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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 / 유정

 

 

잘 지내나요?

당신의 긴 속눈썹이 생각나요

속눈썹 너머에는 무엇이 있나요?

당신은 그리움이 생기면 발뒤꿈치를 들고

먼 곳의 바다를 바라보곤 했죠

아직도 발뒤꿈치를 들고 있나요?

툭 누군가 건들면 당신은 수평선 쪽으로 쓰러지고 일어나곤 했어요

듣고 있나요? 항상 나의 속삭임이 닿을까 궁금해요

나는 그저 당신이 입었던 옷을 버릇처럼 떠올릴 뿐이에요

그때 당신의 옷에 붙은 가격표를 찾고 있었지요

가격을 확인하면 당신의 눈동자가 흔들렸어요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표정 속에서

나는 높게 서 있는 유리창을 닦으며 지상으로 내려와요

당신은 자신의 알몸을 본 적 있나요?

나도 오늘 당신처럼 옷을 갈아입어야 했어요

건물 외벽에 튀어나온 못에 작업복이 찢겼거든요

이런 날, 집으로 돌아오면

오래된 인형처럼 누워

당신보다 먼 바다를 꿈꾸며 입술을 깨물곤 해요

당신도 뒤척이나요?

문득 당신의 눈가에 말라붙은 마스카라가 보이네요

불붙지 않는 목재처럼

처음부터 우리는 손을 잡아도 함께 바다로 갈 수 없었군요

아무렇지 않게

우리 사이에 나뭇잎 하나가 흔들리고

마지막 인사 대신

오늘도 허공에 떠서

몰래 유리창에 손자국을 남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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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창밖 거리를 향하는 마네킹은 우리의 자화상

 

신인은 매너리즘에 물드는 사회와 시단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움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새로움의 형상화와 작품 선정은 우리에게 삶을 투영하고 대입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적 선물이며 사회적 공식이다.

 

본심에서 경합한 반려의 문장눈잣나무는 안정된 시상의 호흡을 보였지만 처음부터 예기한 결과가 나타나면서 선자들의 마음에서 멀어졌다. 당선작은 적어도 한 편의 시 속에 입체적이면서 시공간적이고 사회적이면서도 심리적인 갈등을 융합하여 관통하는 미학의 구조를 보여야 한다.

 

이런 면에서 유정 씨의 마네킹은 현실적 슬픔과 포기할 수 없는 생의 그리움을 한계와 단절이라는 복선 위에 손자국의 흔적을 몰래남겼다. 그것이 설령 미결과 얼룩이라 할지라도 쉽게 해결되고 소통되지 않는 삶과 모순을 반영한 것 이상을 넘어 마음에 오래 남을 시적 이미지를 그리는 데 성공했다고 판단했다.

 

옷이 팔려나가면 새로운 옷을 걸치고 다른 가격표를 붙이는 마네킹그러한 상실과 희생을 넘어 다시 창밖의 거리를 향해야 하는 화자의 절실한 결의와 희망이 곧 우리 모두의 자화상의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수평선에서 먼 어느 시가지의 코너에 서 있는 이 마네킹의 꿈은 하나의 선물이자 시인이 내재화한 사회적 공감이다. 유정 시인은 인내하면서 시의 길을 잘 살펴 밟아가길 바란다.

 

심사위원 고형렬·이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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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 관한 독서 외 4편 / 강다솜

 

 

1.

노포동역에 내리자 갑자기 짠내가 밀려와

숨을 몰아쉰다,

누군가 또 한 페이지를 넘긴다

고양이가 자동차 아래 눈을 뜬 채 웅크리고

웅덩이에 고인 가로등 불빛이

바람에 한 겹씩 흘러내린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아,

자꾸 불어나며 뒤를 따르던 그림자가 소근거린다

내가 태어나 처음 한 일은 달그림자를 끌어다

바다를 한 겹 한 겹 꿰매는 일이었어

사람들은 누구나 그 책의 활자이기 때문에

이따금 늦은 시각에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지

 

2.

  지하철 한구석에서 고흐가 말했다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듯이, 밤하늘의 저 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고 늙어서 죽는다는 것은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안내방송이 들리고 열차 안의 불이 꺼졌다 승객들은 그림자처럼 밖으로 뛰어내렸다 다시 불이 켜졌다 나는 피터팬처럼 그림자가 없었다

 

3.

피터팬의 발에 그림자를 꿰매어 주던

웬디는 그가 한 권의 책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이 바다 저편에는 우리들의 나라가 있어서

거기로 간 사람들은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때로 활자가 되고 싶은 몸은 그 대신에

여러 개의 그림자를 만든다

문득 웅덩이에 내 얼굴이 비치는 것을

한 겹씩 바람은 자꾸 들추어내고

고양이가 눈을 한 번 깜박였을까,

펼쳐진 풍경이 잠시

정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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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가다

 

 

 

생선을 몇 번 찔러보곤

물이 갔다고 하시며

걸음을 옮기는 우리 엄마

 

그 뒤로 세상의 물들이

천천히 흘러가네

빛을 잃어가는 생선의 눈알과 색 바랜 티셔츠

공중에 날리는 모래 먼지들

어릴 적 나를 한 번 지나간 구름이

지금 되돌아오네

 

어린 내가 업혀 있던

엄마의 등 뒤로 물비린내가 물씬

풍겨오네, 잡으려 해도

한 번도 잡을 수 없었던

꽃잎 같은 저 참새들 후두둑,

땅으로 하늘로 오르내리는 저녁

 

내 안에서도 소용돌이치는 물빛을 느끼며

온갖 풍경들과 흐름들 터벅터벅

발소리,

그렇게 물이 되어 천천히 흘러가네

우리는 다만 물 위로 걷듯이

금방 사라질 흔적만 남기고,

메아리 같은 울음을 하나씩

던지고 가듯

 

 

 

 

 

풍경을 녹음하는 여자

 

 

 

언제부턴가 집 앞 공원에 나와

늘 같은 벤치에 앉아 있는 여자

앞을 못 본다는 그 여자,

뒤에서 사람들이 장님이라고 수군거려도

미소 띤 얼굴이 물소리 같은 여자

 

그 여자의 몸은 축음기처럼

자기 안에 소리들을 담아두고 있다

손등 위로 지나는 햇빛의 소리

꽃잎을 흔드는 아지랑이 소리

가끔씩 피가 흐르는 소리, 머리카락이 자라는 소리에

어깨를 떨며 반응하기도 한다

어느 날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

잠깐 멈추어 선 풍경들과

나뭇잎 위에 남아 있는 반짝이는 빗소리,

눈부신 소리들이 여자의 안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높낮이 없는 음들이 모여 이루는

하나의 거대한 화음이 여자의 안에서

유리조각처럼 조심스럽게 반짝인다

 

공원에 올 수 없는 날이면

방 안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는 여자

가끔씩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좋아하는 과거를 혼자 듣는 여자

공원에 밤이 오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는 소리를

긴 음계처럼 오래오래 듣고 있는

그 여자

 

 

 

 

 

그의 유리공장

 

 

 

  유리병을 만드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을려 검어진 피부가 유리보다도 반들거리는 남자 긴 쇠파이프로 숨을 불어넣을 때마다 부풀어 오르는 허공과 같이 목울대가 팽팽해지는 남자, 그의 작업장에서 바람은 처음으로 형태를 갖는다

 

  태아처럼 팔다리가 생겨난 바람들은 이따금 기지개를 켜듯 유리병 안에서 온몸을 진동시키며 울었다 그가 숨을 내쉴 때 풍경들도 몸을 떨며 저마다 다른 울음을 그의 날숨처럼 일정하고 길게 토해냈다 병 안에서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릴 때, 근육이 불뚝 솟은 그의 몸에서도 어떤 공기주머니 같은 울음이 부풀어오르다 천천히 가라앉곤 했다

 

  유리가 하나씩 부풀어 오를 때마다 점점 작아지는 남자 유리병 안에 들어 있는 목이 긴 소리들을 날마다 몸속에 진열하는 남자, 밤이 되자 손가락 끝에서부터 천천히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수많은 태아들을 품고 바람처럼 부풀어 오르는 그의 목울대만이 아직 뜨겁고 환하다 환하게 속을 비워내고 형태만 남은, 남자

 

  유리병을 나란히 세워놓은 그가 아직 식지 못한 채 마지막으로 공장 한구석에 진열된다 퍼즐처럼 붙어선 채 풍경을 이어가던 유리병들이 불에 덴 듯 바람에 잠깐 일그러진다

 

 

 

 

 

달리는 숲

 

 

 

불현듯 시장기를 느꼈다

태풍을 빨아들이며 숲은 순식간에 쑥쑥 자라고

나는 멀뚱히 서서 배를 만진다

 

오래전에 무엇이 달려가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물소 떼처럼 우글우글하고

엉킨 바람처럼 방향이 제멋대로인

그때도 지금처럼 배가 고파졌고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욕망을

잊자, 잊자고 나도 모르게 되뇌었다

 

나무들 속

갈라진 껍질의 틈으로

풀꽃 잎사귀와 무수한 빗방울들,

민들레 홀씨와 도둑고양이 같은 것들이

탯줄로 연결된 채 한데 숨 쉬고 있었다

그들이 숨을 내쉴 때마다

뱃속으로 끓는 듯한 바람이 스며들었다

나는 문득 내가 민들레 홀씨만 했을 적을 떠올린다

 

태풍의 눈처럼 조용한 나무 속

숨 쉬는 소리가 그렇게

공기를 진동시키며 울었고

숲이 성큼성큼 전진을 시작했다

잊자, 잊자, 하여도 생생하게 등을 훑고 지나가는

내 안의 채워지지 못한 허기

살아 있음, 그 살아 있음이

 

 

 

 

수상 소감

 

  물 위로 걷듯이 금방 사라질 흔적만 남기며 글쓰기를 했습니다. 완성한 시가 수십 편이라면, 쓰다 지워버린 시는 아마 천 편이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파도가 수만 번 밀려와야 겨우 하나의 지층이 생기듯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다만 바다와 달리 사람에게는 하고 싶은 말들이 넘치고 용기는 부족하기 때문에, 시를 진심으로 대하며 자유롭게 글쓰는 일이 늘 어렵고 숙제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말에는 책임이 따르고, 마음에 맴도는 말이란 하지 않는 편이 나을 때가 많으니까요.

  이렇듯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부끄럽지만, 남기기 어려운 말보다는 침묵을 택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신인상에 처음 응모하면서도 당선되리라곤 감히 생각지 못했습니다만, 귀한 상과 소중한 기회를 주셔서 송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어렵더라도 앞으로는 침묵하기보다 더 배우고 노력하라는 의미로 받아, 좋은 시를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치원 문학상 심사평

 

어떻게 이런 일이

 

얼마 전에 두 분 선생님들과 한 자리에 모여 논의를 했던 투고작들에게, 간략하나마 심사평을 붙이기 위하여 필자는 다시 한 차례 모든 원고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자리는 그들 시에 관한한의 후일담인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많지.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를 쓰고 싶어 했던 자의

실패작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졸시 「어떻게 이런 일이」 전문

 

시들을 살피는 와중에 지독한 뇨의 마냥 밀려오던 시작(詩作)에 대한 욕구로 인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한 편의 시를 적어 보기에 이르고 말았다. 그렇게 짤막한 시 한 편을 얻게 되었다. 일견 생뚱맞아 보이기도 하는 인용 식(式)일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모든 시들의 일정 부분의 풍습은 “어떻게 이런 일이”의 등속을 헤아려 보거나 천착하는 데에 이르거나 바쳐져야 한다는 이유에서, 이들의 시 속에도 저류하고 있을지 모를 “어떻게 이런 일이”의 기척을 찾아 눈길을 주어 보았음을 밝히기로 한다.

 

여섯 사람의 시를 나누어 읽었던 시간은 어느 사이 두 사람의 세계로 압축되었다. 시를 나누어서 고른다거나 차등을 메기는 일은 어쩔 수없이 유효한 측면도 있었으나 한 편으론 따분하거나 무효한 일에 다름 아닐 수 있었다. 결국 현재의 모든 시들은 진화의 꿈을 간직해야 한다는 뜻에서 해보는 말이다.

“커다란 환풍기가 고래 울음을 내는 터널 안/ 갑자기 서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앞을 내다보거나 라디오를 틀어 봐도/ 한순간 찾아온 암전에 대한 정보는 없다// 터널 입구를 들어서며 동공을 움츠리고/ 마주친 어둠에 대해 준비했었지만/ 앞선 차들의 급격한 멈춤에 가슴이 팔딱인다// 돌아갈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자리/ 어둠이 사방으로 짙어갈수록 문득 행복하다 말했던 거짓말이 후회된다/ 후회는 거짓말처럼 더욱 커진다// 구급차가 다가와 사고 차량 앞에 멈추고는/ 수습해야 할 슬픔의 일정을 알려준다// 삼켜진 것들은 불행이 자신을 피해 갔음에 안도한다(중략) 불안한 어둠 속에서 품었던 거짓말에 대한 의심조차 거짓말처럼 까무룩 잊어버린 채“ 이장호의 「피노키오는 다행이었어요」 일부

터널 안에서 만난 교통사고에서 발화된 이 시는 “거짓말”과 “피노키오”를 차용한 자아의 각성을 술회하는 방식을 갖추며 있다. 이장호의 다른 시편들 역시 이처럼 무난한 평균률의 진술들을 내포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의 시의 안광이 “어떻게 이런 일이”의 돌연함이라거나 퀭한 우수의 높이라거나 너비를 좆아 갈 때. 언젠가는 그의 시가 자신의 이름으로 건설된 마을을 한 채 건사할 수도 있을 거라는 짐작을 비치며 지나갔다. 아쉽게 거기에서 멈춘 셈이다.

 

“생선을 몇 번 찔러보곤

물이 갔다고 하시며

걸음을 옮기는 우리 엄마

 

그 뒤로 세상의 물들이

천천히 흘러가네

빛을 잃어가는 생선의 눈알과 색 바랜 티셔츠

공중에 날리는 모래 먼지들

어릴 적 나를 한 번 지나간 구름이

지금 되돌아오네

 

어린 내가 업혀 있던

엄마의 등 뒤로 물비린내가 물씬

풍겨오네, 잡으려 해도

한 번도 잡을 수 없었던

꽃잎 같은 저 참새들 후두둑,

땅으로 하늘로 오르내리는 저녁

 

내 안에서도 소용돌이치는 물빛을 느끼며

온갖 풍경들과 흐름들 터벅터벅

발소리,

그렇게 물이 되어 천천히 흘러가네

우리는 다만 물 위로 걷듯이

금방 사라질 흔적만 남기고,

메아리 같은 울음을 하나씩

던지고 가듯”

 

강다솜의 「물이 가다」

 

머리 시로 놓인 “우리들의 독서”에서부터 강다솜의 시편들은 다른 이들의 작품에 비해 더 가파른 시의 그림자들을 거느리며 있어 보였다. 여기 인용된 “물이 가다”의 혼용 서술 기법 역시 눈여겨 볼만한 개미를 주고 있었다. 물(수분)이었다가 행색(물색)이었다가 물빛으로 드러나는 “물”의 이러저러한 면목들이 마침내 흔적만 남은 “발소리”로 화하는 지점에서, 이 시의 제목인 “물이 가다”라는 지시의 방향이 완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에게 자신의 시를 더하여 귀감의 세계들을 기대해 보는 마음으로, 강다솜의 시편들에게 올해의 “최치원 문학상”의 무거운 짐을 떠안기기로 정하였다. 축하를 드리는 마음과 함께 호된 정진의 날들을 빌기로 한다.

 

이번 제16회 최치원신인문학상은 총 203명이 응모하여 예심위원이 선정한 6명의 작품을 본심에 올렸다. 그중 본심에서 마지막까지 거론된 신인은 이장호, 강다솜의 작품이었다.

 

 

본심 : 곽재구(시인) 정윤천(시인. 글) 김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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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답다 / 황명희

 

 

'연어답다는 연어의 거룩한 삶까지 포장해드립니다'라고 써 놓은 가게 문을 열자 연어들이 우르르 떼 지어 몰려왔다. 바다를 거슬러 오르던 한 생애를 누군가 경건하게 건져 올려 '연어답다'한 토막난 말로 쟁여 놓은 곳, 냉장실의 붉은 몸 토막에 일렁이는 물결들이 내 눈길을 끌어당긴다. 연어답다의 젊은 주인은 유난히 붉은 살을 집어 들더니 저울에 달아 투명한 랩으로 포장하기 시작한다. 거센 물살을 거스르며 헤엄치던 연어의 가파른 기억을 단단히 옭아매기라도 하려는 듯이

 

나는 투명한 랩으로 단단하게 초장되어 있던 연어를 끄집어내어 연어답다로 토막낸다. 연어답다 속에 얼룩져있던 연어답지 않다가 보인다. 연어답지 않다를 토막낸다. 연어답지 않다에 얼룩져 있는 연어답다가 보인다. 연어답다와 연어답지 않다 사이에 출몰하는 바닷물과 냇물들의 밑바닥을 들추어 본다. 연어답다와 연어답지 않다 사이 미끄러지는 몸부림을 꽉 움켜쥔 어머니의 쭈글한 손의 내력을 가늠해 보려는 듯이

 

'연어답다'는 바닷물과 냇물의 서로 다른 생각들이 엇갈려 새겨진 탄탄하고 붉은 욕망, 혹은 몸부림의 서사가 기록된 오래된 책일까. 혀끝에 살살 녹아내리는 부드러운 촉감과 가파른 침묵이 '연어답다'로 포장된 붉은 당신의 생애를 찾아 벅꽃 흐드러지지게 핀 산길을 걸어간다. 수천마리 연어 떼가 등 뒤에 우르르 몰려오고 있는 것 같아 뒤돌아보니 벚꽃이 새떼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제26회 ‘진주가을문예’ 당선자가 가려졌다. 시 부문은 <연어답다> 외 4편을 낸 황명희 시인(56, 대구), 소설 부문은 단편 <우주 라이크>와 <무명과 누명>을 낸 황인선 소설가(31, 경기도 군포)가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진주 가을문예’는 남성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이 1995년 기금을 마련해 옛 <진주신문>에서 운영하다 지금은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가 전국에 걸쳐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당선자에게는 시 500만 원, 소설 1000만 원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된다.

황명희 시인의 작품을 시 부문 당선작으로 선정한 심사위원들은 본심에 오른 8명의 작품 모두 훌륭했지만, <연어답다>를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망설임은 없었다고 했다. <연어답다> 외 4편의 시에서 “유희를 뛰어넘는 발랄한 언어감각과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치열한 표현들, 그 이미지를 능숙한 서사의 얼개에 배치하는 형상화 능력이 돋보였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면서 “연어가게에서 펼쳐지는 시적 사유 또한 우리 삶과 맞닿아 있어 울림이 작지 않았다”고 했다.

황명희 시인은 “본격적으로 시를 배운 지 두 해만에 (당선작 선정이라는)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영광이다”라며 그간 시를 쓰면서 도움을 준 강현국 교수, 이학성 선생님, 시 창작 모임 ‘애피퍼니 13기’ 등에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부족한 시의 싹을 진주인양 캐내어 내 삶에 뿌리를 내리게 해 준 심사위원 두 분과 <진주가을문예> 주최 측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누구나 사는 동안 한 번 만나는 잊지 못할 사람처럼 찾아온 소중한 시와 오래 동행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진주가을문예’는 올해 10월 31일 공모를 마감했다. 시 부문은 144명(952편), 소설 부문은 104명(203편)이 응모했다. 예심 없이 부문별 2명의 심사위원이 본심을 봤다. 시 부문 심사위원은 시집 <트렁크>를 펴낸 김언희 시인, 시집 <달 안을 걷다> 를 출간한 김병호 시인(협성대 교수)이 맡았다. 소설 부문 심사위원은 <목양면 방화사건 전말기> 를 펴낸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조선통신사> 를 출간한 김종광 소설가가 담당했다. 시상식은 12월 5일 오후 4시30분 진주문고 여서재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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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기분 / 정혜정

 

 

믿음을 가지면 리듬을 가질 수 있다

조그만 세계에 후두두 덜어져 내리는

빗방울 조율할 수 있다

크고 나쁜 소식이

작고 좋은 소식과

섞일 수 있도록

 

달린다

잽싸게 혹은 느리게

정곡을 찌르는 속력으로

 

바다에 가까이 산다는 것은

바다에 가까이 산다는 기분과 사는 것

이따금 바다로 향하는 버스가

앞을 스쳐

 

지나간다

일정한 속력으로

 

없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과

있는 것에 대한 기분을 가지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오후가 있다

 

얼굴이 필요해 애인의 얼굴을 가지는 것과

아름다움 없어서 아름다움으로 채우는 것에 대해

골몰하는 거울이 있다

 

거울의 파편에 비치는 것

 

지나가고 있다

 

여름 아니고

가을 아니고

계절만의 속력으로

 

 

 

 

올해로 25회째인 1500만원 고료 '진주가을문예' 당선자가 가려졌다. 시는 <믿음과 기분>  4편을 낸 정혜정 시인(39, 강릉), 소설은 단편 <> <쓸데없이 싸우는>을 낸 장수주 소설가(40, 화성)가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남성(南星)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는 15일 공모?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0 31일 공모 마감 결과, 시는 173 1182, 소설은 114 179(·단편)이 응모했다.

 

심사는 예심 없이 본심 2명이 맡았다. 소설은 전성태 소설가 (장편 <여자 이발사> )와 최진영 소설가(장편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시는 이정록 시인(시집 <동심언어사전> )과 김민정 시인(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이 했다.

 

시 심사위원들은 당선작 "믿음과 기분"에 대해 "읽고 있는 지금 이 행보다 읽어나갈 다음 행이 더 기대되는 마음으로 우리를 집중하게 했다. 사유가 뒤에서 밀어주기에 말이 되는 언어유희였다. 즐거웠다"고 평했다.

 

심사위원들은 "좋은 시는 두어 행 치닫으면 제 숨결을 가다듬으며 초원을 뛰어간다. 언어의 근육이 불뚝거린다. 읽는 이의 눈과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 눈빛이 있다. 시인은 문장에 눈을 심어놓은 사람이다. 눈빛이 또렷하고, 근육이 세밀한 시인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언어를 오래 다룬 사람만이 갖는 용기와 스스로 리듬을 만들어가는 명랑성이 심사자들의 마음까지 즐겁게 이끌었다"고 했다.

 

정혜정 시당선자는 소감에서 "내 앞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는 것은 나무의 모든 나날이 내 앞에 있다는 뜻이다. 바람과 햇빛과 빗물과 흙에 소실된 나날까지 합쳐 지금 내 앞에 있다는 뜻이다. 나무 한 그루는 나무의 모든 나날이다. 시의 나날이 되겠다" "필드와 함성에서 멀찍이 떨어진 외야석에 앉아 있다 영문 모를 홈런볼을 움켜쥔 기분"이라고 밝혔다.

 

김장하 이사장은 "진주가을문예를 운영한 지 올해로 25회째다. 올해도 공모와 심사 과정을 거쳐, 참신하고 의욕이 넘치며 기운 팔팔한 새 시인과 소설가를 내놓는다" "그동안 많은 관심에다 응모를 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고 했다.

 

'진주가을문예'는 남성문화재단이 1995년 기금을 마련해 옛 <진주신문>에서 운영하다 지금은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가 전국에 걸쳐 신인 공모를 벌여 운영해오고 있다. 당선자에게는 시 500만원, 소설 1000만원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된다.

 

시상식은 오는 30일 오후 4시 진주 '현장아트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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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야(經夜) / 김세희

 

 

일요일에 왔으니까요

일요일에 가는 게 어때요 아무 부담 없지 않을까요

틀니조차 걸 수 없다고요 입 벌려 억억거릴 때

차곡차곡 다져진 미련, 내가 다 봤어요

꿀꺽 삼켜요 그거

 

 

똥이 질면 질다고 때린대요 볼기를

되면 되다고 때린대요

볼기짝이 원숭이 같을 거라고요

요양보호사를 원망하나 봐요 그러지 마세요

손은 잡고 가야 하나요 놓고 가야 하나요

 

 

팔다리가 투명해지고요

껍데기를 나온 껍데기처럼 쫄깃해 보였어요

뭐라도 씹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시계를 보다가요 엄지손가락으로 꾸욱

하루살이 한 마리 눌러 죽이고 돌아 나왔어요

일요일에 다시 올게요

침대보다 더 납작해진 사람들이

딱딱한 제 그림자에 등을 기대고 있어요

 

 

당신은 나를 얼마나 기다렸던가요

나는 당신을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부채질중이에요 잘 타버리라고요

 

 

아빠, 우린 서로를 지나가야 하잖아요

일요일에 올 게요 못다 쓴

당신 얼굴 가지러

 

 

 

 

 

 

올해로 24회를 맞은 1500만원 고료 ‘진주가을문예’ 당선자가 가려졌다. 시는 외 9편을 낸 김세희 시인(46, 김해), 소설은 중편 를 낸 오성은 소설가(34, 부산)가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진주가을문예’는 남성(南星)문화재단이 1995년 기금을 마련해 옛 에서 하다 지금은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가 전국에 걸쳐 신인 공모를 벌여 운영해오고 있다. 당선자한테는 시 500만원, 소설 1000만원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된다.

 

올해는 지난 10월 31일(소인 유효) 공모 마감했고, 시는 180명 1278편, 소설은 116명 210편(중·단편)이 응모했다. 심사는 예심과 본심 과정을 거쳤다.

 

시는 송찬호 시인(시집 등)이 본심, 김륭 시인과 임재정 시인이 예심을 맡았다. 소설은 백가흠 소설가(계명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가 본심, 원시림 소설가와 정용준 소설가가 예심을 보았다.

 

송찬호 시인은 심사평에서 당선작에 대해 “섬세한 언어의 결을 갖고 있다. 이런 정련된 언어에 대한 자의식은, 죽음으로 다가가는 엄숙한 삶의 제의를 묘사한 ‘아빠, 우린 서로를 지나가야 하잖아요 / 일요일에 올게요 못다 쓴 / 당신 얼굴 가지러’와 같은 빼어난 시구를 탄생케 한다. 언어와 시적 대상과의 의도적인 불일치로 사물을 새롭게 탐구하고 이 세계를 낯설게 환기하는 감각도 돋보인다. 또한 전체적으로 작품의 수준이 고르고 완성도가 높은 것이 치열한 습작의 흔적이 역력하다”고 했다.

 

당선자들은 소감문에서 기쁨과 각오를 나타냈다. 김세희 당선자는 “시 한 편씩 쓸 때마다 ‘이 거 시 맞나?’ ‘내가 뭐라고 쓴 거지’ 뚫어지게 쳐다만 보고 있고는 했습니다. 쳐다만 보고 있어도 시간이 너무 잘 갔습니다”라며 “아빠가 돌아가시기까지를 보면서 제 시 를 썼습니다. 숀탠이라는 작가 경야라는 그림책을 보고, 감동이 저장되어 있는 상태였고 말입니다. 누구나 경야의 그 밤을 지나거나 지켜보거나 할 것입니다. 주시는 상은, 제게 매일을 마지막처럼 최고의 노력을 하라고. 최고의 시를 뱉어 내라고 하는 견적서라고 생각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15일(토) 오후 4시 진주 ‘현장아트홀’(진주시 진주대로1040번길 6-4)에서 열린다.

 

김장하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은 “저만치서 찬 겨울바람이 다가와 우리의 속살을 헤집지만, 마음은 여느 때보다 훈훈합니다. 그것은 진주가을문예 새 가족을 맞이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며 “진주가을문예가 올해로 스물 네 번째를 맞았습니다. 이번에도 공모와 심사 과정을 거쳐, 참신하고 의욕이 넘치며 기운 팔팔한 새 시인과 소설가를 뽑았습니다. 부디 오셔서 큰 박수로 격려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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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 / 김려원

 

 

어둑해지는 산길에서 후박꽃들 어두워진다.

어차피 꽃잎의 질서란 밤과 낮을 보고 배운 방식이니까, 저녁은 두껍고 아침의 산길은 한없이 얇아서 모두 후박나무의 차지다.

 

나는 서둘러 산길을 내려오면서

저 어두운 밤이 모두 축축한 나무들 껍질로 단단해지는 것을 보았다.

흐르는 소리의 소유권을 주장하듯

물길 옆, 나무들 흔들리다가

물길을 닮아 구불구불해지는 것을 꽤 여러 해 지켜보았다.

 

계곡에 박힌 돌부리들, 물에 걸려 넘어진 저것들은 실상 옆새우나 가재, 도롱뇽이나 개구리와 같은 냄새를 풍기며 모래의 날들로 간다.

 

후박, 이라 말하고 나면 반드시

오르막과 내리막이 한 호흡 속에 있다.

 

두꺼워진 후박이 어깨에 내려앉는다.

비늘을 품은 나무껍질들이 어둠을 바짝 끌어당긴다.

 

 

 

 

 

[심사평]

 

본심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본 작품은 창세기  4, 마트료시카  7, 돼지껍데기집  4, 저문 의자  9편이었다. 그중에서도 돼지껍데기집  4편은 돼지껍데기를 구워먹는 사람들, 날이 갈수록 붓기가 더해가는 아버지와 그를 둘러싼 식구들, 마루에 걸터앉아 옥수수를 먹는 늙은 내외, 저수지의 물결을 경전으로 인식하는 엄마와 아이 등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대상을 품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따스하게 전해온 것이다. 그렇지만 한 작품에서 같은 시어의 중복 사용과 설명식 문장으로 말미암아 작품이 단순하고 긴장감을 갖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저문 의자  9편은 의미의 전달이 잘 안 되거나 가볍게 여겨지는 표현들이 눈에 띄어 우려되었지만 종잇장을 떠도는」「시시각각 메니에르」「후박 등을 읽으면서 곧 안심되었다. 특히 후박의 경우는 서정성을 바탕으로 내용과 형식이, 주제와 표현이 잘 결합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꽃잎의 질서란 밤과 낮을 보고 배운 방식이라든가 어두운 밤이 모두 축축한 나무들 껍질로 단단해지는 것이라는 등의 표현은 이 세계 존재들이 자연과 함께하는 운명이라는 시인 인식을 심화시키고 있다.

 

미래파로 지칭되는 시인들의 난해한 작품이 시단에 범람해 우리 시의 영역이 확대되기보다는 다른 시인들로부터 또 독자들로부터 외면 받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데, 후박에서 그 극복의 가능성을 보았다. 지식 전문가가 아니라 지식인다운 자세를 가지고 우리 시의 세계를 더욱 넓히는 시인이 되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심사위원 맹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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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극장 / 김수완

- 옮겨진 의자

 

 

의자가 옮겨져 있다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 내 등을

누군가 보고 간 것이 틀림없다

미농지를 대고 그대로 옮겨 가지고

어디론가 달아났다 나는 순간

가구들을 얼른 돌려 놓고

등 없는 벽처럼 서 있었다

의자는 가끔 옮겨지기도 하니까

그자는 다시 올 것이 틀림없다

벽이 되니 등은 더욱 어두워진다

그자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나는 독극물을 해독하는 쥐처럼 몸을 뒤틀며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 내 등을

닦아낸다 닦을수록 오히려 마음 약했던

자해의 자국들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나는

거울을 보며 미농지를 등에 대고 애써

그 희미한 선 하나하나를 그려 나간다

그것은 내 시력을 달아난 그자에게

내어주는 일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겠지만

나는 조금씩 의자를 스스로

옮겨 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올해로 20회를 맞은, 1500만원 고료 '진주가을문예' 공모 당선작이 가려졌다. 25일 남성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과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위원장 박노정)는 시부문에 '원형극장-옮겨진 의자'를 낸 김수완(오산), 소설부문에 단편 <렛츠 탱고>를 낸 이주혜(서울)씨가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고 발표했다.

 

진주가을문예운영위원회는 지난 10월 말까지 공모를 실시해, 예심과 본심을 거쳐 당선자를 가려냈다. 이번에는 시 183 1228, 소설 122 213편이 응모했다.

 

시 본심을 맡았던 김사인 시인은 "당선자의 7편 시들은 매우 빼어난 것이었고, 어느 작품도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을만한 기품을 지니고 있었으며, 흠 잡을 데 없고 또렷하기로는 표제시인 '창동역 플랫폼'이 낫다 하겠지만, 그 작품에 묻어남은 일말의 작위를 피해 '원형극장-옮겨진 의자'의 모호한 듯한 섬세함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 등을 '미농지를 대고 그대로 옮겨가지고' 달아난 그 자와 옮겨진 의자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음으로서의 등에 대한 나의 예민한 트라우마가 이루는 화음은 내밀하면서도 우아하게 또다른 마음의 공간, 감각의 공간으로 성립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 당선자 김수완씨는 "누군가 시를 쓴다는 것은 숭고한 몰락이라고도 했던가, 구원인지 몰락인지는 몰라도 그 사람 몰래 화분에 물을 주고, 버려진 인형을 챙겨 집에 온다, 그러면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구원인지 몰락인지는 몰라도 혼자 구원 받지는, 특히 혼자 몰락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어딘가에 몰락하는 사람들이 몇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수완씨는 수성고, 공주대를 나와 현재 오산 성호고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경희사이버대학원 미디어문예창작과에 재학하고 있다. 소설 당선자인 이주혜씨는 전주 출생으로, 현재 주부이면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주혜씨는 "문장 한 공기를 지어낼 자리를 마련해준 재단 관계자와 분명 질거나 되었을 그 밥을 받아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소설 핑계를 대며 자꾸 맛없는 밥을 해줘도 싫은 내색없이 응원해준 남편과 아이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고 싶고, 당선작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모든 것인 내 아버지 어머니, 그분들의 강건을 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진주가을문예(옛 진주신문가을문예)는 진주에서 남성당한약방을 운영하는 김장하 이사장이 남성문화재단을 만들어 기금을 출연해 운영하고 있다. 당선자 상금은 시부문 500만 원, 소설부문 1000만 원이다. 시상식은 오는 29일 오후 5시 진주 '더하우스 갑을'(옛 갑을가든)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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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 신호승

 

 

오늘 아침, 야쿠르트 아줌마가 없어서 이 거리는 슬프다, 그를 완전히 죽이지 못한 지난밤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도 폭포수 찜질방에서 익사체로 걸어 나왔다, 햇빛은 끝내 구름을 따라 출근하지 못한다, 쇼 윈도우에서 비친 나방이 파도처럼 한번 파닥거린다, 결국 생각은 기다리면 오지 않는 버스, 점자 책 같던 가로수도 고비 때 마다 사라질 것이다, 길은 아직도 두고 온 밀림 속에 들어가고 싶다, 후회하지 않는다, 라고 다시 담배 불을 붙이자 사방천지 불 꺼진다, 표류하는 하늘, 등대 없인 해도 달도 뜨지 않을 것이다, 어둡지만 익숙해야 하는 이름을 천천히 불러야 한다, 나뿐 만은 아니라고 엽서를 쓰자마자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약속 다방 무릎 위에 앉아 희희덕대다가 여러 날 가출한다, 밤에만 문을 여는 동평화 약국에서 아스피린 같이 활짝 핀 하얀 머리통을 다 팔고 나왔다, 사장도 없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자 겨울이 끝났다, 봄이 오면 새벽 개떼들을 따라 다닐까, 그렇게 꽃피우고 싶다고 꽃이 핀다,

 

 

 

 

[심사평]

 

150여 명의 응모자 중 본심에 오른 10명의 작품을 놓고 토의를 거듭한 끝에 최종 4명의 후보작을 선정했다. 신호승의 <오늘 아침>, 황순탄의 <징그러운 사과>, 명광일의 <별들이 무질서하다>, 이규의 <닭의 문>이 그것이다.

 

네 편의 대상작은 모두 좋은 장점과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마지막까지 논의를 거듭해야 했다. 그중에서 황순탄의 <징그러운 사과>는 신선한 화법과 부드러운 어조, 시적 구조와 긴장감이 탄탄해 끝까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끌었으나 그 한 편을 제외한 작품들의 수준에 편차가 커서 아깝게 낙점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명광일의 <별들이 무질서하다>는 시적 리듬이나 말의 절제가 좋고 적절한 반복법을 써서 시를 끌고 가는 솜씨가 상당했으나 눈에 띠는 상투어나 관념어들이 종종 시의 활력을 막았다. 이규의 <닭의 문>은 비유를 잘 사용할 줄고, 말에 의미를 입히는 재주가 돋보였으나 대상을 노래하는 발성이 다소 산만하고 거친 게 흠으로 지적됐다.

 

심사위원들은 장고를 거듭한 끝에 대상을 새롭게 포착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상상력이 뛰어나면서도 시적 구심력을 잃지 않은 신호승의 <오늘 아침>을 당선작으로 뽑는데 합의했다. 신호승의 새로움과 결합된 상상력이 한국시의 다채로움에 한 자리를 마련하고, 신인으로서 시의 길을 끝까지 밀고갈 수 있는 힘이 되길 빈다.

   

심사위원 황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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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눈 성운* / 나온동희

 

 

우주의 등고점들이 연결되고

연결되어 퐁퐁다알리아 만발한

손바닥을 본다

 

손바닥을 바라보는 일은

단 하나의 슬픔을 응시 하는 것

 

TV속의 한 아이가 오디션의 심사평에

갓 구운 빵처럼 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의 왼손은 시리얼을 들추어 보다가

허풍스러운 그 중 하나를 놓치는 순간이다

 

어제 사랑스러운 루루가 죽었다

한 장의 종이에도 기록되지 않을 무성한 슬픔이 허공에 빛나고

 

오늘 아침엔 가판대에서

일회용 잡지를 집듯 간단히

그것을 잘라버렸다

그러므로 내일 아침부턴 슬픔이 없을 것이다

 

이것들의 근성은 처음부터 슬픔이 아니었을 것

 

문은 닫아야만 나타나는 낡은 방 내부의

야광들은 한때 나의 위로였으나

손가락 사이로 흘러

 

지금은 창문들이 별 몇 송이를 내어놓고 저녁이 되는 시간

 

내 손바닥 중심에는

다알리아 붉은색을 밀어내면서

날 응시하는 루루가 살고 있다

 

* 용자리에 있는 행성상 성운

 

 

 

 

 

[당선소감]

 

우리가 생을 살면서 체험하는 많은 상황과 경험들의 감정적인 부분은

우리의 장부에 씨앗처럼 박히는데

어떤 이는 그것을 상처라고 부르고

어떤 이는 그것을 꽃이라고 부릅니다

우주에 편만한 선한 힘들과 내 안에 자리 잡은 시심이 서로 주파수를 맞추고

자신의 틈 사이로 손 내밀어 잡아주는 진실의 순간이 반드시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빈주먹으로 다시 시를 바라보는 20년의 시간은

너무 덥거나 추웠고 너무 가볍거나 혹은 무거웠지만

도리어 그것이 부족한 성품과 시견 없는 저의 삶을

한 눈금 성장시키기에 필요한 경험이었다고 이제사 고백합니다

저에게 문학의 길을 밝혀주시고 계단을 만들어주시고

설 자리를 마련해주신 진주가을문예 주관하시는 분들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가지런한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세상 만물이 서로 얽혀있으며

그 인연이 매우 신성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시적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손진은 교수님

크게 격려해 주시는 김영식님 감사합니다

저와 함께 하는 문우님들 이 기쁨과 영광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과 나의 가족들 동열과 승탁 그리고 수정 사랑합니다

스스로 저는 항상 다시 피는 꽃이기를

사람들에게 항상 아름다운 꽃으로 이름주기를 다시금 생각하는 이른 새벽

오늘따라 어깨가 무겁습니다

 

 

 

 

 

 

[심사평]

 

청색 테이프로 단단하게 밀봉된 박스 속엔 이름과 인적사항이 지워진 170명의 응모작 1,139편이 담겨 있었다. 이 응모작들은 우리 시의 현재를 축약한 듯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상의 정서를 또박또박 새긴 작품에서부터 겉으로는 온전해 보이되 실상은 끊임없이 파괴되고 분열되는 세계의 이면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 진폭은 넓었지만, 대부분 공력을 많이 들인 흔적을 품고 있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은 모두 12명의 작품이었다 ( ‘브라우티건 풍으로, ‘잃어버린 고리, ‘동백, ‘풀밭에서 여름밤을 보낸다, ‘시조새 울음, ‘링 안에서 링 바깥으로, ‘틀니, ‘나무도마, ‘장마엔 카페인이 필요하고, ‘고양이눈 성운, ‘나팔꽃 묵주를 보다’, ‘천남성에서의 오독). 이 작품을 윤독, 심사숙고한 끝에 링 안에서 링 바깥으로, ‘틀니, ‘나무도마, ‘장마엔 카페인이 필요하고, ‘고양이눈 성운등이 최종대상으로 선정됐다.

 

링 안에서 링 바깥으로5편을 투고한 분의 작품에서는 레이스를 짜는 저녁이 돋보였다. 표제작 링 안에서는 그림자와의 결투라는 흥미로운 착상 그 자체에 맴돌고 있었다. ‘레이스를 짜는 저녁은 시상의 전개가 유려하고 세련된 이미지와 수사를 보여주는 작품인데, 아쉬운 것은 생각의 틀 자체가 그리 새로울 게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표현력만큼의 힘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틀니10여 편의 작품 중엔 콩밭에서 콩알을 줍는 동안이 담백했다. 시의 호흡과 내러티브, 이미지의 전개가 물 흐르듯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는데, 문제는 우리에게 낯익은 세계를 익숙한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

 

나무도마11편의 작품 중엔 나무도마가 재미있는 착상과 진술, 자연스런 어투와 호흡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착상과 설득력 있는 진술이 시 전체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음이 아쉬웠다.

 

장마엔 카페인이 필요하고7편을 응모한 분의 작품에서는 저승사자 놀이를 하던 대낮이 주목을 받았다. 세계의 이면을 투시하는 날카로운 시선, 시를 이끌어가는 속도의 힘과 열정도 느껴졌다. 상투성의 흔적을 지워내는 전복적인 사유와 상상력을 키운다면 개성적인 시인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고양이눈 성운5편의 작품 중엔 표제작과 더불어 소리굽쇠도 눈길을 끌었는데, 일상에서 우주로 확장되는 상상력이 넓고 시원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저승사자 놀이를 하던 대낮고양이눈 성운이었다. 이 두 작품을 놓고 오랜 진통이 따랐다. 워낙 개성이 다른 작품이어서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아 공동수상으로 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비점은 고양이눈 성운에 찍혔다. 이 작품은 고양이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일상의 체험고양이눈 성운’- 3천광년 너머에서 사라지면서 마지막 짧은 광채를 내뿜고 있는 천체-이라는 우주적 존재/사건으로 연결된 작품이다.

 

응모작들 뿐 아니라 최근 우리 시들이 미세한 감각이나 관념, 익숙한 서정의 좁은 세계에 갇혀있는 현상을 상기할 때, 이처럼 스케일이 큰 상상력은 귀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또 평범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일상성의 중첩은 미묘한 정서의 울림 속에 시적 입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당선자는 동봉한 작품 소리굽쇠에서 말했듯 하늘의 별들을 향하여/ 드럼치기를계속해주기 바란다. 그것은 곧 보다 넓은 세계와 언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울러, 다른 작품에서 엿보이는 시적 긴장감의 결여가 어디서 발생하는가 되짚어 보기 바란다.

 

모든 것이 경제와 물질로 환산되는 이 부박한 시대에 사물과 세계의 근원과 이면을 더듬어 찾고 이를 성찰하면서 언어로 체화하는 일은 사람과 공동체의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상을 운영하는 뜻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당선자가 앞으로 더 큰 시적 성장을 통해 오늘의 인연을 귀하고 아름답게 이어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심사위원: 이수명 이홍섭 전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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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잔등거미 / 오유균

 

 

달덩이가 창에 붙어 누런 진액을 흘렸다 어머니는 마른 풀잎 같은 기침을 자주 뱉었다 그때마다 등잔불이 자주 흔들렸다 밤이면 대숲이 빈 몸으로 울었다 돌아누운 어머니 등은 무덤처럼 둥글고 검었다

 

해질 무렵, 어머니는 마을로 내려가 기울어진 달을 이고 올라왔다 휘어진 산길을 돌아서면 바람이 스스슥 소리를 내었다 산새는 검고 깊게 울었다 부른 노래를 또 부르며 어머니 옷자락을 잡고 걸었다 가끔씩 바구니에 담긴 달이 흘러 어머니 얼굴에 줄을 쳤다 내가 아는 노래는 너무 짧았다

 

낯선 도시 떠다니는 동안 닿지 않는 나를 향해 줄을 내리고 기다림을 익혔다 허공에서 길을 놓친 그날, 햇빛이 들지 않는 습한 방에 담겨 둥글고 검은 눈물을 흘렸다

 

골목 돌아서서 벽을 후려칠 때

낮게 걸려있는 집 한 채

턱을 박고 체액을 빨고 있는 내가 보인다

어머니가 몸을 푼 집

오그라드는 몸에서 내린 저, 질긴

 

 

 

리셋

 

nefing.com

 

 

 

[심사평] 흠잡을 데 없는 언어의 조탁과 유려한 리듬

 

본심에 올라온 것은 열 분의 작품들이다. 열 분의 응모작들을 여러 번에 걸쳐 숙독을 했는데, 더러는 응모자들의 상상력이 현실 세계에 작동하는 중력과의 싸움에서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지 못한 점들이 눈에 띄었다. 시적 상상력이 현실의 중력을 뚫지 못할 때 통념적 사유에 갇히고 만다. 좋은 시인은 제 상상력을 독창적이고 비범한 현실 통찰의 힘으로 전환할 줄 알아야 한다. 시의 실패는 현실 이해의 피상성, 깊이를 머금지 못한 독창성, 언어의 공허함, 야무지지 못한 은유의 남발에서 여지없이 전시된다.

 

먼저 <염소와 제천역> , <'고독' 한 접시 안 사실래요> , <발들의 내력을 쓰는 피노키오의 편지> , <수족관 사용 설명서> , <저녁 초대> , <강은 과녁을 품고 있다> 외 등의 작품들을 내려놓았다. 이들 작품들에 개성의 촉들이 있고, 살 만한 장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언어와 체험의 접점이 기대치에 못 미치고, 가치 감각의 영역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미미했다. 시적 내공이 모자라다는 증거다.

 

최종적으로 남은 것은 <서쪽 문이 열리고>, <미확인물체>, <꽃밭>, <흑잔등거미> 등을 투고한 네 분의 작품들이다. <서쪽 문이 열리고>는 안정감 있는 호흡과 언어의 운용이 돋보이고, "서쪽으로 가을이 들어오고/내 어깨 너머로 강물 하나가 휘어진다"와 같은 도입부도 마음을 끈다. 허나 뒤로 갈수록 시적 긴장이 이완되는 점이 아쉬웠다. 이는 의식의 치열함을 끝까지 밀고 나갈 사유의 동력이 미약한 탓이다.

 

<미확인물체>는 시적으로 가용하는 언어 영역을 확장하려는 의도가 돋보인다. 중력과 척력, 블랙홀, 중력 이불 등과 같은 새로운 어휘들은 인지의 지평선을 넓게 그리려는 투고자의 의욕을 보여준다. 하지만 "불면의 밤마다 마신 커피나 내일의 블랙커피처럼 과거와 미래의 블랙홀은 더 많아요"와 같은 구절들은 쉽게 진부한 산문에 갇혀버린다. 그런 구절들이 나온다는 것은 사유의 정밀함과 시적 조형력에서 미흡하다는 혐의를 걸기에 충분하다.

 

한 투고자의 <꽃밭>, <빈집>, <구름의 확장> 등은 소품이지만, 시적 재능을 느끼게 한다. "꽃밭은 그늘을 잡아당긴다./한 그늘이 끌려가고 있다"와 같은 구절도 날카로운 관찰의 산물이다. 사유의 명랑성, 시적 어조의 활달함이 인상적이고, 단문의 힘을 밀고 나간 것도 좋아보였다. <흑잔등거미>라는 매혹적이고 완성도가 높은 시와 당선을 겨룬다는 게 유일한 불운이었다.

 

<흑잔등거미>를 흔쾌하게 당선작으로 뽑는다. <흑잔등거미>는 한 편의 작품으로 거의 흠잡을 데가 없이 언어의 조탁과 유려한 리듬을 보여준다. -어머니-흑잔등거미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연쇄가 자연스럽고, 은유와 상징의 효과는 끝까지 집약적이다. 삶과 현실에 대한 통찰을 이만한 의미 있는 구조 속에 녹여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비극의 전조를 잡아채는 직관을 갖고 있는 시인으로 짐작된다.

 

큰 시인으로 성장하길 기원한다.

 

심사위원 장석주(심사위원장), 손택수(예심), 유지소(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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