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의 나날 / 허연
강물은 무심하게 이 지지부진한 보호구역을
지나쳐 갑니다. 강물에게 묻습니다.
“사랑했던 거 맞죠?”
“네”
“그런데 사랑이 식었죠?”
“네”
상소 한 통 써 놓고 목을 내민 유생들이나, 신념 때문에 기꺼이 화형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장마의 미덕이 있습니다. 사연은 경전만큼이나 많지만 구구하게 말하지 않는 미덕, 지나간 일을 품평하지 않는 미덕, 흘러간 일을 그리워하지도 저주하지도 않는 미덕. 핑계대지 않는 미덕. 오늘 이 강물은 많은 것을 섞고, 많은 것을 안고 가지만, 아무것도 토해 내지 않았습니다. 쓸어안고 그저 평소보다 황급히, 쇠락한 영역 한가운데를 몰핀처럼 지나왔을 뿐입니다. 뭔가 쓸려 가서 더는 볼 일이 없다는 건, 결과적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치료 같은 거죠.
강물에게 기록 같은 건 없습니다
사랑은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천년의시작이 운영하는 제5회 ‘시작(詩作)작품상’ 수상자로 시인 허연(47·사진)씨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장마의 나날’.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한 허 시인은 특유의 냉소적 문법으로 세계와 존재의 역설적 희망을 구축하는 시 세계를 선보여왔다.
심사위원인 김춘식 동국대 국문과 교수는 수상작을 “연륜과 섬세한 감성을 동시에 보여 주는 새로운 시의 가능성”이라고 평했다. 다른 심사위원인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슬픔을 인간 존재의 보편적 형식으로 노래하면서도, 소멸해 가는 것들을 감싸 안으면서 사랑의 형식을 치열하게 탐색하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시작작품상은 시작문학상의 새 이름으로 계간 ‘시작’에 발표된 신작시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에 주는 상이다.
시상식은 15일 오후 6시 서울 동숭동 대학로 예술가의집 3층 다목적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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