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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린 책 / 송종규

 

켜켜 햇빛이 차올라 저 나무는 완성되었을 것이다.

꽃이 피는 순간을 고요히 지켜보던 어린 나방은 마침내 날개를 펴, 공중으로 날아올랐을 것이다

바스러질 듯 하얗게 삭은 세월이 우체국을 세워 올렸을 것이다.

숲과 별빛과 물풀들의 기억으로 악어는 헤엄쳐 나가고 행성은 궤도를 그리며 우주를 비행했을 것이다.

천만 잔의 독배를 마시고 나서 저 책은 완성되었다

, 이제 저 책을 펴자

잎사귀를 펼치듯 저 책을 펼치고 어깨를 구부리듯 저 책을 구기자

나무의 비린내와 꽃과 어린 나비가, 악어와 우체통이 꾸역꾸역 게워져 나오는 저 책

저 책을 심자

저녁의 우주가, 어두운 허공인 내게 환한 손을 가만히 넣어줄 때까지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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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나비 같고 회오리 같고 꽃잎 같은 잎사귀들이 내 뜰에 수북수북 쌓였으면 좋겠습니다. 가볍고 차고 환하게 얼비치는 그 아름다운 문장 속에 애벌레처럼 웅크리고 잠시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천산북로의 만년설처럼 녹지 않는 눈은 말고, 가슴 에이게 하는 사무치는 싸락눈은 말고, 낯선 손님처럼 처음인 듯 눈이 와서 나는 매 순간, 내가 나에게 바치는 설레는 첫 문장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어의 궁전을 내 안에 세워 올리려 했습니다. 시를 통해 당신께 이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변변한 집 한 채 짓지 못했고 당신은 너무 멀어 나는 거기에 닿을 수 없습니다. 또한 형체가 없으므로 나는 당신을 만질 수도 없습니다. 영원한 부재로만 존재하는 모순인 당신, 혼돈인 당신. 흩날리는 이 말들은 또 누구의 혼돈이며 누구의 은유인지요.

 

작은 움막에 문풍지를 달아 주신 <애지>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녹슨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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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송종규의 시는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또한 그 시선을 통해 세상의 깊이에 도달해 가려는 시인의 지적 탐색에 우리 모두를 동참시킨다. 송종규의 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형성하는 시간의 존재에 대한 고민과 모색을 통해 새로운 세계 인식 방법을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주체라고 생각하며 산다. 그리고 나라는 주체가 나의 모든 시간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현실에서 ‘나’는 주체가 아니라 상품의 지배에 종속되는 타자일 뿐이다. 시간마저 순전히 내 것은 아니다. 그래서 타자화된 개인이 느끼는 파편화된 현실과 착종된 의식이 파괴된 언어로 나타나 현대시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기까지 하다.

 

송종규 시인의 「구부린 책」은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를 만드는 것도 내가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모두 타자들이 만들어 낸 오래된 시간이고 그 오래된 역사가 나의 모든 인식의 근원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은 구부린 책이라는 것이다. 그 책을 읽고 해석하고 그 책을 완성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 시인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요설적이고 난삽한 언어가 주류가 되어버린 세태 속에서 쉽고 명확한 언어가 어떤 깊이를 만들어내는지 이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다.

 

송종규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아울러 이번 수상이 시인에게나 우리 <애지>에게나 큰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심사위원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 이승희, 안서현(글 황정산 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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