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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향기 / 김은아

 

 

생선뼈만 남은 개 밥그릇에

개미가 아우성이다

시간이 지나자, 삶의 살을 뼈만 남긴 채

말라가는 빈 밥그릇에서

시간을 붙잡고 보시를 하는 중이다

 

한 때

거친 바다를 헤엄쳐

푸른 꿈을 키웠을 너

어쩌자고 사람들 입 속까지 들어와

피와 살이 되고 마침내 개 입에서

생을 마감하는 너에게서

제비꽃 향기가 난다

 

햇볕이 개 밥그릇을 헤집는데

생선뼈는 온 몸으로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다

 

비워라, 그릇

 

 

 

 

 

흰바람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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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언어를 주물렀던 시간들 소중한 내 인생의 동반자   

 

집안에 들어 앉아 있어도 허허로운 바람이 칼날같이 몸에 스미던 날, 길을 나섰다가 풍성하고 화려한 눈발을 만났다. 

 

누구에게라도 환한 인사를 건네고픈 때에 마침, 하늘이 내 어깨를 다독여주듯 하얀 눈이 내려앉았고 그 하얀 미소처럼 반가운 당선 소식을 들었다.  

 

지금은 폐강이 되어버린 광주여성발전센터에서 처음 문예창작 공부를 시작했다.  

 

늘, 꿈꾸며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시들은 언제나 나를 꿈틀거리게 했다.   

 

때론, 절망의 늪에서 헤매 일 때도 있었지만 묵정밭에 묻어 두었던 풀씨들이 하나 둘 싹이 나올 때의 기쁨은 산고 끝에 얻는 축복이었다.   늦게 시작한 공부가 운명처럼 다가와 내 언어의 뼈마디를 주물렀던 시간들, 

 

구석에 던져진 글들을 보며 미처 피어나지 못한 말들이 쌓여갈 때, 벼랑 끝에 혼자 서 있는 것 마냥 두려웠던 날들…

 

이 자리에 오기까지 가족들의 가슴 따뜻한 사랑이 있었기에 진심으로 고맙고, 나의 이 감성을 키워준, 바다 건너 늘 자식들을 위해 새벽 기도를 나가시는 고향에 계신 우리 엄마께, 이 영광을 드리고 싶습니다.

 

서툰 습작에 게으름 피울 때마다 귀한 말씀 해 주신 박경자 교수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늘 마음 아끼지 않고 용기 주셨던 김양기 교수님, 박한실 교수님, 이윤진 교수님, 강경호(시와사람)교수님께 감사를 드리며, 같이 공부했던 문우들과 해솔 문학 동료들에게 고맙고, 부족한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무거운 책임감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흔들리는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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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제비꽃향기' 이미지 전개 깔끔 시적 성취도 높은 작품들 많아  

 

제22회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작이 초등학교 6학년 학생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생을 비롯하여 60대 나이에 이르기까지 무려 883편이었다. 지역적으로도 과거 광주·전남 위주였던데 비해 호남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강원도에서부터 서울, 경기, 충청, 경상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인 분포를 보여줘 서울 중심의 신문에 뒤지지 않는 뜨거운 호응을 보여주었다.  

 

신문사 측에서 요구한 심사 규정은 우선 표절 여부와 기성 문인으로서 문단 활동을 하고 있는 응모작은 심사에서 제외해달라는 거였다. 설령 심사위원이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당선되었더라도 후에 밝혀지면 당선을 취소하겠다는 뜻을 심사위원에게 강력하게 주지시켰다. 신문사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응모자의 정성과 노고를 생각하며 긴 시간 동안 심사에 임하면서 다음과 같은 작품들은 먼저 탈락시킬 수밖에 없었다.  

 

즉,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작품, 완성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습작, 탄식과 기도문 등 감정노출이 심한 작품, 수필 같은 산문과 시적 구별을 인식하지 못한 작품, 설익은 사회현실 비판, 이미지나 표현이 신선하지 못한 작품, 응모작품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작품, 그리고 자기만의 삶과 개성이 없이 미당이나 몇몇 유명 시인들, 특히 요즘 유행하는 젊은 시인들의 흉내나 냄새가 난 작품들이 그것이었다. 아울러 시가 지켜야 할 언어에의 경배심이 없이 함부로 언어를 다룬 작품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리하여 일단 걸러진 작품은 '송이도의 당산나무' 외 2편, '하모니카 소리' 외 5편, '폐화분(廢花盆)' 외 3편, '고추잠자리 길' 외 3편, '연탄' 외 2편, '하늘' 외 5편, '감나무 그림자' 외 3편, '제비꽃 향기' 외 3편, '헌책방 주인 고영감' 외 5편, '장미와 칸나 사이' 외 9편, '바람과 바람 사이' 외 3편, '계단을 끌고 다니는 여자' 외 7편, '살아있는 장례식' 외 3편, '아버지와 바다' 외 3편, '금강 슈퍼마켓' 외 4편이었다.  

 

이 중에서 다시 최종적으로 '폐화분(廢花盆)' 외 3편, '감나무 그림자' 외 3편, '바람과 바람 사이' 외 3편, '금강 슈퍼마켓' 외 4편, '아버지와 바다' 외 3편을 골랐다. 최종심에 오른 이 작품들은 한결같이 오랜 습작을 거친, 비록 한 두편 정도가 치열성이나 언어를 다루는 힘, 이미지의 조화라는 점에서 응모작의 일괄적인 균일성을 갖고 있지 못한 흠이 발견되었을지라도 당선작으로 뽑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적 성취도가 높은 작품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그래, 바로 이 작품이야!' 하고 추켜들 수 없는, 다소 머뭇거리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소재나 이미지 전개나 묘사나 언어를 다루는 면에 이르기까지 과거 신춘문예 당선작 또는 내가 읽었던 기성 시인들의 몸짓이나 말투와 많이도 닮아 보인다는 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예컨대 소재 면에서 폐타이어나 버려진 냉장고를 떠올리게 한다거나 소시민의 등장 같은 것, 표현 면에서 산문 투의 남발이나 요즘 한창 유행하는 일부 젊은 시인들의 흉내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 마침내 '제비꽃 향기' 외 3편을 당선작으로 밀기로 결정했다. 당선작인 '제비꽃 향기'는 우선 감정의 억제를 통한 이미지의 전개가 군더더기 설명이 없이 깔끔하다. 뿐만 아니라 '개 밥그릇'과 '개미'와 '햇볕'이 하나로 어우러져 '제비꽃 향기'를 뿜어내는 우주적 통찰력 또한 돋보인다. 특히 마지막 연인 '비워라, 그릇'은 이 작품의 시안(詩眼)에 해당하는 것으로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 같은 시인의 내적 통성 같아 든든하다. 물론 함께 응모한 다른 3편의 작품들도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이 시인의 시적 역량을 믿을 수 있게 한다.  

 

아쉽게 탈락한 분들께는 격려를, 당선한 시인에게는 축하를 보내며 당선작에서 보여준 시적 긴장처럼 이제부터 험난한 시의 여정이 새로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긴장해주길 당부하고 싶다.

 

심사위원 허형만 (목포대 국문과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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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정탱 안을 습관적으로 엿보다 / 윤은희

 

 

1
골목의 연탄 냄새 부풀어 전생의 어스름 빛으로 울적한 저녁
길바닥의 검푸른 이끼들 엄지손톱 半의 半 크기 달빛에 물들었다
아르정탱Argentan*에 맨발로 들어가 자주 꾸는 꿈 벗어두고 나왔다

2
예전에 방앗간이었다는 전설 알고 있다
아,르,정,탱, 하고 불러보는데 안쪽 벽 타고 '돌돌돌' 물소리 흘러내린다
남자들의 이야기 소리, 쉼 없는 흐름에 세월 함께 묻혀졌다
무대 뒤쪽 갤러리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 리베라의 The Flower Vendor를
힐끔, 끌어당기고 있었다
사계절의 호흡이 울다가 지쳤나보다

3
나무로 된 제단(祭壇)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높지 않은 천장과 벽을 지나 기억字 다락방에 들어갔다
먼지 깔린 마루 위, '다락방의 미친 여자'가 눈꺼풀 깜빡인다
습기 묻어 닳은 웃음 나무 계단을 미친 듯 닦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곳에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없었다

4
하루 종일 굶었다
마티니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리에 은그릇 반짝거림이 딸꾹질 한다
이슬 맺힌 잎사귀 후려치는 듯, 벽난로의 기둥이 꽃화분 훔쳐보고 있다

5
미친 여자의 하이힐처럼 똑딱대는 子正무렵
오늘은 '도둑맞은 시간에 걸어오는 연인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연인을 능욕한 천박한 권태는 그녀의 머리카락 끝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손도 닿기 전에 시들기 시작하는 마른 허브잎
그날은 불안을 잠식하는 비를 맞고 집으로 돌아 왔다
의심은 달착지근한 냄새로 붙어 있었다

6
詩를 생각하다 그만,
생선 눈알처럼 벌겋게 달구어진 子音들, 꼭꼭 밀어 넣어 반죽한다
슬픔 뚝뚝 떠내어 '대리만족' 이라는 수제비를 굽는다
기호를 품지 않은 낱말 대리만족을 모른다
세상의 조롱거리 내 몫이 아니지

7
물안개 추파秋波처럼 미끄러지다 까무러치는 호수 주변을 손잡고 뛰었다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하겠다던 맹세는 황사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갑자기 입술의 냄새는 서걱거리는 먼지처럼 까칠해졌다
사나흘 내린 비 끝에 다시 아르정탱에 갔습니다
본능의 능숙함이 당신의 입술을 더듬거렸습니다. 당신의 입술은 나의 미각만을 기억할 뿐
두 시 방향으로 기운 햇살의 온화함이 묻어 있어요

8
주인장
오늘은 Leonard Cohen의 Famous Blue Raincoat를 들을 수 있겠소
내 인생이 파편으로 취급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지요
약하게 슬어지는 音調, 불구가 된 기억에는 없다
건너 편 테이블의 핑크재킷과 홍차 사이에는
말해야 하는 것이 있음에도 말할 수 없는 어색함 감돌았다
다만 성스런 스푼이 빛바랜 비단옷 차림으로 춤추고 있다

9
그날은
교리의 꽃봉오리에 충실한 교회 사람들
마음씨 좋지만 우둔한 젊은 청춘들 빈틈없이 가득 차 있었다
매끈하게 빠진 조약돌 하나 주머니에 넣고 땀이 나도록 문질러도
손이 헤지 않을 그런 신부와 결혼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각별한 의식儀式
주인장이 누구에게나 봄소식 하나 던져 준 날이다

10
오늘은
여자들 불편하게 하는 소박한 음악 연주회가 있어요
콘트라베이스를 든 남자의 팔뚝이 검게 그을다만 남성성을 과시하고 있어요
첼로의 숨결소리, 매일 밤 떠오르는 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카스트라토를 죽이지는 마세요
수족관의 주홍빛 물고기들
살아, 살아 외침을 거듭하고 있다
함께 살고 싶어 안달하는 소년 소녀를 위로하는
무조건적인 달, 높이 떠올라
호수는 물안개의 소름으로 노닥거리고 있었다
(손끝 적셔주는 빗방울 떨어져 분열증 낚아챌 때,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해요)

11
한 사람이 두 사람을 기다린다
서로 같은 나라 말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 사람은 표준말에 서투르고, 다른 한 사람은 사투리에 서투르다
그런데 표준말을 잘하고 또한 사투리도 잘하는 사람이 죽는다
무슨 뜻, 어떤 의도였는지 아무도 모른다
관객들은 짐작만 할 뿐

12
남자 둘 여자 하나
쭈그린 술친구들입니다
한 사람의 맹세가 나뭇가지 위 잔설殘雪에 반짝이고 있어요
술 그리고 여름날의 여자만 저울질하겠다 말했지요
맥주의 쓴맛을 혀 위에 굴리며 곁눈짓으로 농담을 엿들었다
혼자 잠드는 침대처럼 사는 게 아쉽다고 느껴질 때면
Bevinda의 “다시 스무살이 된다면”이 떠올랐어요

13
'장미빛 인생'을 닮지 않은
장미 입술에 입맞춤 한다고 장미가 웃겠어요
오히려 우리가 울었지요
그대 떠났을 때 나는 온통 그림자로 드리워질 거예요
건너 보이는 트라이엄프 아파트의 커튼 찢겨져 방향 없이 나부낀다
不在의 냄새, 비온 후의 버섯이 되었다

14
서리 내리는 차가운 11월
골목길 빠져나오는데
검은 상복 벗어던지지 못한 숙녀의 얼굴 빤히 쳐다보는 여름날의 구름은 못내 불편하다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을 염려하고 있는가
구름의 맥박은 거의 고동치지 않았다

15
밤이면 내 꿈을 흔들어 놓던 그대는
홀린 듯 둥글게 닫힌 가방을 열고 몰래 감추어둔 햇빛을 쏟아 부었다
- 숨쉬기 운동에는 적당한 햇빛이 필요해

16
큐피드의 화살을 맞고서,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경절형 심장이
베네딕트 여자 봉쇄 수도원 55m 종루에 사로잡혀 길게 하품하더니
졸음을 재촉하고 있다
다트의 화살은 한 방울의 피도 남기지 않고 쏟아내는구나

17
빵 굽는 냄새 속,
기억은 회초리 맞은 情에 사로잡혀
한낮의 깊은 그림자 소진해 버렸다
걸어 두어 목이 잘린 꿈 외투 걸치듯 입고 나왔다

* 대구 수성구 파동 664번지에 있는 카페

 

 

 

 

아르정탱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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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숨쉬기 운동에는 적당한 햇볕이 필요해

 

지난 두 해 동안 詩와 나는 서로 의존하며 살아왔다. 시가 그 모습을 가지게 되는 시각화(visualization) 작업을 통해, 이해하고 양육하며 내 인생이 파편으로 취급당하지 않도록 협력하였다

 

당선 소식을 접하는 순간, 상상력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부자가 된 기분이다. 거친 들판을 가로질러 별안간 봄이 오는 것 또한 보인다.

 

詩의 양식을 혼자 먹어야 하듯이 시인에게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있다. 그러나 오늘의 그것은 슬픈 교만이 깃든 기쁨의 눈물이 되리라

 

벽돌이 가득 든 배낭을 어깨에 올려놓은 중압감을 잠시 내려놓고 기쁨은 상속된다는 의미를 새긴다

 

이 시대 여성의 미덕이 ‘타인을 배려하는 윤리ethic of care'라면 그 주제어에 대한 가치 깊은 천착(穿鑿)이야말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여성의 문학적 역할과 그 파급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으리라.

 

당선작이 ‘잘 빚어진 항아리’와 같은 훌륭한 작품은 아닐지라도 “결정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르헤스의 말을 변명으로 대신하면서 앞으로도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글읽기와 글쓰기는 계속할 것이다. 

 

부족함이 많은 저에게 도약할 수 있는 열정의 꿀씨를 던져주시어 초심자의 마음으로 자신을 독려하고 삭정(削正)하라는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호흡이 긴 시”,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말로 시 앞에서 직면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 울산대 구광렬 교수님, 17년 동안 시와 반시를 이끌어온 구석본 교수님 그리고 손진은 교수님, 김상환 선생님, 고희림 시인께도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사랑을 표현하기에 서툴기만한 가족과 시와 반시 전체 회원님들 이 기쁨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새해에는 언어의 영매가 되어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넓어진다.

 

 

 

 

[심사평] 시적 요건 장치 담긴 총체적 기상도

 

'신춘문예'는 한 신문사의 대단한 일년농사다. 그리고 이 일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에겐 두꺼운 지층을 열고 나온 새싹의 그 파릇한 정신과 가능성을 보여드리는 일이다.

 

세상이 저물고 나서야 떠오르는 얼굴, 새해의 일출이다. 무등산의 저 너른 오지랖을 덮어버릴 넘치는 그 일출 같은 생명력이 당선자라면 이것만으로도 '신춘문예'가 작품을 읽어낸 독자들에게 보답하는 의미가 될 것이다.

 

예심을 거쳐 최종심에 남겨진 작품들은 '트래픽 잼', '새벽, 삼당 민박집 콩밭을 걸으며', '엄마가 움직이지 않아요', '프레임 아웃', '하회탈', '딱지를 접으며', 그리고 당선작으로 뽑은 '아르정탱(Argentan)안을 습관적으로 엿보기' 등이었다.

 

이들 작품들은 저마다 신인에게 필요한 패기와 발랄함, 시적 개성 등이 숨쉬고 있어서 어느 작품을 당선에 올려도 손색이 없겠다 싶었다.

 

허나 선택에는 항시 '보다 더 좋은'이라는 조건이 걸리는 터여서 '아르정탱…'이 뽑힌 것이다.

 

당선작은 우선 시적 길이부터가 근년의 경향에서 조금 예외이다싶게 장시적 모습을 띠고 하나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그리고 당선작이 지닌 장시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갖가지 시적 여러 요건이나 장치들이 담겨 있어서 그야말로 시에 대한 총체적 기상도를 읽어낼 수 있다.

 

이같은 길이를 파탄 없이 끌고 가는 시인의 저력이 돋보였고 후일의 야심 또한 읽을 수 있었다. 적어도 손끝에 달린 몇개의 감각과 재주로 세상에 덤비는 얄팍함도 덜어낼 수 있었다.

 

덧붙여 동반 응모작품 또한 고른 수준을 보인 점도 이 시인을 더욱 미덥게 한 부분이다.

 

그래서 '아르정탱…'에게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당선작'이라는 배 한척을 내어드리기로 한 것이다. 응모자 모두의 건승을 빈다.

 
심사위원 김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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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 박문혁

 

 

아버지가 다리미 하나 들고 세상 한가운데 섰다. 비록 세상이 알 굵은 초벌사포처럼 거칠다 해도 창가에서 응원가를 불러주는 벽돌만한 금성 라디오 벗 삼아 묵묵히 하루를 다렸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감은 손목이 아리도록 다림질을 강요했지만, 세상을 배우는 수업료라 여겨 한번 숙인 고개를 좀체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점점 달인이 되어가던 아버지.

 

아버지는 다리미로 세상의 모든 근심을 다렸다. 장마 끝으로 축축해진 무등산 호랑이 가죽도 다리고, 학동과 지원동을 돌며 바다를 파는 목포댁의 생선 비린내도 다리고, 매번 귀가할 때마다 술에 취해 흥얼거리는 막노동꾼 김씨의 흘러간 노래도 다리고, 거리에서 붕어빵을 구워 파는 박씨의 희망도,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시각장애인 송씨의 하얀 지팡이도, 등록금 마련을 위해 연탄배달을 하는 대학생의 굵은 땀방울도 스팀을 먹여 다렸다. 그러나 어머니의 유방암까지 다릴 수는 없었다.

 

이제 그 아버지가 3평 좁은 공간에서 홀로 늙어간다. 지금껏 구겨지고 이맛살 찌푸린 것들, 매끈하게 다려 모두 손님에게 돌려주고 마지막 남은 것이라곤 고작 몸에 걸친 한 벌 외로움 뿐. 하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아버지는 자신의 외로움을 다리지 못한다. 늦은 밤 나는 아버지가 벗어놓은 외로움을 빳빳하게 다려서 어머니 영정 옆에 슬쩍 걸어놓는다.


미사일처럼 세워놓은 다리미가 어둠을 다림질하며 하늘로 솟아오를 듯.

 

 

 

 

[당선소감]

언젠가 모 잡지에서 '에디슨'이 8톤트럭으로 10대 분량이나 되는 공책을 유품으로 남겼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그가 인류의 발전에 공헌하는 수많은 발명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저는 문학계의 '에디슨'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홀로 고독한 언어의 칼을 벼려왔습니다. 그리하여 2년 전에는 불교신문과 경향신문에 단편소설이 최종심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북망산 초입에서 유언장을 쓰는 각오로 시와 소설을 쓸 것입니다.


이름 석자를 떠올리면 금세 톱밥난로가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를 논할 때마다 늘 용가리가 되어 불을 뿜는 한상원 선생님과 장승에 혼을 불어넣는 김진문 시인, 내가 힘들 때마다 격려를 적립해 주시는 국립나주병원 위성광 씨, 그리고 청포도문학 동인 여러분에게 신의 가피가 함께 하기를….


아울러 아직 혀가 덜 풀린 저의 음어에 따뜻한 오리털 눈길을 보내주신 생면부지의 심사위원님과 이 행사와 관련해 수고하신 분들, 문화부 기자님, 무등일보사에 잠수정처럼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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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좋은 시는 참신한 발상과 세련된 말맛의 활용에서 온다. 참신한 발상은 전복적 상상력, 역발상, 반상합도 등의 언표로 요약되는 새로운 상상력을 뜻하고, 세련된 말맛의 활용은 활기 있고, 윤기 있고, 기품 있는 언어의 활용을 뜻한다. 물론 이런 뜻을 갖는 시를 쓰기는 쉽지 않다. 그것 자체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전체의 진전된 심미적 의식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이것이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1천500편이 넘는 시를 읽은 기본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일차 예심에 통과된 작품은 모두 10편이었다. 박문혁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박월출의 '눈은 내리고 나는 걷고 걸어', 천순덕의 '가슴앓이', 김석윤의 '고비를 횡단하다', 박석준의 '은행 앞, 은행잎 뒹구는 여름날', 홍경화의 '허브향을 맡으면 속이 쓰리다', 박명남의 '떠나야 할 때', 김화정의 '코스모스와 여자', 장화숙의 '구절초 제국', 최영희의 '알흔섬'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작품 중 최영희, 장화숙, 김화정, 박명남의 시는 정서의 범주가 크고 굵지 못하다는 점에서 맨 먼저 제외됐다. 이어 박석준의 시와 홍경화의 시도 감각이 새롭고 언어가 활달하다는 점에서는 관심을 끌었지만 그것 이상이 없다는 점에서 제외됐다. 곧바로 김석윤의 시도 제외시켰는데, 이 시 지니고 있는 건강한 노동의식을 나머지 시들이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천순덕, 박월출, 박문혁의 시를 놓고 장고에 들어갔는데, 최종 당선작으로 선택된 작품은 박문혁의 시였다.

 

천순덕의 시가 제외된 까닭은 작품의 스케일이 작지도 했지만 발상이나 언어의 운용 면에서 좀더 기다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박월출의 시는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며 자신의 의식과 언어를 닦아온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사를 맡은 사람을 주저하게 했다. 맨 끝까지 남은 박문혁의 시도 모든 면에서 다 흡족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선작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는 장중한 정서를 바탕으로 건강한 노동의식 및 아버지로 대표되는 시간적 동일성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두루 주목이 되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보내고 낙선자에게는 내일의 영광을 빈다.

 

심사위원 이은봉(시인·광주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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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죽을 끓이며 / 임혜주

 

 

그새 또 잊었다
오랫동안 또글또글해졌을 팥
웬만해서는 풀어지지 않는다는 것 시간이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어서
옹골지게 굳은 팥에게도 껴안았던
햇빛 다 풀어놓을 시간이 필요한 법
한 시간에 해치울 욕심 놓아두고
약한 불로 되돌린다 그제서야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하는 선
믹서에 마저 갈아 체에 거른다
헤쳐진 살 고루고루 퍼지게
잘 저어야 하는데 반죽 다듬는 사이
파르르 넘친다 아, 이 불같은 성질
저어주지 않으면 밑이 타고
위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고야 마는
천천히 저어야만
지 성질 온전히 풀어지는
압축된 열
그래서 팥죽은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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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은유로 세상살이 감싸 안고 싶어"

마을 입구는 하루에 한번 기차가 지납니다. 철로는 닳아질대로 닳아져서 아스팔트와 거의 평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반짝이는 하얀 선이 그곳이 기차가 지나는 곳임을 알게 할 뿐 별 흔적은 없습니다 . 그래도 기차는 때가 되면 느릿느릿 갑니다. 기차는 방금 지났던 기억의 힘으로 평지처럼 밋밋한 선을 지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철로를 지나면 참 오래된 마을이 있습니다. 그곳은 한 오십년은 넘었을 건물들이 쓰러질 듯 서 있는 곳입니다. 어느 집은 1층과 2층 그 사이가 타원으로 주저앉은 곳도 있고, 언덕을 타고 흘러내린 절벽 한 귀퉁이에는 여인숙 간판이 간신히 기대어 서 있기도 합니다.

그 동네 사람들은 집 앞에 벽돌색 고무 함지박을 내놓고 상추를 키우고 파를 키웁니다. 아침이면 발 내린 샷슈문 앞에 할머니들이 나앉아 마늘을 까고, 리어카가 느리게 지나며 말린 갈치를 팔기도 하는 곳입니다.

그곳을 오간 지가 벌써 몇 년이 넘어갔는데도 그 마을에 들어서던 첫 느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엊저녁 건져 올린 물것들이 바다 바람 속에 말라가는 그 큼큼하고도 은근한 냄새가 건드려 주던 느낌.

그것은 잊혀졌던 아니면 묵혀 오던 옛것들을 불러오는 냄새이기도 했고, 그냥 그냥 살면서 썩어가던 것들이 풍기는 냄새이기도 했고, 하얗게 선만 남은 철로 위를 안개처럼 싸안고 도는 풍경이 주는 냄새이기도 했습니다

아직 그 냄새가 건드려 주는 것들을 채 들쳐 내지도 못하고 , 한사코 살아남아 있는 반짝이는 쇠의 근성을 다 알아채지 못했는데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쁩니다. 늘 망설이고 주저하고 염려하고 의심하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점점 낡아가고 허물어져 가는 시간 앞에 새로운 문을 내어주신 무등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말없이 응원하고 있는 나의 오랜 님께도 고마움 전합니다.

이제 작은 함지를 골목에 내놓고 푸른 것들을 키우고 싶습니다. 세상에 널려 있는 아픈 은유를 말하고 싶습니다. 지나는 사람들이 제각기 가슴을 들여다보며 도드라진 부분을 쓰다듬을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살아갈 수 있도록.

 

 

 

 

[심사평] "기본적인 시적 역량, 독창성 돋보여"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몽유도원도' 외 4편, '젊은 도서관' 외 3편, '팥죽을 끓이며' 외 2편, '불이 짓는 집' 외 3편, '아우슈비츠' 외 3편, '썩는다는 것에 대하여' 외 3편 등이었다.


'신춘문예'의 성격상 한결같이 신인의 시는 참신해야 하고 진정성이 있어야 하며 튼튼한 시적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새로운 상상력과 언어 사용, 시적인 표현과 리듬은 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이다. 아울러 시적인 기량과 작품으로서의 완성도, 그리고 기성 작품과는 다른 자기만의 체험을 통한 독창적인 내용과 시 형식의 새로움이 요구된다.


소재와 표현기법이 표절을 의심할 정도로 기성 작품의 냄새가 짙거나 어떠한 형태로든 일단 발표되었다고 판단된 작품은 제외시켰다. 또 최종 확인 과정에서 기성 문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응모자의 작품도 제외시켰다.


장시와 산문화, 기존 신춘문예 당선작의 아류는 물론 언어의 밀도가 떨어지거나 추상성으로 인해 주제의식이 선명하지 못한 작품이 많았다. 특히 진부한 소재와 개인별 응모작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지적된 문제점을 극복하고 있는 '아우슈비츠'와 '팥죽을 끓이며'를 다시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응모작의 수준이 고를 뿐 아니라 전체적인 구성이 단단하고 화자의 의식이 과도하게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능력과 신선함이 인정된 '팥죽을 끓이며'를 당선작으로 뽑는데 합의했다. 한편 기성 작품의 흉내나 냄새의 혐의가 전혀 없는 신선한 이미지로 조류독감에 의해 도살처분 돼야 하는 닭의 현실을 아우슈비츠로 상징화한 작품 '아우슈비츠'에 대하여도 장시간 논의가 있었음을 밝혀둔다.

 

심사위원 허형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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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를 펼치다 / 오장근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서편에서 울던
갈가마귀떼가 동편으로 분주했다 한점
멀리 갈대밭에서 사내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오랜 슬픔같은 그의 아쟁이 등뒤에서 먹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한 번도 울지 않았던 그의 두 눈 속으로
노을이 설핏 지고 있었다 낯선 그의 발자국 소리로하여
야트막한 강 언저리에서 몇몇 물고기들이
물밑으로 잠수하곤 하였다 미세하게 출렁이는 강물과 함께
그의 아쟁도 바람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울고 있었다
그의 산발한 머리카락과 어깨를 잘 익은 어둠이 감싸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아쟁을 풀어 내렸다 어둠 속에서 아쟁만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아쟁의 가는 현이 아주 낮게
동심원을 그리자 강물에 한 발을 담그고 있던
풀들이 춤을 추었다 갈대들이 불타올랐다
그의 모든 현들이 몸을 놓아버렸을 때,
일곱 마리의 용들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먹구름 속에서
마른 번개들이 혀를 날름거리며 지상으로 일제히 꽂히고 있었다
동편에서 분주했던 갈가마귀떼가
그의 앞에서 무작정 내려앉고 있었다 강물 깊숙히 잠수했던
물고기들이 차례차례 물길을 차고오르며 수면으로
솟아올랐다 검은 현 사이사이로 은빛 물고기들이 파닥거리며
수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당선소감]

백석을 생각했던 것, 높고 쓸쓸한 이상(理想), 그러면서도 가장 낮은 데로 흩날리는 눈들이 생각처럼 내리는 날이면 가끔, 나도 포족족하니 ‘여우난골族’에 젖기도 했던 것, 시처럼 살았던 그의 발그림자를 따라가다 보면 난데없는 담 밑에 피어있는 그림자꽃이 알 수 없는 사투리로 피기도 했던 것. 허영허영 저 홀로 꿈넘어가는 시인이여! 나에게도 그대의 꿈한자락 잘라주시라.


그리운 이름들을 호명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흰머리의 의미를 묵묵히 알게 해준 아버지, 어머니, 언제나 비껴갈 수 없는 아픔이란 이름이여. 내 삶의 나침반이었던 무거움의 다른 이름 석근형, 한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준 수근형, 그리고 동심원처럼 커지는 가족이란 나이테여, 지금 당신들 이름에 입김을 불어넣어보는 것.


웃음의 중심을 가르쳐주신 장인어른, 지혜의 끝 간 데를 항상 굴리고 계신 장모님, 나의 가장 처음과 마지막을 관통하고 있는 아내 임효진, 씨앗의 의미로 사무치는 나의 아들 창헌, 그들 이름에 축복 있으라!


문학의 꽃대궁을 깊숙이 숨기고 있다가도 불쑥불쑥 나태해진 나를 향해 매운 향기를 날리는 종필형, 문학과 삶의 어쩔 수 없는 도반(道伴) 종호, 한결같음의 또 다른 이름 병희, 사과 같은 풋풋함의 청필, 있음의 없음, 없음의 있음 석우, 그리고 내 문학의 근원 글바람문학회, 선배들과 후배들, 모두들 가는 길에 꽃길 있으라!


마지막으로 심사위원 선생님과 한국문학의 제사장인 박상륭, 그의 작품들에게 특별히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것, 그의 작품들은 살아있는 칼날이요, 경전이며, 스승일지니….


아, 문학의 도가니에 얼음꽃이 난만하다! 가야할 길이 아직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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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사물에 대한 통찰력 돋보여”

예심을 거친 170편의 작품이 본심에 올려졌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시의 구조와 언어의 쓰임이 탄탄한 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산문성이 짙고 장황한 사설로 압축미나 주제의식이 결여, 그리고 신인에게 요구하는 개성과 신선함의 부족도 흠이었다.

 

최종적으로 이와같이 지적된 문제점들을 가장 최소화시킨 작품으로 ‘딱따구리 경전’ ‘대추나무 집’ ‘노인과 그 가문’ ‘李賀를 펼치다’가 집중적으로 검토됐다.

 

‘딱따구리 경전’은 언어의 쓰임이 깔끔하기는 하나 주제의식이 가볍고 ‘대추나무 집’은 언어를 아껴 쓸 줄 아는 시적 긴장이 요구됐다.

 

‘노인과 그 가문’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돋보인 반면 이미지나 구성에서 새롭지 못한 게 아쉬웠다.

 

결국 사물의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언어로 드러내보이는 통찰력과 따뜻한 시선, 그리고 개성있는 목소리로 시를 다뤄가는 솜씨가 돋보인 ‘李賀를 펼치다’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앞으로 등단작에 못지 않는 좋은 시 쓰기만을 고집하는 시인이 되기를 바라면서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허형만 목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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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 / 정경미(정미경)

 

 

빵부스러기를 끌고 가는 개미
개미 가는 길을 신발로 가로막지 마라
끓어질 듯 가는 허리에 손가락을 얹지 마라
죽을 때까지 시동을 끄지 않는
개미 한 마리가 손등으로 오른다
언젠가 허리띠를 졸라매던 아버지
바짝 마른 허기가 만져질 것이다

아버지는 털털거리는 생선 트럭을 끌고
돌무지 비탈길을 누비고 다녔다
생선 상자 위로 쏟아지는 땡볕
신경질적으로 바퀴를 두드리는 돌덩이들
왕왕거리는 메가폰 소리를 뚫으며
식식거리며 아버지는 나아가고 있었다
거친 시동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괜찮아, 내 허리띠를 붙잡아라
그날도 아버지는 덜컹거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손등에 오른 개미를 가만히 내려놓는 당신
개미 앞길에 놓인 돌멩이를 치워준다
멀어져 가는 아버지,
당신의 눈 속으로 기어든 개미가
시동을 건다 여섯 개의 다리가 붕붕거린다.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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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詩作은 ‘현실 감각 무딘 꿈꾸기’

시를 쓰는 그녀는/조금씩 거미가 되어간다네/무언가 걸려들 구석구석에/시신경에서 실을 뽑아 줄을 친다네//가랑잎 걸렸으면 어쩌나/괜찮은 요리감이 걸렸어야 하는데/겨울이 흘려놓은 사연을/폐부 깊숙이 삭히면서/흑백 필름에 빗줄기 서는/기억을 얇게 펴면서/숨죽여 먹이감을 살핀다네//우두커니 앉은 사람 곁에서/칭칭 하루종일 실을 감기도 하고/포크레인 거친 손아귀에 실 엉켜도/눈길 가는 곳이면 거미줄을 친다네/가정법원에 뛰어 들어가/차갑고 미끄러운 대리석에 씩씩거리며/몇 번인가 줄을 친 적도 있다네//오늘도 그녀는 아테나 여신과/최고의 직물짜기를 시합한 아라크네처럼/몸뚱어리로부터 거미줄을 뽑아내다가/뒤엉킨 거미줄을 둘둘말아 잠이 든다네/그 모습이 불후의 시 한 편이라네.(거미시인)

‘간절한 꿈꾸기는 그 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물이 도와주려 아우성친다’는 문장을 붙들고서....나는 꿈꾸기를 좋아한다. 계속해 나간다. 그 꿈꾸기가 나를 밝히고 곁의 사람들에게 밝음으로 다가가기를 꿈꾸는 것이다. 이런 현실 감각 무딘 꿈꾸기에 힘을 북돋아주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시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속 끓이신 김명인교수님과 시모임 선생님들 또한 늘 의지가 되어주는 블루마운틴과 고마운 친구들과 이 기쁨을 같이하고 싶다.


부족한 시에 텃밭을 허락해 준 신문사와 이제부터는 심호흡하여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발성을 하라고 선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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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정신 내적인 질박함 구축 돋보여


다섯명의 응모작품이 최종선까지 남았다. ‘사마천을 읽다’외 4편의 경우 군더더기 없는 시어들과 이미지활용이 눈에 띄었다. 반면 전통적인 소재의 선택이 현재의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확인작업이 미흡해 보였다.


‘궁지댁’외 4편의 응모작은 걸죽한 입담속에 스며있는 삶에 대한 따뜻한 인식이 돋보였으나 이들로써 현대시의 내외적 질량을 채우기에는 아무래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술’외 5편의 응모작품은 탄탄한 습작기를 거치는 과정의 작품이라 생각되었다.


특히 거친듯하면서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생동감을 주었으나 시어와 이미지의 구성력에 있어 치밀한 미적 정제의 과정이 더 요구되어 보였다.


‘노래가 있는 풍경’과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의 두 응모작은 서로의 장단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노래가 있는 풍경’의 경우 크게 드러내는 목소리는 없으나 시의 외장이 세련되게 보였다. 평범한 일상속에 스며있는 삶의 의미를 바라보는 분은 예비작가로서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신뢰감을 주는 바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가벼운 발상과 풍경의 터치가 신인의 목소리로써 그 울림이 작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의 경우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외장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의 노동을 매개로 한 개미의 상상력은 어딘지 진부한 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삶을 정통적인 방식으로 바라보려한 고지식한 작가의 눈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는 바가 있었다.


동봉한 ‘돈 안되는 쑥개떡’ ‘황태덕장에서’와 같은 시편들에게도 이런 질박한 시선은 동일하게 존재했다.


많은 망설임 끝에 선자는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세련되고 자유로워 보이는 외장대신 시정신의 내적인 질박함을 택한 것이다. 삶의 내종까지 끝내 밀고 가는 힘의 가능성에 무게를 둔 탓이기도 하다.


삶의 끝까지 시동을 끄지 않는 개미의 탄탄한 노동처럼 생의 매순간 순간 시의 정신을 추스려 나가는, 거칠면서도 내실있는 목소리를 현대시의 나약한 울림에 경종을 주는 시인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곽재구(시인·순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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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뜰 바다는 멀다 / 임해원

 


어둑 새벽
바다의 낙조가 억새들 꺾인 무릎에 얹힌다
풀씨 같은 초저녁별을 품은 거기
눈이 부셨으나
바닷가에 사는 시인은 늘 바다가 부족하다
바다가 멀리 달아났기에
하늘을 허물어 그리로 흘려 보낸다
새떼들이 날갯짓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시간은 소멸 쪽으로 다가가고
사랑이라는 것조차
무너지는 허당을 어찌하지 못한다

떠나보내야 할 사람들 발을 묶은 섬의 한 끝씩
몸에 갇혀있던 어둠은 물음표를 세운다
주지 않았음에도 받아버린 상처 때문인가
물 위에 뜬 얼굴
괄호에 갇혀 뭉개진다
젊음의 거의를 소진하고도
설명하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갖고 있다는 건
참 다행이다

말없음이 살가워지는 만큼만 세상을 이해하겠다며
어쩌다 늦게 피어난 흰 꽃에 어둠이 앉아
뜰 가득 바다가 출렁이는
하늘은 마침 밀물 때였다.

 

 

 

 

[당선소감] “시를 찾는 길, 겨우 옮긴 이 한걸음”

포도주가 익었다. 제 몸의 빛을 버리고서야 익는 술, 보랏빛이 짠한 이마를 드러낼 때 포도는 넝쿨의 기억을 붉고 선명한 항아리에 풀어 놓는다. 넝쿨은 항아리를 타고 넘쳐 나를 적신다. 그래도, 아직 바다는 멀다. 방파제 끝 수초더미에는 절정의 음역에 닿지 못한 말들이 낮은음자리표로 흐느적거린다. 잠시 헐거워진 삽작문 밀고 나가 오랫동안 살 저미게 가슴을 흔들던, 갈 수 있었으나 가지 않았던 다른 길을 걸어 갈 수 있다니 기쁘고·감사하고·많이 부끄럽다.


시를 찾아가는 나의 길, 한 발자국씩 내딛으며 힘들게 닦아야 할 길이기에 나에게 묻고 싶다. 겨우 옮긴 이 한 걸음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참으로 새로운 이 세상은 내 보폭대로 걸어도 되는 길인가. 무엇을 찾아 무엇이 되려는 길 나섬인가.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길인가. 내게 시란 내앞으로 부딪치다 부서지는 그 어떤 것들에 대한 일종의 자기치료 같은 것 이었다.


그러나 시가 아름다운 구절들의 접합에서 벗어나야 된다면, 시는 의미하는 것이 아닌 존재하는 것이라면, 여전히 버릴 것 버리지 못하는 나의 가난한 허기가 결코 용서되지 않을 막다른 골목길 안으로 내몰린 기분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글을 쓰고 싶으니… 눈물겹다.


일일이 찾아뵈옵고 감사드려야 할 분들을 꼽아본다. 저 먼 경기도 안성 땅에 이제는 순백색 백골로 누워 계실 내 엄마, 오랜 방황 끝에 목숨이 거두어진 후에야 우리들 곁으로 오셨던 아버지, 두 언니, 두 오빠. 나의 지적 허영을 충족시켜 주시던 여러 교수님들, 날마다 넘어져 피 흘리는 나를 반듯이 일으켜주는 내 남자와 착하고 이쁜 내 딸과 잘 생기고 듬직한 내 아들, 기쁘다고, 속상하다고, 아프다고 하면 소주잔을 들어주는 내 오랜 친구들…두 손이 부족하다. 그 분들 곁에서 조용히, 그리고 간절하게 새 길을 바라보고 싶다. 늦은 나이임에도 새 길을 꿈꾸는 오늘이 있음에, 날마다 내 굽은 등에 업히는 옥녀봉의 놀빛이 있음에, 나는, 지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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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조금 서툴러도 미래가 보이는 작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새로운 작품을 읽고 싶다. 이것이 신년의 머리에서 보고 싶은 신인에 대한 기대이다. 신인은 모름지기 새로워야 한다. 신춘문예가 신문사의 명예를 걸고 매년 진행되는 것은 이 정도의 새사람을 세상에 내보냅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새롭다’는 것은 우선 이전에는 보지 못한 맨 처음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


잘 훈련된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투르지만 미래가 보이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 선자가 갖는 욕심의 전부다. 신인은 무엇보다도 기질에 넘쳐야 하고 자신만의 표정을 지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서 시류에 휩쓸려 이래야 되느니 마느니 해가며 제복 입은 사관학교생도들 훈련 받은 것 같아서는 신춘문예 행사의 의미는 이미 죽은 것이 되고 만다.


응모작들 모두에서 받은 느낌은 신춘문예 행사가 일종의 패션쇼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럴듯한 표현들을 패러디해서 짜맞추기에는 능란한데 그 이상은 도대체가 이어지지 않은, 울림 이전의 작품들이 대체적인 추세였다. 그러니까 신춘문예에 출전할 선수 뽑자고 집단 훈련시킨 후 선수로 내보낸 것 같은 작품들이 많았다는 의미이다.


마지막까지 오른 작품은 ‘문원 고물상’, ‘소리의 집’, ‘지하포구’, ‘기억, 혹은 미련에 대하여’, ‘이방인의 뜰-바다는 멀다’ 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상당한 실력도 갖추고 가능성 또한 엿보였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의 그 투의 세계에서 부자유스럽다는 점이 못마땅했다. 당선작으로 뽑은 ‘이방인의 뜰-바다는 멀다’도 폐단은 여전했고 여기에다 서투른 표현 등도 눈에 거슬렸지만 그 서투른 점을 사면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개성 있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여겨졌다. 분발을 통한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김종 시인·광주펜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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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숲 속에서 길을 잃다 / 김경옥


빌딩 숲 어디에 새가 살고 있나
호르르르
호르르르
어느 구석에서 노랫소리 올라온다

(짝을 부르는)
긴 부리 아래
목울대 출렁이는 소리다
푸른 물 위, 깃을 스치며
한 마디 두 마디 가슴선 그려
저수지를 건너오던
빛깔 고운 청호반새
무너진 산허리 붉은 황토
절벽에 지은 구멍집 드나들던
그 새 소리다

탁, 무슨 새? 몰라 그런 거
그냥 벨소리보다 이게 좀 낫잖아

나 떠난 뒤
도시로 팔려와
핸드폰 속 전자음으로 갇혔구나

등허리에 디미는 칼
아프게 밀려오는 그리움
작은 눈 아득하게 감긴다, 돌아보니
사방에서 들린다
휘파람새, 동박새, 오목눈이 울음소리.

 

 

 

기러기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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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새로운 인식.미학적 깊이 고심”

 

머리에 허옇게 디디티를 뿌리고, 껴입은 겨울 내복을 뒤집어 솔기마다 이약을 묻혀 바르던 시절이 있었다. 이성이 아닌 모든 것을 박멸해나가던 대학시절엔 논리의 각이 좁혀지고 날이 예리해지면 진보는 한 치의 착오도 없으리라 믿었던 것일까. 우리는 철망 속에 갇힌 닭들처럼 끝없이 서로를 쪼아댔다. 낭자하게 피가 흐르고 마침내 내장이 꺼내진 한 마리가 죽을 때까지 끝없이 쪼고 분해하던… 그 어느 때쯤이었을 것이다. 몸에서 잘 떨어지지 않으려던 시를 억지로 떼어냈던 것이.

 

언제인가부터 그런 날들이 무망해 보이기 시작했다. 살충제, 제초제의 범람에도 해충과 잡초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용케도 멸종을 피한 서정이나 쓸쓸함, 상상력 따위가 몇 올 살아있었다. 부끄럽고 안쓰러웠다 쓸쓸해 할 겨를도 없이 살아온 나날들이. 그 작은 이파리들에 입김을 불어가며 키워보았다. 이것들이 제대로 자라줄려나, 씨앗을 맺어줄려나, 걱정했는데 희소식이다.

 

시가 새로운 인식의 범위에 든다는 말을 아직도 온전하게 내 것으로 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나는 말할 수 있다. 미학적 깊이 없이 사람의 깊이나 올바름의 깊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올라갈 길 아직 멀다. 하마 산허리쯤 올라왔나보다.

 



[심사평] “참신한 발상.신선한 이미지 관심”


많은 사람들이 시(詩)의 시대는 끝났다고 입을 모아 비쭉대고 있다. 하지만 신춘문예 응모작 수를 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올해 무등일보 신춘문예에는 무려 750여편이 응모됐다. 응모자의 직업도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주부, 교사, 자영업자 등으로 다양했다.


결심에 오른 작품은 6편이었다. 김경옥의 ‘빌딩 숲 속에서 길을 잃다’, 박자경의 ‘氷魚’, 이종숙의 ‘길 위의 식사’, 금별뫼의 ‘소리의 집’, 김범남의 ‘마음의 소도’, 임해원의 ‘칠불사 일주문 앞 연못에는 간짓대 하나 걸쳐져 있다’ 등이다. 모두 일정한 예술성과 나름의 문제의식을 지닌 작품이었다.


비유도 화사하고 리듬이며 구성도 정밀한 이종숙의 시는 충분히 뛰어난 심미적 세공을 거친 작품이었다. 하지만 함께 응모한 작품들이 뒤를 받춰주지 못한데다 소재가 다소 낡은 점 등이 한계로 거론됐다. 박자경의 시는 문제의식을 지녔으며 시를 열고 닫는 솜씨도 좋았다. 그러나 주제가 지나치게 노출돼 있고 구성이 단조롭다는 점 등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근대적 삶의 실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김경옥의 시는 참신한 발상과 신선한 이미지 전개 등의 면에서 두루 관심을 모았다. 도시 문명의 현실을 수락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적 자아가 안간힘으로 뒤돌아보고 있는 자연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이 정서적 주조였다. 리듬이 다소 거친 점 등 한계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신진 시인으로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선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숙의 끝에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축하의 말을 전하며, 더욱 정진해 세계적인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이은봉, 김선태(시인·광주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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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는 끝없이 구른다 / 문지원

 

 

드디어 팡파레 소리가 만국기처럼 펄럭인다.
좌석 뒤에 돗자리를 편 가족은
다닥다닥 붙어 앉아 간밤의 꿈을 응원한다
십이월의 바람은 시린 호주머니에 가득하고
배팅 된 전광판의 숫자가 달음질치기 시작한다
박수 소리보다 선수들의 헬맷이 야무지게 빛난다
비탈 진 길에서는 페달을 더욱 세차게 밟아야 한다
함성이 선수들의 붉은 다리만큼 굵어지면
욕설도 응원을 비는 무슨 부적이라고 간간이
카악 칵 가래침까지 뒤통수에 붙여준다
누가 들여왔을까 세 발 자전거, 아이의
작은 발등에 노란 전표가 붙었다 날아간다
경기 막바지에 다다른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빠르다
허기진 오후까지 채워주는 알진 통감자
사람들 입에서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온다
자리다툼하는 바퀴에 햇살이 사납게 퉁겨진다
조금만 더! 저기가 고지다!
선수들의 각진 턱이 페달과 함께 부러질 것 같다
골인 지점을 막 지나가는 바퀴들을 향해
사람들의 눈에선 정밀한 플래시 불빛이 터진다
우승한 선수의 주변으로 환성이 모였다 흩어지고
풀죽은 어깨들이 전표처럼 구겨진다
우승을 점치던 책자들과 빨갛게 벌렁거리던 밑줄들과
차갑게 식은 한숨들이 텅 빈 관람석에 채워지고
갈기갈기 라인이 그려진 가슴들이
하루를 올라타고 페달을 굴린다 갑자기 컴컴해져 오는 저녁을
응시하는 눈동자들, 두 개의 검은 바퀴가
이탈할 수 없는 어둠 속 트랙을 따라 털털털 굴러가고 있다.

 

 

 

 

[당선소감]

 

나는 아주 작은 꿈을 가꾸고 만족하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던 뜨거운 열정은 절망의 다른 이름이었고
나는 기구하게도 그것을 껴안을 수 밖에 없었으며
내가 안았던 것들은 다 재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러 해를 알 수 없는 방황으로 시달려야만 했고
그 대가는 혹독한 상처와 감당할 수 없는 깨달음뿐이었다
혹자는 상처 입은 사람만이 시를 쓸 수 있다고 했지만
그 말은 내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무엇이 나를 이 자리까지 오게 했는지 모르겠다
나에겐 재능도 욕심도 없었으며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시를 갖지 못했다
다만, 시의 마력에 이끌렸을 뿐이고 나도 모르게 휘갈겼던 글들이
부족하나마 시의 형태를 갖게 된 것은 최근이었다
그래서일까 당선의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항상 하찮고 낮은 것들에 내 손길이 닿아 사랑의 문장으로
보살펴질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 드린다
나의 행로를 격려해주시고 지켜봐 주신 부모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늘 옆에서 힘이 되어 준 미경 언니, 시를 깨우치는데 큰 도움을 준 <시처럼> 회원들
그리고 박주택 교수님, 나를 아는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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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참신한 상상력을 연마한 이만이...

 

너무 상식적인 말 같지만 아무나 시를 쓸 수 있으나 누구나 시인이 되는 건 아니다. 삶의 핍진한 경험과 사유의 깊이 그리고 이의 시적 형상화를 위한 참신한 상상력을 연마한 이만이 겨우 몇 줄의 시를 쓸 수 있다는 건 응모자들도 잘 알리라.

 

150여명의 응모자 가운데 이런 요건을 갖춘 경우는 불과 5명정도. 이중 이은규의 '흑백사진 한 장'은 잿빛 아스팔트에 치인 얼룩고양이를 통해 문명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레퀴엠'을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이 돋보였고, 김명희의 '새야 새야 바람새야'는 전통적인 가락의 변용을 통해 '살풀이로 건너가는 무명의 이파리들'의 신음을 읊어낸 점이 좋았다. 장정희의 '적멸의 집'은 현란한 이미지와 현학적이리만치 요란한 사유의 전개를 보여준 게 장점과 함께 오히려 단점이 되기도 했고, 이종숙의 '노파'는 "소리가 죽은 그녀의 귀에 바람이 둥지를 틀고"라는 절절한 표현도 있지만 그의 싯구대로 "보이는 것만"을 보는 게 흠이었다.

 

위 네분은 무엇보다 예시한 작품외에 고를 수 있는 작품이 거의 없는데 반해 다행이 당선자인 문지원(본명 스나)은 '막다른 집', '검은 눈사람을 본 적이 있다', '바퀴는 끝없이 구른다'등 세 작품에서 버려진 치매노인과 문 닫힌 탄광의 "눈도 코도 잃어버린 탄가루의" 검은 눈사람, 그리고 경륜(競輪) 도박장에서 전표처럼 구겨지는 풀죽은 어깨들의 참담한 삶을 치밀한 묘사와 절도있는 진술로 이끌어낸게 그 능력에 값하였다. 그런데 앞의 두 작품이 비유 등에서 훨씬 더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빛보다는 어둠에 더 익숙해져" 그 자체로 암전(暗電)되어버린 반면에 '바퀴는 끝없이 구른다'는 시적 내용에 맞는 형식의 속도감, "함성이 선수들의 붉은 다리만큼 굵어지면/욕설도 응원을 비는 무슨 부적이라고 간간이/카악 칵 가래침까지 뒤통수에 붙여준다"는 표현 등의 거쿨진 힘이 경륜 도박으로 상징된 삶의 왜곡된 욕망을 드러내는데 적격이라 생각되어 당선작으로 민다.

 

신인에겐 항상 새로운 실험의식과 자기만의 독특한 표현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것이 자칫 가벼운 개그 수준의 재기발랄이나 애매모호한 현학취미로 빠지는 경우를 늘 보아온 터에 당선자처럼 삶의 진정성으로 밀어붙이는 그 치열함이 요즘 시단에서 더 요구되는 게 아닐까.

 

심사위원 고재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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