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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눈 성운* / 나온동희

 

 

우주의 등고점들이 연결되고

연결되어 퐁퐁다알리아 만발한

손바닥을 본다

 

손바닥을 바라보는 일은

단 하나의 슬픔을 응시 하는 것

 

TV속의 한 아이가 오디션의 심사평에

갓 구운 빵처럼 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의 왼손은 시리얼을 들추어 보다가

허풍스러운 그 중 하나를 놓치는 순간이다

 

어제 사랑스러운 루루가 죽었다

한 장의 종이에도 기록되지 않을 무성한 슬픔이 허공에 빛나고

 

오늘 아침엔 가판대에서

일회용 잡지를 집듯 간단히

그것을 잘라버렸다

그러므로 내일 아침부턴 슬픔이 없을 것이다

 

이것들의 근성은 처음부터 슬픔이 아니었을 것

 

문은 닫아야만 나타나는 낡은 방 내부의

야광들은 한때 나의 위로였으나

손가락 사이로 흘러

 

지금은 창문들이 별 몇 송이를 내어놓고 저녁이 되는 시간

 

내 손바닥 중심에는

다알리아 붉은색을 밀어내면서

날 응시하는 루루가 살고 있다

 

* 용자리에 있는 행성상 성운

 

 

 

 

 

[당선소감]

 

우리가 생을 살면서 체험하는 많은 상황과 경험들의 감정적인 부분은

우리의 장부에 씨앗처럼 박히는데

어떤 이는 그것을 상처라고 부르고

어떤 이는 그것을 꽃이라고 부릅니다

우주에 편만한 선한 힘들과 내 안에 자리 잡은 시심이 서로 주파수를 맞추고

자신의 틈 사이로 손 내밀어 잡아주는 진실의 순간이 반드시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빈주먹으로 다시 시를 바라보는 20년의 시간은

너무 덥거나 추웠고 너무 가볍거나 혹은 무거웠지만

도리어 그것이 부족한 성품과 시견 없는 저의 삶을

한 눈금 성장시키기에 필요한 경험이었다고 이제사 고백합니다

저에게 문학의 길을 밝혀주시고 계단을 만들어주시고

설 자리를 마련해주신 진주가을문예 주관하시는 분들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가지런한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세상 만물이 서로 얽혀있으며

그 인연이 매우 신성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시적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손진은 교수님

크게 격려해 주시는 김영식님 감사합니다

저와 함께 하는 문우님들 이 기쁨과 영광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과 나의 가족들 동열과 승탁 그리고 수정 사랑합니다

스스로 저는 항상 다시 피는 꽃이기를

사람들에게 항상 아름다운 꽃으로 이름주기를 다시금 생각하는 이른 새벽

오늘따라 어깨가 무겁습니다

 

 

 

 

 

 

[심사평]

 

청색 테이프로 단단하게 밀봉된 박스 속엔 이름과 인적사항이 지워진 170명의 응모작 1,139편이 담겨 있었다. 이 응모작들은 우리 시의 현재를 축약한 듯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상의 정서를 또박또박 새긴 작품에서부터 겉으로는 온전해 보이되 실상은 끊임없이 파괴되고 분열되는 세계의 이면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 진폭은 넓었지만, 대부분 공력을 많이 들인 흔적을 품고 있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은 모두 12명의 작품이었다 ( ‘브라우티건 풍으로, ‘잃어버린 고리, ‘동백, ‘풀밭에서 여름밤을 보낸다, ‘시조새 울음, ‘링 안에서 링 바깥으로, ‘틀니, ‘나무도마, ‘장마엔 카페인이 필요하고, ‘고양이눈 성운, ‘나팔꽃 묵주를 보다’, ‘천남성에서의 오독). 이 작품을 윤독, 심사숙고한 끝에 링 안에서 링 바깥으로, ‘틀니, ‘나무도마, ‘장마엔 카페인이 필요하고, ‘고양이눈 성운등이 최종대상으로 선정됐다.

 

링 안에서 링 바깥으로5편을 투고한 분의 작품에서는 레이스를 짜는 저녁이 돋보였다. 표제작 링 안에서는 그림자와의 결투라는 흥미로운 착상 그 자체에 맴돌고 있었다. ‘레이스를 짜는 저녁은 시상의 전개가 유려하고 세련된 이미지와 수사를 보여주는 작품인데, 아쉬운 것은 생각의 틀 자체가 그리 새로울 게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표현력만큼의 힘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틀니10여 편의 작품 중엔 콩밭에서 콩알을 줍는 동안이 담백했다. 시의 호흡과 내러티브, 이미지의 전개가 물 흐르듯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는데, 문제는 우리에게 낯익은 세계를 익숙한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

 

나무도마11편의 작품 중엔 나무도마가 재미있는 착상과 진술, 자연스런 어투와 호흡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착상과 설득력 있는 진술이 시 전체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음이 아쉬웠다.

 

장마엔 카페인이 필요하고7편을 응모한 분의 작품에서는 저승사자 놀이를 하던 대낮이 주목을 받았다. 세계의 이면을 투시하는 날카로운 시선, 시를 이끌어가는 속도의 힘과 열정도 느껴졌다. 상투성의 흔적을 지워내는 전복적인 사유와 상상력을 키운다면 개성적인 시인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고양이눈 성운5편의 작품 중엔 표제작과 더불어 소리굽쇠도 눈길을 끌었는데, 일상에서 우주로 확장되는 상상력이 넓고 시원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저승사자 놀이를 하던 대낮고양이눈 성운이었다. 이 두 작품을 놓고 오랜 진통이 따랐다. 워낙 개성이 다른 작품이어서 우열을 가리기 쉽지 않아 공동수상으로 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비점은 고양이눈 성운에 찍혔다. 이 작품은 고양이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일상의 체험고양이눈 성운’- 3천광년 너머에서 사라지면서 마지막 짧은 광채를 내뿜고 있는 천체-이라는 우주적 존재/사건으로 연결된 작품이다.

 

응모작들 뿐 아니라 최근 우리 시들이 미세한 감각이나 관념, 익숙한 서정의 좁은 세계에 갇혀있는 현상을 상기할 때, 이처럼 스케일이 큰 상상력은 귀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또 평범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일상성의 중첩은 미묘한 정서의 울림 속에 시적 입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당선자는 동봉한 작품 소리굽쇠에서 말했듯 하늘의 별들을 향하여/ 드럼치기를계속해주기 바란다. 그것은 곧 보다 넓은 세계와 언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울러, 다른 작품에서 엿보이는 시적 긴장감의 결여가 어디서 발생하는가 되짚어 보기 바란다.

 

모든 것이 경제와 물질로 환산되는 이 부박한 시대에 사물과 세계의 근원과 이면을 더듬어 찾고 이를 성찰하면서 언어로 체화하는 일은 사람과 공동체의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상을 운영하는 뜻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당선자가 앞으로 더 큰 시적 성장을 통해 오늘의 인연을 귀하고 아름답게 이어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심사위원: 이수명 이홍섭 전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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