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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현물(現物)이니 / 유종인

 

 

더듬어봐라 숨 놓고 얻게 된 푸른 무덤 오랜 돌비석에 새겨진 당신 이름에 흰 똥을 갈기고 가는 새들이 짧은 영혼을 뒤돌아보겠는가 당신을 품은 무덤도 당신 모르고 당신 이름을 새긴 돌비석도 당신 모르는데, 사랑은 미나리아재비과() 독성 품은 풀빛에도 기웃거린다 아연실색, 제 몸빛조차 모르고 흔들리다, 사라진다더듬어봐라 사랑은 현물이니 맘에 담아 이리저리 말로 꿰려는 이여, 깨어진 돌비석에 역시 깨어진 당신 이름이여 한 이름 둘로 나뉜 비석 돌에 여전히 흰 똥을 떨구고 가는 새들, 성큼 자라오른 가시엉겅퀴 그림자가 깨진 당신 돌 가슴을 겁탈하듯 한나절 끌어안다 가는 것을

 

 

 

 

사랑이라는 재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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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군이 조선시대 대표 문인인 송순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한국문학 발전과 지역문학의 저변확대를 위해 실시한 1회 담양송순문학상의 첫 주인공에 '사랑이라는 재촉들'의 저자 유종인(사진) 시인이 선정됐다.

 

담양군과 담양송순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문순태)은 지난 6일 서울 노보텔에서 1회 담양송순문학상심사를 갖고 유종인 시인의 사랑이라는 재촉들을 영예의 대상에 선정했다고 밝혔다.

 

또 소설분야에 김혜정 작가의 독립명랑소녀와 아동문학 분야에 유타루 작가의 별이 뜨는 꽃담이 각각 우수상에 선정됐다.

 

입상자들에 대한 시상은 오는 119일 한국가사문학관에서 개최되는 제13회 전국가사문학학술대회에서 있을 예정이며 대상에게는 2천만원의 상금이, 우수상에는 각각 5백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1회 담양송순문학상 심사는 시 분야에 고은 시인, 소설 분야에 최일남·한승원 작가, 아동문학 분야에 황선미 작가, 수필분야에 윤재천 작가가 맡았다.

 

심사위원으로 나선 고은 시인은 유종인 시인의 사랑이라는 재촉들에 대해 진지한 현학이다. 언어의 당대성이 고전성과 잘도 맞닿아 있다. 표현의 품이 크다는 것. 그리고 온몸으로 피가 고민하듯 아물어간 게 만년 굳히고 굳힌 피의 말이 있었겠다따위의 가혹한 도달점이 나타난다는 것을 높이 샀다. 이쯤에서 다음 행이 도리어 군더더기 일만큼 빛난다. 한 실례를 든 것이다. 10년의 자기복제 이후 다시 재생할지어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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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망坐忘 / 원구식

 

 

1

어느 돌은 여기

어느 돌은 저기

 

온 우주의 신비가 여기저기

흐르는 천년의 세월이 여기저기

 

그저 무심히 이 돌을 보다

그저 무심히 저 돌을 보다

 

, 오늘도

하루 해가 다 갔구나.

 

어느 돌은 여기

어느 돌은 저기.

 

2

강가에 앉아 시간의 미이라인 돌을 본다. 이것은 정지된 시간의 풍경. 돌이 흐르는 물속에 멈춰져 있다. 마지막엔 물처럼 시간을 잊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돌은 더 딱딱해져야 할 것이다. 물은 옆에서 끊임없이 시간을 풀어놓는다. 생로병사의 바람이 순식간에 그 물기를 말려버렸지만, 아직 멀었다. 돌 속의 시간은 여전히 촉촉하다. 네가 감히 하루아침에 일생의 환락을 저 돌 속에 넣을 수 있겠느냐? 하루아침에 앉은 채로 머리털이 하얘지고, 구부러진 허리가 안락을 향해 하염없이 무너져 내려도, 이승의 육신이 물처럼 온전히 흘러가 버릴 수 있겠느냐? 윤회의 맷돌이 멈추기 전에, 마지막으로 시간을 잊어야 할 것이다.

 

3

흐르는 물소리

부는 바람소리

 

이 장엄한 아침 햇빛으로 보아

그림자도 붉은 저녁 놀빛으로 보아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돌이 시간을 먹고

딱딱해진다.

 

흐르는 물소리

부는 바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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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대책 없이 앉아 있는 자세에 대하여

 

때로, 마약의 도움이 없이 환각에 이르는 순간이 있다. 멍청히 서 있을 수 없으니까 앉는 것이다. 그럴 때 시간이 정지되고 풍경이 독약처럼 풀려 참선에 드는 것이다. 좌망이다. 사물과의 대화가 시작된다. 하염없는 시간이 내게로 전이된다. 세상의 모든 이유를 너무나 갑자기 처절하게 깨닫고 만다. 그러니까, 환각이 돈오라면 좌망은 점수다. 풍경은 강과 숲과 계곡의 시간을 물처럼 빨아먹는다. 무심히 돌아앉은 돌들도 다 시간 부자이다. 바람이 대책 없이 풀잎을 흔들어댄다. 어쩌란 말이냐? 나는 앉아 있는데, 서 있을 수 없어서 앉아 있는데, 끊임없이 풍경의 뒤통수가 열린다. 우주의 배꼽이 보인다. 나는 강가에 앉아 데려가기의 명수인 물과 바람에 몸을 맡긴다. 물이 내게 말한다. 바람이 네게 준 건 호흡이 아니라 율동이다. , 그렇구나. 그러니 앉아서 흔들리지 않는 춤을 춰라. 너는 이미 사물들에게 이해되었다. , 그렇구나.

 

그런 날이면 마틴 백패커를 메고 완행열차를 타고 싶다. 하염없이 덜거덕거리다가 이름 없는 역에 내려 닭똥을 사고 싶다. 그걸 가방에 넣고 산으로 들어가 세상에 거름을 주고 싶다. 나의 기타는 바람의 현을 탄주할 것이다. 그러면 열릴 것이다. 천국에 이르는 길이. 갑자기 앙리 미쇼의 한 마디가 떠오른다. “마약은 필요 없다. 다른 방법으로 살기를 선택한 자에겐 모든 것이 마약이다.” 나는 지금 대책 없이 앉아 있다. 풍경의 내부가 열린다.

 

 

 

[심사경위]

 

1시와표현작품상 선정을 위해 편집위원들이 2011년 봄호(창간호)부터 2011년 겨울호에 발표된 모든 신작시를 대상으로 예심을 하였다. 편집위원들이 각자 열편씩 선정한 작품을 대상으로 다득표를 집계한 결과 다음과 같이 9편의 작품이 본심에 선정되었다

 

김길나 휴지, 그 붉은 흔적(가을호)

리 산 수용미학(봄호)

박은정 죽음을 완성하는 손(가을호)

신달자 광야에게(여름호)

원구식 좌망坐忘(봄호)

이기철 활자생애(겨울호)

장만호 유령(봄호)

정병근 석양의 콘크리트(여름호)

조말선 손에서 발까지(겨울호)

 

작품상 심사위원회는 9편의 후보작들을 집중적으로 읽고 검토했다. 문학상이 아닌 작품상이므로 문학적 공헌이나 경력을 모두 지우고 한편의 작품이 달성한 시적 완성도와 시세계의 성취가 기준이었다. 모두 일정한 시적 성취를 보여준 작품들이어서 결정이 쉽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긴 논의 끝에 원구식의 좌망坐忘을 제1시와표현작품상으로 결정하였다.

 

원구식의 좌망坐忘은 간결한 시적구도와 형식에 도가道家적 사유의 깊이를 집약한 점이 좋게 생각되었다. 지금까지 많은 시인들이 도가적 사유를 형상화하였으나 무위無爲라는 주제에 집착한 나머지 초월적 사유를 철학적 개념으로 드러내는 일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시란 성정性情을 드러내는 일이다라는 동양 시학의 정신에 비추면 을 중요시한 셈이다. 시란 사유의 깊이와 더불어 희로애락을 드러내는 서정抒情의 깊이가 같이 확보되어야 한다. 시작에서는 양자의 균형이 쉽지 않다. 대개의 작품들은 어느 한쪽의 과부하 때문에 시적 완성도를 망치고 만다. 그러나 원구식의 좌망坐忘은 포착한 제재를 집요하게 형상화하고자 하는 의 깊이도 확보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시편은 모두가 밝은 세상에 있는데 나만이 홀로 우매하고나하는 노자의 성찰을 좌망坐忘으로 드러낸 수작이다.

 

원구식은 과작을 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작인 만큼 작품에 들이는 힘과 에너지의 집중도가 좋다. 1시와표현작품상이 원구식 시인의 시 창작 인생에 화려한 불꽃을 위한 기름이 되길 기원한다.

 

심사위원 (예심) 송기한 이성혁 서안나 김영찬 / (본심) 오세영 김백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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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여는 꽃들 / 김형영

 

 

봄비 오시자

땅을 여는

저 꽃들 좀 봐요.

 

노란 꽃

붉은 꽃

희고 파란 꽃,

향기 머금은 작은 입들

옹알거리는 소리,

하늘과

바람과

햇볕의 숨소리를

들려주시네.

 

눈도 귀도 입도 닫고

온전히

그 꽃들 보려면

마음도 닫아걸어야겠지.

 

봄비 오시자

봄비 오시자

땅을 여는 꽃들아

어디 너 한번 품어보자.

 

 

 

 

땅을 여는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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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내년이면 시인으로 데뷔한 지 50년이 됩니다. 그동안 시집도 여러 권 펴냈고, 문학상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시집을 냈을 때나 상을 받았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기쁘면서도 한편 부끄럽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왜 시를 쓰느냐고 자신에게 가끔 묻습니다. 쓰면 쓸수록 어렵기만 하고, 때로는 숨이 막히게도 하는 시, 그럴 때면 저는 산에 올라가 나무를 안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물론 말 한 마디 없는 대화이지만요. 영적 교감은 침묵으로밖에 할 수 없으니까요. 맛있는 바람도 마시고, 그 신성한 바람을 영혼 주머니에 가득 채우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다시 허풍을 좀 떨어보려고요. 그렇게 십 년 넘게 나무와 교감하며 지내다보니 깨달은 바가 많습니다만, 그 중 한 가지는 시는 눈에 보이는 음악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혜산 박두진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박두진 선생님과의 인연을 잠시 떠올려보았습니다. 1971 문학과 지성 봄호에 제 시 귀면(鬼面)이 재수록되었는데, 선생님은 제 시에 대해 분에 넘치는 칭찬을 해주셨지요. 그 칭찬은 마치 오장육부를 뚫고 장대같이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아침 해와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때 그 칭찬 한 마디 때문인지 모릅니다. 어른으로부터 듣는 칭찬의 힘은 이렇게 크다는 것을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혜산 박두진문학상을 제게 안겨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마음을 숙여 감사드립니다.

 

 

 

화살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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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제10회 박두진 문학상 심사는, 예심에서 추천된 본상 후보 다섯 분과 젊은 시인상 후보 다섯 분을 대상으로, 그분들이 최근 발표한 시편들을 차근차근 읽어나가면서 진행되었다. 이분들은 모두 우리 시단에서 남다른 위상을 점하고 있는 시인들이기 때문에, 그 성취의 높고 낮음에 차이를 두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매우 깊이 있고 탄탄한 시적 성취를 보여주는 시인들을 만나보게 된 것이다. 오랜 논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김형영 시인의 최근 시적 성취가 괄목할 만한 것이며, 박두진문학상의 여러 기율들을 충족하고 있다고 합의를 이루었다. 곧 그의 시편들이 자연에 대한 강한 친화력과 함께 보편적인 인간 본질에 관한 사유를 두루 결합하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젊은 시인 가운데는 박순원 시인의 개성적 시편들이 수상의 영예를 얻었다.

 

김형영 시학의 주된 요소는, 자연 사물과 시인의 종요로운 가치가 상응하는 장면에서 얻어진다. 말하자면 사물의 구체성과 시인이 지향하고자 하는 삶의 지표가 서정적 순간성 속에서 견고하게 결속하는 것이다. 그 빛나는 순간을 통해 우리는 김형영 브랜드인 형이상학적 빛을 한껏 쬐게 되고, 이때 우리도 스스럼없이 환한 서정과 영성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 그만큼 김형영 시는, 사라져가는 사물들과의 소통에서 중요한 영성의 가치를 발견하고, 나아가 거기서 서정적 신생의 원리를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박순원 시편은, 유머와 풍자 혹은 새로운 자각의 언어로 읽는 이들의 지적, 정서적 동의를 구해가는 세계이다. 거침없는 시의 흐름과 기층언어 구사가, 단정하고 응축적인 시적 전통에 균열을 내면서 새로운 시의 호흡을 경험케 해준다. 슬픔과 웃음이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통합하면서 박순원 시는 우리 시단에서 비슷한 경우가 거의 없는 남다른 개성을 보여준다. 그동안 그 세계에 제도권 차원의 격려가 얹히질 못했는데, 이번 기회가 그의 고독한 언어와 매체 작업에 훌륭한 응원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거듭 수상을 축하드리면서, 두 분 수상자의 고유한 시적 연금술이 지속적인 진경으로 나타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심사위원

유종호(위원장, 문학평론가, 전 연세대학교 석좌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김용직(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조남철(문학평론가, 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 혜산 박두진문학제 운영위원장)

박라연(시인, 제5회 박두진문학상 수상자)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교수)

오문석(문학평론가, 조선대학교 교수)

 

 

 

나무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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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문인협회 안성지부(지부장 방효필)와 혜산 박두진문학제 운영위원회(위원장 조남철)는 '제10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자로 김형영 시인이 선정됐으며, 또한 올해 첫 제정된 ‘젊은 시인상’에는 박순원 시인이 영광의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혜산 박두진 문학상은 혜산의 고결한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시인의 고향인 안성시(시장 황은성)와 안성교육지원청(교육장 정진권), 동아일보사, 월간 '현대시학'의 후원, (사)한국예총 안성지회(회장 이상헌)주최, (사)한국문인협회 안성지부와 혜산 박두진문학제운영위원회가 주관하여 2006년부터 제정, 시상해오고 있으며 올해로 10회에 이르렀다. 수상자 선정은 2014년 7월부터 2015년 8월까지 발간된 시집과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 중에서 우수한 시적 성취와 활동을 보여준 시인 중에서 혜산의 시세계를 반영해 예심과 본심을 거쳐 결정됐다.

 

문학평론가이자 혜산 문학상 심사위원회 유종호 위원장 및 김용직(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조남철(혜산 박두진문학제 운영위원장), 박라연(제5회 박두진문학상 수상자), 유성호(한양대학교 교수), 오문석(조선대학교 교수)등 심사위원들은 “제10회 박두진 문학상 심사는, 예심에서 추천된 본상 후보 다섯 분과 젊은 시인상 후보 다섯 분을 대상으로, 그분들이 최근 발표한 시편들을 차근차근 읽어나가면서 진행했다.”고 전했다

 

또한, “이분들은 모두 우리 시단에서 남다른 위상을 점하고 있는 시인들이기 때문에, 그 성취의 높고 낮음에 차이를 두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매우 깊이 있고 탄탄한 시적 성취를 보여주는 시인들을 만나보게 된 것이다. 오랜 논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김형영 시인의 최근 시적 성취가 괄목할 만한 것이며, 박두진문학상의 여러 기율들을 충족하고 있어 합의를 이루었다. 곧 그의 시편들이 자연에 대한 강한 친화력과 함께 보편적인 인간 본질에 관한 사유를 두루 결합하였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혜산 박두진 문학상 선정이유로 “김형영 시학의 주된 요소는, 자연 사물과 시인의 종요로운 가치가 상응하는 장면에서 얻어진다. 말하자면 사물의 구체성과 시인이 지향하고자 하는 삶의 지표가 서정적 순간성 속에서 견고하게 결속하는 것이다. 그 빛나는 순간을 통해 우리는 김형영 브랜드인 형이상학적 빛을 한껏 쬐게 되고, 이때 우리도 스스럼없이 환한 서정과 영성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 그만큼 김형영 시는, 사라져가는 사물들과의 소통에서 중요한 영성의 가치를 발견하고, 나아가 거기서 서정적 신생의 원리를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올해 첫 제정된 ‘젊은 시인상’은 박순원 시인의 개성적 시편들이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며, “박순원 시편은, 유머와 풍자 혹은 새로운 자각의 언어로 읽는 이들의 지적, 정서적 동의를 구해가는 세계이다. 거침없는 시의 흐름과 기층언어 구사가, 단정하고 응축적인 시적 전통에 균열을 내면서 새로운 시의 호흡을 경험케 해준다. 슬픔과 웃음이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통합하면서 박순원 시는 우리 시단에서 비슷한 경우가 거의 없는 남다른 개성을 보여준다. 그동안 그 세계에 제도권 차원의 격려가 얹히질 못했는데, 이번 기회가 그의 고독한 언어와 매체 작업에 훌륭한 응원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또한 심사위원들은 “거듭 수상을 축하드리면서, 두 분 수상자의 고유한 시적 연금술이 지속적인 진경으로 나타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고 축하를 잊지 않았다.

 

한편, 시상식은 오는 24일(토) 오후 3시 안성문예회관에서 열리며 박두진 시인의 업적을 기리는 문화행사로 전국 초, 중, 고, 대학, 일반인들이 참여한 <제15회 혜산 전국 백일장> 시상식도 함께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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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방 있음 / 성윤석

 

 

수갑도 없이 들어갔던 감옥을 내놓습니다

간혹 햇빛에 널어 말렸고

붉은 벽돌이 그려진 벽지도

발랐습니다

기껏해야 한 생의 자세를

생각해서 들어간 감옥입니다

낡은 침대며, 깨진 거울까지

미리 짐은 다 뺐습니다만,

심심해하실까 봐 버려진 화분

하나 업어와 살려놓았습니다

소철나무 화분은 거리에서 살며,

병따개며, 잘린 신용카드를

받아놓고 있습니다

혼자 살았던 감옥을 내놓습니다

사람보다 먼저

무기징역을 받은 감옥이지요

그까짓 노역형

앞으로 백 명의 설울쯤은

수면고문만으로도 진술을 받아줍니다

사랑했던 감옥을 내놓습니다

나는 모범수였고

다시 자유를 외치는 잡범들의 거리로

이송됩니다

뾰족구두를 따라가는 바람과

길을 가로막고 서는 오월의 바바리 나무들

이 감옥에서 살면,

집과 감옥이 모두 나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조그만 창밖을 바라보며

한 생의 자세를 생각하면 먼 곳에서

길들이 두텁게 이곳으로 흘러들어 오는

게 보입니다

갓 출소해 어두워진 두부를 씹는

별 들도 보입니다

어두컴컴한 벽을 질러야, 갈 수 있지만,

나한테 똥 사고

검사도 되고 의사도 되었다고

깨진 변기가 늘 꼬르륵 목이 잠기는,

밤하늘도 잘 보입니다

 

 

 

[수상소감]

 

소식을 듣고 한순간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시를 쓰면서 문학상과는 별개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그걸 잘 지켜왔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상이라는 것은 쓰는 자에게 격려의 의미가 크겠지만, 때로는 사람을 오만하게 하고 게으르게 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무 살 무렵 공장 아르바이트와 입주 과외를 하면서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민중시로 습작을 했고 민중시를 참 많이 쓰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리얼리즘, 새로운 민중시를 쓰고 싶었지만 그 당시 저의 시들은 그 뜻을 투영할 만한 것이 못되었습니다. 대학을 나와 지방신문사에서 밥벌이를 하면서 자연히 모더니즘과 도시시를 쓰기 시작했고 첫 시집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 11년쯤 단 한 편의 시도 쓰지 않았고 문학과는 별개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 땅에는 고 박영근 선생님처럼 치열하게 살고 쓰는 분들이 더러 있었고 저는 변변찮은 재능과 성실하지 못한 태도를 가진 자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년 전 저는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스무 살 무렵 하지 못했던 새로운 리얼리즘에 다시 도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의문이 풀리지 않는 것들의 뒷면을 낱낱이 뒤집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마도 오늘 제게 상을 주신 건 고 박영근 시인께서 이 후배를 눈치채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선생님의 가시고자 했던 세계, 새로운 리얼리즘의 세계로 초대해 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작위적이면서도 졸작인 저의 시 셋방 있음을 선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신뢰할 수 있는 시인이 되도록 쓰고 생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170년 1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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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성윤석의 셋방 있음은 시적 화자가 자신이 살던 셋방을 비워 내놓으면서 내건 광고문의 형식으로 그 방에서 살던 자신의 가난하고 남루했던, 하지만 그렇게 가장 낮아서 오히려 거리낄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었던 삶을 담담하게 표백하는 시이다. 그 작은 셋방은 옹색하고 가난하여 자유롭지 못하므로 감옥이지만 한 생의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었던 곳이어서 당당한 집이고 자유의 공간이기도 했던 곳이다. 이 시는 이처럼 겸허함과 오연함으로 강제되거나 자발적인 가난을 긍정하는 차분하고도 깊은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역시 남루하지만 견고했던 지상의 집을 버리고 저 추운 눈길로 떠나는 시인의 깊은 고독을 아프게 보여주었던 박영근의 시 이사와도 어딘가 많이 닮아 있기도 하다.

 

심사위원들은 성윤석의 셋방 있음이 풍요와 가난이 대극을 이루는 오늘의 한국사회를 아래로부터 이겨나가는 도저한 긍정의 힘을 잘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2016년의 한국 시단이 낳은 매우 소중한 성과라는 점에 합의했으며, 이는 또한 고 박영근 시인의 깊은 가난에서 길어 올린 빛나는 시세계와 결코 멀지 않다는 점에서 제3회 박영근작품상의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흔쾌히 동의하였다.

 

-심사위원: 정희성(시인), 백무산(시인), 김명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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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손 / 김광규

 

 

그것은 커다란 손 같았다

밑에서 받쳐주는 든든한 손

쓰러지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옆에서 감싸주는 따뜻한 손

바람처럼 스쳐가는

보이지 않는 손

누구도 잡을 수 없는

물과 같은 손

시간의 물결 위로 떠내려가는

꽃잎처럼 가녀린 손

아픈 마음 쓰다듬어주는

부드러운 손

팔을 뻗쳐도 닿을락 말락

끝내 놓쳐버린 손

커다란 오동잎처럼 보이던

그 손

 

 

 

오른손이 아픈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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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의 거장이자 명시 향수(鄕愁)’의 작가 정지용 시인을 기리는 ‘30회 정지용 문학상에 김광규(77) 시인의 그 손26일 선정됐다.

 

충북 옥천군과 옥천문화원이 주최하는 정지용 문학상은 정지용 시인을 기리는 지용제 행사 중 하나로, 정지용 시인의 뒤를 이을 작품성과 문학성이 뛰어난 시를 매년 수상작으로 선정하고 있다.

 

올해 심사위원은 이근배 예술원 부회장, 유자효 지용회장, 신달자 시인, 김재홍 문학평론가 등 7명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심사를 맡은 김재홍 문학평론가 겸 백석대 교수는 심사평에서 “‘이라는 시어를 통해 자신의 생의 의미를 되새기며 또 다시 새로운 운명의 길, 새로운 출발을 향해 떠나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을 잘 표현했다고 했다.

 

김광규 시인은 1941년 서울에서 출생해 1975문학과 지성여름호에 유무’·‘영산’·‘부산’·‘시론4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1회 녹원문학상, 4회 편운문학상, 11회 대산문학상, 19회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하는 등 단순하면서도 깊은 울림의 시세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시상식은 다음 달 12일 오후 4시 옥천 구읍 상계공원 특설무대에서 31회 지용제 행사와 함께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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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정거장 / 곽효환

 

 

사람들 드문드문 들고 나는

호젓한 시골마을 간이역 철길을 이어

백두대간 숲 속 깊은 곳에

작은 역 하나 더 지어야겠다

간이역과 간이역을 잇는 기차

하루에 한 번 혹은 두 번 오고가게 해야겠다

 

비자나무 가죽나무 굴참나무 측백나무 팔 벌리고

작은 짐승들 새들 벌레들 분주함 가득한

숲의 정거장엔

철커덕 철커덕 쉼 없이 달려왔을 기차도

같이 온 바람도 잠시 숨 고르리라

플랫폼에 이어진 호젓한 오솔길 따라

나란히 흐르는 계곡물에 발 담갔다가

단청 고운 절집 탱화아래 앉아

잠시 먼 산에 한눈팔아도 좋겠다

세상의 시간과 일상이 한동안 멈춰

몸 부리고 쉬었다 느릿느릿 흘러가는

작은 역 하나 숲의 양식대로 지어야겠다

 

빛바랜 회색 기와집 아래 의상실과 세탁소

슬레이트 지붕집엔 전파사와 분식집

붉은 벽돌집에 포목점과 연쇄점

그리고 방앗간이 더러는 정겹게

더러는 힘겹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적한 시골마을 간이역

한때는 열차들 분주히 들고 나고

수많은 사람들 멈추고 떠나며

흥성하게 장도 이루었을 텐데

그 기억과 시간이 떠난 자리에

숲의 정거장에 넘치게 붐비는

느림을 멈춤을 고요를 실어다

고루 나누어 줘야겠다

 

두 역을 오가는 기차의 차장을 해야 할 지

두 역 중 어느 역의 역장을 맡아야 할 지

고민은 초록과 함께 깊어간다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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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에피쿠로스는 스토아 학파의 금욕주의의 반대방향에서 쾌락주의를 최고의 선으로 주창하였지만, 그러나 그의 쾌락주의는 주지육림 속의 방탕이 아니라, 언제, 어느 때나 근검 절약하는 금욕주의 속의 쾌락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인생의 목표는 쾌락”이지만, 그 쾌락은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것과 번민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욕망을 세 가지로 구분한 바가 있었다. 첫 번째는 자연적이면서도 필요한 욕망이고, 두 번째는 자연적이면서도 필요 이상의 허영적인 욕망이며, 마지막 세 번째로는 자연적이지도, 꼭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이다. 이 세 번째 욕망은 필요 이상의 허영적인 욕망과는 달리, 타인이 가졌으니 나도 갖겠다는 모방욕망을 말한다. 에피쿠로스는 이 두 번째 욕망과 세 번째 욕망을 거절하고, 공부를 하고, 또 공부를 하면서 조용한 전원생활을 즐기는 소박한 쾌락주의자라고 하지 않을 없다.

 

제11회 애지문학상 후보작품으로는 박형준의 [불탄 집], 고영민의 [민물], 송종규의 [알람에 관한 편견], 이승희의 [결], 박종인의 [고고학적인 악수], 이은봉의 [지구 아가씨], 김지녀의 [선], 김백겸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장옥관의 [달도 없는 먹지 하늘], 곽효환의 [숲의 정거장]이 올라와 있었고, 이 후보작품들 중에서 박형준의 [불탄 집]과 이승희의 [결], 박종인의 [고고학적인 악수], 곽효환의 [숲의 정거장]을 집중적으로 심의한 끝에, 우리는 곽효환의 [숲의 정거장]을 제11회 애지문학상 수상작품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곽효환의 [숲의 정거장]은 “빛바랜 회색 기와집 아래 의상실과 세탁소/ 슬레이트 지붕 집엔 전파사와 분식집/ 붉은 벽돌집에 포목점과 연쇄점/ 그리고 방앗간이 더러는 정겹게/ 더러는 힘겹게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적한 시골마을 간이역”에서 이 간이역마저도 존폐의 위기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간이역과 “백두대간 숲속 깊은 곳에” “작은 역 하나 더 지어” 그 “느림을 멈춤을 고요를 실어다” 나르는 “차장”(역장)의 간절한 꿈을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대도시는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빠름의 시간이고, 시골은 그 도시의 욕망이 아무런 소용도 없는 느림의 시간이다. 빠름의 시간은 거짓, 사기, 폭력, 약탈 등이 난무하는 가짜의 시간이고, 느림의 시간은 그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진정한 삶의 시간이다.

 

모든 경전들은 인간의 욕망을 죄악시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이 만악의 근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나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는 이 욕망을 더욱더 풀어놓고 그 어떠한 제동장치도 마련해 놓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종교배와 고령화 사회, 자원고갈과 원자력발전소의 대폭발은 자본주의 사회의 음화이고, 따라서 인간의 욕망이 만악의 근원임이 그 무엇보다도 정확하게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곽효환의 [숲의 정거장]은 이 욕망의 가속도의 시대에 반하여, 에피쿠로스적인 전원생활의 행복을 노래하고 있는 시이며, 우리 인간들이 하루바삐 자기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하여 건강한 자연인의 삶을 살아가라는 삶의 본능을 옹호한 찬가라고 할 수가 있다.

 

시는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여 인간다운 삶을 향유할 수 있게 해주는 최종적인 구원의 장치이다. 시인은 인간 영혼의 치료사이며, 우리는 시인이 있기 때문에 이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제11회 애지문학상 수상자인 곽효환 시인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  심사위원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 일동

 

 

 

 

 

지도에 없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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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애지문학상에 곽효환(46) 시인이 선정됐다고 시 전문지 ‘애지’가 20일 밝혔다. 수상작은 ‘숲의 정거장’. 심사위원들은 “에피쿠로스적인 전원 생활의 행복을 노래하고 있는 수상작은 우리 인간들이 하루바삐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하여 건강한 자연인의 삶을 살아가라는 찬가”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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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의 아침 / 김소연

 

 

나 잠깐만 죽을게

삼각형처럼

 

정지한 사물들의 고요한 그림자를 둘러본다

새장이 뱅글뱅글 움직이기 시작한다

 

안겨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안겨 있는 사람을 더 꼭 끌어안으며 생각한다

 

이것은 기억을 상상하는 일이다

눈알에 기어들어 온 개미를 보는 일이다

살결이되어버린 겨울이라든가, 남쪽 바다의 남십자성이라든가

 

나 잠깐만 죽을게

단정한 선분처럼

 

수학자는 눈을 감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숨을 세기로 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간격의 이항대립 구조를 세기로 한다

 

숨소리가 고동 소리가 맥박 소리가

수학자의 귓전에 함부로 들락거린다

비천한 육체에 깃든 비천한 기쁨에 대해 생각한다

 

눈물 따위와 한숨 따위를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

잘 살고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요

 

잠깐만 죽을게,

어디서도 목격한 적 없는 온전한 원주율을 생각하며

 

사람의 숨결이

수학자의 속눈썹에 닿는다

 

언젠가 반드시 곡선으로 휘어질 직선의 길이를 상상한다

 

 

 

 

 

수학자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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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추모사업회는 제12회 이육사시문학상 수상자로 시집 '수학자의 아침'의 김소연 시인을 선정했다.

 

이육사문학상 심사위원회는 김소연의 시는 때로는 더없이 투명하고 신선한 언어 감각과, 때로는 이해 불가능한 말들의 솟구침으로 앞선 세대의 이유 있는저항과 새로운 세대의 이유 없는좌충우돌 사이에서 자신만의 시어로 두 세대를 연결하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 상은 민족시인 이육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숭고한 생애와 문학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 TBC2004년 제정했으며, 올해가 열두 번째이다.

 

시상식은 내달 25일 오후 3, 안동민속박물관에서 열리는 이육사문학축전과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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來如哀反多羅래여애반다라 1 / 이성복

 

 

추억의 생매장이 있었겠구나

저 나무가 저리도 푸르른 것은,

지금 저 나무의 푸른 잎이

게거품처럼 흘러내리는 것은

추억의 아가리도 울컥울컥

게워 올릴 때가 있다는 것!

, 푸르게 살아 돌아왔구나,

허옇게 삭은 새끼줄 목에 감고

버팀대에 기대 선 저 나무는

제 뱃속이 온통 콘크리트 굳은

반죽 덩어리라는 것도 모르고

 

 

 

 

래여애반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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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이육사 시문학상 수상자로 시집 `래여애반다라`의 이성복(62)시인이 선정됐다.

 

16일 이육사 시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수상작으로 선정된 시는 타락한 세상, 추락한 권위로 특징 지워지는 현실 속을 살아가는 지식인의 자기모멸감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점이 돋보인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올해 11회째를 맞이한 이육사 시문학상은 민족시인 이육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숭고한 생애와 문학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 2004년 제정됐다.

 

최종심사는 문학평론가인 김재홍, 김주연씨와 이태수, 정희성, 황동규 시인이 맡았다.

 

상주 출신인 이성복 시인은 서울대 불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7`문학과 지성`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남해금산`, `그 여름의 끝`,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등의 시집과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 `타오르는 물`등의 산문집이 있다. 김수영문학상에 이어 소월시문학상,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수상자에게는 2천만원의 시상금이 주어지며, 시상식은 726일 오후 230, 안동시 도산면 이육사문학관에서 열리는 이육사문학축전과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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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 이원

 

 

이상한 봄

 

깊은 발은 희망을 모를 테니

깊은 발은 바닥을 모를 테니

깊은 발은 실밥 푸는 곳을 모를 테니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식탁 의자에 몸 냄새가 밴 카디건을 걸쳐 두었지만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다시는 환청과 만나지 못한다 해도

그림자의 무릎뼈가 미처 펴지지 못했다 해도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이상한 봄

달아나는 발목

 

엄마 아빠

피가 흩어지는 축제

 

비명과 꽃잎과 누수를

돌멩이와 비닐봉지의 중력을

나란히 이해해

 

땅을 오래 두드린 발

얼리지 않은 땅

풀들은 담장 위로위로 솟아오른다

 

이상한 봄

춤을 추다 발목만 남았어

내용을 생각할 틈이 없었어

온몸에 죽음의 불이 붙었었거든

 

작은 점 하나가 목젖 부근에

눈물을 참으면 울퉁불퉁하다

지구에서처럼

 

홈리스는 하늘을 향해 침을 뱉는다

새들은 허공을 깨고 간다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서지 않는 엘리베이터에 타 본 적이 없어도

바다와 하늘이 바로 다음 언덕에서 만나고 있어도

사방의 벽마다 출구가 마련되어 있다고 해도

 

구겨진 틈 아니면 조롱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등 너머에서 붙잡던 목소리를 혀처럼 뽑아 쥐고 있어도

 

나는 사람이다

팔다리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너는 사람이다

예쁘고 연한 발목을 가졌다

 

자를 게 남았다

지구로 못 돌아와도 좋다

 

* 2023년 편도행 화성 정착 프로젝트 공개 모집을 다룬 기사 제목.

 

 

 

 

사랑은 탄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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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서는 <오늘의 시인> 코너를 대신하여 <6회 시작작품상 수상자 이원 특집>을 게재한다. 등단 이후 지금까지 “‘라는 개념의 견고한 틀에 도전하면서 동시에 시적 상상력과 시적 형상화의 한계를 동시에 넘어서려고 했던 이원 시인”(<시작> 2014년 봄호, ?6회 시작작품상 심사평?)의 신작시 3편과 김익균, 김승일의 작가론을 싣는다. 김익균 평론가의 이원론은 기존의 이원 시에 대한 비평 담론들이 무심히 지나쳤던 이원 시의 문채의 수사학에 착목하여 이원 시인이 이미지 상태의 사유에 어떻게 도달하고 있는가를 면밀히 구성하고 있어 주목을 요한다. 한편 김승일 시인의 이원론은 다정다감한 작가론이다. 이 글을 읽고 있노라면 이원 시인이 얼마나 따뜻한 시인인지를 느낄 수 있는데, 그런 만큼 그녀가 한국 시단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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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의 나날 / 허연

 

 

강물은 무심하게 이 지지부진한 보호구역을

지나쳐 갑니다. 강물에게 묻습니다.

 

사랑했던 거 맞죠?”

그런데 사랑이 식었죠?”

 

상소 한 통 써 놓고 목을 내민 유생들이나, 신념 때문에 기꺼이 화형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장마의 미덕이 있습니다. 사연은 경전만큼이나 많지만 구구하게 말하지 않는 미덕, 지나간 일을 품평하지 않는 미덕, 흘러간 일을 그리워하지도 저주하지도 않는 미덕. 핑계대지 않는 미덕. 오늘 이 강물은 많은 것을 섞고, 많은 것을 안고 가지만, 아무것도 토해 내지 않았습니다. 쓸어안고 그저 평소보다 황급히, 쇠락한 영역 한가운데를 몰핀처럼 지나왔을 뿐입니다. 뭔가 쓸려 가서 더는 볼 일이 없다는 건, 결과적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치료 같은 거죠.

 

강물에게 기록 같은 건 없습니다

사랑은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오십 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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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시작이 운영하는 제5시작(詩作)작품상수상자로 시인 허연(47·사진)씨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장마의 나날’.

 

1991현대시세계로 등단한 허 시인은 특유의 냉소적 문법으로 세계와 존재의 역설적 희망을 구축하는 시 세계를 선보여왔다.

 

심사위원인 김춘식 동국대 국문과 교수는 수상작을 연륜과 섬세한 감성을 동시에 보여 주는 새로운 시의 가능성이라고 평했다. 다른 심사위원인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슬픔을 인간 존재의 보편적 형식으로 노래하면서도, 소멸해 가는 것들을 감싸 안으면서 사랑의 형식을 치열하게 탐색하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시작작품상은 시작문학상의 새 이름으로 계간 시작에 발표된 신작시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에 주는 상이다.

 

시상식은 15일 오후 6시 서울 동숭동 대학로 예술가의집 3층 다목적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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