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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 강태승


눈으로 재고 육감으로 폭 넓히다가
그녀는 손톱으로 부윽 자른다
머릿속으로 굴리고 뒤통수 마름질하다가
손톱으로 찔러 자신의 바구니에 담는다
톱이다, 손톱은 그녀에게 예비된 방점
낟알 긁어모을 때도 적당한 것
풀을 뽑거나 남자 잡을 때에도
손톱이 톱, 그 뜻을 다한다
손가락 발가락이 적당한 자리에
머무르게 한 것도 손톱 발톱이
웃자라는 싹을 늘 베고 있기 때문이다
안과 밖이 조용한 것과
몸이 풀어지지 않고
말뚝처럼 꼿꼿이 직립하는 것은
손톱이 자신도 톱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톱이 밖으로 나오다 멈춘 곳
욕설이 나가다가 붙잡힌 곳
분노 증오가 타협점을 찾은 곳
이해와 용서가 숯으로 굳어 버려
덤으로 삽괭이가 잡히는 수평점
가장 바깥에 있는 사람의 혈血자리, 손톱-

 





골다공증 / 강태승


동네 어귀 개울 건너에 천 평의 밭이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농사지었던 것
한때는 아무거나 심어도 우거지던 밭
요새는 콩밭을 심어도 여물지 못한다
어머니는 연작의 피해라지만
골다공증에 걸린 밭이다
여섯 자식을 사십에 과부되어 기르신
어머니,
거죽만 남아 덜거덕거리는 무릎
이젠 귀 멀고 눈도 침침해진 것
밭과 같은 골다공증에 걸리셨다
같은 병에 걸린 밭에
매번 심으시는 참깨 감자 고구마……
아무리 좋은 한약을 드셔도
기운 차리지 못하시는 어머니처럼
거름을 부어도 예전처럼 못 맺는다
그래도 어머니의 땀방울이 가여운지
씨를 뿌리면
손목 발목 삐거덕거리며 키우는 밭,
냉이 달래를 덤으로 근근이 내밀고
밭둑으로 쑥을 간들간들 키우는 것에
햇빛도 열심히 데우는 것이다
-밭 가운데 있는 늙은 밤나무도
쿨럭 거리며 우듬지를 세우고 있다.

 





무통 수술 / 강태승


내일 수술 날짜이니 식사하지 마세요
나무는 이슬을 툭툭 떨어트리며 말한다
그러나 수술은 바로 시작되고 있었다
세상의 꼬리 보이지 않는 숲길을 걸으니
휴대전화가 잽싸게 불통지역으로 눕는다
밀리고 밀리다 몸 푸는 파도처럼
허리띠를 풀고 산비알과 겹치자
나무가 아프지 않게 가지를 친다
정강이에선 톱질이 생생하다
도끼질도 하는지 두개골이 환하다
휴대전화도 좋은지 껌벅거리는 눈,

저승길 다녀 보라고 밧데리 빼준다
돌과 같은 자세 바로 익히는 휴대전화
나도 같은 데를 더듬어 식는다
구름이 높다는 생각에 흙이 묻는다
아니다 그렇다는 문맥에 이슬 맺힌다
어둠이 가장자리를 한 문장으로 윤색하자
그 한가운데로 뜨는 별
울컥 솟는 무모함의 뿌리에서 불不이 난다
나뭇가지마다 눈꽃처럼 쌓이는 재災
수술 끝났다고 바람이 목덜미 걷어찬다
나무들이 가 나 다 라……로 직립한다

휴대전화는 저승의 무게로 물러나 있고
가지마다 내일을 불어넣는 이내빛-

 





찔레꽃 / 강태승


도시로 쓸려간 아들 딸은 오지 않았다
바람이 딸처럼 드나들고
아들처럼 햇빛 달빛이 마루를 다녀갔다
찬 이슬 대야에 떨어지면
호박 잎새만 주춤거리다 검어졌다
부러지고 구부러진 길을 펴려
걷어차는 아버지의 술주정을
모서리 밖으로 피하다가 청상이 된 어머니,
장작으로 맞은 데가
육십부터 비 내리는 날이면
흙이 묻어난다 하였다
아버지 이장移葬하던 날
몽둥이로 봉분封墳을 두들기시곤
이십 년 동안 가지 않으셨는데,
칠십 고랑부터는
사립문 그림자가 저녁마다 가잔단다
팔순 잔치 끝나고 눈 펑펑 내리던 밤
문득 아버지에게 가고 싶다는
가느다란 그림자를 몰래 잡으니
마른 찔레꽃이 수수 떨어졌다
올해도 무덤가에 핀 찔레꽃
그것은 아버지의 묵은 손짓이라고
우기면서 옷고름에 매드리니
서릿발에 마른 콩잎보다 얇게 손사래 치는
어머니의 입가로,
문득 육필肉筆로 피는 찔레꽃-

 





부처를 위한 변주곡 / 강태승


어느 날 슬픔이 부처의 머리 가슴 입술 허파,
그리고 온몸의 모공毛孔을 물었네
핏속의 피와 눈 속의 눈 그리고 부처의 목숨을
물었네
그때 부처의 가지마다 살구꽃 피었네
개복숭아 아그사과 아그배도 덩달아 피었네
개울가 미나리도 변두리에 꽃을 매달았네
후박나무는 뒤뜰에서 얼떨결에 피었네
슬픔이 부처의 머리를 죄다 잡아 뜯자
그해 머루 다래는 가을의 결구에
제 목숨을 새가 먹기 좋게 물들였네
슬픔이 기울어진 머리를 싹싹 갉아먹자
부처는 그제야 푸른 잎 한 장을 무릎에 놓았네
강물이 제 몸을 가로질러 바다를 만난 것처럼
부처의 무릎이 나뭇잎으로 걸리기까지는
그가 그를 잊고 나뭇잎으로 펄럭일 때였네
보름달도 그때는 손가락에 여름을 적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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