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득 / 송준영
1호선 지하철 분실물 쎈터에 있는 건
하얀 차돌 두어 개와 나를 따라온
청태 사이로 비치는 오대산 맨가슴 그리고
가부좌 틀고 있는 청량선원이네 그곳엔
내가 주워온 금빛 옷을 걸친 늙은 부처 아니
법당 왼쪽에 단정히 앉아 있던
이마 말간 문수동자가 있네 아니 이날
툇마루에 졸고 있는 하늘 한 자락과
푸른 솔잎 입에 문 물총새 한 마리 그리고
솔바람이 있네 아니 지하철분실물쎈터
알림판엔 깔깔 웃던 습득물이 붙어
있네 동굴 속으로 고함지르며 사라진
습득*이 붙어 있네 습득이 보이네
* 습득: 당나라 때 사람. 국청사 풍간선사가 주워 키웠다. 한산과 늘 같이 한암 깊은 굴에서 지냈고 절에서 허드렛일하여 밥을 얻었고 미친 짓 하면서도 선도리에 맞았고 시를 잘했다. 태주자사가 한암으로 찾아가 옷과 약을 주니 "도적 놈아 도적 놈아 물러가라"하며 웃으면서 한암쪽으로 사라졌다.
송준영 습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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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자에 송준영(59)시인이 선정됐다.
송 시인은 시 '습득'을 통해 이 시대 젊은 시인들의 딜레마를 불교적 상상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고 도시적 삶과 선(禪)에 대한 아이러니의 시각을 훌륭하게 묘사했다는 평을 받았다.
송 시인은 경북 영주 출신으로 춘천교대와 관동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지난 95년 월간문학 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98년 해동문인협회 우수작품상과 99년 불교작가상을 수상했으며 99년에는 강릉에서 문학사숙 '대관령시인학교'를 통해 17명의 시인을 배출했다.
시집 '눈속에 핀 하늘을 보았니' '습득'등이 있고 '반야심경' '선시의 향기' 등 논저를 저술했다. 시상식은 박인환문학제 기간인 14일 인제문화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물 흐르고 꽃 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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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영(1947~현재) 시인은 일찍이 불가에 귀의하여 고승·선사를 찾아 가르침을 받았다. 선과 시를 접목시키는 선시이론가로서 자신이 연구한 선시론을 확산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시와세계’ ‘현대선시’의 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화두는 현대 선시이다. ‘습득’의 시는 시인이 오대산 청량선원에서 참선을 하고 귀경(歸京)한 후 1호선 지하철 분실물신고센터 표지판을 보고 쓴 시이다. 진정으로 분실한 것은 물건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호선 지하철은 도시 문명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시인은 시에서 도시인의 분실물을 열거하고 있다. “하얀 차돌 두어 개, 청태(靑苔) 사이로 비치는 오대산 맨가슴, 가부좌 틀고 있는 청량선원, 내가 주워온 금빛 옷을 걸친 늙은 부처, 법당 왼쪽에 단정히 앉아있던 문수동자, 툇마루에 졸고 있는 하늘 한 자락, 푸른 솔잎 입에 문 물총새 한 마리, 솔바람” 등이다. 이 분실물은 우리 현대인이 곧 찾아야 할 습득물이다.
마지막 시구에서는 지하철분실물센터 알림판에 습득물이 붙어 있다. 그것은 당나라 때 선 시인(禪詩人) 습득이다. 기발한 착상이다. 당나라 때 시인 습득과 잃어버린 물건을 습득한다는 뜻인 동음이어의 중의법(重意法)의 수사법을 동원하여 도시인이 잃어버린 자기 자신의 마음, 자연, 선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며 시를 갈무리하고 있다.
분실물을 찾아 습득물로 갑자기 전환되는 치환(置換)이 일어나고 있다. “지하철 분실물센터 알림판엔 깔깔 웃음 웃던 습득물이 붙어 있네 동굴 속으로 고함지르며 사라진 습득이 붙어 있네 습득이 보이네” ‘습득’의 시는 이렇게 분실물센터와 분실물센터 알림판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시이다.
당나라 때 습득은 국청사에서 한산, 풍간과 함께 지내며 선시를 읊고 탈속한 일화를 남긴 선승인데, 이들이 남긴 선시집으로 ‘한산시(삼은집)’가 있다.
습득의 일화는 유명하다. 한산이 습득에게 물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비방하고 나를 속이고, 욕하고, 나를 비웃고, 나를 경멸하고 나를 천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습득이 대답했다. “그저 참고 그에게 양보하고, 견디며, 그를 존경하면 되지”라고 하였다. ‘법화경’에 나오는 상불경보살의 가르침이다.
이 시 ‘습득’은 한산과 습득처럼 허허 웃으면, 숨이 막힐듯한 이 세상을 살면서도 세상을 벗어난 탈속의 삶을 사는 격외(格外)를 읊고 있다. 도시인이 잃어버린 자연과 본래의 나의 모습과 순수한 마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격조 있는 시상으로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한 명품시이다.
김형중 문학박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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