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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얼굴  / 오정국

 

 

기꺼이 무릎 꿇고 절을 하듯이, 머리를 진흙 속으로

들이밀고, 벌거벗은 궁둥이만 보여주시는

나의 어머니, 저렇듯 얼굴을 뭉개어

진흙이 되셨으니, 그 기쁨 홀로 누리시도다

진흙을 쳐발라 출구를 봉해버린

참나무 불길을 견디시고 이기셨으니

그 고통 세세연연 당신 몫이옵니다

  

타관을 떠돌던

낡은 가방 내려놓고

露宿의 험한 망치와 목장갑을 등 뒤로 감추고

이마에 재를 바르듯, 당신께 나아가

두 볼의 눈물을 경배하고자 하오나

얼굴을커녕 발가락마저

궁둥이로 눌러서 감추어 두셨도다

  

진흙 속으로 캄캄하게 묻어 버린 눈, 눈꺼풀을

어떻게 열고 계신지, 진흙을 눌러 붙인

사방의 손자국을 둘러보는 것인데,

오, 엉덩이로만 빛의 윤곽을 느끼시는

니의 어머니

 

 

 

파묻힌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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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야생의 허기, 야생의 꽃

 

이윽고 날이 저물고 밤낚시를 시작했을 때, 뜻밖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 상의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통보였습니다. 처음엔 얼떨떨했는데, 낚시터의 물결처럼 출렁거리는 기쁨과 흥분을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느라고 대물 붕어를 몇 마리나 놓쳤는지 모릅니다. 저 혼자 새벽녘까지 술을 마시며, 몽롱한 취기 속의 찌불을 바라보며 아득한 감회에 젖어들었습니다. 이미 알고 계신 분도 있겠지만, 저는 경북 영양 출신입니다. 그곳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는데, 초등학교 시절 읍내에서 시오리를 걸어서 멱을 감으러 다녔습니다. 그곳은 산그늘이 시원하고 너럭바위가 있고 물이 깊어서 소년들이 재주를 넘듯 다이빙을 하기에 그만이었습니다. 그땐 몰랐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이 바로 주실마을 조지훈 선생님 생가 앞을 흐르는 시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상 통보를 받으면서, “그때 멱을 감은 효험을 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조지훈 선생님이 태어나신 곳이라고 말합니다. “거기가 어디냐?”고 되물으면, 속으로 이런 무식한!”이라고 중얼거립니다. 그만큼 저에겐 크나큰 산이었고, ‘큰바위 얼굴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내려주신 상을 받게 되었으니, 이보다 과분한 일이 그 어디 있겠으며, 이보다 겁나는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산간벽촌의 소년이 시인으로 자라나서 이런 글을 쓰게 됐지만, 저의 첫 장래희망은 트럭운전수였습니다. 무료한 한낮이면 감나무에 올라가서 마을 앞의 신작로를 바라보던 소년은 신작로 저 끝의 세상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트럭운전수가 되면 넓은 세상 어디든 가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장래희망은 상점 간판을 그리는 간판장이 화가였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겁니다. 하교하면 곧장 동양미술사의 털보아저씨에게로 갔는데, 페인트 물감이 서로 엉기고 번지는 게 너무나 신기했고 붓끝에서 생겨나는 글씨와 그림이 놀라웠습니다. 털보 아저씨는 당시 군청에 다니시던 우리 아버지를 안다고 했고, 물감통이나 붓을 전해주는 조수 일을 잘하면 십 원짜리 한두 장을 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최초로 알바를 해서 돈을 번 것인데, 그 찐빵 맛이 그렇게 달콤하고 따뜻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저 혼자 먹었습니다. 방천길을 걸으면서 오래오래 씹었습니다. 아버지나 식구들에게 들키면 그딴 짓을 하고 돈을 받았다고 혼쭐이 나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고향을 떠나고 말았지만, 그때까지 야생의 산과 강을 쏘다니던 헐벗은 생명이었습니다. 페인트 색상들의 변화를 자못 신비롭게 생각했던 순진무구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대구의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소년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은 외따로 친척집에 맡겨졌는데, 그때부터 헛바람이 들었습니다. 마루의 서가에 꽂혀 있던 장식용 세계문학전집들을 빼보며 놀다보니, 그것보다 흥미진진한 성인의 세계가 없었습니다. 그리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미궁의 세계로 빠져들었던 겁니다. 그것이 바로 문학이었고, 시였습니다. 집안의 기대에 부응하기는커녕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문예창작학과로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가난과 굶주림, 제 속에서 들끓는 그 어떤 원초적 허기에 헐떡거리며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부터 40대 후반까지 신문기자 일을 했습니다. 그때도 이상한 허기들이 들끓어 올라 저를 괴롭혔습니다. 대학은사이자 평생의 스승이셨던 구상 선생님의 질책과 독려로 등단을 했지만, 주위에선 저를 시인이라기보다는 기자라고 불렀습니다. 그게 마음 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얼마나 속이 쓰렸는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앙심을 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날 그렇게 낚시터에 혼자 앉아 있었듯이, 저에겐 문단의 벗이나 선후배가 별로 없습니다.

 

저는 변방의 북소리였습니다. 그렇게 시의 수자리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저는 시를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계와의 화해나 해석이 아닌, 이 지상의 형상이나 관념과의 싸움이지요. 주위에서 도시의 블랙홀’, ‘서울지옥의 묵시록이라고 칭한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을 낸 이후 틈만 나면 낚시터와 산, 계곡을 떠돌았습니다. 직장을 대학으로 옮긴 뒤엔 방학을 맞으면 사막이나 오지를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물질의 도시물화(物化)되는 인간을 못견뎌했고, 어떻게든 저를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거칠고 광활한 대자연 속에서 저는 야생의 허기를 보았고, 제 생명의 허기를 보았고, 생식(生殖)의 굶주림을 보았습니다. 그게 바로 시의 빛이며, 저의 숨구멍이란 걸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유년시절의 원초적 허기들이 핏줄처럼 살아있었던가 봅니다. 그게 이번 시집 파묻힌 얼굴진흙들연작에 파묻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는 이번 시집을 보고 무슨 제목이 이렇게 끔찍하냐?”고 했습니다. 시집 제목을 피 묻힌 얼굴로 잘못 읽은 것인데,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니, 정말 시란 피 묻힌 얼굴일지 모른다고 여겨졌습니다. 생의 처연한 허기들이 거기서 꽃처럼 피어나고, 저는 그것을 훔쳐먹고 훑어먹고 퍼먹고 파먹는 몸 하나였습니다. 애당초 저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조지훈 선생님의 풀잎 단장(斷章)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란 구절이 더욱 절실해집니다.

 

이 글을 쓰는 초저녁, 봄꽃은 만개했고 바람이 참 시원합니다. 이제 곧 산책을 나설까 합니다. 저는 최소 하루 한 시간은 걷고자 합니다. 북한산 둘레길이나 시장바닥을 걸으면서 혼 빠진 사람처럼 중얼거리고, 절름발이 흉내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면 뭔가 달라집니다. 제 몸의 호흡에 발맞추어 이상한 리듬이 찾아옵니다. 그걸 잽싸게 느끼고 받아 적습니다. 외부에서 밀려들어오는 숨결과 제 호흡이 하나의 박자를 이룰 때, 거기서 시의 리듬을 느끼고자 합니다. 헛소리를 하듯 자꾸 말을 중얼거리다 보면, 또 다른 말이 불려나옵니다. 구상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언령’(言靈), 그러니까 언어의 영혼인지도 모릅니다. 그 말을 사용했던 무수한 이들의 귀신이 거기에 달라붙어서 자신의 목소리도 한번 불러내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걸 또 잽싸게 받아 적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스승께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신, 불교에서 말하는 십악(十惡) 중의 하나인 기어(綺語)의 죄를 경계해야 합니다. 저는 가끔씩 장님처럼 눈을 감고 걸어보기도 합니다. 눈을 감은 뒤의 이미지, 그게 참 재미있습니다. 저는 북한산 야간등산을 하기도 했는데, 시야가 지워지는 대신 청각과 후각, 촉각이 그토록 생생하게 살아날 줄 몰랐습니다. 그 언제나 찰나에 불과했지만, 이 세상이 저에게 안겨준 생의 감각들이 눈부시고 아프고 처연했습니다.

 

이제 또다시 장엄한 허기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유년시절 이 세상을 향했던 호기심과 시인이 되고자 했을 때의 초발심을 되짚어봐야 할 때입니다. 방학이 되면 백담사 만해마을이나 원주 토지문화관의 창작실을 찾았듯이, 또 다시 저를 유폐시켜야 합니다. 이즈음에 와서 자못 안타깝게 생각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제 시가 왜 아직도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느냐는 것이지요. 현대시이면서 현대시가 아닌 시, 이를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요? 이런 질문이 또 저를 괴롭힐 것 같습니다.

 

정말 과분하고 영광되고 겁나는 자리입니다. 수염을 쓰다듬으시며 허허허 웃으시는 구상 선생님의 얼굴을 오늘따라 너무 뵙고 싶고, 큰 절을 올리고 싶습니다. 고향의 까마득한 후학에게 이토록 커다란 격려를 내려주신 조지훈 선생님, 우러러 존경해온 심사위원 선생님들, 그리고 나남출판사와 지훈상 운영위원회에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저에게 여러 차례 창작공간을 내준 백담사 만해마을과 원주 토지문화관 측에도 감사드리고, 제 삶의 허기진 시의 길을 묵묵히 믿어주고 받들어준 아내와 가족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끝으로, 저보다 앞서서 이 상을 받으신 시인들의 존함과 이 문학상의 정신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눈먼 자의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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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 지훈문학상 심사보고

 

지훈문학상의 심사규정에 따라 지난 2년간 출간된 성과들 중에서 심사위원 3인이 추천한 시집들은 다음과 같았다. 고진하 거룩한 낭비, 박형준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조용미 기억의 행성, 오정국 파묻힌 얼굴, 김진완 모른다, 장석원 역진화의 시작, 김선우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위의 시집들은 지훈문학상의 수상후보로 손색없는 개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2주간의 검토를 거친 후, 수상작을 선정하는 회합을 따로 가졌다. 이 자리에서 고진하, 조용미, 오정국 세 시인의 시집으로 범주가 좁혀졌고, 다각도로 의견을 교환한 끝에 오정국 시인을 수상자로 결정하였다. 거룩한 낭비는 시인의 자의식이 선명한 진정성과 만나고 있다는 점에서, 기억의 행성은 삶의 기미(機微)들을 풍경의 굴곡으로 섬세하게 표현해내었다는 것으로 탁월한 시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파묻힌 얼굴이 수상시집으로 결정된 것은 시집 전체를 긴장시키는 주제와 언어의 치열성이 고려된 까닭이었다.

 

그동안 오정국 시인은 실존의 불가지적 형상들을 시로 간파하려는 의욕을 실천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시학적 성취로도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었다. 특별히 파묻힌 얼굴에서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것은 진흙이라는 무정형의 대상을 통해 존재와 만나려는 그의 끈질긴 집중력이 시의 세계를 한층 심화시켰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은폐된 실체에 가 닿으려는 시인의 열의만큼 뜨겁고 통절한 무엇이 있었다. 결핍과 헐벗음뿐으로 세계와 조우하려는 그의 힘겨운 고투는 마침내 실존의 근거를 돋울 새기고, 근원의 자리로까지 독자들을 안내한다. 한국 현대시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도 그의 사색은 의미가 깊다.

 

심사위원 성석제 황동규 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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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얼굴 / 오정국

 

 

기꺼이 무릎 꿇고 절을 하듯이, 머리를 진흙 속으로

들이밀고, 벌거벗은 궁둥이만 보여 주시는

나의 어머니, 저렇듯 얼굴을 뭉개어

진흙이 되셨으니, 그 기쁨 홀로 누리시도다

진흙을 처발라 출구를 봉해 버린

참나무 불길을 견디시고 이기셨으니

그 고통 세세연년 당신 몫이옵니다

 

타관을 떠돌던

낡은 가방 내려놓고

노숙의 험한 망치와 목장갑을 등 뒤로 감추고

이마에 재를 바르듯, 당신께 나아가

두 볼의 눈물을 경배하고자 하오나

얼굴은커녕 발가락마저

궁둥이로 눌러서 감추어 두셨도다

 

진흙 속으로 캄캄하게 묻어 버린 눈, 눈꺼풀을

어떻게 열고 계신지, 진흙을 눌러 붙인

사방의 손자국을 둘러보는 것인데,

, 엉덩이로만 빛의 윤곽을 느끼시는

나의 어머니

 

 

 

 

파묻힌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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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는 오는 61일부터 3일까지 5회 이형기 문학제를 칠암동 문화거리, 진주성, 진양호 일대 그리고 진주교육지원청 대회의실에서 개최한다. '낙화'로 우리에게 친숙한 시인 이형기는 진주 출신으로 16세 때 제1회 영남예술제(현 개천예술제) 백일장 장원을 하였으며 그 이듬해문예지로 등단한 뒤, 20C 후반 한국 시인들 가운데서 시를 소재로 삶과 인간문제를 탐구한 가장 대표적인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 일곱 번째 시상하는 이형기 문학상에는 오정국 시인이 선정되었으며 수상시집은파묻힌 얼굴이다. 이형기 시인 기념사업회는 2011년도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시집 70여권을 심의하여 125권 선정, 210권 선정 그리고 본심심사를 거쳐 수상자를 선정하였다. 시상식은 62() 오후 420분 진주교육지원청 대회의실에서 열리며 시상금 2천만원과 상패가 수여될 예정이다.

 

이형기 시인 기념사업회 회장이며 경상대학교 명예교수인 강희근 교수를 비롯한 원구식(현대시 발행인), 박주택(경희대 교수), 송희복(진주교육대학교 교수), 오형엽(수원대 교수)으로 구성된 본심 심사위원회는 심사평에서 오정국 시인은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을 매미가 허물을 벗는 것과 같다고 보면서 그것은 진흙에서 빠져나오는 진흙처럼 어디를 가도 본원이나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러므로 오시인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냉철한 투시력으로 시를 쓰는 드문 시인이라고 그 우수성을 평가하였다.

 

수상자 오정국 시인은 1956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중앙대 예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 시인은 1988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저녁이면 블랙홀 속으로, 모래무덤,내가 밀어낸 물결,멀리서 오는 것들과 평론집시의 탄생, 설화의 재생,비극적 서사의 서정적 풍경을 펴냈고, 서울신문기자와문화일보문화부장을 거쳐 현재는 한서대 인문사회학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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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의 당신 / 김요일

 

 

태초의 이전부터 오신다더니

꽃과 바람

물과 불

하늘과 땅 어디에도 보이시지 않네

 

터진 듯 쏟아 내리는 별빛 속에도 묻어오지 않으시고

전생의 전생에도 보이지 않으시는

 

우주의 바깥에 계신 당신

 

모든 이즘ism의 프리즘인

처음의 줄기이자 분열의 마지막인

 

, 당신은

 

 

 

 

애초의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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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질마재 문학상에 시집 '애초의 당신'을 펴낸 김요일(48) 시인이 선정됐다.

 

질마재 문학상은 미당 서정주의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계간지 '미네르바'가 제정한 상이다.

 

김 시인은 1990'자유무덤' 4편의 시를 '세계의 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1994'붉은 기호등'을 펴낸 바 있다.

 

주최 측은 "'붉은 기호등'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사랑 노래들이 '애초의 당신'에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후광처럼 거느리고 있다""절망과 신음으로 가득 찬 작품들 또한 새로운 관점으로 읽게 만든다"고 평했다.

 

상금은 500만 원이며, 시상식은 525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연건동 함춘회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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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적인 삶 / 김언

 

 

미안하지만 우리는 점이고 부피를 가진 존재다.

우리는 구이고 한 점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있지 않다. 우리는 서로에게 멀어지면서 사라지고

사라지면서 변함없는 크기를 가진다.

대칭을 이루고 양쪽의 얼굴이 서로 다른 인격을 좋아한다.

피부가 만들어 내는 대지는 넓고 멀고 알 수 없는

담배 연기에 휘둘린다. 감각만큼 미지의 세계도 없지만

3차원만큼 명확한 근육도 없다. 우리는 객간적인 세계와

명백하게 다른 객관적인 세계를 보고 듣고 만지는 공간으로

서로를 구별한다. 성장하는 별과 사라지는 먼지를

똑같이 애석해하고 창조한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나왔지만

우리가 만들어 낸 자연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완결된 집이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우리는 주변의 세계와 내부 세계를 한꺼번에 보면서 작도한다.

우리의 지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 채 고향에 있는

내 방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찾아간다. 거기

누가 있는 것처럼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한 점을 찾는다.

 

 

 

 

2009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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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반갑다, 현실 성찰이 있는 시세계

 

본심에서 김행숙·김경주·송재학 등이 마지막까지 거론됐다.

 

당선자인 김언의 시는 매우 흥미로운 발상법으로 우리의 삶과 현실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의 시에는 현실이 있고, 그 현실에 대한 사유와 성찰이 있고, 또 환상도 섞여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김언은 리얼리스트일 것이다. 많은 젊은 시인들이 주로 감각의 세계에 탐닉하고 있는 요즘, 김언이 지닌 현실에 대한 성찰적 지성은 반길만한 것이다.

 

기하학적 삶, 기하학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여 우리의 모순된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한 시이다. 점이란 부피를 가질 수 없는 것이지만, 이 작품은 우리는 점이고 부피를 가진 존재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모순을 암시하면서 시작된다. 이어서 우리의 삶을 여러가지 방식으로 명제화한다. 그 명제들은 다른 어떤 익숙한 잠언들보다 흥미로운 잠언이 되어 독자의 사유를 자극한다.

 

가령 우리는 서로에게 멀어지면서 사라지고 사라지면서 변함없는 크기를 가진다라는 구절은 만남과 이별 그리고 이별 후의 덤덤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감각만큼 미지의 세계도 없지만 3차원만큼 명확한 근육도 없다라는 구절은 우리의 감각이 느끼는 세상은 늘 미심쩍지만 그러나 그것이 관여하는 3차원의 이 현실은 너무나 확실하다는 인식을 산뜻하게 밝혀놓는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지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 체 고향에 있는 내 방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찾아간다에서는 사소한 일상적 삶의 의미에 갇혀 살면서 보다 큰 삶의 근원적 의미가 있음을 망각하고 있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김언의 시에는 현실과 환상 그리고 직관과 이성이 행복하게 결합되어 있다.

 

심사위원 오생근·이시영·김혜순·이남호·송찬호

 

 

 

 

백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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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길에서 길 잃게 만드는 그런 시를 쓰고 싶습니다

 

올해 미당문학상 최종심 심사는 어느 해보다 격렬했다. 심사위원들의 시론(詩論)과 시론이 격돌했다. 거칠게 구분하면, 대상(세계)과 시적 자아의 일치를 꾀하는 전통 서정시와 둘 사이의 균열에 주목하는 모더니즘으로 진영이 나뉘었다. 어느 한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팽팽한 대립이었지만 젊은 시인 김언(36)씨가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뜻밖이다. 그가 두 달 전 펴낸 세 번째 시집 소설을 쓰자에 대한 평론가 신형철의 다소 과장된 해설, “(그의 시를) 하루 세 편 이상 읽을 경우 머리가 폭발할 위험이 있다경고처럼 김씨의 시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김씨 앞에서 시가 어렵다는 내색을 하면 안 된다. 김씨는 1998년 부산의 시 계간지 시와 사상을 통해 등단했다. 이달 초 당선 인터뷰에서 김씨는 대뜸 뜻밖이다. 한동안 무척 외로웠다. (인정받기를)체념했었다고 말했다. “지방 출신 시인이 겪는 차별은 상상 이상이어서 미당문학상을 받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여겼다는 것이다.

 

김씨는 아무도 자신의 시 세계를 알아주지 않는 울분을 산문을 통해 풀어왔나 보다. 그의 시는 감정의 물기 없이 담담하지만 산문은 과격하다. 계간 문예지 문학동네가을호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난해시는 비평가가 제 안목을 벗어나는 시에 가하는 가장 손쉬운 복수라고 일갈했다. 비평가들, 잘 모르면 난해시란 딱지 붙이고 품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려운 기색 없이 잠자코 그의 시 설명을 듣는 게 맞다.

 

김씨는 시는 뭔가 변화시켜 후대에 물려줘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미술사학자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열심히 읽은 탓이다. 그 책에서 김씨가 건진 한 문장은 예술사란 결국 예술이 아니었던 것이 예술이 되어가고, 예술이었던 것이 예술이 아닌 것이 되어가는 역사라는 것이다.

 

김씨는 예술 대신 시를 집어넣었다. 그 결과 부모님 공경이나 자연보호처럼 자명한 내용을 얘기하는데 굳이 시가 나설 필요 있나. 당연하고 잘 아는 길에서 새삼 길 잃게 만드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는 입장을 얻었다. 이런 목적을 위해 김씨가 채택한 전략은 스스로 개발한 일종의 생각 틀인 사고모형을 활용하는 것이다.

 

미당문학상을 안긴 후보작 29편과 시집 소설을 쓰자를 관통하는 사고모형은, 인간의 시선에 오류가 없다는 전제 하에 사건을 관찰하는 상식을 뒤집는 것이다. 오히려 사건이 고정돼 있고 인간이 종잡을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다. 그런 인간의 불완전성을 김씨는 추상적 진실을 추구하는 기하학에서도 읽는다. 기하학적 진실 중 하나는, 중심에서 똑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로 표면이 이루어진 이상적인 구()는 이론적으로만 존재할 뿐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서 두 번째 행의 우리(인간)는 구라는 구절이 나왔다.

 

마찬가지로 당선작의 나머지 행들도 곱씹어 봐야 하는 성찰을 담고 있다.

 

김씨는 그러나 나에게 시는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반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이들의 의미 없는 말놀이처럼, 단어의 이상한 조합과 배열이 연출하는 생경한 세계를 즐겨보라는 당부다.

 

심사위원들은 김씨를 언어 탐구라는 시적 모험에 나선 개성적 시인이라고 평했다. 그러니 말놀이를 대하는 약간의 가벼움과 앞서 언급한 팁을 참고 삼아 김씨의 시편을 더듬어 보시라. 요즘 한국시의 가장 이상한 골짜기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런 독자가 하나 둘 생겨날 때 김씨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김씨는 미당문학상 수상으로 이미 상당한 위안을 얻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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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 눈물 / 신달자

 

 

슬픔의 이슬도 아니다

아픔의 진물도 아니다

한 순간 주르르 흐르는 한줄기 허수아비 눈물

 

내 나이 돼봐라

진 곳은 마르고 마른 곳은 젖느니

 

저 아래 출렁거리던 강물 다 마르고

보송보송 반짝이던 두 눈은 짓무르는데

울렁거리던 암내조차 완전 가신

어둑어둑 어둠 깔리고 저녁놀 발등 퍼질 때

소금끼조차 바짝 마른 눈물 한줄기

너 뭐냐?

 

 

 

 

살 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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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잘 구워진 언어의 사리

 

일찍이 한국시는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시인에 의해 눈을 떴고 그가 개척한 우주적 광활한 시세계를 딛고 오늘의 눈부신 팽창을 이루고 있다. 그 드높은 시의 정신을 받들고 기리기 위하여 제정된 공초문학상 제17회 수상작은 신달자 시인의 헛 눈물’(현대시학 20093월호)이 선정되었다. 공초문학상 운영조항에서 수상작 선정기준은 등단 20년 이상의 시인을 대상으로 인품이 훌륭하며 최근 1년간 발표한 신작시 가운데 수상작을 뽑는다.’로 되어 있다. 이 규정에 의해 선정된 신달자 시인은 40년 가까운 등단 햇수와 왕성한 창작 활동, 작품의 우수성, 인품의 고매함까지 모든 조건에서 상의 권위를 덧입히는 수상자라 하겠다.

 

수상작 헛 눈물은 겉으로 읽어도 저 공초가 해냈던 깊고 넓은 사유와 맞닿고 있음을 알겠거니와 글자들이 감추고 있는 뜻을 헤아려 들어가면 시인이 삶의 문턱을 얼마나 아프게 넘나들었으면, 또한 거기서 곪고 터진 생각을 얼마나 오래 깎고 다듬었으면 그 흔하고 비린 눈물을 이처럼 단단하고 빛나는 사리로 구워낼 수 있을까 하는 섬뜩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울렁거리던 암내조차 완전 가신에서 이승을 몇 바퀴나 돌아 나온 듯한 체관(諦觀)이 묻어 나오는가 하면 소금끼조차 바짝 마른 눈물 한줄기’, ‘너 뭐냐?’고 던지는 화두가 비어 있음()조차 넘어서는() 경지가 아닌가.

 

오늘의 시가 산문 쪽으로 넘어가고 낯설게 하기라는 탈을 쓰고 본래의 모습을 지워가고 있음에 비하여 신달자 시인은 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언어의 절제성과 명료성으로 그 울림의 폭을 드넓게 열어 가며 꾸준하게 앞서 나가고 있다. 이 수상의 후보에 그의 시선집 바람 멈추다가 참고되었음을 밝힌다.

 

- 심사위원 조오현 시조시인, 임헌영 중앙대 교수, 이근배 공초숭모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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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 정현종

 

 

불행의 대부분은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비극의 대부분은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 오늘날처럼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대통령이든 신()이든

어른이든 애이든

아저씨든 아줌마든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

모든 귀가 막혀 있어

우리의 행성은 캄캄하고

기가 막혀

죽어가고 있는 듯.

그게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제 이를 닦는 소리라고 하더라도,

그걸 경청할 때

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

한 고요 속에

세계는 행여나

한 송이 꽃 필 듯.

 

 

 

고통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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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거울 속의 꽃을 꺾는 詩境

 

사람에게는 사물의 이치를 새겨들을 수 있는 나이가 있다고 한다.그렇다면 시의 나이는 얼마나 오래 살아야 귀가 트이는 것일까? 12회 공초문학상 수상작으로 정현종 시인의 시 경청을 심사위원 전원일치로 결정하면서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다.

 

정현종 시인은 60년대 들머리에 시단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후 사물에 대한 깊은 인식을 서정성으로 용해시킨 첫 시집 사물의 꿈으로 이미 시단에서 자기 좌표를 설정해놓은 시인이다.그리고 시대적 현상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일관되게 사람과 자연,사람과 시간 등 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화두를 불지펴 놓았다.

 

시선집 고통의 축제와 시집 사랑할 시간은 많지 않다로 한꺼풀씩 말의 껍질을 벗겨오면서 오늘의 수상작 경청을 담고 있는 시집 견딜 수 없네에 이르러 그의 시 세계는 한층 자유로워지고 사물과의 내통에 있어서도 평화로워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경청은 이 시대의 갖가지 소음을 진공흡입기로 빨아들이는 신기한 힘을 지니고 있다.통신수단이 첨단화되고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지고 있음에 비해 사람들의 귀는 점점 절벽이 되고 눈도 어두워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불행의 대부분은/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의 말문부터가 매우 직설적이면서 심상치 않은 경구를 담고 있다.

 

대통령이든 신이든/어른이든 애이든/아저씨든 아줌마든/무슨 소리이든 간에/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은 아주 귀에 익은 듯하면서도 새삼 아프게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특히 내 안팎의 소리에 귀를 귀울이게 된다.밖의 소리를 받아들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내 안의 소리를 듣는 것은 더욱 어렵다.

 

얼핏 보면 쉬워 보이는 경청의 세계는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현종만이 뽑아낼 수 있는 수월경화(水月鏡花)가 숨어있다.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한 고요 속에/세계는 행여나/한 송이 꽃 필 듯에 부딪치면 아하 저 공초선생의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시법을 얻었구나 하는 울림을 받는다.공초문학상의 빛을 더해준 정현종 시인께 경의를 보낸다.

 

- 심사위원 이근배·김종해·임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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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 박찬일

 

 

사람들아 미안하다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푸른 트럭에서 나는 그대들 전부를 잊기로 한다 나도 잊기로 한다

 

푸른 트럭에서, 나는,

오이 당근을 파느라 감자 고구마를 파느라 양파를 파느라 시금치 마늘을 파느라

푸른 트럭에서 나는 수박 참외를 파느라 토마토 사과 귤을 파느라 배를 파느라 계란을 파느라 정신이 없다.

이면수 꽁치를 파느라 조기를 파느라 고등어를 파느라 푸른 트럭에서

푸른 트럭을 파느라 푸른 트럭만 남기고 파느라

 

싱싱한 야채 있습니다 싱싱한 과일 있습니다 싱싱한 계란 있습니다 싱싱한 생선 있습니다 녹음기에 녹음하느라 녹음기를 켜놓느라 싱싱한 야채 있습니다 싱싱한 과일 있습니다 싱싱한 계란 있습니다 싱싱한 생선 있습니다 정신이 없다.

 

미안하다 사람들아 나는 정신이 없다

 

푸른 트럭에서 나는 그대들 전부를 잊었다 나도 잊었다 푸른 트럭으로 사라지려고 한다 푸른 트럭을 몰고 사라지려고 한다 미안하다 사람들아 나는 푸른 트럭에 있다

 

정신이 없다 나는 포도주를 마신다 푸른 트럭에서 포도주를 마신다 야채를 팔아 과일을 팔아 계란을 팔아 생선을 팔아 포도주를 마신다 포도주만 마신다 정신이 없다

 

사람들아 미안하다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푸른 트럭에서 팔러 다닌다 푸른 트럭을 팔러 다닌다 푸른 트럭만 빼고 팔러 다닌다 푸른 트럭에서 마신다 붉은 포도주를 마신다 그와 함께 붉은 포도주를 마신다 미안하다 사람들아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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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 출신으로 국내 대표적 모더니즘 시인인 박인환(朴寅煥) 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제3`박인환문학제'2일부터 4일까지 개최된다.

 

1일 인제군과 내린문학회에 따르면 첫날인 2일에는 박인환문학상 시상식과 시낭송대회, 동화구연대회가 오후 1시부터 인제문화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박인환문학상 수상자에는 춘천 출신 박찬일(46)씨가 선정돼 상패와 상금 300만원, 순금메달을 받는다.

 

수상자 박씨는 연세대 독문과에 출강중이며 지난 1993년 계간 현대 시사상에 `무거움', `갈릴레오' 등으로 데뷔했고 이번 수상작은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5편이다.

 

시낭송 및 동화구연대회에는 지역내 중.고교생과 전국 일반인들이 참가, 대상 1명을 비롯한 최우수 우수상 등 부문별 10명에게 수상의 영예가 주어진다.

 

4일에는 맹문재시인 초청 문학강연과 박인환시인 추모백일장이 인제읍 합강리 합강정 박인환시비공원에서 열린다.

 

박인환문학상은 지난 5732세의 나이로 타계한 박인환 시인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위해 2000년부터 `시현실'과 시인의 고향 인제에서 활동중인 `내린문학회'가 공동으로 제정, 매년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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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 / 이수명

 

 

어느 날 그 건물 아래로 밧줄이 드리워지고 사람들이 하나씩 건물을 빠져나갔다. 밧줄은 아주 오래 매달려 있었다. 가느다란 외줄이 부르르 떨고 있는 것을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그 후 그 건물이 완전히 철거되었을 때 밧줄은 사라졌다. 더 이상 밧줄을 타고 내려갔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 그 밧줄에 매달려 있는 것을 날마다 보았다. 움직이지도 않고 딱정벌레처럼 등을 웅크린 채 그는 허공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이 건물, 저 건물에 그 밧줄을 번갈아 걸었다. 밧줄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짧아졌다.

 

어느 날 새로 불 켜진 창에서 한 사람이 떨어졌다.

 

 

 

붉은 담장의 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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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시 현실"과 박인환의 고향인 강원도 인제 "내린천문학회"가 공동 제정한 박인환 문학상 2회 수상자로 시인 이수명(36)씨가 선정됐다.

 

수상작으로 뽑힌 "망고" 6편은 심사위원 이승훈, 오세영, 이유식으로부터 "전통적인 시 쓰기를 부정하는 모더니즘 미학을 보인다는 점에서 박인환의 문학 정신과 통한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무균질의 언어"를 구사하는 시인 이수명(35). 그에게 겹경사가 생겼다.

 

며칠 전 제2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데 이어 20일에는 그의 세 번째 시집 "붉은 담장의 커브"(민음사)가 출간된다.

 

시상식은 109일 인제에서 열리는 박인환문학제 행사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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