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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판 / 송정화

 

 

낯선 간이역에는 거대한 몽상과 혼돈의 장이 섭니다.

그곳에서는 가끔 죽은 바다도 싱싱하게 거래됩니다.

 

수전증에 걸린 노파에게 좌판의 으로 끌려다니는 그녀는 등 푸른 생선입니다. 미끈거리는 그녀의 몸을 좌판 위에 올려놓고, 노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떨리는 손으로 진로를 더듬습니다. 제발 나를 풀어 줘. 몽롱한 그녀의 눈은 점점 빛을 잃어가지만 푸른 물살의 전율을 기억하는 몸은 여전히 싱그럽습니다. 가는귀 먹은 노파의 손은 좌판만 땅땅 두드립니다. 비릿한 바다 냄새에 이끌린 사내들이 그녀의 주변으로 모여듭니다. 신명이 난 노파는 덜덜거리는 손으로 바다를 들고 한껏 부풀립니다. 그녀의 푸른 등에는 매혹의 바다 무늬가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매력적인 바다야. 뭇 사내들의 탐욕이 번득입니다. 불빛도 슬쩍 끼어들어 그녀의 등을 한 번 쓰윽 쓰다듬어 봅니다. 탄력 있는 몸이야. 몽상의 바다 속으로 한 사내가 출렁거리며 걸어 들어옵니다. 노파는 서둘러 그녀의 몸을 도마 위에 모로 눕힙니다. 그녀의 몸에서 우우 깃털처럼 바다의 지느러미가 일어섭니다. 한껏 달구어진 몽상의 도마 위에서 그들이 몸을 섞습니다. 지폐를 챙긴 노파의 손은 알고 있습니다. 비릿한 그녀의 몸속 깊이 깊이 들어가 보면 바다는 이미 딴 세상으로 훌훌 떠나버린 지 오래란 것을.

 

 

 

 

거미의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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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정현종 님의 '')

 

최근 일 이년 동안 제 문학의 화두는 ''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시를 쓰는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섬의 탐구, 혹은 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 문학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사람들 사이에만 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섬과 나와의 간극조차 메우지 못하고 헤매던 나날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을 도저히 메울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과 절망으로 제 시는 자주 길을 잃곤 했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아직도 내 안에 존재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섬의 실체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제 시는 앞으로도 얼마 동안은 섬으로 가는 길 위에 서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부끄러운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제 시를 애정 어린 눈으로 보아주시고, 제게 섬으로 갈 수 있는 용기를 주신 김명인, 김윤배 두 분 심사위원님과 경인일보사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좌절하지 않고 힘차게 물살을 저어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가는 길 위, 곳곳에서 만나는 세상과 사물들을 섬세하고 깊게, 때로는 독살스럽게 응시하여, '잘 썼네.' 정도가 아니라, '사무쳐오는 시'를 써서 보답해 올리겠습니다.

 

이 밖에도 제겐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기철 교수님과 홍신선 교수님을 비롯하여 제 시에 북을 돋워 주신 은사님들, '백실 글벗', 십 년 지기인 '그들 동인', 대학원 문우들, 학교 동료들, 친구들 모두 고맙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며느리를 늘 감싸 안아 주시는 시부모님, '빌어먹어도 자식 공부는 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손수 쟁기질을 하시며 칠남매를 올곧게 키워 내신, 지금은 고희를 목전에 둔 내 어머니, 사랑하는 오빠, 언니, 동생들 그리고 친구이자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남편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심사평]

 

올해의 경인일보 신춘문예의 경향을 보면 유난히 추운 겨울이 보인다. 실직한 가장의 처진 어깨와 노인들의 무료한 풍경과 하루하루의 삶이 힘겨운 사람들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전체적인 풍경은 을씨년스럽고 암울하며 출구가 보이지 않는 회색의 풍경이다. 이러한 풍경들은 우리들의 곡진한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 풍경이어서 진지한 모습이지만 그러나 익숙한 풍경이기도하여 낡은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시에서 낡았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신춘문예의 성격상 생명감, 참신성, 도전 의식, 긍정적인 세계관 등이 시편 속에 녹아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또 다른 풍경으로는 시인 자신의 내면의 풍경인데 이 풍경은 시인의 자기 분열의 모습이어서 시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작품이 많았다. 그렇다고 올해의 응모작들이 지난해에 비해 처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심을 거쳐 선자들에게 넘겨온 100여 편의 시편들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20대 초반의 젊은 응모자가 많이 눈에 띄었으며 40대의 응모자들은 상당 기간 수련을 쌓은 흔적이 역력했다.

 

선자 두 사람은 장현숙의 '', 길동호의 '선인장', 이동메의 '어항', 박복영의 '햇살, 길을 묻다', 송정화의 '좌판'을 최종심에 올려놓고 검토에 들어갔다. 장현숙의 ''은 희망 없는 걸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인데 견고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지만 시적 화자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어 감동이 적은 것이 흠이었다. 길동호의 '선인장'은 선인장의 이미지와 사형수의 이미지를 병치시킨 작품으로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이기는 하지만 '가슴에 다지지 못한 메아리가 눈썹을 쓸어내리듯'이라는 요령부득의 구절들이 보이기도 하여 그 역량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이동메의 '어항'은 명징한 시이다. 그러나 시상이 단조롭고 마지막 연 '그 해,/나도 내 사랑을 잃---.'가 상투적인 결함을 보인 작품이다.

 

박복영의 '햇살, 길을 묻다'는 무료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는 과일장수 한씨와 슈퍼주인 강씨의 정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시제가 사변적인 것에 비해 시는 구체성을 획득하고 있으나 시인의 내부에서 다시 한번 치명적인 도약을 하지 못한 것이 걸린다. 송정화의 '좌판'은 수전증에 걸린 생선장수 노파의 이야기지만 이 시에서 서사는 별 의미가 없다. 도마 위에 눕혀진 생선은 바다가 떠난지 오래된 우리들이기도 할 것이다. 풍부한 상상력이 미덕인 이 작품은 '우우 깃털처럼 바다의 지느러미가 일어섭니다'같은 빼어난 표현을 보인다. 함께 투고된 '푸른 운동장'에서도 이 시인의 숨겨진 능력이 엿보여 선자 두 사람은 쉽게 합의에 이르러 당선작으로 뽑았다. 한국 시단의 시사를 다시 쓰는 시인이 되기를 빈다.

 

- 심사위원 : 김윤배, 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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