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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콜링 / 이소호

 

 

헤이뷰티플 순백의 빅토리아 시크릿 이메진 웨얼아유고잉 허밍으로 돈츄스피크잉글리쉬 침 튀기는 엔초비 프린스 두유해브타임 개들이 살 비비는 센트럴 파크 따발총 칭챙총** 호퍼의 창문 하루 종일 키스미 미트볼 뚱뚱한 금요일 고져스 에이비씨 에비뉴 전깃줄에 묶인 발레리나 행아웃위드미 한밤중의 컴히얼 망아지 산책교실 인용구로 남은 스마일걸 아유얼론 뒤뚱뒤뚱 섬마을의 소낙비 드링크위드미 계단 위의 미로 허드슨 리버 가운데 굶주린 바케쓰 왓츠유얼폰넘버 소호 허니 도살장 나이스바디 플라타너스 아이러브 교회 탑 사방의 호각소리 마이럽 엉킨 바지를 벗었다 룩앳미 여러 켤레의 히치하이커 헤이 헤이룩앳미 젖은 레코드판 빈티지 미녀 룩앳미걸 두유워너퍽 수수깡으로 지은 경찰청 헬로헬로 종이컵 속에서 짤랑짤랑 우는 치나*** 오솔길 지름길 아유이그노잉미 낯선 몸과 학교로 가고 구석에서 조는 퍼킹비취 엄마 괜찮아요 잘 살고 있어요 행복해요 그 사이 나의 소원은 고백투유어컨트리

 

* 서구권에서 행해지는 노상 성희롱을 일컫는 말

** 서구권에서 중국어 발음을 따라 한 것으로 동양인을 비하할 때 쓰는 멸칭

 

 

 

캣콜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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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호 시인(30)이 제37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민음사는 5“237편의 시집 원고 중에서 이소호 시인의 캣콜링54편이 선정됐다시가 쓰여야만 했던 거센 에너지, 시인 내면과 외부의 세상 사이의 압력과 분출을 보여주는 유일한 응모작이라고 밝혔다. 심사위원을 맡은 김행숙 시인은 “2018년산 고백의 왕은 성폭력의 유구한 전통과 끔찍한 일상성을 폭로하면서, 이 고백의 연출자이자 동시에 여러 명의 등장인물로서의 미적 주체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 시인은 수상 소감에서 ()들은 제가 경험하고 듣고 배운 하나의 역사입니다. 폭력의 時集(시집)입니다. 여자라서 큰딸이어서 연인이어서 신도여서 외국인이라서 신인이어서 당했던 처절한 폭력의 현장입니다라며 불편하고 무한한 여자들의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흉내 낼 수 있어서 기쁩니다고 말했다.

 

수상 시인에게는 상금 1000만원이 수여되고, 시상식은 연말에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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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기둥 / 문보영

 

 

도서관에 간다. 밖에서 볼 땐 가로로 긴 직사각형이나 들어가면 첨탑이다. 높은 벽은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달았다. 너무 큰 창은 벽을 약하게 하며 창은 지나가는 것을 모두 수긍해버린다는 나의 생각이 틀렸다고, 도서관 사서인 에드몽 자베스는 말한다.

 

에드몽이 쓴 글라스의 왼쪽 알에 달린 얇은 줄은 어깨까지 드리운다. 이곳은 천장이 아주 높다, 생각하자 책을 높이 쌓아야 하니까, 에드몽이 대답한다 그는 램프의 뚜껑을 열어 기름을 채운 뒤 촛불을 켠다.

 

서가에는 책만이 있다 책들은 기둥 모양으로 쌓여 있다. 그 주변을 난쟁이들이 서성인다. 난쟁이들은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가로로 비틀어 책의 제목을 살핀다. 책기둥의 가장 아래쪽을 살핀다. 읽고 싶은 책은 늘 기둥의 가장 아래쪽에 있다 나는 읽고 싶은 책을 머릿속으로 떠올린다. 그러자 그 책은 기둥의 가장 아래 위치한다.

 

책기둥들은 어디론가 기울었다. 나는 기울어진 건물을 떠올린다. 피사의 사탑과 같이 똑바로 서지 못한 것들에 사람들은 환호한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것이 주는 감동은 책기둥이 주는 그것과 유사하다. 기우는 것은 어디론가 편향되니까 겉은 꼿꼿하나 안은 어디론가 치우친 인간의 몸을 떠올린다. 심장은 왼쪽으로, 간은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으므로 사람은 똑바로 걷는다. 기울어진 건물은 내부에 벽으로 치우쳐 자는 사람을 기른다, 는 내 생각을 읽은 에드몽이 나 대신 내 생각을 말한다.

 

그는 지팡이로 바닥에 널브러진 장서들을 옆으로 치우며 길을 만든다. 이따금 난쟁이들의 숱 없는 작은 머리를 지팡이로 내려친다. 난쟁이들이 독서에 집중하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그는, 책기둥에 등을 대고 앉아 책에 푹 빠진 난쟁이들만을 골라 때린다.

 

난쟁이들이 책기둥을 무너뜨리고 원하는 책을 얻는다. 다시 기둥을 쌓는다. 난쟁이들은 책을 때리고 책을 향해 침을 뱉고 욕설을 퍼붓는다. 그럴 만도 하다, 고 나는 생각한다. 책은 무례하니까. 책은 사랑을 앗아 가며 어디론가 사람을 치우치게 하니까. 벽만 바라봐서 벽을 약하게 만드니까. 벽에 창문을 뚫고 기어이 바깥을 넘보게 만드니까.

 

난쟁이들은 맨 아래 깔린 책을 얻기 위해 기둥을 무너뜨린다. 책은 쌓여 기둥이 된다. 기운다. 치우친다. 쏟아진다. 다시 쌓인다. 맨 아래 깔린 책을 읽으면 그 위에 쌓인 모든 책을 다 읽은 거나 다름없다고, 그 한 권의 책은 그 위에 쌓인 책들을 집약한다, 는 나의 생각이 안일하다고 에드몽은 꾸짖는다. 햇살이, 몇 가닥 되지 않는 얇고 구불구불한 난쟁이들의 머리칼에서 반짝인다. 빛이 그들의 오래된 생각을 때린다. 난쟁이들은 이제 지친 게 아니겠냐고 생각하는 나는 아직 책을 덜 읽었다, 고 에드몽이 말한다.

 

 

 

책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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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회 김수영문학상에 신예 시인 문보영(25)이 선정됐다.

 

30일 김수영 문학상을 주관하는 민음사는 "178명의 시인이 50편 이상의 시집 원고를 투고한 2017'김수영 문학상'에서 수상의 영예는 신예 시인 문보영이 가져갔다"고 밝혔다.

 

수상작은 '책 기둥' 52편이다. 고려대 교육학과 출신의 문 시인은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심사위원 김나영(문학평론가)"문보영 시의 담백하고도 에너지 넘치는 문장 이면에는 삶과 세상을 대하는 시인의 용기와 정직한 태도가 두텁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심사위원 조강석(문학평론가)"아쉬움과 결여조차 또 한 번 배신당하기를 희망할 만한 작품들이라는 것이 최종 결론"이라며 "또 하나의 사건이 되기를 희망하며 문보영 시인의 수상을 축하한다"고 전했다.

 

문 시인은 "별 이유 없이 시를 쓴다""시를 쓰는 순간만 아프지 않고, 시를 쓰지 않는 나머지 시간이 너무 지루하다. 사람들은 손잡이가 없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문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시를 쓸 때만큼은 사람의 무릎이나 겨드랑이 아니면 허벅지에 난 점 따위에 달린 작은 손잡이가 보이며, 열릴 리 없지만 왠지 열고 싶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수상작은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 9호에서 공개되며 수상 시집 '책 기둥'으로 만날 수 있다. 수상 시인에게는 상금 1000만 원이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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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의 물 / 안태운

 

 

그는 안에 있고 안이 좋고 그러나 안으로 빛이 들면 안개가 새 나간다는 심상이 생겨나고 그러니 밖으로 나가자 비 내리고

비는 믿음이 가고 모든 맥락을 끊고 있어서 좋다고 그는 되뇌고 있다 그러면서 걸어가므로

젖은 얼굴이 보이고 젖은 눈이 보이고 비가 오면 사람들은 눈부터 젖어 든다고 그는 말하게 되고 그러자 그건 아무 말도 아닌 것 같아서 계속 드나들게 된다

얼굴의 물 안으로

얼굴의 물 밖으로

비는 계속 내리고 물은 차오르고 얼굴은 씻겨 나가 이제 보이지 않고

 

 

 

감은 눈으로 / 안태운

 

꿈으로부터 내쳐진다. 감은 눈으로, 일부러 눈 뜨지 않고 걸으면 나와 함께 내쳐진 논이 있고 논 위로 걷는 내가 만져진다. 보이지 않는 눈앞에서 그러나 내가 만진 것들은 다 사라지고 사라진 것들은 내 손을 멈추게 하고 손은 어둠에 익숙해진다. 걷고 난 후의 일들은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짚이 타고 있다. 눈 뜨면 꿈과 함께 내쳐졌다.

 

 

 

감은 눈이 내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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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로 안태운(30) 시인이 선정됐다고 상을 주관하는 민음사가 4일 밝혔다. 수상작은 '탕으로' 50편이다.

 

민음사는 4“135명의 시인이 각기 50편 이상의 시집 원고를 투고한 올해 김수영 문학상에서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는 에너지와 확고한 시 세계를 이끌어가는 능숙한 전개가 돋보이는 안태운 시인의 탕으로49편이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심사에 참여한 강정 시인은 "유동적인 세계를 담아내고 있는 그의 시는 지하에서 지하로 흐르는 물처럼 언뜻 봐서는 눈에 띄지 않지만, 들여다볼수록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문장들이었다. 지하에만 머물지 않고 간간이 지상으로 도약하는 듯한 문장의 꿈틀거림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상작은 다음달 발행되는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 3호에 실리고 단행본 시집 <탕으로>로 출간된다. 시상식은 다음달 20일 오후 730분 강남역 카페 빈브라더스에서 안 시인의 시집 낭독회로 열린다. 상금은 10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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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최대화 / 황유원

 

 

화물칸에 일렉기타를 한 만 대쯤 싣고 가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무거운 마음

 

그 속을 누가 알겠냐마는 철로만은 알지,

짓밟힌 몸길이를 짓밟힌 시간으로 나눠 기차가 절망하기 시작한 지점에서부터 자기 합리화에 성공하는 지점까지 걸린 속도를 계산해내며 자기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짓밟고 가는 기차의 무게를 참고 견디지

 

기차가 아무리 짓밟고 가도 손가락도 발가락도 잘리지 않는 건 손가락도 발가락도, 아무것도 없어서

 

손가락을 잃은 기타리스트는 알지 흉측한 음악을 만들 바에야 약을 먹고 죽는 게 낫다는 걸

발가락이 없는 애벌레는 알지 발가락이 없으면 기어서라도, 가고 싶은 곳엔 가고 봐야 한다는 걸

 

말하자면 비시각적 음표들의 시각적 극대화

 

그러나 약은 치료하기도 하는 것,

병명보다 더 많은 치료제를 잔뜩 싣고 가던 기차가 마침내 말기에 다다라 포기하고 탈선할 때

눈 내린 들판에 처박힌 기차에서 동그란 알약들이 쏟아져나올 때의 기분이란

 

그 기분 누가 알겠냐마는 환자들만은 알지,

환자들은 꿈속에서 거기까지 걸어가 그 약을 모두 주워 먹은 다음날 아침 병실에서 깨어나 기차의 차가운 몸을 이해하지 넘어진 채 몸을 뒤로 돌리던 기차를 이해하며 몸을 정확히 당신들 반대편으로 돌리지

 

현실도피는 없어, 현실의 최대화만이 있을 뿐

 

오늘밤 그들의 기도가 기차처럼 길어져 결국 지구를 몇 바퀴씩이나 돈 기도들의 속도가 기차를 조금씩 허공에 뜨게 해 마침내 이륙한 기차를 바라보며 철로가 난생처음으로 편안해질 수 있다는 희망,

을 품자마자 기차는 곤두박질치고

지진처럼 지축이 흔들려 복부를 강타당한 남자처럼 철로가 신물을 토할 때 신물 위로 기타가 쏟아지는 기분

 

그 기분은 누가 알까

침대에서 굴러떨어져 꿈에서 엎질러진 아이나 알까

 

아무리 길게 써도 저 레일에는 모자랄 것이므로 여기서 그만둬도 상관은 없겠지만

 

고요한 밤, 캐롤을 싣고 가다 넘어져 모두 엎질러버린 아주아주 거룩한 밤, 깨진 전구를 뛰어넘어 크리스마스의 본질을 거침없이 이해하고 산타를 엉망진창으로 때려눕히고

 

지구가 한 바퀴 돌기 전까지 기타를 모두 수리해야 하는 수리공의 마음은 망가진 리프(riff)들을 밤새 고치고 있는 기타리스트밖에 모르지

너에겐 싣고 가다 넘어져 모두 엎질러버릴 만한 그 무엇이 있나? 넘쳐서 어쩔 수 없이 들켜버리는 리듬이라도 있니?

넘쳐서 어쩔 수 없이 들켜버리는 리듬을 타고 비옥한 꿈속을 달리다 넘어지는 곳이 늘 절벽 앞이어서 느껴보는

아찔함, 그 뒤에 웅크리고 앉아 그 리듬을 정면으로

견뎌본 적 있니!

 

구겨진 리듬을 잘 펼치면 과연 어디까지 펼쳐질 수 있을지, 무엇까지 덮어볼 수 있을지를 가늠하며 최대한 붉은 와인을 박스째 주문해

 

뱃속에 와인을 만 박스나 싣고 가는 기차가 오늘밤 도무지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유를 누가 이해하겠냐마는

사랑을 한 박스나 마시고도 제대로 서 있는* 조니 미첼은 이해하지, 어쩌면 술집을 이름표처럼 달고 다니다 이름을 아무 데서나 콸콸 쏟아버리던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이해하지

 

잠시 동안의 짧고 굵은 경악과 모든 최대화에 따르는 극심한 부작용, 그때마다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경적을 울리며 긴 열차 한 대 빨려 들어오는 느낌, 결국 일망타진 당하고 마는 느낌을

 

너무 긴 문장에겐 이제 그만, 쉼표를

 

* Joni Mitchell, A Case of You중에서.

** Amy Winehouse.

 

 

 

세상의 모든 최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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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는 제34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자로 황유원(33) 시인이 선정됐다고 14일 밝혔다. 수상작은 '세상의 모든 최대화' 50편의 시다.

 

서동욱 심사위원(시인·평론가)"가식 없이 절실한 시적 정황들이 주는 무게감을 시편 하나하나가 고르게 성취하고 있는 황유원의 진지한 세계는 매우 드물고 값지다"고 평했다.

 

수상작 가운데 7편은 계간 '세계의 문학' 겨울호에 실린다. 수상작을 모두 담은 시집 '세계의 모든 최대화'는 이달 중 민음사에서 출간된다.

 

상금은 1천만원이며 시상식은 오는 22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민음사 사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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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 / 기혁

 

 

자동차 트렁크에 실린 소나무가

허공으로 뿌리를 내밀자,

지상도 지하도 아닌 나라가 생겨났네.

 

그 나라 시민들은 블랙 러시안이나

화이트 러시안 표정을 지으며

허공에 허파를 만들고

심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네.

 

몇 번의 눈사태와 크리스마스가

달궈진 아스팔트 아래 묻히는 동안,

독재자를 연기하는 배우를

지도자로 추대하기도 했네.

 

그 나라의 모든 병명은 비유였으므로

의사는 처방전 대신

시를 적어 내밀곤 했지.

 

엘리베이터를 천사라고 부르게 된 건

그 나라의 돌림병 때문이었네만

하늘을 나는데

꼭 혁명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네.

 

천사를 타기 위해 필요한 중력을

사람들은 서로를 껴안으며 마련했고

그것을 적분해

사랑이라 부르기도 했었네.

 

떠돌이 악공의 연가가 끝나 갈 무렵

+에서 -로 전류가 흐르는 건

기타 줄만이 아니었다는군.

 

잊었는가? 소나무가 뿌리내린 곳에는

사철이 없다는 걸 말일세.

 

여름이 끝나고 드라마가 찾아오고 있다네.

천사가 지나간 자리는 모두

그들의 박수일 따름이었네.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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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민음사와 계간 '세계의문학'이 주관하는 제33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기혁(35)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 51편으로 지난 19일 시집으로 출간됐다.

 

심사위원들(김혜순·김기택·서동욱)"시집 전체를 통틀어 자신의 시 스타일을 끝까지 견지하고 한 편 한 편에서 긴장을 놓지 않았다"고 평했다.

 

기씨는 2010'시인세계'에 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2013'세계일보' 신춘문예(평론)로도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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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공동체 / 손미

 

 

그러니 이제 열쇠를 다오. 조금만 견디면 그곳에 도착한다. 마중 나오는 싹을 얇게 저며 얼굴에 쌓고, 그 아래 열쇠를 숨겨 두길 바란다.

부화하는 열쇠에게 비밀을 말하는 건 올바른가?

 

이제 들여보내 다오. 나는 쪼개지고 부서지고 얇아지는 양파를 쥐고 기도했다. 도착하면 뒷문을 열어야지. 뒷문을 열면 비탈진 숲, 숲을 지나면 시냇물. 굴러 떨어진 양파는 첨벙첨벙 건너갈 것이다. 그러면 나는 사라질 수 있겠다.

 

나는 때때로 양파에 입을 그린 뒤 얼싸안고 울고 싶다.

흰 방들이 꽉꽉 차 있는 양파를.

 

문 열면 무수한 미로들.

오랫동안 문 앞에 앉아 양파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때때로 쪼개고 열어 흰 방에 내리는 조용한 비를 지켜보았다. 내 비밀을 이 속에 감추는 건 올바른가. 꽉꽉 찬 보따리를 양손에 쥐고

 

조금만 참으면 도착할 수 있다.

한 번도 들어간 본 적 없는 내 집.

 

작아지는 양파를 발로 차며 속으로, 속으로만 가는 것은 올바른가. 입을 다문 채 이 자리에서 투명하게 변해 가는 것은 올바른가.

 

 

 

양파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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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와 계간 '세계의 문학'이 주관하는 제3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로 손미(31)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양파 공동체' 49편의 시다.

 

심사위원들은 "양파 하나가 쪼개지는 사건 속에서 우주를 보여 주는 시인이다. 세상과 인간의 마음을 통과하는 무시무시한 동요(動搖)가 유리의 실금과도 같은 식물의 결 속에서 섬세하게 그려진다"고 평했다.

 

수상작은 20일 단행본으로 출간되며 부상으로 상금 1천만원이 주어진다. 시상식은 20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강남출판문화센터 내 민음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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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관조 씻기기 / 황인찬

 

 

이 책은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새를 다뤄야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비현실적으로 쾌청한 창밖의 풍경에서 뻗어

나온 빛이 삽화로 들어간 문조 한 쌍을 비춘다

 

도서관은 너무 조용해서 책장을 넘기는 것마저

실례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어린 새처럼 책을 다룬다

 

새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새는 스스로 목욕하므로 일부러 씻길 필요가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읽었다 새를

키우지도 않는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어째서였을까

 

그러나 물이 사방으로 튄다면, 랩이나 비닐 같은 것으로 새장을 감싸 주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긴 복도를 벗어나 거리가 젖은 것을 보았다

 

 

 

구관조 씻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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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민음사와 계간 '세계의문학'이 주관하는 제31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황인찬(24)씨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구관조 씻기기' 54편이다.

 

심사위원단은 "언어에게 옷을 입히는 방식이 아니라 언어를 씻기는 방식을 통해 새로운 시적 경험을 선사하는 황인찬의 시는 예술적인 다양한 '방법론'을 지워 버리는 희귀한 '방법론'으로 최근 우리 시에서 볼 수 없었던 농도 짙은 개성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고 평했다.

 

상금은 1000만으로 선인세 방식으로 지급된다. 시상식은 1213일 오후 5시 서울 신사동 강남출판문화센터 내 민음사에서 열린다.

 

한편, 1988년 경기 안양에서 태어난 황씨는 중앙대 문창과를 졸업했다. 2010'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했다. 현재 동인 ''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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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 서효인

 

 

평화는 전투적으로 지속되었다. 노르망디에서 시베리아를 지나 인천에 닿기까지, 당신은 얌전한 사람이었다. 검독수리가 보이면 아무 참호에 기어들어가 둥글게 몸을 말았다. 포탄이 떨어지는 반동에 당신은 순한 사람이었다. 10분 정도는 늦게 도착했고, 의무병은 가장 멀리 있었다. 지혈하는 법을 스스로 깨우치며 적혈구의 생김처럼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전투는 강물처럼 이어진다. 통신병은 터지지 않는 전화를 들고 울상이고, 기다리는 팩스는 오지 않는다. 교각을 폭파하며, 다리를 지나던 사람을 헤아리는 당신은 정확한 사람이다. 굉음에 움츠러드는 사지를 애써 달래며 수통에 논물을 채우는 당신은 배운 사람이다. 금연건물에서 모르핀을 허벅지에 찌르는 당신은 인내심 강한 사람이다. 허벅지 안쪽을 훔쳐보며 군가를 부르는 당신은 멋진 사람이다. 노래책을 뒤지며 모든 일을 망각하는 당신은 유머러스한 사람이다. 불침번처럼 불면증에 시달리는 당신은 사람이다. 명령을 기다리며 전쟁의 뒤를 두려워하는 당신은 사람이었다. 백 년이 지나 당신의 평화는 인간적으로, 계속될 것이다. 당신이, 사람이라면.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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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민음사와 계간 '세계의문학'이 주관하는 제30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서효인(30)씨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49편이다.

 

심사위원들은 "낯선 것이 낯익은 것에 닿고, 가장 낯익은 것이 가장 낯설어지는 순간을 체험케 했다"고 평했다.

 

상금은 1000만원이며 시상식은 1220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민음사에서 열린다.

 

한편, 서씨는 1981년 광주에서 태어나 2006'시인세계'로 등단했다.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등을 펴냈다. 동인 '작란'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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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 / 김성대

 

 

함구

함구는 조금씩 우리를 달리게 하는지도 모른다

함구는 조금씩 바깥에서 깊어진다

여기는 속 없는 굴속 같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깥을 모으는

굴은 지상으로 입을 벌리고

토끼는 반시계 방향으로 굴을 오른다

빨간 눈은 데굴데굴, 먼저 굴러가 있다

있는 힘껏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리뛰기

토끼는 자신의 눈을 보면서 달리는 것이다

자신을 함구하는 빨간 눈이 토끼의 공률이다

 

아버지랠리

공률 제로의 아버지는 서식지를 오염시키지 않는다

청정 지역이 되어 버린 아버지

일제히 눈을 켜고 빨간 눈을 따라간다

뒤에서 보면 무릎을 공회전하고 있다

이 눈을 좀 꺼 줘

자꾸 늘어나는 눈을 끄고 싶다지만

제로에 제로의 공률을 가속해 천문학적 사십 세에 이른다

반시계 방향의 급커브를 꺾어져서야

오래 비워 두었던 눈을 한번 감아 보는 것이다

다시 빨간 눈이 들어오고 있다

아버지는 한밤중에 그 눈을 따라간다

 

아랍인 투수 느씸

느씸은 공을 쥐지 않고 던진다

긴 손금으로 공에 대해 기도하고

시간 속에 공을 놓는다

공은 한없이 느리지만 시간의 결을 타고

반시계 방향으로 공회전하기 때문에

아무리 정확한 타자라도 맞출 수 없다

공에 대한 기도가 시간을 휘는 것이다

그러나 공을 받을 사람은 없고

느씸은 자신이 던진 공을 노려보느라 눈이 충혈된다

공은 젖어 가고 느씸의 눈은 폭발하고

빨간 눈이 흩어지고 흩어진 눈들이 느씸을 바라보고 있다

그가 던진 공은 눈먼 그만이 받을 수 있다

 

납굴증

밤의 소리들이 만질 수 없는 귀를 음각한다

귀 가득 무엇이 이리 무거울까

귀가 뜨거워질 때까지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귀는 말라 가고 우는토끼,

몸 안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다

몸을 얻고 나서 몸 밖으로 나오기가 어려워진

이 밤은 누군가의 눈 속 같군

눈알이 염주가 될 때까지

이 밤을 모으고 있는 눈은 누구의 것인지

우는토끼 속의 우는토끼

돌아보는 눈까지 멈추고

한 벌 귀로 남은 밤

 

미결

이것은 관점의 문제가 아니다

긴 귀,

피가 미치지 않을 만큼 긴 귀가 결론을 뒤집지는 못했다

눈알을 반시계 방향으로 굴리며

관점을 덜어 내고 있는

그들의 정신만큼 안전한 곳은 없다

없는 귀 가득 명료한 결론들

정신은 없는 귀에 순응하는 것이다

귀가 좁아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끊임없이 자신을 듣는 귀 안쪽이 비리다

이름이 너무 길거나 붙일 수 없거나

귀의 기억만으로 그들은 자신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귀가 없다면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눈이 없다면 계속 귀 기울여야겠지만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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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민음사와 계간 세계의 문학이 주관하는 제29회 김수영문학상을시인 김성대씨(38)가 수상한다. 수상작은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55편이다.

 

심사위원단은 깊이 있고 폭이 넓은 이미지를 자유롭게 활용해 스케일이 큰 시를 빚어내는 능력이 돋보인다간결하고 선명하게 구성하는 시적 방법이 감각적인 데다가 장인의 솜씨도 느껴진다고 평했다.

 

상금은 1000만원이다. 시상식은 1217일 오후 5시 서울 강남출판문화센터 민음사에서 열린다. 이날 수상작을 묶은 단행본도 출간된다.

 

강원 인제 출신인 김씨는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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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의 건축 / 김경주

 

 

오르골이 처음 만들어질 때 유리통 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은 음악에 고이는 태풍이 되고

오르골에 조금씩 금이 갈 때 유리통 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은 그 음악을 태풍으로 만든다

 

립파이를 먹고 싶을 때에는 립파이를 먹고

죽은 시계를 차고 여행 가고 싶을 때는 죽은 시계를 차고 여행간다

어떤 여행지에서는 살구와 자두를 아직 구별하지 못한다

 

오전엔 박하향이 나는 담배를 물고 불을 끄러 가는 소방관을 보았고

오후엔 소방관이 박하사탕처럼 건물 속에서 녹는다

 

수업시간엔 세계지도를 펴 놓고 먼 도시들의 위도와 경도를 외웠는데

수업이 끝나면 독사를 잡으러 가기 위해 검은 봉지를 주우러 다녔다

 

밤엔 나무에 몰래 기어올라 앉아 있는 느낌보다 나무에서 떨어진 느낌으로

책을 본다 새벽엔 종이비행기보다 종이배를 더 많이 접었다고 고백하는 느낌

종이배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이봐 네 곁에 난 오래 앉아 있었다구

내가 공책에 갈겨 쓴 아주 많은 글자들이 밤에 지우개 속으로 모두 들어가 사라진 날의 느낌

 

인도향을 선물받은 날 다리를 좀 절었고 시차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다. 집에서만 지내는데도 망각이 필요하다는 사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기는 데에도 기억은 수십 종의 식물을 달고 간다. 어쩐지 너의 여행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많은 종의 연필이 필요할 것 같아서 흑말을 탈까? 백말을 탈까? 청기를 들까? 백기를 들까? 여행은 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침묵의 차이 같아...

 

내 현기증이 조금 잘 팔리는 이유는 졸음과의 싸움같은 것인데

네 수증기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내가 모르는 마을 속에서 언제나 네가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일 거야 과민한 날 합격통지서를 받은 것처럼, 아침에 손톱을 자르고 저녁에 손톱을 잃어버렸다고 우는 아이처럼, 부모의 섹스를 처음 훔쳐본 날의 몽연함처럼 나는 <붉은 책 암송대회>에 나가 우승을 하고 온 엄마를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유산같은 건 필요 없어요. 대신 엄마의 멀미를 내게 다 주세요

 

누군가 내게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넌 고향을 꽃다발처럼 평생 벽에 거꾸로 말릴 생각이니?’

누군가에게 언젠가 이렇게 말할 날이 올 것이다. ‘주머니를 뒤집으니 강아지 사료 한 알이 나옵니다.’

 

유리창에 입김으로 그려놓은 건축들이 흘러내린다

그건 시차를 이해해 가는 가장 아름다운 머릿속의 물방울들

배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스무 살도 안 되서 양미간을 찌푸리고 나쁜 감정에 진학하기 위해

나는 침묵의 보병이 되었다. 부재의 영역에서 말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역할을 할 뿐이고

시는 그곳을 오고 가는 내 인종人種에 불과하다. 간직하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자신의 시차를 돕기를.

 

 

 

시차의 눈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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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로 김경주(33) 시인이 선정됐다.

 

문학상을 주관한 민음사와 계간 '세계의 문학'은 김씨의 시 '연두의 시제' 50편을 김수영문학상으로 선정했다고 24일 밝혔다. "감각과 정서를 급습해 미적 자극을 주고, 그것을 활동하게 하는 힘으로 생생한 미적 울림을 보여준다"는 심사평이다.

 

2003'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씨는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기담' 등을 펴냈다. 2009년 오늘의 젊은 예술상과 시작문학상을 수상했다.

 

상금은 선인세 형식으로 1000만원이 지급된다. 다음 달 11일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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