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작 없음
'문예지 신인상 > 문학과사회신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0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당선작 (0) | 2020.08.07 |
---|---|
제19회 문학과사회 신인상 당선작 / 김지연 (0) | 2019.12.06 |
[스크랩] 2017년. <문학과사회> 신인상 당선작 - 윤은성 (0) | 2017.08.16 |
2016 문학과사회 신인상 당선작 / 강혜빈 (0) | 2016.06.20 |
제15회 문학과사회 신인상 당선작 (0) | 2015.05.07 |
당선작 없음
제20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당선작 (0) | 2020.08.07 |
---|---|
제19회 문학과사회 신인상 당선작 / 김지연 (0) | 2019.12.06 |
[스크랩] 2017년. <문학과사회> 신인상 당선작 - 윤은성 (0) | 2017.08.16 |
2016 문학과사회 신인상 당선작 / 강혜빈 (0) | 2016.06.20 |
제15회 문학과사회 신인상 당선작 (0) | 2015.05.07 |
둥근 사각형 / 류승희
사각형 위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꼭짓점을 만나게 된다 두 개의 선분이 만나는 끝점에서 우리는 약속을 하고 꼭지를 버렸다 네 개의 꼭짓점에서 네 개의 선분은 그렇게 결별을 하고 발가락을 감추었다 꼭짓점이 사라진 자리가 서서히 아물더니 둥글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원의 테두리에 갇혔다
목덜미가 가려워 한밤중에 깨어나 긁는다 꼭짓점을 버린 자리가 덧나고 있었다 가려움이 잦아들고 손톱이 지나간 자리마다 붉은 이슬이 맺히면 얼음으로 확확 대는 살갗을 달래 본다 발가락이 자라고 있었다 가려움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닐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나 중심에서 같은 거리에 있어야만 하는 원 위를 걷다 보면 끝없는 고통을 지닌 몸을 만난다
다시 발톱을 기르고 발가락을 내밀어 꼭짓점을 찾으리라 나는 옆으로 가고 싶은 옆으로 긴 사각형이었다고 혹은 위로 팽창하고 싶은 위로 긴 사각형이었다고
나는 둥근 원이다
매 순간 탈옥을 꿈꾸지만 잃어버린
꼭짓점을 찾을 수 없어
돌고 또 돌다 지쳐 쓰러지는
나는 네모난 심장을 가진 둥근 원이다
달의 뒷면 / 류승희
달이 사라졌다
흔적을 찾아
달이 태어난 바다에 왔다
처음 달이 생겼을 때 지구와의 거리는
서울과 뉴욕을 왕복하는 거리였다지
너무 가깝게 서로를 끌어당겨
다리를 놓아도 될 정도였다는데
어깨가 앞으로 굽도록
수십억 년 동안 지구만 궁금하던 달이,
얼굴을 마주 보고 한 발자국 내디디면
흰 옷자락을 서둘러 여미며
나만 따라오던 달이,
윤무(輪舞)의 끈을 자르고
목성의 환한 고리를 붙잡고 떠났다
마주 보는 것들은 뒤를 놓치기 쉽지
푸른 팔을 잘라 주어도 소용이 없네
어느 먼 은하에서 달이 걸음을 내딛는가
바다가 하얗게 울컥인다
밀물과 썰물의 형식으로 흔들리는 바다
달에게 달려갔다 돌아올 때마다
조금씩 더 지구로부터 멀어지는 달
문득, 사라진 달의 뒷모습이 궁금하다
주담(酒談) / 류승희
72도 되는 술을 마셔 본 적이 있다
단맛이 독하게 깊다
불을 붙이니 푸른 불꽃이 일렁이며 타오른다
타오르는 것들의 얼굴은
왜 이렇게 아름다운가
벽난로 속에서 제 몸을 사르는 장작이거나
석양과 입 맞추는 붉은 샐비어이거나
혹은 못 잊을 그리움이거나
그렇게 타 버리고 난 술을 마셔 본 적이 있다
더 이상 술이 아닌 그렇다고
물도 아닌 한때는 술이었으나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산다는 건
가슴속에 뜨거운 불덩이 하나 없이
산다는 건 알코올이 사라진 술처럼
취할 수 없는 슬픈 일
화주를 마셔 본 적이 있다
데일 줄 알면서도
그 뜨거운 불을 삼켜 본 적이 있다
심해어 / 류승희
지금부터 나는 발광을 할 거야
가장 아름다운 날을 위해
이 깊은 바다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눈을 버리고 하얀 뼈마디를 잘라 길을 밝혀야 하지
큰 입에 흉측한 이빨과 튀어나온 눈
살갗이 짓무르도록 문질러 본다
둥그러질 수 있다면
얼음처럼 차가운 수온에
지느러미가 찢기고 체액이 흘러내리죠
그런 것쯤 백만 년 동안 익숙한 일이에요
겨드랑이에 난 하얀 부레를 뽑아
후생에 받을 편지를 썼어요
당신이 그 편지를 들을 수 없다면
세상의 침묵이 다 이곳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는 뜻이죠
오래된 애인의 눈물은 너무 무거워
깊은 바다로 가라앉고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아
나는 두 눈을 파 버려요
두 눈을 파서 바다에 던져요
이곳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죠
바다가 환해졌어요
아름다운 붉은 옷을 입고
나 발광하고 있어요
영원히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오후 3시, 꽃 피지 않는 배롱나무 / 류승희
애인과 자주 보던 흰 배롱나무 아래 오래된 애인과 다시 앉는다 한동안 얼굴이 젖어 있더니 날마다 이가 빠져 남은 이가 없다며 오늘은 말이 없다 기쁨은 기쁨으로 살기가 힘들고 슬픔도 마찬가지 여서 죽고 싶다던 애인, 꿈을 꾸면 애인은 관흉국貫凶國 사람이 되어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뚫고 웃고 있다 철심으로 종이를 묶듯 심장과 심장에 구멍을 뚫고 서로를 꿰어 하나가 되고 싶다던, 그렇게 너덜해지고 싶다던 애인, 우리가 피웠던 꽃들을 밟고 찬란한 봄이 얼룩질 때 구멍 난 가슴을 손으로 후벼 파며 뜨겁게 울던 애인은 어디로 갔을까 꽃이 핀 자리 꽃향기는 자취도 없고 손닿는 곳마다 서걱거리는 모래가 돋아나는 오후 세 시, 꽃 피지 않는 배롱나무 뜨거운 그늘 아래,
제4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백복현 (0) | 2019.06.09 |
---|---|
제3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박윤근 (0) | 2019.05.13 |
제2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신정순 (0) | 2019.05.13 |
제2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오광석 (0) | 2019.05.13 |
제1회 문예바다 신인상 / 김상백 (0) | 2019.04.21 |
봄날, 단추를 달다 / 백복현
저만치 굴러가는 봄
노파는 문간방에 앉아 단추를 단다
뜬구름이 기웃거리는 서까래 밑
동거하는 거미는 실을
짠다
깔고 앉았던 생각을 박차고
손마디만 한 비상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붙잡고 있었을까
줄 하나에 매달만한 세간살이
딱히 가져 본 적도 없다
세상으로 가는 인연도 자르지 못했다
풀려나간 실마리는 해마다 길을 풀어놓으며
차례차례 헤어져
갔다
봄날, 꼭 쥐고 있던 문고리도 떠나갔다
서너 평 바람에도 그물코 풀려나가는 고가(古家)에서
노파는 토막 난 생각의 단추를
단다
개평처럼 열려 있는 단추 구멍은
오십 년간 대문이 섰던 자리다
번듯한 문패이던 시절도 있었다
반쯤 열어 둔 채 외출을
하던 가을도 있었다
자목련 꽃잎 폐가의 벽돌로 지는 봄
공모의 완고한 손으로 벽을 부수는 소리에
거미줄 같은 물관은 속절없이
출렁인다
아무리 떠받쳐도 무너질 살점
몸통 떨면서도 끄나풀 놓지 못했다
등 기댔던 어금니의 흔들림 끝내
주춧돌에서 떨어져
나간 오후
낙타의 눈알처럼 발밑을 구르는 꽃잎의 날들
모래알 털어내어 단추 구멍에 끼워 준다
잘 들리지 않는 바늘귀에 잔볕을
꿰어
노파는 눈 어두운 단추로 붙어 있다
자작나무 숲에서 길을 묻다 / 백복현
숲 속 제지공장의 굴뚝은 땅으로 뻗었다
나무껍질이 짓는 표정은 여러 겹의 구름에 무겁고
모서리처럼 날카롭다가 곧 순한 평면이
된다
껍질 벗겨 말리는 바람이 공장을 들락거린다
적을 말이 많다며 오후는 부지런을 떨고,
글은 쓰는 게 아니라 치는
거라며
자판을 두드리는 맹렬 딱따구리
숲은 자작나무 책을 제본 중이다
바람의 기억이 건성으로 편집한 서술의 고리가
끊어진 구멍엔 오래 눈길이 머문다
빗물로도 지워지지 않던 이야기의 끝엔 밑줄을
긋고
몇 개의 옹이도 들여놓았다
덧난 상처의 연애는 볼드체로
바람이 다닌 길을 고백하고 있다
잠깐의 봄이 어느 슬픔의
뿌리로 올라왔는지
나뭇잎 뒤에 가려졌던 소문의 진상과
드러난 스캔들의 붉은 잎사귀를 빠짐없이 읽고 싶지만
거대한 뿌리가 어린
희망을 어떻게 그늘로 묻고 살았는지
숲의 잔혹사를 서술하는 일은
늘 잔뿌리에 미치지 못한다
자작자작 숲의 그늘을 안고 눈이 온다
자작나무 목피에 재가 날린다
쓰고 읽히고 다시 태운 재가
하얗게 길을 묻고 있다
화톳불 / 백복현
한차례 기온이 오르자 금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배웅할 눈과 고집스런 결빙 사이에서 전선戰線이 형성되었다
다 걷지 못한 두 발과
수의壽衣의 경계선도
이월의 눈에 밀리면서 영토를 잃는 중이다
마른 불길이 흰 시신의 면적을 완강히 밀어내는 시간
굳이 발버둥 칠 두 발은 멈추어 섰고
딱히 돌아볼 연고도 없다
모자라는
산수로 세상을 읽지 못하고
어리둥절 살다간 살덩이가 지키던 전선戰線엔
이월의 비가 내리고
흰 눈 제 살 내어 주는
오후,
영정도 없이 줄을 섰던
무연고 시신은 불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타고남은 재가 닿을 해안선이
그의 마지막 경계일까
땅속에 묻힌 연고의 탯줄도 있었다
하루씩 밀리며 모든 줄을
놓치고
용미리까지 왔다
애초부터 실금에 섰던
무연고의 신발이 놓고 간 오후가 꾸벅꾸벅
저물어 가는 화장터에
혼자라서 더 추웠을 뼈다귀 몇 개
멀찍이 화톳불을 쬐고 있다
덕릉로 123번 마을 / 백복현
바람이 적고 싶던 마을이 통째로 자판 속에 들어온다. 구름은 지붕 사이로 길을 만들고 그늘을 색칠하고 있다. 지도 속 지붕을 지그시 눌러 덕릉로 123번 안마당을 검색한다. 숫자 와 자음과 모음 사이로 좁은 길이 보인다. 그 길가에 풍금 소리 울리는 저녁이면 노을은 담 벽에 물들고 전깃줄은 군청 빛 밑그림 위에 아이들 얼굴을 그리기 시작한다. 노을의 손에 들린 저녁 붓이 호박 전구에 주홍빛을 입히는 소리, 어른들은 오래된 기침을 뱉어 내며 저녁과 밤사이를 드나드는 사이, 지도 속에서 철거될 절박한 햇빛 몇 줌 비켜서면서 덕릉로 마을 길엔 저녁이 들어선다. 동전 같은 머리가 드나들던 문설주마저 라디오의 잡음처럼 잦아지고 호박잎 잠자코 문고리를 흔들어 달에서 가장 먼 동네를 깨운다. 알파벳을 만질 때면 손가락 밑에서 깎이던 마을 담벼락, 손톱이 아프도록 쳐 본 덕릉로 123번지. 아라비아 숫자는 지도 속 문패에서 지워지고, 스무 시간의 비행 끝에 활주로를 찾은 내 멀미가 간신히 자판을 향해 바퀴를 내린다. 석양의 착륙이다.
봄밤 / 백복현
세탁기가 초저녁을 돌리는 동안
새들 날개도 꽃그늘 속에서 돌아간다
잘 익혀진 바람이 창문을 기웃거리는 부엌의 시간
뭉쳐
있던 꽃물이
세탁기 날개를 타고
하얀 소창에서 풀리어 간다
그녀는 검은 창틀에 저녁을 세워 놓고
봄의 머리카락을 빗질한다
하루의 지문을 한 올 한 올 들추어낸다
지문 속 고기압과
저기압은
오늘도 팽팽한 줄을 놓지 않는다
어느 쪽을 잘라야 하는 걸까
겨울처럼 무딘 가윗날이
저녁의 바깥쪽을 가위질하기
시작한다
개짐의 핏물이 번지는 안뜰은
회전의 날갯소리에 어지럽기만 하다
빨랫줄을 타고 출처 없는 비밀이 뭉턱뭉턱
봄밤으로
흘러간다
건조기 속에서 돌아가는 잠꼬대도
잘 마른 입술을 타고 뜨락으로 풀리어 가는 밤
가위질한 저녁 모아 거울 앞에
세운다
단발한 봄밤, 풍문의 손톱으로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제4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류승희 (0) | 2019.06.09 |
---|---|
제3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박윤근 (0) | 2019.05.13 |
제2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신정순 (0) | 2019.05.13 |
제2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오광석 (0) | 2019.05.13 |
제1회 문예바다 신인상 / 김상백 (0) | 2019.04.21 |
알츠하이머 / 김혜강
어머니가 사는 마을에는
사철 눈이 내린다
온 세상이 하얀 마을에는
기억으로 가던 길들도
눈으로 덮이어
옛날마저
하얀색이다
눈이 소복
쌓이는 마을에서
온 몸으로 그림을
그리시는 어머니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그림을 지우고
지우고 그리신다
어머니가 사는 마을에는
하염없이 눈이 내려
바구니에 담을 추억도
색연필 같은 미래도 없어
하얗게 어머니는
수시로
태어난다
어머니의 마을에는 눈이 내린다
nefing.com
[당선소감]
낯선 전화번호가 뜨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광고 전화일 것 같아 받지 말까 하다 받았더니 당선을 알리는 전화였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오래전부터 공정하게 실력을 가리는 공모전에 당선한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쉬지 않고 노력하며 도전했지만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좌절과 실망의 해와 달이 수없이 뜨고 졌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들이 시작(詩作)에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는 내면에 있는 수많은 자아를 찾아갈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해줍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과 신비로 가득 찬 우주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눈을 조금씩 넓혀주는 마법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은 당당하게, 그러나 겸손한 자세로 시작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족들, 그리고 고독하고 아름다운 시의 길을 함께 가는 문우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평생의 소원을 이루게 해 준 동양일보와 옥천문화원, 그리고 옥천군과 심사위원 선생님께 큰절을 올립니다. ‘지용신인문학상’이라는 명성에 누가 되지 않게 열심히 쓰겠습니다.
[심사평] 절제된 언어… 시적 변용 솜씨 알차
25회째를 맞는 지용신인문학상에는 올해도 경향 각지에서 300명이 넘는 수많은 시인 지망생들이 작품을 응모했다. 응모작이 해마다 증가하는 일은 물론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어느새 이토록 역동적인 시인공화국이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시를 너무 안이한 태도로 쓰는 습관이 왜 이렇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가 하는 우려도 숨길 수 없었다.
시는 썼다가 다 지우고, 다시 썼다가 또다시 말짱 지우고, 종단에는 백지만 남는, 지우기(delate)만 남아있는, 하얀 공백 위에 피어나는 핏빛 꽃봉오리여야 하거늘, 어쩌자고 이렇게 산만하고 지루하게 무작정 길게만 쓰는 것인가.
당선작 ‘알츠하이머’(김혜강)는 아주 단순한 소묘 같지만 그 안에 숨기고 있는 시적 변용의 솜씨는 얄밉도록 알차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안쓰러운 마음을 직설적인 토로와 절규를 통해서가 아니라, 말 못하는 카메라 렌즈를 통하여 당겼다 밀었다 하면서 절제된 언어로 표출해낸 빼어난 작품이다.
최종적으로 논의된 ‘연, 뿌리경전을 읽는 저녁’ (문순희), ‘김딸막 할머니의 국어시간’ (장현숙), ‘담쟁이’ (김은유)도 알맞은 시적 상상력을 잘 형상화해 흥미로운 시적 구조를 이루고 있지만 너무 인위적으로 가공한 흔적이 보이는 게 흠이었다. 어느 정도 시창작의 방법을 터득한 후에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개성화하여 독창적인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지용은 한국 현대시사의 서문이요 본문이다. 이토록 장엄한 현대시사의 현장 속으로 달려오는 ‘지용신인문학상’ 응모자들의 시적 성취가 날로 향상되기를 기원한다.
심사위원 유종호 (문학평론가), 오탁번 (시인)
제27회 지용신인문학상 / 박청환 (0) | 2021.06.20 |
---|---|
제26회 지용신인문학상 / 이선 (0) | 2020.05.26 |
제24회 지용신인문학상 / 박한 (0) | 2018.06.10 |
제23회 지용신인문학상 / 강성원 (0) | 2017.08.16 |
제22회 지용신인문학상 / 한진수 (0) | 2016.05.07 |
달빛 감는 고양이 / 박윤근
늦은 밤, 고양이 한 마리 빗물 속에 비친 달빛을 핥고 있네
저 몸짓은
둥근 털실을 잃어버린 고양이가
아침을 부르는
의식,
한때 따뜻한 저 실을 따라
크리스마스트리 반짝이는 불빛과 웃음이 감기는 사이
꾸벅 졸며 길을 잃은 고양이,
거리에
나오자 굴릴 것이 많아졌네
이제는 둥근 자동차 불빛에 뛰어들거나
달빛을 감으며
북~ 찢긴 비릿한 밤의 다른 표정을 감아 올리지
한 올 한 올 감아 올린 실타래 안으로
어둠에 몰린 사람들의 몸짓
팽팽히 당겨 올 때면
달빛 속 검게 번식한 고양이족을
볼 수 있네
그것은 백 묘가 흑 묘로 가는 양식,
달의 정수리까지 그믐달처럼 검게 변해 가는,
세상의 모든 저녁과 식탁의 둥근 틈 사이는
모두 비릿한 생선 냄새를 가지고 있어
길을 잃은 한 무리 고양이들
또 달빛에
뛰어드네
저 먼 달 속으로
순한 눈빛들이 하나둘씩 가로등처럼 켜져 가네
쇄빙선 / 박윤근
병실 한구석, 쇄빙선 한 척 길게 정박해 있다
커튼에 가려져 물 한 방울 빠져나가지 못하는
담수호 창문 위로 어족이
넘나든다
검게 번진 버짐은 결빙을 예감하지 못한 이들이
몸속 긴 해안을 걸어온 흔적,
빙벽을 헤치고 오는 동안
얼음처럼
굳었던 손마디가 풀리는지
오늘은 오줌주머니가 일찍 부풀어 출어가 빨라졌다
탈수된 몸은 이제 닻을 내린 듯
낱낱의 어종을 기억할
만큼 촘촘하지 않아
경색된 후륜의 기억 사이로
물오른 잡어 떼 한 무리가 끼었다
저인망 그물에도 닿지 않는 저 항적을
분리해 내는 작업은 힘든 일
욕망의 장식을 버리면 이제 편해질 것 같다는 생각,
링거를 타고 내려온다
뒤축처럼 닳은
흉추의 통증이 풀리자
선단에 몸을 가누던 눈빛, 천장에 떠 있다
기울었던 몸의 균형이 병실 안으로 출렁인다
늘 모났지만
안으로 둥글던 사내의 속내가
오랜만에 따뜻해진다
또 몸으로 바다가 오는지 먼 곳 발끝부터 저리다
책 속 시조새 / 박윤근
책을 읽다가
새를 닮은 문장을 발견했다
사막 한가운데 볼록한 낙타 등처럼 묻혀 있다
허기를 막 채우고 왔는지
포만
가득한 미동이 꼬리 끝까지 물려 있다
손이 자주 닿아 무뎌진 종이 끝은
새들이 이동하던 통로,
곤충을 쫓아 떠난 짐승들의 야성의
냄새가 아직 짙다
쥐라기 시대, 모두 사라져 버렸다는 중략 구에서도
뒷발 화살 모양의 활자는
여전히 앞 문장의 목덜미를 겨누고
있다
책 속 문장들의 수런거림에
검은 발자국들이 콩알처럼 흩어지며
행갈이를 이어 간다
파르르 하늘을 자욱이 날면서도 저
날개들이 겹치지 않는 이유는
먼저 책등 위로 날아간 몇몇 새들의 근황을 풀어 읽는 까닭일 것이다
날개와 뼈대가 접혀 매몰된 대목의
암각을 해독하는 시간은 길어지고 있지만
지금은 우기,
여백을 지나는 날것들의 몸에서
털갈이하듯
깃털이 빠지는 것을 보면
새들은 아마 저 책등을 넘어
옹기종기 반딧불처럼 깜빡이며 무리를 지어 살고 있을
것이다
새벽녘까지 까맣게 긋고 날아간 새들의 항적은
차곡이 쌓여 별책의 새 목차로 추가된다
얇던 책장이 차츰 두꺼운 밀림지대가 된다
지문指紋 / 박윤근
레일을 깔기 전
이곳이 영토였던 회색 곰 무리들은
시베리아 수림 어디쯤을 걷고 있을까
투명한 내실이 보이는 열차 안
붉은 시트 식탁 위에 찻잔이 흔들리고 있다
보료에 깔린 3시 안으로
객차의 묵은 번호판과
막장에 날아든 새들이 각질처럼 일렬로 쌓인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삼백 마일
비늘 하나 벗기지 않은 연속의 물결은
동토의 땅
어느 짐승들이 무심히 땅에 긋고 간
잔가지
빗금을 따라갔는지
멀리 간헐적인 총성이 들렸다
객실 안으로 회색 울음이 번졌다
열차는 사과 안으로 떨어지는 중력처럼
레일 위를 구르다 깊은 음각의 골짜기
여러 무리와 만날 것이다
간이역이 없는 긴 시간을 지났지만
곡선의 굴절에서는
아직 연소하지 않은 경유 냄새가 났다
자궁 같은, 절벽 같은
찻잔의 떨림이 굉음이 지난 어둠 속에 남아 있다
붉은 총성이 또 로켓처럼 달빛을 통과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물길 / 박윤근
수영장 속, 한쪽 팔이 틀어진 사내
혼자서 물장구를 치고 있다
헤엄치는 모습, 삐걱대는 마루다
저 남자,
생선 토막처럼 잘린 짧은 팔 하나로
물살을 가르며 무슨 길을 내고 싶은 것일까?
보내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나는 째깍거리는 수면 위 시간에 익숙한 사람,
저 팔 안에 갇힌 적막한 시간을 읽을 줄 모른다
물결에 한 획 한 획을 그리며 무얼 타전하는지
힘겹게 이어지는 사내의 발끝 피돌기를 따라
물방울이 화르르 풀려
간다
태엽 감은 로봇처럼
불규칙한 동작이 반복되며 물살에 가속도가 붙는다
이윽고 뽀얀 포말들이 말굽처럼 사내를 따른다
물의 신 포세이돈처럼, 나사못처럼
떨어져 나간 호흡이 적막했던 사내의 시간 속으로 끌고 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그가 보낸 까마득한 수신지가 나였던 것처럼
잠시 내 눈이 깜박였다
한 무리의 어족들이 떠난 수면의 파문이 가라앉자
옷을 추스려 입고 수영장을 벗어나는 사내가 짚고 가는 바닥이
맹 획을 얻은 듯
다시 삐걱거린다
물살을 가르던 뭉툭하던 팔 하나가
제법 날카로워져 있다
[심사평]
시 부문 심사 과정은 다소 곤혹스러웠다. 심사의원들 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심사위원들도 눈치를 본다. 가능한 한 원만하게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문예바다』에서는 왕왕 있는 일이지만, 심사위원들이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예심을 거쳐 심사위원에게 넘어온 작품은 모두 100편이었다. 10명의 응모자 분이었다. 심사위원들이 쉽게 합의를 본 것은 박윤근 당선자였다. 무엇보다 대상을 보는 시각이 범상치 않았다. 반려동물에서 길고양이로 버려지는 과정을, 문명의 해체와 야생의 복원(“백 묘에서 흑 묘로 가는 양식”)으로 달의 이지러짐과 대비시킨 「달빛 감는 고양이」를 비롯하여 「쇄빙선」 등은 어디 내놔도 흠잡을 데 없는 수작이었다. 게다가 오랜 습작을 거친 듯 대부분의 작품이 안정돼 있었다. 재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당선자를 정하고 나니 김부회의 시가 아깝다는 의견이 계속 나왔다. 그러니까 두 명의 당선자를 내자는 것이었다. 즉각 반발에 부딪혔다. 작품의 수준이 고르지 못하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서해에서」처럼 빼어난 작품성, 「스마트 파종」의 해학성, 그리고 「암연의 계보」처럼 솔직하고 넉넉한 삶의 여운을 도저히 모른 척할 수 없다는 주장이 끝내 설득을 얻었다. 선을 통과했으니 무엇이 두려우랴!
차강석, 허유미의 시는 여러 번 되읽게 만들었으나 아쉽게도 선에는 들지 못했다. 차강석의 「RHWJDSHKSSUA」외 9편의 경우 비선형성과 우연성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은 좋았으나 감정(성)의 진폭이 다소 좁아 보였다. 앙상한 디지털에 반응하는 시적 언어의 풍부한 묘미를 계발하면 좋겠다. 허유미의 「내셔널 지오그래픽」외 9편은 발상은 참신했으나 형상화에 공들인 흔적이 왠지 좀 헐하게 느껴졌다. 「삿디」 같은 작품이 더 받쳐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문예바다』에 입항한 두 분 시인께는 큰 축하를, 다른 분들께는 정진의 격려를 드린다.
- 심사위원 안영희 문정영 김점용(글)
제4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류승희 (0) | 2019.06.09 |
---|---|
제4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백복현 (0) | 2019.06.09 |
제2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신정순 (0) | 2019.05.13 |
제2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오광석 (0) | 2019.05.13 |
제1회 문예바다 신인상 / 김상백 (0) | 2019.04.21 |
목련의 결심 / 신정순
찰나에 어쩌다
내 눈길이 거기 있었을까
나와 그 허공이
12시에 잠시 포개지는 시곗바늘처럼 얽혀버렸다
떨어지는 꽃잎과 잠깐
스친 듯도 한데,
사기그릇 깨지듯
하얗게 흩어지는 꽃잎의 파편들
예정된 시간이 다녀간다
미처 결심을 굳히지 못한 꽃잎들이 쏟아져
보도블록이 어지럽다
바닥을 견디는 일이 만만치 않다
잠시 시간이 멈췄다 흐르고
바람이 응시하는 목련나무 우듬지
단명의 봄이
툭, 제 목을 자른다
스물셋 눈부신 생, 흰나미 한 마리
가볍게 허공에 길을 내며 날아오른다
빛을 팝니다 / 신정순
2호선 낙성대역
한 사내가 옆자리에 앉는다
낡은 가방 속에 손가락만한 손전등이 가득하다
하나를 꺼내 만지작거리다 다시, 앉는 사내
손전등도 어두운 상자 속에
주저앉는다
정지된 동작에 생의 한끝이 골똘하다
내 눈과 마주친 머쓱한 웃음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포개진 어둠들
지폐 한 장으로 켤 수 있는 빛
남자가 차곡차곡 담아 넣은 결심은
초행길인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손등에 선명한 화상 자국
감당할 수 없는 어떤 뜨거운 불길이 스쳐 갔을까
불기운을 피해 동굴로 숨어들어
빛을 팔지만 여전히
어둠인 남자
휘어진 척추 사이
망설임이 무겁다
준비한 말을 입 속에 담고 다음 칸으로 더듬더듬 넘어간다
상쾌한 세탁소 / 신정순
평지보다 계단이 익숙한 남자
깔밋한 셔츠와 주름치마를 들고 주름 잡힌 계단을 오른다
울림이 좋은 아파트 복도는
중저음
목소리를 칸마다 배달해 준다
한때 목포 앞바다를 주름잡으며 살던 박 씨
불끈거리는 과거를 묵직한 쇳덩이로 눌렀다
질풍노도를 다루는 법을
간판에 걸어두고
마음을 다잡았다
어느 날 한 여자가 골목 모퉁이를 돌아 나가고
생의 굴곡을 들여다보며 주름을 잡거나
어긋난 생을 반듯하게 펴
보아도
문신으로 남아 있는 각오는
봄날의 골목을 뛰쳐나간다
흙탕물이 튀어 오를 때마다
얼룩진 생을 들고 되돌아와
천장에 장대로 다짐을 매달아 둔 사내
누군가의 출근길이 걸리고 때를 놓친 퇴근이
구겨져 돌아오는 곳
오늘도 얼룩을 지우고 있다
비가 개이면
가슴의 얼룩도 상쾌하게 사라질 것이다
제4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백복현 (0) | 2019.06.09 |
---|---|
제3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박윤근 (0) | 2019.05.13 |
제2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오광석 (0) | 2019.05.13 |
제1회 문예바다 신인상 / 김상백 (0) | 2019.04.21 |
제1회 문예바다 신인상 / 강태승 (0) | 2019.04.19 |
기괴한 자장가 / 오광석
머리 둘 달린 아이가 낫을 들고 다닌대 달
없는 밤마다 골목 구석구석 다닌대 어느 집 창문을 넘어 들어가 잠든 아이들의 머리맡에 쭈그리고 앉는데 밤마다 아이들이 잠들면 어깨어림에서
불쑥불쑥 머리가 새로 자라는데 아이들은 새로 자라나는 머리가 꾸는 기괴한 꿈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데 머리 둘 달린 아이는 자라나는 아이의 다른
머리를 싹둑 하고 잘라 낸대 아이들이 편안한 얼굴로 잠속으로 빠져들면 머리 둘 달린 아이는 휴우 한숨으로 일을 마치고 다시 창문 너머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지는데 자기 머리 하나는 스스로 자르지 못해 기괴한 꿈속을 헤맬까 잠들지 못하고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노래를 부른대 달 없는
밤마다 아이가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면 어른들은 무서워 문을 꼭꼭 잠그는데 아이들은 자장가로 들리는지 새근새근 잠이
든대
옥스퍼드의 마법사 / 오광석
옥스퍼드에 미친 마법사가 산다네
네모난 집에 네모난 방에
미친 마법사가 산다네
사방으로 뿌려지는 네모와
동그라미
끼우고 끼워서 세상에 없는
마법들을 쏟아 낸다네
홀로 이야기를 만들며
방에 들어앉은 그가 손뼉을 치면
네모난
집은 점점 넓어지고
그의 이야기는 점차 길어져
역사를 시작한다네
길고 짧은 모형들이 살아 움직여
성벽을 올리고 성문을
만들고 누각을 올려
그 위에 나부끼는 종이 깃발
병사들의 함성 소리가
그의 입을 통해 전해질 때
이루어지는 왕국
두
손으로 끼우고 맞춰 창조한
신기한 마법의 왕국
그 곁에 모여드는 우리는
마법사에 반한 무리들
훗날 마법사가 세상에
나서면
발칵 뒤집어질까 상상만으로 즐거워
키득키득 미치게 웃는 무리들
그 모양이 이상한지
자꾸만 뒤돌아
바라보는
옥스퍼드엔 블록에 미친 마법사가 산다네
그의 곁에는 마법사에 미친
우리가 산다네
장화 신은
고양이 / 오광석
오므린 입술이 앵두처럼 빨간 고양이 앞에
나는 생쥐로 변신한 오우거
잡아먹을까
잡혀 먹힐까
고민하는 두 눈동자가 반짝여
마술을 부려 거인으로 돌아가려 하면
얼른 덮쳐 오는 고양이
툭툭 치며 장난을
걸어와
온몸으로 껴안으면
두근두근 그 심장 소리가 들려
가르릉 가르릉 숨소리가 들려
나의 성을 차지하고 눌러앉은
고양이
비 오는 날이면 유난히
장화를 좋아하는 고양이 앞에
나는 비에 젖은 생쥐가 된 오우거
초롱한 눈을 바라보고
나면
무서운 거인으로 돌아가는 주문이
생각이 나질 않아
긴 장화를 신고 빗길을 또각또각
소리 내며 걷는 자그마한
고양이
낮은 우산이 전신을 가리면
눈앞에서 사라질까 두려워
자세를 낮추고 허리를 구부려
우산 속을 들여다보지
눈웃음을
치는 장화 신은 고양이
번쩍 들어 올려 거인으로 돌아온 나는
매혹 주문에 걸려
고양이를 사랑하는 오우거
* 장화
신은 고양이 : 프랑스 동화에서 가져옴.
제4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백복현 (0) | 2019.06.09 |
---|---|
제3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박윤근 (0) | 2019.05.13 |
제2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신정순 (0) | 2019.05.13 |
제1회 문예바다 신인상 / 김상백 (0) | 2019.04.21 |
제1회 문예바다 신인상 / 강태승 (0) | 2019.04.19 |
설안雪眼 / 김상백
1.
눈 내리지 않았고
하여 당신도 오지 않았다
매서운 추위 탓인가
두꺼운
얼음장에도 금이 간다
꾹
꾹
마음바닥을 찍을 때마다
장대 휘청인다
조각얼음을 타고 건너가는
발 시린 자정
2.
익어 가는 꽁치의 雪眼
하얀 접시에 꼬리지느러미
그리고 또 머리
삐죽이 내민다
끝으로 밀려
가면
저처럼 발과 머리
허공에 내놓고 살아야 하나
곽시쌍부
달이 진 눈 속
어둠이 깊다
서해 / 김상백
저무는 바다
반달 걸리면
떨어지는 단두대
자비의 칼날
온몸으로 물고
우우우-
번지는 속죄의 노을
가벼운 장례 / 김상백
선풍기
저 홀로 돈다
연옥에서 부는 바람
울먹이던 세간들
비닐 수의를 마련했다
활짝 핀 꽃불 속
놀러나 갈까
가벼운 외짝 날개
나비를 타고
뒤바뀐 자전축
거꾸로 돈다
그리운 성혈사 / 김상백
원 안에 들어가도 죽고 나와도 죽는데 어떡하면 살 수 있겠느냐
삭정이 하나 주워 큰 원을 그리면서 하시던 물음. 언젠가 다시 들르리라 생각했지만
먼 길이라 마음에 담고 살았습니다 처음 무심코
찾아가던 산길은 풀섶만큼 어렴풋했
지만 산사의 불빛은 법문 총총한 별밭이었습니다 연못에 발이 빠진 다정은 아직 차
향기 그득한가요
차 시봉을 들려고 곱디곱게 머리 빗던 처녀 버드나무도 저처럼 이젠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겠지요 산신각 잿빛 기와를 닮아 가는 희끗한 새치
몇 가닥이
소백산 계곡물을 길게 길게 흘려보냈군요
토굴 같던 보살님 두꺼비 같던 상좌승 마을 아래로 하냥 구름을 띄워 보내던 행자스님
봉철 큰스님 보고 싶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동당과 서당 고시생들 불러 모아 날궂이
윷을 놀고 해맑은 다음 날 늙은 호박만 한 가슴을 한복에 감추고 올라온 서울 보살이
놓고
간 수박, 씨 뱉듯 던지신 화두는 유언처럼 남아 시창是窓이라 지어 주신 법명,
마음에 큰 구멍을 뚫고 작은 암자 성혈사 한 채 지으라는
뜻 이제사 알았습니다
달콤한 수박이 수박 맛에 있더냐 입맛에 있더냐
자꾸 성혈사가 그리운 까닭입니다
제4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백복현 (0) | 2019.06.09 |
---|---|
제3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박윤근 (0) | 2019.05.13 |
제2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신정순 (0) | 2019.05.13 |
제2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오광석 (0) | 2019.05.13 |
제1회 문예바다 신인상 / 강태승 (0) | 2019.04.19 |
손톱 / 강태승
눈으로 재고 육감으로 폭 넓히다가
그녀는 손톱으로 부윽 자른다
머릿속으로 굴리고 뒤통수 마름질하다가
손톱으로 찔러 자신의
바구니에 담는다
톱이다, 손톱은 그녀에게 예비된 방점
낟알 긁어모을 때도 적당한 것
풀을 뽑거나 남자 잡을 때에도
손톱이
톱, 그 뜻을 다한다
손가락 발가락이 적당한 자리에
머무르게 한 것도 손톱 발톱이
웃자라는 싹을 늘 베고 있기
때문이다
안과 밖이 조용한 것과
몸이 풀어지지 않고
말뚝처럼 꼿꼿이 직립하는 것은
손톱이 자신도 톱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톱이 밖으로 나오다 멈춘 곳
욕설이 나가다가 붙잡힌 곳
분노 증오가 타협점을 찾은 곳
이해와 용서가 숯으로
굳어 버려
덤으로 삽괭이가 잡히는 수평점
가장 바깥에 있는 사람의 혈血자리, 손톱-
골다공증 / 강태승
동네 어귀 개울 건너에 천 평의 밭이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농사지었던 것
한때는 아무거나 심어도 우거지던 밭
요새는 콩밭을
심어도 여물지 못한다
어머니는 연작의 피해라지만
골다공증에 걸린 밭이다
여섯 자식을 사십에 과부되어
기르신
어머니,
거죽만 남아 덜거덕거리는 무릎
이젠 귀 멀고 눈도 침침해진 것
밭과 같은 골다공증에 걸리셨다
같은
병에 걸린 밭에
매번 심으시는 참깨 감자 고구마……
아무리 좋은 한약을 드셔도
기운 차리지 못하시는 어머니처럼
거름을
부어도 예전처럼 못 맺는다
그래도 어머니의 땀방울이 가여운지
씨를 뿌리면
손목 발목 삐거덕거리며 키우는 밭,
냉이 달래를
덤으로 근근이 내밀고
밭둑으로 쑥을 간들간들 키우는 것에
햇빛도 열심히 데우는 것이다
-밭 가운데 있는 늙은 밤나무도
쿨럭
거리며 우듬지를 세우고 있다.
무통 수술 / 강태승
내일 수술 날짜이니 식사하지 마세요
나무는 이슬을 툭툭 떨어트리며 말한다
그러나 수술은 바로 시작되고 있었다
세상의 꼬리
보이지 않는 숲길을 걸으니
휴대전화가 잽싸게 불통지역으로 눕는다
밀리고 밀리다 몸 푸는 파도처럼
허리띠를 풀고 산비알과
겹치자
나무가 아프지 않게 가지를 친다
정강이에선 톱질이 생생하다
도끼질도 하는지 두개골이 환하다
휴대전화도 좋은지
껌벅거리는 눈,
저승길 다녀 보라고 밧데리 빼준다
돌과 같은 자세 바로 익히는 휴대전화
나도 같은 데를 더듬어 식는다
구름이 높다는 생각에
흙이 묻는다
아니다 그렇다는 문맥에 이슬 맺힌다
어둠이 가장자리를 한 문장으로 윤색하자
그 한가운데로 뜨는 별
울컥 솟는
무모함의 뿌리에서 불不이 난다
나뭇가지마다 눈꽃처럼 쌓이는 재災
수술 끝났다고 바람이 목덜미 걷어찬다
나무들이 가 나 다
라……로 직립한다
휴대전화는 저승의 무게로 물러나 있고
가지마다 내일을 불어넣는 이내빛-
찔레꽃 / 강태승
도시로 쓸려간 아들 딸은 오지 않았다
바람이 딸처럼 드나들고
아들처럼 햇빛 달빛이 마루를 다녀갔다
찬 이슬 대야에
떨어지면
호박 잎새만 주춤거리다 검어졌다
부러지고 구부러진 길을 펴려
걷어차는 아버지의 술주정을
모서리 밖으로 피하다가
청상이 된 어머니,
장작으로 맞은 데가
육십부터 비 내리는 날이면
흙이 묻어난다 하였다
아버지 이장移葬하던
날
몽둥이로 봉분封墳을 두들기시곤
이십 년 동안 가지 않으셨는데,
칠십 고랑부터는
사립문 그림자가 저녁마다
가잔단다
팔순 잔치 끝나고 눈 펑펑 내리던 밤
문득 아버지에게 가고 싶다는
가느다란 그림자를 몰래 잡으니
마른 찔레꽃이
수수 떨어졌다
올해도 무덤가에 핀 찔레꽃
그것은 아버지의 묵은 손짓이라고
우기면서 옷고름에 매드리니
서릿발에 마른 콩잎보다
얇게 손사래 치는
어머니의 입가로,
문득 육필肉筆로 피는 찔레꽃-
부처를 위한 변주곡 / 강태승
어느 날 슬픔이 부처의 머리 가슴 입술 허파,
그리고 온몸의 모공毛孔을
물었네
핏속의 피와 눈 속의 눈 그리고 부처의 목숨을
물었네
그때 부처의 가지마다 살구꽃 피었네
개복숭아 아그사과 아그배도
덩달아 피었네
개울가 미나리도 변두리에 꽃을 매달았네
후박나무는 뒤뜰에서 얼떨결에 피었네
슬픔이 부처의 머리를 죄다 잡아
뜯자
그해 머루 다래는 가을의 결구에
제 목숨을 새가 먹기 좋게 물들였네
슬픔이 기울어진 머리를 싹싹 갉아먹자
부처는
그제야 푸른 잎 한 장을 무릎에 놓았네
강물이 제 몸을 가로질러 바다를 만난 것처럼
부처의 무릎이 나뭇잎으로 걸리기까지는
그가
그를 잊고 나뭇잎으로 펄럭일 때였네
보름달도 그때는 손가락에 여름을 적셨네-
제4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백복현 (0) | 2019.06.09 |
---|---|
제3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박윤근 (0) | 2019.05.13 |
제2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신정순 (0) | 2019.05.13 |
제2회 문예바다 신인상 당선작 / 오광석 (0) | 2019.05.13 |
제1회 문예바다 신인상 / 김상백 (0) | 2019.04.21 |
가방 외 4편 / 최재훈
나는 언제나 당신의 가방 안에
든 것이 궁금했다.
나를 만나는 동안 당신은
단 한 번도 가방을 열지 않았고,
우리 사이엔 늘 그 낡고 빛바랜 가방이 놓여 있었다.
밥을 먹다 화장실을 갈 때도
비좁은 버스 안에서도
막다른 골목에서 키스를 할 때도
당신의 가방은 당신의 손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마치 당신과 가방이 한 몸이 되어버린 것처럼,
그래서 어떨 땐 당신을 버리는 것이 가방에게도
가혹한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하면서,
언제부턴가 당신과의 만남이
실밥에 걸린 지퍼처럼 막막해져 갈 때,
나는 당신의 가방을 의심하고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당신의 가방은 철문처럼
입술을 열지 않았고
그 순간에도 당신은 그것의 등을 쓰다듬으며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당신과 내가, 아니 가방과 내가
건너야 할 세계는 마침내 짝다리를 짚고 서서
우리를 밋밋하게 혹은 멀뚱멀뚱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당신보다
당신의 가방이 더 궁금했지만,
당신의 마른 식욕이 상한 나를 삼키고
화장실에 갇혀 식은땀을 흘리는 동안
나는 이미 당신을 토하고 입가를 닦고 있었다는 걸,
비좁은 버스 안에서 당신이 나를 찾아 입구를 헤매는 동안
나는 늘 출구 쪽에서 다음 정류장을 되뇌고 있었다는 걸,
우리의 키스는 모퉁이가 사라진 막다른 골목이었고 내 혀끝은
안간힘을 다해 돌아갈 길을 찾고 있었다는 걸,
그러나 어쩌면 나는 당신보다 당신 가방보다,
나의 빈 가방을 당신에게 보여주기가
죽을 만큼 싫었는지 모른다.
나와 당신은, 아니 당신 가방과 나는,
아니 나의 가방과 당신은
그렇게 각자의 허공을 담고 있었는지 모른다.
마치 우리와 가방이 한 몸이 되어버린 것처럼,
그래서 어떨 땐 우리를 버리는 것이 빈 가방에게도
쓸쓸한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하면서,
기이한 소년
소년은 태어나자마자 무섭게 자라기 시작했다.
왜소한 부모는 그의 엄청난 식사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소년의 몸이 반지하 단칸방을 모두 차지하게 되자,
부모는 그를 이삿짐 트럭에 싣고 무작정 동물원을 찾아갔다.
동물원 관계자들은 소년을 보고 공포에 질렸으나,
곧 그들의 쓰러져가는 동물원을 일으킬 모의를 진행했다.
소년의 몸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부풀고 있었고
부모는 안도하며 생활의 수렁 속으로 되돌아갔다.
동물원은 우리 안의 소년을 사진 속에 담아 부모에게 전달했다.
부모는 가끔 그것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 그들은 우리 안에 갇힌 그들 자신을 보았다.
소년은 부모의 기억에서 손쉽게 잘려나갔다.
동물원은 소년의 몸이 더욱 거대해지길 원했다.
조련사는 닥치는 대로 먹이를 주었다.
그즈음 도시는 날마다 자신의 치부를 도려냈고
그 흉터 위에 콘크리트를 깔고 빛나는 대리석을 세웠다.
치부의 더미가 폐수를 따라 도시 외곽으로 흘러들어 악취를 뿜어댔다.
조련사는 그것들을 굶주린 소년의 우리 안에 던져주었다.
동물보호단체에서 동물원의 비인도적인 처사에 대해 항의했지만,
그들도 소년의 정체성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한 채 되돌아갔다.
동물원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오직 기이한 소년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비행기가 날아왔고,
고가로 출시된 동물원 패키지 여행상품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조련사는 소년에게 몇 가지 동작과 말을 가르쳐
관람객들의 입에서 탄성이 쏟아질 쇼를 준비했다.
소년은 무거운 몸을 꿈틀거리며 춤을 췄고,
동굴 같은 입술을 열어 비명의 메아리를 토해냈다.
누군가 소년의 눈가에 맺힌 것을 가리키며 소리 질렀지만,
그도 곧 자신의 슬픔에 목이 메어갔다.
이윽고 소년의 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지자
동물원은 그를 도살하여야 할 때가 왔음을 알렸다.
식량문제 연구가들은 소년을 신의 선물로 칭송했다.
세계 곳곳에서 전문 도살자들이 속속 도착했고,
소년의 살덩이는 그들의 정교한 칼날에 의해 분해되었다.
굶주린 사람들이 부러진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댔으나
그들의 몫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소년의 뼈를 보기 위해 아이들이 박물관으로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무턱대고 울거나 이유 없이 웃고 떠들었지만,
곧 어른들의 기침 소리가 도착하자
어둠 사이로 재빨리 거대한 몸을 숨기는 것이었다.
그때 아이들의 떨리는 입술을
소년의 앙상한 뼈가 천천히 핥고 있었다.
펜(Pen)
그는 외다리다.
혼자서는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다.
쓰러뜨리면 쓰러졌던 그대로 쓰러져있다.
뒤척이지 않는다.
누군가 일으켜 세워주면
어깨에 기대 기우뚱 말이 없다.
그의 발목은 뿌리가 없고
그래서 아무리 아름다운 꽃병에 꽂아 놓아도
향기 한 모금 고이지 않는다.
그는 고개 숙여 발밑을 들여다본 적 없다.
어쩌다 그를 부축해서 걸어간 길 위에
검은 발자국이 드러나지만,
그의 눈은 언제나 텅 빈 곳을 향해 뚫려있다.
어떤 이는 그의 발자국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침을 뱉기도 하지만,
그는 스스로 운명을 바꾼 적 없으므로
그의 태생은 죄도 보람도 없다.
그러므로 그에겐 요람도 용서도 없으며,
다만 그의 뱃속에는 실패의 씨앗만
무성하게 자랄 뿐이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뻣뻣하게 굳은 그의 몸을 쓰다듬으며
주술처럼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무속인들,
저들의 연약한 입을 통해
그의 텅 빈 정신은 횡설수설할 뿐이다.
휘어진 길의 등을 망치로 때려 곧게 펴자
걷는 사람들은 더 이상 비틀대지 않는다.
거리는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아침을
깨끗한 백지로 갈아 끼우고,
행인들과 깡통 소리 나는 그들의 천적들은
밑줄을 길게 그으며 무심코 강조된 삶이 된다.
간혹 바닥에 얼룩을 떨어뜨리고 달아나는
청년의 꽁무니를 늙은 비둘기가 물고 있다.
비둘기들이 공원을 서성이면 노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먹다 만 과자부스러기를 던져준다.
그때 나는 한 방울의 진심도 이 길 위에
흘려본 적 없으므로,
좁쌀 쏟아지듯 내리는 빗방울, 따가운 바늘 세례.
내일은 믿기 어려운 종교를 하나 더 추가하고
그와 함께 가까운 사원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는 나를 생각한다.
그는 태생이 외다리다.
혼자서는 어떤 꿈속도 걸어가지 못한다.
어느 날 난 그의 목발이 되어 주리라 다짐했다.
그의 발끝에 새까맣게 고인 핏물을
악착같이 짜내며
난 나의 결백을 주장한다.
벽
거울이 없는 방에선 내가 종일 보이지 않는다.
바닥을 기어가던 바퀴벌레 한 마리가
벽 앞에 주춤거리며 서 있다.
그도 잃어버린 게 있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시력을 잃은 형광등 불빛이 비틀거리다 벽에 부딪힌다.
몇 개의 낡은 가구들이 이 광경을 숨죽이며 지켜보다
이내 눈을 감아버린다.
가구 위에 놓여있던 몸을 나는 간신히 일으킨다.
텅 빈 몸통을 뚫고 뻗어 나온 다리가
잎사귀 같은 걸음을 흘리며 그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무례한 침입자는 그 자리에서 꿈적도 하지 않는다,
마치 그곳에 질긴 목숨의 뿌리를 내린 것처럼.
검은 몸을 감싸며 번들거리고 있는 그의 정신을
손가락으로 찔러보려다 그만둔다.
너의 몸은 누구의 눈에서 빠져나온 검은 눈동자인가.
나의 존재를 의심하는 저 섬뜩한 응시,
어쩌면 저 눈빛은 두려움에 떨며 어둠 속에 숨어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의 의심과 공포를 납작하게 밟아볼 텐가.
마침내 그의 가는 다리가 벽을 기어오른다,
뭔가에 쫓기듯 뒤를 연신 힐끔거리며.
깨진 구슬 같은 눈알이 나를 빠져나와 벽을 타고 그를 쫓아간다.
너는 네 생의 불안 어디까지 도망갈 텐가.
한참을 기어오르던 그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정신없이 벽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리곤 벽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다.
나는 멍하니 벽 앞에 서 있다.
빈 벽을 쓰다듬는다,
벽이 출렁거린다.
다음날 나는 거울을 달기 위해
창백한 벽의 얼굴에 못을 박는다.
순간 그 안에서 물컹한 혓바닥들이
우글거리며 기어 나온다.
절망에서 손쉽게 걸어 나오는 법
보안 검색대를 통과한 기분은 어떻습니까?
보안 요원이 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무것도 소지하지 않은 사람이라 말합니다.
가방에 주섬주섬 빈손을 주워 담으며 저는 식은땀을 흘립니다.
아무것도 들키지 않은 사람은 심지어 울음을 펼쳐 보입니다.
저는 주머니 없는 몸을 가졌지만 늘 검문검색을 당합니다.
사람들이 표정을 읽을 수 있도록 저는 손바닥을 펼치고 다닙니다.
주먹을 쥔 청년들은 표정이 없어 비장해 보이지만,
보안 요원에 의해 강제로 펴진 그들의 주먹은 텅 비어있습니다.
몇몇 늙은이들은 철근 같은 등뼈가 발각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어딘지 모르게 저의 몸통은 수상해 보이지만 뼈를 소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한 제가 저편에서 손톱을 물어뜯고 있습니다.
저는 저편의 저를 바라보며 주춤거립니다.
그는 온몸에 주머니를 가득 달고 있습니다.
옆구리를 똑딱 열더니 그가 무언가를 만지작거립니다.
보안 요원이 다가와 그의 눈과 입과 귀를 끄르고 한참을 들여다봅니다.
아무래도 그는 뾰족한 것을 숨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눈을 비벼 그를 지우고 저는 조용히 뒤돌아섭니다.
제 항공권에는 도착지가 적혀있지 않습니다.
저는 되돌아가야 할지 오랫동안 망설입니다.
창밖에는 거대한 비둘기들이 바닥에 떨어진 햇빛 부스러기를 쪼며
날개를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스크랩] 제2회 정남진신인시문학상 수상작품 /성금숙 시인 (0) | 2017.10.15 |
---|---|
[스크랩] 제2회 정남진신인시문학상 수상작품/ 김경린 시인 (0) | 2017.10.15 |
[스크랩] 제1회 정남진신인시문학상 수상작품 /강주 시인 (0) | 2017.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