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의 말 / 이인평
네 손으로 내 몸을 한 웅큼
집는 순간
창백한 내 피부에서
해풍에 말려진 쓰린 결정체의
짠 빛을 볼 것이다
삶은 매섭게 짠 것이라고
저물게 깨닫는 단 한번의 경험으로
바다에 닿는 긴 아픔을
깨물게 되리라
너는 원래 소금이었다
내 짠 숨결이
흙으로 빚은 네 몸을 일으킬 때
네 눈엔 눈물이 흘렀고
그 눈물의 짠맛이
네 유혹의 단맛을 다스렸다
보라, 파도의 씨눈들이 밟히는
네 영혼의 길에서
하얀 내 유골의 잔해가 빛난다
나를 쥐었다 놓는 그 시간에
한 주먹 내 몸이 흩어지면서
피안으로 녹아 흐르는
절여진 네 목숨의
긴 호흡을 만나리라
[당선소감] 썼다가 지우고 또 썼다가 지운 시어들은 그 시간들을 이끌고 어디로 사라졌을까
시는 은총이었고, 그것은 은총에 의해서 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시에 의해서 삶의 정서들이 동반자적인 나눔의 의미를 획득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아픔과 상처들이 있었고, 그 고통의 사이사이에는 시적 견인을 필요로 하는 공감대가, 시로써 표현되어야만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시를 쓰다 보면 아픔들이 먼저 가슴에 와닿고 그것들을 껴안고 시가 되었다. 은총과 고통이 한집에서 살았다.
내 생애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몰랐던 열대여섯 나이에 고향 뒷동산에 올라가 소나무에 등을 기대고 하늘을 보면 너무도 맑은 별빛들이 밤마다 쏟아져 내리는 모습, 신기하게 느꼈던 그것이 시심의 출발 같았었는데, 어느덧 세월이 흐르면서 만난 시의 세계는 끊임없는 자신과의 갈등을 병립해야 하는 고난의 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고난은 세월이 흐를수록 깊이 정든 사랑의 단막들로 엮이기도 했다.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워 보낸 시어들은 그 시간들을 이끌고 어디로 날아갔을까.
겨울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현장에서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과 함께 고마운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평화신문에 감사드린다. 이 기쁨을 어머니께 드리고, 늘 기도해 주신 마누엘 신부님과 요한 신부님, 그리고 도움 주신 전종덕 미카엘 형제님께도 감사드리고, 항상 가까이에서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시형(詩兄), 시우(詩友)들과 묵묵히 인내해 준 아내와 귀여운 아니따, 아녜스, 안드레아에게도 기쁨을 함께 나누고, 형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동생 철로와 형제들, 그리고 투병 중인 작은 예수회 구의동 자매들과 그 밖의 장애인들, 또 성 빈센트 드뽈 자비의 수녀회 수녀님들과 감사와 기쁨을 함께하고, 새천년을 맞이하는 모든 분들께도 건강과 평화가 함께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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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단정히 다듬어진 형식에 뜻의 밀도 담뿍
2000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문화계의 각 분야가 다소 들떠있는 분위기지만, 평화문학상 시 부문에 응모한 작품들을 보면 예년과 다름없는 차분한 내용의 시가 많았다. 응모한 총 609편의 시에서 뽑힌 시가 10편쯤 남게 되고, 거기에서 또 네 편의 시가 가려졌다.
여기에 든 이름은 이인평, 장재룡, 이명자(몬타냐), 최병희 씨였다. 여기에서 또 이인평 씨의 ‘소금의 말’과 장재룡 씨의 ‘사이버 아가(雅歌)’가 끝까지 남게 되었다. 이 단계에서 어려움 없이 ‘소금의 말’을 당선작으로 정하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되었다.
이인평씨의 ‘소금의 말’은 참으로 단정하게 가다듬어진 형식에 뜻의 밀도를 담뿍 담고 있는 아름다운 시라 하겠다. 부분적으로 더러 비슷한 뜻의 어휘가 겹친다거나, 문맥의 가닥이 좀 흐려져 있는 점이 눈에 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전체에 흐르고 있는 상념의 깊이와, 단단한 심상의 결정도와 상징적인 여운 등으로 해서 읽는 이에게 깊은 감명을 주기에 넉넉하다. 이만한 수준에 이르기까지의 이인평씨의 시를 위한 수련의 폭을 짐작할 만하다.
시는 어느 민족의 경우를 막론하고 인류가 오랜 세월을 두고 가꾸어 온 문화 내용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한 형식이라 할 수가 있으며, 나름대로의 정신과 기법을 가지고 있다. 일단은 이러한 기법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인평씨가 이러한 점에서도 충분한 자각과 반성을 하고 있다는 점을 시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독자 여러분이 이 시의 3연과 5연이 갖는 상징적인 여운을 음미해 주셨으면 한다.
이번에 선에 들지 못한 여러분들도 계속 시를 위해서 정진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고 싶다.
- 심사위원 성찬경, 김후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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