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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우물 / 이태수 

 


나무 그림자 일렁이는 우물에 

작은 새가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간다 

희미한 낮달도 얼굴 비쳐보다 간다 

 

이제 아무도 두레박질을 하지 않는 우물을 

하늘이 언제나 내려다본다 

내가 들여다보면 

나무 그림자와 안 보이는 

새 그림자와 지워진 낮달이 나를 쳐다본다 

 

흐르는 구름에 내 얼굴이 포개진다 

옛날 두레박으로 길어 마시던 물맛이 

괸 물을 흔들어 깨우기도 한다

 

 

 

상화시인상 수상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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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로 새로운 세계 하나를 낳는다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지향과 추구로 더 나은 세계에 다다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 수상 소감 중에서

 

이 시집이 보여 준 시적 성취는 그동안 그가 언론인으로 있을 때는 도달하지 못한, 인간으로서 대상을 바라보는 깊이가 확연히 깊어지고 돌올해졌다는 점, 자연과 인간 성찰, 특히 내면 성찰이 새로운 경지를 이루면서, “이게 시다!” 하고 우리의 뇌리와 인식을 치는 서늘한 깊이에 도달해 있다는 점이다.

 

― 심사평 중에서

 

 

 

내가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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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수 시인<사진>이 제35회 상화시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사>이상화기념사업회(이사장 최규목)는 올해 상화시인상 수상자로 이 시인을, 수상작품으로 그의 시집 '내가 나에게'를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이 시인은 1947년 의성에서 태어나 197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그림자의 그늘' '우울한 비상의 꿈' '물속의 푸른 방' '꿈속의 사닥다리' 등이 있으며, 1976년부터 자유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2018년부터 2020년 2월까지 출간된 시집 가운데 각각 세 권의 시집을 추천했다.

 

그 결과 구석본, 권달웅, 김성춘, 박소란, 이경림, 이기철, 이문길, 이태수, 정병근, 장인수, 한영옥 등 11명의 시집이 최종 예비후보에 올랐고, 지난 4일 상화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해당 시집들에 대한 심사가 진행됐다.

 

최종 심사에서 이 시인의 '내가 나에게'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상금은 2천만원이다.

심사위원으로는 김종해 전 한국시인협회장, 윤석산 전 한국시인협회장, 김선학 문학평론가, 엄원태 대구카톨릭 대학교 교수, 손진은 문학평론가가 참여했다.


심사위원들은 "이태수의 '내가 나에게'는 내면을 드러내는 시어가 서정의 영역을 확보하면서 시적 노력과 주제의식이 서늘한 깊이를 끌고 나간다"고 평가했다.

이 시인은 "대구 시단의 선구자였던 이상화 선생의 문학과 생애를 기리면서 부끄럽지 않은 시의 길을 성실하게 걸어가고 싶다"며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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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囚人)번호 5705, 그녀는 애벌레를 키운다 / 유영금

 

 

그녀는 감옥 안에서 노래한다

노래하는 자유만 있을 뿐이다

노래는 자폐(自斃)를 살해하는 힘을 숨기고 있다

간수의 눈빛이 그녀를 옥죄일수록 흑()

노래가 애벌레처럼 쏟아져 나온다

다른 수인(囚人)들도 노래를 부르며 견딜 것이다

[견딤]보다 몸서리치게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아름다움의 끝에 닿으면 노래에게서 버려질 것이다

노래로부터 버려지고 싶은 그녀를 위해

누더기같은 수인(囚人)번호를 가위로 자른다

자르는 순간 다시 엉겨 붙는 속성을 지닌

더러운 번호, 징그럽게 알을 깐다, 오글거린다

그녀는 알았다, 감옥 안의 노래가 감옥 밖의

노래보다 살인적으로 자유롭다는 걸,

 

 

 

봄날 불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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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시인 김춘수씨(78)가 제1회 청마(靑馬)문학상을 받는다. 청마 유치진 시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상을 제정한 청마문학회(회장 문덕수)는 최근 신작 시집 의자와 계단을 펴낸 김씨를 20일 첫 수상자로 선정했다.

 

시상식은 214일 오후 2시 통영시민문화회관 개관식과 함께 열리며 창작지원금 1천만원이 주어진다.

 

김씨는 청마와 함께 1945년 통영문화협회를 결성하기도 했으며 1946년 등단한 이래 15권의 시집을 냈다

 

 

 

 

의자와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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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시인 김춘수씨가 새 시집을 내며 여전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올해로 78세인 김씨는 의자와 계단(문학세계사 펴냄)을 통해 새로워진 작품세계를 독자들에게 펼쳐보였다.

 

시집에 실린 작품은 <의자> <계단>을 비롯해 모두 50여편. 그는 이들 작품에서 '마음가는대로, 느끼는대로' 사물을 관조하며 그 모습을 정제된 언어로 노래했다.

 

김씨는 시적 실험과 자아 부정을 통해 '무의미시'라는 문학적 지평을 열었던 시인. 그는 언어파괴라는 극한작업으로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이번 시집은 이같은 그의 작품세계에 변화를 몰고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언어실험보다는 서정성 넘친 시적 미학으로 인간의 감성을 잔잔하게 자극하고 있다는 것.

 

대표작으로 꼽히는 <>은 유년 시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회상을 한편의 회화처럼 생생하게 재현해내고 있다.

 

<어머니가 어떤 동작을 하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어 서쪽 하늘을 바라봅니다. 나도 무심코 어머니의 시선을 따라 서쪽 하늘을 쳐다봅니다. 그쪽은 온통 놀로 물들어 있습니다 // 놀로 물든 하늘이 어머니의 볼에 적십니다. 어머니의 볼도 놀빛으로 볼그스름 물들어갑니다>(<>에서)

 

팔순을 바라보는 김씨는 치열한 삶과 편안한 안식을 동시에 갈구하고 있다. 시집의 제목을 <의자와 계단>이라고 붙인 것도 이것과 직접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는 책의 첫머리에서 "의자는 안식의 표상이다. 거기 가서 내 엉덩이를 놓아 한번 푸근해지고 싶다. 나는 지금 의자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안타까워 한다. "제아무리 올라간다 해도 계단에는 한계가 있다. 다시 내려와야 한다"는 말로 삶의 고단한 필연을 강조했다.

 

시집 뒷부분에 나오는 다섯편의 짧은 시에서는 그 특유의 익살과 기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제목이 없는 이들 시는 마치 동화같은 분위기를 안겨준다.

 

<달도 말고 별도 말고 / 해 지면 슬금슬금 / 뒷집 영감 불알이나 따러 가세>

 

<우루무치는 내 동생 / 누루무치도 내 동생 / 한 놈은 쩔룸발이 / 한 놈도 쩔룸발이 /왜 두 놈이 다 쩔룩거려야 하나 / 한 놈과 쩔룩거리면 안 될까>

 

김씨는 등단 무렵의 상황과 작품세계 형성과정 등을 들려주는 산문 <시인이 된다는 것> 등 두 편의 산문도 시집 끝에 덧붙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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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민복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힘

말랑말랑한 힘

 

 

 

[해설] 강화도 개펄에서 캐낸 말랑말랑한 힘 / 온전한 마음의 길을 펼쳐내는 개펄의 상상력

 

박용래 문학상과 제24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함민복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한국 서정시의 본류를 이어가는 대표적 시인으로 떠오르는 그가 강화도 생활을 시어에 담아냈다. 그곳에서는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바닷길, 거대한 수평선이 거만한 문명을 일순간에 지운다. 시인의 마음도 밀려오고 다시 밀려가는 바닷물의 흐름과 함께 깨끗이 비워지고 또다시 채워지기를 반복한 지 10, 그의 마음은 뻘밭처럼 부드럽고 말랑말랑해졌다.

 

시 또한 뻘밭에서 캐낸 듯 펄떡이는 시어들로 가득 차 있다. 시인은 개펄의 '몰골'이야말로 길의 원형이라고 말한다. 개펄은 강과 달리 사람들이 걸어가며 만들어낸 길과 물이 스스로 찾아간 길이 결합되어 이루어진다. 이처럼 생명이 자리잡고 있는 부드러운 수평선은, 위로만 가려고 하는 인류의 욕망과 대비되면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말랑말랑한 힘을 상기시켜준다.

 

또한 시인은 물길만 보지 않는다. 바다에서 눈을 돌려 하늘을 보면, 거기에는 살아 우는 글자를 찍으며 날아가는 기러기들도 있는 것이다. "요즘 내가 살고 있는 강화도에서 들을 만한 소리는 기러기 소리다. 하늘에서 나무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 나가보면 수십, 수백 마리 기러기가 하늘에 글자를 쓰며 날아간다. 살아 우는 글자. 장관이다.” 의지만으로 개척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의 길이라면 개펄의 물골과 새들이 나는 하늘길과 같은 자연의 길은 우리가 바라보고 걸어가야 할 삶의 길이라 할 수 있다.

 

 

 

말랑말랑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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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세계의 문학'이 주관하는 제24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으로 시인 함민복(43)의 시집 '말랑말랑한 힘'을 선정했다고 5일 밝혔다. 시상식은 28일 오후 5시 강남구 신사동 강남출판문화센터 5층 민음사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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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벼락을 맞았다 / 고영

 

 

'' 라는 말 속에는

진즉에 버렸어야 아름다웠을 추억도 살고

 

'' 라는 말 속에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약속

그래서 더욱 외로운 촛불도 살고

 

'' 라는 말 속에는

죽음도 두렵지 않은 불멸의 그리움도 살고

 

'' 라는 말 속에는

평생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을 안고 괴로워하는 상처도 살고

 

'' 라는 벼락을 맞은 뼈만 남은 그림자도 살고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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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네르바가 주최하는 제1회 질마재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장석주(56·사진), 질마재해오름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고영(44)이 선정됐다. 수상 시집은 각각 몽해항로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이다.

 

심사위원들은 장씨의 시집 몽해항로 깊은 사유가 녹아있으면서도 감각적인 면을 생동감 있게 살려냈다 자연사상을 통해 현대문명의 모순을 풀고자 한 점을 높게 샀다고 평했다.

 

고씨의 시집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에 대해서는 상투성 또는 시류성과 담을 쌓고 제 자신의 시를 썼다는 점에서 개성적이라고 평가했다.

 

질마재문학상은 10주기를 맞은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를 기리고자 올해 처음 제정된 상이다. 시상식은 29일 서울 대학로 함춘회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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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라치다 / 함민복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위, 나무, 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무 생명들

 

 

 

 

말랑말랑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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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4년 근무했다. 적성에 맞지 않아 퇴사 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고, 대학 2학년 때인 1988년에 ‘성선설’ 등을 계간 ‘세계의 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1990년 첫 시집 <우울氏의 一日>, 1993년 <자본주의의 약속>을 펴냈다. 이 시집들에서 의사소통이 막힌 현실, 물질과 욕망에 떠밀리는 개인의 소외 문제를 다룬 데 이어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999년)에서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상들을 따뜻하고 진솔한 언어로 끌어안는다. 이 경향은 <말랑말랑한 힘>(2005년)과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2013년)에 이어진다. 1998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05년 애지문학상·김수영문학상·박용래문학상, 2011년 윤동주문학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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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해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풀이 되어 엎드렸다

풀이 되니까

하늘은 하늘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햇살은 햇살대로

내 몸속으로 들어와 풀이 되었다

나는 어젯밤 또 풀을 낳았다

 

 

 

·2

 

 

풀이 몸을 풀고 있다

바람 속으로 자궁을 비워가는

저 하찮은 것의 뿌리털 끝에

지구라는 혹성이 달려 있다

사람들이 지상地上을 잠시 빌어 쓰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을

풀은 흙을 품고 있다

바람 속에서

풀이 몸을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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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개인 집단 간 화해 미학 서정적 묘사

 

수상자 김종해 시인은 40여 년의 시력(詩歷)을 지닌 시인이다. 그런 만큼 그의 시적 대응은 굴신자재(屈伸自在)의 도저한 경지와 폭을 지니고 있다.

 

특히 수상작으로 결정한 ·2’는 아직도 우리 시가 자유롭지 못한 개인집단의 수용 미학을 훌륭하게 성취한 완성도를 보이고 있어 그 가치의 한전범(典範)을 이룩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시의 마지막 행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는 어젯밤 또 풀을 낳았다.”·2’풀이 몸을 풀고 있다.”로 각각 끝나고 있다. 여기에는 내가 풀이되고 풀이 내가 되는 개인과 집단의 소통, 화해가 있다. 에고의 초탈과 극복이 있다. ‘을 종속 개념으로부터 풀어내고 있다. 개체가 전체가 되고 있으며, 전체가 개체가 되고 있음의 이 생산 형국에서 우리는 해방과 자유라는 놀라운 실체를 만날 수 있다. 이것은 단순 전위가 아니라 발견이며 놀라움이며 견자(見者)라는 시인으로서의 본성이다.

 

아울러 여기에 시인은 짧은시 형식을 통해 풀이의 늘어짐 그 이완을 막고 있고,또 다른 시편들을 통해서는 생명의 관능성과 우주적 황홀을 시로 구체화, 오늘의 우리 시들이 지적 통제에 경도한 나머지 잃고 있는 순수 서정의 감동의 공간을 제시하고 있다.

 

하늘을 들어가는 길을 몰라/하늘 바깥에서 노숙하는 텃새”(‘텃새’),“찰나 속에 스치는/황홀한 우주의 블랙홀을/오늘도 잡았다”(‘열쇠’),“이 별을 떠나기 전에/내가 할 일은 오직 사랑밖에 없다”(‘고별’) 등의 시구를 보라.

 

- 심사위원 정진규(현대시학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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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토막 / 이탄

 

 

여름날,헤엄을 치고 놀 때

즐거웠다,

물을 먹으며 공을 던지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대개 우리들은 노는 일에 몰두했다

 

어깨 위로 조금씩 어둠이 내려앉을 때

바위처럼 살리라

구름처럼 살리라

그러면서 산 속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 여름날 해변가는 그냥 있는데

또 다른 물결이

앞에 서서

길 떠날 준비를 한다

 

이제는

나무토막처럼 물 위에

떠 있을 것이다.

 

정말?

 

 

 

 

윤동주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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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심사위원들은 예년에 해왔던 관례에 따라 우선 각자가 후보 작품들을 추천하였고 이를 논의한 결과 이탄 시인의 나무 토막을 이의없이 제8회 공초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이탄 시인은 1964년 등단한 이래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온 우리 시단의 중진 시인이다. 그동안 시인은 휴우머니즘에 토대하여 삶의 애환을 중후하게 노래한 시들을 써왔고 많은 독자들과 비평가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음으로 여기서 그의 문학성을 재론하는 것은 사족이될 것이다.

 

이번 수상작 나무 토막역시 언뜻 일상사의 한 단면을 단순하게 스케치한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인생에 대한 깨우침이 전류의 섬광처럼 빛나는 작품이다.그리고 이 시에서 보듯 사소하고 평범한 소재를 통해 생의 깊이를 통찰할 수 있는 그의 시적 사유와 상상력이야말로 시인이 지닌 문학적비범성이라고 할 만하다.유년 시절,물장난을 치고 놀던 강변에 다시 돌아온노년의 화자는 이제 인생이란 흐르는 물에 떠가는 한갓 나무토막에 지나지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여기에는 인생을 달관한 자의 처연한 아름다움과삭막한 우수가 한 가지로 녹아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 심사위원 金奎東(원로시인) 李根培(재능대 문예창작과 교수) 宋秀權(순천대 문예창작과 교수) 吳世榮(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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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덩이 / 김여정

 

 

어머니의 눈물이 방울방울 호박잎에 맺혀 있는 돌담길에 열세 살 어머니의 휜 고무신 한 짝이 조각배로 떠 흐르고 있었더란다. 어머니는 열세 살에 어머니의 어머니를 여의고 어린 세 오랍동생들의 어머니가 되어 호박넝쿨에 주렁주렁 슬픔을 키우며 살았더란다. 호박넝쿨에 호박이 주렁주렁 영글 무렵 열일곱 처녀 어머니는 물 설고 낯설은 아버지의 바다로 시집을 왔더란다. 밤낮으로 어린 세 오랍동생을 못 잊어 어린 명도무당의 휘파람 소리를 따라 어느 달 밝은 밤 몰래 보따리를 쌌더란다. 하지만 어린 새색시가 십 리도 못가서 아버지의 썰물에 쓸려 다시 아버지의 바다 가운데로 되돌아오고 말았더란다. 그 후로 어머니는 울타리 밑에 호박씨를 묻으며 피눈물 한 됫박씨도 같이 묻었더란다. 해마다 어머니가 심은 호박넝쿨에는 붉은 호박덩이가 사월초파일날 연등처럼 빛났더란다. 어머니의 세 오랍동생들은 어머니의 눈물이 별이 되어 빛나는 하늘을 미루나무 가지 사이로 바라보며 미루나무처럼 잘도 자라주었더란다. 어머니의 눈물의 전설에 따라 걷는 돌림길에 열세 살 어머니의 흰 고무신 한 짝이 하늘에 반달로 떠 있었다.

 

 

 

김여정 시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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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사가 주최하는 제4회 공초문학상 시상식이 1일 상오 11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 서울신문사 손주환 사장은 시 호박덩이로 수상한 김여정 시인에게 상패와 상금 5백만 원을 수여했다.

 

시상식은 손 사장의 식사, 공초문학상 심사위원장 장호 시인의 심사 경과보고, 문덕수 문예진흥원장의 축사, 수상 소감, 홍신선 수원대 국문과 교수의 수상자 작품세계 소개순으로 진행됐다.

 

손 사장은 식사를 통해 김시인의 시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치열한 시정신이 수상의 동인이 되었으며 30년 경력과 시적 노력이 수상의 배경이 되었을 것이라면서 서울신문사는 공초문학상이 국내 문학상 중 최고 수준이 되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시인 구상· 이원섭씨, 서울신문사 이동화 상무이사 주필·반영환 논설고문 등 공초문학상 운영위원, 시인 홍윤숙·이근배씨, 문학평론가 김용직(서울대교수유종호(연세대교수)씨 등 심사위원을 비롯해서, 시인 한분순· 이탄· 이은방· 한영옥· 추은희· 허영자· 이일향· 강계순· 이섬· 이나명씨, 소설가 홍성유· 김지연씨, 수필가 박현숙씨, 영화평론가 김종원씨, 문인협회 부이사장 성춘복· 함동선씨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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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없음

 

 

 

 

 

2009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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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흔히 한두 편 눈에 번쩍 띄는 작품이 있게 마련인데 이번에는 그렇지를 못했다. 발상이나 기법이 모두 비슷비슷하고 세상이나 사물을 보는 눈에도 깊이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것은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데 따른 것이고, 다시 그것은 시를 제대로 읽지 않은 데 연유하는 것이리라.

 

실제로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당장 화제가 되는 시만을 몰입해서 읽는 경우를 허다하게 본다. 그래서 한두 편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기도 하지만, 손끝으로 만든 시가 깊이가 있고 생명을 가지기가 쉽지 않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는 당장의 효과를 우선시하는 시창작 강의의 영향도 한몫을 한다. 하지만 좋은 시가 어찌 말이나 논리로 설명이 되겠는가. 좋은 시를 많이 읽어 몸에 익히는 수밖에 없을 터로, 동시대 또는 당대의 시만을 읽는 공부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적어도 우리 시에서 고전이 되어 있는 것이라면 모두 폭넓게 공부하여 스스로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 알게 되는 것만이 좋은 시를 쓰는 가장 빠른 길이다.

 

잘 안 읽히고 시원한 맛이 없는 것도 투고된 작품들을 관류하는 특성이었다. 내용이나 기법이 참신하지 못하고 진부한 것이 많았다. 가령 의도적으로 산문 형태를 취한다든가 행을 부자연스럽게 자른다든가 쉼표를 쓰지 않는다든가 등의 방법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여러 번 써먹은 기법으로 전혀 새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여러 투고자들은 잊고 있는 것 같았다. 이에 비하면 자연스러운 리듬을 갖는 시가 훨씬 새로울 수 있는데도 말이다.

 

너무 원론적인 얘기일 수도 있겠으나 억지로 시를 만들려고만 하지 말고 시를 쓸 수 있는 바탕을 가지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시를 공부하는 중요한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 것은 이래서이다. 두보가 그렇게 좋은 시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불우하고 진실한 생애를 살았으며, 그의 가슴에는 항상 세상의 부조리와 불공정에 대한 정직하고도 성실한 분노와 비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예를 든다면 너무 거창한 예가 될는지 모르겠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졸가리를 알 수 없는 장황한 시도 많았다. 내용은 없으면서도 터무니없이 긴 시들도 시를 읽는 즐거움을 반감시켰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유정, 이명, 김희정의 시는 읽을 만했다.

 

이유정의 철제계단은 상징성도 있고 비유도 자못 재미있는 대목이 없지 않았다. ‘상쾌한 아침을 위하여는 문자 그대로 상쾌하고 속도감 있게 읽히는 미덕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평이했다. 신인으로서는 무언가 새로움이나 패기에 있어 부족한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이명의 눈보라 치는 새벽앨리스가 없는 이상한 나라는 이유정과는 반대로 장엄한 맛이 있고 가락에도 힘이 넘쳤다. 하지만 치기가 보이는 것이 흠이었는데, 그의 다른 시 현대 우편제도의 천문학적 기원이 결정적으로 그 흠을 확대시켜주었다.

 

김희정의 홈쇼핑 치타는 재주가 번득이는 시로 크게 호감이 갔다. ‘숙성되는 방은 위 작품을 쓴 같은 작자의 것으로는 너무 발상의 격차가 심해 역효과를 가져왔다.

 

억지로라면 앞의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당선자로 뽑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심사자들은 숙고한 끝에 당선자를 내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더 좋은 시인으로 태어날 동기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 심사위원 유종호, 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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