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연쇄반응 / 김왕노
그해 명우 아버지 쓰러지고 다음 해 아버지가 쓰러지고
우리집 후박나무의 광합성 작용의 푸른 숨소리
마당 가득 차오르는데 아버지 바람에 밟히는 잡풀같이 맥없이 쓰러지고
아버지 쓰러진 다음 해 팔팔한 동네 철태 형 쓰러지고
몇백 년 고목도 쓰러지고 누가 도미노 놀이 하는지
그 해는 뜻하지 않게
오토바이 타고 가던 동생뻘 영태도 허공으로 바퀴 치켜들고
영전 속으로 가뿐히 자리 옮기고
봄기운이 잔물결 쳐 와 아래가 근질거리는데
내가 믿던 정의도 정부도 쓰러지고 뒷집 누나도 강둑에 쓰러지고
일으켜 세울 수 없는 쪽으로 쓰러지고 붉게 쓰러지고
사월도 오월도 썪은 고목 같이 쓰러지고 내 청춘도 모로 쓰러지고
누가 시도 때도 없이 도미노 놀이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세워 끄덕이며 앞세우고 가려는지 그 해, 붉게, 붉게
지난 40, 50년 우리나라를 대표한 박인환시인의 정신을 계승하는 제7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자에 김왕노(50)시인이 선정됐다.
김시인은 포항출신으로 지난88년 공주사대를 졸업했으며 92년 대구매일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김 시인은 지난 50년대 모더니즘 시학을 발전시킨 박인환 시인과 비슷한 현실의식을 깔은 모더니즘계통의 시를 발표하는 중견작가로 알려졌다. 95년 6인시집 '황금을 만드는 임금과 새를 만드는 시인'과 2002년 '슬픔도 진화한다'는 시집을 내는 등 글발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작품은 위독, 붉은 연쇄반응 쓸쓸한 가게, 다비식 등이 있다. 지난2003년 한국해양문확대상을 수상했다.
김씨는 “해방과 6.25 전후의 암울한 현실을 지적이고 이성적인 눈으로 성찰하여, 우리 모더니즘 시학을 발전시킨 박인환의 시인처럼, 현실 의식을 밑바탕에 깔고, 열정적인 시 작업을 통해 한국 문학발전에 기여하라”는 뜻일 거라며, 수상소감을 밝힌 김왕노 시인은 지금도 시 쓰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김왕노 시인은 첫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를 통해, 현대인의 존재 방식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도시란 공간 속에서, 인간이 자연을 말살해 가는, 인간성을 스스로 죽여 가는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잃어버린 인간의 순수성 회복을 위한 시 쓰기를 계속해온다는 김왕노 시인은 2003년에도 제7회 한국해양문학 대상을 받아 그의 문학적 저력을 나타낸 바도 있다. 아울러 제7회 박인환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하여 더욱 활발한 그의 시 작업을 기대해 본다.
심사자 조정권 시인은 심사평에서 “그의 시는 극단적 허무와 좌절에 봉착한 삶의 내상(內傷)에서 내출혈을 일으켜왔다. 상처 입은 짐승의 포효처럼 선이 굵고 강고한 이 시인의 야생의 외로운 목소리는 오랫동안 가위눌려져 왔었다. 시인이 살고 있는 정신의 처소는 어디일까. ‘멀리서 그대 위독이란 짐승이 되어 누워 있습니다.’라는 시구가 암시하듯 그곳은 매우 위독한 곳이다. “위독”은 그것이 비록 추상적 암흑의 세계라 하더라도 그 속에서 융기를 일으키는 허무의 거센 물길이 원초적 상상력과 조우하면서 웅대하게 내면화되고 안으로 굽이치는 남성적 육성을 획득한 작품이다. 대륙적 상상력으로까지 확대시켜 나간 점이 아주 든든해 보였다. 눌함(訥喊)이 절규로 뻗어 있다. 감마선같이 휘감는 광폭한 에스프리로 우리 시대를 감전시키는 송전탑 같은 힘이! 그 육성에 깃들어 있다. 박인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라고 말했다.
시상식은 10월 11일 오후 3시 강원도 인제문화관 대강당에서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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