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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 서효인

 

 

평화는 전투적으로 지속되었다. 노르망디에서 시베리아를 지나 인천에 닿기까지, 당신은 얌전한 사람이었다. 검독수리가 보이면 아무 참호에 기어들어가 둥글게 몸을 말았다. 포탄이 떨어지는 반동에 당신은 순한 사람이었다. 10분 정도는 늦게 도착했고, 의무병은 가장 멀리 있었다. 지혈하는 법을 스스로 깨우치며 적혈구의 생김처럼 당신은 현명한 사람이었다. 전투는 강물처럼 이어진다. 통신병은 터지지 않는 전화를 들고 울상이고, 기다리는 팩스는 오지 않는다. 교각을 폭파하며, 다리를 지나던 사람을 헤아리는 당신은 정확한 사람이다. 굉음에 움츠러드는 사지를 애써 달래며 수통에 논물을 채우는 당신은 배운 사람이다. 금연건물에서 모르핀을 허벅지에 찌르는 당신은 인내심 강한 사람이다. 허벅지 안쪽을 훔쳐보며 군가를 부르는 당신은 멋진 사람이다. 노래책을 뒤지며 모든 일을 망각하는 당신은 유머러스한 사람이다. 불침번처럼 불면증에 시달리는 당신은 사람이다. 명령을 기다리며 전쟁의 뒤를 두려워하는 당신은 사람이었다. 백 년이 지나 당신의 평화는 인간적으로, 계속될 것이다. 당신이, 사람이라면.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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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민음사와 계간 '세계의문학'이 주관하는 제30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서효인(30)씨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49편이다.

 

심사위원들은 "낯선 것이 낯익은 것에 닿고, 가장 낯익은 것이 가장 낯설어지는 순간을 체험케 했다"고 평했다.

 

상금은 1000만원이며 시상식은 1220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민음사에서 열린다.

 

한편, 서씨는 1981년 광주에서 태어나 2006'시인세계'로 등단했다.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등을 펴냈다. 동인 '작란'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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