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발 / 조동범
오늘은 축제의 밤이야
검은 피와 불꽃이 빛나는
불행한 장미의 밤이지
붉은 장미를 바라보며
카니발의 행렬이 폭소를 터뜨리지
고깔모자를 쓴 광대는
신나는 나팔에 매달려
말랑하고 부드러운 리듬을 만들어내지
카니발의 밤은
깊고 아름다워
하늘을 가득 메운 색종이가
바람을 타고 허공을 맴도는,
그런 밤이야
카니발의 여인은 노래를 부르며
나팔 속으로 행진을 하고 있어
카니발의 큰북이
심장을 따라
붉은 리듬을 만들고 있어
오늘은 붉은 심장의 밤이지
벌거벗은 여자들은
광대들의 고깔모자를 빼앗아
공중에 던지지
흥겨운 공중은
빙글빙글 도는 고깔모자로 가득해
검은 피와 불꽃이 빛나는
검은 왕관의 밤
여왕은 빛나는 지휘봉을 들고
최선을 다해 카니발을 지휘하지
나팔과 큰북이
검푸른 어둠을 서성이는 밤
카니발 너머에는
동굴처럼 길고 막막한
어둠이 기다리고 있지
어둠을 향하면서도
끊임없이 즐겁고 유쾌한
카니발의 행렬
여왕은 최선을 다해 웃고 있지
최선을 다해,
지휘봉을 돌리고 있지
고깔모자와 검은 피와
불꽃이 빛나는,
검은 왕관의
카니발 위에서
2013 통영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김춘수 시문학상 조동범 시인의 '카니발', 김상옥 시조문학상 조동화 시조시인의 '영원을 꿈꾸다', 김용익 소설문학상 재미소설가 박경숙의 '빛나는 눈물'이 각 부문작로 선정됐다.
통영문학제추진위원회(위원장 김혜숙 통영문인협회장)는 27일 시, 시조, 소설 장르별 심사위원회를 개최, '2013년도 통영문학상' 수상자를 최종 선정했다고 밝혔다.
심사는 박주택, 장석남 시인이 시 부문, 이우걸, 유재영 시인이 시조 부문, 백시종, 방현석 소설가가 소설 부문을 각각 맡았다.
김춘수 시문학상 수상자 조동범 시인은 경기도 안양 출생으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한신대 문예창작학과를 거쳐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 문학동네 신인상 시 부문에 당선 등단했으며, 작품집으로는 시집 '심야 베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산문집으로는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문학평론집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등이 있다. 현재 계간 시인동네, 격월간 시사사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중앙대, 서울예대, 한서대 문예창작학과에 출강 중이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조동범의 시집 '카니발'(문학동네)은 도시 생태학적 시선으로 자본과 속도의 문제를 탐구하며 불길한 죽음 의식과 팽팽히 대결, 은폐돼 있는 인간의 심층적 감정이나 원초적 욕망을 밀도 있게 관찰해 시속에 전각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박주택 심사위원은 "김춘수 시세계와 멀리 떨어지지 않는 탁월한 시적 고투를 살피는 한편 최근 시적 활동을 활발, 시적 성취가 남다른 것을 기준으로 본선에 오른 10여 권 중 최종 5권을 다시 심사, 최종 조동범의 카니발을 선택했다"고 심사기준을 밝혔다.
또 "조동범은 체험을 깊이 있게 인식해 자신을 세계와 고립시키지 않고, 자신이 처한 현실 속에서 인간과 현실의 관계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해 온 뛰어난 시인"이라고 평했다.
조동범 시인은 "시 쓰기가 설렘과 열정으로만 가득했던 날들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언제나 일상을 벗어난 순간들이었고, 그런 날들이야말로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다…나는 나의 시가 일상성의 무의미한 파국에 함몰될까 언제나 두려웠고, 그것을 피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시 쓰기는 지리멸렬한 파국을 향해 치닫는 것만 같았다. 김춘수 시문학상 수상 소식은 이런 내게 새로운 지점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주었으며, 오랜 기간 인내했던 시인으로서의 삶을 어루만져주었다. 가족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통영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7월 5일 오후 7시 통영문학제 개막식과 함께 문화마당 특설무대에서 열리며, 창작지원금으로 각각 1천만원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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