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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 / 이건청

 

 

곡마단이 왔을 때

말은 뒷마당 말뚝에 고삐가 묶여 있었다.

곡마단 사람들이 밥 먹으러 갈 때도

말은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꼬리를 휘둘러 날것들을 쫒거나

조금씩 발을 옮겨놓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묶여 있었다.

 

날이 저물고, 외등이 환하게 밝혀지고

트럼펫 소리가 울려 퍼질 때까지

말은 그냥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곡마단 곡예사가 와서 고삐를 풀면

곡예사에 끌려 무대에 올라갔는데

말 잔등에 거꾸로 선 곡예사를 태우고

좁은 무대를 도는 것이 말의 일이었다.

 

크고 넓은 등허리 위에서 뛰어오르거나

무대로 뛰어내렸다가 휘익 몸을 날려

말 잔등에 올라타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는데

곡예사는 채찍으로 말을 내리쳐

박수소리에 화답해 보였다.

 

곡예사가 떠나고 다른 곡예사가 와도

채찍을 들어 말을 내리쳤다.

말은 매를 맞으며 곡마단을 따라다녔다.

 

곡마단 사람들이 더러 떠나고

새 사람이 와도

말은 뒷마당에 묶여 있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꼬리를 휘둘러 날것들을 쫒거나

조금씩 발을 옮겨놓기도 하면서

평생을 거기 그렇게 묶여 있을 것이었다.

 

 

 

 

2017년 제28회 김달진 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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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이건청(75)과 문학평론가 장경렬(64)이 선정됐다고 상 운영위원회가 29일 밝혔다.

 

수상작은 시집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와 평론집 꽃잎과 나비, 그 경계에서.

 

이건청 시인은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문단의 대표적 작가다. 지난 2010년 목월문학상을 수상했다.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로 활발한 비평 활동을 하는 장경렬 평론가는 평론집 꽃잎과 나비,그 경계에서로 수상자가 됐다.

 

김달진문학상은 경남 창원 태생의 시인이자 한학자 월하(月下) 김달진(1907~1989)의 문학과 삶을 기리고자 1990년 제정된 문학상으로 김달진문학상운영위원회가 해마다 선정한다. 1990년 제정한 이래 시 부문만 시상하다가 1998년부터 평론 부문도 신설했다.

 

시상식은 오는 99일 오후 4시 진해문화센터 대공연장에서 열린다.

 

 

 

 

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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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시렁 궁시렁

 

 

등단 50년 하고도 한 해를 더 지났다. 그동안 나는, 구름의, 딸이고 바람의 연인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이었고, 어쭙잖은 헌혈 몇 방울 봄비 한 주머니였고, 10원짜리 동전 다보탑을 줍다에 불과했고, 감쪽같은 거짓말로 참말하며 거짓말로 참말하기,민속해학 알고에 홀렸고, 지향현실의 모순 둥근 세모꼴이었고, 때 얼룩 뭉치 검정 모성의 색걸어서 에덴까지를 거쳐 와, 이제는 녹두보리 구별 못하는 숙맥菽麥이라, 제 눈에 안경이라서 숙맥 짓만 보이는지

 

평생 인간발달(발달심리학)과 우리의 여성아동민속으로 밥 먹었다, 삶은 축적이면서도 소멸인데도, 그 점을 향한 발달은 아이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그래서 어른의 아버지인가? 나를 건너지 못하는 (이미 건넜거나) 고독이거나 유약함이거나, 내 속에서 못 자란 ''라는 아이가 숙맥인가? 나에게는 나 이상의 불가사의가 없어,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Less is more라는 제정신이 아닌 시인 정신에서도, 시인詩人이라는 인간되기에서도, 다 실패한 줄을 확인해가며, 그 실패를 쓰는 숙맥 짓만 한다.

 

다 폭로도 괜찮다는, 부끄러움을 강 건너 불처럼 구경하며의 몸에 만의 얼굴을 가진 시! 동화(Fairy)와 우화(parable현실)! 그래서 거짓말로 참말하기의 ! 언어경제학言語經濟學적 언어예술言語藝術!모르겠다. 내일도 있으니까. 혼신이 종합병원이 되고서야 맛보는 자학적 쾌감도 때로는 일몰의 황혼 같다. 낡고 허물어지면서도 새로운 신비를 풍기는 듯도.

 

이 시집은 최동호 시인의 독촉 덕분이다. 시인들도 많은데, 최 교수의 우정과 시인이 읽는 감상을 써 주신 沙泉(이근배) 사백께 감사하며.

 

2016년 부활하는 봄 아지랑이 더불어유안진이가

 

 

 

 

숙맥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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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진(76) 시인이 <숙맥노트>(서정시학)로, 이광호(54) 평론가가 <시선의 문학사>(문학과지성사)로 제27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달진문학상은 경남 진해 출신 김달진 시인의 시적 업적을 기리고자 고인 타계 1주기인 지난 1990년 제정됐다. (사)시사랑문화인협의회와 김달진문학관이 주최하고 창원시와 서울신문사가 후원한다.

 

시와 평론 두 부문에서 문단 경력 10년 이상인 작가의 최근 1년간(전년도 4월부터 그해 3월까지) 발간된 작품을 대상으로 심사해 수상자를 선정해왔다.

 

올해 수상자인 유안진 시인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67년 현대문학 3회 추천완료로 등단했다. 수상작인 <숙맥노트>는 유 시인의 등단 50년께인 올해 나온 시집이다. 심사위원들은 유 시인의 이번 시집이 독특한 이야기체의 시로, 소박하고 인간적인 이야기를 담았다는 평가를 했다.

 

평론 부문 수상자인 이광호 평론가는 대구 출신으로,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 '시적 어조와 사회적 상상력'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수상작인 <시선의 문학사>는 문학사 서술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안진 시인과 이광호 평론가는 각각 상금 2000만 원을 받는다. 수상 기념 시낭독회는 내달 3일 오후 6시 30분 고려대 100주년 기념관 국제원격회의실에서 열린다. 시상식은 9월 3일 창원시 진해문화센터 1층 대공연장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2016년 제27회 김달진 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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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길 / 김초혜

 


오 하느님
나이는 먹었어도
늙은 아이에 불과합니다

햇살은 발끝에 기울었는데
내 몸이나 구하고

굽은 마음 어쩌지 못해
얼굴을 숨기기도 합니다

몸안에 가득 들여놓은 꽃은
붉은 조화 나부랭이였습니다

어찌
고요를 보았다 하겠습니까

 

 

 

멀고 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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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늙은 아이가 바라본 신비한 세상

 

김초혜 시인은 한때 사랑 굿이라는 시편으로 세상을 풍미했던 베스트셀러 작가다. 1980년대나 199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치고 시인의 시편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에게도 청춘은 흘러 이제 노년이다.

 

노년에 이르게 되면 시도 따라서 노년에 이르게 마련. 그래서 시가 늙는가. 아니다. 시가 변한다. 변하더라도 좋은 쪽으로 변하는 데에 시인의 성취가 있고 독자의 기쁨이 있다. 가능하다면 시의 길이가 짧아져야 하고 그 내용이 깊어져야 하고 시선이 맑고 그윽해져야 한다.

 

딱 여기에 해당되는 시인이 바로 김초혜 시인이다. 그러기에 심사위원 세 사람은 쉽게 호흡을 같이 했고 이견 없이 김초혜 시인의 시집 멀고 먼 길을 수상작으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시집 표제작이기도 한 시 멀고 먼 길은 최근 시인의 시적인 노력과 근황을 한눈에 보여 주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노년에 이른 시인의 해맑은 눈이 돋보인다. 그러면서도 겸허가 가득하다. 차라리 한 편의 기도문이다. 무릇 기도는 절대자에게 드리는 인간의 하소연과 소망의 표현. 여기서 시인은 즐겨 어린이가 되고자 한다. ‘늙은 아이가 그것이다.

 

정말로 좋은 시인은 젊어서는 젊은 노인이지만 늙어서는 늙은 아이가 될 수 있는 시인이다. 이야말로 시인에게 이른 신의 축복이요 선물이다. 늙은 아이가 되어서 보는 세상은 당연히 아름답고 신비하고 또다시 사랑스럽기 마련이다.

 

김초혜 시인이 바라본 세계, 김초혜 시인이 내놓는 시편들이 그러하다. ‘멀고 먼 길세상을 한 바퀴 돌아왔지만 시인의 숨결은 지쳐 있지 않고 시인의 마음결은 여전히 싱싱하고 촉촉하다. 뿐더러 고요하기까지 하다. 거기에다가 지혜에 가득 차 있다.

 

고요한 지혜의 바다, 그 바다에 꽃으로 피어난 겸허한 고요. 상이란 들쑥날쑥이다. 먼저 받을 수도 있고 나중에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좋으신 시인의 이름으로 받으시는 상에 마음의 꽃다발을 미리 전한다.

 

- 심사위원 이근배·신달자·나태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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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지는 종소리 / 김수복

 

 

화성 용주사 저녁 범종은

 

가슴 깊이 숨을 들여 쉬었다가

 

멀리 몸속 항아리들을 내보내는데

 

아랫마을 사람들 둥근 가슴에까지

 

소리의 뿌리를 담아 재워서

 

뜰 앞 모란이 지는

 

그 슬픈 미소에

 

그 얼굴을 갖다 대어 보네

 

 

 

 

하늘 우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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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시장 오시덕)에서 지원하고 풀꽃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이준관)에서 주관하는 제3회 풀꽃문학상 수상자로 본상에 김수복 시인, 젊은 시인상에 류지남 시인이 결정됐다.

 

지난 9월 말까지 공주문화원(원장 나태주)에 자천 타천으로 201510월 이후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접수된 시집은 총 57권이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려진 시집을 2016105, 공주문화원에서 오세영 서울대 명예교수, 최동호 고려대 교수, 이재무 시인 등 3명의 심사위원이 심사한 결과, 본상 부문에는 김수복 시인의 시집 하늘 우체국(시정시학), 젊은시인상 부문에는 류지남 시인의 밥꽃(작은숲)이 결정됐다.

 

심사위원들은 두 수상자를 결정함에 있어서 인생과 자연에 대한 아름다우면서도 진정성 있는 시심에 만장일치로 찬사와 지원을 보냈다. 시상식은 오는 21일 오후 2, 공주문화원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심사위원들은 제3회 풀꽃문학상 본상 선정 이유로 이번 심사에서는 최종적으로 7개의 아름다운 시집들이 본심에 올라 각축을 벌였다숙고 끝에 김수복 시인의 시집 하늘 우체국(서정시학, 2015)에 수록된 <모란이 지는 종소리>를 풀꽃문학상 본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특히 김수복 시인은 문학적 연조가 깊어 자신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공고히 형성해 온 시인이라며 이번 시집에서는 끝없는 자기 갱신을 통해 새로운 시풍으로의 혁신을 시도하는 점을 높이 샀다고 말했다. 그의 시는 인간의 깊은 진심을 표현하면서도 단시 형태의 간결미를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다김수복 시인이 언어적 탁마를 통해 선명한 감각과 이미지를 신선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의 응축미와 작품의 서정성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들은 수상작 <모란이 지는 종소리>는 종소리가 마을 사람들의 가슴속까지 퍼지고 그 소리가 다시 모란으로 피어나는 장면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시인은 미소를 지닌 얼굴에의 접촉감 속에서 생의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여실히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특히 범종이라는 광물적 이미지와 모란이라는 식물적 이미지를 결합하는 상상력이 독특하며 이를 통해 몸의 이미지에 깃든 새로운 체취를 형상화한다는 점이 신선했다이렇듯 수상작은 서정적 세계의 미적인 형상화의 수준과 그 언어 감각이 탁월해 맑은 서정시의 정통을 지키려는 풀꽃문학상의 본상 수상작으로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심사위원들은 또 풀꽃문학상 젊은시인상 선정이유로 젊은시인상에 공모한 시인들 가운데에는 열정 가득한 시집을 통해 개성적인 작품 세계를 추구하는 수작이 많았다그 중에서도 심사위원들은 류지남 시인의 시집 밥꽃(작은숲, 2016)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특히 이 시집은 진솔한 일상을 작품으로 승화한 경우이되 애써 기교를 동원하거나 공교히 다듬지 않으면서도 투박한 진심의 가치를 전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류지남 시인은 삶의 과정에서 소재들을 건져 올리고 그것을 깊고 정감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의 작품에는 삶과 세계에 대한 애정이 풍성하게 드러나 있고, 이것이 작품 세계의 곡진함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데 주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들은 이어수상작 <>은 삶과 존재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며 이 작품은 외롭고 소외된 몸의 변방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으며 그것의 가치를 온전히 드러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등은 오지처럼 먼 곳이지만 따뜻함의 원천이면서 또한 어두운 장소이기도 하다이 시에는 먼 곳을 돌아보는 마음, 어두움을 받아들이는 마음, 따뜻함을 긍정하는 마음이 등장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세 가지 마음은 시인의 내면임과 동시에 세계를 대하는 자세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 시의 중층적인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이렇듯 일상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여 자연스럽고 섬세하게 풀어놓았다는 점에서 <>의 작품성에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김수복 시인은 1953년 경남 함양 출생으로 1975<한국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지리산 타령, 낮에 나온 반달, 새를 기다리며, 또 다른 사월, 모든 길들은 노래를 부른다, 사라진 폭포, 우물의 눈동자, 달을 따라 걷다, 외박등이 있다. 편운문학상, 서정시학 작품상을 수상했고, 현재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류지남 시인은 1961년 충남 공주 출생으로 1990<삶의 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충남교사문학회, 충남 작가회의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고, 시집 내 몸의 봄,밥꽃을 발간했다 현재 공주마이스터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이고 충남작가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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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가 있는 골목 / 변희수

- 李箱에게

 

 

아오?

의자에게는 자세가 있소

자세가 있다는 건 기억해둘 만한 일이오

의자는 오늘도 무엇인가 줄기차게 기다리오

기다리면서도 기다리는 티를 내지 않소

오직 자세를 보여줄 뿐이오

어떤 기다림에도 무릎 꿇지 않소

 

의자는 책상처럼 편견이 없어서 참 좋소

의자와는 좀 통할 것 같소

기다리는 자세로 떠나보내는 자세로

대화는 자세만으로도 충분하오

의자 곁을 빙빙 돌기만 하는 사람과는

대화하기 힘드오 그런 사람들은 조금 불행하오

자세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이오

 

의자는 필요한 것이오,

그런 질문들은 참 난해하오

의자를 옮겨 앉는다 해도 해결되진 않소

책상 위에는 여전히 기다리는 백지가 있소

기다리지 않는 질문들이 있소

다행히 의자에게는 의지가 있소

대화할 자세로 기다리고 있는

저 의자들은 참 의젓하오

 

의자는 이해할 줄 아오

한 줄씩 삐걱거리는 대화를 구겨진 백지를

기다리지 않는 기다림을 이해하오

이해하지 못할 의지들을 이해하오

의자는 의자지만 참 의지가 되오

의자는 그냥 의자가 아닌 듯싶소

의자는 그냥 기다릴 뿐이오

그것으로 족하다 하오

 

밤이오

의자에게 또 빚지고 있소

의자 깊숙이 엉덩이를 밀어 넣소

따뜻하게 남아 있는 의자의 체온

의자가 없는 풍경은 삭막하오 못 견딜 것 같소

의자는 기다리고 있소

아직도 기다리오 계속 기다리오

기다리기만 하오

 

여기 한 의자가 있소

의자에 앉아서

보이지 않는 골목을 보고 있소

두렵진 않소

 

 

 

 

2016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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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의자는 시를 낳는 성소궁합 잘 맞는 난 행운아

 

이 세상에는 의자가 참 많다. 카페에도 도서관에도 지하철에도 의자는 넘쳐난다. 아니다. 의자보다는 엉덩이가 훨씬 더 많다. 내게도 늘 의자를 그리워하는 엉덩이가 있다. 가끔 시를 쓰는 대신 차라리 나무를 심었다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결국 나는 그 나무로 또 의자를 만들었겠지만 이제 의자와 나무가 같은 혈족이라는 걸 안다.

 

오늘은 잠시 의자와 떨어져 있었고 황송하게도 누워서 당선소식을 받았다. 몽중일까. 눈을 뜨고 있어도 꾸는 꿈처럼 더듬더듬 의자를 끌어당겨 앉아본다. 여전히 내 머리맡을 지키는 의자, 이 기회에 의자에게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 의자여! 정말 미안하다, 아니 참 미안했다, 그리고 다시 더 미안하겠다. 당선소감을 쓰는 지금도 나는 의자를 믿고 까분다.

 

나는 행운아다. 의자와 궁합이 잘 맞는 엉덩이를 갖고 있으니. 시를 빌미로 의자와 엉덩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오해가 즐겁다. 언젠가 삐거덕거리던 시들이 끄덕끄덕 고개를 흔들어주는 날들이 올까. 대화는 계속될 것이고 의자는 나의 모든 시들이 마지막으로 태어나는 성소다. 어떤 자세로 의자에 앉아야 할까 늘 함께 고민하는 구밀‘13나의 시동지들과 행운을 나눈다. 의자에 항상 따뜻한 방석을 놓아주는 나의 가족 연, 동 그리고 남편 너무 고맙다. 심사를 해주신 이시영, 황인숙 선생님 그리고 손택수, 김행숙 선생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경향신문사에도 깊은 마음을 전하고 싶다.

 

영광은, 의자에게 바친다.

 

 

 

거기서부터 사랑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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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기존 틀 차용했지만 사유를 끌고 가는 의식 우뚝

 

14건의 응모작이 예심에서 올라왔다. 그중 우선 고른 작품이 의자가 있는 골목’ ‘벽과 대화하는 법’ ‘투명한 발목이었다. 이 과정이 수월했다는 건 좀 서글픈 일이다. 새로운 종의 시를 포획하기를 기대하며 무엇이든지 빨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심사자들의 눈에서 그토록 쉽사리 빠져나가는 시들이라니. 재량껏 성심을 다한 시들을 보내주신 분들께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하다. , 하지만 왜 그리 겉도는 거지? 붕붕 떠 있지? 한 걸음 더 성심을 담으시라. 진정을 담으시라. 하긴 열네 분의 시가 근사하면 얼마나 머리가 터졌을까. 고마운 일이다만.

 

벽과 대화하는 법은 감각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이이가 갖춘 표현력에 세상-사물을 읽는 힘, 인식의 힘이 더해지기를 바라며, ‘투명한 발목의자가 있는 골목을 최종심으로 놓았다. ‘투명한 발목은 섬세하고 예민하고 차분한 묘사와 어조로 독자를 시의 정황 속으로 천천히, 깊게 이끄는 시다. 그런데 이 매력적인 시에도, 흠을 잡자고 눈에 불을 켜니, 성근 부분이 있어 아쉽다. ‘의자가 있는 골목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로 시작되는, 이상의 가장 널리 알려진 시 거울의 말투를 베껴서 쓴, 즉 이상 풍으로 쓴 시다. 새로운 시인을 가려 뽑는 자리에 기존 시인이나 시를 패러디함으로써 오마주를 보이는 시를 뽑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이 틀 속에 자기 생각, 자기만의 세계가 담겨 있는 점을 높이 샀다. 사유를 길게 끌고 나가는 힘 있는 진술 속에 시인 의식이 우뚝하다. 그의 다른 응모작들도 두루 소재를 다루는 솜씨가 예사가 아니어서 믿음이 간다. 건필을 빌며 축하드린다!

 

- 심사위원 이시영·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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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나는 나비 / 박덕규

 

 

나비가 떼가 날아간 자리

허공에 긴 뱀 같은 자국이 남는다.

늦게까지 놀다가

내 이마에 앉았다 가는 나비도 있다.

 

나도 나비를 따라 대문 밖으로 나간다.

긴 골목길을 따라가고 있다.

 

모퉁이를 돌아도

골목길이다.

 

길을 비켜 달라는 자전거 소리

채소 팔러 온 리어카

몰려다니는 동네 아이들

시장 갔다 오는 아낙네

 

그 사이를 나비가 가고

내가 간다.

 

때로 골목에는 나비와

나비를 좇는 나밖에 없다.

내가 날고

나비가 날 좇는 때도 있다.

 

골목이 일어나 나비를 좇고

내가 긴 골목으로 드러누워 있기도 한다.

나는 없고

나비 떼가 긴 골목이 되기도 한다.

 

모퉁이를 돌아

나비가 날고

골목이 날고

내가 난다.

 

큰길은 안 보이고

골목길이다.

 

 

 

골목을 나는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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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시인을 추모하는 ‘2015 상화문학제’가 이상화기념사업회와 대구시수성문화원 공동 주최로 22일 대구시 중구 계산동 이상화고택 앞마당에서 열린다.

이날 행사에서는 문화공연과 문학상 시상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1부에서는 정가공연을 시작으로 연극인 박정자가 상화시인의 대표작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낭독한다. 이상화 시인의 며느리인 정태순은 ‘기원무’ 공연을 선사한다. 2부 문학상 시상식에서는 시집 ‘골목을 나는 나비’를 출간한 박덕규 시인에게 제30회 이상화 시인상이 수여된다. 박 시인은 1958년 안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다.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 시인은 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됐으며 94년에 문예지 상상을 통해 소설가로도 등단했다. 시집 ‘아름다운 사냥’ ‘골목을 나는 나비’, 소설집 ‘날아라 거북이’ ‘포구에서 온 편지’ 등이 있다.

한편 23일에는 이상화기념사업회가 마련하는 ‘상화랑 영랑이랑 시도 읽고 차마시고’ 행사가 청라언덕에서 열린다. 이상화 시어가 찍힌 티셔츠를 시민들에게 무료로 배포한다. 일본인 미나미 구니카즈와 중국연변동북아예술가협회 최룡관 회장, 대구의 이하석 시인 등이 참여하는 한중일 국제 세미나도 23일 오후 3시 대구문학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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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그물 / 박종해

 

 

풀벌레는 달과 별을 빨아들여

소리의 그물을 짠다

명주실 보다 더 가늘고 연한 소리와 소리의

음계에 달빛과 별빛을 섞는다

나뭇잎마다 포르스름한 별빛과 달의

은빛 입술이 맺혀 있다

풀벌레는 이러할 즈음 잊혀진 그녀의 머리칼

한 올 한 올까지도 소리의 실로 짜 내린다

나를 벼랑으로 떨어뜨리고 가버린 그녀의

동그스름한 얼굴이 달처럼 떠오른다

 

잊어버린 시간의 풀섶에서 풀벌레가

잊어버린 말을 명주실처럼 뽑아낸다

아무렇지도 않던 생각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와

잊어버린 강 언덕 달빛 부서지는 메밀밭 언저리를

찿아가고 있다

어느새, 화안한 달빛 속에서 아련한 여장의 그리메가

나뭇가지와 오솔길과 벤취 위에 가득하다

 

 

 

소리의 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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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울산예총 회장인 박종해 시인이 제29회 '상화 詩人賞' 수상자로 선정됐다.

박종해 시인은 역대 수상자 중 경남권역 최초의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는 영예를 안게 됐다.

상화 시인賞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등 주옥같은 시를 쓴 민족 시인 이상화 선생의 애국정신과 민족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이다.

이상화 기념사업회가 주관하고 대구광역시가 지원하는 상화시인상은 2013년과 2014년에 전국에서 발간된 시집 중 70권을 수집해 제1차 심사에서 15권을 뽑은 뒤 2차 심사에서 5권의 시집을 뽑아 최종적으로 박종해 시인의 시집 '소리의 그물'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심사위원으로는 시인 장석남과 시인 정민호, 문학평론가 권기호씨가 맡았다.

심사평에서 "박종해 시인은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지 34년 동안 전통과 서정성을 바탕으로 진솔하고 명징한 시세계를 추구해 왔으며 치열한 詩정신을 바탕으로 한  그의 시집 '소리의 그물'은 대단히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해 선정하게 됐다"고 밝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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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선문禪門에서 ''이란 몽둥이란 뜻이다.

 

내게 방!이란 나를 때리는 시의 몽둥이다.

 

시가 나를 방!해서 나는 시를 받아 적었다.

 

내 시를 읽는 분들께 그 한 방!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해지길 바랄 뿐이다.

 

어느새 시력詩曆 서른 해에 닿았다..

 

시인 30년이라니!

 

11번빼 시집을 세상으로 내보낸다.

 

!

 

                                 2013년 새봄에

                                           

                                          정일근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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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문화인협의회는 올해로 제24회째인 김달진문학상 시 부문에 정일근 시인의 ‘방’(서정시학), 평론 부문에 오형엽 평론가의 ‘환상과 실재’(문학과지성사)를 선정했다고 14일 밝혔다. 시 부문 심사는 신달자ㆍ김현자ㆍ조정권ㆍ이숭원, 평론 부문은 김윤식ㆍ김종회ㆍ문흥술ㆍ유성호 심사위원으로 진행됐다.

 

수상자인 정일근 시인은 이번 수상에 대해 “등단 서른해에 낸 11번째 시집 ‘방!’으로 월하 김달진 선생님이 주시는 ‘근속상’을 받았다”며 중학교 교가 작사가이자 대학시절 은사의 스승이었던 인연이었다는 인연을 소개하고, 그 인연이 이어져 이 상을 받게 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오형엽 평론가는 “문학비평을 시작한 지 20년 가까이 되니 독창적인 발상과 참신한 방법론과 패기 있는 주장보다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모습을 확인하며 부끄럽기만 하다”며 “초심으로 돌아가 신인 비평가의 모습으로 환골탈태하는 일만이 부족한 저를 격려해 주신 운영위원회와 심사위원님들께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시상식은 오는 10월26일 오후 5시 창원시 진해구민회관에서 치러지며, 상금은 각 2,000만원이다. 또 시상식 이전인 6월5일 오후 6시 서울 고려대학교에서 기념 시낭독회도 열린다.

 

 

 

2013년 제24회 김달진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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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리폼 하우스 / 김선호

 

 

김 씨는 원피스를 마름질한다

고장난 라디오가 정오의 희망 음악

주파수를 찾으며 두리번거리고

서랍에선,

몇 년을 곰삭아 빛을 잃은 단추들과

조각 천들이 빠끔히 밖을 내다본다

어제는 휠체어 소녀가 원피스를 가지고 왔다

작업대 위에 원피스를 놓고 소매를 자른다

 

옷이 날개라고,

레이스를 잘라 시침질하여 달고

절뚝이는 치마 길이를 허리에 맞게 잘라

최신 스타일 나비 모양 옷을 완성했다

 

옷걸이에 걸린 리폼한 원피스는

선풍기 바람에 날개를 달았으나 문에 부딪치며

자리에서 가늘게 떨고 있다

그들도 날고 싶은 희망주파수를 찾고 있는 중이다

실오라기 풀리듯 빛이 들어오는

의류 수선점 지하

시간을 자르고 계절을 재단하는 재봉틀이

다시 햇살을 마름질한다

 

 

 

 

햇살 마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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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정신의 아픔 속에서 피는 꽃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 김춘수 선생님의 시 을 읽고 또 읽으며 아련한 미답의 세계를 꿈꾸던 시절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시들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좋아하는 시를 스크랩하여 벽에 붙여놓고 매일 암송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저는 시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기뻤습니다. 그리고 또 우연히 어느 문화재단의 후원금을 받아 첫 시집을 내었습니다.

 

그렇게 얼떨결에 밖으로 나왔지만 아무도 제게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쉽게 시인이 되었고, 첫 시집을 간행한 것이지요. 그때 시인이란 이름은 몸에 걸치는 것이 아니라 닦고 빛을 내야 광택을 내는 광물임을 알았습니다. 문학이 사치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시란 표현의 수사나 시류의 모방에 있지 않고 사유의 깊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잠 못드는 밤이 많았습니다. 기진맥진해 펜을 놓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고통의 자기 고백이 이번 수상작이 된 두 번째 시집 햇살 마름질이었는데 행운은 이렇게 축복처럼 왔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김춘수 선생님을 기리는 이 상을 받다니요. 통영에서 이 소식을 알려주었을 때 저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러나 기쁨 뒤엔 겁이 덜컥 났습니다. 이 큰 상을 감당할 수 있을 지, 혹 누가되지 않을 지, 앞으로도 이 명예에 맞는 시를 써낼 수 있을지, 꼬리를 무는 걱정이 상의 무게만큼 이나 무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토록 갈망하고 동경했던 세계라서 더욱 값지게 생각합니다. 선배님들이 걸어 오셨듯이 어둡고 쓸쓸한 길을 열심히 걷겠습니다. 앞으로 이 문학상이 기대하는 시인으로 성장하는데 한 눈을 팔지 않겠습니다.

 

김춘수 시인은 시안(詩眼)에서 시에도 눈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의 눈은 일상적인 사람의 눈과는 달리 이쪽은 보지 않고 저쪽도 보지 않고 그쪽만 보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다고 했습니다. 시의 눈으로 바라 볼 때 한 송이 꽃이 피어난다고 했듯이 저도 바람에 시달리고 비를 달래며 꽃을 피워 보겠습니다. 그들과 같이 쪼그리고 앉아 햇빛과 구름과 새 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제가 수상하도록 배려해 주신 분들 뜻 잊지 않겠습니다. 그간 제 시들을 지켜보아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많이 부족한 제 시를 읽고 격려해주신 심사위원님 깊이 감사 인사 올립니다. 아름다운 통영을 문학의 메카로 만드느라 애쓰시는 관계자 여러분께도 마음 단정히 하고 인사드립니다.

 

 

 

 

오래된 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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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두레박을 던져 시를 길어 올리다

 

2012년 김춘수시문학상에 응모된 시집의 수는 모두 55권이었다. 이 가운데 예심을 거쳐 두 본심위원에서 전달된 시집은 21권이었다. 본심위원은 심사에 들어가기 전에 다음과 같은 심사기준을 정하였다.

 

첫째, 한국시의 올바른 건강성 회복에 기여할 만한 깊이를 지닌 시집.

 

둘째, 올바르지 않은 문장, 기이한 어법 등 작금의 시단이 노출하고 있는 부정적인 요소를 덜 지닌 시집.

 

셋째, 독자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시류에 영합하는 난해성을 보이는 시집은 가급적 배제.

 

넷째, 삶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탐색을 보여주고 있으며 건강한 세계관을 가진 시인의 시집.

 

다섯째, 김춘수 시인의 시정신을 이을 만한 유망주의 시집.

 

이런 기준을 정하고서 심사에 임하고 보니 5권의 시집으로 압축되었다. 어떤 경우 심사위원이 해설을 쓴 시집도 있었고 표4 글을 쓴 시집도 있었고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시인의 시집도 있었다. 이러한 사적인 것은 배제하고 오로지 시집의 질적 함량을 놓고 따지면서 후보 시집을 압축해 나가다가 최종적으로 남게 된 시집이 김선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햇살 마름질(서정시학)이다.

 

예심 통과작 21권 안에는 유명세는 누리고 있는 시인의 시집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지만 김선호 시인은 등단 11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내는 무명에 가까운 시인이다. 논의 과정에서 본인에게 큰 격려가 되어 발전의 계기로 삼을 만한 시인의 시집이면 좋겠다는 얘기도 나왔고, 중앙문단에서 주는 문학상을 2회 이상 받은 이는 고려하자는 얘기도 나왔다.

 

햇살 마름질은 전통과 실험, 일상(日常)과 이상(理想), 자아와 세계, 추억과 기억, 체험과 상상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가 그다지 어렵지 않으면서도 메시지의 깊이는 옛 우물같다. 편편의 시 중에서 처지는 것이 없다는 것도 강점이지만 인생의 희로애락, 아니, 인생살이 가운데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슬픔과 아픔의 깊이 속으로 두레박을 던져 은유와 상징의 물이 철철 넘치는 시를 길어 올리는 시인의 노력이 십분 느껴진다. ‘종합진단연작시는 특히 더 좋았다. 부박한 언어의 유희가 시단의 주류인 양 유행을 타고 있어 걱정스러운데 김선호 시인의 시는 다행히도 소재와 언어에 대한 대단한 집중력으로 시적 긴장감을 어느 한 편에서도 잃지 않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김선호 시인의 햇살 마름질은 애당초 염두에 두었던 심사기준에 가장 적합한 시집이었다. 그래서 두 심사위원은 수상결정에 흔쾌히 동의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 오세영,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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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는 / 박완호

 

 

송사리가 뛰어올랐다 내려앉은

수면이 파르르 떨린다, 소심한

물낯을 흔드는 것은 물고기를 놓친

허공의 자책, 처음 온 곳으로 햇빛을 되돌려 보내는

비늘의 매끄러운 살결에 정신을 놓아버린

바람의 한숨, 조그만 동심원을 그리며

가라앉는 작은 물고기가 사실은

허공의 전부이고 바람의 온몸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 고요하던 수면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은

너와 나, 너의 순간이 나의 순간 위에

지나온 시간의 무게를 얹었기 때문, 잔잔한

물의 낯에 한 겹 한 겹 지문을 새기는 일,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기 때문

 

 

 

 

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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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문인협회와 통영문학제 추진위원회는 22일 '2011 통영문학상' 3개 부문 김춘수 시 문학상, 김용익 소설 문학상,김상옥 시조문학상의  당선자를 발표했다.

 

통영문학제 추진위원회(위원장 박동원) 측은 김상옥 시조 문학상 선정 과정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심사과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심사위원들의 결정을 존중해  터무니 없는 의혹에 대응하지 않고 원안대로 수상자를 발표한다고 밝혔다.

 

초정 김상옥 시조문학상 수상작이 다른 문학상에서 수상한 작품을 선정해 규정을 어겼다는 보도에 따른 내용으로 "그런 규정은 없다"고 문학제 관계자는 일축하며 "기사가 오보였다"고 설명했다.

 

올해 각 상을 수상하게 된 3인은 김춘수 시문학상에 '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를 출품한 박완호 시인 김상옥 시조문학상에는 '나를 운반해온 시간의 발자국이여'에 이우걸 시조시인, 김용익 소설문학상에는 '겨울소나타'를 출품한 우선덕 소설가가 각각 영광의 수상자로 결정됐다.

 

김춘수 시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박완호 시인은 1965년 충북 진천 출생으로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내 안의 흔들림','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아내의 문신','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등이 있고 현재 성남 풍생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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