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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암묵적 약속 / 유태양

[우수상] 가방 / 김소나

[장려상] 어제 / 박성애

[장려상] 일기장 / 이희진

[장려상] 가방 사는 낙 / 정서윤

[특별상]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원고제출 / 박미나

[입선] 가방 / 권소영

[입선] 어제 / 류정하

[입선] 어제 / 송영숙

[입선] 가방 / 장은미

[입선] 후카 / 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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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먼지 / 허인혜 

 

방문 여는 소리에

자폐적 어둠에 부유하던

시간의 지층이 출렁였다


미처 태어나지 않은 선들을 끌어안은 채

아리아스는 마지막 인사처럼 고개를 숙였다


다듬어 놓은 턱 선으로 섬세한 먼지가

탈색된 머리카락을 따라 흘러내렸다


이마의 명암은 수없이 혼자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고

눈동자 없는 눈에서 먼지는 유적처럼 쌓여갔다


회반죽처럼 서서히 굳어간 웃음과 눈빛

텅 비어 있어 더 무거워지는 얼굴이 있다


전생을 비춰보던 벽거울 속에서

거미줄로 뒤덮인 석고상 하나를 더 발굴한다


멀리서 겉돌고 있는 혹성

남 같은 내가 궤도를 이탈 중이다


재활용스티커 한 장을

뒤통수에 부쳐야 될지

이마에 부쳐야 할지 망설인다


오래 전 눈빛이 빠져나간 자리

내려 앉은 입장들이

먼 미래를

다시 불러 모으고 있다


 

 

우수상 성지수 먼지의 날들

 

 

 

장려상 권용희 부레라디오

엄인옥 사랑

유은아두통

 

 

 

입선 김인숙라디오

민서현 사랑

박하림 라디오

변아림 두통의 임무

오산하 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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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물고기 / 박희연

 

한 겨울 아스팔트에 말라붙은 물고기를 보았다

삭풍을 견디는 힘은 가시에서 비롯하는 듯

물고기는 스스로 살을 발라버리고

가시를 점점 더 가늘게 벼리고 있었다

 

바람은 종종 눈물을 부른다

울음은 뼈를 드러내는 일

골수까지 얼어붙은 바람이 불어야

더 열심히 울 수 있다고

더 열심히 울어야

악착같이 끌어안을 수 있다고

악착같이 끌어안아야

두 번 다시 너를 보내지 않을 수 있다고

물고기는 마지막 비늘까지 떼어내며

아스팔트 위에 굴신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목이 조여 오는 세상

스스로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는

제 몸을 불사르고 청계천을 달린 아이들의 엄마

진도 바다에 영문도 모르고 수장된 아이의 엄마

아직 엄마 젖 주무르기를 좋아하던 어린 날

전쟁터에 끌려가 갈기갈기 찢긴

이제는 늙어버린 여자 아이

광대뼈가 불거지고 손마디가 굵어지고

거죽 위로 두두룩 뼈마디가 솟아오른

더러는 흙이 된 여자들

 

한겨울 아스팔츠 위에 화석처럼 굳어버린 여자들을 보았다

그 버려진 가시 위에 골수처럼 비가 내렸다

 

 

 



우수상 김인숙혼자

 




장려상 김하나 010-거울

변아림 고슴도치

정유리 물고기의 기척

 




입선 김후자 물고기

박화진 아버지에겐 아가미가 있다

서영지 발랄한 물고기자리

성지수 물고기

허수현 고슴도치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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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세탁소 / 이경자

 

그가

힘이 쭉 빠진 채

후줄근하게 들어와 눕는다

 

그는

뜨겁게 울어대는 매미처럼

울고 싶단다

 

그를 위해

헉헉대며

쌘 콧김까지 불며

꼿꼿하게 자존심 세워 주었는데

 

그는

바짝 말라버린 속내를

물 빠진 섬처럼

감추고 있다

 

지친 그의

가랑이를 잡고

허해진 마음을

힘껏 눌러준다

 

여긴 숨고 싶은

작은 기도원

 

 

 


우수상 신소영

 




장려상

김지영

방혜영

조혜영

 



입선

권혁남

김인숙

김태경

유은아

정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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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목요일 / 김희정

 

하현달이 목요일에 닻을 내린다

10, 포장마차에서

여자는 철 지난 봄날을 찬물에 말아먹는다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작은 섬 같은

여자의 간판 없는 포장마차

천막에 휘갈긴 이름 몇 개로

여자는 불려진다

손님들은 철새처럼 여독을 풀자마자

취기의 길을 떠나고

여자는 표류하는 제 남편을 찾지 않는다

목요일 청취자 코너에 여러 번 제 사연을 흘려보내지만

일인분에 2천원 어치의 얘깃거리는

누구도 건져 올리지 않아

여자는 제 얘기를 듣고 슬퍼해 본 적이 없다

끼룩, 끼루룩 어린 딸이 웃는다

너도 언젠간 이곳을 떠나겠구나

기름때 묻은 손에선

튀김집게도 잔돈도 인연도 자꾸 미끄러진다

손님들의 웃음소리는 높게 파랑을 치고

여자의 목요일은 홀로 어둠 속에 가라앉는다

 




 

우수 꽃무늬 스카프 (글제: 스카프) 김은미

 




장려

목요일 (글제: 목요일) 이영행

(글제: 열쇠) 박은지

가문의 열쇠 (글제: 열쇠) 이정림

 



입선

주황색 말그림 스카프 (글제: 스카프) 이아진

목요일은 쉽니다 (글제: 목요일) 박선옥

꽃무늬 스카프 (글제: 스카프) 박은영

열쇠 (글제: 열쇠) 안현숙

목요일 (글제: 목요일) 이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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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벽돌에 대하여 / 성지수

 

벽돌을 쌓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네모난 감정을 따라서

점점 각이 지고 있었다

환절기에는 조심해야 한다

벽돌처럼 금방 뜨거워지고

빨리 식어 버리니까 나는

다혈질의 체질을 타고났다

 

무른 당신과 이야기를 했을 때

나도 물렁물렁해지고 싶어서 입을 열었으나

벽돌만 한 장 더 쌓아올렸을 뿐

아래에 쌓여 있는 벽돌들은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었다

나는 그걸 모른 체 했다

무너지지 않을까 아슬아슬한데 그 위로

벽돌이 하나 더 쌓이고 있었다

 

지칠 줄 모르고 벽돌을 쌓는 사람들이 있다

숨 쉴 때마다 균열이 간 벽돌에서

가루가 떨어져 상처를 냈다

사방은 어느 순간 막혔다

당신들은 밖에 있고 나는 내부 뿐이었다

벽은 조금씩 높아져 갔다

 

오늘도 가까스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속이 무거워져서 그림자가 질질 끌러왔다

입을 열려는 순간 벽돌 얹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나도

딱딱한 네모로 끼워지는 걸까

 

 

 

 

[으뜸상] 돌멩이 / 허주영

 

경주 남산 놀러 갔다 오신 어머니

산새 소리 쨍알쨍알 들리는

돌멩이 두 점 주워오셨네

휴지로 돌돌 싸 주머니에 돌돌 넣어 오셨을 것이네

돌아와 책상 위에 올려 놓아보니

집안에서 흙길에 돋아나던 솔바람 냄새 가득 차오르네

시집 읽다 종종 옆에 있는 돌멩이를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서로 맞부딪쳐 보기도 하네

 

나는 돌멩이가 앉아있던 그 산길을 생각하네

등산객들 발길에 툭툭 채이던 그 자갈길을 생각하네

산바람에 긁히고 산짐승 발톱에 긁혀

고분벽화처럼 조각나기도 했을 저 돌멩이

비 오는 날엔 풀잎 아래 웅크리고 있었을까

햇빛 반나절, 냇물 소리 두어 달,

바람 냄새 한 됫박 들어있을 저 돌멩이

 

그 산돌멩이 어머니 손에 들켜 예까지 잡혀 왔을까

아무리 산노루 같은 눈망울로 쳐다보아도

이제 저 돌멩이는 더 이상 산돌멩이가 아니네

고향도 잃고 야성도 잃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저 돌멩이 햇볕이, 봄바람이 그리운지

자꾸만 여울처럼 울고 있는 것 같네

 

 

 

[으뜸상] 할아버지의 자전거 / 황재연

 

해거름이 낮게 깔린 오후

우리 외갓집 마당 한편에 놓인 자전거는

꼭 할아버지를 닮았어요

쪽마루에 앉은 할아버지의 버짐 핀 손은

자전거 바구니처럼 금이 가 있어요

칠이 벗겨진 자전거에선 녹슨 냄새가 피어올라요

 

할아버지가 힘차게 밟았던 페달은

정지된 채 허공에 박제가 되어버렸어요

헤드라이트는 할아버지의 어두운 앞날을 비추고 있어요

할아버지의 낡은 짚신 옆에는 지난 신문들이 쌓여있어요

공중에 희석되지 못한 찬바람이

신문을 자꾸만 들춰봐요

할아버지의 눈은 길을 잃어버린 바퀴 같아요

초점 잃은 두 동공은 애꿎은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요

더 이상 굴러가지 않는 자전거 바퀴는

찌그러진 날들을 머금고 있어요

이제 자전거 브레이크도

할아버지의 흘러가는 세월을 잡지 못해요

망가진 자전거는 고칠 수 있지만

할아버지의 빛바랜 기억들은 고칠 수 없어요

 

벌겋게 변색된 하늘의 색이

할아버지의 허연 머리칼 사이사이 스며들었어요

자전거 안장에는 할아버지 대신

타들어 가는 노들이 자리 잡았어요

외갓집 마당에서 낡은 체인랑 소리 대신

시곗바늘 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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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실개천 / 박선민(고등부)

 

실개천은 견고한 실학實學이다.

누구든 이 가늘고 긴 배움 앞에서

반나절만 앉아 있으면

벌떡 일어서는 깨달음을 알게 된다.

 

독실한 본분을 몰두하는 실개천은

훌륭한 포장사이기도 하다.

푸른 논배미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듯하게 묶고 있다.

실개천을 흘러가는 물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한 땀 한 땀 논을 깁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로질러 묵직한 궁리 몇 개 놓아두고

누구든 발 젖지 않고 건너가라는

조언 같기도 하다.

 

실개천 끝에는

작은 돌다리들이 매달려 있고

또 실개천 끝에는

푸른 논배미가 달려 있다.

그러니까 실개천은 물의 오솔길이다.

 

커다란 강이 풀리는 소리

논과 논을 연결해 꿰매고 있는 소리가 밤낮을 새우고

오랜 시간을 한 번도 끊지 않고

흐르는 실개천은 바느질법이다.

 

음계를 열어놓고 실개천에

발을 첨벙거리면 아이들의 음악 시간이 펼쳐진다

 

넘치는 강을 허물어

마음을 감싸고 흐르는 실개천은

구휼을 베푸는 박애주의자일 것이다.

 

 

 

 

 

[으뜸상] 숲 속에 가다 / 차유오(고등부)

 

할머니 숲 속에 첫발을 딛자

소멸해 버린 잎들이 가득 날렸다

낡은 검정 고무신을 따라 숲길을 걸을 때면

나무그늘로만 내 손을 이끌던 할머니

늘 잘 익은 열매 한 알을 따서 내게 건네셨다

잘 익은 알알을 따라 구르던 생이 재생되고

알싸한 맛에 코끝이 찡해 미간을 잔뜩 찌푸리던 나

어렸을 적 가난에 배를 곯으면

선산 뒤에 숨어 개딸기를 훔쳐 먹었다던 할머니는

배탈이 나고 두드러기를 앓고 했더랬다.

이제는 먹고살 것이 늘어났는데도

여전히 뜰에 앉아 숲을 배부르게도 바라보는데

바치춤에 딸기를 한 아름 담던 할머니의 소매엔

이미 붉은 물이 스며들고

허리춤까지 따라 든 노을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

아물면 다시 짓무르고

짓무르면 다시금 아려오던 삶의 생채기 속에서

할머니는 얼마나 힘드셨던 걸까

광 밑에 숨겨둔 오동나무 지게의 나이테가

오늘따라 더욱 선명하기만 한데

숲 속으로 희미해지던 마지막 발자국을 찾아

빈 숲을 찾아 온종일 헤맨다

빨갛게 짓무르던 생애의 골목에서

수줍게 딸기를 따 먹던 소녀는

오동나무 지게에 실려 숲으로 희미해져 갔는데

주인 잃은 열매들만 선명히도 피어나는 걸까

할머니 숲 안으로 사라진 오늘

서쪽 너머로 녹음이 짙기만 하다

 

 

   

 

[으뜸상] 숲의 기억 / 안지숙(대학 일반부)

 

팔레트의 갈라진 물감들이 하늘에 흩뿌려진다

거대한 메아리들이 경계를 품고 온몸을 휘감는다

사내가 연두, 라고 발음을 하자

되돌릴 수 없는 사월의 봄이 지나갔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꽃들은 단단히 주먹을 쥐고

나무와 나무의 간격은 더 멀어진다.

 

사내의 얼굴이 흐려진 계곡 물에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복숭아를 베어 물자 입에 침이 고인다

바람의 방향을 따라 새들이 흘러가고

나이테처럼 부푼 배를 안고 사라진

그녀가 여기 있다.

 

들끓는 아기의 울음으로

계곡 물이 흐른다

사내의 발목이 자꾸만 사라진다

젖은 화장지처럼 찢어지는 사내의 조각들

연두, 라고 입술을 모으면

거대한 숲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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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늘벗 / 박세은(고등부)

 

사나운 파도 속엔

황금빛 모래알이 뒤엉키고

적막한 숲속에는 투명한 이슬방울이

조용히 파란 잎사귀에 내려앉는다.

 

뻣뻣한 허리를 낮추고 고개를 들어

검은 너의 눈을 본다.

달밤에 별 본 듯 찬란해,

연꽃잎 같은 내 입술 다물어 지는구나.

 

별은 말이 없다.

꽃도 말이 없다.

별은 누구의 것인지.

꽃은 누구의 것인지.

 

사나운 파도 속

모래알 뒤엉키듯,

나는 너고.

너는 나고.

조용히 앉은 이슬방울

파란 잎사귀와 속삭이듯

우리는 친구다.

 

 

 

[으뜸상] 의자 / 황재윤(대학 일반부)

 

강의실 창틈을 기웃거리던 햇살이

슬며시 의자 위에 엉덩이를 들이민다

지우갤 털어 칠판을 문지르고 걸레질을 하다

가만 들여다보니 교탁 테두리 선 사이로 내려앉은

먼지들! 허공이 착석한 채 떠나지 못한

이 흔적들, 일찍 끝난 가의 탓에

교수의 마음 밖으로 미처

뛰어나오지 못한 말들 같다

 

창밖의 화단으로 눈을 돌리니

바람이 좌정(座定)하다 간만큼의 무게로 흔들리는

저 자목련들! 중천에 허리를 곧추 세운

태양은 어느새 그 하늬바람 빗자루로

개나리 울타리에 올라앉은 잎사귀를 쓴다

겸사겸사 자잘한 금빛 편종들도 연주 한다

 

맞은 편 외떨어진 사과나무 아래에선

짓무른 돌사과가 지친 팔다리를

화단 흙 위에 내려놓는 중이다 서서히

의자로 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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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슴베* / 김수화

  

아버지 돌아가신 그 집

가장으로 서 있던 먹감나무 쓰러졌다

한 집안에서 가장이 빠지고 난 뒤부턴

낫자루며 농기구 자루들이 빠지기 시작했다

  

떫은맛과 단맛을 알게 했던 먹감나무뿌리는

오래 흔들린 듯 갈래가 어지럽다

가지와 뿌리 어느 쪽이 슴베였는지는 모르지만

뾰족한 그 끝을 보면

박힐 때 수월하기 보다는

빠질 때 쉬우라는 말 같다

그렇게 양쪽이 물려있는 동안

손잡이와 날이 함께 커졌다

  

한 쪽이 두절 됐다고 해서 두절이 아닌 것처럼

손잡이와 날은 아버지, 어머니 하는 말 같다

  

빠진 낫자루 안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들어있다

나무가 서 있던 자리를 올려다보면

반짝반짝 별들이 지나가고 있다

나무를 잘라 토막은 실어 보내고 잎사귀를 긁어 태운다

젖은 연기가 하늘 자리에 박히고 있었다

뒤쳐진 연기들은 끝이 뾰족해서 눈이 따갑다

  

나무들은 하늘에

슴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울창한 숲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유독 별들이 반짝이는 것 같다

먹감나무 쓰러질 때 우지끈 하는 소리는

하늘 한 귀퉁이가 쑥 빠지는 소리였다

  

* 칼, 호미, 낫 따위에서,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한 부분

 

 

 

 

[우수] 귀뚜라미 전화(글제 : 고목) 지관순

[장려] 기념일(글제 : 기념일) 김미선

[장려] 노송, 우듬지에서 돋아난 것은(글제 : 고목) 안나라

[장려] 어항(글제 : 유산) 김정순

[입선] 유산(글제 : 유산) 박정옥

[입선] 느림보버스(글제 : 좌석버스) 이숙희

[입선] 아버지의 걸작(글제 : 고목) 송옥선

[입선] 고목(글제 : 고목) 김인숙

[입선] 고목(글제 : 고목) 박은영

 

 

 

 

 [심사평] 

    응모된 작품은 약 516여 편이었다. 심사위원들은 백일장의 특성을 감안하여 전체적인 완성도와 함께, 기성의 작품들에 볼 수 있는 조형성을 가졌거나 비슷비슷한 시들보다는 신선한 시들에게 점수를 준다는 심사규준을 정하고 심사에 임했다.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에도 불구하고 약 20여 편의 작품들의 경우 그 시적 형상화는 놀라웠다. 여러 명의 심사위원들이 돌려보며 의견을 모으고 절충하며 심사를 진행한 결과, 「유산」(박정옥), 「느림보버스」(이숙희), 「아버지의 걸작」(송옥선), 「고목」(김인숙), 「고목」(박은영), 「슴베」(김수화), 「귀뚜라미전화」(지관순), 「기념일」(김미선), 「노송우듬지에서 생긴 일」(안나라), 「어항-유산」(김정순)의 작품이 남았고 그때부터 심사위원들의 숙고가 시작되었다. 「유산」(박정옥), 「느림보버스」(이숙희), 「아버지의 걸작」(송옥선), 「고목」(김인숙), 「고목」(박은영)은 마지막의 시적 갈무리가 아쉬웠다. 시작은 좋았으나 결과를 맺는 방식에서 조금 아쉬운 점이 지적되었다. 최종적으로 남은 「슴베」(김수화), 「귀뚜라미전화」(지관순), 「기념일」(김미선), 「노송우듬지에서 생긴 일」(안나라), 「어항-유산」(김정순) 중 「슴베」로 장원을 결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시어를 고르고 배열하는 솜씨가 적절했고 주제를 관통해내는 시적 역량도 심사위원의 의견을 모으는 데 이견이 없었다. 가령 ‘떫은 맛과 단만을 알게 했던 단감나무뿌리는 오래 흔들린 듯 갈래가 어지럽다’ 같은 구절이나 ‘젖은 연기가 슴베처럼 하늘자리에 박히곤 했다’와 같은 구절은 삶에 대한 귀한 통찰을 담고 있어 신뢰감을 주었다. 「귀뚜라미전화」(지관순)는 빼어난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시적 구심이 약해 보인다는 지적이 있었다. 「기념일」(김미선)은 서사가 잘 녹아든 시이지만 시적 분위기가 아쉬운 점이 지적되었다. 모두에게 정진과 축하를 건넨다.

심사위원 김경미, 김경주, 오태환, 안희연, 이정록, 정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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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그림자 / 심은정

 

1

아버지와 함께 그림자가 발견되었다

 

2

십 수년 전 하관할 때

껴묻거리로 순장된 그림자가

툭툭,

몸에 묻은 봉토를 털며 일어섰다

 

좀비가 다 된 그가 무서웠지만

삭아 내린 캄캄한 관 속에서

백골이 되도록 아버지를 지켜준 게 고마워

나는 그와 뜨거운 악수를 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어른의 그림자는 밟는 게 아니라며

저만치 떨어져서 따라오게 하셨다

저녁놀이 지평선에 붉은 낙관을 찍을 무렵

장에서 돌아가는 아버지의 그림자는 길어

그만큼 나는 멀어져야 했는데

초록이 동색이듯

땅거미와 그림자가 몸을 섞었을 때

비로소 아버지는 손을 잡아 주셨다

 

3

오늘 아침엔 경로당으로

저린 다리를 끌고 가는 어머니 발목을

그림자가 잡아당기고 있었어요, 나는

그림자를 불러 세워 조곤조곤 타이르지만

질기디 질긴 그를 어쩌지 못해 돌아섭니다

 

어머니, 미안해요

여태 제 것도 떼내지 못했거든요

 

4

양지 바른 언덕으로 거처를 옮기며

아버지는 그림자를 놓아 주셨고

어머니는 그를 떼내시려고

그늘 우거진 평상에 오르신다

 

 

 

 

 

[우수상] 사육 / 김정순

 

 

[장려상] 자궁에 / 박은영

[장려상] 벌레 / 송옥선

[장려상] 빨강으로 염색해주기 / 조미희

 

 

[입선] 눈동자 / 김미자

[입선] 벌레 / 김재현

[입선] 벌레 / 신미정

[입선] 그림자 / 이영행

[입선] 그림자 / 이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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