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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세 / 박용운

 

 

햇살도 비껴가는 골목 안, 쪽방

철새가 부리를 다듬고 있다

 

높이 날 수 없는 천성

매일 한 번씩 바라보는 새벽 별이 유일한 벗이다

 

소득세를 내야 하는데 납부할 청구서는 없고

계절을 품기엔 둥지가 허술하다

 

번식은 사치이고 미래는 무정란 같아

사랑 따윈 주고받지 않는다

 

높고 멀리 날아 용을 잡아먹는 가루다*가 되는 꿈을 매일 꾸는데

허약한 날개의 일상은 한 번도 끝에 다다라 본 적이 없어, 중천을 향한 힘겨운

날갯짓, 겨우 파닥임만 있을 뿐이다

 

매정하게 등짝을 할퀴는 그믐의 날카로운 손톱

깔세를 독촉하는 문자가 날아와 허술한 창문을 두드리는 시린 바람

철새 이마에 음산하게 서린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 예보도 흐려 있다

 

먼저 살다간 새들은 어느 전망 좋은 우듬지에 둥지를 틀었을까

얼어붙은 생각까지 녹일 아랫목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허약한 부리로 허공 속 질문만 매일 쪼아댄다

 

양지쪽 햇볕은 얼마나 따뜻할까

물 한 컵만으로도 한 달 넘게 살아가는 창틀 위의 선인장

끝까지 버티면서 가시 사이로 꽃봉오리를 올리는 끈기

기어이 불꽃같이 붉은 꽃을 펼쳐낸다

 

입안이 헐도록 생을 오독하던 철새

눈 속의 가시, 울어야 뽑힌다는 것을 알았다

 

* 가루다:인도 신화에 나오는 인간의 몸에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가진 새.  비슈누의 화신인 나라야나를 태우고 용을 잡아먹으며 산다.

 

 

 

 

[당선 소감]

 

목마른 선인장에 꽃이 피었습니다.

 

사막에 엎드린 낙타의 무릎처럼 기도가 하늘에 닿도록 걸어온 길,

이제, 가야 할 길이 보입니다. 

 

가슴이 두근거려집니다. 

모래바람이 험할지라도 쉬지 않고 오아시스를 향해 걷겠습니다.   

 

큰 영광을 안겨주신 NGO 신문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시를 포기하지 않도록 끝까지 

손을 잡아주신 선생님들께 큰절 올립니다.

 

함께 공부했던 문우들과 이 기쁨을 함께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어두운 곳에 빛을 전하는 NGO의 깊은 뜻에 따라 더 노력해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립니다.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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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한국NGO신문 시 부문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박용운의 ‘깔세'가 선정됐다.

 

한국NGO신문(대표 김승동)은 지난 1월 말까지 전국에서 응모한 작품 1,000여 편을 놓고 신춘문예 운영위원(안재찬, 이오장, 김해빈, 김기덕, 김정현, 임경순, 김정범)인 시인들이 모여 공정한 심사 규정에 따라 예심을 실시해 그 중 참신하고 창의적인 작품 17편을 선정하고, 이어 본심에서 조명제 시인과 유성호 평론가가 최종 당선작으로 박용운의 『깔세』를 선정했다.

 

시상식은 오는 12일 진행될 예정이다.

 

본심 심사위원인 조명제(시인, 문학평론가), 유성호(문학평론가, 글) 위원은 이번 당선작을 "상상적 경험과 창조적 흔적"의 결과라고 평하고 다음과 같은 심사평을 했다. 

 

이번 2021년 제5회 한국NGO신문 신춘문예에는 많은 응모작이 접수되었다. 모두 202명이 다섯 편씩 출품하여 모두 천여 편이 모아졌다. 심사위원들은 예심을 통과해온 열여섯 분의 작품을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면서 많은 작품들이 매우 공들인 시간을 축적해왔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이 작품들이 저마다의 고유한 경험들을 자산으로 삼으면서 오랜 습작 시간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도 예민하게 주목했다.

 

뛰어난 사례로 언급된 것들은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정성을 들이고 있어 매우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그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시어의 개성과 시인으로서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준 시편들에 호의를 가졌는데 그 결과 박용운 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특히 박용운 씨의 당선작 「깔세」는 골목 안 쪽방의 철새를 서정적 주인공으로 삼아 그가 처해 있는 내면의 고통과 그로 인한 실존적 반응의 연쇄를 진정성 있게 소환하고 있다. 생명성에 대한 예민한 관찰과 묘사를 통해 인간 실존의 난경(難境)들을 은유해가는 시인의 필치가 예사롭지 않았다. 낮은 목소리에 얹힌 철새의 날갯짓과 울음의 형식이 우리에게 비상한 감동을 주고 있다. 다른 작품들도 균질성과 지속성을 예감시키는 수준작이라고 심사위원들은 판단하였다. 그 점에서 박용운의 시가 가지는 공감의 능력은 폭넓게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좋은 신인을 얻어 마음 깊이 반긴다. 더불어 첫 걸음을 이렇게 뗀 박용운의 시가 더욱 공감의 상상력을 점증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부기하고자 한다.

 

당선작에 들지는 못했지만, 개성적 사유와 언어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많은 응모자들이 있었다는 점을 덧붙인다. 다음 기회에 더 좋은 성취가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응모자 여러분의 힘찬 정진을 당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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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션현혹이론 / 김해리

 

 

어쩌다가 얼룩을 들여놨군요

온순하게 풀을 뜯던 계절을 지나면

어슬렁거리는 야생의 냄새를 맡게 되죠

 

치료는 단순합니다

얼룩이 어디서 왔는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되짚어 보세요

 

눈을 감고 동물원에서 보았던 얼룩무늬를 불러보세요

처음 본 무늬는 어댔는지 언제 가슴이 뛰었는지

흰색과 검정 중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

서로 먼저라고 우기는 모습이 회색으로 보일 대는

그냥 웃어주면 됩니다

 

우울한 날에는 얼룩무늬를 걸치고 외출하는 것도 한 방법이죠

줄무늬는 날시에 민감하니까

굵거나 선명하게 혹은 가늘고 희미하게 바귀는

마치 시각을 교란하기 위한 모션현혹이론처럼

온기란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 달라지죠

 

검은색은 흰색보다 온도가 높다고 합니다

죽으면 더 깊어지는 사람처럼 말이죠

 

선생님, 그런데 이 말은 언제 멈추죠

말에게도 먹이와 휴식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그제야 정신과 의사는 말을 멈추었다

 

검은 바지에 하야 ㄴ가운을 걸친 얼룩말

거침없이 달려와 표류 중인 보호색

갈기를 세운 열기가 주춤거리다가 숨을 고른다

 

 

 

[당선소감]

터널을 건너는 중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이 미끄러졌다. 함께 가던 그가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번엔 타박타박 말없이 앞서가던 그가 허방에 빠졌다. 손을 내밀었지만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직감했다.

빛 한 줌 들지 않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헛손질뿐이었다. 지쳐 눕고 싶을 때 병상에 있던 그가 멀거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일어서야 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허방 깊숙이 들어갔다. 그제야 그의 고른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절망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때, 옆에서 나를 꼭 잡아주던 시는 희망이고 구원이었다. 시가 있어 숨을 쉴 수 있었고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손짓하며 다가오는 빛 한줄기, 천천히 일어선다.

제 마음을 읽어주시고 부족한 작품을 선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넘어져 훌쩍거릴 때마다 마음 잡아주신 이경림 교수님 감사합니다. 가르침대로 시의 바른길로 걷겠습니다. 자상한 마음으로 이끌어주신 이종섶 선생님 감사합니다. 흐트러지지 않고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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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올해 전라매일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작은 총 174명의 750편이었다. 신춘문예라는 성격을 고려해 작품의 완성도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내밀한 인식과 도전적 문체에 관심을 갖기로 하고 심사에 임했다. 예년에 비해 응모작 수준은 높았으나 개성적인 목소리가 없어 선뜻 만족스러운 작품 찾기가 쉽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거론된 작품은 장윤덕의 「그늘의 역사」, 김종태의 「소행성 STGR」, 방미영의「고드름」, 김해리의「모션현혹이론」등 4편이었다.

먼저 장윤덕의 「그늘의 역사」는 제한된 공간에 갇혀있는 ‘그늘의 역사’를 고즈넉한 산문체에 담담하게 엮어내는 화법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시대적 풍경들을 묘사하면서 전제된 사유의 진술과 서사적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김종태의 「소행성 STGR」은 시적 발상에 있어 독특함을 보여줬지만 후반부에서 평이한 낯익은 문법들로 인해 문장의 탄성이 떨어져 아쉬움이 컸다. 방미영의「고드름」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밀도 있는 접근으로 작품의 안정감과 완성도가 돋보였으나 소재면에서 새롭지 않고 문학적 상투성을 극복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김해리의「모션현혹이론」은 얼핏 시공을 뛰어넘는 사유가 난조를 보이는 듯하나 시적 압축과 끝까지 놓치지 않고 끌고 가는 주제의식이 돋보였다. 곧 치열한 생존의 현장에서 끝내 떨칠 수 없는 현대인들의 불안한 심리가 사유의 세계로 튼튼하게 구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또 다른 응모작들도 선명한 이미지로 고른 수준을 보여 앞으로의 가능성을 믿고 당선작으로 선했다.

- 심사위원 김동수, 김기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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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열차 그리고 고독 / 김안젤라

 

 

하얀 눈이 겨울바람에 제 멋대로 춤추며 흩날린다.

휘날리는 눈을 매섭게 몰아쳐가는 겨울바람은 무척이나 서슬이 퍼렇다.

 

서글픈 영혼의 가슴을 여지없이 풀어헤쳐 놓고

그나마 남아 있는 따뜻한 온기를 남김없이 빼앗아간다.

 

추워서 소름치는 겨울역 열차는 묵묵히 설 자리에 서서

혼란에 갇힌 가련한 영혼들을 무심하듯 기다려준다.

 

겨울열차는 헛헛한 영혼들을 태우고 윙윙 바퀴소리 내며

다른 이름이 달린 새로운 세상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바람을 타며 흩날리는 하얀 눈은 씩씩대며 달리는

겨울열차의 코 잔등에 세차게 부딪치다가

 

아프기라도 하듯 갑자기 광활한 하늘을 날아 오르더니

맥없는 춤을 추며 흐트러져 왔다 또 흐트러져 간다.

 

뜻도 없이 장렬하게 부서지는 하얀 눈을

애처롭지만 그러나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는

 

고독한 영혼들은 까닭도 모를 속절없는 눈물에

어느 사이 두 눈이 흠뻑 젖고 마음도 흠뻑 젖는다.

 

외로운 영혼들을 무더기로 싣고

어딘가의 세상을 향해 달리는 적막한 겨울열차 안에는

 

기쁨에 찬 크리스마스 캐롤 송이

열차 안 스피커를 타고 흥겹게 울려 퍼진다.

 

그러나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고독한 영혼들에게는

흥겨운 크리스마스 캐롤 송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오늘 이 밤이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이었던가?

회상하는 외로운 영혼들은 문득 심장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낀다

 

무심한 겨울열차는 자기 만의 새로운 세상을 찾아

변함없는 소리를 지르며 절도 있게 잘도 달려나간다.

 

아프게 부딪쳐 오는 새 하얀 눈들의

소심하고도 거침없는 키스 세례를 무한정 받으며

 

무정한 심장으로 하얀 눈들을 하염없이 뒤로 제키며

광활하게 터져 있는 세상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암울한 영혼들이 담고 있는 제각기 다른 울림의 소리가

열차 안에 몸 담고 있는 고독한 영혼들의 귓가를 아프게 때린다.

 

여전히 세차게 채찍질하며 질주하는 겨울열차는

영혼들의 가슴 속 안타까운 사연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목적지를 잃어버린 가엾은 영혼들을 한 묶음으로 싸잡아

신나는 괴성을 지르며 새로운 세상 밖으로 자꾸만 몰아간다.

 

[당선소감]

할렐루야! 먼저 삼위일체이신 전능의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린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어느 구석지고 고독한 장소에서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기란 참으로 힘들다는 냉혹한 시련에 잔뜩 주눅이 들어 웅크리고만 있던 나의 삶이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주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소망하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믿음의 삶, 성결의 삶을 추구하고자 오늘도 열정의 마음을 쏟아 부으며 믿음의 여정 길을 재촉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어디를 가든지, 어느 곳에든지, 눈부신 빛으로 찬란하기만 하다. 주님의 숭고한 사랑과 구원의 빛으로, 각 사람의 심령을 생명으로 비추어주시고 강건한 믿음의 길로 인도해주시니 참으로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다가오는 새 해에는 좀 더 영과 진리로, 믿음과 소망으로, 하나님께 거룩한 예배를 올려드리는 축복 받는 믿음의 모습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하는 마음이다.

당선이라는 소식은 주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시는 축복의 선물이라고 믿고 싶다. 부족한 글을 당선작으로 선정해주신 한국기독공보사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면서 영육간 강건하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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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스케일이 큰 환상적 영상

시부문에 응모 인원은 현저하게 줄었으나 응모자들의 작품 수준은 월등히 좋았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신앙에 들려주는 러브레터' '버려진 돌 하나가' '부끄러운 하루를 보낸 오늘 가을이 찾아왔다' '늦가을, 나뭇잎의 기도' '겨울열차, 고독을 싣고' 등이었다. 이 중에서 당선작으로 '겨울 열차, 고독을 싣고'를 골랐다.

서사구조에 담은 예수탄생의 드라마이다. 고독은 원죄(原罪)를 지고 태어난 자들의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을 모티브로 극화(劇化)한 것이다. 스케일 큰 환상적 영상을 보여준다.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고독한 영혼들에게는~크리스마스 캐롤 송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는 구절처럼 시적 화자는 좌절하지 않고, "영혼의 목적지를 잃어버린"자들을 겨울열차에 태워 "새로운 세상 밖으로 자꾸만 몰아간다"고 했다. 고난의 기관차는 예수님을 상징하고 우리 고독한 영혼들을 하늘나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닌가?

'늦가을, 나뭇잎의 기도'는 '겨울 열차~'의 서사구조와는 궤를 달리한 순연한 서정시의 전범이 된 작품이다. 당선작에 이어 가작으로나마 올려 여러 경향을 선보이고 싶었다. 이 작품은 서정시의 요체가 되는 자연의 사물에 동화(同化)되어, 순명의 노래를 부른다. 자연에의 순명(順命), 그것은 신에의 순명이다. 화자는 나뭇잎이 되어 순진무구한 무심(無心)으로 자연 속에 녹아들어간다. 단순, 간결한 언어구사가 화자의 감정 노출을 억제하면서 인상적인 서정시를 완성한 것이다. 이 작품 외에 '언덕길을 오르며'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를 향해 오르던 현장을 순례하는 장면을, 무겁고 침울한 감정이 아니라 소망의 메시지를 보여준다. "발을 씻고 신발을 신으세요"라는 구원의 메시지를 본 것이다.

끝까지 선자를 고심케 했던 작품들 가운데 '신앙에 들려주는~'는 '그대'에게 질문하는 형식으로 해학적이고 우의적인 이야기로 전개된다. 잠자는 이의 모습을 보며 화자의 신앙적 고백을 끌어내는 작품이다. '버려진 돌 하나' 등의 작품들은 구상이나 쓰인 시어들의 짜임새가 시적 감흥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부끄러운 하루~'는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자신의 내밀한 일상을 돌아보며 참회와 명상의 시간을 펼쳐 낸 작품이다. 또 '바다의 비명' '시를 짓다' 등도 기록에 남기고 싶은 작품들이었다.

- 심사위원 박이도 교수/전 경희대 국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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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등의 내재율 /  엄세원 

 

 

까치발로 서서 책 빼내다가

몇 권이 기우뚱 쏟아졌다

중력도 소통이라고 엎어진 책등이

시선을 붙들고 있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햇살이

배슥이 꽂혀와 반짝인다 정적을 가늠하며

되비추는 만화경 같은 긴 여운,

나는 잠시 일긋일긋 흔들린다 

 

벽장에 가득 꽂힌 책제목 어딘가에

나의 감정도 배정되었을까

곁눈질하다 빠져들었던 문장을 생각한다 

 

감각이거나 쾌락이거나 그날 기분에 따라

수십 번 읽어도 알 수 없는

나라는 책 한 권,

이 오후에 봉인된 것인지

추스르는 페이지마다 깊숙이 서려 있다 

 

벽 이면을 온통 차지한 책등

그들만의 숨소리를 듣는다

어둠을 즐기는 안쪽 서늘한 밀착, 이즈음은 

 

표지가 서로의 경계에서 샐기죽 기울 때

몸 안의 단어들이 압사되는 상상,

책갈피 속 한 송이 압화 같은 나는

허름하고 시린 과거이거나 목록이다 

 

나는 쏟아진 책을 주워 천천히 넘겨본다

벽은 참 출출한 비결(祕訣)이다

 

 

 

[당선소감] 

당선 소식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기쁘다. 올해의 기념으로 소양강이 내 품에 안기는 듯 했다. 카메라 속 한 컷이 마치 내 안을 담아낸 것 같아서 손끝이 아렸다. 하늘은 가만히 제 갈 길을 가는데, 나 혼자 별이었다가 구름이었다가 눈비가 되었던 적 있었다. 강이 품을 만큼만 여울을 남기듯, 이제 나는 물속에 잠긴 나무에서 수심을 덜어내야 한다. 얼마 전 다친 아들의 손을 이슥하도록 잡아주어야 한다. 푸른 건물 유리창 너머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그가 강물에 비친다. 당선의 기쁨이 아들과 나의 아픔을 천천히 거두어가고 있다고. 

초석잠 자는 저를 밖으로 끌어주신 이영춘 선생님, 덤벙주초에 맞춰 詩살이 하는 저를 격려해주시는 중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교수님들 문우님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윤성택 마경덕 이종섶 선생님께도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시클 감사드리고, 같이 공부하는 문우님들, 중대포엣 식구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묵묵히 뒤에서 글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남편과 주석 주화 고맙습니다. 전북도민일보, 제 부족한 작품을 심사해주신 소재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더 정진하는 마음으로 시로써 따뜻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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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 작품들 중에는 우수 작품이 많았다. 경향각지에서 모인 문재(文才)들의 재주가 예리하게 빛났다. 특히 「물다리기」「손말」「고수동굴에서」「멀티플렉스 상영관」「풍욕」「대장간 온도계」「코스모스」「마트료시카」등이 시의 품격을 높였다.

여러 편 중에서 「책등의 내재율」을 최종심에서 제일 좋은 작품으로 뽑고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은 발상부터가 참신했다. 그리고 구사하는 시어들이 신선했으며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적절한 알레고리를 설정한 점이 좋았다.

‘책등’은 책의 제목이 새겨진 책의 모서리 표상인데, 이를 ‘내재율’이란 어휘로 묶어 놓아 어휘 상호간 절묘한 아이러니를 품는다.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의미의 외연과 책의 안 섶에 꽂힌 섬세한 율성(律性)을 결부시키는 조합은 시의 상징화에 기여한다. 책들은 상호 연대하여 어둠을 빚고 다시 어둔 벽과 암유된 정서를 공유한다. 미명(未明)의 책 갈피갈피는 시적 자아의 생(生)으로 융합을 꾀한다. 감춰진 책 속의 비의는 자아의 잠재의식과도 연계된다. 자아의 감성과 지성의 영혼은 책 속에 압화(押花)로 묻혀 있다가 서서히 빛에게로 나아간다. 출출한 비결(秘訣)이다. 

심사위원 소재호(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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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고 / 황정현

 

 

극지의 순록은 우아한 뿔을 가졌다

거친 발굽으로 수만 년을 걸어왔다

 

죽은 자식을 동토에 던지며 발길을 돌려야 했고

비틀걸음으로 얼음산을 넘어야 했고

 

살점을 떼어 어린 자식의 배를 불려야 했고

뿔을 세워 침입자에 맞서야 했고

 

온몸을 쏟아 무리를 지켰다

죽어서도 흙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치열한 싸움에서

늘 이기고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은 무덤을 등에 지고 돌아왔다

무덤은 살고 당신은 죽었다

 

무덤 속에서 얼음이 자라고 있다

얼음은 흙을 밀어 올려 산이 될 것이다

 

얼음의 계절이 오면 순록은

바늘잎나무숲으로 순례를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당신의 길이 보인다.

 

 

 

 

 

[당선소감] 작은방 낡은 의자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이 자리에 제가 앉아도 괜찮은가요?"

 

미안해요 여기

당신이 앉았던 자리인가요

 

접혀 있는 페이지는

당신이 읽던 페이지였고

 

아무렴 어떤 가요 슬픈 페이지를 넘기면

또 다른 슬픔이 펼쳐지는 걸요

 

유리창은 햇빛을 쏟아내더니

이내 비구름을 몰고 오네요

 

책 귀퉁이가 닳도록

당신이 읽던 페이지를 읽고 또 읽습니다

 

바라보는 일 밖에 할 줄 몰라서

다가가는 일도 제겐 큰 용기가 필요했지요

 

당신은 잠시 자리를 비운 걸요

이 자리엔 누구나 앉아도 괜찮습니다

 

 

작은방 낡은 의자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삐걱삐걱 의자가 소리를 내면 제 뼈들도 뚜둑뚜둑 화답을 합니다. 그렇게 저도, 의자도 함께 낡아가겠지요.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지만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출 때까지 의자에 앉아 있겠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당선 소식을 전해주신 경인일보와 심사위원이신 김윤배, 김명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함께 해준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뜁니다.

 

제게 피와 살을 주신 황의열·강신해님, 정숙광·선정선, 늘 저와 함께하는 김영형·김수민, 문전성시 최지온·서미숙·금희숙·김혜숙·염형기·박양미님, 문장강화 김산 선생님, 조재일님, 중앙대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이승하 교수님과 문우님들, 파피루스 김혜정·김율관·이해민님, 시와 찻잔 김희광 선생님과 문우님들, 용산도서관 이승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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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마지막 행간까지 존재적 사유 확장된 미학 눈길

 

이번 응모작들은 일상성에 노출된 실업, 가족, 반려, 생태 등을 소재로 한 사회적 문제에서부터 코로나19를 반영하듯 감염과 질병 등에 주목하며 삶의 보편적 중력에서 벗어나지 않는 시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가운데 우리는 발상의 전환을 도모하는 다채로운 경향의 시편뿐만 아니라 인간 본연의 층위를 건드리는 시편들을 통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의 자리를 살펴보았다.

 

여기서 모던한 시적 상상력으로 고유한 사물을 새롭게 견인하면서 긴장감 있게 구현하고 있는, 10편의 작품이 예심을 통과했다. 또한 예심을 거친 작품들은 은유의 한계를 유연하고 감각적인 발상으로 작동시키면서 시어만이 가질 수 있는 언어의 특질을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평균화된 시작에의 열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심 작품들 중에서 구체화되지 못한 묘사들과 관념어들이 오히려 번뜩이는 상상력에 균열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황정현씨의 '핑고'와 강현주씨의 '고양이' 등 두 편의 작품을 본심에 올려놓았다.

 

이 두 작품 모두 탁월한 상상력을 통해 존재의 모순을 해체하여 시적 언어로 편입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행간까지 존재적 사유와 확장된 미학을 끝까지 선보인 '핑고'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정연하지 않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핑고'는 담담한 어조로 '빙산'의 푸른 내부를 응시하면서 '무덤 속 얼음''흙을 밀어 올리는' 생명의 신생과 사멸에의 '언어적 밀행'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신예로서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끝까지 입을 모았던 후보작 역시 공교롭게도 '빙하''너울거리는' 생명에의 내부조직을 '강렬한 축문'으로 읽어내는 냉담한 시선과 사물을 여과하는 치열한 시적 안목을 높이 평가했지만 아쉽게도 최종심에서 거쳤다.

 

- 심사위원 : 문태준,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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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충돌 / 김민식 

 

 

나는 화면 너머의 테니스 경기를 본다

테니스 라켓이 공을 치는 순간

무수한 공중이 한꺼번에 태어난다

 

고래의 힘줄

산양의 창자

얇게 저며진 살점으로 직공은

라켓을 짠다

종선과 횡선이 지나간 사이에

태어나는 눈

공중에 이름을 붙이는 최초의 노동이었다

 

천사를 체로 걸러낼 수 있다고 믿은 프랑스인이 있었다

축과 축의 직교 속에서 성령은 좌표를 얻었다

 

의심 속에서

의심도 없이

 

체의 촘촘한 눈을 세는 귀신의 눈은 비어 있다

 

눈알만 파먹힌 생선들이

부둣가에 쌓여 있다

 

백경白鯨의 투명한 수정체

멸종된 거대 수각류의 담석

전체를 상상하면 그것들은 차라리 허공이었다

 

한국의 산에는 호랑이 모양 구멍이 반드시 하나씩 있으며

 

돌탑 위에 둥근 돌을 하나 올려도

산이 무거워지는 것은 아니었고

 

무수한 왕의 안구가 뽑혀나가도

지구가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믿음 속에서

믿음도 없이

 

삶의 질량을 변화시킬 혁명이 필요했다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

이렇게 말하면 믿는 사람이 없었고

하늘에 빛나는 돌이 불과 물과 함께 떨어졌다

이렇게 말하면 믿음과 의심이 동시에 생겼다

 

외계에서 날아온 돌은 지구를 확실히 무겁게 만든다

그것은 종종 과학의 영역이었다

 

“마음 속에 천 개의 방이 있고, 그 안에서 천 개의 멜로디가 흘러나옵니다. 나는 어떤 계열의 천사인 것만 같습니다”*

 

처음으로 운석을 발견한 아이가 남긴 말이었다

그가 발견한 검은 돌은

검은 신전의 기둥이 되었다

 

운석이 떨어진 자리엔, 빛과 유리와 불과 물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는데요

 

정말 그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자의 이글거리는 눈빛과

 

다만 우주의 조각을 만져보고자 하는 순례자들의

 

계획 속에서

계획도 없이

 

푸른 언덕에 모여 유성우를 구경하는 사람들

얼굴들이 깊게 파인 구멍 같다

나뭇가지에 걸린 셔틀콕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표정만 같다

 

너, 라고 부르면 뒤돌아보는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아무도 귀엽거나 밉지 않았고

 

아나운서의 어깨 너머로

카메라가 풍경을 화소로 만들기 직전

 

나는 주머니에서 빛나는 하얀 공을 꺼냈다

아직 세상에 없는 구기종목의 공인구였다

 

 

⁕“머릿속에 만 개의 방이 있어서 좋은 멜로디가 나와요.”: 4세 어린이 백강현의 말. (‘영재 발굴단’ 10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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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다 잊어버리자 잊혀지거나 등등 / 이서영 

 

 

고유의 방식으로 꿈은 형태를 지운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지우개로 지우는 것과 다르게 아무데서나 지우고 싶은 것부터 지운다 깨끗하게는 아니고 주변을 쓱쓱 뭉텅뭉텅 어떤 부분은 둥근 빵덩어리로 보이다 만지려 하면 밀가루처럼 아늑해져서 모양이 참 막연해져서 무엇이었더라 말할 수 없게 한다 어떤 수업을 들었는데 어떤 칭찬을 받았는데 무어라 말할 수 없다 뭐였더라 그것은 안개처럼 잡히지 않는 희미함 무게도 감촉도 없지만 분명 거기 있는 알갱이들 나는 안개로 건물을 짓고 지붕을 뚫은 철근을 보고 낙서가 적힌 흑판을 본다 내 편이 아닌 사람들과 일을 하다 싸움이 나고 또 금방 화해한다 맥락에 관여하지 않는 사람들과 내기를 하고 나는 지략을 세워 크게 승리한다 다만 칭찬이 무엇의 결과였는지 명확치 않다

 

 

 

 

[당선소감] “내 여물지 못한 아픔 선별해주신 분께 감사”

 

자기 전에 발바닥에 바셀린을 발라두었는데 밤새 신발도 없이 어디를 헤맨 것처럼 발바닥이 아팠다. 깨어나 보면 또 아무렇지 않았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었던 건 아니겠지. 내가 헤맸을 골목들 어둠들…. 오랫동안 만진 생각이 있었다. 조금씩 수정하면서 눕거나 앉거나 습관에 기대어 조금씩 변경하면서. 대부분 좋지 않거나 쓸모없어서 버리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 밖의 용도에 대해서 생각했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 용도보다 훨씬 앞선 것, 거기 있을 뿐이라는 듯. 커튼이 항상 묶여 있는 것처럼,

시를 썼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라는 주문을 언제부터 받았던가. 나를 넘어서기 위해 조금만 더 해야 한다는데 난 그 조금만 더를 어찌해야 하는 것인지 손도 못대고. 어쩌면 조금만 더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일지도 몰라. 죽을 때까지 조금만 더 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면 어쩌나, 나는 정말 어쩌나, 이 가여운 나는, 어디로 사라지고 누가 와야 이 습관의 나는 대체되는 것일까,

당선 소식을 들었다. 나의 밤들이 말들이 그것인 채로 당선 소식을 들었다.

그래, 시를 더 써보겠느냐고, 마치 꿈처럼 연락이 왔다. 다른 호흡 다른 표정 한 번도 본 적 없는 환영 같은 불확실감에 휩싸여 당선 소식을 들었다. 내 여물지 못한 아픔을 선별해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시로 이어져 긴 시간의 터널을 함께 걸어온 ‘생오지문예창작촌’, ‘시가 흐르는 행복학교’ 문우들과 이 영광을 함께 하고 싶다. 늘 격려해주시고 기다려주셨던 박순원 교수님, 김성철 교수님, 유홍준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의 엄마, 어머님, 이 기쁨은 온전히 두 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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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일상의 감각 잡아채려는 의지 돋보여”

 

한 해를 정리하는 자리에서 우리들의 언어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한 해 동안 내면으로부터 쉼 없이 길어 올린 언어들을 대면하는 일은 축제 같았다. 자신들만의 목소리로 삶의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이로웠다. 시는 삶의 어떤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 언어 형식 안에는 삶의 여러 단면들을 통해 즐겁거나 기쁘고, 아름답거나 시린 우리네 조용한 비명들이 녹음되어 있었다.

이번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응모된 시들 중에는 ‘사람과 언어가 만나 전류를 만들어내는 작품’들을 여럿 만날 수 있어 숨이 찼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 가운데 현이령은 조근조근하고 잔잔해서 뭔가 있을 듯하여 아주 여러 번을 읽지만 결국 분위기만 읽혔다. 김완두는 발랄함과 특이한 시선이 개성이 무기인 듯하지만 의외성과 유아적인 밑그림을 받치고 있는 것은 허무함이었다. 김영숙의 시는 일상적이며 사변적인 틀에 걸려 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홍여니는 읽는 이를 의식하지 않고 혼자서만 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마지막까지 내 손을 떠나지 않은 건 이서영과 엄경은의 시. 이서영의 ‘뭉클’과 ‘잊다 잊어버리자 잊혀지거나 등등’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뭉클’은 선명해서 맑게 다가온다. ‘잊다…’는 숨기면서, 드러내면서, 은밀하게 직조되어 있다. 또한 특유의 건조함이 세련된 미학을 만들고 있다. 엄경은의 ‘기본과 기분’은 무엇이 시로 탄생되는지를 잘 아는 숙련된 예비 시인의 작품이라 감탄했다. 하지만 ‘기본’에 대해 잘 그려내고 있다가 ‘기분’을 언급하면서 맺는 한 줄이 시 전체를 단번에 파괴하는 느낌이었다.

이서영의 ‘잊다 잊어버리자 잊혀지거나 등등’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자칫 흘러버리기 쉬운 일상의 감각을 잡아채려는 의지와 선명하지 않은 자신의 내면을 환대하는 방식으로 그려낸 화법이 아름다웠다. 당선을 축하하며 칙칙하기만 한 세상에 더 많은 울림들을 차려놓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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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 변영현 

 

 

파란 동그라미를 그려요

당신은 호수인 줄 알고 뛰어들어요

 

팔랑팔랑 헤엄쳐요

바다처럼 넓고 깊어요 파란 동그라미

속의 당신이 파랗게 물들고

나를 찾아봐, 하는 목소리에

물이 뚝뚝 떨어져요

안 보여요 안 보인다니까요

여기 있어, 하는 목소리에

숨이 헉헉 차오르네요

 

파란 동그라미 위에 파란색을 더해요

내게는 다른 색이 없거든요

조금 다른 파란색이면 당신을 찾을지도 몰라요

몰랐어요 더 깊어질 뿐이라는 걸

바닥을 찾지 못할 거예요

하늘을 찾지 못할 거예요

파란 지구별에서 나갈 수 없듯

당신은 거기서 허우적거리겠죠

 

파란 동그라미 파란 동그라미

블루칩 같기도 하고 버튼 같기도 해요

속는 셈 치고 한번 눌러 볼까요?

잭팟이 터질까요, 당신이 튀어 오를까요?

하나, 둘, 셋!

아, 물감이 덜 말랐네요

파랗게 질린 손바닥 좀 보세요

당신이 묻어 있는 건 아니겠지요

 

파란 동그라미를 그려요

파랑이 파르르 떨고 있어요

 

 

 

 

[당선소감] 나홀로 중얼거림이 시가 되다

‘중얼거리는 사람이다’ 라고 나를 불러본다. 어릴 때 간혹 아버지가 문을 벌컥 열고 “도대체 누구랑 얘기하는 거니?”라며 방을 둘러보셨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방에서도 길에서도 중얼거렸다. 그것이 이상하게 보인다는 걸 안 이후 소리 내지 않고 중얼거린다. 이상의 시 ‘꽃나무’에는 한 꽃나무를 위해 그러는 것처럼 달아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 사람처럼 길거리에서 싸우는 사람을 위해, 죽은 사람을 위해, 길고양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위해 중얼거린다. 아무 쓸모없는 것, 그것이 나를 숨 쉬게 한다. 그 중얼거림이 백지를 채우고, 채워진 백지가 시가 되기까지 몇 년이 지났다.

오늘 당선 전화가 왔다. 기분이 이상하다. 누군가 내 목소리를 똑똑히 들은 것이다. 혼자인 줄 알고 중얼거리던 그 방에 이제 누가 앉아 있다.

중얼거림이 시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장하빈 선생님, 변희수 선생님, 이솔희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친구 진희와 다락헌 시인학교, 낭구동인 문우들께도 고마운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내 목소리에 응답해 주신 심사위원께도 감사드린다. 내 마음의 시인, 이제는 여기 없는 작은언니에게 이 상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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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말놀이의 능수능란함 뚜렷해

신춘문예 작품들을 심사하면서, 응모작들이 대부분 심리적으로 너무 위축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 원인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가지는 비대면의 우울과 바이러스에 의한 공포의 고통스러운 그늘일지도 모른다. 또는 점점 더 팍팍하게 조여드는 삶과 환경의 압박감 때문일까? 심한 자기류의 언어 방기나 과도한 언어굴절이라는 한동안 유행해온 젊은 세대들의 언어 구사 특징이 많이 가신 가운데, 과거와는 다른 삶의 그늘들이 젊은 문학도들을 사로잡고 있는 게 너무 무거운 듯 여겨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20명의 100편 가량. 그 중 마지막까지 남아서 겨뤘던 작품들은 ‘손’ ‘본색’ ‘부초들의 잠’ ‘중심, 중심들’ ‘블루’ 다섯 편. 모두 나름의 독특한 빛깔들을 띠면서 개성적인 언어구사를 능숙한 솜씨로 보여, 그 중 한 편을 뽑는 게 무척 어려웠다. 그러나 어차피 한 사람 만의 손을 들어줘야 할 수 밖에 없는 것. 마지막으로 집어든 게 ‘블루’였다.

‘블루’는 푸른색의 인식을 통해 사랑을 확인한다. 언어의 반복과 리듬, 그리고 유머감각을 통해 사랑과 자기 인식의 우울과 명랑을 경쾌한 어조로 꿰어나가는 말놀이의 능수능란함이 돋보인다. 구성도 무난하고 주제를 끌고나가는 언어구사의 힘도 예사롭지 않다. 무거운 주제들이 많은 응모작들 가운데서 이 작품이 의외의 경쾌함으로 시선을 끌었다고 여겨진다.

새롭게 출발하는 수상자의 경쾌한 발걸음에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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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 / 남수우 

 

 

한 사람에게 가장 먼 곳은

자신의 뒷모습이었네

 

그는 그 먼 곳을 안으러 간다고 했다

 

절뚝이며 그가 사라진 거울 속에서 내가 방을 돌보는 동안

거실의 소란이 문틈을 흔든다

 

본드로 붙여둔 유리잔 손잡이처럼

들킬까 봐

자꾸만 귀가 자랐다

문밖이 가둔 이불 속에서

나는 한쪽 다리로 풍경을 옮기는 사람을 본다

 

이곳이 아니길

이곳이 아닌 나머지이길

중얼거릴수록 그가 흐릿해졌다

 

이마를 기억한 손이 거울 끝까지 굴러가 있었다

 

거실의 빛이 문틈을 가를 때 그는 이 방을 겨눌 것이다

번쩍이는 총구를 지구 끝까지 늘리며

제 뒤통수를 겨냥한다 해도 누구의 탓은 아니지

 

거울에 남은 손자국을 따라 짚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내게 뒷모습을 안겨주던 날 모서리가 처음 삼킨 태양을 생각했다

흉터를 간직한 햇살이

따갑게 몸 안을 맴돌고 있을 거라고

 

뒷모습뿐인 액자를 돌려세운다

 

거울 속에는

하얀 입김으로 떠오른 민낯들이 너무 많았다

 

 

 

 

 

[당선소감] 당신을 위한 하나 온전히 그려볼수 있길

 

아주 오래전 누군가 나를 위해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믿었다. 그 불가능을 속삭였던 입술은 이제 영원한 뒷모습으로 내게 남아 있다. 내게 주어진 이야기. 이 믿음으로 사람 하나 불러 세우지 못하지만, 한편으론 이 믿음으로 가능한 생활이 있다면, 그것이 전부라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의 죽음이 나와 무관하지 않으므로. 여전히 그 뒷모습이 누구의 것인지 모른다. 그것은 퇴근길 전철에서 졸고 있는 흐린 눈이었다가, 국밥집에서 보았던 알찬 팔뚝이었다가, 같은 우산 아래 설핏 닿은 손등이었다가, 빈 유모차를 밀고 가는 둥근 이마였다. 어쩌면 내가 아닌 모든 것일지도. 나의 생활이 되도록 그 누군가를 향한 애도이기를 바랐지만, 부끄럽게도 충분한 적이 하루도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도 기다렸다. 기다림 없이 기다렸다. 언젠가 내가 당신을 위한 품 하나를 온전히 그려볼 수 있기를. 매일 저녁 꼬박꼬박 수원지의 둘레를 달리듯, 불안한 내가 완전한 원을 결코 그릴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이제 더 이상 문학에 구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삶에 대한 어떤 자세를 나는 문학에서 길어 보았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가 있었다. 돌 하나를 쥐고 네가 오고 있다고 들었다. 미리 마중 나와 기다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한 시절을 묶어 두고 사람들을 떠나 있었다. 그동안 외면했던 문제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었다. 용서와 화해로 생활을 돌보던 나날을 지나, 지금 어딘가에서 나를 기억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가장 먼저 건강과 안부를 묻고 싶다. 문학을 통해 만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함께 무수히 산에 올랐던 꽃가루 산악회 친구들에게. 전당포 필름의 태민이 형과 캔버스 앞의 빈이 형에게. 늘 멀리 떠나 있던 나를 향해 손 흔들어 준 동생 수안이와 부모님께, 여러 계절을 지나 곁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껴 발음하는 단 하나의 소리에게, 감사와 애정을 접어 부친다. 문득 너무 먼 곳에 있는 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보이지 않아도 곁에 있다고 적어 보았다.

 

 

 

 

 

[심사평] ‘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사유좋은 시인으로 살 것이란 믿음 들어

 

올해부터는 예심과 본심을 통합하게 돼 심사하는 데 오래 걸리긴 했지만, 전체적인 수준이나 경향을 파악하면서 좋은 작품을 선별해갈 수 있었다. 725명의 투고작 3625편을 읽는다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운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 이 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내면을 읽어내는 일이기도 해서 더 각별하게 느껴졌다. 예년보다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가 강해졌고 상상력도 다소 위축된 것처럼 보였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고립, 관계의 단절 등을 뚫고 희미한 빛을 찾아 나가려는 고투가 시편마다 절실하게 담겨 있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대에 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품고 수많은 기록과 증언, 고백과 발언, 노래와 기원들을 공감하며 읽었다. 심사자들이 마지막까지 주목한 작품은 가드닝’ ‘흰 토르소와 천사들의 나날’ ‘인공호수’ ‘에그조프쉬시즘’ ‘서른셋, 생일이 아직 또렷한’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등이었다. 이 여섯 분의 작품은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남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어서 무엇을 당선작으로 해도 좋을 만큼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가드닝은 간결하고 리드미컬한 언어로 의미의 여운을 증폭시키는 시적 재능과 섬세하고 투명한 감각이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이 식물적 언어의 세계는 다소 수동적이고 부서지기 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흰 토르소와 천사들의 나날은 현실의 남루함을 환상으로 감싸며 따뜻하고 환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인상적인 문장이 많지만 세부에 들이는 공력에 비해 전체적 구조나 결말이 약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인공호수는 군더더기 없는 언어로 의미를 구축해나가는 솜씨가 노련하고 관찰력과 집중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그런데 사진을 찍듯이 묘사 위주로 전개하다 보니 다소 평면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에그조프쉬시즘은 원룸에서 일어난 고독사와 애완견을 중심으로 사회적 비극이 어떻게 봉합되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도시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드러나고 있는데, 작품 간의 편차가 크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서른셋, 생일이 아직 또렷한은 운문성과 산문성을 적절히 조율하며 긴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묘사와 진술의 연결이 좀 더 자연스럽고 뒷심이 있으면 좋겠다.

 

당선작으로 뽑은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는 뒷모습과 거울을 둘러싼 사유의 변주가 거울의 안과 밖, 문의 안과 밖, 지구와 태양 등으로 확장되며 몇 겹의 비유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산문적 언어로 쉽게 환원되지 않는 이 모호함은 본드로 붙여둔 유리잔 손잡이처럼 미세한 균열의 기억과 무수한 틈을 내장하고 있다. 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사유가 그를 좋은 시인으로 살게 하리라는 믿음이 들었다. 당선을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자신의 뒷모습” “그 먼 곳을 안으러매 순간 떠나는 시인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나희덕·박형준·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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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의 귀 / 장이소 

 

 

뜨거운 냄비의 귀를 잡다가 내 귀를 잡았다

 

순간이 순간에 닿는다

 

귀 하나 떨어진 양은냄비를 안고 골목을 지난다 삼삼오오, 얼룩이를 가리킨다 얼룩이는 번쩍번쩍 얼룩덜룩하다

 

고흐는 왼쪽 귀를 자르고 왼쪽으로 들었을까, 어떻게 오른쪽을 들었을까

 

당신은 떨어진 귀를 버리지 못한 사람 뚜껑을 마저 잃고 배가 된 사람

이마는 당신이 키우던 물고기 떨어진 귀는 물고기의 어디쯤일까

 

귀를 기울인다 귀는 기울기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자른다 어디나 그런 귀 하나쯤 있다 절반이 절반에 매달려 가운데를 안고 돌면 떨어진 한쪽을 위해 두 배속 태엽을 감는다 꼬리에 풀리는 물무늬 아가미로 쏟아지는 물살 삼킨 것들이 중심을 세운다

멱을 잡고 중심을 도는 것은 붙잡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것

 

밖이 안을 떠받는다

쓸모를 잡는 동안 바닥에는 차고 오르는 온도가 있었다

끓어 넘치던 냄비 뒤집어 보여주지 못한 뚜껑을

버리면 더 가까워서 가볍다

기억을 잃고 바닥을 태우던 사람이 있었다

 

붕대를 푼다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 은빛 물고기를 그린다

지느러미가 키를 잡는다

풍등이다

붙잡지 못한 것들이 손잡이를 흔든다 떨어진 귀가 어떻게 자신을 부르는지를

 

 

 

 

 

[당선소감] 참된 마음으로 오래 쓰겠다

 

그 냄비는 귀가 떨어지고도 오래도록 손잡이였다. 낡은 양은 냄비에 밥과 김치보시기를 담아 나르던 날들이 있었다. 돌아보니 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였는데, 내 발등을 다 가릴 정도로 크고 못생긴 냄비보다 더 버거웠던 건 골목을 지날 때마다 나를 원숭이처럼 구경하던 아이들이었다. 그게 너무 싫어서 하루 종일 엄마를 굶긴 적도 있었다. 사 먹는 밥은 늘 허기진다던 그런 엄마를 이해하기엔 그때 나는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이제 당신은 세상에 없고 그런 당신의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내게 남은 숙제 같았다. 세상의 모든 당신을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어린애처럼 살고 있다. 매일의 숙제를 챙기듯이….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행운이 내게도 왔다. 세상의 알곡 같은 시들과 시를 나누던 모든 분들을 떠올려 본다. 나를 둘러싼 매순간이 스승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시는 잘 모른다면서도 늘 이해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자신에게 덜 부끄럽도록 진정성을 가지고 오래 쓰는 시인이 되겠다. 온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우듯 감사한 분이 너무 많다.

 

단단한 첫걸음을 떼게 해주신 전다형 선생님, 길동무처럼 늘 응원해주시던 많은 분들, 문정완 선생님, 그리고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시고 마지막까지 용기를 북돋워 주신 신정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시를 선해주신 심사위원님과 지면을 허락해주신 경남신문사에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현대인의 소외와 고립감 잘 표현

 

올해 시 부문 투고된 1300여 편 중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임승환의 ‘계절이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김석범의 ‘허공의 크레바스’, 홍담휘의 ‘향기의 증거’, 김난의 ‘발화의 경계’, 장이소의 ‘냄비의 귀’ 등이다. 매우 작품성이 높고 사회의식도 있어 그 어느 것이라도 당선작이 될 만했다.

 

우선 ‘계절이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어요’는 삶의 무상함에 대해 매우 탐미적으로 잘 묘파해내고 있지만 그 삶의 무상함이 자칫 지나친 감상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허공의 크레바스’는 당대 사회현실의 문제의식을 매우 감각적 형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았으나 일부 구절들에서 너무 교훈적이고 관념적인 내용이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점이 한계로 언급되었다.

 

‘향기의 증거’는 ‘커피향’을 두고 매우 참신한 발상과 표현을 하고 있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으나 그 주제가 커피를 둘러싼 노동력 착취라는 경직된 내용으로 수렴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발화의 경계’는 일상 속의 자아가 갖는 허위의식에 대한 반성을 참신하게 잘 표현하고 있으나 너무 기교적이라는 점, 그리고 시제가 달라지는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냄비의 귀’는 현대인의 소외의식과 고립감을 ‘귀’라는 제재를 중심으로 심미적으로 잘 표현해내고 있고, 무엇보다 그것이 갖는 문제의식을 당대의 사회성과 결부지어 의미화하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았다. 이에 심사위원들은 장이소의 ‘냄비의 귀’를 당선작으로 뽑는 데 동의했다. 당선자는 더욱 정진해 한국 시단의 큰 별이 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성선경·김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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