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 신호승
오늘 아침, 야쿠르트 아줌마가 없어서 이 거리는 슬프다, 그를 완전히 죽이지 못한 지난밤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도 폭포수 찜질방에서 익사체로 걸어 나왔다, 햇빛은 끝내 구름을 따라 출근하지 못한다, 쇼 윈도우에서 비친 나방이 파도처럼 한번 파닥거린다, 결국 생각은 기다리면 오지 않는 버스, 점자 책 같던 가로수도 고비 때 마다 사라질 것이다, 길은 아직도 두고 온 밀림 속에 들어가고 싶다, 후회하지 않는다, 라고 다시 담배 불을 붙이자 사방천지 불 꺼진다, 표류하는 하늘, 등대 없인 해도 달도 뜨지 않을 것이다, 어둡지만 익숙해야 하는 이름을 천천히 불러야 한다, 나뿐 만은 아니라고 엽서를 쓰자마자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약속 다방 무릎 위에 앉아 희희덕대다가 여러 날 가출한다, 밤에만 문을 여는 동평화 약국에서 아스피린 같이 활짝 핀 하얀 머리통을 다 팔고 나왔다, 사장도 없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자 겨울이 끝났다, 봄이 오면 새벽 개떼들을 따라 다닐까, 그렇게 꽃피우고 싶다고 꽃이 핀다,
[심사평]
150여 명의 응모자 중 본심에 오른 10명의 작품을 놓고 토의를 거듭한 끝에 최종 4명의 후보작을 선정했다. 신호승의 <오늘 아침>, 황순탄의 <징그러운 사과>, 명광일의 <별들이 무질서하다>, 이규의 <닭의 문>이 그것이다.
네 편의 대상작은 모두 좋은 장점과 나름의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마지막까지 논의를 거듭해야 했다. 그중에서 황순탄의 <징그러운 사과>는 신선한 화법과 부드러운 어조, 시적 구조와 긴장감이 탄탄해 끝까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끌었으나 그 한 편을 제외한 작품들의 수준에 편차가 커서 아깝게 낙점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명광일의 <별들이 무질서하다>는 시적 리듬이나 말의 절제가 좋고 적절한 반복법을 써서 시를 끌고 가는 솜씨가 상당했으나 눈에 띠는 상투어나 관념어들이 종종 시의 활력을 막았다. 이규의 <닭의 문>은 비유를 잘 사용할 줄고, 말에 의미를 입히는 재주가 돋보였으나 대상을 노래하는 발성이 다소 산만하고 거친 게 흠으로 지적됐다.
심사위원들은 장고를 거듭한 끝에 대상을 새롭게 포착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상상력이 뛰어나면서도 시적 구심력을 잃지 않은 신호승의 <오늘 아침>을 당선작으로 뽑는데 합의했다. 신호승의 새로움과 결합된 상상력이 한국시의 다채로움에 한 자리를 마련하고, 신인으로서 시의 길을 끝까지 밀고갈 수 있는 힘이 되길 빈다.
심사위원 황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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