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우리는 아픔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몸 어딘가가 썩어 들어가는데도 아프지 않다면, 이보다 더 난처한 일이 있을까? 문제는 우리의 아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 있다. 오히려 아픔은 살아있음의 징조이며, 살아야겠음의 경보라고나 할 것이다.
정신의 아픔은 육체의 아픔에 비하여 잘 감지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은 병들어 있으면서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의 아픔, 그것만 해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병들어 있음을 아는 것은, 치유가 아니라 할지라도 치유의 첫 단계일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픔만 강조하게 되면, 그 아픔을 가져오게 한 것들을 은폐하거나 신비화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지금 아프다는 사실이다. 그 진실 옆에 있다는 확실한느낌과, 그로부터 언제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는 불안한 느낌의 뒤범벅이 우리의 행복감일 것이다. 망각은 삶의 죽음이고, 아픔은 죽음의 삶이다.
지평으로, 지평 너머 초승달 지는 첫새벽의 안개 아래에 묻힌 폐허에 흩어진 유적의 돌기둥이 베고
누운 이른 아침에 햇빛 차오른 대지에는 하루의 힘이 자라면서 태양이 높이 뜨고 저물어서 나날이 지나가는 여러 밤이 오고 만월이 뜨더니 다시 캄캄해진 지평에 초승달이 꽂히는 새벽에 닿기까지,
마침내
영원으로, 전신을 밀며 걸어 들어간 일시와
돌문을 밀고 나온 여자가 오래전에 죽은 전신을 밀며 남자의 전신 속으로 걸어 들어간 일시가 일치한,
동일시에, 남자 안에서 눈 뜬 여자의
저, 눈에,
빛이.
(사) 이상화기념사업회(이사장 최규목)는 2019년 제34회 이상화시인상 수상자에 위선환 시인을, 수상작품에는 그의 시집 '시작하는 빛 '을 선정했다. 심사는 오세영(심사위원장) 시인, 송재학 시인, 송종규 시인,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가 맡았다.
위선환 시인은 1941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1960년 서정주·박두진이 선(選)한 '용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으나 1970년 이후 30년간 시를 끊고 살았다. 1999년부터 다시 시를 쓰면서, 시집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 '눈 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 '새떼를 베끼다' '두근거리다' '탐진강' '수평을 가리키다', '시작하는 빛' 등을 펴냈다. 현대시작품상, 현대시학작품상을 수상했다.
유성호 평론가는 "위선환의 시는 언어적 상형을 통해 낯선 세계의 깊이와 높이와 극한에 가 닿으면서 시간을 확장하고, 그것을 근원적 향수에 가까운 어떤 운동으로 전이시켜간다" 며 "구체적 감각을 통해 적막의 깊이를 설계하고 그것을 선명한 영상으로 잡아내는 그의 시법(詩法)은 우리 시단에 빛나는 개성이자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다."고 평했다. 시상식은 5월 24일(금) 이상화 문학제 때 열리며, 상금은 2천만원이다.
정현종(77) 시인과 김재홍(69) 평론가가 시집 <그림자에 불타다>(문학과지성사)와 평론집 <생명, 사랑, 평등의 시학탐구>(서정시학)로 2015년 제26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에 각각 선정됐다.
김달진문학상은 진해 출신 김달진 시인의 시적 업적을 기리고자 고인 1주기인 지난 1990년 제정됐다. (사)시사랑문화인협의회와 김달진문학관이 주최하고 창원시와 서울신문사가 후원한다.
시와 평론 두 부문에서 문단 경력 10년 이상인 작가의 최근 1년간(전년도 4월부터 그해 3월까지) 발간된 작품을 대상으로 시상을 해왔다.
올해 수상자로 뽑힌 정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지난 1965년 <현대문학> 3월호에 박두진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해 1972년에 첫 시집 <사물의 꿈>을 비롯해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등의 시집을 냈다. 정 시인은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 연세대 국문과 교수 등으로 일했다.
<그림자에 불타다>는 시의 정통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건청 시인은 "정현종의 짧은 시편은 선연한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한 오랜 내공과 고투의 결과다. 정 시인은 유구한 시의 정통을 이어받아 궁벽한 고독 속으로 침잠해 시를 건져내오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시인은 수상 소감으로 글쓰기에 더 매진하겠다고 했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세상 일과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고, 그리하여 생각과 감정이 균형과 조화를 향해 움직이며 따라서 정신은 넓어지고 깊어진다"며 "나는 꽤 오랫동안 시를 쓰고 산문도 썼는데, 그게 얼마나 공부가 됐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수상자로 선정된 김재홍 문학평론가는 충남 천안 출생으로 지난 1969년 문학평단에 등단했다. 경희대 국문학과 교수로 일했고, <한용운문학연구>, <시어사전> 등을 펴냈다. 현재는 계간지 <시와시학>의 창간인 겸 주간으로 경희대 명예교수 겸 백석대 석좌교수로 재임 중이다.
평론집 <생명, 사랑, 평등의 시학탐구>는 한국 현대시를 매우 넓고 깊게 바라본 비평서라는 평을 받았다. 심사위원인 문홍술 평론가는 "이 비평서는 한국 현대시에 대한 문학 비평적 사유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약 50년간 현대시를 통해 '나'와 '시'와 '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탐색해온 비평가의 비평적 삶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단연 주목된다"고 표현했다.
김 평론가는 "새삼 부족한 사람에게 신선한 수상소식으로 새로운 깨침과 활력을 줬다. 월하 선생의 명복을 빈다. 남은 날은 적겠지만 성심성의 맑고 곧은 마음으로 문학적 생애를 마무리해 갈 것으로 스스로 다짐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정 시인과 김 평론가는 각각 2000만 원의 상금을 받는다. 시상식은 김달진 문학제 기간에 맞춰 9월 5일 오후 5시 창원시 진해문화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진주시와 이형기시인기념사업회(회장 박우담)는 시 ‘낙화’의 시인이자 지적 서정시의 대명사인 이형기 시인을 기리는 제9회 이형기문학제 수상자로 김혜순 시인이 선정됐다고 27일 밝혔다. 수상집은 ‘날개 환상통’이다.
김 시인은 1955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건국대학교 및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9년 문학과 지성에 ‘담배를 피우는 시인’, ‘도솔가’ 등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현재 서울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심사위원인 정과리 평론가는 “김혜순 시인은 한국여성시사에서 하나의 획을 그은 존재이다. 최근 김혜순의 시는 더욱 더 나아가 인간에 의해 학대받고 고통받는 여린 생명들의 삶의 형식에 대한 탐구로 확장되었다. 그의‘삶의 형식’의 탐구는 앞으로도 씩씩할 것이며 그의 도전은 우주상의 모든 생명의 진정한 미래를 위한 하나의 밀알로 작용할 것이다”라고 평했다.
한편 진주 출신으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형기 선생(1933.1~2005.2)은 초기에는 삶과 인생을 긍정하고 자연섭리에 순응하는 서정시를 쓰고, 후기에는 허무에 기초한 관념을 중심으로 날카로운 감각과 격정적 표현이 돋보이는 시를 발표했다. 20세기 후반 삶과 인간문제를 시로써 탐구한 가장 대표적인 시인이다.
950년 ‘코스모스’, ‘강가에서’ 등이 추천돼 고교 때인 16세에 등단, 최연소 등단기록을 세웠으며 대한민국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형기 문학제 시상식은 6월 22일 토요일 오후 4시 경남과기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다. 이날 문학상 수상자에게는 창작장려금 2,000만원과 상패가 주어진다. 진주시 관계자는 “지역사회 문학의 저변을 확대하고 시민들의 문학정신을 키워내는 동력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많은 시민들에게 이형기 선생에 대한 홍보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