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벚나무를 묻지마라 / 임경림
늙은 산벚나무가 온 산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가부좌 틀고 앉은 벙어리 부처를 먹이고, 벌떼 같은 하늘과 구름을 먹이고, 떼쟁이 햇살과 바람과 새를 먹이고, 수시로 엿듣는 여우비를 먹이고, 툇마루에 눌러앉은 한 톨의 과거와 할미 보살을 먹이고, 두리번두리번 못 다 익은 열매들의 슬픔을 먹이고, 애벌레의 낮잠 끝에 서성이는 노랑나비를 먹이고, 먹이고…먹이고,
흘러넘친 단물이 절 밖을 풀어먹이고 있었다 젖무덤 열어젖힌 산벚나무, 무덤 속에 든 어미가 무덤 밖에 서 있다 퉁퉁퉁 불어 터진 시간이 아가 아가 아가를 숨 가쁘게 불러댄다
산벚나무를 묻지 마라
코 닫고 눈 닫고 귀 걸어 잠그고
문둥이 속으로 들어간 절 한 채
어두워지고 있으리라
2002 신춘문예 당선시집
nefing.com
[당선소감] "오래 울릴 수 있는 鐘같은 시인 되고파"
돌이 하나 있었다. 오랫동안 가슴에 새를 품고 있다 어느새 새가 된 돌, 제 가슴에 새겨진 날개를 보고 흠칫 놀랐다.
오직 시만을 꿈꾸어 온 시간의 이마에 어느 새 시의 입술이 새겨진 것일까.
언어의 늪 속에 빠져 몇 년을 허우적거렸다.
발을 빼려 할수록 의미는 점점 더 깊은 늪 속으로 나를 가두고, 그토록 가벼워지고 싶었던 영혼은 좀체 제 무게를 줄일 수 없었다.
실패와 상심을 거듭하던 끝에 더 이상 의미를 포획하지 않기로 했다.
의미를 놓아버리자 비로소 의미가 찾아들고 상상이 가지를 뻗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영혼이 무거운 허물을 벗게 되었다.
한때 시가 종교를 대신한다고, 시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힘껏 소리쳤던 적이 있었다.
사막의 낮과 밤을 헤매다 얻게 되는 한 방울의 오아시스가 끊어진 길을 다시 이어가게 하듯, 분명 시는 굶주린 나를 길러 여기까지 데려왔다.
시는 오리무중과 같다고 생각한다. 의미의 상태가 아닌 의미를 향한 손짓, 발짓이라고 생각한다. 소리와 의미 사이에 놓여있는 신비로운 시의 숲을 안경도 없이, 맨발로 즐겁게 헤맬 것이다.
시는 내가 평생 지고 가야 할 종교이다. 어둠 속에 갇힌 시의 백성들을 햇살 밝은 창가로 불러내어 따뜻한 젖을 물리는 일, 앞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리라.
정초에 꿈을 꾸었다. 숯검정 같은 허공에 구겨진 종이 조각들로 가득 메워진 종 하나가 눈앞을 가로막고 있다가 사라지더니, 잠시 후 텅 빈 종이 되어 또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화두를 던지듯이.
비어야만 울 수 있는 종처럼 울림이 있고 오래오래 울 수 있는 시인이 되도록 부지런히 담금질하겠다.
시의 싹을 틔워 주신 서지월 선생님, 징검돌이 되어주신 박진형 선생님,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신 박재열 교수님, 더욱 정진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늘 젖은 그늘을 안고 사는 가족들, 묵묵히 지켜봐 준 남편과 시 쓰는 엄마를 좋아하는 두 아들, 시를 사랑하는 여러 문우들과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심사평] 독특한 감성·안정된 사유 돋보여
투고작들의 일반적인 수준은고른 편이었지만, 특별히 신인다운 패기있고 인상적인 작품은 드물었다. 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작품은 많았지만, 좀 서툴더라도 시적 에스프리가 넘치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아서 아쉬웠다.
특히 많은 작품들이 산문적인 경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위 산문시들도 많았다. 그러나 산문시는 산문과 다르다. 시와 산문의 주요한 차이는 그 상상력에 있을 것이다.
산문의 상상력으로 씌어진 작품은 아무리 시적인 외형을 지니고 있더라도 시적 감흥을 주지 못한다. 새로운 언어, 새로운 감성이 부족한 점도 아쉬움이다. 요즘 같은 감각의 시대에 오히려 시가, 감성의 빈곤을 드러내는 작품이 많았다.
시적 상상력과 새로운 감성의 부족을 경직된 시적 포즈로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논의의 대상이 된 투고작은 김우섭, 이상관, 조동범, 임경림의 작품이었다.
김우섭, 이상관의 작품은 언어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힘과 사물을 응시하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시적 사유가 일정한 틀에 갇혀 있는 듯했고, 시적 탄력이 부족했다.
또 때때로 생경하거나 부적절한 표현이 작품의 긴장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성실성과 솜씨가 있는 작품이었지만, 스스로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더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조동범, 임경림의 작품은 그 감성이 발랄하고 풍부했다. 언어를 조합해서 긴장된 언어의 조형물을 만드는 솜씨가 있었다.
조동범의 ‘둘둘치킨’과 임경림의 ‘뾰족지붕과 뾰족창을 그는 가졌다’, ‘산벚나무를 묻지 마라’ 세 편을 두고 망설인 결과 ‘산벚나무를 묻지 마라’를 뽑게 되었다.
임경림은 상당한 시적 훈련이 되어 있는 듯하다. 그의 감성과 언어에는 독특한 색깔이 있다.
그러면서도 안정된 시적 사유를 보여준다.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당선자와 아깝게 탈락한 투고자 모두에게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이성부, 김종철, 이남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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