곳을 서성였다네

 

흠집 많은 중고 제품들의 거리에서

한없이 위안받았네 나 이미, 그때

돌이킬 수 없이 목이 쉰 야외 전축이었기에

올리비아 하세와 진추하, 그 여름의 킬러 또는 별빛

포르노의 여왕 세카, 그리고 비틀즈 해적판을 찾아서

비틀거리며 그 등록 거부한 세상을 찾아서

내 가슴엔 온통 해적들만이 들끓었네

해적들의 애꾸눈이 내가 보이지 않는 길의 노래를 가르쳐 주었네

 

교과서 갈피에 숨겨논 빨간책, 육체의 악마와

사랑에 빠졌지, 각종 공인된 진리는 발가벗은 나신

그 캄캄한 허무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나 모든 선의 경전이 끝나는 곳에서 악마처럼

착해지고 싶었네, 내가 할 수 있는 짓이란 고작

이 세계의 좁은 지하실 속에서 안간힘으로 죽음을 유회하는 것,

내일을 향한 설렘이여, 우우

무덤은 너를 군것질하며 줄기차게 삶을 기다리네

 

내 청춘의 레지스탕스, 자상 위의 난

햇살에 의해 남김없이 저격되었지

세상의 열병이 내 몸 속에 들어와 불을 밝혔네

금지된 의 집어등이여, 지하의 모든 나를 불러내다오

나는 사유의 야바위꾼, 구멍난 영혼, 흠집 가득한 기억의 육체들을

별빛의 찬란함으로 팔아먹는다네

내 마음의 지하상가는 여전히 승냥이 울음으로 붐비고

나 끝끝내 목이 쉰 야외 전축처럼

해적을 노래부르고 해적의 애꾸눈으로 사랑하리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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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1 / 이기철

 

 

어떤 노래를 부르면 내 한 번도 바라보지 못한

짐승들이 즐거워질까

어떤 노래를 부르면 내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까치도 즐거워질까

급히 달려와 내 등 뒤에 연좌連坐한 시간들과

노동으로 부은 소의 발등을 위해

이 세상 가장 청정한 언어를 빌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을 노래하고 싶다

나이 들기 전에 늙어버린 단풍잎들은 내 가슴팍을 한 번 때리고

곧 땅 속으로 묻힌다

죽기 전에 나무둥치를 감고 타오르는 저녁놀은

지상의 죽음이 저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가르치는 걸까

살이 연한 능금과 배들은 태어나 첫 번째 베어무는

어린 아이의 갓 돋은 치아의 기쁨을 위해 제 살을 바치고

군집으로 몰려오는 어둠은 제 깊은 속에다

아직 밤길에 서툰 새끼 짐승들을 위해

군데군데 별들을박아놓았다

 

우리가 아무리 높이 올라도

검은 새가 나는 하늘을 밟을 수는 없고

우리가 아무리 정밀을 향해 손짓해도

정적으로 날아간 흰 나비의 길을

걸을 수는 없다

햇빛을 몰아내는 밤은 늘 기슭에서부터 몰려와

대지의 중심을 덮고

고갈되기 전에 바다에 닿아야 하는 물들은

쉬지 않고 하류로 내려간다

들도 친숙해지면 우리의 외로움 덮어주는

이불이 된다

산과 들판에 집 없이도 잠드는 목숨을 위해

거칠고 무딘 것들을 달래는 것이

지혜의 첫 걸음이다

달콤하지 않아도 된다, 내 부르는 노래가

발 시린 짐승의 무릎을 덮는 짚이기만 하다면,

향기롭지 않아도 된다, 내 부르는 노래가

이슬 한 방울에도 온몸이 젖는 풀벌레의 날개를 가릴 수 있는

둥글고 넓은 나뭇잎이기만 하다면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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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떼들에게로의 망명 / 장석남

 

 

1

찌르라기떼가 왔다

쌀 씻어 안치는 소리처럼 우는

검은 새떼들

찌르라기떼가 몰고 온 봄 하늘은

햇빛 속인데도 저물었다

저문 하늘을 업고 제 울음 속을 떠도는

찌르라기 속에

환한 봉분이 하나 보인다.

 

2

누군가 찌르라기 울음 속에 누워 있단 말인가

봄 햇빛이 너무 뻑뻑해

오래 생각할 수 없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나는 저 새떼들이 나를 메고 어디론가 가리라,

저 햇빛 속인데도 캄캄한 세월 넘어 자기 울음 가파른

어느 기슭엔가로 데리고 가리라는 것을 안다

찌르라기떼 가고 마음엔 늘

누군가 쌀을 안친다

아무도 없는데

아궁이 앞이 환하다.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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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마을 / 최승호

 

 

나비처럼 소풍가고 싶다

나비처럼 소풍가고 싶다

그렇게 시를 쓰는 아이와 평화로운 사람은 소풍을 가고

큰 공을 굴리는 운동회날

코방아를 찧고 다시 뛰어가는 아이에게

평화로운 사람은 박수갈채를 보낼 것이다

 

산사태는 왜 한밤중에

골짜기 집들을 뭉개버리는가

곰은 왜 마을을 습격하고

산불은 왜 마을 가까운 산들까지 번져 오는가

한밤중에 횃불을 드는 마을의 소리

한밤중에 웅성거리는 마을의 소리

 

우리들은 고슴도치의 마을에서

온몸에 가시바늘을 키운다

평화로운 사람은 문을 걸고

잠 속에서도 곰에게 쫓길 것이다

 

우리들은 고슴도치의 집에서

돌담을 높이 쌓는다

평화로운 사람은 한숨을 쉬고

문풍지 우는 긴 겨울밤엔 莊子를 읽으리라

 

 

 

 

고슴도치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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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러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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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 이성복

 

 

대체로 우리는 아픔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몸 어딘가가 썩어 들어가는데도 아프지 않다면, 이보다 더 난처한 일이 있을까? 문제는 우리의 아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 있다. 오히려 아픔은 살아있음의 징조이며, 살아야겠음의 경보라고나 할 것이다.

 

정신의 아픔은 육체의 아픔에 비하여 잘 감지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은 병들어 있으면서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의 아픔, 그것만 해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병들어 있음을 아는 것은, 치유가 아니라 할지라도 치유의 첫 단계일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픔만 강조하게 되면, 그 아픔을 가져오게 한 것들을 은폐하거나 신비화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지금 아프다는 사실이다. 그 진실 옆에 있다는 확실한느낌과, 그로부터 언제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는 불안한 느낌의 뒤범벅이 우리의 행복감일 것이다. 망각은 삶의 죽음이고, 아픔은 죽음의 삶이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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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이마를 대다 영원은 / 위선환


모든, 들과 온갖, 들이 모든, 이며 온갖, 이자 하나, 가되는 막대한 시공간이다

 

남자가 이마를 들었고, 허리를 세웠고, 무릎을 펴며 일어섰고

 

이마에 묻은 흙먼지를 닦았고

걸어서,

 

지평으로, 지평 너머 초승달 지는 첫새벽의 안개 아래에 묻힌 폐허에 흩어진 유적의 돌기둥이 베고

누운 이른 아침에 햇빛 차오른 대지에는 하루의 힘이 자라면서 태양이 높이 뜨고 저물어서 나날이
지나가는 여러 밤이 오고 만월이 뜨더니 다시 캄캄해진 지평에 초승달이 꽂히는 새벽에 닿기까지,

마침내

영원으로, 전신을 밀며 걸어 들어간 일시와

돌문을 밀고 나온 여자가 오래전에 죽은 전신을 밀며 남자의 전신 속으로 걸어 들어간 일시가
일치한,

 

동일시에, 남자 안에서 눈 뜬 여자의

 

저, 눈에,

 

빛이.

 

 

 

 

시작하는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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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이상화기념사업회(이사장 최규목)는 2019년 제34회 이상화시인상 수상자에 위선환 시인을, 수상작품에는 그의 시집 '시작하는 빛 '을 선정했다. 심사는 오세영(심사위원장) 시인, 송재학 시인, 송종규 시인,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가 맡았다.

 

위선환 시인은 1941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1960년 서정주·박두진이 선(選)한 '용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으나 1970년 이후 30년간 시를 끊고 살았다. 1999년부터 다시 시를 쓰면서, 시집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 '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 '새떼를 베끼다' '두근거리다' '탐진강' '수평을 가리키다', '시작하는 빛' 등을 펴냈다. 현대시작품상, 현대시학작품상을 수상했다.

 

유성호 평론가는 "위선환의 시는 언어적 상형을 통해 낯선 세계의 깊이와 높이와 극한에 가 닿으면서 시간을 확장하고, 그것을 근원적 향수에 가까운 어떤 운동으로 전이시켜간다" 며 "구체적 감각을 통해 적막의 깊이를 설계하고 그것을 선명한 영상으로 잡아내는 그의 시법(詩法)은 우리 시단에 빛나는 개성이자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다."고 평했다. 시상식은 5월 24일(금) 이상화 문학제 때 열리며, 상금은 2천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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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풀 끗혜 이슬* / 송재학

 

 

조션의 청년 시인 진명은 파르스름한 달빛튼 창연한 밤, 대면려관 접대부 산월이를션유 배에다 태와가지고 죽도 근처로 노질을 하며 흘너갓다

원고지 2백 장 가찹게 애쓴 소셜은 도서회사圖書會社에셔 소포로 도라왔고 밤에는점점 눈 한 점 붓치지 못하면셔 각혈은 수시로 울컥했다

권연眷然을 태오면서 압길이 막막하여 진명은 쇠진한 몸에 침입하여 가삼속을 놀래키는 바람을 생각한다

이제 혼자 하는 말소리로 자기를 위로허여도 못한다

따라온 산월이 또한 진명의 뜻을 마암 가온되셔 숭배하기에 자신이 열두 살 때 가장

비극으로 자살하려고 격어온 사실을 이미 고백하얏다

무엇 때문에 사랏던가

진명은 곰곰 생각하얏다

사람들에게 람포(LAMP) 갓튼 시를 쓰는 할 일 만흔 몸이고자 햇고 조션 문단에셔 웃뚝 셔기도 햇다

금젼에 욕망을 가지고 지은 소셜이 그 흐린 글발을 엇지 만도 사회에 널되겟니 그런

이상을 가진 시인이엇다

기행 화홍을 만난 거시 운명이리면 운명이엇다

화홍은 유행병으로 짤븐 생을 마치엇다

'진명 씨, 몸은 져어 혹 속에 스러지는 처량한 길이나 제 이 혼은 이 세상에 남아잇셔

진명 씨에 성공하시는 것과 한평상을 무사이 사시다가 도라오시는 거슬 고대하여요' 라는 비장한 유연을 하얏다

화홍이 죽고 술에 의지해 사럿스니 천고 양승원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나가 위해 동래 기장에 휴양 겸 왓던 진명이다

밑창문 너머 내다보면 멀니 끗업는 바닷물이 바로 눈압혜 나려다보힌다

바닷물만 보히는 거시 안이다

진명은 자신의 평상도 생생하게 물결 우에서 파도처럼 춤추는 것도 보앗다

과거도 보앗고 압날도 보앗다

처음으로 소셜을 시작해서 화홍과 련해를 중심으로 자신의 반셩이 주재인 소셜을 마쳣

이 시를 못 쓰게 부추긴 거슨 아니엇다라고 희미하게 알고 잇셧지만 자신의

소셜을 좋은 평판을 바다서 원고료도 넉넉하게 왓다

오만한 마암을 미덧다

하지만 다음 소셜은 채택되지 못하고 도라왓셧다

진명의 신명은 시드럿다

소셜이 자기 직업이 안이란 걸 시인 진명은 깨우치지 못한다

궁핍의 겁질이 시를 못 쓰게 부추긴 거슨 아니엇다라고 희미하게 알고 잇셧지만 자신의 궁핍이 또한 조션의 궁핍이라는 것도 청년은 자각하지 못햇다

진명은 시는 까맛게 이즈바리고 다시 술을 사괴거나 동래 온졍溫泉 이나 차즈면서 생을 점점 깍아간다

나무에도 돌에도 기대지 못하는 시절이다

결국 앗가온 청년 진명은 자신이 폐병쟁이이라는 거슬알고 자신을 정답게 챙기던 산월과 함께 죽고자 햇다

나는 내 생명의 임자가 안이엇구나, 진명은 탄식햇다

산월은 진명의 눈빗틀 보고 넘우 가삼이 암흐고 쓰리엇다

청명월야 달은 발가셔 두 사람은 저절로 말갓흔 눈물을 흘넛다

폐병과 가난과 술과 사랑과 죽엄은 오랜 동모 모양 어깨동모 길동모 하면서 본심이 청양하든 청년 시인 진명에게 우슴을 지앗다

풀 끗혜 이슬 생기듯 동모가 또 생기는가 보다

 

"산월이가 처량하여 할가 바 못 울고 잇지 우는 거슨 그만둡시다"

"에그 져는 별안간에 처량한 생각이 나서 그러해요"

"산월이 나는 죽는 길노 가려고 결심하여"

"진명 씨 져도 갓치 죽어요"

" 아 감사하오 날 갓튼 썩어가는 폐병 인생에게 생명을 앗기다니"

" 진명 씨를 모신 거슨 만난을 버셔나 말근 세계로 가는 무상한 사에 광영이라 생각합니다"

" 조흔 각오요 산월이 우리의 져세상은 흐릴 거시 업슬거이오"

" 진명 씨 져는 만족히 세상을 떠남니"

" 오오 산월이"

 

* 딱지본 옛 소설 슬프다 --풀 끗혜 이슬에서 발췌 및 인용 첨삭. 원래 이작품은 딱지본 미남자의 루와 합본으로 수록되어 있었다

시 후반부터 진명과 산월의 대화는 원문 그대로 발췌 인용했다 맞춤법은 대체로 출간 당시의 표기를 따랐으며 띄어쓰기는 현재의 문법 기준에 맞추었다

 

 

 

 

슬프다 풀 끗혜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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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군은 지난 26일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으로 큰 업적을 남긴 고흥 출신 송수권 시인의 문학적 성과와 업적을 선양하기 위한 ‘제5회 송수권 시낭송대회 및 시문학상’ 시상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제5회 송수권 시문학상 본상에는 송재학 시인의 ‘슬프다 풀 끗혜 이슬’, 남도시인상은 박일만 시인의 ‘뼈의 속도’, 젊은시인상은 이은규 시인의 ‘오래 속삭여도 좋은 이야기’를 각각 선정 시상했다.

그리고, 송수권 시낭송대회는 사전 녹음파일로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른 30명이 열띤 경연을 펼친 결과 ‘등잔’을 낭송한 김현정(경남 거제시)씨가 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전라남도지사상과 상금 1백만원의 주인공이 됐다.

송수권 시문학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시인 고재종 위원장은 제5회 송수권 시문학상 수상자들은 우리나라의 어떤 문학상과 비교해도 우월할 정도로 한국시의 현재와 미래의 한 축을 담보하는 시인들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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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에 불타다 / 정현종

 

 

버스 타고 

근동 지방을 구불구불 가다가 

드넓은 밀밭을 검게 태운

구름 그림자를 보았다 

구름 그림자에 타서! 대지는 

여기저기 검게 그을려 있었다.

 

욕망 - 구름 그림자 

마음 - 구름 그림자

 - 구름 그림자에

일생은 그을려

 - 구름 그림자 

 - 구름 그림자 

 - 구름 그림자에  

세계는 검게 그을려

 

그 모든 너울을 걷어낸 뒤의

구름 자체를 나는 좋아하고

그리고 

은유로서의 그림자에 불타는 바이오나

 

 

 

제26회 김달진문학상 수상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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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77) 시인과 김재홍(69) 평론가가 시집 <그림자에 불타다>(문학과지성사)와 평론집 <생명, 사랑, 평등의 시학탐구>(서정시학)2015년 제26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에 각각 선정됐다.

 

김달진문학상은 진해 출신 김달진 시인의 시적 업적을 기리고자 고인 1주기인 지난 1990년 제정됐다. ()시사랑문화인협의회와 김달진문학관이 주최하고 창원시와 서울신문사가 후원한다.

 

시와 평론 두 부문에서 문단 경력 10년 이상인 작가의 최근 1년간(전년도 4월부터 그해 3월까지) 발간된 작품을 대상으로 시상을 해왔다.

 

올해 수상자로 뽑힌 정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지난 1965<현대문학> 3월호에 박두진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해 1972년에 첫 시집 <사물의 꿈>을 비롯해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등의 시집을 냈다. 정 시인은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 연세대 국문과 교수 등으로 일했다.

 

<그림자에 불타다>는 시의 정통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건청 시인은 "정현종의 짧은 시편은 선연한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한 오랜 내공과 고투의 결과다. 정 시인은 유구한 시의 정통을 이어받아 궁벽한 고독 속으로 침잠해 시를 건져내오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시인은 수상 소감으로 글쓰기에 더 매진하겠다고 했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세상 일과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고, 그리하여 생각과 감정이 균형과 조화를 향해 움직이며 따라서 정신은 넓어지고 깊어진다""나는 꽤 오랫동안 시를 쓰고 산문도 썼는데, 그게 얼마나 공부가 됐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수상자로 선정된 김재홍 문학평론가는 충남 천안 출생으로 지난 1969년 문학평단에 등단했다. 경희대 국문학과 교수로 일했고, <한용운문학연구>, <시어사전> 등을 펴냈다. 현재는 계간지 <시와시학>의 창간인 겸 주간으로 경희대 명예교수 겸 백석대 석좌교수로 재임 중이다.

 

평론집 <생명, 사랑, 평등의 시학탐구>는 한국 현대시를 매우 넓고 깊게 바라본 비평서라는 평을 받았다. 심사위원인 문홍술 평론가는 "이 비평서는 한국 현대시에 대한 문학 비평적 사유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약 50년간 현대시를 통해 '''''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탐색해온 비평가의 비평적 삶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단연 주목된다"고 표현했다.

 

김 평론가는 "새삼 부족한 사람에게 신선한 수상소식으로 새로운 깨침과 활력을 줬다. 월하 선생의 명복을 빈다. 남은 날은 적겠지만 성심성의 맑고 곧은 마음으로 문학적 생애를 마무리해 갈 것으로 스스로 다짐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정 시인과 김 평론가는 각각 2000만 원의 상금을 받는다. 시상식은 김달진 문학제 기간에 맞춰 95일 오후 5시 창원시 진해문화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림자에 불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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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환상통 / 김혜순

 

 

하이힐 신은 새 한 마리

아스팔트 위를 울면서 간다

 

마스카라는 녹아 흐르고

밤의 깃털은 무한대 무한대

 

그들은 말했다

애도는 우리 것

너는 더러워서 안 돼

 

늘 같은 꿈을 꿉니다

얼굴은 사람이고

팔을 펼치면 새

말 끊지 말라고 했잖아요

늘 같은 꿈을 꿉니다

뼛속엔 투명한 새의 행로

선글라스 뒤에는

은쟁반 위의 까만 콩 두 개

(그 콩 두 개로 꿈도 보나요)

 

지금은 식사 중이니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나는 걸어가면서 먹습니다

걸어가면서 머리를 올립니다

걸어가면서 피를 쌉니다

 

그 이름은, 새는

복부에 창이 박힌 저 새는

모래의 날개를 가졌나?

바람에 쫓겨 가는 저 새는

 

저 좁은 어깨

노숙의 새가

유리에 맺혔다 사라집니다

 

사실은 겨드랑이가 푸드덕거려 걷습니다

커다란 날개가 부끄러워 걷습니다

세 든 집이 몸보다 작아서 걷습니다

비가 오면 내 젖은 두 손이 무한대 무한대

 

죽으려고 몸을 숨기려 가던 저 새가

나를 돌아보던 순간

여기는 서울인데

여기는 숨을 곳이 없는데

 

제발 나를 떠밀어주세요

 

쓸쓸한 눈빛처럼

공중을 헤매는 새에게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고

들어오면 때리겠다고

제발 떠벌리지 마세요

 

저 새는 땅에서 내동댕이쳐져

공중에 있답니다

사실 이 소리는 빗소리가 아닙니다

내 하이힐이 아스팔트를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오늘 밤 나는

이 화장실에는 숨을 곳이 없어요

물이 나오는 곳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나를 위로해주는 곳

나는 여기서 애도합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검은 날개를 들어 올리듯

마스카라로 눈썹을 들어 올리면

 

타일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나를 떠밉니다

 

내 시를 내려놓을 곳 없는 이 밤에

 

 

 

날개 환상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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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와 이형기시인기념사업회(회장 박우담)는 시 낙화의 시인이자 지적 서정시의 대명사인 이형기 시인을 기리는 제9회 이형기문학제 수상자로 김혜순 시인이 선정됐다고 27일 밝혔다. 수상집은 날개 환상통이다.

 

김 시인은 1955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건국대학교 및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9년 문학과 지성에 담배를 피우는 시인’, ‘도솔가등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현재 서울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심사위원인 정과리 평론가는 김혜순 시인은 한국여성시사에서 하나의 획을 그은 존재이다. 최근 김혜순의 시는 더욱 더 나아가 인간에 의해 학대받고 고통받는 여린 생명들의 삶의 형식에 대한 탐구로 확장되었다. 그의삶의 형식의 탐구는 앞으로도 씩씩할 것이며 그의 도전은 우주상의 모든 생명의 진정한 미래를 위한 하나의 밀알로 작용할 것이다라고 평했다.

 

한편 진주 출신으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형기 선생(1933.1~2005.2)은 초기에는 삶과 인생을 긍정하고 자연섭리에 순응하는 서정시를 쓰고, 후기에는 허무에 기초한 관념을 중심으로 날카로운 감각과 격정적 표현이 돋보이는 시를 발표했다. 20세기 후반 삶과 인간문제를 시로써 탐구한 가장 대표적인 시인이다.

 

950코스모스’, ‘강가에서등이 추천돼 고교 때인 16세에 등단, 최연소 등단기록을 세웠으며 대한민국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형기 문학제 시상식은 622일 토요일 오후 4시 경남과기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다. 이날 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창작장려금 2,000만원과 상패가 주어진다. 진주시 관계자는 지역사회 문학의 저변을 확대하고 시민들의 문학정신을 키워내는 동력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많은 시민들에게 이형기 선생에 대한 홍보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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