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마네킹 / 박설희
전철역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잡화점
다리 마네킹 대여섯 천장에 매달려 있다
그 아래 진열대엔 쭉 뻗은 발끝에 모자를 걸고
강력 스타킹 한 켤레 오천 원
지하철이 구내로 진입할 때마다
강력한 그물에 걸린 다리들이
파닥거리며 빙빙 돈다
원 스텝, 투 스텝,
날렵한 발끝을 모으고
허공의 한 지점을 찍으며
발끝에 얹힌 모자가 빙그르르
인어공주의 후예들이
혀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다리
다리가 말을 한다
다리가 밥을 번다
다리가 신랑을 구한다
낮도 밤도 아닌 때에 입지도 벗지도 말고
타지도 걷지도 말고 오라*는 요구대로
그물을 걸치고 가리라
수밀도의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푸드덕거리며 저 진주의 성을 향하여
늘 발기해 있는 다리들
밤이 깊어지면 한곳에 모여 쓰러지리
그물 사이로 내비치는 힘줄을 쓰다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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