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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객 행위 / 김양숙

- 장미

 

 

늑대들의 척추에서 원죄가 익어가는 시간

역전 뒷골목으로 숨어들어 스스로 몸에 불을 밝히는 꽃이 있다

몇 번의 건기를 관통하고서야 몸에 핀 꽃이 가시가 된다는 것을 안 사내

가시에 찔린 행성은 전신주에 매달려 밤새 별빛을 토해냈다

 

꽃송이 대신 마른 눈물이 배달되는 시간

몸에 두른 가시를 열면 쏟아지는 새끼손가락들

머리 올려 줄게 오빠랑 살자

오빠랑 도망가자

설탕과 분자구조가 같은 말이

켜지 못한 촛불이 되어 유리창살 안에 갇혀있는 저녁

 

짐승의 피를 깨우는 여자의 웃음이 담장 아래로 쌓였다

물컹거리며 제일 먼저 썩어가는 심장은

사내의 식민지와 여자의 식민지가 만나는 지점

 

여자가 더듬이를 갖다 대고

사내의 속을 읽어내는 방식을 고집했다

꽃잎은 서서히 낡아가며

열여덟 살의 이력을 한 움큼의 비린내로 뿌렸다

눈물로 정조준 된 사내는 다시 벼랑에서 추락하였다

 

누군가를 보내고 돌아선 새벽

수명이 다한 피의 비늘들이 떨어져 역전 뒷골목을 구르고

상처에 비린내가 차오르면 장미의 시간에 옹이가 박혔다

 

헐거워진 창살 사이로 고개를 내민 여자

깨어진 골목 안을 기웃거리는 늑대의 담벼락에

다시 뜨거워진 촉수를 올렸다

 

스스로의 죄를 창살 밖으로 꺼내놓고 수선 중인 장미

아직도 사내의 식민지일까

 

 

 

 

기둥서방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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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푸른 영혼을 가진 바다가 영원히 기다려 주는 곳

 

얼마 전 고향에 다녀왔다. 푸른 영혼을 가진 바다가 영원히 기다려 주는 곳. 파도는 팔을 안으로 굽히며 치고 있었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은 계속 마을 쪽으로 기어오르고. 마을은 부서진 파도를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곤 하는 광경을 한참 서서 지켜보았다.

 

타향이라는 단어의 개념조차 낯설어져 버린 도시의 생활에서 늘 혼자가 된 걸 느낀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린다는 것이다. 현대는 수많은 바람이 존재하는 곳이며, 자의든 타의든 그 바람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 전쟁터 같은 곳이다. 싸우다 상처를 입기도 하고 상대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렇듯 현대를 살아내야 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두렵거나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나를 붙잡아주는 시는 나에게 뿌리인 것이다. 지치고 힘들 때면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대신 시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를 위로해주던 나의 졸시가 다른 누군가를 위로해 줄 수 있다는 데 용기를 갖는다.

 

시와산문작품상을 제정해주신 시와산문사에 감사드립니다. 시와산문애독자 여러분과 졸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 그리고 발행인과 주간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상은 앞으로 더 열심히 쓰라는 채찍으로 받아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독자들과 소통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심사평] 새로운 시법에의 도전

 

지령 백호를 향해 달려가면서 시와산문은 개성을 지니고 새로운 시의 험로를 개척하는 시와 시인을 소개하는데 힘을 기울여 왔다. 이미 여러 매체에서 시행되고 있는 작품상을 굳이 신설해야 하느냐는 내부의 여러 의견이 있었지만, 시와산문에 실린 좋은 작품과 시인을 재조명하고 독자들에게 알리는 일이 시와산문의 또 하나의 소명임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제1회 작품상을 선정하면서 내세운 선정기준은 공정성새로운 시법에의 도전의식이 있는가?’였다.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일차로 정기구독자 및 운영위원들께서 추천해 주신 작품들을 예심에 올리고 그 작품들 중에서 새로운 시법에의 도전과 구현에 탁월한 성과를 올린 작품을 최종심에 올려 심도있는 심사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최종심에 올려진 여러 편의 작품 중에서 김양숙 시인의 시 호객 행위2016시와산문이 제정한 제1회 시부문 작품상으로 선정하였다. 526행으로 이루어진 호객행위는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 이를테면 노마드라든가, 성을 둘러싼 젠더의 문제, 더 나아가 익명성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고독과 소외를 장미로 상징화 하면서 이야기 형식의 틀 속에 진술과 묘사의 묘미를 섬세하게 구축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관념(인식의 내용)을 이미지로 재생하는데 있어 중심에 놓인 이야기는 비유가 소멸되고 서술이 늘어나는 함정에 빠지기 쉬운데 호객행위는 시의 난삽함을 피하면서도 비극적 삶의 언저리를 증언하고 위무하는 새로운 시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 스스로의 토로처럼 원초적 슬픔이 발전단계를 거쳐 재탄생되는, 또 다른 나의 독백을 들어주는시의 진경을 더욱 깊고 넓게 확산시켜 주기를 바란다.

 

- 시와산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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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른손을 잃었다 / 차성환

 

 

잠결에 내 뺨을 때리는 손이 뭔 일 있어 시치미 떼고 가슴 위에 가만히 내려앉아 있다가 내가 잠들면 또 내 뺨을 내려쳐 도저히 참지 못해 벌떡 일어나면 방 안을 날아다니며 내 귀싸대기를 겁나 후려치는 날갯짓에 정신을 못 차리고 이 개새끼야 이빨로 물어다 바닥에 패대기를 치고 겨우 손목을 잡아다 식칼을 꽂는다

 

 

 

오늘은 오른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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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10회 시작문학상 수상자로 차성환(40) 시인이 선정됐다고 이 상을 주관하는 출판사 천년의시작이 18일 밝혔다. 수상작은 시집 '오늘은 오른손을 잃었다'.

 

심사위원회는 "'오늘은 오른손을 잃었다'는 세상에 존재하거나 부재하는 '자리'를 더듬어 밝히려는 시인의 의지가 돋보이며 경쾌한 언어유희와 반복적 점층에 의한 율독적 가파름이 명품처럼 담겨 있는 시집"이라고 평했다.

 

시상식은 128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 다목적홀에서 열린다. 상금은 5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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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들다 / 김선태

 

 

너를 향한 마음이 내게 있어서

바람은 언제나 한쪽으로만 부네.

 

나는 네가 마음에 들기를 바라는 집.

대문도 담장도 없이 드나들어도 좋은 집.

 

마음에 든다는 것은 네가 내게 스미는 일.

온전히 스미도록 마음의 안방을 내어주는 일.

 

하지만 너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사람.

나는 촛불을 켜고 밤늦도록 기다리는 사람.

 

그렇게 기약 없는 사랑일지라도

그렇게 공허한 행복일지라도

 

너를 향한 마음이 내게 있어서

바람은 언제나 한쪽으로만 부네

 

 

 

 

한 사람이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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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목포대학교(총장 최일) 국어국문학과 김선태 교수(시인)천년의 시작(문예지 시작’)에서 제정한 제9회 시작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김선태 교수는 이번에 발간한 감성시집 한 사람이 다녀갔다를 비롯한 그간의 활발한 문학적 업적을 인정받아 수상의 영광을 누리게 됐다.

 

시상식은 128() 오후 630분 동국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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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이다 / 박종국

 

 

스멀스멀 기어오른 벌레 같은 어둠이 능선을 갉아먹는 소리, 놀라 뛰는 노루 뒷발에 채인 나뭇가지 찢어지는 소리, 암노루 궁뎅이가 희끗희끗 산기슭을 적시는 저녁나절이다

 

그런 틈새에 살아가는 것들, 어슴푸레한 빛 속 어둠이 몰고 오는, 견디기 어려운 푸석거림, 가엾은 마음을 사르는 능선이 붉은 저녁나절이다

 

어둠이 빛을 지우는 부적 같은 한 장의 그림이 드러내 보이는 숲 속에는 꽃과 잎들이 떨며 진주 같은 이슬방울 떨어뜨리고, 껍질을 하나하나 벗는 산봉우리, 장엄한 시간을 알려주는 저녁나절이다

 

잃을 것도 없는 것을 잃을까 봐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저녁나절

어둠이 능선을 지우며 내게로 오는 동안, 어둠에 익숙한 하늘은 밥풀 같은 별 몇 알 오물거리고 있다.

 

 

 

 

누가 흔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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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천년의 시작은 제8회 시작문학상에 박종국 시인의 시집 누가 흔들고 있을까’(천년의 시작)를 선정했다고 3일 밝혔다.

 

천년의시작에서 발간하는 계간문예지 시작에서는 매년 시작에 발표된 신작시 중 뛰어난 시를 뽑아 시작작품상을 수여해 왔으나 올해부터는 내부 발표작에 한정하지 않고, 시문학계 전체를 대상으로 가장 우수한 작품집을 뽑기로 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9월까지 1년간 출간된 모든 시 작품집을 대상으로 했으며 이와 함께 상의 명칭 또한 시작문학상으로 개명했다. 최종심에는 최승자의 빈 배처럼 텅 비어’, 함명춘의 무명시인’, 황인찬의 희지의 세계’, 송찬호의 분홍 나막신등이 올랐으나, 최종적으로 박 시인의 누가 흔들고 있을까가 선정됐다.

 

심사위원단은 이 시집에 대해 외연적으로는 경험적 구체성을 통해 농사 체험을 채집하고 그를 긍정의 눈으로 바라본 미학적 성과물이라며 다른 한편으로는 존재론적 시원을 발견해가는 마음의 우주다고 언급했다.

 

박 시인은 1997년에 현대시학으로 등단해 집으로 가는 길’, ‘하염없이 붉은 말’, ‘새하얀 거짓말등의 시집을 냈다. 수상 시집인 누가 흔들고 있을까는 이전 시에서 보이는 형이상학적 비의에 대한 탐구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의 경험을 통해 존재론적 시원을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상식은 오는 129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다목적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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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석 : ‘이제, 문학은 어디로 가는가?’

-46호 가을호 게재작품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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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상징계의 절벽에서

 

완성되지 않는 글쓰기의 도정에서 늘 지쳐있는 제게 큰 위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쓰기란 없는 것을 찾고, 도달 불가능한 것을 지향하며, 상징계의 절벽으로 자신을 끝없이 내모는 일입니다. 그것은 늘 실패이고 당혹이며 고통입니다. 그래도 눈먼 사람처럼 글의 미로에서 헤매는 것은, ‘아버지의 법칙을 거부하며 상식을 조롱하고 공리를 의심하는 것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지속적인 힘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90년대 초반 등단한 이후 영문학 연구를 핑계로 20여 년간 문단을 떠났다가 다시 문학적 글쓰기를 시작한 지 이제 5년여밖에 되지 않는 신인입니다. 문학 앞에서 제 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리고, 제 가슴은 늘 설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문학은 언어라는 무기물無機物을 건드려 매혹의 생물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것은 반복을 혐오하며 더는 새로울 것이 없는 사막에서 새로운 물길을 찾는 작업입니다. 그 고단한 코뮌의 동지들을 사랑합니다. 부족한 제 글을 수상작으로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계간 시와경계에 경의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굿모닝, 에브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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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코비드시대의 진단과 시 창작 방향 제시에 돌올한 성과

 

4회 시와경계 문학상 심사를 마쳤다. 금년부터 평론도 심사범위에 포함하였다. 시부분과 평론부분 중에서 한 분야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잡지가 좋은 시와 우수한 평론을 만날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에서이다. 심사 작품은 2019년 겨울 호부터 2020년 가을 호까지 발표한 신작시’, ‘특집시’, ‘오늘의 주목할 시인’, ‘신인특집에 게재한 306편과 기획특집에 게재한 평론까지 총 310편이다.

 

심사위원은 손진은 이대흠 우대식 천수호 시인이다. 심사위원께 필자의 이름을 삭제한 총 310편의 작품을 보낸 후 최종 10편을 선정하도록 하였다. 보내온 40편 작품의 필자를 복기한 결과 정우영 시인이 2, 정학명 시인의 두 작품이 각각 1표씩, 오민석 시인의 평론이 3표였다. 논의할 사항도 없이 오민석 평론가의 이제, 문학 어디로 갈 것인가가 선정되었다.

 

심사평은 아래와 같다.

 

오민석의 이제, 문학은 어디로 가는가?를 올해의 시와경계 문학상으로 결정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 글은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문학사의 통찰은 물론, 현 시대 문학의 나아갈 바를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명쾌하게 진단함으로써 시인들의 창작 방향의 제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문학이 사라짐이라는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 글의 가장 큰 전제이고 필자가 밝힌 문학사의 통찰이다. 이는 이상과 백무산 시에 대한 견해에서 두드러진다. 필자는 그런 맥락에서 개인성과 사회성의 불가피한 연결을 죽음의 위협을 동반하며 각인하고 있는 코비드-19’를 주목한다. 지금 우리 시는 탈근대(postmodern)’를 넘어 코비드 시대로 넘어가고 있으며, 이제 세계는 코비드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누어질 것이라고 선언한다. 코비드가 우리에게 던져준 새로운 인식은 바깥(지구)의 운명이 자신(개인)의 운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것을 근대적 개인을 대체하는 공동체적 개체의 출현으로 잡고 있다. 개체성과 공동체성을 동시에 구비한, 주체의 안과 밖을 동시에 사유하는 겹 주체성(double subjectivity)’.

 

모든 변화의 산물들은 활용의 대상이지 거부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문학 환경의 변화도 고찰하면서 시각적 이미지와 문자언어가 서로 만나는 디카시를 사라짐이라는 본질에 충실한 장르라고 보는 점도 충분히 공감한다.

 

단언컨대, 이 글은 최근 우리 시단의 문학담론 가운데서 예지와 통찰, 미시성과 거시성의 조화 등에서 단연 돋보이는 비평이다. 그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심사위원 이대흠 우대식 천수호 손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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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객잔 / 윤효

 

 

설산에

마지막 마방이 걸어두고 간

조각달 아래

하룻밤

내내

가쁜

숨소리

 

그곳에도

아침은

와서

보니

앉은뱅이

도라지꽃

 

 

 

 

배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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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회 유심작품상 시 부문에 윤효 시인, 시조 부문에 문무학 시조시인, 소설 부문에 이경자 소설가, 특별상 부문에 한분순 시인(한국여성문학인회장)이 선정됐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510일 제19회 유심작품상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시 부문에는 윤효 시인의 차마객잔, 시조부문에는 문무학 시조시인의 그전엔 알지 못했다, 소설 부문에는 이경자 소설자가의 단편 소설 언니를 놓치다가 각각 선정됐다. 특별상 부문에는 한분순 시인이 이름을 올렸다.

 

시 부문 수상자 윤효 시인에 대해 심사위원 오세영 시인은 윤효 시인의 작품은 존재나 세계에 대해 항상 사색적이고 자기 성찰적이라며 그의 시에는 크든 작든 삶에 대한 깨우침이 있다. 한마디로 철학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조 부문 심사위원인 김영재 시조시인은 문무학은 한국시조단뿐 아니라 한국문단에 소중한 시인으로, 한글 자모(子母)를 시로 쓴 유일한 시인임을 강조했다.

 

소설부문을 심사한 구중서 문학평론가는 이경자 소설가에 대해서 작가 이경자는 인간 존재의 기본권에서부터 문제를 추적하는 작품을 쓰고 있다. 아울러 총체적 세계관 범주에서 민족의 역사적 현실을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소설을 쓴다면서 소설 언니를 놓치다는 이러한 현실의식을 충직한 수법으로 다룬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수상에 대해 윤효 시인은 수상 통보를 받고 만해 한용운 스님을 떠올렸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환하게 밝힌 선지식의 전인적 풍모가 그리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으며, 문무학 시조시인은 수상작 그전엔 알지 못했다가 만해 스님의 알 수 없어요를 많이 쫓아가고 싶었나 보다. 수상의 기쁨을 숨기지 않으면서 여기선 그런 억지라도 마구 부리고 싶다고 말했다.

 

강원도 양양 이북이 고향이라고 밝힌 이경자 소설가는 수상소감으로 인간 삶의 모순이 층층이 켜켜이 시공간에 뭉쳐있는 곳. 이곳에서 내 무의식이 모두 형성 됐다. 그러므로 소설가인 나는 뭉친 것을 풀어야 하는, 책무를 얻었다고 밝혔다.

 

19회 유심작품상 시상식은 오는 811일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린 만해축전에서 진행되며, 각 부문 수상자들에게는 15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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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 / 함민복

 

 

하루 산책 걸렀다고 삐쳐

손 내밀어도 발 주지 않고 돌아앉는

길상이는 열네 살

 

잘 봐

나 이제 나무에게 악수하는 법 가르쳐주고

나무와 악수할 거야

토라져

길상이 집 곁에 있는

어린 단풍나무를 향해 돌아서는데

 

가르치다니!

 

단풍나무는 세상 모두와 악수를 나누고 싶어

이리 온몸에 손을 달고

바람과 달빛과 어둠과

격정의 빗방울과

꽃향기와

바싹 마른 손으로 젖은 손 눈보라와

이미

이미

악수를 나누고 있었으니

 

길상아 네 순한 눈빛이

내게 악수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었구나

 

 

 

 

2020 유심작품상 수상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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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스님의 문학 사상을 선양하기 위해 제정된 유식작품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18회 유심작품상 수상자로 시 부문에 함민복 시인의 악수, 시조부문에 박시교 시인의 무게, 평론 부문에 이승하 중앙대 교수의 한국시조문학의 미래를 위하여, 특별상에 오탁번 한국시인협회장을 각각 선정했다529일 밝혔다.

 

함민복 시인에 대해 심사위원회는 오랫동안 따뜻한 시선으로 시를 써왔고, 이번 수상작인 악수도 시인 특유의 천진함과 따뜻함이 묻어나오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박시교 시인의 무게에 대해서는 수상이 늦었다고 생각이 될 정도로 우리나라 시조 문단을 대표하는 뛰어난 시조 시인이라고 상찬하며 사물과 현상을 측은지심으로 보살피는 시를 써왔다. 이번 수상작품 무게도 삶의 무게와 처연함이 인상 깊다고 밝혔다.

 

평론 수상자 이승하 교수에 대해서는 그간 시조 전문 평론집은 거의 없었다. 시조 평론이라는 새로운 평론집을 세상에 내놓은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특별상 수상자인 오탁번 회장은 원로시인으로서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 문단 발전에 많은 역할을 해온 점을 인정받았다.

 

한편, 18회 유심작품상 시상식은 오는 811일 동국대 만해마을에서 열리며 각 부문 수상자에게는 각각 15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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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루와 나나 / 김희준 

 

 

 

 

 

가위를 쥐어봐요
                                                        우리는 유전자가 편집된 채 태어난 최초의 쌍둥이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 미래형 맞춤 아기예요
                                                        말랑한 유리를 만지는 모순된 인류 미래의 심장입니다
                                                        크리스퍼 베이비(Crisper Baby)
                                                        바코드를 파란 엉덩이에 붙여도 좋겠습니다

 

 

어쩌다가 만들어졌어 루루는 득을 따지지만 나나는 우연이라 하지 8월은 어쩌다가 포도에게 빚을

져서는,여름을 담보한 과일이 속절없이 투명해져 가

 
루루, 무례한 씨를 가졌구나 당도 높은 태양이 바구니에서 후숙되는 중이야 다음 생은 입 없는 하

루살이가 좋겠어 평생 말을 연습하다가 끝내 소리할 수 없는 계절을 삼키다가 당신 이름이 유언이

되는 비루한 알몸이면 좋겠어

 
나나, 과일을 조심해야 해 파란 혈맥을 가진 여름을 함부로 만지는 건 위험해 태양이 파과하고 있어

바구니에 죽은 열기

가 번지고,

 
이리 와, 퍼즐을 맞추자
비어버린 부분을 맞춘 조각을 쏟아버렸지 이건 누가 잘라둔 장마일까

 
루루, 어쩌다가 태어났더라? 네가 죽는 걸 봐야겠어
여름이 오려둔 절기가 내리고 있어 바구니가 멍이 들고 우리는 금방 슬퍼지겠지
물컹한 태양을 만지다 보면 캄캄해지는 한쪽을 어떻게 해야 할까
포도 넝쿨에 매달린 우리는 알맹이만큼 다양한 안색이야

 
나나, 사랑스러운 말을 연습하자 우리가 우리라는 걸 알게 된 건 언제였더라 아파본 적 없는 루루가

아픔을 배우게 된 건 또 언제였지

 
넝쿨이 서걱거리는 저녁

 
정교한 탯줄을 빨아들이는 우리의 다음 생

 
나가자 나나, 돌아와 루루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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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희준이 자기 행성으로 돌아간 뒤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일에서 문득문득 희준을 만납니다. 이렇게 아무데서나 희준이 보이니 이제 희준은 시공간을 자유롭게 다니는 몸을 가졌나 봅니다. 아득한 시간을 건너고 있는 제게 희준은 언제나 말합니다. 엄마,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그 말을 놓칠까 저는 자꾸 말에 기댑니다.

 

?루루와 나나?를 발표하고 바로 떠났으니 희준은 지면에 실린 글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희준에게 좋은 기별이 되어 닿았을 겁니다. 수상 소식을 들은 희준은 어떠할까 생각합니다. 아마 많이 웃을 겁니다. 웃음이 많은 아이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겁니다.

 

선생님 시가 너무 좋아요. 매일 절절 생각해요. 제가 많이 사랑해요.

 

또 이렇게 말할 겁니다.

많이 모자란 제게 큰 상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 하겠습니다. 라고요.

 

이른 나이에 자기 행성으로 떠난 아이를 깊이 품어주신 시산맥과 심사위원님께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김희준을 지구별에 오래 붙들어주신 모든 분께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 김희준 엄마 강재남 두손

 

 

 

 

 

 

   빗방울 랩소디 / 진혜진

 

 

   우산이 감옥이 될 때

 

  예고도 없이 소나기가 쏟아진다 손잡이는 피하거나 피하지 못할 것에

잡혀있다

  비를 펼치면 우산이 되지만 우산을 펼치면 감옥

 

  귀고리 목걸이 발찌 팔찌에 수감된 몸, 쇠창살 소리가 난다

  소나기 속의 소나기 나만 흠뻑 젖는다

 

  보도블록 위에서 이질감이 된 빗방울, 절반은 나의 울음 나머진 땅의 심

장에 커다란 구멍을 낼 것이다

 

  버스정류장 앞 넘치는 웅덩이가 막차를 기다리는 새벽 2시의 속수무책

과 만나 서로의 발목을 확인한다

 

  빗방울 여러분!

  심장이 없고 웃기만 하는 물의 가면을 벗기시겠습니까

  젖어서 만신창이가 된 표정을 바라만 보아도 되겠습니까

 

  어떤 상실은 끝보다 시작이 더 아프다

  누가 누구를 용서해야 끝이 날까

 

  검은 우산과 정차하지 않는 버스 바퀴와 폭우가 만들어 내는 피날레

 

  밑줄을 긋듯 질주하는 차가 나를 후경에 밀치고 사라질 때

 

  젖어서 죄가 되는 빗방울

  용서가 잠겨있는 빗방울

 

  우산은 비를 따라 용서 바깥으로 떠난다

 

 

 

 

포도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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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산맥작품상은 매호 시산맥시회 회원들이 추천한다. 2020년 여름호부터 2021년 봄호에 게재된 작품 중 제11회 시산맥작품상 후보에 오른 작품은 21편이었다. 그중 1차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16, 2차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8편이었다. 본심을 맡은 강 수 시인과 김 륭 시인이 각각 2편의 작품을 최종심에 올렸으나 수상작을 선정하지 못해 시산맥작품상 기 수상자인 최정란 시인이 다시 작품을 추천, 다음의 3편을 최종 논의하였다.

 

이인주 여우를 위로함

진혜진 빗방울 랩소디

김희준 루루와 나나

 

이번 최종 예심에 오른 시들은 두 개의 전혀 다른 축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하나는 은유의 축을 기반에 둔 시들이고, 다른 하나는 환유의 축에 토대를 둔 시들이다. 은유의 축에 가까운 시들은 의미(메시지) 전달이 중심이 되고, 화자의 정서와 주제 의식이 비교적 명료하게 전달된다. 반면에 환유의 축에 가까운 시들은 시인의 무의식이나 자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파편화된 이미지와 초현실주의적 사유의 경향을 보여준다. 그동안 현대시의 흐름은 <은유적인 축>에서 벗어나 <환유적인 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왔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인의 정신적 삶의 세계를 반영하기에는 <환유적 이미지>가 더 적합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로움>이라는 미학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유적인 시>는 조금 낡고 고루한 느낌이 들고, <환유적인 시>는 그 표현상의 특징으로 인해 더 새롭고 참신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시의 본령이 낯설게 하기를 통한 인식의 새로움을 환기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이번에 최종 본심에 오른 시인들은 자신들만의 개성적인 방법으로 그러한 미학적 오체투지를 하고 있으며, 나름대로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최종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빗방울 랩소디> <루루와 나나> <여우를 위로함>이다. 이 중에서 환유적 축에 가까운 시들은 <빗방울 랩소디> <루루와 나나>이고 반면에 이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은유적 축에 가까운 시는 <여우를 위로함>이다.

 

<여우를 위로함>여우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한 상상력의 변주를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비교적 선명하게 잘 드러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우라는 기호의 의미를 다양하게 변주하면서, 이러한 변주를 상상력의 차원으로 확장하여, 화자의 삶에 대한 고뇌와 트라우마를 이미지화함으로써 독자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 시의 미덕은 각각의 이미지들이 매끄럽게 연결되고 이어지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여우로 표상되는 여성성에 대한 문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는 점에 있다.

 

<빗방울 랩소디> <루루와 나나> 두 작품은 시어들이 기호화되어 있고, 이미지들이 파편화되어 있다. 시어와 시어 사이,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의미 간극을 최대로 벌려 놓았기 때문에, 독자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이 시들은 파편화된 이미지들을 통하여 독자를 화자의 내면 속으로 이끈다. 거기서 우리는 시인이 현재 처해 있는 실존적 문제에 대해 <낯선 깨달음>을 얻고, 우리들 자신의 실존적 문제로 확산시키며 공감대를 형성해 나간다.

 

<빗방울 랩소디>소나기 속의 소나기 나만 흠뻑 젖는다와 같이 독자의 감성을 끌어들이는 흡입력 있는 이미지들이 매력적인 시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 소나기는 우리가 아는 소나기가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나기속에 감춰져 있는 낯선 소나기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시 속에 형상화되고 있는 빗방울도 낯선 빗방울이다. 시인은 그것의 시니피에(기의)죄의식으로 전환시킨다. 그 결과 화자를 적시고, 밤을 적시는 비는 를 환기시키고, ‘죄의식을 강화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아울러 온 세상은 로 젖어 버린다. ‘우산하나로 어찌 그 죄를 피할 수 있으며 용서받을 수 있겠는가. 죄의식에 침윤된 화자는 스스로 죄수가 되고, 그 순간 세상은 감옥이 된다. 화자가 입은 옷은 죄수복이 되고, 화자가 치장한 액세서리는 수갑이 된다. 죄인으로서의 삶. 이러한 실존의식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해 준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소나기빗방울이라는 이미지를 끈기 있게 천착해나가는 시정신과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루루와 나나>에 제시되는 이미지와 시어들은 죽음과 공포라는 시인의 무의식/자의식을 구체화하는 데 집중한다. ‘루루나나는 화자의 분열된 자아로 읽히며, 그것의 통합을 추구하는 시인의 욕망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이원적/대립적인 상상력을 통해 방황하는 시인의 내적/무의식적 갈등을 드러내면서, 끝까지 갈망하지만 성취하지 못하는 자아의 합일로 인한 고통을 처절하게 형상화해 내고 있다. 마지막 부분의 나가자 나나, 돌아와 루루는 그러한 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다.

 

나나루루는 엇박자로 움직이고 있으며, 영원히 같은 공간에 존재할 수 없는 실존의 간극을 형상화해주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영원히 완성된 자아로 합일할 수 없는 현대인의 실존적 고통을 잘 그려내고 있는 수작이다.

 

이런 각자의 특성을 가진 3편의 작품을 가지고 심사자들은 오랫동안 고심을 하였다. 3편 다 수상작으로 충분하였으나, 이번 수상작으로는 환유적인 의미망을 잘 표출한 <빗방울 랩소디><루루와 나나>를 공동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수상자에게는 축하의 말을 아쉽게 탈락한 분께는 다음을 기약해 본다.

 

심사위원 강수(시인. ), 김륭(시인), 최정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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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의 수프 / 송찬호

 

 

인구 3만의 도시 남쪽에 있는
늪에 악어가 살고 있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늪은
도시가 팔을 쭉 뻗어
대지에 끓이는 프라이팬 같다

도시는 자주 악어사냥꾼들을 늪에 보낸다
그때마다 악어는
수프를 끓여야 한다
사냥꾼들에게 먹일 수프를 끓여야 한다

악어는 온몸으로 수프를 휘젓는다
머리로
네 다리로
치명적인 억센 꼬리로
사냥꾼들이 도착하면 수프도 완성된다

사냥꾼들은 늪을 샅샅히 뒤진다
총알 구멍 난 늪의 침대를 누군가 가리킨다
놈이 여기 누워있다 도망친 게 틀림없군
사냥꾼들은 웃는다 소리친다 퍼먹는다 맛있는 늪의 수프를!

사투 끝에 악어 한 마리가 늪 밖으로 끌어 올려진다
눈이 가려지고
주둥이가 묶이고
악어의 머리에 무거운 돌이 놓여진다
그대로 악어는 끌려간다
악어를 짓누른 그 돌이 도시의 기초가 되었으니…

사냥꾼들이 떠난 후 늪의 수면으로 천천히 악어가 모습을 드러낸다
늪은 이제 고요하다
악어는 다시 수프를 끓인다
먼 피의 강으로부터
악어의 딸들이 돌아올 시간이다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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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며칠 전에 집에서 가까운 산으로 단풍 구경하러 갔습니다. 그 너머로는 이름난 속리산도 있지만, 그날 갔던 산은 그리 높지 않고 혼자서도 걷기에 좋은 고적함이 있었습니다. 이왕 산에 들었으니 정상까지 올라가려고 했지요. 그런데 정상에 가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작년부터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왼쪽 무릎이 욱신거리며 오를수록 통증이 더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무리하면 무릎 관절염이 더 심해지겠다는 생각에 그만 포기했습니다. 그러고 8부 능선쯤의 바위에 앉아 가져간 물과 빵을 먹으며 한참 쉬었습니다.


산꼭대기가 아니더라도, 거기서도 겹겹의 산줄기들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멀리 제가 사는 동네도 보이고 그 앞 국도로 성냥갑만한 차들이 바삐 오가는 것도 보였습니다. 문득 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문학의 높이라면, 제 시쓰기의 자리는 어디쯤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가리키는 봉우리는 꼭 문학적 성취나 성공의 높이를 이르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는 쓰고자 하는 글의 목록이나 쓰는 글의 내적 열망의 크기를 가리키는데 더 가까운 말입니다. 요즘 제가 원고지앞에 옛 습작 시절의 추억과 열정을 자꾸 소환하는 것도 그 이유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제 위치는 지금 산 날망이 아니라, 오르는 비탈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처럼 무릎이 아프면 쉬엄쉬엄 올라야 하거나 아예 중도에 포기하고 내려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나이에 따른 퇴행을 넘어 무릎의 건강을 바라는 심정과 같이, 저의 ‘문학에의 등정’을 포기하지 않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할 뿐입니다.

 

지난 몇 년간 시에 대한 고민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앞으로 제가 쓰는 시가 새롭지 않으리란걸 압니다. 그래도 계속 시를 쓸 것입니다. 그렇게 쓴 시가 평이하게 비쳐도 수긍하겠습니다. 제17회 애지문학상 수상자로 저를 호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에 상을 주시는 것도, 비록 평이한 시가 나올지라도 거기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치열한 갱신의 정신으로 다가가라는 격려와 채찍의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심사해주신 선생님들께 시에 대한 더욱 부지런함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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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우리 인간의 세상에서 말처럼 굳세고 목질이 좋고, 말처럼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지닌 것은 없다. 말은 상냥하고 심지가 곧고, 언제, 어느 때나 정의로운 길로 인도하며,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준다. 부모형제, 단군, 하나님, 도덕, 종교, 사상, 이념, 가정, 군대, 학교, 경찰, 회사, 국회, 정부, 진리, 허위, 선악, 남녀 등―, 이 모든 것은 말의 꽃이자 열매라고 할 수가 있다. 말보다 키가 크고, 말보다 힘이 세고, 말보다 빠르고, 말보다 높이 나는 것은 이 세계에 없다.

 

말은 명령하고, 말의 명령으로 우주가 탄생하고, 말은 모든 것들의 영원을 원하고, 이 생명의 숲을 가꾼다.

 

2019년은 『애지』 창간 20주년이며, 어느덧 제17회 애지문학상을 시상하게 되었다. 2018년 겨울호부터 2019년 가을호까지 발표한 작품들 중에 10편의 시를 후보작으로 선정했고, 그 결과 송찬호 시인의 「악어의 수프」와 이영식 시인의 「꽃의 정치」를 공동수상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박분필의 시인의 「자작나무 自敍傳」, 천양희 시인의 「어느 미혼모의 질문」, 이병률 시인의 「그 배를 타기는 했을까」, 고재종 시인의 「길에 대하여」, 김병호 시인의 「누가 괜찮아, 했을까」, 송승언 시인의 「나 아닌 모든」, 서효인의 「종각에서의 대치」, 김기택의 「발바닥」 등은 모두가 탁월한 시들이고, 대단히 안타깝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송찬호 시인의 「악어의 수프」는 사회적 천민들의 ‘눈물의 수프’이며, 그 ‘수난의 역사’를 우화적으로 노래한 명시라고 할 수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제국주의와 똑같고, 소수의 귀족들(자본가들)이 생산과 소비의 과정을 다 움켜쥐고, 소비자의 구매의사결정능력까지도 다 빼앗아 버린 사회라고 할 수가 있다. 그토록 사납고 포악한 악어는 육체노동을 하는 농민들이고, 이 농민들은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최고급의 농산물을 생산해내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고작 피곤하고 지친 육체와 가난과 병과, 심지어는 농약을 먹고 자살하는 것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 과정은 송찬호 시인이 역설한 대로 악어가 악어사냥꾼들을 위해 그토록 처절하게 수프를 끓이고, 끝끝내는 자기 자신의 육체마저도 먹잇감으로 바치는 것과도 똑같다. 하나도 희생정신이고, 둘도 희생정신이고, 이 악어들의 희생정신이 도시의 자본가들, 또는 도시의 고급문화인들의 삶의 토대가 된다.


모든 고급문화는 「악어의 수프」의 역사이며, 이 땅의 이름없는 사회적 천민들의 희생의 역사라고 할 수가 있다.

2019년부터는 애지문학상 문학비평부문을 다시 부활하여 시상하고자 했지만, 그러나 최종심에 올라온 후보작들을 보고 그만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비평가는 사상가이며, 그 모든 것을 주재하는 심판관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한국문학비평의 후퇴는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다.


제17회 애지문학상 공동수상자인 송찬호 시인과 이영식 시인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부디 더욱더 좋은 시 많이 쓰시고, 우리 한국어와 우리 한국인들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시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글 반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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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고 또 벗고 / 황경순

심해(深海)에 사는 키다리게

탈피를 위해 얕은 물로 대이동을 시자ㄱ한다

헌 껍데기를 버리고 새 껍데기가 나기까지

2주일 동안 사투가 시작된다

눈빛만 살아있고

속살이 드러나 말랑말랑해진 키다리게

거대한 기오리의 뱃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물고기 떼에게 뜯어 먹히기도 한다

일부의 희생으로 한 편에선 짝짓기도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감수해야만 하는 2주일

그 2주일을 버텨야만 몸이 1.5배 죽죽 늘어난다

무거워진 몸이지만 발걸음도 가볍게

다시 심해로 힘차게 돌아간다

100년을 사는 거대한 3.5미터 키다리게

거미처럼 몸통보다 다리가 길어

심해에서 천하무적 종횡무진하는 키다리게

20번이나 헌 옷을 벗고 또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며 나날이 새로워지는 키다리게

비슷하게 100년 가까이 사는데 자라지도 않고

쪼그라드는 인간,

쪼그라들수록

벗고 또 벗고

눈은 빛나야 하는데

나날이 새로워져야 하는데

이제 그들은 흔적도 없다

깊이깊이 숨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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