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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압 / 이병승


한여름 땡볕에 달궈진 옥상 바닥
시원한 물을 뿌려주려고
잠가 둔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거침없이 몸을 흔드는 고무호스
긴 잠에서 깨어난 뱀처럼

시뻘건 각혈과 마른기침이 노래로 변하고
늘어졌던 마음의 통로에 생수의 강이 콸콸 흐른다
사방에 뿌려대는 열정의 땀방울들
더 이상 짓눌린 눈물이 아니다
무지개를 띄워라 거침없이 신나는 춤사위

꼼짝 말라고 두 발로 밟아보지만
그럴수록 더욱 딴딴해지는 오기의 몸짓
그 정도 힘으론 날 못 누르지
흐물흐물 늘어진 생은 끝났다는 저 팽창의 힘
자기를 채워 흘러넘치는 나눔의 통로

채워라, 터질 듯이 채워라
내압이 강하면 강할수록 외려 솟구쳐
신명나게 춤추는 고무호스
건너 집 옥상 화단, 벽에 매달린 넝쿨까지 살리고
스스로 뜨거워 목마른 해도 적신다.

 

 

 

까닭 없이도 끄떡없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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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생의 에너지를 채우는 노래 

성탄절 날 하루 종일 글을 썼다. 눈도 오지 않았고, 전화도 오지 않았다. 간절히 바라는 것들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하던 대로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호흡처럼. 그리고 지쳐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밤 11시30분. 그 사이에 모르는 번호가 찍혀 있었다. 찾아보니 경남신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당선통보 전화를 받을 때까지 밤을 꼬박 샜다.

여기, 하나의 문이 살짝 열렸다.

끝없이 펼쳐진 이 경이로운 길 앞에서 나는 나에게 묻는다. 너에게 글쓰기는 뭐니? 나는 거창하게 대답한다. 신이 새겨 놓은 암호를 푸는 작업이지. 인간 마음의 숨은 지도를 읽는 일이지. 그 아픔의 갈래를 위로하는 따스한 속삭임이지. 해독불가의 세상을 살아갈 힘이지. 그리고 또, 시는 생의 에너지를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노래….

가다가 멈추더라도 간만큼은 내 길이다. 나는 뭍으로 나온 고래. 진정한 자유란 어떤 장벽이 앞을 가로막을지 알 수 없는 곳에서조차 그 호기심만으로도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 자유의지로 나는 나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래, 갈 수 있을 만큼 가보라고 어깨를 툭툭 쳐준 경남신문사와 두 분 심사위원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시의 스승이신 오철수 선생님과 아모르파티 문우님들, 고맙습니다. 어머니, 인생과 예술을 가르쳐 주신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께도 기쁜 소식을 전한다.





[심사평]  표현 구성 완성도 높아 

본선에는 총 6명의 작품이 올라왔다. 모두 당선작으로 뽑아도 무난한 것들로 예년에 비해 열정과 패기가 돋보여 우리 심사위원들은 안심하였다. 작품 명은 ‘내압’, ‘흰 자전거’, ‘나무 배꼽’, ‘솟대’, ‘내밀한 풍경’, ‘포도넝쿨이 덮은 집’ 등이다. 당선작 선정 기준은 당대적 삶에 대한 인식과 시를 통한 가치 실현의 의지, 그리고 이를 얼마만큼 형상적으로 완성해 내는가의 문학적 완성도에 두었다. 

먼저 ‘포도넝쿨이 덮은 집’은 우선 감성이 풍부하고 동시대인의 심리적 고뇌를 상징적으로 잘 형상화하고 있는 점이 주목되었으나, 생의 고뇌와 포도넝쿨이 덮은 집의 연관성이 부족하고, 일정 부분 상상력에서의 비약 부분이 어색한 구조로 짜여져 있음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내밀한 풍경’은 어머니를 시적 제재로 하여 실존적 생의 의미를 형상적으로 탐색한 것이 돋보인 작품이었으나, 너무 수사적 표현에 치중한 점과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일부 설명적 진술이 눈에 거슬린 대목으로 평가되었다. ‘솟대’는 상상력의 자유로움과 시적 형상성이 뛰어난 점이 높이 평가되었으나, 너무 표현의 수사에 치우쳐 의미 형성이 모호하고 당대적 삶의 인식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나무 배꼽’은 복숭아 나무와 할머니의 추억이 연관돼 아주 아름다운 서정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시적 풍부성과 완성도를 갖추었다고 평가되었으나, 그 시적 내용의 전개가 너무 개인적인 차원으로 흐른 점, 표현의 묘미를 살리기 위한 수사가 오히려 시적 의미 형성을 방해한 점이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었다. 

남은 ‘흰 자전거’와 ‘내압’이 최종 두 작품으로 남아 심사위원들의 결정을 어렵게 했다. 두 작품 모두 만만치 않은 시적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당대적 삶에 대한 인식과 시를 통한 생의 의미를 밝히려는 의지가 역력히 보였기 때문이다. 상당한 논의 끝에 우리는 ‘내압’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흰 자전거’가 감성적이고 상상력도 풍부하고 현실적 삶의 고난도 잘 반영하고 있지만 시적 전개에서 아직까지 형상적 포착보다 설명적 어조가 눈에 띄는 것이 흠결로 작용했다. 이에 비해 ‘내압’은 우선 생의 의미와 사물의 본질에 대한 탐색이 상당한 깊이를 가지고 있고, 이것이 또 당시대적 삶의 의미로 환기되도록 하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시적 표현과 구성 면에서 상당한 수련을 느끼게 하는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는 점이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게 하였다. 당선을 축하한다. 더욱 정진하여 훌륭한 시인이 되길 기대한다.

 

- 심사위원 : 신달자·김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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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나무 / 김일호

 

 

대추가 댕강거린다

부르터 울기 전에 내려놓으라는 말씀

사다리에 올라 볼이 탱탱한 편종에다

탐스런 눈을 맞춘다

햇살 살점에다 손을 대자

여름 내내 소리를 키운 종루가 먼저 부르르 떤다

뙤약볕과 별들이 촘촘히 박아 넣은

경전을 하나씩 받아 적으며

휘어진 하늘, 초록 귀때기 한 가지를 잡아 당겨

아직 새파란 소리 한 번

울려 보려는데

종일 텅 빈 가을을 들고 있던 바지랑대

들고 나오신, 가는 귀 먹은 어머니

너 그래 갖고 무슨 소린들 들리겠냐는 듯

꼬부라진 허리 곧추 세워 타종을 한다

한꺼번에 쏟아져 골목 흥건한

어머니 귀 뚫고 나온 저 소리

소쿠리 가득 담겨 들어간 대추

처마 끝 물구나무 서서

풍경 소리 댕강댕강

한 철을 날아간다

 

 

 

 

구름을 배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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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부지러한 날갯짓으로 보답

 

새의 꼬리가 까맣게 점이 될 때까지 바라봤다. 바람이 데리고 가는 낙엽의 신발 끄는 소리에 귀를 세우고 잠 못 드는 밤이 오랜 습관이 되었다.

 

그랬다. 무엇이랄 것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생각에 골몰했던 나에게 답을 건네준 것은 쉰이 넘어서였다.

 

새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바람이 감나무 잎에 무엇을 쓰고 가는지 누군가 가르쳐 주었고 서투르게 받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새가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미칠 때쯤 새와 한 몸이 되지 못해 괴로워하는 내 미흡한 시에 낙점을 찍어주신 심사위원님께 엎드려 감사드린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시로 보답하라는 말씀으로 새기고 부지런히 날갯짓을 하겠다는 다짐을 드린다. 까막눈이었던 내게 시라는 영혼의 씨앗을 심어주신 이근식 선생님, 내가 나아가야 할 시의 지평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손목 잡고 이끌어 주시는 경주대학교 손진은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항상 곁에서 격려하며 함께 공부하고 있는 아내 김광희 시인과 시가 뭔지는 모르지만 노환에 힘드신 부모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어 우선 좋다. 또 자기 일인 듯 기뻐해주며 함께 시밭을 일궈온 문우들 모두와 기쁨을 같이하고 싶다.

 

 

 

 

[심사평] 청각적 은유 산뜻

 

우리나라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등단 제도인 신춘문예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숱한 문학 지망생들의 땀과 열정이 배어 있는 소중한 원고를 정성을 들여가면서 하나씩 검토했다.

 

최종심에 올려진 작품은 모두 다섯 편이었다. ‘순장 소년’과 ‘하포· 1’은 우선 독특한 글감이어서 눈길이 갔다. 호흡이나 짜임새, 또한 조사법(措辭法)에 있어서도 안정감과 신뢰를 담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의 흐름이 느리고, 표현의 긴장감은 부족하고, 사유의 내적 깊이도 적어 보였다. ‘입관’은 삶과 죽음의 화해로운 인간미를 다사롭게 제시하고 있지만 귀하지 아니한 시적 정조 속에 매몰되어 있는 감이 있다. 기저가 되는 듯한 정서의 세계인 ‘그리움’이란 시어가 세 차례 되풀이되고 있는 것도 그것을 도리어 희석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물 위의 지은 집’과 ‘대추나무’가 남았다. ‘물 위의 지은 집’은 작자의 역량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호흡의 길고 짧음을 서로 어울리게 잘 다루고 있다. 뭔가 새로움을 환기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행간에 감추어진 감수성도 있다. 그러나 모호하거나 진부한 어휘 선택, 눈을 거슬리게 하는 외래어들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더욱이 마지막 행이 결정적인 결함이라는 데 심사위원 모두가 동의했다.

 

‘대추나무’는 수작의 절대 조건에 적합하다기보다 결함이 비교적 적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몇몇의 사소한 결함을 수정한다면 신춘문예 당선시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다. 시의 공력(功力)을 짐작케 하는 긴축적인 느낌도 당선작으로 미는 데 일조했다. 대추를 편종으로 은유한 것은 작위적인 것의 소산인 동시에, 사물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제시한 청각적인 은유의 가능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이 당선작이 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귀결이다. 당선자의 정진과 건필을 빌면서, 더 혹독한 자기 수련이 있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 이광석(시인)·박태일(시인·경남대 교수)·송희복(평론가·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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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밖에는 봄 / 유행두 

 

 

지구 끝에서 아내가 붕어빵을 굽고 있다. 파닥거리는 지느러미에서 비늘이 떨어진다. 지구를 한참이나 돌다 온 듯한. 퇴계 선생 지폐 위에 가볍게 흩어진다. 산달 아내. 배가 부푼다.

중환자실. 어머니는 링거병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한 알씩 세고 계신다. 끼니 때마다 
가는 호스 타고 내려가는 미음. 포르말린 먼지 반짝. 휠체어 힐끔 훔쳐보신다.

-저녁마다 어둠이 먼저 눕던 달셋방. 도란도란 웃음을 젓가락질하던 밥상에서 
어머니와 아내가 번갈아 등을 토닥거리고

몇 개월 전 신문처럼 할 일 잃고 누운 내 옆에서 아내는 낮은 기도 소리를 쥐어준다. 
가끔씩 지구는 벌떡벌떡 몸을 세워 링거병을 흔들고 아내를 병실 바닥까지 내려 앉히지만 아내는 언제나 가지런히 웃는다.

모둠발을 해 본다. 날개가 돋은 휠체어. 
휠체어가 대기권을 향해 바퀴를 힘차게 굴린다. 지구가 뒤로 밀리고 있다.

 

 

 

 

태양의 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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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못잊을 삶의 소리들

 

파란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의 마을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검은 눈동자 때문에 어릴 적부터 많은 놀림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마을 사람들처럼. 자기도 파란 눈동자를 가지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하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청년이 될 때까지도 그의 눈동자 색깔은 파란 눈동자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청년이 된 그가 해외에 선교사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 때서야 청년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왜 자기에게 검은 눈동자를 주셨는지를. 그가 선교사로 간 지역 사람들의 눈동자가 모두 검은 눈동자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 길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지만. 이 가까운 곳에 먼 길을 둘러 돌아 왔습니다. 둘러오면서 들었던 삶의 많은 소리들. 좁은 길모퉁이에서 보았던 모난 돌들.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에 밟혀 쓰러졌어도 생명을 잃지 않고 숨 쉬고 있던 풀들. 잊지 않겠습니다.

 

잘못하고 살았던 일이 많습니다. 生死의 경계를 넘나드는 어머님을 간호하느라 고생하시는 형님께 자주 찾아뵙지 못한 핑계거리가 생겼습니다. 나를 비켜가지 않는 가난한 밥상의 밥을 맛있게 먹어준 가족들 고맙습니다. 좋은 시를 건지기 위해 밤새도록 새벽을 낚아 올리던 시산맥 영남지회 분들.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난시 동인들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묵묵하게 믿어주신 이병관 선생님 고맙습니다. 경남대학교 박태일 교수님 존경합니다. 천장에서 앵앵거리는 파리에게 푸념이나 하고 있을 저에게 손을 잡아 일으켜주신 심사위원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참 게으른 한 해를 보냈습니다. 내년에는 올해처럼 살지 않겠습니다.

 

 

 

 

[심사평] 이미지 이끄는 힘 탁월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지동설’ ‘서풍 불던 날’ ‘라디오 여왕’ ‘접시 시계를 타고 있는 소설가 P씨’ ‘석포역에서’ 그리고 ‘문 밖에는 봄’이었다.

 

그중 ‘지동설’은 도시를 사막으로 보는 구상이 낯익은 것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잃었고. ‘석포역에서’는 안정된 화술에도 불구하고 감추고 있는 뜻이 약하다는 점이 드러나 있고. ‘라디오 여왕’은 포즈를 취하는 화자의 입장이 깊이를 드러내지 못했고. ‘서풍 불던 날’은 서술적인 리듬에서 얻어질 수 있는 어떤 원형적인 이미지가 살아나지 못 했다.

 

그렇게 제외하고 ‘문 밖에는 봄’이 남게 되었다.


이 시는 이미지가 투명하고 할 말이 뚜렸하고 구조가 대단하다. 
아내가 빵을 굽고. 어머니는 중환자실에 누워있고. ‘나’는 실직해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화목한 가정으로 거듭나 있다.


테마는 아주 상식적이지만 이야기와 이미지를 끌고가는 솜씨가 섬세하면서 탄력이 있다. 끝 연에서 ‘날개가 돋은 휠체어’에 화자의 의도가 집약되어 있다.
심사위원 두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문 밖에는 봄’을 당선작으로 하는 데 합의했다. 당선자는 이 밖에도 그의 능력이 일회성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대성을 바란다.

 

- 심사위원 : 이광석. 강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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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월의 교차로 / 한인숙


상여를 보낸다
초겨울. 언 슬픔이 기억의 행렬을 짓고 있다
한 세월 이정표도 없는 길
소리꾼의 요령소리가 산역으로 향하는 몇 구비 능선을 넘어서고
흑백의 한 생이 울음에 섞인다
상여꾼의 후렴소리를 더듬던 누군가
알 수 없는 기억에 찔린 듯 추위 한 자락을 움켜쥐고
한동안은 눈물도 상처도 없는 길이
북망의 깊이를 더듬적거린다

슬픔의 실마리가 풀리고 있다
노잣돈을 뒤척이는 햇빛도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도
교차로를 통과시키고서야 안식의 길로 접어들 것이고
인연들 또한 죽음을 통과하고서야 눈물의 깊이를 알 것이다

졸고 있던 새 한마리
꽃상여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지 움찔. 날아오른다

 

 

 

 

자작나무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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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행간 속속 파고든 그리움

 

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다. 함박눈 속을 한참이고 걸었다. 나를 끌고 가는 상념을 따라. 구름의 방향을 따라 내 안 웃자란 풍경들을 잘라냈다.

 

방금 놓친 생각들 저쪽에서 새 한 마리 낮게 날아올랐다. 시아버님의 상여를 따라나서는 길. 예고 없던 마지막 축제가 진행되었고 한 삶이 죽음에 이르고서야 가벼워지는 길임을….

 

아버님의 마지막 길을 시로 풀어내면서 많은 가슴앓이를 했다. 내 안의 아픔들과 못내 삭여졌을 마음들이 시의 행간과 행간 속속들이 그리움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마음속에 집 하나를 마련해놓고 시로 채우려 한다. 현대시가 갖춰야 할 덕목들을 늘 일깨워주시는 박경원 선생님과 함께 시의 주춧돌을 세우고 대들보를 올리려 한다.

 

아직은 서툰 대패질과 못질이 문학의 꽃으로 피어나도록 갈고 다듬을 것이다. 주부문학이 아닌 현대문학의 수사들을 움켜쥐고 지붕도 헤이고 문패도 달면서 서두르지 않는 참 문학의 길을 가고 싶다.

 

이 길에 늘 내 편이 되어준 사랑하는 남편과 가족들 그리고 시원문학. 차령문학 동인들과 문학을 사랑하는 주변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박경원 선생님의 선비정신과 올곧은 문학인으로서의 모습을 존경합니다. 제게 집짓기의 터전을 마련해주신 경남신문과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콩나물은 헤비메탈을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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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죽음 통해 생의 의미 관조

오늘날의 사회는 삶의 효용성을 측량하는 잣대에 의해 시가 거의 강박적으로 배제되고 있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제목의 표현이라면.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나 할까? 이 같은 사회에서 그래도 아직 시인지망생이 많다는 행복한 아이러니는 한 해의 첫날 지상(紙上)에 장식되는 신춘 등용문을 통해 실로 신선하게 확인되는 것이다. 우리 심사위원은 낱낱의 애착과 열정이 그대로 배어 있는 수많은 작품을 읽은 후 압축된 십수 편의 시를 최종 결선에 올렸다.

‘홍시’. ‘어머니. 사과를 드릴게요’ 등의 시를 보낸 분의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생활 감정의 심연에 숨어있는 미시 담론의 소중한 경험들을 제재로 유연한 흐름의 시상(詩想)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뚜렷한 장점이었다. 그러나 작품 수준이 전반적으로 고르면서도 돌출성이 없어 아쉬웠다. ‘망치 소리를 기다리며’는 수작의 조건을 갖추었으면서도 다소간 마무리가 덜 된 듯한. 완성도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어 당선작으로 강하게 밀 수가 없었다. ‘버스정류장’ 등의 시를 보낸 분의 작품 기법은 영상 이미지를 실험적으로 재현하는 것이어서 참신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지복(至福)을 기약하기에는 시기상조인 듯하다. 그밖에도 ‘내(內)동 629번지’와 ‘손가락이 그리운 사람들’ 등이 당선작으로 논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십이월의 교차로’는 죽음의 세계가 비추어낸 일상의 단면을 객관적인 거리에서 담담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작품이다. “인연들 또한 죽음을 통과시키고서야 눈물의 깊이를 알 것이다.” 이 잠언적인 표현에서 보듯이. 흑과 백. 기억과 망각. 이승과 저승. 끝내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경계에서 생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그 눈길은 관조의 시선이기도 하다.

시는 대중적으로 읽힐 수 있으면서 내용이 분명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 언어의 감각만으로 좋은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만의 은밀한 세계에 칩거하기보다는. 시란. 공명과 반향이 아니어선 안된다. 이러저러한 맥락에서 ‘십이월의 교차로’를 주저없이 선(選)하는 데. 우리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당선자의 건필과 문운을 기원한다.

 

- 심사위원 : 엄국현, 송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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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가 있는 오후 / 남화정

 

 

아이들을 하교시킨 학교 혼자 풍향계를 돌린다 빨갛고 하얀 네 개의 숟가락이 바람을 퍼먹으며 잘도 돈다 먹성으로 치면야 담장 너머 까치들만 하리 감홍시 진즉 다 털어먹고서 양푼만한 알전구에 들러붙어 퍼벅 입이 터지는 뜨거운 밥숟가락질의 새들, 너흰 알는지 多産의 복 하나는 타고났던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굴뚝 아득히 탯줄 묻어 지킨 고향 재 되어 풀풀 흩날릴 위기를

 

이곳은 채소 하나, 나무 한 그루 맘대로 캘 수 없는 택지개발시범지구, 초겨울 볕을 등마다 지고 아, 모포처럼 비닐을 펴 유골을 줍던 사내들 어떻게 되었을까 풍향계 너머 기와집들 감나무들, 아직은 파헤쳐지지 않는 들녘과 학교만이 유적이 되어 떠도는, 해체된 숲속에서 붉게 살갗이 패인 산들이 피를 쏟고 있다 잘가라 새여 나무여 낼 아침도 재재거리며 교문 들어설 삼천 아우들 위해 풍향계, 바람 한 하늘 남겨두는 것 잊지 않는다

 

 

 

 

[당선소감] 눈감는 순간까지 시 경작

 

당선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쁨을 올려드렸다. 한낱 옹동그라지고 가시투성이 사막의 싯딤나무가 법궤가 되었듯, 그분은 파산된 내 영혼만 보수시키시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내가 되어 사는 시들을 빗고 깎고 계셨기에.

 

()라는 병을 앓은지 십수 년. 정말 육신에도 고치지 못할 병 하나 와서 생을 넘어뜨렸지만 절망할 수 없었다. 시가 있었기에 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병마저 고마웠던 지난가을이었다. 할머니가, 고모가, 몸 같던 벗이 한 계절 건너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갔지만 울 수 없었다. 뱃속 아득히서 끄덕끄덕 몸 뒤채는 유리뱀, 산이고 강이고 유리뱀 따라 다만 걷고 있으면 되었다.

 

사람을 넘어 돌밭, 나무, , 벌레, 까마귀, , 구름...

 

시가 된 내 모든 벗들아, 고맙단다. 내 슬픔의 근원인 아버지, 당신이 흙을 놓지 않듯 눈 감는 순간까지 저도 제 시들을 경작하고 있겠습니다. 이른 아침 전봇대만큼 키가 큰 짐보퉁이를 이고 시장으로 향하는 어머니, 당신이 바로 시()입니다. 시와 삶의 경계에서 허덕일 때, 뜨거운 채찍 아끼지 않으셨던 여러 선생님, 문우들 감사합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참아주고 견뎌준 남편과 딸, 피붙이들과 이 기쁨 함께 하며, 졸시 선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경남신문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맛깔스런 시어... 단단한 미덕 갖춰

 

공단세탁소·삼월, 튀밥 같은·제비꽃·늦은 점심·풍경·풍향계가 있는 오후, 모두 여섯 분의 여섯 편이 뽑는 이들 손에 마지막으로 남았다.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어도 될만했다. 시를 끌어올리는 눈길이나 다듬어낸 솜씨에서 남다른 노력의 흔적이 역력하다.

 

공단세탁소는 도시 근교의 세탁소 풍경을 빌려 고단한 삶을 위한 긴 헌사를 마련했다. 시를 끌어가는 집중력은 볼 만했으나, 발상법에서는 새로움이 덜했다. 게다가 시인의 의도가 너무 시의 앞쪽으로 드러나 버렸다.

 

덕지덕지 파리똥처럼/배설된 꿈이라는 첫머리부터 마무리까지 덕지덕지 올라붙어 있는 군더더기를 가지치기 할 수 있는 한 단계 높은 통어력이 아쉬웠다.

 

삼월, 튀밥 같은삼월의 속살이/소란스럽게 터지고있는 아파트 담장 풍경에 대한 시인의 따뜻한 눈길이 잘 살아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 발상의 즐거움을 오롯이 읽는이의 즐거움으로 되살려주는 집중된 힘이 모자랐다.

 

제비꽃도 아쉬움이 남기는 마찬가지다. 버려진 시골집 섬돌을 안고 핀 제비꽃에 대한 상상적 긴장이 시 뒤쪽으로 가면서 풀려버렸다. 마음은 기다림 짙은 잉크빛과 같이 서툰 시줄들 탓이다.

 

이들에 견주어 늦은 점심·풍경·풍향계가 있는 오후는 소품에 가까운 간결함을 미덕으로 지녔다. 군더더기가 적은 만큼 시에 손쉽게 다가서고 있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것 없이 그 나름의 진지한 집중력이 돋보였다. 풍경이 맨 먼저 당선권에서 밀려났다. 시줄을 더 가다듬어 거듭되고 있는 꾸밈말을 잘 펴 내렸더라면 아름다운 한 편의 수작을 얻을 뻔했다.

 

늦은 점심풍향계가 있는 오후를 두고 마지막으로 고심했다. 풍향계가 있는 오후에 견주어 늦은 점심이 더 젊고 참신한 쪽이다. 늦은 점심을 둘러앉아 먹는가난한 이웃에 대한 눈길이 집요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라는 두 낱말의 변주로 한 편의 시를 끌고 나간 솜씨는 쉬 얻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거적자리에 둘러앉은 늦은 점심은 둘러앉은 사람들을 마구 퍼먹는다라는 마지막 시줄의 언어 전도도 맛깔스럽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말의 재미를 넘어서는 통찰력이 모자랐다. 감동이 덜할 수밖에 없다.

 

풍향계가 있는 오후늦은 점심에 견주어 낡은 옷을 입고 있는 듯 싶다. 그러나 그 속은 보다 구체적이고 단단한 미덕을 갖추었다. 택지개발시범지구로 대표되는 삶에 대한 눈길이 섬세하다. 오랜 시력을 무리 없이 녹여냈다. 장차 좋은 시인이 될 재목임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는 작품인 셈이다. 따라서 풍향계가 있는 오후를 당선작으로 민다. 부디 겉멋에 빠지지 말고 삶에 대한 구체적인 감각을 힘껏 키워 나가기 바란다.

 

- 심사위원 : 박태일(시인·경남대 교수), 유재천(문학평론가·경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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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위의 탑 / 이영자

 


달동네 언덕바지 구멍가게에서 LG25시 편의점까지
떡볶기집 지나 맥도널드 빠리바케트 건너 뛰고 붕어빵집까지
딸아이는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중입니다

자, 지금
어디론가 내처 달리는 당신 호주머니 속의 짤랑거림
그것은 동전마다 아름아름 굴리고 온 바퀴들의 볼멘 혓바닥
바퀴 사이로 휘감겼던 눈빛들이
뜨겁게 조였다 헐거워지는 소리 잠겨 있지요

울퉁불퉁 바퀴가 되기 전
한 잎의 해였고 한 잎의 달이었고
해와 달이 구름에게 먹힌 날의 막 구워낸 한 입 빵이었던
동전의 길

빵을 사먹을까? 돼지저금통에 넣을까?
고민에 빠진 딸아이와 뜨거운 이마 맞대고
자, 이제 날아올라 볼까요

까마득히
어머니 먹지 않고 입지 않고 쌓아올린 동전 위의 탑까지
팔랑팔랑

날아올라 가만히 손바닥 펴면
매질처럼 따가운 햇살의 가지 위로 벙긋벙긋 피어오른
딸아이 얼굴 한 잎 붕어빵 한 입

눈앞이 아찔합니다
더 이상 굴러 떨어질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당선소감] 시를 쓰기 위해 나는 감자가 된다 

 

나는 식인종은 싫다 시를 쓰기 위해 나는, 감자를 먹을 때는 감자가 되고 고구마 먹을 때는 당연히 고구마가 된다. 닭고기 먹을 때는 닭이 되어 닭똥 같은 눈물 뚝뚝 흘리기도 하고, 소고 기 먹을 때는 소가 되어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개고기 먹을 때는 개처럼 컹컹 짖어보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직 사람이 아니다.내가 사람이 되려면 사람을 먹어본 적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기억이 없다. 전생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때문에 나는 사람 같은 시를 쓸 수 없으며 설령 쓴다고 하더라도 시라고 인정해 줄 사람이 없을 건 뻔하다. 결국 나는 시를 포기하거나 사람을 포기하거나 둘중 한가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그것보단 사람 하나쯤을 먹어보는게 쉽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젯밤이었다.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사실은 어젯밤부터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굴 희생양으로 삼아야 할지 지나간 사람들을 떠올려보았고, 전화번호 수첩을 앞에 놓고 고민에 빠지기도 했고, 어둔 거리로 나서 사방을 두리번 거려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경남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시가 아니라 사람에게 쫓겨 짐승이 보낸 작품인데도 읽어낼줄 아는 분들이 계셨나보다. 이건 무슨 소식인가? 내가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증거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도대체 누구인가. 내가 잡아먹은 사람은? 당신인가? 무지 아픈 나날들이었다. 





[심사평] 삶의 구체성 위에 생각의 깊이 갖춰 

 

마지막까지 뽑는이들 손에 남은 작품은 모두 다섯 사람이 내놓은 여섯 편이었다.「내 마음의 호수」, 「휴식 같은 풍경」, 「고친다」, 「하얀 바다」 그리고 「동전 위의 탑」과 「청동 물고기」가 그것이다. 선에 오른 작품은 어느 것 없이 남다른 훈련을 거친 것들이어서 제 나름의 됨됨이가 빛났다. 그러나 신인다운 패기가 모자란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눈에 확 뜨이는 작품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다.

「휴식 같은 풍경」, 「고친다」, 「하얀 바다」는 모두 교과서 같은 품격을 지닌 작품이다.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엷다. 특히 「하얀 바다」는 아버지가 겪었을 법한 종이 재생공장의 노동 체험과 그것을 바라보는 자식의 눈길이 잘 갈무리된 작품이어서, 발상이 신선했다.그러나 동어반복에 가까운 말씨는 시의 울림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작품이 지닐 바 완결성에 대한 고심이 앞으로 승패를 가를 것이다.거기에 견주어 「내 마음의 호수」는 오히려 거칠고 들뜬 숨길이 뽑는이들 눈에 들었다.거침없는 시상 전개와 경쾌한 걸음걸이는 다른 이와 뚜렷이 나뉘는 가능성이었다.그러나 『내 마음에 작은 호수가 있어/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사람들 사이로/ 걸어갈 때는 아주/ 조심스럽게 걷지』로 시작되는 첫머리의 긴장이 마무리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작품이 가볍다는 느낌을 밀쳐내기에 시의 뼈대가 약했던 셈이다.「동전 위의 탑」과 「청동 물고기」는 한 사람이 낸 작품이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 작품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흠이 적었다.

「동전 위의 탑」이 나날살이 속에서 겪은 바를 섬세하게 그리고자 한데 골몰한 작품이라면,「청동 물고기」는 매우 급박한 숨길에다 산사 물고기 풍경에서 얻을 수 있는 바 연상의 자유로움을 극대화하고자 한 것이다.그러다 보니 곳곳에서 읽기를 가로막는 비약이 눈에 거슬렸다. 자연스레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이 「동전 위의 탑」이었다. 삶의 구체성에 든든하게 뿌리 내린 위에다 생각의 깊이를 갖추고자 한 몸가짐은 이즈음 신인들이 쉬 놓치고 있었던 덕목이다.

『떼굴떼굴』과 같이 다섯 차례에 걸쳐 거듭한 첩어에다 시의 흐름을 내맡겨버린 안이함도 엿보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차 건강한 생활시로 나아갈 자질을 이 작품은 숨기지 않았다. 당선자는 물론, 모든 응모자의 정진을 빈다.

 

- 심사위원 : 양왕용. 박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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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봄날에 대한 변명 / 이영옥


낯익은 집들이 서 있던 자리에
새로운 길이 뚫리고, 누군가 가꾸어 둔
열무밭의 어린 풋것들만
까치발을 들고 봄볕을 쬐고 있다
지붕은 두터운 먼지를 눌러 쓰고
지붕아래 사는 사람들은
이제 서로의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
떠난 자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알고있는
오래된 우물만 스스로 제 수위를 줄여 나갔다
붉은 페인트로 철거 날짜가 적힌
금간 담벼락으로 메마른 슬픔이 타고 오르면
기억의 일부가 빠져 나가버린 이 골목에는
먼지 앉은 저녁 햇살이 낮게 지나간다
넓혀진 길의 폭만큼
삶의 자리를 양보해 주었지만
포크레인은 무르익기 시작한 봄을
몇 시간만에 잘게 부수어 버렸다
지붕 위에 혼자 남아있던 검은 얼굴의 폐타이어가
돌아오지 못할 시간들을 공연히 헛 돌리고
타워 크레인에 걸려있던 햇살이
누구의 집이었던
쓸쓸한 마당 한 귀퉁이에 툭 떨어지면
윗채가 뜯긴 자리에
무성한 푸성귀처럼 어둠이 자라나고
등뒤에서는 해가 지는지
신도시에 서있는
건물 유리창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사라진 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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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야유회를 가다 / 정선호


바다가 보이는 오래된 초등학교에 갔네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바람만이 저녁밥을 지어
논둑의 뱀풀이며 씀바귀들에게 퍼 주었네
염소들 그것들을 뜯어먹으며 아이들을 불렀지만
아이들은 해변에서 바다를 뜯어먹고
되새김질하여 수평선 너머로 공을 차내고 있었네

바람은 날개를 접어 몇몇은 빈 교실에서 헤진 추억들을 풀어놓고
몇몇은 야유회 온 사람들의 배낭을 비집고 들어가
아이들과의 이별을 준비했네
저녁식사엔 염소 한 마리 잡아 만든 수육이며
국물이 나왔는데 바다냄새와 풀냄새가 물씬 났네
풍성한 저녁식사는 시작되었지만 일행은
부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처럼 말없이
질디기질긴 식사를 하는 것이었네

파도소리는 보채는 아이들을 잠재웠고
소쩍새같은 숨소리를 내며 커가는 아이들,
이슬을 불러 염소의 쓸쓸함을 덮었네
파도소리가 더 크게 들리자 일행은 저마다
염소의 울음소리를 내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하얗게 늙어갔네
그들의 턱에는 수염이 빠르게 자라고 있었으며
새벽녘에서야 막혔던 귀가 뚫리고 있었네


 

번함 공원에서 점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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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굴장미 / 김영삼

 

 

저 불은 끌 수 없다

차가운 불

소나기 지나가자 주춤하던 불길 거세게 되살아나 담장을 또 활활 태운다 잔주름 늘어나는 벽돌담만 녹이면 단숨에 세상을 삼킬 수 있다는 건가 막무가내로 담장을 오르는 불살, 한 번도 불붙어 본 적 없는, 마를 대로 마른 장작 같은 몸뚱이 확! 불 질러 놓고 재 한줌 남기지 않고 스러져도 좋을 무덤, 큼직한 불꽃이 서로 팔들을 엮고 저들의 등을 밟고 올라선 불꽃들이 또 하나의 일가를 이룬 곳으로 나는 걸어 들어간다 나에게 불을 다오, 저들의 영토에 손을 내미는 순간,


나는 차가운 화상을 입는다

불똥은 땅에 떨어져 꽃으로 자꾸 피어나는데


나는 졸지에 불을 잃다

 

 

 

 

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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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나의 詩는 제로… 100을 향해 달려간다
 
퇴근 준비를 하다가 당선 소식을 들었다. 내가 쓰던 작은 방을 망연히 걸레로 닦고 또 닦았다. 그러면서 대책도 없이 큰 일 저지르고 말았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詩 농사를 지으면서, 나는 농사법이 서툰데다 게으름까지 겸비하고 있어 나의 수확은 늘 초라하여 뼈가 으스러지도록 열심히 시 농사를 다시 지어야겠다고 굳게 다짐하였던 터다.  시는 제로(0)와 백(100)의 싸움이라고 한다. 백이 아니면 나머지는 다 제로여서 중간이 없는 장르가 시라고 나의 스승은 항상 말한다. 나는 백을 향해 치열하게 싸웠지만 늘 2%가 부족하다. 하여, 아직은 나의 시는 제로다. 당선 소식이 백의 목표까지 꼭 달려가서 소음이 아닌 귀에 즐거운 경적을 울려보라고 교부해준 임시면허증을 받은 느낌이다. 한적한 곳에서 부단히 주행연습을 하여 당당하게 대로에 나서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임을 안다.  많이 부족한 글을 뽑아준 심사위원들에게 먼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詩作에 몰두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아내와 어머니, 착한 아들 다빈과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강릉원주대학교 시창작반 문우들, 악당들, 냉정한 평가를 아끼지 않던 무명 비평가, 큰 힘이 되어주었던 홍종화 시인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심사평] 참신한 언어감각과 신선한 비유가 좋아

 

금년도 응모 작품들은 예년에 비해 작품 수는 많았으나 특출한 작품이 없어서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며 상투적인 언어의 시들과 신춘문예라는 옷을 입고 등장한 작품이 많았다. 그런 작품들은 자칫 진실성이 결여되어 가식적이고 허영적인 글이 되기 쉽다.

이번 심사에서는 오늘 이 시대의 삶을 반영하는 시, 새로운 언어감각의 시, 그리고 신인다운 특성과 참신성을 높이 평가했다.

본심에 올라온 열다섯 분의 작품 중 오영애씨의 `흰 꽃이 지다'는 언어감각은 뛰어났지만 주제의식의 깊이가 약한 것이 흠이었다. 정솔씨의 `공룡능선'은 비유가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어서 설득력이 약했다. 

당선작인 김영삼씨의 `덩굴장미' 외 `初冬'은 뛰어난 언어감각과 신선한 비유가 좋았다. 

예를 들면 `덩굴장미'를 `차가운 불'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또한 “자신이 차가운 화상을 입는다”라는 비유는 매우 신선하고 감각적이었다. 주제의식 역시 보편성을 내면화하고 있으며 특히 “나는 졸지에 불을 잃다”라는 표현은 생명의 상징성을 아이러니한 표현 기법으로 승화시킨 뛰어난 작품이었다. 당선을 축하한다. 

 


- 심사위원 : 이승훈·이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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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41병동에서 / 김현숙

 

목숨 걸고 터를 사수하려는 사람들과 강제 철거로 문책당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사이에 불길이 솟았다 강대병원 41병동 입원실에 누운 그녀의 마음도 이미 화염에 휩싸였다 산부인과 의사가 가랑이 사이 좁고 음습하게 숨어있는 그를 찾아내 명명한 것은 D25, 20년 동안 빈방을 먹고 몸집을 키워 집채로 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병실은 침묵의 선, 형광수족관 유리벽에 갇힌 여자는 영락없이 부레를 잃고 바닥까지 가라앉은 넙치가 되었다 TV는 밤낮없이 용산 강제철거 참사를 알리고 별보다 많은 눈물과 촛불을 쏟아내고 있었다 강제철거는 내 깊은 동굴 속에서도 일어났다 마취 4시간 만에 피주머니에 고인 D25는 몇 날 며칠 창자를 지나 억울하다고 빈터에서 울었다 화염에 휩싸여 죽은 용산참사 가족들이 TV화면 속에서 실신했다 불을 낸 책임이 넙치라고 했다가 꽁치라고 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이 달랐다 그녀의 몸이 점차 수족관이 되었다 밤마다 몸을 떠난 부레가 허공을 날고 납작하게 엎딘 시간들을 물고 사라지는 갈치 떼가 보였다 스산한 야광을 구경하는 관객은 네모난 아파트와 깜박이지 않는 붉은 십자가들뿐, 그런데 왜 십자가는 약자들의 빛이 되지 못할까 크레졸 안개가 어지러웠다 가끔 배를 쥐고 흐느적거리는 사람들은 투명한 해파리촉수에 찔린 손을 높이 쳐들었다 의사는 여성을 잃은 대신 생명을 얻었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D25를 죽이고 그녀가 산 수족관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가장더 잃고 터도 뺏긴 그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신문이 말했다 그들에겐 죽을지언정 터를 지켜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별보다 많은 눈물과 촛불은 물대포로도 꺼지지 않는다 허공을 얻은 몸은 이미 바다가 되었을 테니.

※ D25: 여성의 자궁 속에서 자라는 근종의 종류


 

[당선소감] 詩 안에서 살고 詩 안에서 죽어야

등단이란 관문은 시인다운 시인을 가려 시의 고삐를 채워주는 의식이다. 시 안에서 살고 시 안에서 죽어야 그 고삐가 풀릴 것을 알기에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살면서 고통당한다는 것은 육체와 영혼이 나쁜 것을 경험한다는 뜻이다. 죽음은 무의식이지만 고통은 의식의 연속, 인간의 내면을 죽음보다 더 두렵고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절박한 고통의 순간이 내게도 찾아왔고 감내하는 마음으로 내면의 눈을 떠 세상을 보니 비로소 타인에 대한 고통을 내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산부인과에서 여성성을 잃는 수술로 내 몸에 있던 생명의 요람이 철거되는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TV에선 용산참사 현장 화염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몸의 작은 기관 하나가 철거되는 순간에도 내 의지의 불꽃이 실존한 것처럼 그들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며 맹렬히 싸워야 할 실존의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 시를 통해서 가진 자들이 만든 법이나 질서에 우선하는 생명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미흡한 시를 뽑아 준 고명한 심사위원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그분들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정진할 생각이다. 사랑하는 가족 재휘와 새미나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 영광이 골고루 나누어지기를 하느님께 기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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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응모작 대부분이 상당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시의 형식적 요구는 만족시키고 있는 반면 상상력의 내면화나 깊이에는 미흡했다. 이는 언제부턴가 문화적 유행처럼 되어버린 시 쓰기 공부, 혹은 시인 만들기의 한 경향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근래 시단의 이슈였던 그로테스크 시와 환상적 상상력 혹은 가독성을 부인하는 시편들도 있었으나 대부분 젊은 응모자의 새로움에 대한 시도와 함께 기존의 전통 서정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한편 생활고나 청년 실직자들의 좌절 등 현실과 세태를 반영하는 작품도 눈에 띄었고 함축의 어려움을 비켜가고자 하는 한 방편으로 보일 수도 있는 전반적으로 시가 길고 또 산문성이 짙은 경향을 보였다.

1,200여 편에 이르는 응모작 중 최종심의 대상은 신정남의 `인북천 피라미의 노래'를 비롯한 8편이었다. 그중 명순이의 `지각한 길'은 생을 조망하는 사유와 시각은 뛰어나나 다소 평이함에 머무른 감이 있고 김영삼의 `덩굴장미'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대하는 신선함이 돋보이는 반면 단정적인 표현과 상반되는 모호함의 혼재가 오히려 시의 진정성을 흐리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신정남의 `인북천 피라미들의 노래'는 생태적 상상력과 형식 면에서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였다. 그러나 관념성과 다소 교훈적이라는 측면에서 시의 리얼리티를 놓친 점이 아쉬웠다.

당선작 `산부인과 41 병동에서'는 개인의 고통과 사회적 병증을 병치시키면서 그 의미와 상징성들을 융합하는 역량이 괄목상대할 만했다. 당선을 축하하며 대성을 빈다.

 

 - 심사위원 이영춘 이상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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