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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는 알고 있다
김영남
신춘문예에 당선돼 시인이 되면 나는 그때
호미, 삽을 대학 팔차 학기 끝날 무렵 다시 든 부모님께 제일 먼저
고추처럼 매운 시 한 수를 바치리라 다짐했다.
일류회사 중역 꿈꾸며 교문을 빠져나가는 대학 동창들.
그리운 모습들 모두 곁을 떠났을 때도 나는
삐걱이는 강의실 책상에 버려진 볼펜처럼 홀로 남아
원고지 구멍을 메우고 빈혈의 사연을 고향에 부치면서
남도의 제일가는 서정시인으로 떠오르리라 다짐했다.
지난가을 전지(剪枝)한 덩굴장미가 새로 자취방까지 기웃거리고
언제쯤 졸업사진 찍어낼 수 있겠느냐는 부모님 기별이
철 지난 나뭇잎처럼 날아들 땐
느렛골 파밭에서 언 땅을 파고 계신 어머님의 구부정한 허리가 보였고,
대밭에서 후박나무 밑동을 쓰러뜨리는 아버님의 다리
삐걱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종일토록 휴지통 가득 버려진 니코틴 그을린 시간들.
그해 겨울 마지막 잎새처럼 남은 생활비마저 하루 두 끼로
줄어들었을 땐
나는 세상의, 문학의 버린 자식으로 흑석동에서 싸늘하게
살아남아
시인이 될 수 없는 시인들 신분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글이 될 수 없는 글의 심사위원들까지 부정했다.
매번 패배의 변(辯)과 야멸찬 다짐으로 가득 찬 대학노트,
목울대까지 차오르는 쓰라림을 삼키면서도 나는
고추처럼 매운 시 한 수를 바치리라 다짐했다.
출처 : 김태원의 늘 푸른 세상
글쓴이 : 김 태 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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