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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 강은교


 

가을이 오는데

누가 기타를 켜네

 

그 우체국은 거기 그대로 있군요. 훨씬 단장이 달 되어서 골목길도 잘 있군요. 빵집은 24시간 편의점이 되어 있구요. 로터리에는 살찐 물줄기가 뻗어 오르고 있습니다.

 

가을이 오는데

누가 기타를 켜네

아무도 없이

기타를 켜네

 

자장면 집이 하나 새로 생겼군요. ‥‥‥ 그 산은 길이 되었군요. 내가 살던 집은 헐리고 새 이층집이 들어앉았군요. 5층 건물도 하나‥‥‥학원이군요. 단과반. LG대리점도 한 개.

 

가을이 오는데

누가 기타를 켜네

아무도 없네

아무도 없이

기타를 켜네

 

꽃집도 한 개. 그 초등학교 자리엔 10층 빌딩‥‥‥ 그런데 찻집이 그대로 있군요.‥‥‥삐걱거리는 계단도 그대로, 베토벤도 그대로‥‥‥모차르트도 그대로‥‥‥비발ㄷ가 흰 구름을 끄집어내던 의자도, 브람스의 탁자도‥‥‥흠집투성이가 되어 앉아 있군요‥‥‥아니, 바람투성이가 되어.

 

가을이 오는데

누가 기타를 켜네

아무도 없네

아무도 없이

기타를 켜네

 

거기엔 플라타너스 그늘이 있었는데, 그 그늘을 만지곤 했엇는데‥‥‥푸른 녹들이 점령해 지붕들‥‥‥아, 한 번 만져봅시다.

 

그런데 지금, 우체국 문은 닫혀 있다.

시간 애인의 팔에 매달려

보이지 않는 글자의 편지나 쓰면서‥‥‥

 

나는 플라타너스 잎을, 잎의 그림자를 질겅질겅 씹는다

 

가을이 오는데

누가 기타를 켜네‥‥‥

 

시간은 모든 잎 속에서 익어간다.

 

 

 

바리연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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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 심사위원 선생님들의 응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지난 해 10월 시집 {네가 떠난 후 너를 얻었다}를 출간하고 시 더 안 쓰려고 했는데, 이제까지 시집을 열 몇 권이나 내면서 세상을 더럽힌 것만으로도 미안하다, 라고 생각했는데, 쓴다 하여도 ‘나의 서랍’ 속에 처박기 위해서만 쓰려고 했는데, 이제 다시 써야겠군요. 그것이 희망 없는 행위라 하여도 꼼지락거리고 있겠습니다.

 

더구나 혜산 선생님과의 인연을 다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혜산 선생님을 제가 처음 만난 것은 여학교 시절의 햇빛이 옥양목 커튼을 지나 환하게 비쳐들던 교실에서였죠. 그때 저는 학교 신문을 읽고 있었는데, 거기 박두진의 [해야]라는 시가 있었습니다. 나는 ‘시라는 것’을 읽어 보았지요. 그리고 난생 처음 ‘전율’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거기에는 묘한 ‘소리’가 있었던 겁니다. 제가 지금 ‘소리심’이라고 역설하는 그것이 말입니다. 저는 ‘시라는 것’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다음 혜산 선생님과의 인연은 {사상계} 신인 문학상입니다. 그때 심사위원 중에 혜산 선생님이 계셨죠. 그런 선생님을 연세대학교에서 만났을 때의 감동이 어떠했을지, 선생님들은 이해하시겠지요?

 

그리고 그러고 보니 시를 시작할 때마다 항상 선생님은 앞에 서 계셨고, 미거한 저를 이끌어주셨군요.

 

지금 저는 범어사 밑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덕분에 매일 보허성(步虛聲)을 듣지요. 그때 허공은 나의 ‘아름다운 저잣거리 세상’이 됩니다. 나의 머리 위에서 울리는 범패 소리, 보허성을 매일 들으며 저는 지금 살아가고 있답니다.

 

이제는 혜산 선생님의 다정한 보허성을 들어야겠습니다. 그동안 저의 시에 대한 태도의 잘못은 너무 ‘들리려고만 하는 데’ 있었습니다. ‘읽혀지려고만 하는 데’ 있었습니다. ‘소통하려고만 하는 데’ 있었습니다. 항상 ‘시의 결과’만을 기다렸습니다.

 

이제 보허성에 실려 오는 혜산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시를 저의 서랍에 처박은 다음 햇빛이 옥양목 커튼 사이로 비쳐들 때 세상에 꺼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직도 못 만져본 슬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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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제7회 혜산 박두진문학상 심사는, 지난 한 해 동안 발간된 시집과 발표된 시편들을 대상으로 하여 진행되었다. 두 분의 자진 응모가 있었고, 운영위원을 통한 한 분 추천이 있었다. 그리고 예심위원이 일곱 분 시인을 추천해주었다. 이미 등단 20년을 모두 넘긴 우리 시단의 맹장들인지라, 작품적 완결성과 미적 좌표의 품격이 그 어느 해보다 미더운 성취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심사위원들은 여러 차례 윤독과 토론을 거듭한 결과 최근 매우 활달하교 명징한 시세계를 보여주면서 그만의 개성적 성취를 이루어가고 있는 강은교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하게 되었다.

 

강은교 시인은 초기에 ‘죽음’과 ‘허무’에 관한 이미지를 깊이 천착하였다. 애상적인 서정적 음색을 기조로 삼았던 한국 여성 시는, 강은교 이후로 깊은 실존적 형이상학적 무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개인과 사회의 균형이 균열됨으로써 빚어지는 비인간화의 문제를 시의 주제로 삼았고, 이는 사실주의의 기율과 낭만적 정신을 접목시키는 데 주의를 기울이는 쪽으로 그의 시를 나아가게 하였다. 그러다가 후기 시편들에서는 사물들이 내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그림자나 작은 움직임에 섬세한 눈길을 주며, 그것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면서 그만의 우주적이고 근원적인 화폭을 완성하고 있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서로를 매만지며 출렁인다는 것, 그 출렁임이야말로 시인의 몸 속에서 울리는 심장의 더운 리듬과 소통한다는 것을 아름답게 노래하면서 시인은 목숨 있는 자로서의 고독과 매혹을 동시에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 수상작들은 이러한 후기 시세계를 더욱 심화하면서 그만의 진경을 펼친 구체적 사례일 것이다.

 

「혜화동 - 어느 황혼을 위하여」에서 시인은 “황혼이 유난히 아름다운 곳”이자 늦은 오후가 되면 햇살 비스듬히 비추며 “거대한 추억들”을 되살려주는 곳의 흔적들을 바라본다. 그 밝은 시선은 「왜 그걸 못 보았을까」에서 작고 분명한 사물들을 보지 못하고 살아온 시간을 투명하게 성찰하는 언어로 이어진다. 가령 “백양나무 푸른 등 위에서/마악 몸을 뒤채는 빗방울의 동그란 입술”, “거기 어물거리는, 어물거리기만 하는 얼굴 잔뜩 부푼 구름이라든가/구름에 닿도록 팔들을 쳐들고 서서 손부리가 화들짝 놀랄 때까지 하늘을 잔채질하는 넝쿨들”을 바라보지 못한 시간은 그만의 진정성을 통해 밀도 있는 서정적 기억으로 몸을 바꾼다. 「희명」의 간절한 기도나 「툴라의 그 여자」의 세심한 관찰 그리고 「불멸」의 유려한 음악과 호흡도 강은교 시학의 뚜렷한 진경이 아닐 수 없다. 거듭 수상을 축하하면서, 강은교 시인의 앞으로의 시적 연금술이, 그가 토요일 오후 쬐었을 범어사의 햇볕처럼, 잔잔하고 따뜻하게 지속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심사위원 유종호(위원장, 문학평론가, 전 연세대학교 석좌교수, 예술원 회원) 김용직(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학술원 회원) 이영섭(시인, 가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남철(문학평론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 혜산 박두진문학제 운영위원장)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임충빈(시인, 혜산 박두진문학제 운영위원회 간사, 안성문인협회 명예지부장)

 

 

벽 속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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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산 박두진 문학상 강은교 시인 선정 투명한 언어구사로 진정성 통해 밀도 있는 서정적 시학

 

올해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자로 강은교(姜恩喬, 67세, 문학박사,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 시인이 선정됐다.

 

제7회를 맞는 혜산 박두진 문학상은 시인의 시세계를 기리기 위해 지난 2005년부터 안성시에서 주최하고 있다.

 

제1회 신대철 시인에 이어, 제2회 천양희 시인, 제3회 최문자 시인, 제4회 최동호 시인, 제5회 박라연 시인, 제6회 마종기 시인을 선정한 안성시는 이번에도 공정하게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해 강은교 시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올해 수상자로 선정된 강은교 시인은 초기엔 죽음과 허무에 관한 이미지를 천착, 애상적 서정적 음색을 기조로 삼았던 한국 여성 시로, 강은교 이후 실존적 형이상학적 무게를 얻는 계기를 만들었고 개인과 사회의 균형이 균열됨으로써 빚어지는 비인간화의 문제를 시의 주제로 삼았다.

 

또, 모든 살아있는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 시인은 목숨 있는 자로서의 고독과 매혹을 동시에 누리는 시세계를 더욱 심화하면서 그만의 진경을 펼친 구체적 사례를 노래하여 주목받고 있다. 
 
수상작으로 뽑힌 ‘혜화동 외 4편’의 경우, 매우 활달하고 명징한 시세계를 보여주면서 그만의 개성적 성취를 이루어가고 있고 지금까지 작고 분명한 사물을 보지 못하고 살아온 시간을 투명하게 성찰하는 언어를 구사하여 진정성을 통해 밀도 있는 서정적 기억으로 호흡하는 시학의 뚜렷한 진경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시세계를 기려, 제7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자로 강은교 시인을 결정했다.

 

1945년 12월 13일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태어난 강은교 시인은 100일 만에 서울로 이주해 경기여자중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김기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약력 및 수상으로는 1968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순례자의 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75년 제2회「한국문학상」1992년 제37회 「현대문학상」2006년 제18회 「정지용 문학상」「유심작품상」등을 수상했다.
 
한편 이번 심사위원에는 유종호(위원장, 문학평론가, 예술원 회원, 전 연세대 석좌교수), 김용직(문학평론가, 시인, 학술원 회원, 전 서울대 명예교수), 이영섭(시인, 가천대 교수), 조남철(한국방송통신대학 총장, 문학평론가, 혜산박두진문학제 운영위원장),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임충빈(시인, 안성문협명예회장, 혜산문학제 운영위원회 간사) 등이 참여했다.

 

시상식은 오는 27일 안성문예회관 공연장에서 제12회 혜산 문학제에서 열리며 1천만 원의 상금도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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