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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판 / 송정화

 

 

낯선 간이역에는 거대한 몽상과 혼돈의 장이 섭니다.

그곳에서는 가끔 죽은 바다도 싱싱하게 거래됩니다.

 

수전증에 걸린 노파에게 좌판의 으로 끌려다니는 그녀는 등 푸른 생선입니다. 미끈거리는 그녀의 몸을 좌판 위에 올려놓고, 노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떨리는 손으로 진로를 더듬습니다. 제발 나를 풀어 줘. 몽롱한 그녀의 눈은 점점 빛을 잃어가지만 푸른 물살의 전율을 기억하는 몸은 여전히 싱그럽습니다. 가는귀 먹은 노파의 손은 좌판만 땅땅 두드립니다. 비릿한 바다 냄새에 이끌린 사내들이 그녀의 주변으로 모여듭니다. 신명이 난 노파는 덜덜거리는 손으로 바다를 들고 한껏 부풀립니다. 그녀의 푸른 등에는 매혹의 바다 무늬가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매력적인 바다야. 뭇 사내들의 탐욕이 번득입니다. 불빛도 슬쩍 끼어들어 그녀의 등을 한 번 쓰윽 쓰다듬어 봅니다. 탄력 있는 몸이야. 몽상의 바다 속으로 한 사내가 출렁거리며 걸어 들어옵니다. 노파는 서둘러 그녀의 몸을 도마 위에 모로 눕힙니다. 그녀의 몸에서 우우 깃털처럼 바다의 지느러미가 일어섭니다. 한껏 달구어진 몽상의 도마 위에서 그들이 몸을 섞습니다. 지폐를 챙긴 노파의 손은 알고 있습니다. 비릿한 그녀의 몸속 깊이 깊이 들어가 보면 바다는 이미 딴 세상으로 훌훌 떠나버린 지 오래란 것을.

 

 

 

 

거미의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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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정현종 님의 '')

 

최근 일 이년 동안 제 문학의 화두는 ''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시를 쓰는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섬의 탐구, 혹은 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 문학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사람들 사이에만 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섬과 나와의 간극조차 메우지 못하고 헤매던 나날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을 도저히 메울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과 절망으로 제 시는 자주 길을 잃곤 했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아직도 내 안에 존재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섬의 실체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제 시는 앞으로도 얼마 동안은 섬으로 가는 길 위에 서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부끄러운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제 시를 애정 어린 눈으로 보아주시고, 제게 섬으로 갈 수 있는 용기를 주신 김명인, 김윤배 두 분 심사위원님과 경인일보사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좌절하지 않고 힘차게 물살을 저어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가는 길 위, 곳곳에서 만나는 세상과 사물들을 섬세하고 깊게, 때로는 독살스럽게 응시하여, '잘 썼네.' 정도가 아니라, '사무쳐오는 시'를 써서 보답해 올리겠습니다.

 

이 밖에도 제겐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기철 교수님과 홍신선 교수님을 비롯하여 제 시에 북을 돋워 주신 은사님들, '백실 글벗', 십 년 지기인 '그들 동인', 대학원 문우들, 학교 동료들, 친구들 모두 고맙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며느리를 늘 감싸 안아 주시는 시부모님, '빌어먹어도 자식 공부는 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손수 쟁기질을 하시며 칠남매를 올곧게 키워 내신, 지금은 고희를 목전에 둔 내 어머니, 사랑하는 오빠, 언니, 동생들 그리고 친구이자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남편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심사평]

 

올해의 경인일보 신춘문예의 경향을 보면 유난히 추운 겨울이 보인다. 실직한 가장의 처진 어깨와 노인들의 무료한 풍경과 하루하루의 삶이 힘겨운 사람들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전체적인 풍경은 을씨년스럽고 암울하며 출구가 보이지 않는 회색의 풍경이다. 이러한 풍경들은 우리들의 곡진한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 풍경이어서 진지한 모습이지만 그러나 익숙한 풍경이기도하여 낡은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시에서 낡았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신춘문예의 성격상 생명감, 참신성, 도전 의식, 긍정적인 세계관 등이 시편 속에 녹아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또 다른 풍경으로는 시인 자신의 내면의 풍경인데 이 풍경은 시인의 자기 분열의 모습이어서 시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작품이 많았다. 그렇다고 올해의 응모작들이 지난해에 비해 처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심을 거쳐 선자들에게 넘겨온 100여 편의 시편들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20대 초반의 젊은 응모자가 많이 눈에 띄었으며 40대의 응모자들은 상당 기간 수련을 쌓은 흔적이 역력했다.

 

선자 두 사람은 장현숙의 '', 길동호의 '선인장', 이동메의 '어항', 박복영의 '햇살, 길을 묻다', 송정화의 '좌판'을 최종심에 올려놓고 검토에 들어갔다. 장현숙의 ''은 희망 없는 걸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인데 견고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지만 시적 화자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어 감동이 적은 것이 흠이었다. 길동호의 '선인장'은 선인장의 이미지와 사형수의 이미지를 병치시킨 작품으로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이기는 하지만 '가슴에 다지지 못한 메아리가 눈썹을 쓸어내리듯'이라는 요령부득의 구절들이 보이기도 하여 그 역량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이동메의 '어항'은 명징한 시이다. 그러나 시상이 단조롭고 마지막 연 '그 해,/나도 내 사랑을 잃---.'가 상투적인 결함을 보인 작품이다.

 

박복영의 '햇살, 길을 묻다'는 무료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는 과일장수 한씨와 슈퍼주인 강씨의 정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시제가 사변적인 것에 비해 시는 구체성을 획득하고 있으나 시인의 내부에서 다시 한번 치명적인 도약을 하지 못한 것이 걸린다. 송정화의 '좌판'은 수전증에 걸린 생선장수 노파의 이야기지만 이 시에서 서사는 별 의미가 없다. 도마 위에 눕혀진 생선은 바다가 떠난지 오래된 우리들이기도 할 것이다. 풍부한 상상력이 미덕인 이 작품은 '우우 깃털처럼 바다의 지느러미가 일어섭니다'같은 빼어난 표현을 보인다. 함께 투고된 '푸른 운동장'에서도 이 시인의 숨겨진 능력이 엿보여 선자 두 사람은 쉽게 합의에 이르러 당선작으로 뽑았다. 한국 시단의 시사를 다시 쓰는 시인이 되기를 빈다.

 

- 심사위원 : 김윤배, 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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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 박명옥

하루 종일 햇볕이 놀다간 자리

발자국처럼 시든 꽃잎

사다리 타고 내려온다

문을 열면 마당 한 가득 벌어진 해바라기

긴 그림자 안방까지 들어와

잠을 자기도 하던

낮 동안 키웠던 몸이 뜨거웠다

제 열망에 사로잡혀

눈을 떼지 못했던 그 높이

푸른 하늘 짓무르게 고개 들었던

목덜미에서 푸르고 넓은 대지가 떠내려갔다

온 힘을 다해 긴 터널을 통과했던 물방울들이

둥지를 틀고 소란스럽게 몸 흔드는 날은

제가 감당하기 힘든 큰 꽃을 피우기 위해

노랗고 긴 손가락을 펴고 있었다

한 줌의 햇살 같기도 하던 노란 꽃술 부려놓고

앞마당을 달빛같이 채우던

그림자를 딛고 나는 자랐다

그 작은 씨앗 속에서 거인처럼 솟아오르던

희망의 줄기를 붙잡고

너무 느리게 자라는 내 키를 기대면

기차소리처럼 다가오던 먼 미래

잘 익은 태양을 가득 싣고

불 꺼진 간이역마다

해바라기 같은 등을 매달고

천천히 달려오던 녹색의 터널에 웅크리고 앉아

천천히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해그림자 길게 모래알을 흘려놓고 가던

여름철마다 사다리 타고 올라가

해바라기 속에 씨앗처럼 많은 집을 지어놓고

햇살을 파먹던 그 높이

녹색의 터널은 길고 지루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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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거천 연가 / 윤순희

 

 

여름밤 내내 *팔거천변 돌고 또 돌았습니다 아직 물고기 펄떡이는 물 속 물새알 낳기도 하는 풀숲 달맞이꽃 지천으로 피어 십 수년째 오르지 않는 집값 펴지기를 깨금발로 기다리지만 대학병원 들어서면 3호선 개통되면 국우터널 무료화 되면 하는 황소개구리 울음 텅텅 울리는 탁상행정 뿐입니다

 

풀숲에서 주운 새들의 알 희고 딱딱한 것들 날마다 수성구를 향하여 샷을 날려 보내지만 죽은 알들은 금호강을 건너지 못하고 팔달교 교각 맞고 튕겨져 나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강을 건너지 못하면 저 물새들 살얼음 낀 물속에서 언 발 교대로 들어 올렸다 내릴 텐데

 

환하게 타오르던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의 불빛 온기는 어디까지 번져 갈 것인지요

물새들의 울음소리 팔거천 가득 울려 퍼지는 날 낮달 같은 새댁들 강변 가득 붉은 나팔 불며 여덟 갈래 꿈꾸며 비상하겠지요.

 

* 팔거천 : 팔공산 자락에서 흘러든 여덟 갈래 물줄기가 합쳐져 대구의 강북인 칠곡 신도시를 거쳐 금호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달집태우기 행사를 한다.

 

 

 

 

[당선소감] 나의 바다를 지켜 온 시()

 

마흔 넘어 시작한 늦깎이 대학생이었습니다. 달빛아래 환한 목련꽃 교정의 야간대학. 대구에서 서울까지, 대구에서 조치원까지 KTX 보다 빠르게 달렸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들 늘 짧고 무심하기만 하였습니다.

 

일출보다 뜨거운 시를 향한 열정이, 문무왕릉처럼 나의 바다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물결 철썩일 때마다, 빈 모래사장에 갈매기 발자국 콕콕 찍히듯 시는 내 속에 새겨졌습니다. 황룡사지 빈 터 오층 석탑 속에 차곡차곡 쟁여 두었습니다. 풍경소리 홀로 해풍에 울렸습니다. 해송의 큰 그늘 아래 살포시 내려앉은 해국처럼, 때로는 해송의 따끔함에 찔리기도 하면서, 바다의 빛깔 시의 빛깔만 그려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지난 일곱 해의 시간들이 마침내 신춘이라는 꽃을 피워냈습니다. 그 꽃 아직은 작고 여린 땡땡 몽우리에 불과합니다. 칼바람 살얼음 속에서 살며시 꽃 피우는 홍매화의 마음으로 첫 봄을 시작하겠습니다.

 

묵묵히 뒷바라지 해 준 나의 얼룩남자와 세 아이들, 사랑하는 친구(해정, 우정, 윤이)들이 있어 더욱 힘이 났습니다. 20년 나의 직장, 나의 고객, 신창재 회장님 사랑합니다.

 

5년째 지도해 주신 조정권 선생님, 대학원의 거목이신 김명인 선생님, 경희사이버대학의 이문재 선생님, 대구 이기철 손진은 선생님, 별빛처럼 선명한 가르침 깊이 새기겠습니다. 부족한 작품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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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삶의 연륜 묻어나는 감수성에 호감

 

이름이 가려진 채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30명의 작품 126편을 읽고 나서 치즈의 눈물’ ‘벌침’ ‘거울 속의 나’ ‘팔거천 연가네 작품을 가려내었다. ‘치즈의 눈물은 말을 다루는 솜씨가 있고 잘 읽히나, 툭 차고 일어나 비상할 시점을 놓치고 시가 제자리에 맴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벌침은 혼신의 힘을 다해 쓴 톡 쏘는 시한 편이 마치 죽음을 무릅쓰고 쏜 벌침과 같다는 생각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치열한 시정신을 읽을 수 있으나 함께 제출된 그의 다른 작품들이 그걸 받쳐줄만한 뒷심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거울 속의 나는 시상이 명징하고 통일성이 있어 깔끔하게 읽힌다. 그러나 거울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은 너무도 흔한 주제라서 신인다운 신선함을 느끼게 하지는 못했다.

 

팔거천 연가는 다른 작가의 작품들에 비해 삶의 무게나 연륜이 느껴지는 구체적인 표현들이 안정감이 있고 감수성도 예민하여 호감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함께 제출된 다른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이웃에 대한 따듯한 마음의 질량도 듬직했다. 숙고 끝에 <팔거천 연가>를 당선작으로 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축하 드린다. 정진이 있기 바란다.

 

- 심사위원 : 정희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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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에 비 내리면 / 황종권

 

 

당신은 육지를 떠나기 전이면 뒤뜰에 있는 이팝나무 아래로 불러내곤 했지요. 이팝나무 한 뼘 위를 회칼로 그으며, 그만큼 자라면 온다고 무슨 굳센 다짐처럼 말하곤 했지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팝나무 아래에서 키를 재어 보았는데요. 키 대신 등짝에 파도소리가 자라곤 했었지요. 해가 기울수록 길어지는 그늘은 내가 미리 살아버린 주름이었을까요. 이팝나무는 꽃을 버릴 때마다 나이테가 늘어갔던 거예요.

 

먼 바다에서 당신배가 물결을 가를 때마다 일어나는 물살이, 제가 엉덩이 깔고 앉아 있는 포구 끝에도 닿는 것일까요. 하얗게 터지는 물살에선 목욕탕 스킨냄새가 나네요. 바다가 물결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물결이 바다를 그물처럼 가두고 있단 생각을 했어요. 바다가 당신의 것이 아니라, 당신이 바다의 것이었거든요.

 

어둠이 달을 꽉 가두고 있는 밤은 비가 내렸지요. 어김없이 부엌은 생선 굽는 냄새에 몸살을 앓았고요. 저녁상에 올라 온 민어를 뒤집다가 손등을 얻어맞기도 했어요. 하늘에서도 물고기가 튀는 것일까요. 유리창에 맺히는 빗소리에선 심한 비린내가 나요. 그런 날은 이불속에서 뒤척거리는 일도 조심스러워요. 나는 당신에게 수평선을 그어 주던 아이였을까요.

 

당신의 주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던 달의 인력이 오늘밤은 시린 손가락으로 내 발목을 잡는 걸요. 밀물 든 바닷가에선 빗소리가 주저 앉고요. 잃어버린 당신의 키는 언제쯤 만조를 이룰 수 있을까요. 사리와 같은 당신과 나와의 거리에선 빗소리가 쌓이지요. 비가 오는 밤은 달이 이빨이 아픈 꿈을 꾸는 건가 봐요. 이팝나무에 빗소리를 그어놓으면 우린 한 뼘 지워질 수 있을는지요.

 

사리 : 달은 음력 한 달을 주기로 지구 주위를 공전하면서 보름과 그믐에 태양, 지구, 달이 일직선 위에 있게 되는데 이때는 태양의 인력이 합쳐지면서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가장 크게 되며 사리라고 한다.

 

 

 

 

 

당신의 등은 엎드려 울기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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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가두리의 벽을 뚫고 먼 대해로

 

 

당선! 당신의 말 속에 저릿한 파도가 치는 듯해요.

 

그 저릿한 물 속에서 마르도록 달려온 더운 물고기의 숨결.

 

그 화끈거림 앞에 감히 약속 드려도 될는지요. 이번 당선에 결코 주저앉지 않겠다고요.

 

오로지 내가 믿는 시를 위해, 그리고 제 인생을 위해, 결코 씻을 수 없는 죄는 남기지는 않겠다고요.

 

들뜨고 애진마음 고마운 분들과 함께 고동소리 불러보아요.

 

사랑하면서도 가까이 가지 못한 마리서사 선후배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시 쓰는 몸을 지켜준 혈 선후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가장 먼 사람. 병수형, 정진이형 감사 드립니다.

 

내 꿈을 지켜준 황태, 준호형, 지성이형, 효영이 누나, 홍래형, 광흔이형, 승호, 난영, 아랑, 유리께 감사 드립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울고 있는 아들을 보며 신춘문예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함께 울던 가족에게 감사 드립니다.

 

제가 당신들이 없었더라면 어찌 시를 품는 법을 알았겠습니까.

 

무엇보다 순천대 문예창작학과 송수권, 김길수, 곽재구, 안광진, 박청호, 김춘규 교수님께 머리 숙여 감사 드립니다. 가두리의 벽을 뚫고 먼 대해로 나가게 해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감사와 다시 한번 약속을 드립니다.

 

저릿한 절망 앞에 쓰러지지 않는 배가 되겠습니다. 꿋꿋하게 시로서만 살겠습니다.”

 

 

 

 

[심사평] 현실·상상력 잘 버무려 절실함 담아

 

최근 우리 시단에는 체험이 결여된 시들이 대거 발표되고 있다. 시를 위한 시들의 언어적 개성을 추구한 시보다는 독자들에게 실질적인 감동을 주는 시를 심사의 중요한 기준으로 했다. 그 결과 예심을 통과한 시 중에 이팝나무에 비가 내리면’, ‘은갈치 상자에서는 달빛 냄새가 난다’, ‘부재중’, ‘장생포에서등이 최종 심사대상이 되었다.

 

장생포에서는 시를 끌어가는 추진력을 갖추고 있고 대체로 유려한 시행을 구사하였지만 종결어미의 처리 미숙으로 인해 상상력이 반감되어 고래의 꿈이 생명력 있는 꿈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부재중은 아버지의 부재를 드러내 주는 감나무, 외양간, 빈집 등을 평이한 언어로 자연스럽게 전개한 시이지만 너무 많은 사물을 등장시켜 평면적으로 흐른 것이 약점이었다.

 

이팝나무에 비가 내리면은갈치 상자에서는 달빛 냄새가 난다두 편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시적 구성의 단단함과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돋보여서 한 편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은갈치 상자에서는 달빛 냄새가 난다에서는 갈치상자에서 달빛 냄새가 난다라든가 달빛을 물고 달려드는 지느러미의 물결로 표현된 상상력이 은빛 매니큐어를 칠해보는 일이 평생소원이라던 생선 아줌마의 현실적 염원과 적절히 결합하였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묘사의 밀도가 떨어져 더 강력한 시적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다.

 

이팝나무에 비가 내리면은 삶의 진정성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상상력을 잘 보여준 시이다. “키 대신 등짝에 파도소리가 자라곤 했다라든가 달이 이빨이 아픈 꿈을 꾸는, 현실과 상상력이 잘 결합되어 새로운 의미망을 형성하면서 그 절실함을 담아내었다. 응모자의 다른 투고작품들도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당선작 결정에 참조가 되었다. 당선된 분에게는 축하를 보냄과 더불어 아쉽게 탈락한 분들에게 격려의 말을 보내드린다.

 

- 심사위원 : 최동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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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안으로 열리는 봄날의 동화(童話) / 정원

 

 

봄은 아이들 시린 손끝에서 왔다

골목 안은,


어김없이 가위질 소리로 짤랑거리고
덩달아 온 세상 흰 밥풀꽃 가득한 뻥튀기 소리 
와아, 골목 안 가득 풀려나오면
햇살처럼 환하게 웃음이 되는 아이들
달그락달그락 알사탕 같은 꿈들은 호주머니 속 숨겨둔
꽃망울처럼
시린 바람 끝에서도 붉었다
햇살에 투영되는 꽃무늬, 유리알 속엔
알록달록 봄을 틔우는 화원(花園)이 열리고
동네 골목골목 안은 그 화음에
구슬 같은 아이들의 눈빛으로 가득 채워지곤 했다
냄비, 헌 세숫대야, 그렇게 찌글찌글한 “찌글이” 아저씨는
아이들 입에서 동실동실 허연 엿가루의 봄날을 띄우고
봄바람에 갈라 터진 손등, 닳아빠진 소매 깃엔
이따금 춘삼월을 어루는 흰 조팝꽃 같은
이른 봄빛이 마구 피어오르곤 했다

골목 길, 
아이들 하나 둘 길 위에 비워지고
전등불 스윽 노란 개나리꽃 한 다발 피워낼 즈음
봄날은 그렇게 장난기 많은 얼굴로
아이들의 긴 그림자 꼬리를 물고 서 있곤 했었다.

 

 

 

 

바람에 관한 몇 개의 상상과 사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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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따뜻한 시선으로 시 세상 만들고파

 

열매를 맺는 일이 허공에 길 하나 내놓는 일과같아서 나무는 늘 제 몸 안에 산() 하나 들이는 일이다. 햇살 한 올 한 올 숲을 들이는 일처럼 그렇게 가을 산 하나, 물결치듯 외로움 하나 얹어놓는 일이다. 턱 끝까지 숨이 차도록 한 아름의 달빛을 둥글게 부풀어 올리는 일이다 가지마다 출렁이는 우주 하나 내어놓는 일이다.”(자작시에서)

 

세상에 대한 긍정이, 조금은 더 가벼워질 수 있다면, 내 안의 한 잎 물결은 한 마리 물고기처럼 푸른 바다에 물결을 그리며 지느러미를 흔드는 사랑일 것입니다. “, 울려나는 세상에 대한 울림처럼 물결쳐가는 그런, 그리움일 것입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시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풍랑의 바다에 힘찬 등대가 되어주신 경상일보사와 그 빛의 항로를 열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 이찬희씨와 아들 김민철이에게 먼저 이 기쁨을 전하며, 아울러 사랑하는 가족, 시공(詩空)동인, O2문학, 문학사랑 회원 모두께 함께 나눌 기쁨을 또한 전해드립니다. 아울러 사랑할, 사랑하는 모든 이들께 기쁨을 함께 합니다.

 

 

 

 

[심사평] 선명한 생동감 넘쳐

 

본선에 올라온 시들은 대체로 수준이 높았다. 이 본심에 올라온 시들은 대체로 수준이 높았다. 이미 많이 공부하고 많은 문학수련을 거쳤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시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어떤 시는 너무 잘 쓰려고 공연히 어렵게 쓰고 있는 시도 있었다. 아주 개성적인 시도 있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주관적 심성에 매몰되어 있어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고통이 고통으로 전달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산문시의 지나친 산문성이 시 읽는 재미를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미지의 비약 적절하지 않은 비유가 도리어 시상을 흐트러뜨리는 경우도 발견됐다. 그중에서 고구려로는 남성적, 대륙적인 시풍이 돋보였다. 시원하게 탁 트인 넓은 시야와 현실과 과거를 넘나드는 상상력으로 끌고 가는 긴 호흡도 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들은 이 시에 못 미쳤다. 어떤 시는 지나치게 ‘~의 은유(of metaphor)’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흠이었다.

 

마지막까지 고민하게 만든 시 ‘Vicent Van Gogh’ 연작도 좋은 시였다. 당선작으로 결정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시였다. 탄탄한 사유와 치열한 예술정신을 금방 느낄 수 있게 하는 시였다. 산문시이면서도 꽉 찬 느낌을 주었다. 그렇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예술가의 삶을 그릴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 하고 새롭게 발견한 걸 보여주어야 한다. 같이 투고한 다른 작품에서 드러나는 육화되지 않은 개념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여러 번을 망설인 끝에 골목 안으로 열리는 봄날의 동화4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다섯 편 모두 안정돼 있었다. 이미지가 선명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게 장점이었다. 과장과 현란한 수식 없이도 충분히 다 말하고 있는 시였다. 한 행도 함부로 쓰지 않는 섬세함과 문장 하나도 팽팽한 긴장으로 끌고 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끌고 간 문장의 끝에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는 서술어를 배치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복고적 서정에 머물고 있는 점, 작품마다 그렇게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 점 등이 걸리기는 했으나 작품마다 연륜의 무게가 느껴져서 당선작으로 밀었다. 당선을 축하하며 삶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한 사람만을 선정해야 하기 때문에 선정하지 못한 ‘Vicent Van Gogh’를 쓴 시인 역시 어디서든 상을 받을 만한 시인이라고 생각하며 정진을 바란다.

 

- 심사위원 : 도종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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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며 외 4편 / 천향미

 

 

길에 대한 명상은 첫 호흡부터 숨이 가빠왔어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오른 타워 전망대에서 산복도로가 있는 마을을 내려다 본 적 있었어 비늘을 세운 뱀 한 마리 산허리를 휘돌아 바다 쪽으로 꼬리를 감추었어 가난한 사람들의 공화국은 산의 칠 부 능선에 자리하고 있었으므로 예고 없는 쓰나미에도 흔들리지 않았어 방주 같은 마을버스가 실어 나르는 소식은 자주 덜컹거렸어 유리창에 표기된 937번 번호표는 평화의 상징이 되지 못한지 오래 되었고 창틈으로 새어나온 소음이 자동차 바퀴에 깔려 불구의 언어로 너덜거렸어 소화되지 않은 날 것, 비탈길에서 체증을 앓을 때

 

막다른 골목이 허공을 지우고 계단을 만들었어

 

 

 

 

모노레일

 

 

전신암검사(PET-CT) 진료기가 사내를 스캔하기 전

의사는, 눈을 감고 두 팔을

머리위로 올리라고 지시한다

영락없는 항복의 자세

불온한 영혼이 지구를 베고 누워

비로소 겸허해지는 시간이다

X-Ray조사기 조용히 스크리닝되면서

사내의 몸이 영상으로 치환된다

별안간의 불안한 심중(心中)까지 읽어갔을까

감은 눈 속에서 의식이 흔들리자

영혼의 중심 경고 없이

방향 잃은 채 궤도를 이탈한다

폭풍을 만나 비틀거리던 몸을 세우듯 불안하지만

곧은 직선 위를 달리고 싶은 사내

손상되어 폐기하려던 마음의 횡단면 한 장

마그네틱에 재빨리 입력한다

검사를 마치고 공명통 속을 빠져나오며

걱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는 아내의 두 손을

모노레일에 달라붙듯 꼭 붙잡는다

자기부상열차처럼 마찰 없이 팽팽한

평행선을 그으며 내닫고 싶은 싸늘한 겨울 한낮

신발등에 안착한 눈송이들 금세 녹지 않는,

 

 

 

 

반시

 

 

운문사 가는 길목 국도변

사내가 씨 없는 감을 팔고 있다

바구니 마다 그렁그렁 설익은 눈망울

잠시 몽상에 잠기는 동안

주홍빛 질펀하게 절집 앞에 풀어 놓는다

맞배지붕 받치고 서 있는

배흘림기둥 오래 바라보던 사내

이태 전 배불러 집나간 아내를 떠올리는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다

늦가을 햇살을 밀치며 일주문이 열리고

밀짚모자 속에 붉은 볼을 숨긴 탁발승

가사장삼을 손차양 삼아 바삐 길을 나선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깨에 멘 바랑이

풍경처럼 가볍다

사내의 눈빛, 잠시 바랑위에 얹혔다가

시계추 되어 흔들린다

더 이상 새가 날아들지 않는 감나무 한 그루

까치밥 연등처럼 높이 매달고

비구니 청정 수도도량을

밤새 비추며 서 있다

 

 

 

 

허수아비와 자전거

 

 

딸아이와 함께 간 허수아비 전시장은

추억이 뉴스가 되는 현장이다

귀밑머리 희끗한 여자가 떠올리는 그림은

어린 시절 채마밭을 지키고 서 있던 키 큰 허수아비

허름한 베옷에 밀짚모자를 쓴 허수아비를 배경으로

다섯 살 딸아이가 V자를 그린다

즉석에서 현상되는 디지털 사진처럼

고욤나무 그늘 드리워진 언덕을 내려오는 아버지,

선명하게 현상 된다

거슬러 올라 바퀴가 멈추는 채마밭 부근

허수아비 멱살을 잡고 공회전 하는 아버지

끊어진 체인이 기억 속에서 이어지고

까르르 내 웃음이 아버지의 안장을 차지하고 앉는다

헛돌던 은륜의 바퀴가 속력을 얻는다

아버지가 밟던 힘찬 페달의 힘으로

 

 

 

 

그림자를 캡처하다

 

 

그림자 하나가 왼쪽 뇌를 갈고 있다

몸을 갖지 않은 4차원의 기호로 표기되는 이름

나는 가끔 그림자의 안부가 그리울 때 있다

기억해낼 수 없는 형체를 어둠에게 물어

더듬이를 붙이고 시크릿 코드로 기록해 둔다

길게 혹은 짧게,

빈번한 입맞춤은 수신규칙이 생략되어 전송된다

몇 개의 점과 선으로 타전되는 모르스(Morse)부호

··· --- ··· --- ··· --- ··· --- ···

내란(內亂)의 징후는 말줄임표로 요약되어

다급한 당신 심장으로 타전 된다

지류를 벗어난 물소리 스며든 골짜기

빛의 발원에 관계한 적 있던 그림자

이끼로 자라고 있다

풀어보면 해독불가의 암호는 없다

12월을 뜨겁게 살았던 순교자의 흔적

골목마다 길게 핏빛으로 새겨져 있다

 

 

 

 

바다빛에 물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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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길에 대한 명상은 첫 호흡부터 숨이 가빠왔다. 한 줄의 시와 만나는 일도 그랬다. 수많은 갈래 길, 그 중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시의 길은 우윳빛 안개에 덮여 일정한 거리만을 보여주었다.

 

시란 어쩌면 미지의 안개 속을 더듬어 내가 또 다른 나에게 도달하는 길, 희붐하던 길이 세밀화 그림처럼 가깝게 다가온다 여리디 여린 실핏줄인 길들과 만나야겠다.

 

멀게만 느껴지던 죽음이 내 가까이서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잦은 부고와 병문안, 예기치 않게 수술방에 들어가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시어머니를 바라보던 일,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3개월 째 투병중인 시숙님···.

 

절박함을 눈앞에 두고 시에 매달렸던 일이 당선의 영광으로 돌아오자 나는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불온한 영혼이 지구를 베고 누워 비로소 겸허해지는 순간이다.

 

TV 뉴스에서 대설(大雪) 소식을 알리고 있다. 세상의 모난 것들 둥그렇게 순해져 길을 잃겠다. 두렵지 않다. 막다른 골목이 허공을 지우고 계단을 만든다.

 

 

 

[심사경위]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는 당선자의 응모작품 모두를 당선작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심사과정에서부터 작가의 역량을 보다 광범위하게 체크하여, 당선자를 보다 자신감 있게 세상에 선보이면서, 정말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공모에 당당하게 당선될 만한 수준인지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로부터 평가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번 신춘문예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공지시 응모작품수를 5편으로 안내했으며, 접수과정에서 5편을 초과하거나 미달한 응모자에게는 보완토록 주문하는 등 응모자 1인당 정확히 5편씩을 접수받았다. 심사의 형평성 때문이다.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는 응모자수가 많건 적건 그 수를 일체 밝히지 않는 것을 전통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양적(量的) 우월감 과시 또는 단순한 숫자놀음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심에서 거르고 또 걸러진 5명의 작품 25편이 본심으로 넘겨졌다. 본심으로 넘어가는 작품들은 응모자 성명 등 인적사항이 완전히 삭제됐다. 올해 심사위원은 세 분이었는데, 채점(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심사는 심사위원간의 작품추천 및 토론방식이 아닌, 심사위원 개별적으로 매 작품마다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각각 점수를 매겨나가는 채점방식이다)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의 심사진행 중에는 심사위원끼리도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모르게 진행됐다.

 

예심은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이 담당했으며, 본심은 권순자 시인(심상등단,주변인과 시편집위원), 신지혜 시인(현대시학등단, 뉴욕예술인협회장), 하상만 시인(문학사상등단, 1회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당선) 등 초·중진을 가리지 않고 선발·위촉된 분들이 맡았는데, 주어진 시간을 초과하면서까지 참으로 신중하고 꼼꼼한 평가 자세를 보여주었다. 이들 심사위원은 모두 시단에서 촉망받는 비교적 젊은 문재로써 응모작품에 대한 보다 신선한 시선, 예리한 관조,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할 정도의 집중력 등으로 심사에 임해 '원 오브 뎀(One of Them)'을 선택하는 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고 평가된다.

 

당선작에 대한 작품평이나 낙선작에 의견 등은 별도로 내지 않기로 한다. 한국문학방송의 신춘문예는 타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과 '차별성(개성)'을 어떻게 둘 것인가를 놓고 매번 크게 고민한다. 심사방식도 타 매체들과는 달리, 매 작품마다 '문법·어법·표현의 적절성', '주제와 내용의 일관성', '감동·느낌', '시적구조와 메타포의 깊이', '작품의 신선감·독창성', '작가적 역량·성장가능성' 등을 구체적 평가항목으로 설정하고, 그 항목들에 미리 배점을 하여 매 작품마다 똑같은 방식으로 채점 테이블을 삽입한 가운데 채점해나가는 방식으로 심사를 진행한다. 이러한 방식은 초회부터 해마다 동일했다. 이번 당선작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각 항목들에서 타 응모자들의 작품보다는 상대적으로 골고루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최종심에 오른 응모자가 누구인지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인비(人秘)키로 한다. 문단에 적지 않게 이름이 알려진 문인들을 포함하여 기성작가들이 상당수 있기 때문에 그분들의 프라이버시 고려가 주된 이유이다.

 

이번 신춘공모에 참여해 주신 모든 응모자 제위께 진심어린 큰 감사와 아울러 아쉽게도 낙선된 분들께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정리: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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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외 4편 / 서상규

 

 

그도 포유류의 유전자로 태어났다

검게 때 낀 옷을 비막(飛膜)으로 접고

막대그래프로 다리를 세워 발자국들이 지나는

지하도 바닥에 거꾸로 매달려있다

생이 뒤집힌 빈 주머니로

허기가 일상이 되어

쥐의 몸통으로 엎드려있다

햇살이 고양이털무늬로 발톱을 숨긴

바깥세상을 피해 그림자의 동굴 속에서

마른 쥐꼬리 같은 손을 내밀고 있다

손금에 절망의 궤적이 음각된

굴레를 드러내놓고 있다

 

마치 잠에 빠진 듯 미동도 없는

그가 꿈속에서 날개를 펼친다

철길에 뻗은 회귀선을 따라

관자놀이에 새파란 정맥을 일구며

유년시절을 향해 날아간다

밤하늘이 따스하게 품은 달빛으로

앙상한 흉곽 가득 양력을 부풀려 닿은 간이역

어둠의 발음으로 쉰 목젖을 감싸며

사투리가 정겹게 흘러나온다

어머니가 청색으로 물든 눈물을 닦아주며

어린 왕자의 귀한 혈통인 양

젖 냄새가 흥건한 가슴으로 안아 준다

태반 속 아기처럼 낮게 엎드린

그도 포유류의 유전자로 태어났다

 

 

 

 

술패랭이꽃

 

구겨진 지폐처럼 파도가 인다

세월의 바람에 접힌 구김살이

서러운 곡절로 실려온다

아픔을 견디다보면 추억이 되듯

상처의 무늿결을 곱게 펼쳐

한 떨기 꽃을 피운 술패랭이,

보랏빛 그늘을 드리운 얼굴에

술기운이 붉게 번져있다

쌍꺼풀수술로 초승달 눈을

보름달로 열어놓았지만

세상이 그믐달로 더 어두워졌다고

지난 시절의 흉터를 휘갑친다

구차한 목숨을 세우기 위해

지독한 돈 멀미에 휘돌리며

홀씨로 날려 섬까지 팔려왔지만

장보고 같은 남정네가 없었겠느냐

속눈썹 한 짝을 뭍에 떨군

인연의 그리운 한때를

꽃술에서 자아낸 무명실로

이불홑청을 시치듯 박아나간다

명치에 말린 응어리를 더듬으며

한 땀 한 땀 풀어놓는 첫사랑에

홍자색 낯빛을 수줍게 물들이며

분내를 폴폴 퍼트린다

사내의 거친 근육으로 일렁이던

파도가 욕망에 부푼 수작을 그치고

죄지은 듯 잔잔해진다

꽃향기에서 이는 파동이

가파른 어깨에 나비의 우화를 깨운다

몽환에 휩싸인 날갯짓으로

술패랭이 꽃품에 간곡하게 안긴다

그녀의 섬이 포근하다

 

 

 

 

마의태자

 

검은 상복처럼 입성에 때 낀

태자가 왕조의 노을빛에

긴 그리메를 늘인 채 걷고 있다

성골의 후예임을 드러내는

불거진 광대뼈와 첨성단 위에 뜬

북극성처럼 형형한 눈빛

은행나무가 단풍든 금관을 씌워주며

알알이 익은 눈물방울을 떨군다

천년 사직을 일으키소서

백성들을 굽어 살피소서

땅바닥에 그림자를 엎드려 통곡하는

가로수들이 한 발 한 걸음마다

곱게 물든 낙엽을 깔아준다

군왕은 눈물을 보이지 않는 법도에

가슴 속에서 성덕대왕신종이 울립니다

만 백성을 지키지 못한 죄인입니다

어찌 하늘을 우러를 수 있겠습니까

고개를 깊이 숙인 걸음에 옥쇄가 찍힌다

왕조를 하직할 게 아니라

왕권을 부흥시키겠다는 결의가

발자국에 돋을무늬로 되살아난다

머리 푼 바람이 태자의 큰 뜻을 읽고

서라벌로 파발마를 달린다

햇무리를 두른 환두대도의 칼날을

어둠이 칼집 속에 고이 품는다

밤하늘에서 폭포가 용틀임하듯 쏟아지는 

황금달빛의 물보라가

선왕들의 별자리를 새겨놓는다

혈맥이 뜨겁게 파동치는 지문으로

역대 왕의 이름을 짚으며

노숙자사내가 금강산골짜기 같은

서울역 지하도의 유배지에 든다

 

 

 

 

오이꽃

 

느낌표로 자란 오이 끝에

바짝 마른 꽃잎이 붙어있다

일생의 굴레를 두른

꽃자리에 어머니가 보인다

 

넝쿨로 뻗어 올라간 비탈에

밭 한 뙈기를 일군다

잎새의 호미질로 김을 매는

광합성에 땀방울이 돋아나

거름으로 발효되듯 뚝뚝 떨어진다

밭이랑이 뼛속 저리게 뻗은

지친 몸으로 노을을 끌고 와

초저녁별로 밥을 짓는다

달빛 분화구 같은 허기로

식구들이 밥 한 그릇을 비울 때

멀건 숭늉으로 끼니를 때운다

자식들의 열매꼭지가 자랄수록

목숨을 세우는 삶이 등을 짓누른다

강파른 세월의 궤적으로

마른 살에 주름이 늘어난다

관절이 닳은 무릎의 통증에

아무도 몰래 잠을 설치며

낮달같이 고된 일에 매달린다

변성기의 굵은 목청으로 여문

자식들이 푸른 화살을

세상 밖으로 쏘아 올린다

 

정수리의 백회혈(百會穴)에 뜬

어머니 별자리에서 번지는

오이꽃향기가 몸속 구석구석을

충만한 기운으로 밝힌다

 

 

 

 

푸른 논을 보다

 

막 떠오른 햇살로 촘촘히 짠

밀짚모자를 쓴 지리산이

섬진강의 물빛 흰 고무신을 신고

논두렁에 난 물꼬를 본다

지난밤 별빛의 꽃가루받이에

벼꽃이 하얗게 피어있다

배흘림줄기에서 입덧하듯

알슨 이슬이 청청 매달려있다

햇발에 돋아난 삽날로 고랑을 쳐

수로에 피돌기 기운을 채운다

잎사귀 푸르른 혈청과

물비늘의 백혈구가 무논에 일렁인다

오뉴월 볕이 거름빛으로 발효되어

굵은 땀방울로 맺힌다

지리산이 이맛전을 닦기 위해

모자를 벗은 선한 눈매가

황금이삭의 알곡을 닮아있다

간곡하게 풍년을 기원하며

산모같이 뱃구레를 부풀리는 논배미

뿌리 끝 태동이 잎줄기로 뻗친다

살여울을 일구며 돌아온 은어의

수박 향 비린내가 물살에 실려와

대궁 속 물관을 휘감아 오른다

하루의 충만한 노동으로

햇무리에서 노을이 풀린다

해거름에 꼴을 한 짐 진 아버지

고샅까지 마중 나온 아이의

작은 동산 그림자를 앞세워

천왕봉이 사립문을 들어선다

 

 

 

 

철새의 일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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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경위]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는 당선자의 응모작품 모두를 당선작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심사과정에서부터 작가의 역량을 보다 광범위하게 평가하여, 당선자를 보다 자신감 있게 세상에 선보이면서, 정말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공모에 당당하게 당선될 만한 수준인지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로부터 평가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번 신춘문예는 공지시 응모작품수를  5편으로 안내했으며, 접수과정에서 5편을 초과하거나 미달한 응모자에게는 보완토록 주문했다. 심사의 형평성 때문이다.

 

응모자수는 많건 적건 올해부터 한국문학방송은 일체 밝히지 않을 방침이다. 그것은 양적(量的) 우월감 과시 또는 단순한 숫자놀음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심에서 거르고 걸러진 5명의 작품 25편이 본심으로 넘겨졌다(2009년에는 10명이 본선에 올랐지만 심사위원들의 부담이 컸을 뿐만 아니라, 평가의 난맥상이 다소 감지되기도 했다. 하여, 이번에는 본선 상정 대상자를 크게 압축하였다). 본심으로 넘어가는 작품들은 응모자 성명 등 인적사항이 완전히 삭제됐다.

 

예심은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이 담당했으며, 본심은 김두한 시인(《현대시학》등단, 문학박사), 박남주 시인(《현대문학》등단), 이송희 시인(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최용석 문학평론가(문학박사, 전 중앙대 강사) 등 초, 중진을 가리지 않고 선발·위촉된 네 분이 맡아 참으로 신중한 평가 자세를 보여주었다. 초진급 위원은 보다 신선한 감각, 중진급 위원은 보다 폭넓고 깊이있는 관조 등으로 심사에 임하므로써 전체적으로 보다 객관적인 심사가 이루어지게 하기 위함이다.

 

당선작에 대한 작품평이나 낙선작에 의견 등은 별도로 내지 않기로 했다. 한국문학방송의 신춘문예는 타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과 '차별성(개성)'을 어떻게 둘 것인가를 놓고 이번에도 크게 고민했다. 심사방식도 타 매체들과는 좀 달리, 작품마다 '문법·어법·표현의 적절성', '주제와 내용의 일관성', '감동·느낌', '시적구조와 메타포의 깊이', '작품의 신선감·독창성', '작가적 역량·성장가능성' 등을 구체적 평가항목으로 설정하고, 그 항목들에 미리 배점한 가운데 채점하는 방식으로 심사를 진행했다. 그렇기에, 당선작은 그와 같은 항목들에서 고루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최종심에 오른 응모자가 누구인지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인비(人秘)키로 한다. 문단에 적지 않게 이름이 알려진 문인들을 포함 기성작가들이 상당수 있기에 그분들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으로, 이러한 방침은 계속 이어갈 것이다.

 

당선은 되지 못했을지라도 이번 신춘공모에 참여해 주신 모든 응모자 제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과 진심어린 감사를 드린다. 다음 기회에도 큰 관심과 함께 도전장을 다시 꼭 던져주실 것을 아울러 부탁드린다.

 

― 정리: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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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의 흙 외 4편 / 하상만

 

 

땅을 한 삽 퍼서 화분에 담으니
화분이 넘친다
한 삽의 흙이 화분의 전부인 것이다

언젠가 길거리에서
물을 먹고 있는 화분을 지켜보았다
물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은
한 송이 꽃이었다

꽃에게는 화분이 전부였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한 삽의 흙이면 충분했다

우리가 한 삽의 흙이라 부를 만한 것들이 있다
이를 테면
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동요를
따라 부르던 시간,
열이 난 이마에 올려놓은
어머니의 손
그녀가 내게 전송해준, 두 개의
귤 그림
떨어져 있어도 함께한 것들을 생각나게 하는
짧은 문자 메시지들
그것들은 신이
미리 알고 우리 속에 마련해 놓은
화분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그 속에서 꽃 피는 일은 자연스러웠다

 

 

 


따뜻한 종소리



보리차를 마신 후
컵을 두 손으로 안는다
 
컵이 아직 따뜻하다
내가 언제 이렇게 컵을 간절히
안았던 적이 있었나

컵은 보리차의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다

누가 잠시 머물렀던 기억으로
빈 컵이 나를 데우고 있다

이 기억을 나도 누군가에게로 옮겨 가야하리라

겨울이다
차가운 세상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구세군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한 번 데워진 것은
식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로 전도되고 있는 것이다

따뜻한 종소리가 온 세상에 퍼지고 있다

 

 



간장

콩자반을 다 건져 먹은 반찬통을 
꺼내 놓는다. 반찬통에는 아직 
간장이 남아 있다. 
외로울 때 간장을 먹으면 견딜 만하다.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내가 일으키려할 때
할머니는 간장을 물에 풀어오라고 하였다
몸은 잔뜩 부어올랐지만 가벼운 영혼을
붙잡기엔 아직 덜 무거웠다.

나는 들어서 알고 있다. 할머니가 젊었을 때
혼자 먹던 것은 간장이었었다는 것을.
방에서 할아버지와 시어머니가 한 그릇의 고봉밥을
나누어 먹고 있을 때
부엌에서 할머니는 외로웠다고 했다. 

물에 풀어진 간장은 뱃속을 좀 따뜻하게 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운을 주었다.
할머니가 내게 마지막으로 달라고 한 음식은
바로 그런 간장.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할머니는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었다.
수년 째 자식들은 찾아오지 않던 그 방
한 구석엔  검은 얼룩을 가진 그릇이 놓여 있었다.

내가 간장을 가지러 간 사이 할머니는
영혼을 놓아 버렸다. 물에 떨어진 간장 한 방울이
물속으로 아스라이 번져 가듯
집안은 잠시 검은 빛깔로 변했다.

비로소 나는 할머니의 영혼이 간장 빛이었다는 깨달았다

나는 할머니의 손자이므로 간장이 입에 맞았다
혼자 식사를 해야 했으므로 
나는 간장만 남은 반찬통을 꺼내 놓았다

 

 

 

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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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
날아다니는 잠자리 날개 끝에
찍혀 있는 점이 없다면
잠자리의 날개는
가벼워 보이리라

바람을 제어하는 날개의 묵직한 힘은
저 점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손톱은 손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을 지탱하기 위해
살 속에서 나오는 뼈로 만든 점

어둠 속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첨탑 위의 불빛들
온몸을 세워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나도 이렇게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흔들리는 마음에 점 하나 찍어 놓을 것이다

 

 



사막



띄엄띄엄 나무가 서 있어
여기는 사막이야
사막에서는 나무가 띄엄띄엄
서 있어야 해

사막에서의 생존법칙이란 그런 거지
뿌리가 닿지 않게
되도록 멀리 서는 것
그래서 각자 살아남는 것

우리 곁에 서서 연리지라도 되어 불까
너는 물었지

그러나 나의 토양은 사막인 걸
일주일에 한 번
또는 이 주일에 한 번
그것도 안 되면 한 달에 한 번
그렇게 만나는 것으로
족해

어디에 태어났는지가 중요해
뿌리를 가진 것들이
환경을 바꾼다는 다는 것은 거짓말이야
지구가 둥근 것도 나에겐 불행이야
저 멀리 나를 향해 흔들던
잎사귀 없는 너의 손만
볼 수 있었으니

 

 

 

오늘은 두 번의 내일보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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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우주는 점이었다. 그 점이 고온과 고압을 견디지 못하더니 터졌다. 빅뱅이라 부르는 이 사건으로 우주는 생겨났고 지금도 끝없이 팽창하고 있다. 

시골에서 보내던 몇 년. 봄이 오면 집 앞에 피어있던 목련을 자주 쳐다보았다. 목련도 점이었다. 그 점에서부터 몽우리를 만들더니 마침내 터지는 그곳에 꽃을 피웠다. 벌과 나비들이 꽃가루와 향기를 몸에 묻혀 날아갔다. 나는 그것이 우주가 팽창하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겼다. 

내 속에도 작은 점이 찍혔다. 그 점 역시 스스로를 견딜 수 없어 하더니 몽글몽글해졌고 가슴을 가득 채울 만큼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어느 날 뻥뻥 터지기 시작했다. 터져 나온 조각들이 시였다. 

과학책을 읽고 읽던 찰나 당선 연락을 받았다. 나는 아주 조금씩 붉게 변하던 별과 그 별을 매일 밤 관찰하고 기록했던 과학자를 떠올렸다. 그 별은 우주 팽창의 증거였고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매일 밤을 지새우던 과학자는 내게 시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시 한편을 쓰기 위해 밤을 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나를 넓혀가던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직 몽긋몽긋 솟아오르는 점들이 내 속에 더 있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그 점들을 스스로 눌러 터트려 버리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삶에 변명거리를 마련해준 심사위원님들과 한국문학방송에 감사드린다. 점이었던 나를 세상으로 터트려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린다.


 

 

 

[심사경위]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는 당선자의 응모작품 모두를 당선작으로 삼기로 애초부터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심사과정에서부터 작가의 역량을 보다 광범위하게 평가하여, 당선자를 보다 자신감 있게 세상에 선보이기 위함이다.

이번 신춘문예는 공지시 응모작품수를  5편으로 안내했으며, 접수과정에서 5편을 초과하거나 미달한 응모자에게는 보완토록 주문했다. 심사의 형평성 때문이다.

총응모자는 236명, 작품수로는 1,180편이었다. 예심에서 거르고 걸러진 10명의 작품 50편이 본심으로 넘겨졌다. 당초 5명의 작품 25편 정도만 본심에 부치려 작정하였으나 예상 외로 우수 작품이 많이 인지된 관계로 그 대상을 늘렸다. 본심으로 넘어가는 작품들은 응모자 인적사항이 삭제됐다.

예심은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이 담당했으며, 본심은 김신영 시인(동서문학 등단, 문학박사)과 배찬희 시인(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인천여성문학회 이사), 석정호 시인(월간문학 등단, e문학회 회장), 최용석 문학평론가(문학박사, 중앙대 강사 역임) 등 네 분이 맡아 참으로 진지하고도 꼼꼼한 평가 자세를 보여주었다.

당선작에 대한 작품평이나 낙선작에 의견 등은 별도로 내지 않기로 했다. 한국문학방송의 신춘문예는 타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과 '차별성(개성)'을 어떻게 둘 것인가를 놓고 시종일관 많은 고민을 했다. 심사방식도 타 매체들과는 좀 달리, 작품마다 '문법·어법·표현의 적절성', '주제와 내용의 일관성', '감동·느낌', '시적구조와 메타포의 깊이', '작품의 신선감·독창성', '작가적 역량·성장가능성' 등을 구체적 평가항목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미리 배점한 가운데 채점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렇기에, 당선작은 그와 같은 항목들에서 고루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이해바란다.

최종심에 오른 응모자가 누구인지는 인비(人秘)키로 한다. 문단에 적지 않게 이름이 알려진 문인들을 포함 기성작가들이 상당수 있기에 그분들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으로, 이러한 방침은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다.

이번 신춘문예에는 미국, 아르헨티나, 호주, 독일, 중국 등 다수의 해외동포를 비롯해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은 물론 부산, 경남, 울산, 대구, 경북, 광주, 전남, 전북, 대전, 충남, 충북, 강원, 제주 등 전국 각지로부터 작품이 접수됐다.

당선은 되지 않았을지라도 이번 신춘공모에 참여해 주신 모든 응모자 제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다음 기회에도 큰 관심과 함께 도전장을 던져주실 것을 아울러 부탁드린다.

― 정리: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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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호텔 602호 / 이재성

 

 

독한 럼주병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하급선원들이 돌아온 바다와

떠나갈 바다를 위해서 건배를 하는 사이

호텔 602호는 마스트를 세우고 바다 위에 떠있다.

아니 이미 항진 중인지도 모른다. 바다에서

허무, 낡은 시집의 행간, 해무는 같은 색이다.

점점 깊어지는 밤의 해무

수시로 무적이 길게 혹은 짧게 울리고

J는 아직 조타륜을 잡고 자신의 바다를 항해 중일 것이다. 조타실의 문을 열자

바다 속에서는 해독할 수 없는 안개가 타전되고

나는 이미 길을 잃은 한 척의 운명

해도를 펼쳐 북극성의 좌표를 찾는다.

J도 이 바다를 떠나 희망봉을 찾아 갔을 것이다.

스무 살, 바다를 잡을 때마다

늘 빈 손바닥이었다.

지금도 바다는 나에게 오리무중이다.

늙은 고양이가 친숙한 비린내를 풍기며

안개 속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안녕, 이 하룻밤도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다.

안녕, 나도 사라질 것이다.

J가 누워 있던 침대엔

낡은 바다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이번 항해가 길어질지 모른다.

어쩌면 무사히 귀항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마드리드 항에서 이 호텔은

항해사들로 이미 만원이다.

하지만 이 호텔에는 602호는 없다.

 

 

 

 

 

누군가 스물다섯 살의 바다를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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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소중한 한마디 초심

 

파도 위를 방랑하는 선원들은 마음의 등대를 찾고 있다. 외눈박이 희망의 불빛을 따라 외딴섬처럼 떠다닌다. 하늘길이 열리는 시간, 마지막 별빛마저 낮별로 사라지는 순간, 등대의 편지는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순항을 염원하는 불빛이 선원들의 코끝을 적시면 뱃머리는 가볍게 당신 곁으로 향하고 남은 자들의 바다는 밤이 오길 기다린다. 파도는 잔잔하게 등대를 바라본다. 또다시 떠오르는 태양 앞에선 언제나 등대는 바다를 끌어안는다.

 

꿈속 일렁이던 하늘을 바라보면, 통통 튕기던 기타소리 아스라이 울리던 바다, 톡톡 노크를 하면 희망의 불빛을 볼 수 있을까, 하늘길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기다리던 등대의 편지. 펼쳐보면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한마디가 있었다. ‘초심(初心)’

 

경남신문사와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항상 든든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부모님, 꿈의 시창작교실을 열어 주신 경남대학교 조기조 처장님, 김정대 원장님, 함께 공부하는 자카의 친구들, 국어국문학과 교수님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믿음직한 일명 ‘9명의 꿈에 배고픈 아이들과 저의 소중한 인연들이 있어 제가 이 자리에 선 것 같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희망의 불빛을 가지고 초심 잃지 않겠습니다.

 

 

 

 

[심사평] 몰입, 반전의 시적 매력 뛰어나

 

신춘문예 시 부문 투고자가 지난해에 비해 많았다. 전국에서 많은 작품이 투고됐다. 엄격한 예심을 통해 본심에 올라온 작품도 14편이나 되었다. 소재도 다양하고 시의 맛들도 독특했지만 최종심에 4편 ‘어떤 습격’, ‘장미와 칸나 사이’, ‘록클라이밍’, ‘마드리드호텔 602호’가 남았다.

 

‘어떤 습격’은 노모와 아들이 은행나무를 털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은행나무에서 새를 발견하고 ‘내가 해마다 가을이면 털어낸 것들 모두가/새들의 노란 울음이었나’까지 이끌어 내는 힘이 돋보였다. 하지만 그 힘을 만들기 위해 시가 가진 산문성이 강한 것이 흠이었다.

 

‘장미와 칸나 사이’는 잘 쓰인 시다. 시를 만들어 내는 기술도 남달랐다. 같이 응모한 시들도 잘 다듬어진 시였다. 단지 기존의 문예지에서 읽을 수 있는 익숙함에 심사위원들의 우려가 있었다. 신인의 시에서 볼 수 있는 패기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록클라이밍’과 ‘마드리드호텔 602호’는 같은 수준의 시였다. 어느 것을 당선작을 뽑아도 좋았다. 당선작을 뽑는 것이 ‘진검승부’였다.

 

‘록클라이밍’은 힘과 절제가 뛰어났다. 그러면서도 빠르게 읽히는 속도가 있었다. 암벽타기를 인생에 비유해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날카로웠다. ‘추락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벽을 오른다’는 명제는 누구에게나 쉽게 감동으로 이어지는 시였다.

 

‘마드리드호텔 602호’는 오랜만에 만나는 신춘문예 풍의 시다. 28행의 비교적 긴 시인 데도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만만찮았다. 한 번 읽으면 끝까지 읽게 하는 환상적인 시적 매력에, 바다에 대한 이해력도 뛰어났다. 마드리드호텔 602호에서 시작되는 바다 이야기가 마지막에 가서 ‘하지만 이 호텔에는 602호가 없다’는 반전이 시의 맛을 진하게 느끼게 했다.

 

심사위원들은 숙독과 합평을 통해 ‘마드리드호텔 602호’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진검승부를 겨룬 ‘록클라이밍’의 투고자에게는 내년에도 좋은 시로 만날 수 있길 바란다는 격려를 보낸다.

 

- 심사위원 : 이광석·정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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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氏의 구둣방 / 이미화

 

 

발 끝에 달을 달고 저녁 강을 건너고 있는 허氏

구름처럼 떠돌았으므로 그의 생은

한쪽만 유난히 닳은 구두처럼 삐뚜름하다

그의 구두처럼 다 허물어져가는

옥봉동 산 1번지 아파트에

조등처럼 별이 걸릴 때 저녁하늘은

가난한 마을의 착한 지붕을 건너가면서

지상의 가장 낮은 바닥부터 따뜻하게 어루만져준다

이동전화기 판매점에 다니는 착한 처녀의

구두 뒷굽을 갈아 끼우던 허氏의 남루한 저녁에

잠깐 화사한 웃음이 번진다

이동식 컨테이너 박스에 맞춘 그의 굽은 등 뒤로

따각 따각 처녀의 발걸음이 이동전화기 전화 연결음으로 터진다

중심을 놓고 뒷굽을 맞춘 구두가 흔들린다 

일용할 하루의 노동이 땀 내음 밴 구둣방을 넘보기도 하지만

늘 기우뚱 한쪽으로만 기우는 그의 세상에서

수선 중인 구두는

기운 없는 그의 한 쪽 무릎에서 완성되는 절망이 키운 꿈이다

다시 언제 그의 세상이 흔들릴지 모르지만 이미 구두 뒤축이나

밑창만으로 키워 놓은

환한 세상이 그에게선 자라고 있다

하나 둘 찾아와 박힌 별들의 뒷자리로 들던 그가

창문에 걸린 어둠을 후다닥 걷어내고

달빛 속에서 주춤거린다

볼이 넓고 우직한 신발 속 그의 한쪽 발이

나머지 발의 오늘을 타전한다

 

 

 

 

치통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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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또 다른 변이를 꿈꾸며

 

그와 나의 공통점은 한쪽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늘 삐뚜름하다는 것이며, 차이점은 늘 그는 웃고 나는 운다는 것이다. 구두의 굽이 덜거덕거리면 지금까지 걸어온 구두의 길을 들고 그에게 달려가곤 했었다. 그때마다 그는 구름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을 뒷굽에 끼우고 유난히 빛나는 별을 붙여 주며 나의 슬픔을 동여매어 주었다. 단단히 뭉쳐진 슬픔이 변종이 되어 나를 울렸다. 그럴 때마다 시가 마려웠다. 가끔씩은 시를 짓이겨 강가에 풀기도 했었다. 검은 보자기에 나의 생을 던져 놓고 여행을 떠난 적도 많았다.

 

눈이 잘 오지 않는 분지의 도시에서 낯선 아침을 맞이하는 날, 어제는 함박눈이 앞산을 가렸다. 함박눈이 다 져 갈 즈음 마침내 당선 통보를 받았다. 내 안에 다시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속으로는 펑펑, 알 수 없는 회한의 격랑이 소용돌이쳤다. 분명 울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웃고 있었다. 실실, 웃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분지의 도시에서 1박을 이룬 아침이었다.

 

당선 소식은 울음이 변이되어 나를 웃음으로 가두어버렸다. 그냥 내버려뒀다. 나는 천천히 보자기를 풀어 삶의 연결고리를 풀고 내 이름 석 자를 날려 보냈다. 사유에 갇혀 무겁던 나에게 날개를 달아 주려 한다. 당선은 또 다른 나의 변이 과정이 될 것이기에.

 

겹겹으로, 그리고 천성적으로 슬픔을 달고 다니는 내게 웃을 수 있는 길로 인도해 주신 분이 계시다. 세상의 변방에 선 넓으면서도 낮고, 커다랗고도 여리며, 작고 아픈 것들을 배려하는 맘, 그런 연애의 대상을 찾아 가슴 절절히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시고 시보다 하루의 양식이 다급했을 때 뜨거운 격려로 다잡아 주신 김경 지도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시의 정신을 일깨워주신 박종현 선생님, 김용락 선생님, 창신대 문창과 이상옥 교수님께도 감사 말씀을 드린다. 함께 어둠을 찢고 시의 종자를 찾으러 다니던 시 읽는 앉은 자리 문우들, 낮은 곳을 동행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마루문학 동인들, 작고 여린 변방을 찾아다니며 시를 노래했던 그림내시낭송회 팀들, 감사드리고 싶은 분들이 함박눈처럼 쏟아진다.

 

칠순을 넘기셔도 결코 텃밭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어머니, 아버지 올해는 남은 배추만 봐도 눈물이 난다 하셨죠. 이젠 스스로 김장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은비, 은빈, 진녕아. 시와 일을 포기하지 않는 엄마로 인해 마음자리 많이 비우게 해서 미안해.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분들의 이름들에 뼛속까지 감사의 맘이 젖는다. 보답하는 길은 열심히 습작하고 노래하는 것임을 명심하려 한다. 여리고 낮은 것들이 삐뚜름하게라도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부지런히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려 한다. 시를 보듬을 수 있도록 부족한 글에 따뜻한 손을 얹어 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심사평] 시적 긴장 아쉽지만 가능성에 기대

 

지난해보다 응모 작품은 줄었지만 작품 수준은 뛰어났다는 것이 올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의 중평이었다. 예심에서 본심으로 올려 보낸 작품 중에서 오르골’ ‘몽골숙희’ ‘허씨의 구둣방3편의 시를 최종심에 두고 심사자의 숙독과 토론이 있었다.

 

오르골은 맑고 아름다운 시다. 시 속에서 오르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런 서정적 특성에 비해 주제가 약한 것이 흠이었다. 남들이 쉽게 공감하는 주제가 아니라 신춘문예 당선작이 가지는 독특성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몽골숙희는 다문화시대를 대변하는 개성 있는 주제의 시다. 그 시선도 건강하다. 그러나 시를 끌고 가는 변주가 평범하다. 평면적인 구성이 아닌 좀 더 입체적인 구성이 앞으로의 시 창작에도 필요할 것 같다.

 

허씨의 구둣방을 두고 심사자 간의 이견이 컸다. 시를 두고 장시간의 토론도 있었다. ‘허씨의 구둣방은 따뜻한 시고, 세상으로 보내는 시적인 메시지가 희망적이다. 그러나 시적인 긴장이 다소 늘어지는 것이 문제였다. 함께 투고한 시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사를 죄는 듯한 압축이 필요했다.

 

심사자들은 올 시 부문에 당선자 없음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그러나 1년에 한 번의 기회가 돌아오는 신춘의 자리인 만큼 다른 시들에 비해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진 허씨의 구둣방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당선자는 난산 심사 끝에 시인으로 출발하는 만큼 앞으로 경남신문 신춘문예가 배출한 한국 시단의 좋은 시인, 치열한 시인으로 빛나길 바란다. 본심에 오른 분들과 하늘에 상현달이 뜬다’ ‘꽃무릇’ ‘보따리 판타지’ ‘장수풍뎅이 우화기의 투고자들에게도 격려를 보낸다.

 

- 심사위원 : 정일근·김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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