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교육 / 심지현
오빠 내가 화장실 가다가 들었거든, 내일 아줌마가 우릴 갖다 버릴 거래. 그 전에 아줌마를 찢어발기자. 우리가 죽인 토끼들 옆에 무덤 정도는 만들어 줄 생각이야. 토끼 무덤을 예쁘게 만들어 주는 건 오빠의 즐거움이잖아. 아줌마는 가슴이 크니까 그건 따로 잘라서 넣어야겠다. 그년의 욕심만큼 쓸데없이 큰 젖. 여긴 아줌마가 오기 전부터 우리 집이었어, 난 절대 쫓겨나지 않을 거야.
너 시들지 않는 새엄마를 시기하고 있구나. 아버지가 무능해서 고생하는 예쁜 나의 새엄마. 그녀가 나를 버려도 괜찮아. 개처럼 기어가서 굶겠다고 말하면 그만인걸. 그게 안 먹히면 그녀의 가슴을 빨고 엄마라고 부르면 되지. 잠 설치는 아이를 달래는 척 밤마다 날 찾을지도 몰라. 자꾸 커지는 나를 본다면 오히려 그녀는 아이가 되겠지. 아, 못생긴 엄마가 떠나면서 주고 간 선물. 예쁜 우리 새엄마!
[당선소감] “읽히는 것만으로도 영광…더 좋은 글 향해 정진”
버려야 채워지는 것이 있어요. 허공에 잠긴 밤들을 살았지요. 학교에서는 글을 썼고, 그렇지 않은 시간엔 질투를 했어요. 저를 글 쓰게 하는 사건들이 올해 참 많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처럼 진심을 쓸게요.
폭탄이 터졌는데 어쩐 일로 기쁘대요? 어머니, 아버지. 조금 다른 걱정들을 하기로 해요. 바르게 걸을 수 있는 계기이자 감동인 현우에게 아픔이 다신 없기를.
김수복 선생님, 박덕규 선생님, 강상대 선생님, 최수웅 선생님. 매일 되새길 수 있는 배움들이 있어요. 위태롭던 제 글에 바닥을 그려주신 이덕규 선생님 감사해요. 새봄맞이, 그 처음을 가르쳐주신 이시영 선생님, 그 시간들로 글을 썼어요.
다 지난 4년 전이 여태껏 벅찬 이유, 문과 임, 박, 김, 조. 그립지 마요. 든든한 재롱받이 요섭 선배와 기호 선배, 동우. 아름다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시누리. 우리에겐 무엇이라도 괜찮을 논쟁이 있어 즐거워요. 단단하나 날카로운, 성규는 내 성장의 원동력. 우리 서로의 부러움을 자랑하도록 해요. 내가 먼저 말할게요, 그대의 가슴! 읽히는 것만으로도 영광임이 분명해요. 감사해요. 김사인 선생님, 황현산 선생님. 아무리 잘해도 부족한 보답이겠지만 더 좋은 글을 보일 수 있도록 정진할게요.
[심사평] “불편·설렘 동시에 안겨주는 당당함…생생하다”
본심에 넘어온 10인(장혜령·김영미·서진배·서명옥·이현우·김묘숙·박승렬·이호준·엄기수·심지현)의 후보작들을 검토하며, 오늘의 삶과 의식이 처한 현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후보작들 다수가 그 음울과 살풍경을 막막하게 앓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 고통의 복판을 피해갈 시의 길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을.
시는 ‘참말’을 하려 한다. 담긴 메시지가 논리적·도덕적으로 맞다거나 합당하다는 뜻이 아니다. 태초 이래 무수한 사람들이 살고 갔지만, 그럼에도 모두의 생이 진부하기는커녕 매순간 새롭고 아프고 기막힌 것이며, 누구에 의해 대신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참이다. 그때 ‘참말’은, 설사 낯익은 메시지를 싣고 있는 듯 보일지라도 반드시 새롭고 절실하다. ‘참말’은 또한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습성화된 느낌과 생각과 말의 회로로부터 우리를 흔들어 깨우기 때문이다. 그러한 참말의 힘은 겉을 꾸며 흉내낼 수 없다. 오직 온몸을 던진 낮은 포복을 거쳐 이루어질 뿐이다.
신춘문예가 일부 문학 지망생들의 잔치를 넘어, 전 한국어 사용자들의 공동 관심사이며 그래야 마땅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우리의 기꺼움과 설움과 고뇌를, 우리의 아름다움과 매혹과 깊이를, 나아가 우리의 공포와 분노, 우리의 파렴치와 비열함까지를 우리 자신보다 더 예민하게 앓고 노래해줄 새 소리꾼, 새 만신, 새 예언자를 기대하는 사회적 형식이기 때문이다.
재독을 거쳐 우리는 이호준·엄기수·심지현 3인으로 일단 후보를 압축했다.
이호준의 감각과 솜씨는 훌륭한 것이었다. 그의 매력적인 언어들은, 필요하다면 신선함조차 연출할 수 있을 만큼 잘 다듬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 노련함과 자신감의 과잉이 오히려 시적 모험의 기개와 순결성을 손상하기도 한다는 것을 지적해 둔다.
엄기수도 이미 능숙한 시인이었다. ‘이끼소녀’ 등의 시편들이 보여주는 바 비애를 갈무리해 내는 낮은 톤의 목소리는 오랜 습작의 내공을 엿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그의 어투와 시적 조형방식에는 선배 시인들을 떠올리게 하는 낯익음이 없지 않았고, 시들이 좀 더 다채로울 필요도 있을 것이다.
심지현의 당돌함 앞에서 우리는 불편한 동시에 설렜다. 독자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의 시들은 어딘가 불균형한 듯하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는 새롭고 생생한 발화로서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정면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을 삶과 세계의 잔혹과 비극성을 그는 피하지 않았다. 슬픔과 상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의 언어들은 감상에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노련과 안정감보다 심지현의 이 용기와 젊은 당당함 쪽을 선택했다. 세상의 고통과 환희를 자신의 것으로 깊이 앓는 좋은 시인이 되기를 빈다.
- 심사위원 황현산, 김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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